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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심리학 : 영조·사도세자·정조 편 -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조선왕조 심리 실록
한민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6년 8월
평점 :
역사란 결국 사람이 행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은 사람이 왜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밝히는 학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문화심리학자로서 그들(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한민은 토종 문화심리학자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게 문화 및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교 행동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미국 클라크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 문화와 한국인 심리에 대해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책은 숙종, 반사회성 성격의 소유자(1장), 형 경종의 죽음, 우울장애와 조현병(2장), 편집성 성격의 왕, 강박의 영조(3장), 회피성 성격의 사도세자, 애착의 문제(4장), 깊어지는 사도세자의 병, 경계선 성격장애(5장), 첫 살인부터 죽음까지(6장), 외상 후 스트레스, 불안했던 정조의 어린 시절(7장),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다(8장), 자기애성 성격, 완벽주의자 정조(9장) 등을 통해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분석하고 있다.
조선 왕가王家의 대표적인 비극悲劇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사건이다. 이 장면은 할아버지 영조, 손자 정조, 아들 사도세자 등 3인의 당사자가 함께 등장한다. 영조 38년(1762) 윤 5월, 창덕궁 휘령전 마당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의 상황을 대사로 알아보자.
(영조) "자결하라"
(사도세자) "아버님, 잘못하였습니다. 이리 마소서"
(손자, 훗날 정조) "할바마마, 아비를 살려주소서!"
(영조) "당장 세손을 데려가지 못할까!"
아들에게 칼을 던져 자결하라는 강권强勸이 먹혀들지 않자 뒤이어 뒤주가 들어오고 이 안에 가둔 후 못을 박는 망치 소리가 휘령전 마당에 울려 퍼진다. 이에 놀란 손자가 아비를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하지만 세손은 궁궐 마당에서 밖으로 끌려 나간다. 결국 아들은 뒤주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뒤주에 갇힌 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정말 잔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왜 아비는 아들을 죽여야 했을까? 왜 아들은 아비의 손에 죽어야 했을까? 이후 아들을 죽인 아비는 왜 죽인 아들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을까? 이같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한 아들의 아들은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이 될 수 있었을까?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이 사건의 당사자들이 처한 당시의 시대 상황을 토대로 역사가 아닌 가족관계로, 사건이 아닌 심리로 접근하면서 그동안 수없이 많은 해석이 뒤따랐던 사건의 새로운 면모를 살펴본다. 역사에 심리학적 시각을 추가하면 그 당시 그 사람들의 행적이 또 다른 의미로 떠오른다.
영조의 편집성 성격
편집성 성격은 특히 남들이 내개 피해를 줄 거라는 확신으로 자신의 경험을 '편집' 한다. 편집성 성격의 사람들은 타인들이 자신에게 피해르르준다는 확신으로 타인을 의심하며,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상대방의 악의로 해석하고 편집한다. 이들은 높지만 왜곡된 자존감으로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이나 약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자신이 의심하는 대상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비난한다.

신분이 비천한 궁녀(무수리) 출신의 후궁 '숙빈 최씨'가 자신의 생모生母라는 콤플렉스를 지녔던 영조는 의심이 많았고 한번 의심한 인물은 절대 믿지 않았다. 또한 과거에 자신을 공격한 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했다. 한번 결심한 일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기어코 해냈고, 특히 복수는 전혀 망설이지 않는 냉혹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국政局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거나 뜻을 정한 일은 굽히지 않고 밀어붙이는 장점도 편집성 성격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사도세자의 기질
아버지 영조가 두뇌 회전이 빠르고 행동이 재빠른 반면, 아들인 사도세자는 말수가 적고 행동이 느렸다. 영조는 이런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평소 묻는 말에도 머뭇거리며 대답하고, 나랏일에 의견을 구하면 마치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이리 대답할까 저리 대답할까’ 하면서 즉답卽答을 못하는 아들이라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가뜩이나 조급증이 심했던 영조인지라 세자의 말투와 행동에 화가 나고 또 걱정도 많았던 거다.
아내인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머뭇거림을 기질로 보고 있지만, 이는 사실 평가불안과 관련있어 보인다. 두세 살 때는 글도 잘 읽고 말도 잘하던 사도세자가 네다섯 살이 되며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대리청정과 깊어진 세자의 병
대리청정代理聽政이란 왕이 정사를 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왕을 대신하여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시한부 권한위임인 셈이다. 하지만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것은 반쪽 짜리 위임이며, 얼마나 잘하는지를 살펴볼 일종의 테스트에 가깝다.
즉 영조는 세자에게 사형 죄인을 심사하는 일이나 형조의 죄인 심문, 왕이 직접 죄인을 심문하는 친국 등 여러 흉하고 불길한 일에만 세자를 대리로 세웠다. 반면에 문무과 과거시험 같은 구경거리나 능행 등 궐 밖으로 나가는 행차에는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신하들이 세자도 데려가라 청했고, 마음을 졸이던 세자는 번번이 가지 못했다. 혜경궁 홍씨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처음에는 서운해하기만 했다가 점점 화로 바뀌어 울 때도 있었다 한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리청정 기간 동안 세자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대리청정 이후 사도세자의 증상은 경계선 성격장애로 추정된다. 경계선이란 정신병과 신경병의 경계라는 뜻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감정과 망상 등 혼란스스러운 인지認知를 동반한다.
정조의 아버지 트라우마와 효심孝心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태도는 단순한 효孝를 넘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영특한 자신의 존재와 관련 있음을 깨달은 정조는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아버지의 신원伸寃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조가 아버지의 신원을 완벽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했을 가능성이다. 정조는 강박적일 만큼 완벽하려고 애쓴 왕이다. 강박적인 노력 끝에 정조는 명실상부 완벽한 왕이 되었다.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오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조는 자신의 유일한 오점인 아버지 사도세자를 끝끝내 신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결함 있는 인간의 모습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삶은 개인의 결함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결함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달랐다.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친 영조, 자신의 결함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고 만 사도세자, 한편으로 결함을 극복했지만 한편으로는 결함 있는 인간 자체로 자신의 삶을 살아낸 정조.
이는 결함 있는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핵심은 결함이 사라진다고 내 삶이 시작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조는 천한 어머니의 소생이라는 콤플렉스와 형 경종을 죽였다는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함을 없애면 없앨수록 새로운 문제가 튀어나올 뿐이었다. 52년 간의 재위동안 이룬 업적도 많았지만 결국 후대의 평가는 '아들을 죽인 아버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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