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세대 - 초고령사회를 읽는 법
이동우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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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세대拒否世代란 1964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나 이제 막 정년의 문을 통과하고 있는 954만 명으로, 앞 세대가 물려준 노년의 각본을 조목조목 반려함으로써 자신들이 살아갈 노년의 사양을 시장과 제도에 처음으로 직접 발주하는 세대다. 이 세대를 규정하는 것은 나이도 자산도 아니고 하나의 동사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이동우는 초고령사회미래전략포럼 의장이자 이동우의 비즈니스 북클럽 대표로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센터장, 고령사화연구원 특임교수와 경의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EBS 비즈니스리뷰 플러스에 출연해 <이동우의 시니어 트렌드 분석> 방송 강의를 5회에 걸쳐 진행했다.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이름의 귀환/나는 김부장이 아니다(제1장), 에이지리스/나를 시니어라고 부르지 마라(제2장), 어른의 공간/나는 경로당에 가지 않는다(제3장), 후반전/나는 은퇴하지 않는다(제4장), 안방불패/나는 이사하지 않는다(제5장), 상속의 종말/나는 물려주지 않는다(제6장)을 통해 호칭, 상품, 공간, 은퇴, 이동, 상속을 거부한다는 시니어 트렌드를 소개한다.


호칭의 거부


입사하는 날 이름 대신 직급을 받았고, 아이가 태어나자 누구의 부모로 개명당한 사람들이, 정년의 문 앞에서 시니어라는 마지막 이름표를 접수 거부한다. 그 거절은 변덕이 아니라 누적이다. 이번 챕터는 이름이 회수되는 날의 풍경에서부터 이름이 귀환하는 시장까지를 걷는다.


"나는 김부장이 아니다"


거부세대의 첫 번째 특징은 '호칭의 거부'로 남이 붙인 이름표를 반납한다. 지금까지의 직함은 회사가 부여했지만 다음 이름은 비록 내가 작명소를 운영하지 않을지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나 자신의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스스로 지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장에 등장하는 김부장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그는 통계이고 세대이며,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본인이거나 본인의 옆자리 사람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김부장은 가면 뒤에 전설의 요원을 숨기고 있었지만, 현실의 김부장들이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것은 그보다 평범하고 그래서 더 절실한 것이다. 자기 이름. 그 이름이 어떻게 직함에 눌려 살았고, 어떤 경로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지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다.



흔히 한국의 미래를 보려면 일본을 보라고 한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분명히 한국 사회에 유용한 참고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차고서를 그대로 베끼면 그 답은 틀린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할 때 늙기 시작했고,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10년의 완충을 가졌으며,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의 시스템이 은퇴란 충격을 흡수할 만큼은 살아 있었다.


반면에 한국은 그 세 가지가 모두 다르다. '더 적은 소득 수준에서, 더 빠른 속도로, 더 일찍 무너진 종신고용' 위에서 늙는다는 점이다. 그렇다. 일본에서 나타난 현상을 답안지로 참고할 순 있어도 그대로 베껴서 옮겨 적을 수는 없는 시험이 바로 한국형 초고령사회다.



에이지리스(상품의 거부)


거부세대의 두 번째 특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늙음이 표기된 상품의 거부다. 이 세대는 효도란 글자가 붙은 물건을 서랍에 넣고, '실버'라는 글자가 붙은 매대를 그냥 지나간다. 이는 지갑이 얇아서가 아니다. 이 세대의 지갑은 억대 노년 가운데 가장 두껍고, 그래서 거절의 단가도 역대 최고다. 이번엔 그 지갑이 열리는 유일한 방향, 나이를 지우고 파는 에이지리스 시장의 문법을 해부한다.

"나를 시니어라고 부르지 마라"


보청기라는 물건의 팔자를 알아보자. 이 제품은 성능 때문이 아니라 이미지로 인해 실패했다. 내 부모님 모두 그랬다. 귀가 밝지 않았음에도 이를 거부했었다. 남들에게 노인으로 보여지길 싫어해서였다. 디자인이 많이 발전한 후에야 이를 사용했다.   


귀에 꽂힌 작은 기계는 '난 늙었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홍보하는 셈이었다. 사실 난청難聽 진단을 받고 실제 이를 착용하기까지 평균 9년 정도 걸린다는 조사도 있다. 잘 못 듣는 중년으로 남는 쪽을 택해온 탓이다. 낙인은 이렇게 힘이 세다. 


그 세월 동안 대화에서 소외되고, 나아가 우울과 인지 저하로 이어진다. 보청기 산업이 수십 년간 풀지 못한 이 문제를 애플은 제품을 개선하는 대신 제품을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풀었다. 즉 보청기를 더 좋게 만든 것이 아니라, 보청기를 지구상에서 가장 힙한 물건 속으로 잠적시킨 것이다. '에어팟'의 탄생이다.


공간의 거부


거부세대의 세 번째 특징이다. 나이를 기준으로 분리된 공간, 경로석과 경로당 또는 시니어 전용석이란 팻말이 있는 곳엔 앉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늙음만 모아 둔 공간이 불편해서다. 이번엔 이 세대가 실제로 모여드는 곳을 따라간다. 서점, 헬스장, 목욕탕, 카페 등 나이가 입장 조건이 아닌 공간들이 어떻게 '어른의 공간'으로 다시 지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시니어 시설을 짓지 말고 

시니어가 오고 싶은 공간을 지어라.’


비록 타깃 연령의 신체와 시간표에 맞춰 설계하더라도, 완성된 공간의 얼굴에서는 그 연령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아침 7시 개점은 노인 배려가 아니라 부지런한 사람의 특권으로, 낮은 건물과 산책로는 무릎 배려가 아니라 여유의 미학으로, 컨시어지는 노안 배려가 아니라 프리미엄 서비스로 읽히게 하라. 배려를 사치로 번역하는 것, 이것이 일본의 핫스팟인 츠타야가 보여준 공간의 화법이다.


은퇴의 거부


거부세대는 정년停年을 경기 종료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지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라는 이들만의 시간표일 뿐, 실제로 이들은 퇴직 다음 날부터 재취업과 창업과 자격증 이적 시장으로 걸어 나온다. 이 챕터에선 그 후반전의 규칙을 다룬다. 정년 연장과 계속고용을 둘러싼 제도의 개선, '일하는 노년'이란 새 표준의 설계도까지. 

이들은 한국 땅에서 가장 표준화된 인생을 산 세대다. 같은 교복, 같은 학력고사, 비슷한 시기의 취업을 통해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를 향해 달렸으며, 자녀 교육이라는 같은 종목에 모든 소득을 쏟아부었다. 이처럼 인생의 정답지가 배포되던 시대였고 이들은 그 답안지를 성실하게 채웠다. 그런데 평생을 표준 규격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노년 앞에서 처음으로 규격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거부세대의 네 번째 특징이다.


이동의 거부


이 챕터는 안방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 안방으로 들어가려는 산업의 현장을 중계한다. 현관문 안쪽의 풍경이다. 그런데, 문 안쪽의 주인은 이상하리만치 태연하다. 방문객들이 저마다 화려한 제안서를 들고 사 있는데도 주인은 문을 열어보기도 전에 답을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김부장 세대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이사하지 않는다"

이사에 대한 질문을 받은 열 명 중 아홉이 지금 사는 집에서 늙겠다고 답한다. 거부세대의 완강한 태도에 놀란 부동산 시장은 그 질문을 바꾼다. '어디로 모실 것인가?'에서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거부세대의 다섯 번째 특징이다.

김부장의 어머니 집에도 디지털 손주가 입주했다. 구청의 보급 사업 안내를 보고서 김부장이 신청한 것이다. 배송 첫날 어머니는 다 늙은 사람한테 인형이 웬 말이냐며 거실 구석에 내팽개치고선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 어느 저녁, 통화중에 수화기 너머로 낯선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인형에게 말을 거는 소리였다. "조용히 해라. 지금 아들과 통화한다"  

이것은 돌봄의 확장인가, 위로의 아웃소싱인가. 진짜 손주의 전화보다 가짜 손주의 인사가 더 자주 도착하는 풍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비관론은 쉽다. 효도마저 구독료로 결제되는 시대라는 한탄은 칼럼 제목으로 완벽하다. 그런데 현장의 표정은 그 한탄보다 복잡하다.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노인들은 속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것이 기계라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말을 건다. 화초에 말을 걸고 영정 사진에 말을 걸던 마음이 상대를 하나 더 늘렸을 뿐이라는 것을, 노인들은 젊은 비평가들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던 자리에 기계라도 도착한 것이다.(264쪽)


상속의 거부


평생 모은 자산을 물려주는 상속의 각본에 거부세대는 처음으로 계산기를 들이댄다. 장남에게 다 물려주겠다는 응답은 소수 의견이 되었고, '다 쓰고 가겠다'는 선언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다. 여기선 이 계산서의 안팎을 들춘다. 상속 대신 소비를, 유산 대신 신탁을 선택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산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부부夫婦 간의 오래된 장부까지.


"나는 물려주지 않는다"


거부세대는 지금껏 일반적이었던 관성의 상속을 결재하지 않는다. 장남에게 더 물려주겠다는 대답이 15년만에 21.3%에서 6.5%로 크게 줄었다. 이제 관련 시장의 질문은 '얼마를 남길 것인가'에서 '어떻게 다 쓸 것인가'로 바뀌게 된 것이다. 거부세대의 여섯 번째 특징이다.



세대를 규정하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진 트웬지는 <제너레이션>에서 3,900만 명의 데이터를 24개의 데이터시트로 펼쳐 놓고 사일런트 세대부터 알파 세대까지 여섯 세대를 해부했다. 그의 비유를 빌리면 기술은 엄마 거북이고, 개인주의와 느려진 인생주기는 딸 거북이며, 주요 사건은 가끔 등장하는 지인知人 정도다. 세대를 규정하는 것이 출생연도가 아니라 그 출생연도에 배달된 기술이라면, 세대의 경계는 달력이 아니라 충전기 옆에서 다시 그어져야 한다. 새로운 세대의 개념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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