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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짜는 판 -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12년간의 기록
김봉제 지음 / 하움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콘텐츠의 본질은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지켜내는 방식이 곧 올바른 구조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이 구조를 만들다 무너뜨리고, 다시 설계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내가 지나온 그 반복의 전개를 차근히 펼쳐보려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김봉제는 1세대 UCC 크리에이터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CJ ENM 디지털 마케터로 재직하며 한국 최초의 MCN인 DIA TV 설립 멤버로 참여했고, 그때부터 크리에이터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구조를 직접 실험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아이스크리에이티브 사업총괄 이사로서 재직 중이며 다시 한번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감각의 시대, 구조의 탄생, 재구성의 시대, 다음 구조라는 네 개의 큰 주제 하에 크리에이터의 옷을 입고 판을 짜다, 구조를 체험하는 감각, 사람 중심의 조직을 만들다, 크리에이터 비즈니스는 계속된다 등의 이야기를 14개 장에 걸쳐 펼쳐낸다.
TF는 그냥 이름만 존재하는 일종의 사내 실험실 같았다. 정해진 업무는 없었다. 구성원은 단 네 명, 사원 2명, 대리 1명, 팀장 1명이었다. 직급은 있었지만 모두가 직접 기획하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토론했다. 규정이나 가이드가 없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기회였다.
"한국에서의 MCN, CJ가 시작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즈음, 우리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멀티 채널 네트워크MCN'라는 구조가 태동하고 있었다. 풀스크린, 콜랩, 메이커스스튜디오스, 어썸니스TV 등. 현재의 한국 내 MCN을 모두 합쳐도 당시의 이들보다 규모가 작다.

(사진, 서울열차는 영화 '설국열차'의 패러디물)
2013년 7월 DIA TV의 전신 격인 '크리에이터 그룹'이 만들어졌을 당시, 참가한 사람들은 그냥 열심히 일했다. 목표도, 기준도, 공식도 없었다. 물론 직급은 있었지만 그룹 참여자 모두는 실무자였다. 그래서 매일 채널을 직접 뒤적이고, 구글에서 검색해가며 영입할 대상을 탐색했다. 통합 시트를 만들어 각자 조사한 내용들을 기록했다. 구독자수, 카테고리, 눈에 띄는 특이사항 등까지를.
초창기의 영입은 CJ ENM의 바램이자 멀티 채널 네트워크MCN(엠넷, tvN, 온스타일, 온게임넷 등)에 소속되는 크리에이터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영입은 시작했는데, 정해진 전략은 약했다. 크리에이터 계약서도 매번 새로 만들었다. 당시 법무팀 담당자도 매우 어려워했을 정도로 우리는 새로운 표준을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 담당자이기 이전에 평가를 받는 직장인들이었다. 상호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표면적인 성과와 평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신경쓰고 있었다.

(사진, 판의 조각들)
처음엔 진심이었고, 그 진심으로 구조를 세웠다고 믿었지만, 진심은 너무 쉽게 잊혀졌다. 그 시절, 많이 탄생했던 MCN이 같은 방식으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많이 이동했지만, 또한 다른 곳을 떠나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서로에게 미사일을 날리는 상황이었지만 목표물에 적중하는 것도 아니었다.
DIA TV 5년 차 시절, 저자는 실무보다는 국내 사업을 총괄하는 파트장이 되어 있었다. 대리 직급이었지만 초창기 멤버들이 대부분 떠난 상황에서 책임이 커졌고, 조직의 성장과 함께 콘텐츠 중심에서 점점 관리와 조율, 예산과 수익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 초창기 멤버들은 모두 회사를 떠나 창업을 시작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만의 구조를 설계해 보고 판을 짰다.


(사진, 온웨이즈 로고와 의미)
마침내 2017년 8월 18일, 온웨이즈DNWAYS를 설립했다. 1인 기업 온웨이즈의 첫 가족은 진짜 가족이었다. 큰 제조업체의 해외 영업을 담당하던 여동생이 이직을 고민하던 중 콘텐츠 비즈니스를 배우겠다며 1인 기업에 합류했다. 1인실 소호사무실에서 2인실로 확장했다. 창업 후 한 달, 두 달 이어지며 수입이 전혀 없어서 불안감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이 대목에서 나의 과거 시절이 떠올랐다. IMF 사태가 국내 기업에 휘몰아칠 때 임원으로 재직하던 나 또한 침몰하는 회사에서 강제 해고된 후 내가 배워 알고 있는 경영과 회사 관리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창업을 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컨설팅 의뢰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제대로 된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와는 큰 비용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비록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갖춘 나같은 작은 회사는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효자손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전업투자로 방향을 틀어 투자전문회사로 성장시켰다. 콘텐츠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크리에이터에서 창업자로 변신한 저자의 초기 불안감이 충분히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저자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비상 탈출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주 프로젝트는 지자체와 닿아있는 제조사의 마케팅이었다. 일을 의뢰한 고객사 대표는 "우리 제품을 SNS에 맞게 영상을 만들어주고 마케팅해 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미 회사 구성원 두 사람이 남매 사이임을 감지한 듯 '믿을 만하다'는 말까지 했다.
이후 다행스럽게 어느 정도 수익이 발생함에 따라 여동생의 근로계약도 정상적으로 체결하고 소수 정예로 새로운 직원도 채용했다. 과거 DIA TV 시절 친하게 지냈던 크리에이터들이 온웨이즈에 합류하면서 회사의 모습이 제대로 갖추어졌다. 사람 중심의 조직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적용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진, 크리에이터를 위한 회고록)
결국에는 '사람'이다
UCC 크리에이터로 시작했던 저자는 이후 기획자가 되었고, 매니저가 되었으며, 사업가로서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이 스타트업이 피인수되어 다시 실무자로 돌아와 새로운 구조를 고민하고 있다. 이 판을 떠나지 않고 새로운 구조를 계속 짜서 사람을 지키고, 크리에이터의 감정을 존중하며, 브랜드와 팬 그리고 실무자 모두가 오래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할 생각이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하는 이 책은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자의 회고이자 나름의 응답인 셈이다. 콘텐츠 비즈니스를 꿈꾸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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