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관계 속에는 언제나 사랑이 숨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의 질서를 꿰뚫는 통찰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독일 출신의 '버트 헬링거(1925~2019)'선생님이 가족세우기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가족세우기 세미나에 참석한 내담자는 자신의 관계 이슈를 말합니다. 그러면 촉진자가 갈등 관계의 이해관계자 대역을 세웁니다. - '여는 글' 중에서

책의 저자 유명화는 한국가족세우기연구소 소장 · 한국가족세우기학회 초대부회장으로, 버트 헬링거 방식 가족세우기를 한국 사회의 현지화에 힘쓰고 있다. 전문가 양성과 교보재 개발·보급을 통해 다양한 계층이 버트 헬링거의 통찰을 배울 수 있도록 했으며, 인간관계뿐 아니라 개인의 성공과 조직 성과를 위한 세우기 방식 코칭 및 컨설팅 등으로 그 활용 영역을 넓혀왔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자기 연결(1부), 부모와의 관계 작업(2부), 질병과 관련한 작업(3부), 친밀한 관계 작업(4부), 자녀 관계(5부), 사회적 관계(6부) 등을 통해 17가지 관계 주제들을 작업한다. 작업하는 가운데 단 하나의 주제만이라도 깊이 와닿는다면 삶을 바라보는 인식이 전환되고, 관계를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남들은 다 잘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럴까?’
겉으로는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당신의 어려움은 유난히 예민하거나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저 얽혀버린 관계의 매듭을 푸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삶의 다양한 어려움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개인이 처한 환경과 공동체의 구조, 그리고 세대 간 얽힘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헬링거가 가족세우기 작업에서 통찰한 관점이다.
가족세우기 촉진자는 작업을 할 때 내담자來談者를 고립된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가족 체계에 속한 한 구성원으로 바라본다. 사람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다세대 구조와 역학에서 생기는 얽힘을 푸는 방식으로 돕는다.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한 사례자는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참석했던 세미나에서 필사책 파일럿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는 가능성을 여는 명상에서 '텅 빈 공간'을 상상할 때마다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깊은 고요함에 머무는 체험을 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조용히 말했다. 이후 그는 지인의 추천으로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총 네 차례의 체험에서 현재 내 삶의 주제를 생각하고, 침묵 속에서 호흡과 내면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알아차린 느낌을 필사하는 과정을 수행했다.


나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펀드 운용을 담당했던 매니저의 중대한 주문 실수로 거액의 손실을 입고 화병에 시달리며 잠을 못이룰 정도였다. 이때 아내의 권유로 불가佛家에서 진행하던 명상 수련에 참가하여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고 마음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었다.
관계의 원형을 치유하다
부모와의 관계는 가족세우기 작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관계의 원형이기에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이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연결감이나 귀속감을 느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관계에서 '좋은 부모 이미지'를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연인이나 배우자가 자신에게 좋은 부모처럼 대하길 기대한다. 이러한 관게는 안타깝게도 실패한다. 그들은 부모가 아니기에 부모가 주는 사랑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와 애착 이슈가 있는 자녀는 부모에게 친밀감보다는 거리감을 느끼며,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헬링거는 이를 ‘중단된 사랑의 움직임’이라고 했다. 그들의 트라우마 반응은 종종 부모 앞에서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얽힘을 풀기 위해선 부모 역시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게의 얽힘은 개인 차원뿐 아니라 그가 속한 가족과 사회문화적 역사라는 전체의 맥락을 함께 보고 있었던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풀린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모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곧 우리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존재했던 그대로에 조건 없이 동의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신과 타인에게 사랑과 호의로 관계할 힘이 생긴다. 이는 부모 곁에서 땅을 딛고 서 있는 든든한 안정감이며, 스스로 존재에 기뻐하는 힘이다. 이 안정감으로 우리는 낯선 상황에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탐험하며, 더 먼 곳으로 나아가 풍요로운 경험에 도전한다.
“얘야, 너는 네 운명을 살아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모든 것은 옳다.”
등 뒤에서 울리는 부모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생명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사랑의 질서이다. (사진, 사례)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생명의 움직임
이제 다시 부모님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뒤에 있는 부모님의 부모님을 바라봅니다. 그 뒤의 부모님을 또 그 뒤의 부모님을 바라봅니다. 마침내 셀 수 없이 많은 부모님을 응시합니다. 깊은 사랑으로 전체를 응시합니다. 모든 세대를 통해 생명은 우리 부모님에게 흘렀고 부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흐릅니다. 모두 같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부모님에게 받아 자녀에게 전해 준 모든 이는 옳게 행했습니다. 깊은 연결감과 귀속감을 느낍니다. 그 누구도 생명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었습니다. 생명은 이 모든 세대를 통해 그대로 흘렀습니다.
우리 생명을 위해서 각자가 좋았든 나빴든 존경받았든 멸시받았든 그것은 아무런 차이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는 생명에 똑같이 봉사했습니다. 생명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께 닿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우리에게 온 생명에 영혼을 엽니다. 생명이 이끄는 전체에 우리가 속해 있음을 실감합니다.
힘든 운명을 내적 성장의 자원으로 삼아
어린 시절 힘겨운 운명을 살아낸 사람들이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와 헤어져 보육원이나 위탁 가정, 혹은 친척의 집을 전전하며 자란 아이들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사완 무관하게 입양된 아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 이른 시기에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고 보호받아야 할 시절에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또 다른 아이들도 있다. 트라우마 생존자인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고스란히 넘겨받은 자녀들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이유 없는 죄책감, 이해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자란 이들은 부모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버겁고 무겁게 느껴진다. 부모에게 안겨 사랑받고 싶지만, 가까이 갈수록 더 고통스럽다. 이 아픔 속에서 아이들은 친밀한 애착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어색하고 두렵게 느낀다.(사진, 힘든 운명)

운명적인 아픔은 감성적인 사랑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또한 거기에는 힘이 없다. 통찰에 의한 사랑은 존재했던 그대로를 존중한다. 다르게 살았어야 한다는 상이 없다. 있었던 그대로를 직면함으로써 거기에서 오는 힘을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부모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요?
사랑의 관계 질서를 배우다(부부의 사랑과 경계)
자식을 낳고 사는 부부는 흐르는 강물에 손을 잡고 뛰어들어 거스를 수 없는 물살을 함께 타고 가는 것과 같다. 그 과정을 잘하기 위해 부부는 손을 잡기 전에 자신의 부모에게서 먼저 자립해야 한다.(사진, 부부의 사랑)

우리 모두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태어난 후 지금까지 우리는 완전히 고립된 적이 없다. 알든 모르든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말이다. 부모로부터 우리의 생명이 시작되었음 또한 변하지 않는다. 성장하면서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더 넓은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관계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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