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전 - 여성의 삶을 말하다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유향 지음, 김지선 옮김 / 동아일보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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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전(列女傳)>은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편찬한 여성 전기집으로 총 104조목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유향은 경학가로서 오경五經에 통달했는데, <시경詩經>. <서경書經>, <춘추春秋>, <좌전左傳>, <국어國語>, <전국책戰國策>, <사기史記> 등 여러 서적을 두루 참조해, 여성과 관련한 사적을 기록한 <열녀전>을 편찬했다. <열녀전>은 제목 그대로 여러 여성의 행적을 기록한 열전列傳으로, 절개를 지킨 열녀烈女의 행적을 선양하기 위해 쓴 <열녀전烈女傳>과는 다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옛날 여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유향은 여성의 유형을 일곱 가지로 나누었다. 자식을 잘 키운 여셩, 현명한 여성, 인자하고 지혜로운 여성, 지조가 곧고 순종적인 여성, 절개와 도리를 지키는 여성,  언변이 뛰어나고 사리에 통당한 여성, 나라를 망하게 한 여성 등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해 이를 <모의전母儀傳>, <현명전賢明傳>, <인지전仁智前>, <정순전貞順傳>, <절의전節義傳>, <변통전辯通傳>, <얼폐전孼嬖傳> 순으로 담아냈다.

 

책 안에 수록된 여성의 신분도 다양하다. 즉 신화적 인물이나 왕후, 재상, 장군, 학자의 어머니 혹은 아내는 물론, 평민, 유모, 시녀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의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삶을 풍부하게 담고 있으며, 최초로 여성 중심으로 서술한 역사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얼굴도 모른 채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몹쓸 병에 걸려 있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가 과부가 되기도 하며, 전쟁에서 나라가 패하자 어쩔 수 없이 적국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모시던 공자를 살리기 위해 친자식을 희생시킨 어머니, 죽음을 무릅쓰고 충정을 지킨 아내의 시녀, 남편이 자신을 떠났음에도 의리를 지키며 시어머니를 봉양한 며느리 등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단지 규방 안에만 머무르지 않은 여성들도 있다. 소위 '어려서는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어서는 자식을 따른다'는 삼종三從의 예禮를 무너뜨리고 결단력 있는 행동을 내보이기도 했다. 비록 상대가 왕이라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합리한 처사를 당하면 잘못된 정치를 비판했고, 부당한 판결에 조목조목 따지며 문제를 해결했다. 또 신랄한 비판으로 오만방자했던 남편을 변하게 만들거나, 진퇴양난의 갈림길에서 과감한 행동으로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낸 현명한 아내도 있었다.

 

이 책은 남성 학자의 시각에 입각하여 편찬된 여성 전기이므로 당시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기준이 자연스레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 책이 때로는 지배계급이 여성의 행동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왕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자신의 코를 베어버린 과부나, 규방의 예를 따라야 한다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여인 이야기는 다소 불편할 정도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삶이 들어 있다.

 

 

 

 

며느리를 재가再嫁시키다

 

위衛나라 정공定公의 부인 정강定姜은 아들이 장가들어 자식도 없이 죽자 그 며느리를 재가기켰다. 그녀는 며느리가 3년 상을 치르고 나자, 재가를 보내며 직접 교외까지 나가서 전송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아끼는 정과 서러운 마음을 담아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어 읊었다.

 

제비들은 날아올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누이 시집가는데 멀리 교외에서 전송하고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눈물이 비 오듯 흐르네.

 

<열녀전>의 시작은 <모의전母儀傳>이다. 즉 어머니로서의 모범을 보인 여인을 다루고 있다. 여성의 역할 중 가장 주요하게 본 부분이 바로 '어머니'였다. 삼종三從의 예를 깨뜨리고 적극적으로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인 어머니를 소개하고 있다. 정강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이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자 며느리에게 수절을 강요하지 않고 재가를 시켰다. 이는 진정으로 여성을 이해하고 너그러운 심성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결단력이었다.

 

 

남편을 왕으로 만들다

 

"현명한 자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특별히 스승이나 벗만 서로 갈고닦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배필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 유향

 

제강齊姜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딸이자,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부인이다. 문공의 아버지 헌공獻公은 여희驪姬를 빈으로 맞아들였다. 권력을 잡은 여희는 유능한 태자 신생을 모함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중이 공자(문공)는 숙부 호언와 함께 북방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망명길로 가던 중 제나라에 이르자  제나라 환공이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게 하고 극진한 대접을 하며 이곳에 머무르게 했다. 

 

한편, 헌공이 죽자 진나라의 내부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동안 권력을 누렸던 여희는 백성들로부터 증오를 받고 있었다. 이에 반기를 든 이극 등이 여희 세력을 축출하고 중이에게 귀국해서 나라의 적통을 이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중이는 편안한 제나라에 눌러 앉고 싶어 했다. 이를 간파한 숙부는 진나라로 데려가려고 수행원들과 모의를 했다.

 

때마침 누에를 치는 아낙이 그 모의를 엿듣고 제강에게 알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강은 그 아낙의 입을 막고자 살해한 다음 공자에게 수행원들을 따라가서 진나라의 보전에 힘쓰리고 재촉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그녀는 숙부와 모의해서 중이를 술에 취하게 만든 후 몰래 수레에 태워 보냈다. 결국 길을 떠난 중이는 여러 나라를 거쳐 진秦나라로 들어갔다. 진나라 목공穆公은 군대를 호위해 중이가 무사히 진나라로 입국하도록 도왔다. 이후 중이는 왕으로 옹립되자 제강을 부인으로 맞아들였고, 마침내 천하를 차지해 맹주盟主가 되었다.

 

 

왕에게 남녀유별의 도리를 설파하다

 

위魏나라 곡옥曲沃에 사는 대부 여이如耳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秦나라가 위나라 공자 정政을 태자로 세우자, 위나라 애왕哀王은 사자를 보내 태자에게 비를 구해주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왕은 그만 욕심이 생겻다. 즉 자신의 후궁으로 삼고자 했다. 이에 노파는 아들 여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이 부자간의 유별을 어지럽히는데 어째서 바로잡지 않느냐? 지금 위나라는 강하지 않은데, 왕까지 도리를 어기고 있으니 어떻게 나라를 보전하겠느냐? 네가 간언하지 않으면 위나라는 반드시 재앙이 일어날 것이고, 재앙이 일어나면 필경 우리 집까지 미칠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이를 간언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제나라 사신으로 떠나게 되자, 노파는 궁궐의 문을 두드려 왕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마침내 대면한 노파는 태자의 비를 왕의 후궁으로 삼으려 하는 일은 정절을 지켜야 할 여인의 도리를 훼손하고, 남녀 간의 유별을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당장 멈추라고 간언한다. 그래도 왕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었나 보다. 왕이 말했다.

 

"그렇군, 과인이 미처 몰랐소"

 

 

 

죽은 남편에 대한 절개를 지키다

 

위衛나라 선공宣公의 부인은 제齊나라 왕의 딸이다. 선공에게 시집가던 도중 성문에 이르렀는데, 불행하게도 선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함께 수행했던 보모가 제나라로 귀국해도 무방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위나라에 입국해 삼년상을 지켰다. 이후 선공의 동생이 왕위에 올라 그녀에게 함께 살자고 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이 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위나라 왕은 제나라에 있는 그녀의 형제에게 전통을 보내어 이를 설득해달라고 했다. 이에 친정의 형제들은 모두 지금의 왕을 따를 것을 종용했다. 끝내 그녀는 "오직 부부만이 한 살림을 찰릴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이런 시를 지었다.

 

내 마음 돌이 아니니 굴릴 수 없고,

내 마음 돗자리 아니니 말 수도 없네. 

 

재난을 당하고 궁색한 처지에 놓여도 가엾게 여기지 않고, 고되고 치욕스러워도 구차하지 않은 연후에야 스스로 도리를 실현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뜻을 잃지 않아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자식을 희생해 효공을 살려내다

 

효의보孝義保는 노魯나라 효공 칭稱의 보모이자 장臧씨의 과부이다. 효공의 아버지 무공武公은 주周나라 선왕宣王을 알현하러 갔는데, 이 자리에서 선왕이 차남인 희를 노나라 태자로 삼았다. 그가 바로 의공懿公이다. 효공은 당시 공자 칭으로 불렸는데, 나이가 가장 어렸다. 이에 의보는 자신의 이들과 함께 궁에 입궁해 공자 칭을 키웠다. 그런데, 무공의 장남 괄의 아들 백어가 난을 일으켜 의공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공자 칭을 죽이려고 했다.

 

이때 보모 의보는 자신의 아들에게 칭의 옷을 입히고 칭의 잠자리에 누워 있게 했다. 백어는 의보의 아들을 죽여 후환을 없앴다. 한편, 의보는 칭을 안고 궁 밖으로 탈출해 멀리 도망갔다. 11년이 지나 노나라 대부들이 칭이 생존해 있음을 알고 백어를 죽이고 칭을 새로 왕으로 추대했다. 바로 효공이다.

 

 

독이 든 술을 엎어 주인에게 충성하다

 

주周나라 주충첩은 주나라 대부의 아내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시녀였다. 대부는 뱌슬살이를 한 지 2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내는 다른 사내와 사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는 남편를 독살할 계획을 짰다. 이를 눈치챈 시녀는 독이 든 술을 남편에게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인의 행동을 고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척하며 술병을 엎질렀던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대부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하자 이렇게 말했다.

 

"주인이 욕되게 죽었고 저 혼자 살아남았으니 이는 무례無禮이고, 주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역례逆禮입니다. 예의가 없거나 예를 거스르는 일 가운데 하나만 범해도 충분히 잘못인데, 지금 두 가지를 모두 저질러야 한다면 앞으로 고개를 들고 살 수 없을 겁니다"

 

"충직한 시녀는 어질고 신의가 도타웠다"

 

 

걸왕과 말희 

 

 

여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하다

 

이 책의 마지막 편은 <얼폐전>이다. 이는 음란하고 사악하며 나라를 망친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타의 모범이 되는 사례를 책에 담았음에도 이처럼 부정적인 행실을 굳이 보여준 이유는 아마도 반면교사의 교육 효과를 기대한 듯하다. 얼은 '재앙'이라는 뜻이고, 폐는 '총애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왕의 총애를 받은 여인은 화근이자 악녀惡女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특정 인물을 총애하다 보면 배은망덕하게도 큰 사고를 치고 만다. 탄핵받은 대통령이 이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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