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가 고모가 에어콘을 샀다. 고모의 삶과 내 삶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모가 전에 쓰던 에어콘이 우리 차지가 된 거다.
에어콘 없는 집이 어디 있냐고 한다. 실제로 그리 좋은 아파트가 아닌 우리 아파트도 밖에서 보면 에어콘의 흔적이 수십개 보인다. 그 에어콘 통이 없는 몇집 중 하나가 바로 우리집이었는데, 고모 덕분에 우리도 에어콘 대열에 합류한 거였다. 더위를 그다지 타지 않아 선풍기만으로 충분했던 난 갑자기 에어콘에 맛을 들였고, 더위를 견디는 능력이 크게 저하되고 말았다. 문명의 이기가 사람의 저항력을 떨어뜨린 대표적인 예라고 할까.
한달간 신나게 에어콘을 틀었던 열매는 썼다. 전기요금이 무려...14만원이 나온 거였다. 난 거의 기절했다. 그 후부터 난 웬만큼 덥지 않으면 선풍기로 버텼다. 하지만 한번 떨어진 내 저항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올해 6월, 100년만의 무더위가 닥쳐온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반박기사가 났다. 올 여름 그리 안덥다고. 장마가 왔었고, 비가 안오는 날도 그리 덥지 않았다. 난 한번도 에어콘을 틀지 않은 채로 버텼다. 하지만 오늘 밤은 왜 이리 더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선풍기를 3단으로 틀어도 바람은 덥기만 했다. 이게 다, 내 저항력이 떨어진 탓이다. 그러고보면 고모가 에어콘을 주신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큰맘먹고 30분간 에어콘을 틀었다. 시원했다. 고모는 이렇게 잘되는 에어콘을 왜 바꿨을까? 새로 이사간 좋은 집에 어울리지 않아서? 찰나의 시원함은 이내 허무감만 남기고 사라졌다. 에어콘을 끄고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트니까 다시금 더웠다. 밤인데 왜 이러지? 나만 더운 걸까? 내가 오늘 열받은 일이 있었던가? 있긴 있다. 우리 소장, 그 생각만 해도 열이 받는다. 하지만 그게 뭐 하루이틀 일일까.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 체온이 더 올라가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갈증이 났다. 밤새도록 에어콘을 틀어대는 집이 부럽다. 한번 잃어버린 내 저항력은 언제나 다시 돌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