이미 물건너간 얘기니까 이제는 해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몇 달 전, 우리 소장이 부소장과 어디론가 갔다오는 일이 잦았다. 그런 일이 없던 건 아니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갔다오고 나면 소장의 얼굴에 근심걱정이 많은 듯했다. 속으로 난 ‘바람 피운 거 들켰나?’라는 생각부터 ‘뭔가 큰 한탕을 하려나’까지 다양한 생각들을 했지만, 소장도 부소장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한달쯤 그러다가, 부소장이 우리를 데리고 술을 산 적이 있다. 소장과 달리 부소장은 삼겹살 같은 걸 사도 “마음껏 먹으라”고 해주는 후덕한 사람이라 허리띠를 풀고 양껏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난 그날 고기를 별로 먹지 못했다. 부소장이 해주는 얘기가 참으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모 기관에서 자기들 소유로 된 땅을 가지고 있다. 그 땅은 위치로 봐서는 노른자위지만 그린벨트로 묶여있어서 별 소용이 없는 땅이었다. 그런데 힘이 있는 공무원들이 몇단계를 거쳐서 그 땅의 그린벨트를 풀고자 했다. 현재 시세만 해도 200억에 달하는 그 땅은 그린벨트가 풀린다면 최소한 1,000억은 될 터였다. 근처 땅의 시세를 부동산업자들에게 문의한 결과도 그 가설을 입증해 줬다. 그들의 제안은 우리가 그 땅을 300억에 사고, 그 후에 그린벨트를 풀어주겠다는 것.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현금 70억. 그것만 준다면 우리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릴 수가 있다. 당연히 하겠다고 할 거지만 그게 불법인 것이 문제다. 이게 새나가기만 한다면 그들은 물론 우리 소장도 쇠고랑을 차야 할 터였으니까, 고민되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소장은 할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700억이면 부채 다 갚고 사업도 정리한 채 편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그쪽에서는 300억이 들어있는 통장 사본을 요구했다. 회사와 건물을 잡히고 대출을 받고 어쩌고 하면 300억은 마련할 수 있단다(능력도 좋지). 그런데, 그쪽에서는 사본에 소장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걸 요구했고, 소장은 이름은 가리고 주겠다고 버텼다. 우습게도, 거기서 협상이 결렬됐다. 그 뒤 소장은 한동안 멍한 상태였고, 우리한테 히스테리를 부린 것도 상당부분 그 탓이라는 게 부소장의 설명이다. 물론 그 일이 있기 전에도 사장의 성격은 결코 좋지 않았기에, 부소장이 소장한테 밥을 몇 번 얻어먹은 게 아닌가 의심이 갔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안하기 잘했다. 700억이란 돈이 큰만큼 위험성이 너무도 컸다. 몇단계를 거치는 허가과정에서 잘못될 수도 있고, 우리 소장 이전에 접촉한 사람(아마 있을 것이다)이 밀고할 수도 있다. 그랬다면 난 영락없이 직장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700억의 유혹은 나로 하여금 삼겹살을 먹지 못하게 할만큼 매력적이다. 우리 소장 말고 다른 누군가가 그 돈을 차지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안타까워진다. 부소장 말로는 아직까지 그곳의 그린벨트가 풀리지 않았다는데, 앞으로는 신문을 볼 때 그린벨트가 풀렸다는 기사만 찾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