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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불화 명작강의 - 우리가 꼭 한 번 봐야 할 국보급 베스트 10
강소연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불교에서는 불교미술이라는 용어보다는
'불교장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불교에서는 사원이나 법당을 꾸미는 것을
'장엄'이라고 합니다. 보통 유리가 흔히 쓰는 '장식'한다는 말과 유사합니다만, 장엄이라는 용어에는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유형과 무형의 덕행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고운 마음으로 향이나 촛불을
하나 피워도 그것은 세상을 장엄한 것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참 중요시합니다. 우리는 물질의 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이면의 마음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 '서문' 중에서
국내 최고의 불교미술을 소개하다
저자 강소연은 유년시절을 천년고도 경주에서, 청년기를 미국
보스톤 캠브리지에서 보냈으며,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영국 런던대학(SOAS) Art & Archeology Dept., 서울대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등을 거치며 미술사를 공부했다. 그녀는 교실 안에서 만나는 현학적인 문자의 세계보다 순수한 작품의 세계 속에서 그 예술혼과
마음으로 만나야 그것이 글이 되고, 힘이 되고, 또 삶이 된다고 여긴다.
원로미술사학자 강우방
선생의 여식인 그녀는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동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만 국립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의 장학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및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로 10년간 교편을 잡았고, 현재는 중앙승가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왕실의 불교회화 연구로, 2005년 일본 미술문화계 최고권위학술상인
'국화상'을 수상했다. 또 2007년 한국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강 교수가 쓴 이 책은 불화의 가치와 의미를 예술적, 종교적, 역사적 관점에서 글과 사진으로 담아, 불화의 기본적인 구도나 묘사법 같은
작품의 기술적 부분을 포함해 당해 작품에 담긴 불교적 가르침과 제작 당시의 시대 상황까지 두루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국보급 사찰불화 10선의
완벽한 강의인 셈이다. 특히 불화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기초공부 코너에서, 별도로 전문적인 내용을 전문가 팁에서
설명하고 있어서, 사찰불화를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는 평가받고 있다.
10선選은 바로 강진 무위사 <아미타삼존도>와 <관세음보살도>, 해인사 <영산회상도>, 동화사
<극락구품도>, 용문사 <화장칠해도>, 쌍계사 <노사나불도>, 법주사 <팔상도>, 운흥사
<관세음보살도>, 갑사 <산신불도>, 직지사 <삼불회도>, 안양암 <지장시왕도> 등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로 손꼽히는 총 11점이다.
"한국불화, 르네상스의 종교미술만큼
뛰어나다"
과거 성철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자 하면 먼저 삼천배를 해야만 이를 허용했듯이, 책에 수록된 불화
가운데는 취재를 허용하지 않는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사찰의 전각이나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보존상의 문제로 일반에
미공개하거나 1년에 한 번 괘불재가 열릴 때만 만날 수 있는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 교수는 쌍계사의 괘불 <노사나불도>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데 무려 2년이
걸렸다고 밝히고 있다. "보살계를 받아야만 조사를 허락해주겠다"는 주지 스님의 말씀에 따라 보살계를 신청하고 기다려야만 했고 또 이를 약속했던
주지 스님이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실제로 "어디 감히 신성한 불화에 카메라를 들이대느냐"고 노발대발하는 노스님도
있었다.
특히, 용문사의 <화장찰해도>를 관찰했을 때 스스로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음을 고백하면서 불화를 촬영하다 보면 마치 접신接神하는 느낌마저 들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화엄경>의 세계를 화폭에 옮긴 것으로 추상적 진리의 세계를 둥근 여의주로 표현하고 있으며 원형으로 나열된 여의주들은 끊임없이
확장하는 듯한 무한한 공간감을 준다. 또 원들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바다와 구름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 신성함과 광활함을 선사한다.
무위사 <아미타삼존도>(1476년, 토벽에 채색, 270x210㎝, 국보
제313호)
조선초기에
완성된 탱화로, 온전한 형태로 국내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고려 화풍'의 명작이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계승하면서 거기에다 새로운 조선적
창조가 가미되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 즉 존상의 배치와 광배의 표현, 배경 처리 등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조선적 표현이
보이는 반면, 세부적 묘사에 있어서는 극세필의 유려함과 화려한 장식적 특징이 살아 있어 고려불화의 귀족적 화풍을
엿볼 수 있다.
형식적 특징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화면 가운데의 아미타 부처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서기(瑞氣: 상서로운 기운)가 포착된다. 서기는 먼저 다채로운 문양의 광배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지극히 화려한 층층의 광배로도
모자라서, 급기야 화면의 바탕을 가득 채우며 뭉게뭉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에 반해, 고려불화의 광배 표현은 투명하다. 불성에서 퍼져 나오는
오묘한 적멸의 빛을 금선의 테두리만으로 표현했다. 불성은 인격화된 모습의 부처님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 원형적인 모습에 충실하여 여의주如意珠
또는 보주寶珠의 상징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162여 점의 고려불화는 대부분
국외로 유출된 상황이라 국내에서 고려불화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에서 이 불화는 이 땅의 유일한 후불벽화後佛壁畵이자 고려불화의 비법을
간직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명장의 마지막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참고로 후불벽화란 법당 안의 불단에 봉안한 부처와 보살의 조각상
뒷벽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뜻이다.
해인사
<영산회상도>(석가모니후불탱, 1729년, 비단에 채색, 240x229.5㎝, 보물
제1273호)
해인사의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에 봉안된 대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을 영산회상도라고 하는데, 여타 영산회상도가 평면적인 화면 구도를 보이는데 반해 이 작품은 원근법을
이용해 독특한 공간감을 연출함으로써 조선시대에 제작된 많은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중에서 가히 압권이다. 부처님 몸 전체에서 섬광처럼 뿜어져 나오는
'광명光明(지혜와 자비의 빛)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불화에서 주의해 보아야
할 가장 핵심적 표현은 '광명'이다. 이는 무명과 번뇌를 비추는 지혜와 자비의 빛이다. 이 지혜와 자비의 빛은 중생을 일깨우는 불성佛性이다.
불성을 의인화한 부처님과 보살님의 몸에서는 항상 청정한 광명이 발산된다. 이 광명을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광배로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는 광명의
표현이 유난히 상서롭다. 둥근 광배뿐만 아니라, 섬광과 같은 빛줄기의 방사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의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줄기들이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을 펼친 장을
영산회상이라고 한다. 당시 설법이 열린 장소는 왕사성 기사굴산인데, 왕사성은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였으며 이곳에서 동북방향으로 약 3km
떨어진 지점에 기사굴산이 있었다. 이 산의 봉우리는 신령스러운 독수리 머리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영취산靈鷲山이 된다. 부처님의 대표적 설법 장소로 이곳에서 <법화경>을 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법화경>의 법화칠유法華七喩
화택火宅유~ 불이 난 집의 아이를
구출하려고 장난감이 밖에 있다고 유인한다
궁자窮子유~ 가출한 자식이 정신적으로
성장할 때까지 아버지가 기다려준다
약초藥草유~ 평등한 비가 다양한
약초를 성장시키듯 수행자는 깨달음을 통해 성장한다
화성化城유~ 먼 길을 향해 떠나는
부하들에게 중도에 가상의 성으로 피곤함을 달랜다
의주衣珠유~ 만취한 사람은 친한
친구가 준 보주를 모르고 평생 곤궁하게 떠돈다
계주髻珠유~ 전륜성왕은 뛰어난 공을
세운 이에게 상투 속의 보주를 넘겨준다
의자醫子유~ 독을 마신 아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해독약을 마신다
동화사 <극락구품도>(1841년, 비단에 채색, 170.5x163㎝,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8호)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에 극락세계
풍경을 기술한 <관무량수경>을 근거로 다수의 극락 그림(관경변상도 또는 관경16변상도)이 제작되었다. 이후 억불정책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한동안 맥이 끊겼던 것이 조선후기에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동화사 <극락구품도>이다. 그림 상단의
아미타삼존, 중단의 왕생 연못, 하단의 거대한 일원상과 벽련대 배치가 다른 시대의 극락 그림과 구별되는 큰
특징이다.
경전에선 부처님의 몸을 묘사할 때 흔히 자마금색,
자마황금, 염부단금 등으로 표현한다. 자금, 자마금 또는 자마황금은 상서로운 자색紫色이 감도는 최고 품질의 황금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빛깔이다. 황금의 품질은 총 9급으로 나뉘는데 그중 최상급이 자마금이다. 주로 인도의 염부나무 숲속에 흐르는 강바닥에서
채취되는 사금이 자마금에 해당하여 이를 염부단금閻浮檀金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최고 최상의 빛깔에 아미타 부처님을 비유하고
있다.
용문사
<화장찰해도>(조선후기, 마본에 채색,
230×297㎝)
현존하는 수많은
불화와 달리 이례적인 도상을 보이는 작품으로, 추상적인 진리의 세계를 직관적이고 대담하게 표현했다. 거대한 원형 공간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파격적인 구도를 선보인다. 이는 우주의 만물이 시공을 초월해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며, 그 속에서 생성과 변화와 소멸을 거듭한다는
<화엄경>속 우주관을 표현한 것이다.
본 불화에서는 가장 외곽의 무지개색 원은 10개의 세부 층으로 구성되었다. 빨강, 파랑,
녹색, 황색 등으로 보이는 원의 레이어를 들여다보면, 각 레이어마다 다시 다채로운 색의 스팩트럼이 펼쳐진다. 비슷한 톤의 조금씩 다른 색깔들을
순차적으로 사용하여 강렬한 에너지가 확장되는 듯한 효과를 창출했다.
쌍계사
<노사나불도>(1799년, 마본에 채색, 1302×594㎝, 보물 제1695호)
높이 13미터가
넘는 거대한 괘불이다. 매년 한 차례 쌍계사에서 열리는 보살계 수계 대법회 때 대중에게 공개되는데, 장대함 속에 화려함과 섬려한 맛이 살아
있다. 양쪽 손목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진 천의 자락에 꽃과 잎사귀, 열매와 보주 등이 피어나는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다. 전체적으로 색조가
밝고 투명해 화사한 느낌을 준다.
기존의 괘불 관련 논문이나 책자를 보면, 이같이 많은 장식을 한 존상을 보살님이라고 잘못
칭하는 경우가 많다.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보살 등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분명한 오류다. 물론
<노사나불도>의 존상은 보관을 쓰고 긴 보발을 늘어뜨리고 천의를 걸치고 영락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는
틀림없는 보살의 형식적 요소들이다. 반면 부처님은 법의法衣 하나만 정갈하게 걸치고 나발에 육계를 갖춘다. 부처임은 보관이라든지 장신구 등은 일체
하지 않음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존상은 어째서 부처님일까?
이처럼 부처이지만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잇는 특별한 존상을 노사나불(또는 노사나
부처님)이라고 말한다. 여타 보살과 구분하는 요령은 수인手印을 보는 것이다. 노사나불은 설법을 하고 있다. 다시 본 작품을 보자. 양손 손가락의
엄지와 장지를 동그랗게 말아 살짝 맞대고 있는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노사나불은 '보살의 모습으로 설법을 하고 있는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다.
법주사
<팔상도>(도솔래의상 부분, 1897년, 비단에 채색, 191×95.5㎝)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을 여덟 장면으로 추려 그린 것을 팔상도라고 한다. 팔상도는 주로 대웅전이나 영산전에 봉안되는데, 특이하게도
법주사에는 '팔상전'이라는 팔상도 전용 목탑 건축물이 존재한다. 법주사의 팔상도와 팔상전은, 그 자체로 불화 전통에 있어 팔상도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다양한 장면들이 한 화폭에 어우러져 있지만, 시선은
마야부인과 코끼리 탄 보살님의 두 장면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마야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코끼리 탄 보살님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 꿈이겠지만, 코끼리 탄 보살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야부인이 있는 속세가 꿈이다. 법계의
장면과 속계의 장면이 연결되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태하는 생생한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연출된다.
팔상도의 감상
포인트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
룸비니 동산에서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
네 개의 정문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
성벽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
히말라야 산에서 수도하는 상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상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
운흥사
<관세음보살도>(1730년, 마본에 채색, 292×206㎝, 보물 제1694호)
조선시대 불화의
특징인 녹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조선후기 관세음보살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18세기 전반 '붓의 신선'이라
불리며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불화를 담당했던 의겸 스님 작품으로 스님의 높은 정신적, 예술적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동시대 다른 작품들이
다채로운 채색을 활용한 반면, 이 작품은 채색의 강약을 과감히 조절하고 산수화 같은 배경 처리로 현실적 공간감을
부여했다.
대웅전 완공 불사와 더불어 거행될 대규모의 영산재에
대비하여 이때를 기려 제작된 일련의 불화들은 법당 장엄이라는 기본적인 기능과 더불어, 전란 때 희생된 승병들의 영가추모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중에서도 고아한 품격을 자랑하는 <관세음보살도>를 소개한다.
이 불화는 조선후기에 그려진 수많은 관세음보살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통 조선후기 작품들은 색채가 진하여 심지어 탁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시대의 전반적인 경향이 그러한데, 주로
녹색과 붉은색이 점점 진해져서 그림 전체가 농후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선 조선시대의 특징인 녹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보인다.
갑사 <삼신불도>(1650년, 마본에 채색, 1086×841m, 국보
제298호)
임진왜란이 끝난 뒤 희생된 뭇
영혼들을 달래주기 위한 대규모 공동 천도재 때 사용할 목적으로 16세기 전반부터 초대형 괘불이 제작되었다. 갑사의
삼신불도 역시 그중 하나이다. 대승불교의 회통적 세계관을 구현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0여 년 전 개산대제開山大齋와 함께 거행된 영규대사 추모재 때 펼친 이후 현재는 보수 중이며, 언제 다시 펼칠지 기약이 없다고
한다.
높이 12.47미터, 너비는 9.49미터로 장정
30명 이상 붙어야 움직일 수 있는 이 초대형 괘불은 전란 때 사망한 전사자들을 비롯해 바다와 육지에서 희생된 뭇 영혼들을 위한 대규모 공동
천도재 때 사용된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수천 수백 명의 영가들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불단이 필요했다.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끊임없이 사찰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에 법당은 역부족이었다. 이에 야외에 불단이 차려지고 십 리 밖 멀리에서도 볼 수 있는 초대형 크기의
괘불이 허공에 걸리게 되었다. 이처럼 법당이 좁아 대중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때, 야외에 단을 차려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직지사
<삼불회도>(약사불도,석가모니불도,아미타불도,1744년,마본에 채색,보물 제670호)
대웅전 불존 조각상 뒤의 후불탱으로
세 작품이 하나의 세트로 제작된 것이다. 전체 구도는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하는 영산회상이 있고, 동쪽으로 약사불의 동방유리광정토와
서쪽으로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도가 위치해 있다. 이 세 부처(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는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현실에서 민중들의 가장 큰
신앙 대상이었는데, 이러한 현실적 요구가 조형으로 구현된 것이다.
보통 법당에 걸리는 후불탱은
앞의 조각상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앞의 불상과 겹쳐져서 후불탱의 부처님이 상반신만 조금 보이거나 아예 안보이기도 한다. 또
공간이 비좁아서 후불탱과 조각상이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불단의 옆이나 조각상의 뒷면을 기웃거려야 겨우 후불탱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직지사 대웅전의 경우에는 후불탱과 조각상 불존들의 전모가 십분 드러나게끔
배치하였다.
안양암
<지장시왕도>(1930년, 비단에 채색, 407×238cm,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6호)
괘불의 주제는 노사나불이거나
석가모니불인 경우가 많고, 그 구성도 간단한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부처가 아닌 지장보살을 주제로
삼고, 한 화면에 여러 시왕들과 지옥의 풍경을 등장시킨 매우 독특하고 보기 드문
구성의 작품이다. 도상의 본연적인 의미를 십분 살리면서도, 흥미로운 회화성과 과감한 표현력을 내뿜는 창의적
작품이다.
무간지옥에서 무간無間은 '사이가
없다'라는 뜻인데, 고통이 쉬지 않고 계속되어 간극이 없다는 의미이다. 산스크리트 아비치(Avici)의 어원을 갖고 있는데 이를
음역하여 아비지옥이라고도 칭한다. 규환지옥叫喚地獄은 고통스러워서 울부짖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지옥을 말한다.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합쳐놓은 것 같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상을 일컬어
아비규환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쇠솥에는 쇳물이
펄펄 끓고 있고, 야차는 차례로 대기하고 있는 중생들을 한 명씩 집어 들어 거꾸로 처넣고 있다. 여기에 떨어지면 뜨거운 쇳물에 삶기는 고통을
받게 된다.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거나, 불을 질러 많은 생명을 죽이거나, 불에 태워 살생을 하거나 그 고기를 먹은 자가 가는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