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인간학 2026 - 세계 자산가들의 비밀 노트
이혜정 지음 / 퍼스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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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해 동안 자산을 다루어왔지만, 그 일이 자산만 다루는 일아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숫자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내가 아는 것보다 언제나 더 컸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들고 떠났다. '부는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건너는가?' 이 책은 국경을 넘는 부와 사람 사이를 건너는 유산이라는 두 가지 이동에 관한 기록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이혜정은 25년간 자산관리의 현장에서 자산가와 가족기업을 만나왔다. 숫자로 드러나는 자산의 규모보다 그 부를 일군 사람의 선택과 철학에 귀 기울였고, 한 세대의 성취가 다음 세대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돈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위해 부를 이루고 어떤 삶과 가치를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총 네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부는 네 개의 자산이 함께 움직일 때 완성된다(자산 편), 그래서 무엇이 가족을 지키는가(승계 편),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혁신 편), 국경을 넘는 자본, 함께 건너는 유산(글로벌 편) 등을 통해 부의 축적을 넘어 품격 있는 승계와 책임 있는 자산관리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침서인 셈이다.


부는 네 개의 자산이 함께 움직일 때 완성된다  


우리는 흔히 자산, 즉 부富를 돈(현금), 부동산, 주식 등 숫자로 計量되는 재정 자산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부는 보이는 것 이상의 영역에서 형성된다. 자산의 네 바퀴가 고르게 굴러야 되는데, 책은 재정 자산, 사회 자산, 인적 자산, 정신 자산 등 4대 자산이 함께 지속 가능한 부를 만든다고 말한다.


재정 자산~ 부를 만들고 이어가는 구조

사회 자산~ 관계가 만드는 네트워크

인적 자산~ 역량과 신뢰를 잇는 힘

정신 자산~ 가치와 철학의 기준


자산을 탁월하게 다루는 사람들은 우선순위를 통장 잔고가 아닌 시간표에서 찾는다. 시간과 주의력 그리고 신뢰야말로 돈보다 먼저 흐르는 진짜 자본이기 때문이다. 자산관리 현장에서 가장 자주 목격되는 비극은 재정 자산 하나만 기형적으로 키운 사람들인데, 통장 잔고는 수십억 원이지만 건강이 무너진 사람, 가족 관계가 파탄난 사람 등이다.



네 가지 자산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증폭시키거나 잠식한다. 정신 자신은 방향을 제공한다. 명확한 투자 철학이 없는 자산가는 시장의 소음에 계속 흔들리고 수익률을 갉아먹는다. 인적 자산은 추진력을 만들고, 사회 자산은 연료를 공급한다. 


그래서 무엇이 가족을 지키는가

많은 한국 가족법인은 '법인을 만들면 세금이 줄어든다'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하지만 법인은 단순히 절세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자산을 관리하고 가족의 원칙을 전승傳承하는 그릇이다. 이와같은 철학 없이 설립된 법인은 나중에 국경을 넘을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한 가족법인의 대표는 회사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다. 실제로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군 회사였다. 생활비, 자녀의 유학자금, 경조사비 등이 법인계좌에서 인출됐고 회계 장부상엔 '가지급금'이란 이름으로 조용히 쌓여갔다. 가지급금은 사라지지 않고, 해마다 인정이자가 붙어 세무조사에서 가장 먼저 지적받는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자녀들의 시선이었다. 이들은 이를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법인의 회장은 생활비, 각종 세금, 기타 잡비 등을 자금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난 새로 부임한 상장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이었는데, 이같은 팀장의 자금 집행을 문제삼자 회장의 특별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고 오랜 관행이었다고 실토했다. 이에 내가 나섰다. 개인자금과 법인자금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이런 지출은 불가함을 회장 면전에서 밝혔고, 또한 로열 패밀리들의 사적私的인 자금 지출 요구에 절대 응하지 않겠다고 나의 소신을 피력했다. 하지만 잘못된 관습은 결코 근절되지 않았기에 결국 난 이 회사를 떠났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란 말을 남기고.


장기간 처리되지 않던 거액의 가지급금을 일시에 처리했던 경험도 소개해 본다. 곧 상장되는 중견법인의 재무총괄 임원으로 부임했는데, 업무보고에서 자금팀장과 회계팀장이 공히 장기 누적된 가지급금 처리가 '뜨거운 감자'임을 피력했다. 자금팀은 유상증자시 발생한 차입금의 상환을, 회계팀은 가지급금의 처리를 나에게 건의했다. 이에 회장의 차명주식을 관리하던 창업 임원을 설득한 후, 차명주식의 매도를 조용하고 은밀하게 기획했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약속과 함께. 


왜냐하면, 가지급금의 대부분은 자본금 증액으로 발생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후 차명주식을 전량 매도하고 매각대금으로 유상증자 때 발생한 관련 차입금을 전액 상환했다. '뜨거운 감자'를 처리한 후 관련 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회장은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느냐'고 나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회장의 그릇된 사고는 여전했다. IMF 위기가 찾아왔을 때 불용不用자산과 본업 이외의 계열사를 매각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건의했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는 회장의 리더십에 실망해 난 사직서를 던졌다. 이 회사는 현재 상장기업 리스트에도 없다. 나아가 난 회사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가족법인의 6가지 리스크


구조의 철학이 결여된 설립

법인과 개인의 경계 붕괴

지배구조의 부재

역사적 부채의 누적

배당의 전략적 미사용

승계계획의 부재



그렇다. 첫 출발이 '절세節稅' 목적이었을지라도 가족의 가치와 역할, 의사결정 원칙 등을 다음 세대로 승계하는 운영체제들이 하나의 철학 아래 연결될 때 비로소 가족법인은 창업자 사후死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재산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인공지능AI는 이제 도구를 넘어 도시의 운영 주체가 되어 가고, 도시는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다시 설계되고 있다. 가문家門의 자산관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끝까지 사람의 몫으로 남길 것인가?


도시가 AI로 관측되고 운영되듯, 자산은 이미 AI로 분석되고 거래된다. 도시가 에이전트에게 신호 운영과 에너지 관리를 맡기기 시작했듯이 가족의 포트폴리오도 알고리즘에게 리밸런싱과 모니터링을 맡기기 시작했다. AI는 자산관리의 많은 것을 바꾸지만, 사람이 먼저고 원칙이 다음이며 도구는 마지막이라는 순서를 바꾸지 못한다.



책은 인식형 AI에서부터 피지칼 AI까지의 기술 변화를 살펴보고, 이를 자산관리와 건물관리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런데, 투자 원칙과 위험의 한도, 가족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 최종적인 의사결정만큼은 사람이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AI가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미래의 자산관리는 사람이 원칙을 세우고 AI의 역할과 권한을 설계하는 일이 될 것이다.


국경을 넘는 자본, 함께 건너는 유산


"여행자가 먼 나라에서 가져오는 가장 값진 것은 그 나라의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집을 새로 보는 눈이다. 다섯 나라의 제도를 배우러 떠나지만, 돌아와서 마주하게 될 것은 결국 우리 가족의 식탁이다."


오늘의 가족은 한 나라 안에서만 살지 않는다. 부모는 한국에 있고 자녀는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한다. 사업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하고, 공급망은 중국과 유럽에 걸쳐 있으며, 투자 계좌는 싱가포르와 홍콩, 여러 통화와 금융기관에 나뉜다.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도 국적, 세무상 거주지, 사업의 중심과 자산의 통화가 여러 번 바뀐다.


오늘날 자산은 버튼 하나로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자산과 함께 이동하는 세금과 법률, 신고 의무와 자금 출처, 가족의 약속과 평판은 그렇게 빠르게 이동하지 않는다. 준비 없이 이동한 돈은 새로운 기회가 아니라 가족 전체를 흔드는 불안이자 위험이 될 수 있다.

책은 싱가포르, 미국, 유럽, 중국, 중동의 자산관리와 승계 문화를 살펴보며 각 지역의 제도와 가문이 부를 지켜온 방식을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신뢰를 설계하는 질서를, 미국은 신탁과 보험을 통해 장기적인 승계를 준비하는 시스템을, 유럽은 백 년의 시간을 견디는 기록과 규율을 각각 설명한다.



제도의 이름과 형태는 달라도 장기간 지속되는 가문家門들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바로 '정신이 원칙을 만들고, 원칙이 사람을 기르며, 사람이 신뢰를 쌓고, 그 위에서 재정 자산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부의 인간학'은 부자의 학문이 아니다


저자가 본 어떤 노트엔 건물도 주식도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평생 지킨 규칙 세 개와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미안했던 일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 가족은 지금도 명절이면 모인다. 이 책에서 다룬 그 어떤 신탁보다 견고한 구조란 생각이 든다. '부의 인간학'은 남기려는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의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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