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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술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혜에서도 상책(上策)은 침묵하는
것이고, 중책(中策)은 말을 적당히, 적게 하는 것이며,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 '침묵에
대한 사색을 펼치며' 중에서
과장되는 말과 글을
비판하다
이 책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설교가이자 문필가로 활동했던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신부가 당대 유물론과 무신론적 자유사상으로 말과
글이 과장되는 시류를 비판하며 침묵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신부는 책에서 "'생각하는 기술', '말 잘하는 기법' 등 온갖 유용한
가르침들로 넘쳐나는 세상에 왜 '침묵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이는 없는가?"라고 자문하면서 침묵의 원칙, 활용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는 말과
글이 어지럽게 춤추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설화舌禍나 필화筆禍에 대한 이야기가 매스컴을 장식한다. 이미 중대한 말실수로
연예계를 잠시 쉰 적이 있었던 한 개그맨이 또다시 방송에서 한부모가정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후 여론의 질타를 받자 최근 방송에서
하차했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고픈
욕망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입이 지나칠 정도로 가벼워서 빚어진 일이다. 그렇다. 침묵내지는 묵언이라는 훌륭한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비슷한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 왜 그럴까? 침묵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침묵도 말이요 글이다. 바로 이
책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1부(말과 침묵)에선 침묵도 하나의 능력임을 알려주면서 말에 관한 침묵의 원칙을 설명한다. 2부(글과 침묵)에서는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때
과도하거나 경솔하게 글을 써서 소위 필화를 유발하는 경우와 이를 방지 또는 예방하는 글쓰기에 있어서의 침묵 원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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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침묵은 언어를 자제하는 방법이며 언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준비
작업이다.
둘째, 침묵은 단순히 입을 닫는 것을 넘어 말과는 다른 어떤 표현 양식을
의미한다.
침묵의 14가지 필수
원칙
1.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2.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3.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4. 말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5.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덜 위험하다.
6. 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7. 중요한 말일수록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다시 한 번 되뇌어보아야
한다.
8. 지켜야 할 비밀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
9.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10.
침묵은 편협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하기도 한다.
11. 말을 많이 하고픈 욕구에 휘둘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느니, 침묵 속에 머물러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12. 용감한
사람의 본성은 과묵함과 행동에 있다. 양식 있는 사람은 항상 말을 적게 하되 상식을 갖춘 발언을 한다.
13. 무언가를 말하고픈 욕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14.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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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신만이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
깊이 숙고한 뒤에야 입을 열라.
그대가 마음에 품은 그 어떤 생각도 사소하지 않을 터.
그 모두가 주목의 대상이요,
그 모두에 결과가 따르리라.
옛날 시칠리아를 통치하던 폭군은
신들에 대한 조롱 섞인, 불경스러운 언행을 항상 달고 다녔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쥬피터 상에 걸쳐 있던 묵직한 금빛 망토를 끌어내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 망토, 겨울에 걸치기엔 너무 춥고 여름에 걸치기엔 너무 무겁군 그래!" 또한 신들의 조각상을 장식하고 있던 종려 가지와 왕관,
술잔들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이렇게 말했다. "신들이 내게 선사하는 것이니, 내 기꺼이 접수하노라"
이런 우스개는 사람들의 실소와 혐오를
불러왔다. 누구도 감히 나서서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못한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남을 위해서도 말과 침묵을
적절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혀가 아니라면 얼굴이라도 적극적으로
말하게 하라. 자고로 현자의 침묵은 표정이 풍부하므로 미진한 자에게는 가르침이 되고 과도한 자에게는 응징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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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글쓰기
온갖 악서惡書를 상대로 싸우거나
뜯어고치는 작업이 걸출한 문필가의 숙제 중 일부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상에 널린 온갖 풍자문들, 거짓 기록들, 과도한 평문들,
무의미한 짜깁기 글들, 파렴치한 콩트들, 그리고 종교와 풍속을 해치는 여러 저작들이 저자가 일반적으로 '잘못된
글쓰기'라 부르는 행위의 결과물들이다.
지혜롭고 꼼꼼한 현인현인들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타락시킬 뿐인 저작들을 결코 자신들의 집 안에 들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책을 일부 소장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그런 책의 해악을 콕 집어 알려주기 위함이거나 또는 그 속에 담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준비를
위해서이다.
과도한
글쓰기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글을 살펴보면 재능도 의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글을 썼으니
읽긴 읽되, 거기서 깨치거나 배울 점은 아무것도 없다. 글 쓰는 사람 자신도 스스로 무슨 글을 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왜 글을
쓰는가?
이처럼 소재를 잘못 선택하거나 아무
의미 없는 자세로 글을 씀으로써 쓸모없고 무가치한 책들이 세상을 가득 패운다. 물론 뭔가 좋은 점이 없는 책은 없다. 그럼에도 유용한 무엇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손때 한번 묻혀보지 못한 채 서가에 쌓여 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명철한 분별력으로 고른 주제가 아주
훌륭하고 유용할지라도,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잘못을 범하곤 한다. 좋은 내용을 지나치게 미주알고주알 글로 풀어내고 마는 잘못 말이다. 이는
글의 성공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어떤 주제를 다루든 정도程度를 지켜야 한다. 적절한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양식과
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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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처세술이다
글을 쓸 때
필요한 침묵의 원칙
침묵보다 나은 쓸거리가 있을 때만
펜을 움직인다
글 쓸 때가 따로 있듯이, 펜을
붙들어둘 때가 따로 있다
펜을 붙들어두는 법을 먼저 깨치지
않고선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야 할 때 펜을 붙들어두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보다 펜을 붙들어두는
것이 덜 위험하다
글을 헤프게 쓰는 순간 결국엔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쓸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한다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 경우 결코
이를 글로 옮겨서는 안 된다
모르는 것에 대해 펜을 붙들어두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글을 절제하는 것은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한다
글을 자제해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글쓰기를 자제하는 성향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늘 경계해야 한다
악서를 쓴 저자들이 지면에 온갖
독기를 풀어내기 전에 자신의 손에서 펜대를 놓아버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침묵은 무엇보다 방종과 타락이 만연한 정신에 추천할 만한 처세술인
것이다. 자기들이 원해서 침묵하진 않더라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입을 닫게 할 수 있다면 건전한 정치와 종교에 바람직한
일이다.
자기표현을 자제할 줄 아는 무지한
사람은 글을 적게 쓸수록 자신에게 이롭다. 그래야 자기 분에 넘치는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은 조금만 더 글을 쓴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릴 평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사람 아주 현명해. 양식 있는 사람이야. 생각은 깊은데 표현을
잘 안 할 뿐이지" 적어도 그를 과묵한 모습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또 평할 것이다. 어쨌든 이 점에서 그가 취한 태도는 최상의
선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로운 글을 읽는
위험
해로운 글일수록 독자들의 머릿속에 잘
스며드는 법이다. 이는 독사나 전갈의 독액처럼 의식에 침투해 해악을 가한다. 모름지기 말이란 귓전에 울렸다가 사라져버리는 소리로만 존재하는 것.
반면 우리가 읽는 글은 우리 안에 스며들어와 부지불식간에 우리와 하나가 되는 무엇이다.
신앙을 저버린 자들, 당대의 철학자를
자처하는 글쟁이들에게 고하노라. 부디 한 번이라도 진리를 깨달으려는 마음을 갖고, 진리를 추구하고 따르려는 지각 있는 자세를 가져보기를. 눈을
크게 뜨고 살피기를, 심사숙고하기를. 믿음이 없는 것은 결국 마음의 소치일 뿐. 나무라야 할 것은 오로지 인간의 마음, 설득해야 할 것 역시
마음인 것이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으론 말과
글이다. 마찬가지로 침묵을 유지하는 방법도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혀를 붙들어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펜을 붙들어두는 것이다. 그런
침묵의 기술을 담고 있는 이 책은 1771년에 출간된 후 2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프랑스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말과 글의 참여가
과잉 수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소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지나치게 상대방을 비방, 비판하고 심지어 호도까지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세상에서 입이 제일 가볍다는 정치인들의 폭언이나 좀 안다고 나르시시즈에 빠진 얼치기 지식인 글쟁이들의 폭주가 이젠 도를 넘어 마치 여름철 장마
뒤의 홍수와 같다. 조작의 수단으로 타락해버린 SNS, 이를 이용해 득을 보려는 속셈을 가진 그런 무리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