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 -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로 나만의 페르소나 챗봇 만들기
김유영 지음 / 브라운출판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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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이다. 여기에서 '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중략) 생성형 AI는 매우 빠르게 문장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좋은 질문과 정확한 페르소나는 빠른 입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AI를 더 정교하게 설계하려 할수록 인간은 작품을 더 천천히 읽고, 장면으로 돌아가 대사를 비교하며, 인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역설에서 출발한다. - '일러두기' 중에서



책의 저자 김유영은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 후, 일본 오사카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일어일본학과 교수, 동덕여자대학교 미래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어와 일본문화 그리고 인문학 AI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 한양사이버대학교, KOTRA 등 다수의 대학과 기관에 출강하면서 번역가, 문화평론가, 유튜버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총 열한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AI 시대의 인문학과 외국어(1장), 비판적 AI 활용론(2장), 생성형 AI 툴킷(3~4장), 생성형 AI와 번역의 인문학(5장), AI 통번역 파트너와 문화적 중재(6장), 생성형 AI와 일본어 어휘 정복(7장), 나만의 AI 튜터 만들기(8~10장), AI 시대, 인문학도의 길을 묻다(11장) 등을 통해 생성형 AI 실습을 돕는다.


인문학 AI 실습


지식을 담는 그릇이 바뀔 때마다 인간의 읽기와 쓰기도 함께 바뀌었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지 인쇄본인 <직지直指>가 그랬고, 구텐베르그의 성서도 그랬다. 안쇄술의 변화는 책을 복제하는 비용과 시간을 낮추고 책을 널리 보급하는 데 공헌했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다.


21세기의 생성형 AI도 이런 변화를 만드는 듯하다. 이미 있는 문서의 정보를 재빨리 검색해서 이를 퍼트리고 나아가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문장, 이미지, 음성과 영상, 코드 등까지 새로 만들어 낸다. 정보 활동이 '지식을 기록하고 찾아가는 일'에서 '기계와 함께 새로운 표현을 만드는 일'로 확장하고 있기에 말이다.



이에 인문학의 역할이 커진다. 문학은 누가, 어떤 목소리, 서술 전략 등을 보여준다. 역사학은 자료의 출처, 신뢰도, 다른 기록들을 비교한다. 또 언어학과 외국어 연구는 형태와 의미, 사회적 관계, 문화적 맥락 등을 분석한다. 생성형 AI가 내놓은 결과를 평가하고 수정을 거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캐릭터는 프롬프트 한 줄로 탄생하지 않는다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함에 따라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해진다. 인문학 전공자에게 이는 코딩 이전에 만나는 '언어 설계'의 문제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역할과 상황, 자료와 제약 조건을 명시하고 결과를 관찰한 후 지시를 재차 다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프롬프트를 마법의 주문으로 여겨선 안 된다. 동일한 프롬프트라도 설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고, 제시한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기에 말이다. 좋은 프롬프트는 한 번에 완벽한 답을 뽑아내는 주문이라기보다, 결과를 관찰하고 수정하며 반복 실험을 하도록 조건을 적어 둔 '작업 설계서'에 가깝다. 정교한 프롬프트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기본 구조는 아래 다섯 가지를 참조하자.

역할~ 페르소나와 작업 정체성 부여
상대~ 대화 상대에 따른 존댓말 수위
상황~ 배경 설명
주요 내용~ 구체적 정보
제약조건~ 분량, 사용 금지 등 지정


인문학적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은 텍스트의 의미와 관계, 말투와 문화적 맥락을 분석한 후 AI가 참고할 수 있는 조건과 규칙으로 바꾸는 능력을 뜻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정체성, 말투, 지식 경계, 작품 세부 정보, 감정 반응, 학습 기능 등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들이다.

즉, 이 인물은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른다고 해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작품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과 내가 해석해 보충한 규칙을 구별할 수 있는가 등에 관한 점이다.

생성형 AI는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지만, 좋은 페르소나를 만들려는 사람은 오히려 천천히 읽게 된다. 한 장면으로 돌아가 대사를 비교하고, 번역을 다시 확인하고, 관계가 바뀐 순간을 찾는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에 페르소나 설계가 정독(close reading)을 다시 불러오는 셈이다.

캐릭터는 프롬프트 한 줄로 탄생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읽고, 반복되는 특징을 찾고, 규칙을 세우고, 대화해 보고, 어긋난 부분이 나타나면 다시 원작으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춘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국 AI보다 인간에 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한 사람의 '그 사람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단어 몇 개에서 오는가, 말투에서 오는가, 기억에서 오는가, 관계에서 오는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긴 시간 동안 서로 얽히면서 만들어지는가"


AI 시대의 인문학도는 기계보다 더 빨리 문장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그보다 중요한 일은 기계가 빠르게 만들어 낸 수많은 문장 가운데 무엇이 사실에 가깝고, 무엇이 지금의 맥락에 맞으며,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선택의 속도보다 선택의 근거가 중요해지는 셈이다.(333쪽)

거대한 파도를 타는 조타수의 마음으로

AI 시대의 인문학을 기술이 아직 침범하지 못한 '마지막 인간의 영토'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기술의 능력이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지 어느 누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AI는 빠른 바람이 될 수 있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파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일까지 바람에게 맡길 필요는 없다. 키는 우리들 독자의 손에 있기에.

#인문교양 #인공지능 #제로부터시작하는인문학AI실습 #김유영 #브라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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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심리학 : 영조·사도세자·정조 편 -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조선왕조 심리 실록
한민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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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결국 사람이 행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은 사람이 왜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밝히는 학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문화심리학자로서 그들(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한민은 토종 문화심리학자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게 문화 및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교 행동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미국 클라크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 문화와 한국인 심리에 대해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책은 숙종, 반사회성 성격의 소유자(1장), 형 경종의 죽음, 우울장애와 조현병(2장), 편집성 성격의 왕, 강박의 영조(3장), 회피성 성격의 사도세자, 애착의 문제(4장), 깊어지는 사도세자의 병, 경계선 성격장애(5장), 첫 살인부터 죽음까지(6장), 외상 후 스트레스, 불안했던 정조의 어린 시절(7장),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다(8장), 자기애성 성격, 완벽주의자 정조(9장) 등을 통해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분석하고 있다.


조선 왕가王家의 대표적인 비극悲劇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사건이다. 이 장면은 할아버지 영조, 손자 정조, 아들 사도세자 등 3인의 당사자가 함께 등장한다. 영조 38년(1762) 윤 5월, 창덕궁 휘령전 마당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의 상황을 대사로 알아보자.


(영조) "자결하라"

(사도세자) "아버님, 잘못하였습니다. 이리 마소서"

(손자, 훗날 정조) "할바마마, 아비를 살려주소서!"

(영조) "당장 세손을 데려가지 못할까!"


아들에게 칼을 던져 자결하라는 강권强勸이 먹혀들지 않자 뒤이어 뒤주가 들어오고 이 안에 가둔 후 못을 박는 망치 소리가 휘령전 마당에 울려 퍼진다. 이에 놀란 손자가 아비를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하지만 세손은 궁궐 마당에서 밖으로 끌려 나간다. 결국 아들은 뒤주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뒤주에 갇힌 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정말 잔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왜 아비는 아들을 죽여야 했을까? 왜 아들은 아비의 손에 죽어야 했을까? 이후 아들을 죽인 아비는 왜 죽인 아들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을까? 이같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한 아들의 아들은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이 될 수 있었을까?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이 사건의 당사자들이 처한 당시의 시대 상황을 토대로 역사가 아닌 가족관계로, 사건이 아닌 심리로 접근하면서 그동안 수없이 많은 해석이 뒤따랐던 사건의 새로운 면모를 살펴본다. 역사에 심리학적 시각을 추가하면 그 당시 그 사람들의 행적이 또 다른 의미로 떠오른다.


영조의 편집성 성격


편집성 성격은 특히 남들이 내개 피해를 줄 거라는 확신으로 자신의 경험을 '편집' 한다. 편집성 성격의 사람들은  타인들이 자신에게 피해르르준다는 확신으로 타인을 의심하며,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상대방의 악의로 해석하고 편집한다. 이들은 높지만 왜곡된 자존감으로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이나 약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자신이 의심하는 대상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비난한다.           



신분이 비천한 궁녀(무수리) 출신의 후궁 '숙빈 최씨'가 자신의 생모生母라는 콤플렉스를 지녔던 영조는 의심이 많았고 한번 의심한 인물은 절대 믿지 않았다. 또한 과거에 자신을 공격한 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했다. 한번 결심한 일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기어코 해냈고, 특히 복수는 전혀 망설이지 않는 냉혹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국政局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거나 뜻을 정한 일은 굽히지 않고 밀어붙이는 장점도 편집성 성격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사도세자의 기질

아버지 영조가 두뇌 회전이 빠르고 행동이 재빠른 반면, 아들인 사도세자는 말수가 적고 행동이 느렸다. 영조는 이런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평소 묻는 말에도 머뭇거리며 대답하고, 나랏일에 의견을 구하면 마치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이리 대답할까 저리 대답할까’ 하면서 즉답卽答을 못하는 아들이라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가뜩이나 조급증이 심했던 영조인지라 세자의 말투와 행동에 화가 나고 또 걱정도 많았던 거다.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머뭇거림을 기질로 보고 있지만, 이는 사실 평가불안과 관련있어 보인다. 두세 살 때는 글도 잘 읽고 말도 잘하던 사도세자가 네다섯 살이 되며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대리청정과 깊어진 세자의 병

대리청정代理聽政이란 왕이 정사를 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왕을 대신하여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시한부 권한위임인 셈이다. 하지만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것은 반쪽 짜리 위임이며, 얼마나 잘하는지를 살펴볼 일종의 테스트에 가깝다.

즉 영조는 세자에게 사형 죄인을 심사하는 일이나 형조의 죄인 심문, 왕이 직접 죄인을 심문하는 친국 등 여러 흉하고 불길한 일에만 세자를 대리로 세웠다. 반면에 문무과 과거시험 같은 구경거리나 능행 등 궐 밖으로 나가는 행차에는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신하들이 세자도 데려가라 청했고, 마음을 졸이던 세자는 번번이 가지 못했다. 혜경궁 홍씨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처음에는 서운해하기만 했다가 점점 화로 바뀌어 울 때도 있었다 한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리청정 기간 동안 세자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대리청정 이후 사도세자의 증상은 경계선 성격장애로 추정된다. 경계선이란 정신병과 신경병의 경계라는 뜻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감정과 망상 등 혼란스스러운 인지認知를 동반한다.

정조의 아버지 트라우마와 효심孝心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태도는 단순한 효孝를 넘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영특한 자신의 존재와 관련 있음을 깨달은 정조는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아버지의 신원伸寃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조가 아버지의 신원을 완벽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했을 가능성이다. 정조는 강박적일 만큼 완벽하려고 애쓴 왕이다. 강박적인 노력 끝에 정조는 명실상부 완벽한 왕이 되었다.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오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조는 자신의 유일한 오점인 아버지 사도세자를 끝끝내 신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결함 있는 인간의 모습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삶은 개인의 결함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결함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달랐다.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친 영조, 자신의 결함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만 사도세자, 한편으로 결함을 극복했지만 한편으로는 결함 있는 인간 자체로 자신의 삶을 살아낸 정조. 

이는 결함 있는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핵심은 결함이 사라진다고 내 삶이 시작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조는 천한 어머니의 소생이라는 콤플렉스와 형 경종을 죽였다는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함을 없애면 없앨수록 새로운 문제가 튀어나올 뿐이었다. 52년 간의 재위동안 이룬 업적도 많았지만 결국 후대의 평가는 '아들을 죽인 아버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역사 #심리학 #조선왕조 #사도세자 #영조 #정조 #왕의심리학 #한민 #시크릿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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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세는 사람 - 이경희, 푸른 테이프 세계의 두번째 이야기
문재웅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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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걸었다. 경희.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언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며느리였고, 누군가의 어머니였던 사람. 그리고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에야, 다시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던 사람. - '머리말' 중에서



문재웅 작가는 <푸른 테이프>란 소설을 발표한 후 스핀 오프 개념의 두번째 이야기인 '숫자를 세는 사람'을 출간했다. 총 23장으로 구성된 책은 주인공 경희(이경희)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시어머니 이옥자의 며느리로, 남편 김재웅의 아내로, 아들 성현의 엄마로서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여섯 살의 경희는 엄마가 쌀을 자루에 옮겨 담을 때 그 수를 세는 게 좋았다. 아니 좋아했다. 됫박 하나가 가득 차면 이를 쌀자루로 옮겨 담는데, 그때 기억으론 열 개 정도 쌀자루가 쌓이면 엄마의 얼굴이 조금 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방앗간이다. 늘 뜨거운 김과 고소한 떡 냄새로 가득 찬 공간이다. 또 떡메 기계의 쿵쿵 찧는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다 깜박 잠에 빠져드는 곳이기도 하다.


경희는 1972년 대구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났다. 엄마 혼자서 낳았다. 아버지는 없었다. 일하기 때문이다. 삼촌 밑에서 일하다가 어느 해엔 배를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집에 돌아오곤 했다. 방문 옆엔 못이 하나 박혀 있었는데, 이 자리는 아버지 겉옷이 걸리는 장소이다. 대체로 이 못은 비어 있었다.


노현동은 낮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산자학 따라 다닥다닥 붙은 동네였다. 좁은 골목이라 행인 두 사람이 마주치면 한 명은 몸을 비켜줘야 했다. 비 내리는 날엔 마당 한가운데 흙탕물이 고였다. 경희네는 주인집 뒷편에 딸린 셋방이었다. 방 하나에 부엌에 있는 구조인데 문을 열면 옆집 담이 보였다. 겨울이면 그 담 밑으로 고드름이 달리고, 경희는 이를 하나씩 세는 것도 좋아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며칠 동안 방바닥에 누워 지냈다. 엄마는 평소보다 일찍 밥을 지어 상을 차리고, 계란찜이 한 접시 더 놓였다. 아버지가 떠나면 이는 더 이상 상 위에 오르지 않았다. 노현동을 떠난 뒤로도 경희는 낯선 곳에 도착할 때마다 무의적적으로 주변의 무언가를 세는 버릇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자식을 열 셋 낳았고, 아버지는 막내였다. 경희가 본 적도 없었던 큰아버지(맏아들)은 서울대를 나온 사람으로 이념에 물들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집안의 호적과 신원 조회 서류엔 지워지지 않는 줄이 그어져 있고, 이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는 말도 들렸다. 이는 바로 과거의 연좌제 낙인인데, 현재는 관련 법이 폐지됐다.


여덟 살 경희는 학교가 파하면 곧장 다섯 살 남동생 진일을 데리러 놀이방으로 향했다. 귀가해선 동생의 손을 씻기고 방바닥에 신문지를 펴놓고 동생의 숙제를 봐주었다. 엄마가 방앗간 일을 끝낼 때까지 저녁상을 차려 배고파하는 동생에게 자기 몫 밥을 덜어서 동생 밥그릇에 더 얹어 주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가슴으로 느끼는 행동이었다.


진일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해 가을, 눈이 벌겋게 부어서 집에 돌아온 날이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털어놓지 않던 동생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애들이, 나보고 빨갱이 집 자식이라 캤다", 이 말의 의미를 경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동네 우물가에서 이웃 어른들이 떠들다가 발자국 소리에 뚝 끊던 그 말소리를. 경희는 동생의 얼굴을 씻겨줬다. 왜 어린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내가 1970년대 초반 수도경비사령부에 군복무할 때도 신원 조회에 걸린 병사들이 군장을 모두 챙겨 헌병 짚차를 타고 다른 부대로 전출 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경희는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이면 종종 하늘의 별을 세며 걸었다. 노현동의 밤하늘은 유난히 별이 많았다. 스물, 서른, 마흔, 이렇게 세다 보면 어느세 집 앞에 와 있었다. 별을 세는 동안 만큼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훗날 스위스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도 이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희는 서울의 한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입사 2년만에 대리로 승진했고, 입사 5년 차가 되던 해엔 2살 어린 후배 사원의 사수가 되어 지도했다. 서울에서 자취로 지내던 경희는 월급 중 상당액을 노현동 집으로 보냈다. 오후 2시의 커피숍, 선남선녀의 만남이 있었다. 선남은 은행원 재웅으로 경희가 다니는 보험회사 옆 빌딩에서 일하는데, 둘의 로맨스는 계속 이어진다.


한 달 후 재웅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지하철 노선과 도보 거리, 심지어 화장실 위치까지 적혀 있었다. 그리곤 다음 주에 영화 한 편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경희는 누군가 이렇게 섬세하게 준비해온 경우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함께 영화를 보았다. 또 재웅은 경희 생일을 기억하고 손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사귄 지 반 년 되었을 때 경희는 그를 노현동에 데려갈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결국 상견례를 앞두고 노현동에 데려갔다. 엄마의 반응은 '그 사람 손이 참 순하더라'였다.



둘 사이에 아들 성현이 태어났다. 경희는 성현의 탄생 시각을 잊지 않으려고 손목시계로 몇 번이고 확인해 시어머니에게 불러주었다. 오후 세 시 십칠 분. 그리고 이 숫자를 평생 잊지 않았다. 이후 매년 그 시각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그날을 떠올렸다. 훗날, 알프스가 보이는 하얀 방에서도 이 숫자를 떠올리게 된다.


2011년 봄, 남편 재웅은 과장으로 승진했다. 서울 본사로 재배치 발령이 났다. 이사 준비를 하던 경희는 시어머니 옥자를 찾아가 이 소식을 전했다. 당시 시어머니의 나이는 일흔하나였다. 대구와 서울 간의 거리만큼 이상으로 남편 재웅은 홀로 남겨진 시어머니 옥자를 늘 마음에 걸려 했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경희 부부의 심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나와 아내의 성장 터전도 대구였다. 난 서문시장 인근에서, 아내는 수창국민학교 근처 인교동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은행에 합격해 대구집을 떠난 나는 계속 싱글로 서울에서 살아가다 나이 마흔에 중매로 늦장가를 간 후에도 서울에서의 삶이 계속 이어졌다. 


대구집의 향수를 늘 안고 살았던 나에게 대구 지역 회사로부터 임원 스카우트 제의가 있어서 한참 고민 끝에 대구로 이사했다. 키운 자식 모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보니 그리움만 안고 사셨던 부모님은 나의 이사를 매우 좋아했다. 또 아내도 친정이 가까워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이 생활이 오래 지속될 거란 예상이 보기 좋게 깨졌다. 회사의 오너인 노회장과 의견충돌이 잦아짐에 따라 마음 고생이 심한 내게 아내가 다른 곳을 찾아 이직하자는 제안을 했다.


바로 결행했다. 머슴살이가 싫어 사직한 후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교 선배가 지역 임원들 모임에서 들은 정보를 토대로 현재 임원이 필요한 회사 몇 곳을 추천하길래 이중 한 곳을 선택해 조심스럽게 접촉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회장과의 면담 일정이 잡힌 이후 나의 이력과 주위 사람들의 평판에 만족한 회장이 함께 일하자고 최종 손을 내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사 인력관리를 총괄하던 임원이 나의 대학 선배였기에 뒷조사를 소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근무를 서울에서 해야 한다는 통보와 함께 신고식을 서울에서 진행한 후 처음 얼마간은 주말부부로 지냈다.


이후 양가 부모님들이 섭섭하긴 하지만 어차피 계속 서울에서 임원 생활을 하려면 혼자선 힘드니까 대구 지산동 집을 정리하고 서울에 살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기존에 살던 아파트는 이미 전세를 주고 있었고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당시 회사 일터와 비교적 가까운 삼성동 주택가에 거주하던 처형과 동서가 인근 부동산 소개소를 통해 해청아파트를 추천해서 근무지를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당시 대구 본가 집마당에 뛰어놀던 손녀들이 눈에 밟힌다면 특히 어머니가 매우 섭섭해 했다.


아내, 며느리, 엄마, 그리고 노현동 딸이라는 4개의 자리를 동시에 채우며 살아온 경희는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던 중 남편 재웅의 제안으로 처음으로 제주도 가족여행을 떠났다. 여름휴가로 사흘 일정이었다. 바닷가에 앉아 노을 보며 찍은 사진 속에서 경희는 활짝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런 얼굴이 얼마 만인지 헤아려 보았다.


2017년, 남편 재웅이 부장으로 승진하는 날 경희는 갈비찜을 요리해서 세 식구가 그날 저녁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엔 시어머니 옥자도 초대했다. 당시 시어머니도 대구집을 완전 정리하고 서울 상도동 임대아파트 단지로 이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 성현의 성장이 대견스러워 웃음을 놓지 않았던 시어머니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재차 느낄 수 있었다. 옛말에 '정도 자주 볼수록 더 생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런 시어머니 옥자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경희에게도 건강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랫배의 묵직한 증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설거지를 하던 중 잠시 싱크대를 붙잡고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병원에 가는 걸 계속 미루던 경희는 일정표에 오히려 시어머니의 진료일, 아들의 학원 상담, 남편 재웅의 회식일 등과 같은 스케줄로 채웠다. 평범한 하루 일상들의 연속 속에 병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2020년 겨울, 샤워를 하던 경희는 아랫배 한쪽에 생긴 단단한 응어리를 손끝에서 느꼈다. 이를 며칠 동안 더 지켜봤다. 한번은 재웅에게 이를 말하려다 멈추고 말았다. 해가 바뀌기 직전 동네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화면을 살펴보던 의사는 난소 쪽에 12cm 정도 크기의 뭔가가 있다며 큰 병원에 가보길 권했다. 이후 경희는 대학병원에 갔다. 조직검사 결과, 난소암 판정이 내려졌다. 더구나 5년 생존률이 약 15%정도라고 했다.



이 겨울로부터 몇 해 뒤, 알프스가 보이는 방에서 경희는 이 손끝의 감촉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손끝으로 확인할 몸조차 다르게 변해 있으리라는 것을, 오늘 밤의 경희는 알지 못했다.(92쪽)


반복되는 항암 속에서 경희의 머리카락은 자라고 빠지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이후 어느 순간부터 예전의 머리숱을 되찾지 못했다. 원래의 3분의 1 정도에서 자라기를 멈췄고, 정수리 쪽은 두피가 비칠 만큼 듬성듬성했다. 처음엔 이를 감추려 모자와 스카프를 시도했지만 나중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같은 병실에 있었던 난소암 4기 판정의 박 여사는 따뜻한 말동무였는데, 다른 환우를 통해 최근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 여사의 남편은 스위스에서의 안락사를 권했고 박 여사도 이를 원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 사이에 이런 변이 생겼던 것이다. 그날 저녁 경희는 재웅에게 박 여사 소긱을 전했다. 재웅은 조력 사망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경희와 재웅의 삶을 마감하며


스위스 취리히 외곽의 조용한 주택에 위치한 조력 사망을 돕는 병원에서 경희는 의사가 내민 알약을 받아 들었다. 항구토제였다. 60대 초반쯤의 박사는 서류를 펼치며 국적, 진단명, 최종 확인 여부 등을 다시 확인했다. 재웅은 옆에서 경희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해'를 말하고, 경희는 연한 갈색 액체가 담긴 투명한 컵을 마셨다. 졸음이 온다. 하나, 둘, 셋... 어느 순간부터 숫자가 흐려졌다. 평생 처음으로 끝까지 세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 병실의 이름은 '평화의 방'이었다.



#책추천 #한국장편소설 #한국장편소설추천 #숫자를세는사람 #문재웅 #부크크 #안락사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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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을 막는 사람 - 이옥자, 푸른 테이프 세계의 마지막(세번째)이야기
문재웅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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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걸었다. 옥자,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언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어머니였던 이름. 그러나 이 책이 끝까지 붙들고 싶었던 것은 그 모든 관계의 호칭 이전에 존재했던, 옥자라는 사람 그 자체였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의 저자 문재웅은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 <푸른 테이프>를 쓴 소설가이다. 그는 재웅이라는 이름을 이 소설 속 아들에게 붙였다. 주인공 옥자의 아들인 셈이다. 푸른 테이프는 몸에 해로운 가스 냄새가 새어 들어오는 벽과 천장의 틈을 막으려고 붙이는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그 파란색 테이프를 말한다.


총 18개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 <틈을 막는 사람>은 주인공 이옥자(재웅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그녀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아들 재웅은 옥자보다 먼저 생을 마감한다. 말기암을 앓던 아내 경희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를 선택, 스위스의 한 병원으로 날라가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 사랑하던 아내를 만나려고 아들 성현만 남겨놓고 뒤따라 죽는다. 옥자의 생애를 끝까지 지켜본 사람은 아들 재웅이 아닌 손자 성현이었다.


옥자는 가위를 손에 쥐고 평생 남의 머리를 스타일시하게 잘라주던 미용실 원장으로 살았다. 셋째딸로 태어난 그녀는 일곱 살 아래의 막내인 남동생 성수의 머리를 깎으면서 가위질을 처음 배웠다. 집이 가난해서 남동생이 이발소에 갈 돈조차 없었다. 아무튼 옥자는 자신의 손끝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거다.


큰 언니는 대구로 시집가고(나중에 일하러 간 걸 알게 됨), 작은 언니는 한국전쟁 발발 때 피난길에서 죽었으니 이젠 집안의 맏이 역할을 해야만 했다. 더구나 국민학교도 3학년 초에 중퇴하고 집안일을 거들며 밤에 야학夜學에서 공부했기에 더욱 자립自立心이 자연스레 생겼을 것이다. 사실 이 시절엔 대부분의 서민들이 소위 '보릿고개'을 겪을 정도로 삶이 팍팍했다. 그러니 여자아이가 학교를 다니는게 쉽지 않았다. 



김천 읍내에 서울 봉제회사에서 사람을 뽑으러 온다는 소식이 마을에 돌았다. 기숙사에서 숙식까지 해결해 준다고 했다. 사실 얼마 전 언니가 보내온 편지엔 미용 기술을 배우면 먹고살 수 있다면서 대구로 오라고 했지만 옥자는 대구까지 갈 차비와 언니 집에 얹혀살 형편이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몇 달이라도 서울에서 일해 돈을 마련한 후 대구로 가도 늦지 않을 거라고 판단, 이른 아침 서울로 가는 회사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배정된 곳은 구로의 한 봉제공장이었다.


기숙사는 방 하나에 8명이 함께 사용했다. 이 중 절반은 18살인 옥자보다 어렸다. 새벽 6시에 기상해서 미싱 앞에 앉으면 밤 9시에 끝났다. 사십 대 중반의 작업반장 최 씨는 입이 거칠고 지적질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미싱 작업 중 손을 다칠 수도 있기에 그랬다. 그가 유독 살갑게 대하는 여공들은 스무 살 안팎으로 어깨를 짚거나 허리를 슬쩍 감싸는 등 손버릇이 나빴다. 


추석을 앞둔 어느 토요일, 공장 전체 회식이 있었다. 반장 옆엔 17살의 순이가 자리를 했다. 술기운이 돌자 그는 노골적으로 순이의 어께를 감싸며 추태를 부렸다. 이를 보던 옥자가 반장의 행동을 제지하자 그는 옥자의 뺨을 때릴 기세였다. 이에 옥자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노동국에 가서 이를 모두 얘기하겠다고 맞섰다. 다음 날 옥자는 기숙사 사감실에 불려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2년 가까이 모은 돈이 많지 않았지만 그 길로 서울역에서 대구행 완행버스를 탔다. 오후 늦게 도착했다.



대구에 사는 언니는 월셋방에 거주하며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언니와 결혼하려 했던 남자는 방직공장에서 만난 사이였는데, 집안에서 거듭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으며, 이후 미용실에서 일자리를 얻어 근무하고 있었다. 이 시절 젊은 여성 대부분은 특출한 재능이 없을 경우 중매를 통해 믿음이 가는 남성과 결혼을 하는 게 평생직장이라고 여겼다. 언니도 이 부류에 포함되지만 혼기婚期를 놓친 삼십대 노처녀였기에 고향 김천에서도 혼삿말이 전혀 없었다.


미용학원에서 실력을 닦아 자격증을 딴 옥자는 대구의 한 미용실에 취직해 이젠 어엿한 고참이 되었고, 동료 미용사들도 스물다섯이 되자 하나둘 결혼 중매로 미용실을 떠났다. 심지어 옥자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조차 먼저 결혼하기도 했다. 옥자의 말 못할 고민은 담석증으로 인해 세 차례나 수술을 받은 건강 이력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할 거란 불안감이 생겼다. 


건강한 미용실 처녀들은 미용실 뒷방에서 밥을 먹을 때도 결혼 이야기를 늘어 놓았지만, 옥자는 다음달 방세가 먼저인지라 한 남성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사치라고 느꼈다. 스물여덟 살의 옥자는 지명 손님만으로 하루 일과가 다 채워졌다. 이에 미용실 원장은 가게를 차려 독립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그 무렵 언니는 혼처가 정해져 신혼 살림을 차려 나갔다.


옥자에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매파 최 여사의 제안이 있었다. '씨받이 계약'이었다. 대구에선 꽤나 이름난 종가집의 장손 김부현 부부의 슬하에 딸만 줄사탕인지라 종가의 대를 이을 아들만 낳아 준다면 옥자 명의 집 한 채와 미용실 개업과 함께 매월 일정액의 생활비까지 지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미래의 안정적인 경제가 보장되어 있지 않았던 옥자에겐 솔깃한 유혹임에 분명했다. 이미 본처도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있다고 했다. 장고長考 끝에 옥자는 이를 받아들이고 김부현이 마련해 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미용실을 떠나는 옥자를 원장과 동료들은 아쉬워했다. 옥자는 임신 끝에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바로 재웅이다.



계약 이행은 깔끔하지 않았다. 전세계약서 한장 달랑 내밀고 어려워진 경제 상태를 들먹이며 부족한 부분은 곧 채워주겠다고 했다. 재웅의 첫돌이 지날 무렵, 김부현의 발걸음은 예전보다 현저하게 뜸했다. "아버지 언제 와?", 말을 배운 재웅의 잦은 말이었다. 옥자의 두 번째 임신 소식을 들은 김부현은 진지한 얼굴로 옥자를 찾아와 재웅이도 둘째도 모두 자신의 호적에 넣기로 집안 어른의 동의를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둘째 아들 재철까지 출산했음에도 옥자 명의의 집도 미용실도 마련되지 않았다. 똑같은 소리,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재웅이 다섯 살, 재철이 세 살이 되자 이웃 아주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옥자는 예전의 미용실로 일하러 나갔다. 재웅이 일곱 살이 되자 시어머니 격인 김부현의 어머니가 다시 옥자를 찾아와 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면서 큰집(본처)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계약 이행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김부현은 절충안을 제시했다. 둘째 재철만 데려 가고 재웅은 옥자한테 있기로 했다.


이후 작은 미용실 '숙녀의 집'이 비로소 문을 열었다. 재웅은 학교가 파하면 미용실로 곧장 와서 만화책을 보며 가게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 살림은 여전히 빠듯했다. 전세금을 갚아나가는 이자, 미용실 운영비, 재웅의 학용품비 등을 챙기다 보면 한달 벌이가 남는 날이 드물었다.


1980년 봄, 나이 마흔이 된 옥자는 칠성시장 골목 안에 예전의 미용실보다 두 배나 넓은 가게로 확장 이전했다. 순전히 자신이 벌어서 모은 돈과 은행대출금을 합쳐 마련한 옥자의 가게였다.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열두 살에 국민학교를 중퇴당하고 부엌에 서 있던 그 겨울부터 스무 해가 넘도록 걸어온 인생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개업식날 언니도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축하해줬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이다.



1980년대 중반, 동네 골목 입구에 생소한 간판이 내걸렸다. '뉴서울 헤어살롱'. 서울에서 미용 기술을 배운 젊은 원장이 미용실을 개업했다. 유리창 너머로 젊은 미용사들이 최신 유행 잡지를 펼쳐놓고 손님 맞이에 분주한 모습들이 보였다. '요즘은 다 그렇게 자른다'는 한 젊은 손님이 제시하는 커트 사진을 바라보던 옥자는 자신의 손끝으로 익힌 감각은 이제 신기술을 배워야 함을 느끼게 했다. 


젊은 미용사들이 다니는 강습회에 참가했다가 실습을 지도하던 강사가 옥자의 커트질 손 모양이 모두 구식이라고 지적받았다. 또 배운 기술을 가게에서 시도해 보았지만 손님들 반응이 별로였다. '옥자 씨는 옛날식이 낫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손이 예전 같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관절염 판정을 내리며 무리하면 더 심해진다는 경고였다. 통증이 심한 날은 손목에 헝겊을 감고 일해 보았지만, 오랜 단골의 '예전만은 못한다'는 지적에 가게를 닫기로 결심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 말, 몇 년째 매상이 계속 줄고 손의 통증이 나아질 기미가 없는 실정이라서 그동안 미루고 있던 결정, '숙녀의 집' 간판을 마침내 내렸다. 새로이 삶의 터전을 잡은 곳은 경북대학교 북문 앞이었다. 낡은 2층 집을 전세로 얻어 하숙업을 시작했다. 6개의 방에 대학생들로 채웠다. 대부분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라 아침 6시에 기상해 아침상을 차렸다. 반찬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하숙생들 사이에 옥자의 하숙집이 제일 낫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아들 재웅도 하숙집에서 함께 살았다. 하숙생들이 재웅의 학업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합격자 발표날에 전한 아들 재웅의 경북대학교 합격 소식은 그날 저녁상을 잔칫상으로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나의 대학 하숙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가까운 하숙촌에 입주했는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거의 매일 저녁 내기 당구에 막걸리집으로 어울려 다니니까 말이다. 대성학원에서 만나 알게 된 한 입학 동기생이 좀 조용한 하숙집을 구하러 간다는 얘길 듣고 따라 나섰다. 부산 출신인 이 친구는 재수시절 하숙집을 전전했기에 이런 일엔 해박했다.  


대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수유시장 맞은편에서 내려 시장을 거쳐 골목길을 오르며 몇 집들을 구경했지만 맘에 쏙 들지 않았는데 이 친구도 동감이었다. 한 집 대문에 '하숙 구함, 빈방 있음'이라고 표지가 붙어 있었다. 주인 아줌마는 통영 사람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했다고 했다. 본채는 가족들이 사용하고 별채를 하숙으로 내놓았던 거다.


입주 환영식을 가졌다. 아들은 상고를 졸업하고 한 시중은행의 행원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딸은 고등학생이었다. 가끔 공부하는 나에게 과일 접시를 넣어주시며 딸 공부를 부탁하곤 했다. 큰 기대를 가질까봐 난 여름에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영어와 수학 과목을 좀 가르쳤는데, 공부에 소질이 없어 보였다. 공부보다는 다른 데 더 관심이 컸다.              


하숙업도 오래가질 못했다. 인근에 신축 원룸촌이 들어서면서 대학생들은 하나둘 그곳으로 이전해나갔다. 몇 해를 더 버티던 옥자는 결국 1990년대 초 하숙집을 정리했다. 대구 변두리의 허름한 여인숙을 간판 그대로 임대했다. 12개의 방이 있는 구조로 이중 한 칸은 옥자 모자의 터전이었다. 장기 투숙객이 많았다. 공사장 인부, 홀로 사는 노인,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 등이 주된 손님이었다.


여인숙 인수 후 얼마 되지 않아 동네 건달들이 몰려 와서 자릿세를 요구했다. 여자 홀몸으로 이런 사업을 한다는게 상대방에겐 만만한 먹잇감으로 보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옥자의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찾아와 협박을 계속했다. 경찰에 이를 신고했더니 오히려 적당히 합의하라는 충고까지 했다. 계속 이러면 여인숙 운영이 어려울 듯해 결국 작은 돈으로 합의했다. 아들이 걱정할까 염려되어 몰래 하던 일이었지만 결국 건달에게 돈을 주는 장면을 재웅에게 들키고 말았다. 


또 옥자에게 사기를 친 병국은 혼자 살아가는 여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셈이었다. 처음엔 정답고 위로하는 모습으로 다가와선 돈을 뜯어낸 후론 발걸음을 끊고 말았다. 이런 소소한 자금 지출조차 옥자는 노트에 빼곡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방안 동안 여인숙 일을 돕고자 와 있던 아들 재웅이 청소를 하다 우연히 이를 보고선 엄마 옥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그날 밤은 잠들지 못했다.


1992년 봄, 재웅은 대학을 졸업했다. 그해 여름 안양에 소재한 대기업에 합격해서 안양으로 떠나는 날, 옥자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배웅을 나갔다. 모자 간 나눈 인사는 서로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로 여겼던 이 기쁨이 오래가지 못했다. 석 달 뒤, 재웅이 짐을 싸들고 대구로 돌아왔다. 핼쑥한 얼굴로 말이다.직장 생활이 얼마나 힘에 겨웠는지 열흘 동안 절寺에 가 있었다. 처음으로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이후 아들 재웅은 은행직종 취업 준비를 했다. 1994년 봄, 재웅은 여신전문금융회사 공채에 합격해 여의도로 첫 출근을 했다. 몇 해 뒤 구미 지점으로 발령받아 대구 칠곡에서 출퇴근했다. 그 무렵 대구에서 만난 경희를 옥자에게 인사시켰다. 경희는 옥자의 여인숙까지 손수 반찬을 만들어 찾아오고, 관절염을 겪는 옥자를 위한 파스와 연고 등까지 챙기고, 이불 홑청도 빨래할 정도로 다정다감한 여성이었다.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했다. 첫아이 성현을 낳고 평온한 날이 지속되다가 재웅이 과장으로 승진하던 해에 서울 본사로 발령나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옥자로선 대구와 구미 간의 거리보다 더 멀어진 셈이다. 서울로 이사간 뒤 옥자는 매주 일요일 저녁 7시엔 여인숙 마루 전화기 앞에 앉아 있었다. 아들 재웅의 전화를 기다렸다. 비록 통화는 십분 남짓이었지만 옥자에겐 이게 일주일을 견디게 해주는 마약과 같았다. 매주 토요일, 작은 아들인 내가 대구 부모님께 올린 안부 전화도 이러했을 것 같다. 2005년, 옥자는 여인숙을 완전 정리한 후 예순다섯 나이에 대구 시내 작은 원룸을 얻어 이사했다. 



"재웅아, 요새 누가 자꾸 우리 집을 엿보는 것 같다", 이는 망상妄想 증세다. 치매 환자들에게 보이는 현상인데, 치매 정도가 깊어지면 환각이나 망상 증세가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 옥자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2014년 겨울 어느 밤, 옥자는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일으키다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전화를 들어 대구에 사는 남동생 성수에게 몇 번이나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되지 않았다. 이에 서울의 재웅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통확 되었다. '허리가 안 움직인다'는 말을 듣고 바로 119로 긴급 전화를 해주어 구급차가 와서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다. 디스크와 근육 문제로 인한 급성 통증이란 진단이었다. 입원해 있는 옥자 병실로 다음날 재웅이 찾아왔다.


옥자의 야윈 얼굴을 목격한 재웅은 오래 참아온 말을 꺼냈다. "엄마, 이젠 서울 쪽으로 올라오는 거 어떻겠노", 이에 옥자는 선뜻 답하진 못했다. 그러나, 어제밤에 홀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자신을 떠올리자 두려움이 생생했기에 "생각해볼게"라고 답했다. 재웅은 병실에 며칠 머물며 간병에 노력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니 옛 시절도 떠올랐다. 결국 옥자는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2018년 봄, 옥자는 58년 간의 대구에서의 삶을 떠나 상경했다. 아들 재웅이 마련해 준 곳은 상도동의 작은 임대아파트 9층이었다. 아들 부부가 사는 아파트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이사 온 첫 주말, 아들 재웅의 가족이 옥자 아파트로 놀러왔다. 낯을 가리는 6살 손자 성현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옥자는 몸을 낮춰 성현과 눈을 맞추며 챙겨온 사탕 한 봉지를 내밀었다. 오래된 가위를 꺼내어 성현의 많이 자란 앞머리를 다듬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성현은 활짝 웃었다.


이사 후 두 달 즈음, 옥자는 홀로 동네를 걷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반찬가게를 찾아 나섰다가 비슷하게 생긴 다세대 주택들이 이어진 길에서 한 시간 가까이 같은 골목을 몇 바퀴나 돌다가 지나가던 젊은 여자를 붙잡고 옥자의 임대아파트 방향을 문의했다. 이곳엔 임대아파트가 몇 개 있어서 단지 이름, 동 호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했다. 기억이 나지 않아 재웅의 메모지를 손가방 속에서 찾아냈다. 이후 옥자는 반찬가게에서 만난 주인장의 진한 대구 사투리가 마치 자신의 뿌리처럼 여겨졌다.


상도동에서의 삶이 여러 해 이어지는 동안, 옥자의 기억에 조금씩 틈이 생기지 시작했다. 2019년 가을, 재웅은 엄마 옥자를 모시고 정신과를 찾았다. 똑같은 질문과 답을 반복해야 할 정도로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게 깜빡하는 기억을 넘어 이상하다고 느껴서다. 간단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진단 결과는 '초기 알츠하이머형 치매'였다. 약으로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완치는 어렵다고 했다.


가스 냄새에 대한 불안도 이 무렵부터 점점 짙어졌다. 한번은 가스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깜빡하는 바람에 냄비를 태워 경비원과 관리소장이 옥자 아파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에 경희는 옥자 아파트의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교체하자고 제안했고, 재웅은 업체를 불러 공사를 시작했다. 이에 옥자는 낯선 사람들이 드니드는 걸 불안한 시선으로 이를 지켜봤다. 시공이 끝난 후에도 인덕션의 빨간 불빛을 볼 때마다 여전히 가스 냄새를 걱정했다. 


또 엄마 옥자는 미용실을 그만둔 지 5년~7년 전으로 기억했다. 사실은 미용실을 접고 하숙집, 여인숙을 거쳐 서울까지 온 세월이 20년이 넘었음에도 말이다. 2020년 이후 세상이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단절이 추세가 되자 재웅 부부도 옥자 아파트 방문이 뜸해졌다. 이 시기엔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물었다.


2024년 봄, 도시가스 정기 안전점검원이 상도동 아파틀를 찾아왔다. 그는 가스레인지 연결 호스와 배관 이음매를 점검했다. 점검을 끝내고 오래된 연결 호스의 교체를 건의하면서 혹시 냄새가 나면 신고하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옥자는 그날 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 번이나 창문을 열었다. 코끝이 매꼼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옥자는 테이프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복도 쪽 벽에 붙인 테이프가 옆집 사는 젊은 부부의 현관까지 넘어오자 불편함을 느낀 이들은 옥자에게 이를 좀 떼달라고 부탁했다. 옥자는 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 채 '가스 샌다. 여도 위험하다'고 답하자, 난감해서 더 이상 말도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편, 재웅은 회사 업무에 지치고 아내 경희의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인지하고 마음이 무거워 한 동안 옥자 아파트를 방문하지 못하다가 어느 토요일에 방문해서 벽에 붙은 파란 테이프를 목격하고 놀랐다. 모자 간의 언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테이프를 떼지도 못하고 중단했다.


2022년 가을, 옥자는 홀로 지하철을 탔다가 길을 잃었다. 그날 문득 대구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미용실 문을 열어야 한다고, 아니면 언니 정자를 만나야 한다는 등 정확하지 않은 다급함이 옥자를 밖으로 이끌었다. 열차를 놓치고 다시 타기를 반복했지만 어디로 가려 했는지 옥자 본인도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경찰의 도움으로 파출소에 대기하고 있는 옥자를 재웅이 연락받고 데리어 왔었다.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재웅은 옥자를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재웅은 매주 주말이면 상도동을 찾아 엄마 옥자를 챙겼다.


치매에 걸린 환자가 길을 잃는 일은 흔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실종 노인을 찾는다는 긴급 문자가 계속 스마트폰 액정 창에 뜬다. 이들 중 대부분은 치매와 관련된 분일 것으로 짐작된다. 나의 큰아버지도 사촌형의 병원 빌딩 최상층에 마련된 방을 떠나 밖으로 나간 뒤 종종 길을 잃고 헤맨 적이 많았다. 파출소에서 아니면 고향 사람의 연락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실종 신고까지 접수했던 큰아버지는 남의 빌딩 옥상에서 시신 상태로 발견되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재웅은 아내의 병세가 깊어져 예전처럼 엄마 옥자를 케어할 형편이 되지 않아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시켰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삶에 대한 회의감과 오래된 형광등처럼 불이 켜졌다 나가길를 반복하는 기억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재웅은 홀로 요양병원을 찾아가 옥자에게 아내 경희를 데리고 멀리 갔다 오겠다고 인사했다. 이후 재웅도 경희도 옥자를 찾아오지 않았다.


부모님 두 분의 장례를 치른 성현은 할머니 옥자를 다시 상도동 집으로 모셔 왔다. 요양보호사 한 분이 낮 시간에 케어해주고, 학교가 파하면 곧장 성현이 상도동 집으로 달려왔다. 이렇게 성현은 아버지 재웅이 하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옥자는 손자 성현을 종종 재웅이라 불렀다. 주말에 재웅이가 오기 전에 뭔가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에 옥자는 새벽에 일어나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오전, 성현은 장바구니를 들고 상도동에 도착, 벨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관리사무소의 도움으로 받아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할머니는 집 안에 없었다. 성현은 건물 곳곳을 찾았다. 비상계단에서 발견했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벽 곳곳에 붙은 파란 테이프를 떼냈다.


#책추천 #한국장편소설 #한국장편소설추천 #틈을막는사람 #문재웅 #부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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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본 N잡으로 1억을 모았습니다
채윤경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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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든 투자든 결국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종잣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N잡을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시드머니 모으기였습니다. 금액도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1억 원'이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N잡을 시작한 후 2년 반쯤에 1억 원을 모았고, 그로부터 1년 뒤 내 집 마련에 성공합니다.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채윤경은 현재 UI/UX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부트캠프 강사, 동기 부여가이며 유튜브 채널 '윤밀리'를 운영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디자인과 콘텐츠, 그리고 자기계발을 넘나들며 퍼스널 브랜딩과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은 월급에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법(챕터1), 부업으로 작지만 확실한 수익 만들기(챕터2), 누구나 쉽게 따라 하는 방구석 N잡 노하우1(챕터3), 누구나 쉽게 다라 하는 방구석 N잡 노하우2(챕터4) 등을 통해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추구하려면 단순한 월급 이외의 N잡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종잣돈 모으기 노하우까지 담고 있다.


지금은 N잡이 필요한 시대


평생직장이라는 용어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된지 오래 되었다. 과거의 직장인들은 부정이나 악의적인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정년 퇴직할 때까지 편안히 돈을 벌 수 있는 사회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 같은 직장인일지라도 경쟁력이 없다면 평생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 더구나 돈이 없으면 남들 다하는 재테크(주식, 부동산 투자)는 언감생심인 상황이라 월급 이외의 새로운 벌이(수입)가 어쩌면 필수적인 시대가 된 듯하다.


이는 단순히 말 뿐인 설명이 아니라 실제로 이같은 변화가 뚜렷해 졌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N잡러 희망자는 2023년(29만 7,168명)부터 3년 연속 증가세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33만 6,745명) 이후 4년 만에 가장 크게 늘었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N잡러 수가 월평균 60만 7,536명(2025년 기준)에 달한다. 2019년(50만 9천 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세임을 볼 수 있다.


저자의 N잡은 '독립'이 목적이었다. 서른의 나이가 넘었음에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산다는 게 스스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독립이 절실했던 거다. 부모와 함께 살면 아무래도 본인이 생각하는 삶의 설계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자주 오가기에 이런 환경의 변화 또한 필요했다. 그래서 블로그, 전자책, 강의, 유튜브, 영상 편집 등을 통해 첫 6개월 동안 1천만 원을 벌어서 비로소 독립할 수 있었다.


작은 투자 병행하기


예적금(안전자산)~ 원금보장형

공무주 투자~ 소액으로 수익을 경험하기

지수추종형 ETF 투자~ 세계 경제 흐름 공부하기

N잡 수익 재투자~ 부수입 전액 저축, 시드머니 불리기


부업으로 확실한 수익 만들기


직장인이 월급 이외로 알바 형식의 N잡을 통해 수익 만들기가 말처럼 그리 쉽진 않다. 저자는 출근해서 매일 직장 동료들과 식사하러 간다는 점에 착안, 맨 먼저 '맛집 블로그'를 시도해 보았다. 식사보다 식당 내부 인테리어, 식당 벽의 매뉴판, 테이블 위 주문 음식 플레이팅 등 어필할 수 있는 주요 사진 몇 컷을 촬영하기 바빴다.


퇴근해서 자료 정리, 블로그 글쓰기, 사진 편집 등 밀려오는 잠을 뿌리치려고 눈을 비비며 진행하는 이런 작업의 수행은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던 거다. 그럼에도 꾸준한 작은 노력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보람이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체험단에도 선정되고, 처음으로 통장에 100만 원이 입금되는 날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같은 경험을 토대로 저자가 제시하는 로드맵을 살펴 보자.


퇴근 후 30분 블로그로 돈벌기는 주 3회 글쓰기라는 목표를 잡았다. 이 게임은 오래 지속하는 게 핵심이다.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웃 블로그를 찾아가 방문과 응원글을 남기며 온라인 친구를 늘려갔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광고가 붙고 광고 클릭과 노출 수에 따라 광고 수입이 발생한다. 바로 '네이버 애드포스트'이다. 특히, 구글 애드센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광고 네트워크 중 하나로 원리 또한 비슷하다.


네이버 애드포스트 심사 기준


만 19세 이상 개인

블로그 개설 후 90일 이상 경과

개인명의 휴대폰 또는 아이핀 인증 필수


구글 애드센스 심사 기준


만 19세 이상 개인

고품질의 독창적인 콘텐츠

구글 정책 준수

콘텐츠 품질 기준 달성


블로그 체험단 활동은 블로거가 기업이나 브랜드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무료로 체험하고 블로그에 후기를 작성하는 활동이다. 예를 들어, 매달 고정적으로 드는 헤어 염색비를 체험단을 통해 해결하고 또 데이트 비용으로 나가던 식사비를 맛집 체험단을 통해 절약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돈이 바로 시드머니로 쌓여가는 셈이다.


블로그 기자단 활동은 체험단과 비슷한 개념으로 더 전문적이고 구조화된 활동이다. 블로그 방문자 수, 콘텐츠 품질, 블로거 영향력 등이 중요한 선정 기준이며, 선발되면 상대 업체에서 블로그에 업로드할 사진 자료, 작성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덕분에 초보 블로거도 콘텐츠를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PDF 전자책 출간은 단순히 디지털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원고가 전자책, 종이책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관련 강의나 컨설팅, 개인 브랜드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전자책은 단순한 판매상품을 넘어 본인의 전문성을 알리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 책은 제작 노하우를 주제 정하기, 목차 만들기, 도구 선택하기, 표지 디자인 만들기 순으로 설명한다.


온오프라인 강의는 전문 이론보다 실무나 실제 경험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의외로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참여자가 많다고 한다. 29살에 늦게 시작한 저자의 영상 편집과 디자인 또한 최고 수준이 아님에도 실무에서 자주 사용되는 핵심 스킬 위주로 진행된다고 밝힌다.


유튜브는 제2의 월급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무기 중 하나이다. 맨 처음 호기심과 의구심을 갖고 발을 내닫었던 저자의 경험 또한 정말로 돈이 되고, 완벽한 본인만의 브랜딩 수단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유튜브란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몰리는 거대한 플랫폼이기에 남보다 뛰어난 재능이 없더라도 사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블로그 주제 선정과 유튜브 시작 


결국 블로그의 핵심은 다양함보다 일관성 유지이다.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하나의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꾸준히 기록을 쌓아가는 편이 블로그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장기간 내가 즐길 수 있는 주제를 찾고, 그 주제에 대한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블로그는 어느 순간부터 수익화가 가능한 하나의 자산으로 발전하게 된다. 

유튜브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초보자가 가장 흔히 빠지는 미로迷路가 있다. 바로 ‘어디까지 공부하고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백만 원짜리 장비나 화려한 모션 그래픽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촬영, 편집, 썸네일'이라는 3가지 핵심 요소를 직접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 재능마켓

사실 블로그와 유튜브 수익화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미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 경험 등을 그대로 상품화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을 잘 쓴다면 글을 팔 수 있고, 디자인을 할 줄 안다면 디자인을 팔 수 있다. 또 엑셀을 잘 다룬다면 엑셀 문서를 만들어줄 수 있고, 영어를 잘한다면 번역이나 회화 수업을, 사진을 잘 찍는다면 촬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특별한 전문 기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의 경험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취업 준비 경험, 블로그 운영 경험, PPT 만드는 방법, 엑셀 활용법, 다이어트 경험, 여행 계획을 세우는 방법 등처럼 본인의 평범한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는 돈을 내고 배우고 싶은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개인의 재능과 서비스를 매매할 수 있도록 만든 온라인 플랫폼을 흔히 ‘재능마켓’ 또는 ‘프리랜서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플랫폼에 가입해 본인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등록하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객이 플랫폼을 통해 찾아온다. 플랫폼으론 크몽, 숨고, 탈잉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을 만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스럽다고 판단되는 것은 '곧바로 실천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머리 속으론 다 알면서 이를 절박한 심정을 안고 가슴으로 실행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만 그렇겠는가. 지금부터라도 뒤를 보면서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실행이 옮기자. 이런 선택들이 모여 바로 내일의 나를 만든다. 직장인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재테크 #재테크일반 #무자본N잡으로1억을모았습니다 #채윤경 #원앤원북스 #서평단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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