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과 금붕어
나가이 미미 지음, 이정민 옮김 / 활자공업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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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케이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요양 보호사인 밋짱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밋짱으로부터 "이제껏 살아온 날들을 돌아봤을 때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하세요?" 하는 질문을 받고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어땠는지 돌아본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이 소설의 작가 나가이 미미(1965년생)는 56세라는 늦은 나이에 문단에 데뷔해 2021년 제45회 스바루문학상을 수상한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작가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은 한 치매 환자의 독자적 관점으로 삶을 회고하는 유머스런 문장들이 일본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또 요양 보호사로 일하며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현장에서 직접 돌보는 경험을 한 적도 있었기에 소설 속 가케이 할머니는 이런 경험 속에서 탄생한 캐릭터인 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가케이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 환자들의 공통적인 안타까움은 지난 일들을 완전히 망각하거나 희미한 기억의 끝자락을 잡고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현실과 과거를 오락가락한다는 데 있다. 거의 매일 내 스마트폰을 울려대는 실종자 신상공개 대부분이 바로 이런 부류다. 

치매 환자가 집을 나가면 과거 속에서 헤메다가 현실의 통로로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과거 치매를 앓았던 나의 큰아버지도 사촌형 병원집을 나가 결국 귀가하지 못한 채 객사하고 말았다. 온 가족과 고향 친척들이 며칠 동안 찾아나섰지만 행방이 묘연했는데, 남의 집 건물 옥상에 신발을 벗은 채 편히 잠자는 모습을 누군가 발견하고 신고함에 따라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이후 사촌형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려 애쓰다가 병원과 건물을 통째로 매각,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렇듯 치매는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고통을 남긴다. 물론 치매에 걸렸다고 머릿속이 늘 안개로 가득한 것은 아니므로 오해는 금물이다. 

가케이 할머니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던 아픈 과거의 그림자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선물용 상자를 만드는 직공이었다. 상자는 '만주'나 화과자 등을 담는 용도로 사용됐는데, 아버지는 직공 중에서도 가장 하급下級 취급을 받았기에 밖에서 당한 설움을 집에 오면 아내에게 폭행하는 것으로 풀었다. 통상 심리적으로 약자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골라 못되게 군다.  

맞고 사는 걸 감수하면서 가정을 지켰던 그녀의 어머니는 가케이를 낳고선 바로 사망했다. 이후 아버지는 매춘부 출신인 계모를 들였다. 이 계모는 가케이 남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으며 특히 어린 가케이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장작으로 두들겨 팼다. 잠지리에 들면 내일은 제발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정도였다. 심지어 계모는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젊은 놈이랑 바람을 피며 가케이를 오빠한테 떠넘겼다. 오빠는 어린 동생 가케이를 덩치가 산만한 큰 개(다이大짱)의 젖을 물렸던 것이다. 

"나는 다이짱의 젖을 먹고 자랐어. 철이 들고 나서도 한동안은 다이짱의 젖을 빨았지. 그냥 기억이 나. 밋짱, 이건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내가 다이짱을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 엄마. 나는 다이짱을 엄마라고 불렀어"(33쪽) 


(사진, 다이짱)

이런 계모이니 가케이를 집에서 식모처럼 부려 먹었고 당연히 학교엔 보내질 않았다. 그럼에도 가케이는 신문 읽는 모습이 하도 근사해서 혼자서 신문 읽는 연습을 했다. 계모의 눈을 피해 헌 신문 위에 열심히 글씨 쓰는 연습을 했던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다. 가케이의 절실함이 돋보이는 무척 인상적인 대목이다.  

또 오빠가 데려온 애 딸린 남자와 강제로 결혼했지만 아들 겐이치로가 태어난 직후 마치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남편은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 미노루가 있었는데, 가케이와 겨우 여덟 살 차이뿐인지라 결코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 이런 남편과 결혼까지 하게 됐을까? 

남편은 오빠의 파친코 가게 단골손님이었다. 전처가 아들을 남겨둔 채 도망가자 자포자기 상태에서 파친코를 자주 즐겼던 관공서 근무자였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속이는 악덕업소라서 오빠는 떼돈을 벌었지만 반면에 순진한 남편 같은 사람들은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갚지 못한 빚까지 남아서 동생 가케이를 이 호구에게 떠밀듯 맡겼던 것이다. 소설에선 이를 '역담보'라고 말한다. 


(사진, 밤일의 결과)


남편이 증발하고 난 뒤 깨달은 것이 있었기에 가케이는 일치감치 남편을 포기했다. 남편이 다니던 관공서를 찾아갔을 때 직장상사로부터 전해들은 '그토록 예쁘고 야무진 전처'라는 말에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발동했을지도 모른다. 곧바로 포기하고 재봉틀을 돌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재봉틀 페달을 밟았다. 생계 때문이다. 아니,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남편이 버리고 간 미노루 때문에 부아가 치밀어 더욱 그러했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소설의 주인공인 가케이 할머니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쁜 일만 있었다고 비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속담에 담긴 의미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이라는 밧줄을 놓치지 말자. 내 삶에서 행복했던 기억, 사랑받았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며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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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철학 틈새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마이너스(Miners)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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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걷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일상은 자연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소로는 숲길을 거닐며 이 질문들에 답하려 했고, 그의 답은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신선하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 메사추세츠주 콩코드 출신의 사상가, 수필가, 시인이자 자연주의자였다. 그의 대표작 <월든>에서 보여주었듯이, 그는 문명사회의 소란과 물질적 욕망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단순하고 자율적인 삶을 실험했다. 단순히 자연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회제도의 모순을 통찰했다. 이 책 <걷기의 철학>은 그런 사유의 결정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책은 소로의 여러 산문을 묶은 모음집으로 그의 정신세계가 가장 진하게 담겨 있는 책 중 하나이다. 메사추세츠 자연사, 와추세트로의 산책, 여관 주인, 겨울 산책, 산림 수목의 차이, 걷기, 가을빛, 야생의 사과, 밤과 달빛 등 아홉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메사추세츠 자연사'에서 그는 주변 자연의 세밀한 관찰을 통해 땅과 기후, 생명체들이 어우러지는 질서를 묘사하며, 인간이 자연과 맺는 근본적인 관계를 보여주었다. '와추세트로의 산책'에선 산을 오르며 풍경과 인간 정신이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겨울 산책'에선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삶과 죽음, 고요와 활력을 함께 사유했다.


또 '산림 수목의 차이'에선 식물학적 관찰을 넘어 나무와 숲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탐색했으며, '걷기'에선 걷기를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유와 영혼의 회복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행위로 격상시켰다. 이어서 '가을빛', '야생의 사과', '밤과 달빛'에서는 계절의 아름다움, 자연 속에서 자라난 사과의 생명력, 달빛이 비추는 밤의 사유를 통해 인간이 자연과 맺는 내밀한 대화를 보여준다.


특히 초월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으며, 단순한 생활과 자연 속 사색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으려 했던 소로에게 걷기란 도시와 사회의 제약을 벗어나,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는 사색과 철학의 길이었다. 책 속 '걷기' 편은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글인 셈이다.  


젊은 시절엔 살과의 전쟁을 치른다고 눈뜨면 바로 아파트 인근 올림픽공원으로 나가 뛰었다. 아내와의 약속 때문에 시작했으나 날씬한 몸매와 맑은 정신을 얻을 수 있었기에 아침 달리기는 지속되었다. 점점 달리는 거리가 길어지면서 학창시절 개교기념일 단축 마라톤 행사에 강제 동원되어 개거품을 토하며 뛰던 거리 정도는 이젠 껌깞 정도가 되었다. 


자신감이 잔뜩 생긴 탓에 마라톤 도전에 나섰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마치 홀린 사람처럼 여러 차례 참가했다. 전문가의 지도없이 단순 반복적인 나홀로 훈련에만 의존했던 내 몸에 무리가 왔다. 무릎, 허리, 발목과 발바닥 등에 몰려온 통증은 당분간 뛸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후 언젠가부터는 아침 산책을 여유롭게 즐기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지금 '소로의 걷기 철학'을 읽는 것 또한 아침 산책의 연장선이다. 


(사진, 옮긴이의 말)     


메사추세츠 자연사 


진정한 과학자는 더 섬세한 감각으로 자연을 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잘 냄새 맡고, 맛보고, 보고, 듣고, 느낀다. 그의 경험은 더 깊고 정교하다. 우리는 추론이나 연역, 또는 철학에 대한 수학의 적용으로 배우지 않는다. 직접적인 교류와 공감으로 배운다. 


과학은 윤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계략이나 기술로 진리에 이를 수 없다. 베이컨주의조차 다른 방법론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 기계와 기술의 모든 도움에도 불구하고, 가장 과학적인 사람은 여전히 가장 건강하고 친절한 사람일 것이며, 인디언이 지녔던 더 완전한 지혜를 가질 것이다.


(사진, 메사추세츠 자연사)


와추세트는 참으로 매사추세츠의 전망대였다. 지도처럼 길이와 너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바다의 평평한 지평선이 열렸고, 북쪽으로는 뉴햄프셔의 익숙한 언덕들이 보였다. 북서쪽과 서쪽으로는 전날 저녁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삭 산맥과 그린 산맥이 안개 낀 듯 푸른 윤곽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마치 아침 바람에 흩어질 구름 둑처럼 실체 없는 듯 보였다. (67쪽)


겨울 산책


겨울에 따뜻함은 곧 모든 미덕의 상징이다. 늪과 웅덩이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우리 주전자에서 오르는 김만큼이나 소중하고 가정적이다. 겨울날의 햇살과 들쥐들이 담벼락 옆을 오가는 풍경, 숲길에서 지저귀는 박새의 노래와 비교할 수 있는 불은 어디에도 없다. 따뜻함은 여름처럼 땅에서 복사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서 직접 온다. 눈 덮인 골짜기를 걷다가 등 뒤에서 그 광선을 느낄 때, 우리는 특별한 은총에 감사하며, 그 외딴 곳까지 우리를 따라온 태양을 축복한다. 


이 지하의 불은 모든 이의 가슴에 제단을 두고 있다. 가장 추운 날, 황량한 언덕 위를 지나는 여행자도 어떤 난로나 아궁이보다 더 따뜻한 불을 외투 자락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은 계절의 보완물이며, 겨울에는 여름이 그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 그의 가슴속에는 남쪽이 있다. 모든 새와 곤충은 그곳으로 이주했고, 따뜻한 샘 주위에는 울새와 종달새가 모여든다. 


(사진, 겨울 산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활동한 수필가로, 자연을 삶의 스승으로 삼았던 철학자이기도 하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한창인 시대, 기계 문명이 인간의 생활을 급격히 바꾸고 물질적 번영이 진보로 칭송받던 그런 시기에 살았다. 그럼에도 소로는 이런 흐름에 거리를 두고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풍요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던 것이다. 사회가 강요하는 길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삶의 중심에 두었다. 그래서 숲 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지냈다. 


이 책의 여러 편 에세이들 중에서 소로의 정신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글은 바로 '걷기' 편이다. 이 편에 담겨 있는 글 중에서 인상적인 글귀들을 소개하려 한다. 그의 걷기는 인간 정신의 자유와 자연과의 합일合一임을 느낄 수 있다. 사회와 제도의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 존재의 본질을 찾고 회복하려는 구도자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걷기


나는 단 하루라도 방 안에 머물면 곧바로 녹슬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오후 4시, 이미 하루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몰래 산책에 나설 때가 있었다. 땅거미가 햇살과 뒤섞이는 그 시간에 길을 나서면, 마치 무언가 속죄해야 할 죄를 저지른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142쪽)


소로가 말하는 걷기는 병자病者가 정해진 시간에 마치 약을 삼키듯, 또는 아령을 흔들어대는 운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걷는 그 자체로 하루의 과업이자 모험인 셈이다. 더욱이 걷기는 낙타처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낙타는 걸으면서 동시에 돠새김질 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 여행자가 워즈워스의 하녀에게 주인의 서재를 보여 달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여기가 도서관이고, 주인의 서재는 바깥에 있답니다"


그렇다. 바깥은 사색과 사유의 현장이자 지혜와 지식을 쌓는 공간인 셈이다. 단순한 운동의 관점이라면 굳이 바깥에 나가 걷지 않아도 된다. 트레드 밀 위에 올라 자신의 등급에 맞는 속도로 걸으면 될 일이다. 나 또한 집안에서 트레드 밀을 이용해서 땀을 잔뜩 흘리는 걷기를 하기도 했다. 바깥에 나가 걸을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거나 비가 오는 날씨에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걷기는 자연의 내음과 숨소리가 전혀 없다. 그래서 나도 자연을 벗 삼아 걷으며 힐링받는 걸 좋아했다. 물론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햇볕과 바람 속에서 야외에 오래 머물면, 의심할 여지 없이 성격은 다소 거칠어진다. 얼굴과 손에 그러하듯, 인간 본성의 섬세한 부분 위에도 더 두꺼운 각질이 자라나며, 힘든 육체노동이 손의 미묘한 감각을 앗아가는 것과 같다. 반면 집 안에만 머무른다고 해서 피부가 얇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부드러움과 매끄러움은 얻을 수 있으며, 특정한 인상에 대한 감수성은 더욱 예민해진다. 아마 우리가 햇볕을 덜 쬐고 바람을 덜 맞았다면, 지적·도덕적 성장에 필요한 어떤 자극에도 더 민감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두꺼운 피부와 얇은 피부의 비율을 올바르게 맞추는 문제는 언제나 미묘하다. 내 생각에는 그것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비듬처럼 곧 흩어져 사라지는 문제에 불과하다. 자연의 치유책은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생각과 경험의 비율 속에서 발견된다. 우리의 사유 속에는 그만큼 더 많은 공기와 햇살이 깃들게 될 것이다. (145쪽)

소로의 글은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걷는다는 것은 곧 들판과 숲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뜻'이다. 어떤 철학 학파들은 숲으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숲을 자신들에게로 불러들여야 했다. 그들은 플라타너스 숲과 산책로를 조성하고, 공기에 개방된 주랑 현관에서 햇볕을 받으며 걸었다. 억지로 숲을 향해 걷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몸으로는 숲속 1마일을 걸어 들어갔는데, 정신은 그곳에 이르지 못했을 때, 소로는 불안해진다고 말한다. 


오후 산책은 아침의 모든 일과와 사회적 의무를 잊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마을의 기운이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몸은 숲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도달하지 못한다. 내 정신은 흐트러져 있다. 산책은 나의 정신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숲에 있으면서 숲 밖의 일에 사로잡혀 있다면, 내가 숲에 있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소위 선한 일들조차 이토록 나를 얽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는 오히려 전율을 느낀다. _’걷기’ 중에서 (146쪽)


(사진, 성지 순례자)


무엇을 위해 걷는가?


책 속에는 자연을 향한 관찰자의 섬세한 눈길과 인간 사회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날카로운 통찰이 공존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걷는가?'라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화두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소로도 숲길을 걸으며 이 질문들에 답하려 했다. 소로의 발걸음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 본다면 인간 사회를 성찰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걷기 #사색 #힐링 #헨리데이비드소로 #소로 #초월주의 #걷기의철학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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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회복 - 삶의 균열 앞에서 나를 돌보는 연습
박재연 지음 / 한빛라이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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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라 하면 대개 죽음이나 이별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실은 그보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죽음처럼 명료한 상실이 있는가 하면, 학창 시절에 겪은 지독한 소외감과 폭력의 두려움 같은 상징적 상실도 있다. 또한 갑작스레 찾아온 사고나 질병과 같은 외상적 상실, 부모의 이혼이나 실종 같은 정의 내리기 어려운 모호한 상실이 있다. 우리는 어떤 결과를 통해 상실을 하나의 '사건'으로 정의하고 결혼 지으려 하지만, 상실이라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모호하게 사람의 마음에 파고든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박재연은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이자 한국신학대학교 대학원 죽음교육상담전공 교수이고 국제공안 죽음교육상담전문가이면서 수련감독이다. 8~15주의 <연결의 대화> 워크숍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갈등 중재와 집단 대화 훈련 및 개인 대화 상담을 진행하고 잇으며 한계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세계와 상호관계의 대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은 '가족이 그리울 때, 가족이 힘들 때', '주기만 해도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사랑이 고플 때', '일도 삶도 어긋났다 느낄 때',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될 때' 순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실의 사건 앞에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 관계와 맥락 속에서의 진짜 상실을 다루고 있다.


감추어두었던 눈물이 흐르는 날 


인생의 여정에서 경험하는 상실은 우리들에게 비탄이라는 깊은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 비탄은 애도의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일부러 울음을 참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상실 수업>에서 "30분 울어야 할 시간을 20분으로 줄여서 울지 말라"고 권고헸다.


"울어요?"

"아줌마가 네 나이 때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 잘 못 놀았거든"

"아, 슬펐겠다"

"그래서 너랑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까 아줌마가 눈물이 나네"


이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루어진 대화이다. 어떻게 그 아이는 그토록 해맑은 얼굴로 다가와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문득 아이의 부모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웠길래 이토록 다정하게 아이는 말할 수 있었을까?


발달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과 보호자 간에 애착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안정적인 애착을 지닌 아이들의 특징은 심리적 안정감, 자율성, 사회적 유능성 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주된 양육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랑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불안은 적다. 또한 자신의 욕구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있고 자율적이다. 앞서 예시한 아이와의 대화가 비록 잠시였지만 다정한 말씨와 함께 상대의 눈물에 대해 진실한 호기심을 가졌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진, 생각나누기- 어린 시절의 상처)     


깊이 사랑해본 사람은 다르다 


유명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긍정심리학의 핵심 모델인 PERMA 이론에서 인간의 행복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를 꼽았다. 다른 요소인 긍정 감정, 몰입, 의미,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깊이 연결된 사람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바쁘다", "죽겠다". "하루가 너무 짧다" 등과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며 하루를 보낸다. 속도에 쫓기고, 해야 할 일에 떠밀리며, 관계는 자꾸만 뒤로 미뤄진다. 나 또한 80년대 초중반의 직장인으로 꼭 이런 모습이었다. 회사일 때문에 갈수록 이성과의 교제는 당연히 후순위가 되는 추세였다. 결국 그 여성은 나에게 절교를 통보해왔던 것이다. 그 당시엔 이런 통보가 무덤덤했지만 한해두해 솔로 생활이 길어지면서 퇴근 후 가장 친한 친구는 사람이 아닌 술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한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녀를 두고 떠났고, 남겨진 그녀는 기꺼이 사랑했던 그 모든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누군가를 이토록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결심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지인들 아무도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이후 그녀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올인했다. 결과는 정직했다. 성취는 그녀의 몫이었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자존심을 다시 세워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멋지게 혼자 잘 살아간다'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을까? 마음 깊은 곳에 온기를 데워주는 존재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갚은 숨을 내쉴 때, "노 괜찮아?"라고 물어주는 단 한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고용함 속의 공허함은 결국 일이 채울 수 없는 감정의 틈으로 남는다.


우리는 모두 혼자 살아간다고 믿기 쉬운 세상에 산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한 착가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

사랑은 늦게 오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그때, 당신이 마음을 열어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생각나누기 - 사랑이 떠난 상실)


베푸는 것도 선택이고 기쁨이어야 한다


남에게 베풀고 선한 행동을 많이 행하면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는 '강박적인 인정 욕구'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선을 넘은 무례한 언행을 그저 흘려보낸 탓이다. 마음속엔 억울함과 슬픔이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고, 침묵으로 넘겼다. 이를테면 스스로를 기만한 것이다.


"기쁘지 않다면 어떤 일도 하지 말라"

- 마셜 로젠버그, <비폭력 대화> 중에서


페르소나, 이는 타인에게 보이는 '사회적 가면'이라고 칼 융이 말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위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페르소나가 '진짜 나'라고 동일시하며 살아가거나 '진짜 나'와 크게 괴리될 때 발생한다. 그 페르소나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 때문에 감정을 억압하고 외부 인정에 몰입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을 회피하려 하고, 심지어 화를 낼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별하는 능력이 약화되었다. 


그렇다.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타인에게 밥을 사는 대신 나를 위해 맛있는 브런치를 사 먹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돌보며 삶의 균형을 찾는 게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이자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인정인 것이다.


(사진, 생각나누기 - 페르소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죽음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실의 유형에 속한다. 가족의 자살은 갑작스러운 외상적 상실에 해당한다. 자살과 같은 인위적인 이별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극도의 혼란과 죄책감을 남긴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죽음학에서는 죽음 직전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고 저서적 안녕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가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란 사실을 반복적으로 연구해왔다. <말기 환자 돌봄 연구>에서도 가족 또는 돌보는 이가 곁에 있어주었을 때, 불안이나 공포 같은 주관적 경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들이 꾸준히 보고되었다.


죽음을 목격했고, 그 현장에 있었던 남겨진 사람의 심리적 경로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두 번째는 재현 기억~ 죽음의 순간이 반복해서 떠오름

세 번째는 감정의 회피~ 사건 관련 대화나 기억을 언급하지 않는 시도

네 번째는 애도와 외상의 교차~ 감정의 마비 상태를 경험


애도가 단지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다.


(사진, 생각나누기 - 죽음)


관계에서 경험하는 상처는 유의미하다


아동기에 힘든 시기를 보낸 이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눈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랑하는 조부모를 잃은 사람은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부모로부터 학대받ㅇㄴ 남성은 따뜻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고, 취업에 많이 실패했던 청년은 진로전문가가 되어 희망을 잃은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었다. 상처는 아픔임에 분명하지만 동시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회복 #신간 #인생 #가족 #다정함 #조용한회복 #한빛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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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부른 아이 1 : 활 마녀의 저주
가시와바 사치코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고향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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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가 사는 마을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열 살이 된 아이 중, 동쪽 동굴에 있는 용의 부름을 받은 아이만이 마을을 나갈 수 있다. 한 명도 부름을 받지 못하는 해도 있고, 두세 명이 부름을 받는 해도 있다. 용의 부름을 받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올해 열 살이 된 미아는 자신은 용의 부름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용의 부름을 받다' 중에서 


(사진, 책표지) 


작가 가시와바 사치코는 고단샤 아동문학신인상과 일본아동문학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한 후 오랫동안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을 써 왔으며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쇼가쿠칸 아동출판문화상, 노마 아동문예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귀명사 골목의 여름>으로 최고의 비영어권 어린이책에 주어지는 '배첼더상'을 수상,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작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책 속의 삽화들은 판타지 문학과 어린이책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타케 미호가 그린 그림이다. 


판타지 소설이자 판타지 시리즈인 <용이 부른 아이>의 1권 '활 마녀의 저주'는 여덟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즉 용의 부름을 받다, 왕궁으로, 우스즈님의 정체, 모험을 시작하다, 회오리 마을, 몇백 년 만의 재회, 불타는 돌, 미아와 릴리트 등의 이야기가 펼쳐 진다.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아가 사는 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하늘로 날 수 있지 않는 한, 결코 이곳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는 특별한 지형이다. 마을 주위엔 산이 있고, 강도 흐르며, 온갖 야생화들이 자태를 뽐내는 평야도 펼쳐진다. 이런 환경 속에 살았기에 미아는 한 번도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실상은 이 마을이 죄인들의 감옥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아는 결혼하지 않은 이모의 헌신적인 돌봄 밑에서 성장해 열 살에 이르렀다. 미아의 조상은 현재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왕족의 조상과의 전쟁에서 패한 일족의 후손이다. 비록 이 골짜기 마을이 죄인들의 집합소라지만 몇백 년 전 용과 마녀까지 합세한 그 전쟁에서 미아의 선조들이 승리했다면 오히려 이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란 자부심이 가득한 가문인 셈이다. 마을에는 마녀들의 배반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미아는 두 돌이 되도록 서지도 못했고 말도 트이지 않았던 발육이 더딘 아이였다. 아빠가 죽고 혼자서 미아를 양육하던 엄마는 열이 펄펄 끓는 미아를 버려두고 사라졌다. 삶을 비관하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마을을 탈출하려 절벽을 오르다가 추락해 죽었다는 등 소문이 나돌았지만 아무도 정확한 진실을 모른다. 지금까지 둘째 이모가 정성껏 돌보았던 열살 미아가 용의 부름을 받았다.



미아는 말타기에 능숙했기에 이후 용을 타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사진. 말을 타고 가는 미아, 이를 바라보는 용) 


언젠가는 용의 부름이 있을 것을 예상한 둘째 이모는 가출(?)한 엄마를 대신해 미아를 어릴 적부터 엄하게 훈육해서 청소, 요리, 바느질, 뜨개질, 읽기와 쓰기, 곱셈 계산, 지도 보는 법, 그림 그리기, 승마, 약초의 효과, 예의범절, 식사예절 등을 두루 가르쳤기에 용의 부름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미아는 할아버지가 내어 준 말을 타고 먼저 인사를 하기 위해 용이 산다는 동쪽 동굴로 나아갔다. 


주요 등장인물 소개 


미아~ 용의 부름을 받은 열살 소녀

둘째 이모~ 친부모를 대신해 미아를 키운다

우스즈~ 저주를 받아 주머니로 변한 용의 기사

릴리트~ 미아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왕궁 여인

은빛 날개 마녀~ 숨은 활 마녀를 찾아 다닌다   


이후 용을 타고 왕궁에 도착한 미아는 익숙치 않은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서서히 적응한다. 릴리트, 저주에 걸려 주머니로 변한 용의 기사 우스즈, 은빛 날개 마녀 등을 만난다. 미아에게 부여된 일은 사라진 우스즈의 방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사진, 우스즈의 방에 도착한 미아)


한편, 도착한 첫 날은 금방 잠에 곯아 떨어져 몰랐지만 우스즈의 방에선 이상야릇한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로 인해 무서움과 불안감을 갖던 중 당찬 미아는 서서히 이 소리에 적응하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밑이 터진 주머니에서 그 소리가 난다는 걸 알게된다. 이에 터진 곳을 꿰메고 나자 울음 소리가 뚝 그쳤다. 이후 미아는 이 주머니를 소금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은빛 날개 마녀 덕분에 '용의 기사' 우스즈가 활 마녀의 저주를 받아 작은 주머니로 변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진, 주머니)


(사진, 회오리 마을로 향하는 미아)


이제 주머니를 허리띠에 매달아 휴대함으로써 미아는 '용의 기사' 우스즈와 함께 동행하는 셈이 된 것이다. 왕궁 밖으로 나갈 기회를 얻은 미아는 왕궁 수비대장 아마다의 배려로 약간의 금화를 챙겨 용을 타고 우스즈가 원하는 북쪽 방향에 위치한 회오리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금광이 있었는데, 현재는 미아가 살았던 골짜기 마을과 마찬가지로 죄인의 마을로 변해 있었다. 아무튼 미아는 이렇게 '용의 기사' 우스즈가 타고 다녔던 용을 찾아 모험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과연 우스즈가 잃어버린 용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사진, 릴리트와 미아의 관계)


#판타지 #판타지소설 #판타지시리즈 #용이부른아이 #센과치히로의행방불명 #가시와마사치코 #대형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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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
묘장 지음, 소리여행 그림 / 불광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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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회기역 연화사蓮花寺 주지인 묘장 스님은 이 책에서 ‘인연’과 ‘생명’이란 주제를 통해 삶의 지혜를 우리들에게 전하려 한다.


(사진, 책표지)


책은 세 개 파트, 즉 ‘후회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인연에 의해 사라진다’, ‘끝없이 넓은 세계와 나와 남이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다’라는 소제목하에 총 38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연因緣


<능엄경>은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보리심을 얻고 진정한 경지를 체득하는 걸 강조하는 경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인 아난의 스캔들이 소개된다. 그는 부처님을 곁에서 모신 시자侍者로 용모가 출중했다고 알려진다.


하루는 홀로 탁발에 나섰던 아난이 목이 말라 강가에서 물 긷는 여인에게서 물을 얻어 마셨다. 아난의 뛰어난 외모에 홀딱 반한 여인은 귀가해서 어머니에게 생떼를 부렸다. 첫 눈에 운명의 짝임을 느꼈다며 아난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여인의 어머니는 인도의 하층 계층인 ‘마등가摩登伽’라는 비천한 집안 출신이었는데, 딸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기에 아난을 집으로 초대해 공양을 올리고 딸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아난은 수행자이므로 결혼은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에 이 어머니는 주술을 부려 아난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부처님이 급히 문수보살을 보내 아난을 구한다. 뒤이어 아난을 찾으려고 마등가 여인은 절 안 곳곳을 뒤지다가 부처님을 마주친다.


부처님은 이 여인에게 아난처럼 삭발하고 출가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잘 생긴 아난의 부인이 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부처님이 아난의 외모가 모두 좋아 보이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도 않고 오히려 더럽다고 부정관不淨觀을 설법하자 마침내 마등가 여인은 애욕愛慾을 버리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


생명生命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 중에 ‘방생放生’이 있다. 이는 죽을 위기에 처한 생명을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선한 행위이다. 한국불교에선 예전부터 물고기 방생을 많이 해왔다. 지금도 그 전통의 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오히려 낚시꾼의 밥이 되게 하는 살생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이는 그 본질을 왜곡하는 뒤집힌 생각인 셈이다. 이를테면 <반야심경>에 나오는 귀절인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을 떠올리게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는 따로 있는데 이를 꾸짖지 않고 엉뚱하게 피해자를 꾸짖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성추행이 발생했을 때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어서, 밤늦게 다녀서 등을 거론하며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을 탓하는 경우와 같다.


물론 생태교란종으로 평가받는 물고기를 풀어 준다면 우리들이 오래토록 즐겨야 할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일로 오히려 비난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일로 인해 방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막무가내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지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 불교의 방생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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