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를 위한 롤모델 유일한 이야기 -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은 유일한의 도전하는 삶과 아름다운 나눔 꿈결 롤모델 시리즈 3
정혁준 지음 / 꿈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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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유일한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있었습니다. 기업가 정신으로 불리는 '앙트레프레너십'은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말은 '시도하다' 또는 '모험하다'는 뜻입니다. 기업가 정신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창업정신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 정혁준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한 기업가

 

저자 정혁준은 <한겨레>기자로 디지털콘텐츠 팀장을 맡고 있다. <한겨레21>경제팀장,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미국 조지아대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미국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신생 기업이었을 당시의 시장 진입 전략과 포지셔닝 전략을 분석했다. 이들이 찾은 셀링 포인트와 잠재 수요를 폭발시킨 마케팅 전략 역시 탐구했다.

 

 

 

그는 소설처럼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경제경영 관련 책을

 

 

 

 

 

 

 

 

 

 

 

 

 

 

 

 

 

 

 

 

 

 

 

 


1925년, 유일한은 21년 만에 가족을 찾았다. 아버지가 환갑을 맞는 해였다. 그의 가족은 여전히 북간도에 살고 있었다. 현재 교제 중인 호미리와의 결혼을 승락받고 싶었다. 일본 나카사키에서 경성으로 오는 배를 탈 때부터 주위를 맴돌던 조선총독부 경무국 고등계 형사에게 반강제로 이끌려 취조까지 당하기도 했다.

 

20여 년 동안 영어를 사용해 온 유일한 더듬거리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콩나물 장사를 한다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숙주나물 통조림 사업이라고 설명을 해도 그게 그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긴 시간이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각의 차이까지 크게 만들었다. 나이 서른의 아들에게 어머니가 결혼 얘기를 떠나자 이때다 싶어 호미리의 사진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다.

 

"호미리라는 여자입니다. 미국에서 동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소아과 의사가 될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동양인 여성이라는 말에 크게 반대하지 않고 결혼을 허락해 주었다.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서른, 호미리는 스물아홉이었다. 유일한은 사업을 정리해 조극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아내에게 전했고 처음엔 충격을 받은 듯했으나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그녀도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는 교육보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건강한 민족만이 나라를 되찾고 번영시킬 수 있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이 건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의약품을 공급해야 한다'

 

 

 

'기업은 사회의 것'이다

 

"진통 효과를 내려면 어느 정도 마약 성분이 들어가야 하는데, 다른 회사에 비해 우리 제품은 너무 약한 편입니다. 우리 회사도 진통 효과를 높일 마약 성분을 넣는 게......."

 

"마약 장사를 하자고? 고작 한다는 말이 마약 장사라니 실망스럽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회사를 시작했나? 병으로 고생하는 동포를 돕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닌가. 창업 정신을 저버리는 직원이라면 더는 같이 일할 수 없네. 사표를 쓰게"

 

그는 유한양행을 설립한 지 10여 년 만에 77 명의 사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시켜 만주, 중국, 일본 지역으로 판매망을 넓히고 대만과 베트남까지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런데, 만주 출장에서 돌아온 전항섭 전무가 이렇게 만주 상황을 보고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여기서 그의 철저한 기업관을 엿볼 수 있다. 즉 '기업은 사회의 것' 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것이다.

 

 

대한상의 초대 회장을 맡다

 

맹호군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대일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미국에 살고 있던 한인들이 전선에 참여하기 위해 설립한 비정규 군사 조직이었다. 1942년 8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들은 힘차게 군가를 부르며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시청으로 행진햇다. 유일한은 열병식에서 임정 요인이 보내온 축사를 낭독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해방 후 한국 정치 상황이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져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기에 그는 홀로 귀국길에 올랐다. 1946년 7월이었다. 사장직에 복귀하며 유한양행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미국 유학파라서 미군정 간부들과도 가까워 곧 정치에 나설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는 결코흔들림 없이 기업 경영에만 몰두할 생각이었다.

 

한창 사업에 박차를 가할 무렵, 그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대한상의에서 회장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 단체는 상공업 발전에 기여하고 상공인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부터 경영을 해 론 인물은 대부분 친일 이력이 있어서 국민들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가 없으므로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거절했지만  끈질긴 부탁에 그는 결국 이를 수락했다.

 

그러자 누가 유한양행의 새로운 사장이 되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그가 미국에 나가 있는 동안 동생 유명한이 회사를 이끌었으므로 가장 유력하다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유일한과 헤이스팅스 한인소년병학교 동기인 구영숙이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소아과 의사였다. 

 

당시로서는 창업자와 친인척 관계가 아닌 사람에게 사장직을 맡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구영숙은 미국 에모리대학을 졸업한 의학박사로 경영 이력이 없었다. 유일한이 구영숙을 선택한 것은 그의 역량과 민족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이미 유일한은 오래전부터 구영숙을 지켜본 결과 성품이 곧고 강직하며 패기와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다 

유일한의 유품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 몇 가지와 구두 두 켤레, 양복 세 벌이 전부였다. 유일한이 세상을 떠나고 한 달 뒤인 1971년 4월 8일, 그의 유언장이 세상에 공개됐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교육과 사회를 위해 써 달라. 딸 유재라에게는 묘지 주변 땅 5천 평을 주어 유한동산을 꾸미되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드도록 울타리를 치지 마라. 우리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죽어서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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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불화 명작강의 - 우리가 꼭 한 번 봐야 할 국보급 베스트 10
강소연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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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불교미술이라는 용어보다는 '불교장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불교에서는 사원이나 법당을 꾸미는 것을 '장엄'이라고 합니다. 보통 유리가 흔히 쓰는 '장식'한다는 말과 유사합니다만, 장엄이라는 용어에는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유형과 무형의 덕행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고운 마음으로 향이나 촛불을 하나 피워도 그것은 세상을 장엄한 것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참 중요시합니다. 우리는 물질의 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이면의 마음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 '서문' 중에서

 

 

국내 최고의 불교미술을 소개하다

 

저자 강소연은 유년시절을 천년고도 경주에서, 청년기를 미국 보스톤 캠브리지에서 보냈으며,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영국 런던대학(SOAS) Art & Archeology Dept., 서울대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등을 거치며 미술사를 공부했다. 그녀는 교실 안에서 만나는 현학적인 문자의 세계보다 순수한 작품의 세계 속에서 그 예술혼과 마음으로 만나야 그것이 글이 되고, 힘이 되고, 또 삶이 된다고 여긴다.

 

원로미술사학자 강우방 선생의 여식인 그녀는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동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만 국립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의 장학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및 홍익대학교 겸

 

 

 

 

무위사 <아미타삼존도>(1476년, 토벽에 채색, 270x210㎝, 국보 제313호)

 
조선초기에 완성된 탱화로, 온전한 형태로 국내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고려 화풍'의 명작이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계승하면서 거기에다 새로운 조선적 창조가 가미되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 즉 존상의 배치와 광배의 표현, 배경 처리 등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조선적 표현이 보이는 반면, 세부적 묘사에 있어서는 극세필의 유려함과 화려한 장식적 특징이 살아 있어 고려불화의 귀족적 화풍을 엿볼 수 있다.

 

형식적 특징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화면 가운데의 아미타 부처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서기(瑞氣: 상서로운 기운)가 포착된다. 서기는 먼저 다채로운 문양의 광배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지극히 화려한 층층의 광배로도 모자라서, 급기야 화면의 바탕을 가득 채우며 뭉게뭉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에 반해, 고려불화의 광배 표현은 투명하다. 불성에서 퍼져 나오는 오묘한 적멸의 빛을 금선의 테두리만으로 표현했다. 불성은 인격화된 모습의 부처님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 원형적인 모습에 충실하여 여의주如意珠 또는 보주寶珠의 상징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162여 점의 고려불화는 대부분 국외로 유출된 상황이라 국내에서 고려불화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에서 이 불화는 이 땅의 유일한 후불벽화後佛壁畵이자 고려불화의 비법을 간직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명장의 마지막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참고로 후불벽화란 법당 안의 불단에 봉안한 부처와 보살의 조각상 뒷벽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뜻이다.

 

 

 

해인사 <영산회상도>(석가모니후불탱, 1729년, 비단에 채색, 240x229.5㎝, 보물 제1273호)

 
해인사의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에 봉안된 대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을 영산회상도라고 하는데, 여타 영산회상도가 평면적인 화면 구도를 보이는데 반해 이 작품은 원근법을 이용해 독특한 공간감을 연출함으로써 조선시대에 제작된 많은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중에서 가히 압권이다. 부처님 몸 전체에서 섬광처럼 뿜어져 나오는 '광명光明(지혜와 자비의 빛)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불화에서 주의해 보아야 할 가장 핵심적 표현은 '광명'이다. 이는 무명과 번뇌를 비추는 지혜와 자비의 빛이다. 이 지혜와 자비의 빛은 중생을 일깨우는 불성佛性이다. 불성을 의인화한 부처님과 보살님의 몸에서는 항상 청정한 광명이 발산된다. 이 광명을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광배로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는 광명의 표현이 유난히 상서롭다. 둥근 광배뿐만 아니라, 섬광과 같은 빛줄기의 방사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의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줄기들이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을 펼친 장을 영산회상이라고 한다. 당시 설법이 열린 장소는 왕사성 기사굴산인데, 왕사성은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였으며 이곳에서 동북방향으로 약 3km 떨어진 지점에 기사굴산이 있었다. 이 산의 봉우리는 신령스러운 독수리 머리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영취산靈鷲山이 된다. 부처님의 대표적 설법 장소로 이곳에서 <법화경>을 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법화경>의 법화칠유法華七喩

 

화택火宅유~ 불이 난 집의 아이를 구출하려고 장난감이 밖에 있다고 유인한다

궁자窮子유~ 가출한 자식이 정신적으로 성장할 때까지 아버지가 기다려준다

약초藥草유~ 평등한 비가 다양한 약초를 성장시키듯 수행자는 깨달음을 통해 성장한다

화성化城유~ 먼 길을 향해 떠나는 부하들에게 중도에 가상의 성으로 피곤함을 달랜다

의주衣珠유~ 만취한 사람은 친한 친구가 준 보주를 모르고 평생 곤궁하게 떠돈다

계주髻珠유~ 전륜성왕은 뛰어난 공을 세운 이에게 상투 속의 보주를 넘겨준다

의자醫子유~ 독을 마신 아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해독약을 마신다

 

 

 

동화사 <극락구품도>(1841년, 비단에 채색, 170.5x163㎝,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8호)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에 극락세계 풍경을 기술한 <관무량수경>을 근거로 다수의 극락 그림(관경변상도 또는 관경16변상도)이 제작되었다. 이후 억불정책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한동안 맥이 끊겼던 것이 조선후기에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동화사 <극락구품도>이다. 그림 상단의 아미타삼존, 중단의 왕생 연못, 하단의 거대한 일원상과 벽련대 배치가 다른 시대의 극락 그림과 구별되는 큰 특징이다.

 

경전에선 부처님의 몸을 묘사할 때 흔히 자마금색, 자마황금, 염부단금 등으로 표현한다. 자금, 자마금 또는 자마황금은 상서로운 자색紫色이 감도는 최고 품질의 황금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빛깔이다. 황금의 품질은 총 9급으로 나뉘는데 그중 최상급이 자마금이다. 주로 인도의 염부나무 숲속에 흐르는 강바닥에서 채취되는 사금이 자마금에 해당하여 이를 염부단금閻浮檀金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최고 최상의 빛깔에 아미타 부처님을 비유하고 있다.

 

 

용문사 <화장찰해도>(조선후기, 마본에 채색, 230×297㎝)

 
현존하는 수많은 불화와 달리 이례적인 도상을 보이는 작품으로, 추상적인 진리의 세계를 직관적이고 대담하게 표현했다. 거대한 원형 공간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파격적인 구도를 선보인다. 이는 우주의 만물이 시공을 초월해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며, 그 속에서 생성과 변화와 소멸을 거듭한다는 <화엄경>속 우주관을 표현한 것이다.

 

본 불화에서는 가장 외곽의 무지개색 원은 10개의 세부 층으로 구성되었다. 빨강, 파랑, 녹색, 황색 등으로 보이는 원의 레이어를 들여다보면, 각 레이어마다 다시 다채로운 색의 스팩트럼이 펼쳐진다. 비슷한 톤의 조금씩 다른 색깔들을 순차적으로 사용하여 강렬한 에너지가 확장되는 듯한 효과를 창출했다.

 

 

 

쌍계사 <노사나불도>(1799년, 마본에 채색, 1302×594㎝, 보물 제1695호)

 
높이 13미터가 넘는 거대한 괘불이다. 매년 한 차례 쌍계사에서 열리는 보살계 수계 대법회 때 대중에게 공개되는데, 장대함 속에 화려함과 섬려한 맛이 살아 있다. 양쪽 손목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진 천의 자락에 꽃과 잎사귀, 열매와 보주 등이 피어나는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다. 전체적으로 색조가 밝고 투명해 화사한 느낌을 준다.

 

기존의 괘불 관련 논문이나 책자를 보면, 이같이 많은 장식을 한 존상을 보살님이라고 잘못 칭하는 경우가 많다.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보살 등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분명한 오류다. 물론 <노사나불도>의 존상은 보관을 쓰고 긴 보발을 늘어뜨리고 천의를 걸치고 영락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는 틀림없는 보살의 형식적 요소들이다. 반면 부처님은 법의法衣 하나만 정갈하게 걸치고 나발에 육계를 갖춘다. 부처임은 보관이라든지 장신구 등은 일체 하지 않음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존상은 어째서 부처님일까?

 

이처럼 부처이지만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잇는 특별한 존상을 노사나불(또는 노사나 부처님)이라고 말한다. 여타 보살과 구분하는 요령은 수인手印을 보는 것이다. 노사나불은 설법을 하고 있다. 다시 본 작품을 보자. 양손 손가락의 엄지와 장지를 동그랗게 말아 살짝 맞대고 있는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노사나불은 '보살의 모습으로 설법을 하고 있는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다.

 

 

 

법주사 <팔상도>(도솔래의상 부분, 1897년, 비단에 채색, 191×95.5㎝)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을 여덟 장면으로 추려 그린 것을 팔상도라고 한다. 팔상도는 주로 대웅전이나 영산전에 봉안되는데, 특이하게도 법주사에는 '팔상전'이라는 팔상도 전용 목탑 건축물이 존재한다. 법주사의 팔상도와 팔상전은, 그 자체로 불화 전통에 있어 팔상도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다양한 장면들이 한 화폭에 어우러져 있지만, 시선은 마야부인과 코끼리 탄 보살님의 두 장면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마야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코끼리 탄 보살님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 꿈이겠지만, 코끼리 탄 보살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야부인이 있는 속세가 꿈이다. 법계의 장면과 속계의 장면이 연결되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태하는 생생한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연출된다.

 

팔상도의 감상 포인트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

룸비니 동산에서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

네 개의 정문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

성벽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

히말라야 산에서 수도하는 상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상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

 

 

운흥사 <관세음보살도>(1730년, 마본에 채색, 292×206㎝, 보물 제1694호)

 
조선시대 불화의 특징인 녹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조선후기 관세음보살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18세기 전반 '붓의 신선'이라 불리며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불화를 담당했던 의겸 스님 작품으로 스님의 높은 정신적, 예술적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동시대 다른 작품들이 다채로운 채색을 활용한 반면, 이 작품은 채색의 강약을 과감히 조절하고 산수화 같은 배경 처리로 현실적 공간감을 부여했다.

 

대웅전 완공 불사와 더불어 거행될 대규모의 영산재에 대비하여 이때를 기려 제작된 일련의 불화들은 법당 장엄이라는 기본적인 기능과 더불어, 전란 때 희생된 승병들의 영가추모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중에서도 고아한 품격을 자랑하는 <관세음보살도>를 소개한다.

 

이 불화는 조선후기에 그려진 수많은 관세음보살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통 조선후기 작품들은 색채가 진하여 심지어 탁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시대의 전반적인 경향이 그러한데, 주로 녹색과 붉은색이 점점 진해져서 그림 전체가 농후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선 조선시대의 특징인 녹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보인다.

 

 

갑사 <삼신불도>(1650년, 마본에 채색, 1086×841m, 국보 제298호)


임진왜란이 끝난 뒤 희생된 뭇 영혼들을 달래주기 위한 대규모 공동 천도재 때 사용할 목적으로 16세기 전반부터 초대형 괘불이 제작되었다. 갑사의 삼신불도 역시 그중 하나이다. 대승불교의 회통적 세계관을 구현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0여 년 전 개산대제開山大齋와 함께 거행된 영규대사 추모재 때 펼친 이후 현재는 보수 중이며, 언제 다시 펼칠지 기약이 없다고 한다.

 

높이 12.47미터, 너비는 9.49미터로 장정 30명 이상 붙어야 움직일 수 있는 이 초대형 괘불은 전란 때 사망한 전사자들을 비롯해 바다와 육지에서 희생된 뭇 영혼들을 위한 대규모 공동 천도재 때 사용된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수천 수백 명의 영가들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불단이 필요했다.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끊임없이 사찰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에 법당은 역부족이었다. 이에 야외에 불단이 차려지고 십 리 밖 멀리에서도 볼 수 있는 초대형 크기의 괘불이 허공에 걸리게 되었다. 이처럼 법당이 좁아 대중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때, 야외에 단을 차려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직지사 <삼불회도>(약사불도,석가모니불도,아미타불도,1744년,마본에 채색,보물 제670호)

대웅전 불존 조각상 뒤의 후불탱으로 세 작품이 하나의 세트로 제작된 것이다. 전체 구도는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하는 영산회상이 있고, 동쪽으로 약사불의 동방유리광정토와 서쪽으로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도가 위치해 있다. 이 세 부처(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는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현실에서 민중들의 가장 큰 신앙 대상이었는데, 이러한 현실적 요구가 조형으로 구현된 것이다.

 

보통 법당에 걸리는 후불탱은 앞의 조각상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앞의 불상과 겹쳐져서 후불탱의 부처님이 상반신만 조금 보이거나 아예 안보이기도 한다. 또 공간이 비좁아서 후불탱과 조각상이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불단의 옆이나 조각상의 뒷면을 기웃거려야 겨우 후불탱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직지사 대웅전의 경우에는 후불탱과 조각상 불존들의 전모가 십분 드러나게끔 배치하였다.

 

 

안양암 <지장시왕도>(1930년, 비단에 채색, 407×238cm,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6호)


괘불의 주제는 노사나불이거나 석가모니불인 경우가 많고, 그 구성도 간단한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부처가 아닌 지장보살을 주제로 삼고, 한 화면에 여러 시왕들과 지옥의 풍경 등장시킨 매우 독특하고 보기 드문 구성의 작품이다. 도상의 본연적인 의미를 십분 살리면서도, 흥미로운 회화성과 과감한 표현력을 내뿜는 창의적 작품이다.

 

무간지옥에서 무간無間은 '사이가 없다'라는 뜻인데, 고통이 쉬지 않고 계속되어 간극이 없다는 의미이다. 산스크리트 아비치(Avici)의 어원을 갖고 있는데 이를 음역하여 아비지옥이라고도 칭한다. 규환지옥叫喚地獄은 고통스러워서 울부짖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지옥을 말한다.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합쳐놓은 것 같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상을 일컬어 아비규환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쇠솥에는 쇳물이 펄펄 끓고 있고, 야차는 차례로 대기하고 있는 중생들을 한 명씩 집어 들어 거꾸로 처넣고 있다. 여기에 떨어지면 뜨거운 쇳물에 삶기는 고통을 받게 된다.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거나, 불을 질러 많은 생명을 죽이거나, 불에 태워 살생을 하거나 그 고기를 먹은 자가 가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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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전 - 여성의 삶을 말하다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유향 지음, 김지선 옮김 / 동아일보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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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전(列女傳)>은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편찬한 여성 전기집으로 총 104조목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유향은 경학가로서 오경五經에 통달했는데, <시경詩經>. <서경書經>, <춘추春秋>, <좌전左傳>, <국어國語>, <전국책戰國策>, <사기史記> 등 여러 서적을 두루 참조해, 여성과 관련한 사적을 기록한 <열녀전>을 편찬했다. <열녀전>은 제목 그대로 여러 여성의 행적을 기록한 열전列傳으로, 절개를 지킨 열녀烈女의 행적을 선양하기 위해 쓴 <열녀전烈女傳>과는 다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옛날 여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유향은 여성의 유형을 일곱 가지로 나누었다. 자식을 잘 키운 여셩, 현명한 여성, 인자하고 지혜로운 여성, 지조가 곧고 순종적인 여성, 절개와 도리를 지키는 여성,  언변이 뛰어나고 사리에 통당한 여성, 나라를 망하게 한 여성 등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해 이를 <모의전母儀傳>, <현명전賢明傳>, <인지전仁智前>, <정순전貞順傳>, <절의전節義傳>, <변통전辯通傳>, <얼폐전孼嬖傳> 순으로 담아냈다.

 

책 안에 수록된 여성의 신분도 다양하다. 즉 신화적 인물이나 왕후, 재상, 장군, 학자의 어머니 혹은 아내는 물론, 평민, 유모, 시녀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의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삶을 풍부하게 담고 있으며, 최초로 여성 중심으로 서술한 역사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얼굴도 모른 채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몹쓸 병에 걸려 있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가 과부가 되기도 하며, 전쟁에서 나라가 패하자 어쩔 수 없이 적국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모시던 공자를 살리기 위해 친자식을 희생시킨 어머니, 죽음을 무릅쓰고 충정을 지킨 아내의 시녀, 남편이 자신을 떠났음에도 의리를 지키며 시어머니를 봉양한 며느리 등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단지 규방 안에만 머무르지 않은 여성들도 있다. 소위 '어려서는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어서는 자식을 따른다'는 삼종三從의 예禮를 무너뜨리고 결단력 있는 행동을 내보이기도 했다. 비록 상대가 왕이라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합리한 처사를 당하면 잘못된 정치를 비판했고, 부당한 판결에 조목조목 따지며 문제를 해결했다. 또 신랄한 비판으로 오만방자했던 남편을 변하게 만들거나, 진퇴양난의 갈림길에서 과감한 행동으로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낸 현명한 아내도 있었다.

 

이 책은 남성 학자의 시각에 입각하여 편찬된 여성 전기이므로 당시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기준이 자연스레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 책이 때로는 지배계급이 여성의 행동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왕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자신의 코를 베어버린 과부나, 규방의 예를 따라야 한다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여인 이야기는 다소 불편할 정도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삶이 들어 있다.

 

 

 

 

며느리를 재가再嫁시키다

 

위衛나라 정공定公의 부인 정강定姜은 아들이 장가들어 자식도 없이 죽자 그 며느리를 재가기켰다. 그녀는 며느리가 3년 상을 치르고 나자, 재가를 보내며 직접 교외까지 나가서 전송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아끼는 정과 서러운 마음을 담아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어 읊었다.

 

제비들은 날아올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누이 시집가는데 멀리 교외에서 전송하고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눈물이 비 오듯 흐르네.

 

<열녀전>의 시작은 <모의전母儀傳>이다. 즉 어머니로서의 모범을 보인 여인을 다루고 있다. 여성의 역할 중 가장 주요하게 본 부분이 바로 '어머니'였다. 삼종三從의 예를 깨뜨리고 적극적으로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인 어머니를 소개하고 있다. 정강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이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자 며느리에게 수절을 강요하지 않고 재가를 시켰다. 이는 진정으로 여성을 이해하고 너그러운 심성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결단력이었다.

 

 

남편을 왕으로 만들다

 

"현명한 자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특별히 스승이나 벗만 서로 갈고닦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배필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 유향

 

제강齊姜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딸이자,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부인이다. 문공의 아버지 헌공獻公은 여희驪姬를 빈으로 맞아들였다. 권력을 잡은 여희는 유능한 태자 신생을 모함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중이 공자(문공)는 숙부 호언와 함께 북방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망명길로 가던 중 제나라에 이르자  제나라 환공이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게 하고 극진한 대접을 하며 이곳에 머무르게 했다. 

 

한편, 헌공이 죽자 진나라의 내부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동안 권력을 누렸던 여희는 백성들로부터 증오를 받고 있었다. 이에 반기를 든 이극 등이 여희 세력을 축출하고 중이에게 귀국해서 나라의 적통을 이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중이는 편안한 제나라에 눌러 앉고 싶어 했다. 이를 간파한 숙부는 진나라로 데려가려고 수행원들과 모의를 했다.

 

때마침 누에를 치는 아낙이 그 모의를 엿듣고 제강에게 알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강은 그 아낙의 입을 막고자 살해한 다음 공자에게 수행원들을 따라가서 진나라의 보전에 힘쓰리고 재촉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그녀는 숙부와 모의해서 중이를 술에 취하게 만든 후 몰래 수레에 태워 보냈다. 결국 길을 떠난 중이는 여러 나라를 거쳐 진秦나라로 들어갔다. 진나라 목공穆公은 군대를 호위해 중이가 무사히 진나라로 입국하도록 도왔다. 이후 중이는 왕으로 옹립되자 제강을 부인으로 맞아들였고, 마침내 천하를 차지해 맹주盟主가 되었다.

 

 

왕에게 남녀유별의 도리를 설파하다

 

위魏나라 곡옥曲沃에 사는 대부 여이如耳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秦나라가 위나라 공자 정政을 태자로 세우자, 위나라 애왕哀王은 사자를 보내 태자에게 비를 구해주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왕은 그만 욕심이 생겻다. 즉 자신의 후궁으로 삼고자 했다. 이에 노파는 아들 여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이 부자간의 유별을 어지럽히는데 어째서 바로잡지 않느냐? 지금 위나라는 강하지 않은데, 왕까지 도리를 어기고 있으니 어떻게 나라를 보전하겠느냐? 네가 간언하지 않으면 위나라는 반드시 재앙이 일어날 것이고, 재앙이 일어나면 필경 우리 집까지 미칠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이를 간언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제나라 사신으로 떠나게 되자, 노파는 궁궐의 문을 두드려 왕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마침내 대면한 노파는 태자의 비를 왕의 후궁으로 삼으려 하는 일은 정절을 지켜야 할 여인의 도리를 훼손하고, 남녀 간의 유별을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당장 멈추라고 간언한다. 그래도 왕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었나 보다. 왕이 말했다.

 

"그렇군, 과인이 미처 몰랐소"

 

 

 

죽은 남편에 대한 절개를 지키다

 

위衛나라 선공宣公의 부인은 제齊나라 왕의 딸이다. 선공에게 시집가던 도중 성문에 이르렀는데, 불행하게도 선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함께 수행했던 보모가 제나라로 귀국해도 무방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위나라에 입국해 삼년상을 지켰다. 이후 선공의 동생이 왕위에 올라 그녀에게 함께 살자고 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이 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위나라 왕은 제나라에 있는 그녀의 형제에게 전통을 보내어 이를 설득해달라고 했다. 이에 친정의 형제들은 모두 지금의 왕을 따를 것을 종용했다. 끝내 그녀는 "오직 부부만이 한 살림을 찰릴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이런 시를 지었다.

 

내 마음 돌이 아니니 굴릴 수 없고,

내 마음 돗자리 아니니 말 수도 없네. 

 

재난을 당하고 궁색한 처지에 놓여도 가엾게 여기지 않고, 고되고 치욕스러워도 구차하지 않은 연후에야 스스로 도리를 실현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뜻을 잃지 않아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자식을 희생해 효공을 살려내다

 

효의보孝義保는 노魯나라 효공 칭稱의 보모이자 장臧씨의 과부이다. 효공의 아버지 무공武公은 주周나라 선왕宣王을 알현하러 갔는데, 이 자리에서 선왕이 차남인 희를 노나라 태자로 삼았다. 그가 바로 의공懿公이다. 효공은 당시 공자 칭으로 불렸는데, 나이가 가장 어렸다. 이에 의보는 자신의 이들과 함께 궁에 입궁해 공자 칭을 키웠다. 그런데, 무공의 장남 괄의 아들 백어가 난을 일으켜 의공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공자 칭을 죽이려고 했다.

 

이때 보모 의보는 자신의 아들에게 칭의 옷을 입히고 칭의 잠자리에 누워 있게 했다. 백어는 의보의 아들을 죽여 후환을 없앴다. 한편, 의보는 칭을 안고 궁 밖으로 탈출해 멀리 도망갔다. 11년이 지나 노나라 대부들이 칭이 생존해 있음을 알고 백어를 죽이고 칭을 새로 왕으로 추대했다. 바로 효공이다.

 

 

독이 든 술을 엎어 주인에게 충성하다

 

주周나라 주충첩은 주나라 대부의 아내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시녀였다. 대부는 뱌슬살이를 한 지 2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내는 다른 사내와 사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는 남편를 독살할 계획을 짰다. 이를 눈치챈 시녀는 독이 든 술을 남편에게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인의 행동을 고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척하며 술병을 엎질렀던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대부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하자 이렇게 말했다.

 

"주인이 욕되게 죽었고 저 혼자 살아남았으니 이는 무례無禮이고, 주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역례逆禮입니다. 예의가 없거나 예를 거스르는 일 가운데 하나만 범해도 충분히 잘못인데, 지금 두 가지를 모두 저질러야 한다면 앞으로 고개를 들고 살 수 없을 겁니다"

 

"충직한 시녀는 어질고 신의가 도타웠다"

 

 

걸왕과 말희 

 

 

여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하다

 

이 책의 마지막 편은 <얼폐전>이다. 이는 음란하고 사악하며 나라를 망친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타의 모범이 되는 사례를 책에 담았음에도 이처럼 부정적인 행실을 굳이 보여준 이유는 아마도 반면교사의 교육 효과를 기대한 듯하다. 얼은 '재앙'이라는 뜻이고, 폐는 '총애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왕의 총애를 받은 여인은 화근이자 악녀惡女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특정 인물을 총애하다 보면 배은망덕하게도 큰 사고를 치고 만다. 탄핵받은 대통령이 이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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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생각법 - 세계 최고를 만드는 유대인의 지혜
류종렬 지음 / 미다스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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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대인 천재들의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유대인'과 '천재'의 중요성은 비슷하다. 천재라는 말에 의문이 생긴다면 해당 분야의 세계 1인자로 바꿔서 이해하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자신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정상에 선 사람들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천재들의 특별함을 살펴본다

천재에 대한 연상어로 우리들은 대체로 '유대인'을 떠올린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이후 최고의 천재로 불리고,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역시 19세기 이래 우리 인류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이며, 마크 저크버그나 래리 페이지는 세계 최고의 젊은 부자들이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당대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완전한 유대인은 아니다. 법적인 유대인이라면 어머니가 유대인이며, 유대교를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창업주 마크 저크버그는 뉴욕에서 출생, 동유럽계 유대인 부모로부터 어릴 적엔 유대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나 지금은 개종했으며, 마르크스는 아예 종교 자체를 거부했고, 오라클의 창업주 래리 엘리슨은 유대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 문화에 푹 빠진 인물이다.

 

아무튼 이 책은 천재의 생각법을 주제로 삼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천재들은 유대인으로서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어린 시절부터 유대식 교육을 받았고, 교육열이 뜨거운 유대인 부모를 가졌고, 유대인 스타일의 전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한다. 그래서 이들의 특별함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 류종열은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며 스무 살부터 10여 년 동안 글을 많이 썼지만 '문학적 천재성'이 부족함을 느껴 서른 살에 방향을 바꾸어 출판사 편집장으로 취직했다. 3년의 편집장 생활을 마치고 20년 가량 펴낸이를 거쳐 다시 지은이로 나섰다. 이 책은 그의 공식적인 첫 번째 책이다. 유대인 천재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나 결국 어떻게 세계 최고로 만들어져 가는지, 그 변화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천재란 집단적 네트워크의 용광로 속에서 생각의 반복적이고 창조적인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힌다.

 

 

 

 

천재의 특성

 


1. 남과 다르다.
2. 팀을 짜서 집단적 네트워크를 공유한다.
3. 오랜 시간을 버텨서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

 

세 가지 가운데 2와 3이 없으면 비운의 천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3은 있는데 1과 2가 없으면 천재라 하지 않고 자수성가해서 무언가 이룩한 정도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셋 중에 하나라도 현저히 부족하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천재성'이 소멸될 수 있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정보를 지배하는 천재, 상상을 지배하는 천재, 을 지배하는 천재, 언어를 지배하는 천재, 자신을 지배하는 천재 등의 순으로 그들의 생각법을 소개한다. 각각의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특성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유대인이다. 이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보를 선점하고 지혜를 장악하라

 

"양쪽 귀를 거리로 기울여라"

- 유대 격언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정보를 장악한 사람들이 보다 높은 위치에서 권력은 물론 돈을 지배해왔다. 즉 아무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초로 그 자리를 선점先占한 자가 이 세상을 지배해온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접어들어 정보는 더욱 고도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보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가공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이젠 승패가 결정된다.

 

이처럼 정보를 장악한 사람들은 최고의 지식인이자 지혜로운 사람이 되며, 결국엔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다라잡은 구글, 모든 사람을 연결한 마크 저크버그, 미래의 정보고속도로를 점령한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중요한 정보를 장악해 현 지구촌의 최대 부자 가문 로스차일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상의 현실화로 새로운 세계를 꿈꿔라

 

"너를 둘러싼 세계애 '왜'라고 물어라"

- 스티븐 스필버그

 

상상 속의 일을 실현해 보려는 열망이야말로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천재들은 상상을 지배한다. 상상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을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게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실천한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1946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스티븐 스필버그, 그의 외할아버지는 정통 유대교도로 언제나 턱수염을 길렀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에 동네에서 크리스마스 때 트리를 장식하지 않는 유일한 집이 바로 그의 집이었다. 그래서 십대 시절 그는 동네 친구로부터 많은 조롱을 받고 자랐다. 그 시절 그의 유일한 위안은 아마도 12살 때 아버지가 선물로 준 카메라였다. 그는 13살에 영화를 만들고, 16살엔 동네극장에서 상영까지 한 영화천재였다.

 

 

 

돈의 본질을 파악하고 돈을 지배하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돈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 유대 격언

 

인류의 역사에 돈이 등장한 이래, 돈의 생리를 잘아는 사람이 세계를 이끌어왔다. 돈은 사물의 경제적 가치를 나타내는 척도이자, 상품을 교환하는 수단이며, 재산 축적의 대상이었다. 물물 교환에서부터 종이로 만들어진 화폐가 등장하기까지, 돈의 흐름이 곧 세계의 흐름이었다. 천재들은 인류 역사상 경제 활동이 시작된 이래 언제나 그 상층부에 있었다. 그들은 돈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1930년, 헝거리의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난 조지 소로스. 그의 집안은 본디 슈바르츠라는 성을 가진 유대인 집안이엇다. 당시 휘몰아친 반유대주의 광풍에서 벗어나고자 1936년 그의 아버지가 소로스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1944년, 나치 독일이 헝거리를 점령했을 때, 그는 겨우 14살도 되지 않았는데,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팔며 생존을 보존하다가 17살 때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경제학과 철학을 복수로 전공했다.

 

대학 졸업후 몇 년간 방황을 하다가 뉴욕의 금융계에 입문하여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그러던 그가 1969년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하에 '퀀텀 펀드'를 설립, 독립한다. 이후 수십 년간 그는 국제 환투기의 1인자로 입지를 굳혔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영국 파운드화의 폭락을 예측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한 달 만에 약 1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검은 수요일 사건'이다.

 

 

 

언어를 지배하여 세계를 경영하라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 비트겐슈타인

 

언어는 세계의 실체이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다. 사람이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가 곧 그 사람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세계가 어떤 언어에 의해 작동하느냐가 곧 그 세계의 주인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세계의 언어를 평정한 자가 세계를 다룰 수 있었다.

 

 

2005년, 영국의 학술지 <프로스펙트>는 노암 촘스키를 현존하는 최고의 ㅈ지성인으로 선정했다. 2016년 10월, 그는 '사드 한국 배치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군사화 저지를 위한 미국 태스크포스'라는 제목으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성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즉 미국이 북한 핵실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말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린다.

 

이뿐이 아니라 2016년 5월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아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이렇게 활동하는 그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아마도 살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뉴욕타임스>는 거꾸로 읽는 것이 낫다"라고까지 말했다.

 

현재 미국 MIT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1928년 태어났다. 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히브리어 연구의 권위자였다. 그의부모는 전형적인 유대인들로 그에게 유대인 언어와 문화를 집중적으로 교육시켰다. 그는 두 살에 학교에 입학, 열두 살까지 다녔다. 실험학교였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그는 문학, 교양서적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서적들을 독파했다.

 

열두 살 때 고등학교에 입학, 열세 살에는 여기저기로 여행다니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주요 언론에서 보도되는 정보와 사람들이 알려주는 진실 간의 차이로 인해 충격을 받는다. 어린 그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대신 오직 '정의와 진실'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을 지배하라

 

"올바른 자는 자기의 욕망을 조정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자는 욕망에 조정당한다"

- 탈무드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역사의 선두에 설 수 있었다.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결국 세상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즉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통제하는 사람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천재는 자기 자신을 지배했다. 

 

네델란드의 유대인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피터 드러커, 그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집안은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후부터 인쇄업을 주로 하던 번창한 가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은행가였고, 할머니는 클라라 슈만의 제자로 피아니스트였다. 그의 아버지는 외무성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엿고,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 의학자로 프로이트와 학문적 교류가 있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를 덮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그의 집안은 몰락했다. 집아닝 기울자 그는 학생 시절부터 고학을 해야만 했다. 함부르크에서 대학을 다니며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1929년에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해 금융회사에 근무햇고, 지역 경제지의 기자로도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1935년 런던으로 가서 당시 경제학의 거장 케인즈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1937년 주로 신문에 기고하며 대학 강사로 활동했다. 나치즘과 파시즘 등 전체주의가 등장한 배경을 살피고 히틀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경제인의 종말>(1939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특히, 책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히틀러와 스탈린의 제휴 등 당시로선 생각할 수 없는 예언을 담고 있었는데, 모두 현실로 밝혀지먄서 그의 줏가는 급등했다. 1942년 <산업인의 미래>를 발표한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현대 경영학의 거두로 떠올랐다.

 

 

"결국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경영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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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절벽 - 성공과 행복에 대한 거짓말
미야 토쿠미츠 지음, 김잔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일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근로자'다. 이런 이상적인 근로자는 자기 일을 사랑함으로써 성공과 부를 이뤄낸다. 합리적이고 원만한 의사 결정으로 일에 몰두하는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완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들에게 '부富와 즐거움, 일'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새로운 세대를 현혹했고, 이를 좇아 전력을 다한 사람들은 커다란 희생을 치렀다. - '서문' 중에서

 

 

더 많아진 일에도 불구하고 왜 돈은 멀기만 할까?

 

저자 미야 토쿠미츠는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해 지원하는 미국 국무성의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인 북유럽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비롯해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글을 쓰고 있으며, 정치, 경제, 문화를 다루는 미국의 사회주의 언론지 <자코뱅Jacobin>의 객원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희망 노동'을 앞세워 근로자의 열정을 착취하는 노동 현장의 부조리와 허구성을 고발하고 있다. 일에 대한 열정은 선택이 아닌 강요가 되어 우리를 저임금의 과중한 노동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 실제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 또한 모든 사람의 권리다. 이제는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강요되는 노동의 환상에서 벗어나 '일하지 않을 권리',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주장할 때다.

 

오늘날 이상적인 일이란, 즐거움과 자본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성공의 아이콘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성공을 자기애自己愛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최고의 삶을 살라"고 갈파한다. 식품유통업체 홀푸드의 CEO 존 매케이는 "건전한 시장에서 사랑은 창의적인 경쟁우위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일과 사랑을 운운하는 동안에도 오늘날의 근로자들은 과거에 비해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더 많이 일하고 있다. 

 

일을 자아실현이나 행복한 노동의 이미지로 표현한 구호들이 여기저기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열정이 있는 곳에 성공이 따른다" 통근 열차에 붙어있는 MBA 광고 문구다. <코스모폴리탄>은 웨딩숍 주인이나 도시 농부, 도시 예술가 같은 독특하고 흥미로운 직업을 가진 여성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 '겟 댓 라이프 Get That Life'를 정기적으로 내보낸다.

 

'겟댓 라이프'라는 제목부터 이미 멋진 직업을 노골적으로 숭배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고 부추기고 열망하게 만든다. 멋진 직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저 '실행'하기만 하면 이루어질 듯이 말이다. 잡지에 소개된 많은 여성들이 값비싸고 권위 있는 학위와 업계의 연줄, 그리고 풍부한 전문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뒤로 감춘 채 말이다.

 


 

사랑할 가치가 있는 일

 

인정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범주에 속하며 이들은 서로 겹치는 경우가 많다. 하나는 직업윤리를 벗어난 노동을 하는 근로자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윤리가 약속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다. 예를 들어 서비스 산업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세차를 하거나, 잡다한 물건을 선반에 진열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처리한다. 직접 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일을 정직하게 잘하더라도 안정적인 생계를 꾸리지 못하는 일 또한 인정받지 못한다. 콜센터 직원이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안정과 안락함을 얻지 못할 때,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 그에 맞는 보상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드러난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을 유지하려면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을 외면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루한 직업이 과거에는 단순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 무시당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라Do What You Love(DWYL)'가 부상하면서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들은 권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에 부합하지 않는 직업을 적극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사랑할 가치가 있는 일이란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어떤 근로자가 사회적 인정을 받고, 그렇지 못한 근로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교묘하게 회피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뭐라고 적을까? 이들에게는 어떤 정체성이 부여될까?

 

 

 

열정의 교묘한 사회 통제화

 

근로자들은 감시와 규제를 피하려고 애쓴다. 사실 DWYL의 꿈은 이를 전적으로 지원한다. 진정한 자율을 만끽할 수 있는 자영업만큼 훌륭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관리자의 감시와 규제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비전을 꿈꾸며, 자신만의 전문적인 일을 하기 위해 전문 경영 계급을 포기한다.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자본가계급으로 뛰어오르면 더 좋다. 마크 저커버그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밟았던 길이다. 그들이 문화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것은 엄청난 재산뿐 아니라 자기 결정과 선지자라는 위치 덕분이다. 두 사람 모두 운명을 좇아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거나 자영업, 프리랜서로 일하려면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확실한 사실은 큰 계약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정한 소득을 벌어들이기 어렵고, 장기적인 계획(주택 마련, 은퇴 등)을 세울 수도 없다. 게다가 미국에서 자영업을 하면 피고용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이나 은퇴 저축 계좌, 유급 병가, 휴가 등의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근로자가 감시와 규제를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무슨 일이든 들어오는 대로 땜질하듯 하고,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소득으로 불안하게 살아가겠다는 의미이다. 요가 강사나 프리랜서 작가 등 수많은 직업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즐거움이라는 미명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유연한 업무 일정과 햇빛 쏟아지는 작업실이라는 허울 뒤에서 돈도 받지 못하는 고된 일을 감수해야 한다.

 

 

 

 

인턴, 감사하라, 불평은 금물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행복해하며,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는 것이다. ……불평은 금물이다"

 

이는 인터넷에 떠도는, 인턴사원들을 위한 수많은 명언 중 하나다. 인턴이 갖춰야 할 또 다른 행동 덕목은 다음과 같다. "항상 웃음을 띨 것, '감사합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 겸손한 태도를 보일 것, 단순한 일에도 열정을 보일 것" 언제나 활기차고 고마워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맡고 있는 업무나 그것의 교육적 가치가 무엇이든 간에 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전 세계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인턴의 직무와 임금은 어떤 기관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인턴은 고용이 거의 또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일시적인 업무 형태라는 사실은 똑같다. 인턴의 임금은 낮거나 전혀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무척이나 흔한 상황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는 무급 노동자야말로 가장 완벽한 존재다. 

 

 

케인스의 주 15시간 경제학

자본가와 고용주는 늘 근로 시간 단축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1백여 년 동안 그들은 전투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근로 시간 단축이라는 발판을 포기하고 경제 성장을 따르기로 한 이상, 또한 더 일하라는 고용주와 관리자의 압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이상, 수로를 가로막던 수문이 열린 셈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운 좋게 고용된 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 동안 일하고 있다. 심지어 두 군데가 넘는 일터에서 투잡, 쓰리잡 등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2008년 이후 경제 회복 기간 동안 경제 성장으로 실업과 빈곤이 줄어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최악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더 힘들게 더 오랜 시간 일하면서도 소득은 줄어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취업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일하지 않을 권리를 되찾아라

 

우리는 왜 일을 할까? 사회에 대한 봉사, 애국심, 종교적 의무,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체로 말하는 핵심은 역시 이다. 일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가변적이지만, 보통은 강제와 선택, 필요와 욕망, 타성과 의도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지나친 관리 감독을 받고 싶어서, 죽을 때까지 하위 계층에서 고생하기 위해, 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기 위해 직업을 가지는 사람은 결코 없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근로자들이 기본적인 욕구도 충족하지 못한 채 이 모든 상황을 참아가며 일한다. 왜 그럴까?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옷을 걸친 DWYL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부터 자연환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미있는 가치들을 상실하면서 위태로운 '직업윤리'를 추구하고 있다.

 

착취적인 환경에서 지나치게 많은 노동을 한 결과 특정 소수가 부富를 축적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부의 균등한 분배와 자아실현은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나오미 클라인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vs 기후>에서 설명했듯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한다. 개인의 삶을 지키고 환경을 보존하려면 일에 대한 지배적인 태도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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