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권력의 법칙 - 감정과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조직을 움직이는 법 서가명강 시리즈 46
이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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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인생을 뒤흔든 전환점은 누군가 그가 쓴 책을 진나라에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훗날 진시황이 되는 진나라 임금이 '고분'과 '오두' 편을 읽고는 “아아, 내가 이 사람을 만나 직접 교유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때 제나라의 직하학궁에서 한비와 동문수학했던 이사가 “이는 한비가 지은 글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진나라는 오직 한비를 얻기 위해 급히 한나라를 공격했고, 한비를 사신으로 보낼 것을 한나라에 요구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책의 저자 이강재는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논어>, <맹자> 등 동양 고전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왔으며, 강좌 '논어와 현대사회'로 전국 최다 수강생을 기록하며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는 등 대중들과 소통하는 대표적 고전학자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리더십은 인격이 아니라 설계다(1부), 감정을 지우고 시스템으로 장악하라(2부), 사람이라는 변수를 제거하는 기술(3부), 리더의 품격은 어디에서 오는가(4부) 등을 통해 한비자가 강조한 법의 기본 정신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한비자는 법가法家의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인데, 이전에 법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단연코 상앙(기원전 390~ 기원전 338년)이다. 상앙은 '상군商君'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사마천은 <사기>에서 '상군열전'을 따로 둘 정도로 행적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앙은 위나라 군주의 후궁이 낳은 아들로 성은 공손, 이름이 상鞅이다. 당시엔 위魏가 최강국이었고 혜왕惠王이 군주였는데, 재상 공숙좌의 천거에도 불구하고 나라 일에 중용하지 않았다. 워낙 상앙의 능력이 출중한 탓에 중용하지 않을 바엔 죽여서 후환을 미리 없애라는 공숙좌의 건의까지 있었고, 심지어 이를 상앙에게도 알렸다. 그럼에도 상앙은 중용하지 않으면 죽이지도 않을 거라고 판단하고 타국으로 도피하지 않았다.


스승인 공숙좌가 사망한 후 상앙은 진나라 효공이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나라로 입국해 효공을 섬기게 되었다. 그는 법률에 근거한 통치를 강조하며 법령을 제정했다. 법령엔 전국을 열 집, 다섯 집 단위로 조직해서 상호 감시, 적발토록하는 연좌제와 고발하는 사람에겐 포상을 하고 고발하지 않은 사람에겐 동일한 형벌을 주는 제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법 시행 초에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상앙이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3척 길이의 나무를 성城의 남문 부근에 세워놓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면 거금인 열 금을 주겠다고 공고했다. 이를 아무도 믿지 않자 이후 오십 금으로 인상, 마침내 한 인물이 이를 옮기자 정말로 상금을 주었다. 이에 백성들은 나라가 내건 약속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상앙은 한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인격이 훌륭한 리더는 왜 실패하는가?


대부분의 인간들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리더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 본연의 속성을 결코 벗어날 수 없기에 그렇다. 이렇게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기분에 휩싸여 변덕을 부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먼저 헤아릴 수 있을 법하다.


이렇듯 불완전한 리더의 판단에 기댄 정치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를 미리 깨달은 한비자는 사람 중심의 통치인 '인치人治'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객관적인 시스템인 법에 의한 통치인 '법치法治'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한비자의 통치술이다.  


한비자 '괴사詭事' 편에 따르면, 현실 세상은 늘 올바른 정치의 길과 거꾸로 돌아간다. ‘괴사’란 일이 상식과 완전히 어그러져 부조리하게 뒤틀린다는 의미로, 시스템이 무너진 조직에서는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윗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는 성실하고 충직한 사람이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고루하고 융통성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윗사람을 가볍게 여기고 법령을 교묘히 무시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영악한 자들이 ‘유능하고 충직하다’며 칭송받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형벌과 규율을 두려워하지 않고 멋대로 날뛰는 무법자들이 조직을 위한 열사로 추앙받고, 말만 번지르르할 뿐 현실에선 아무런 쓸모도 없는 자들이 포부 큰 대인으로 과대평가받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라 지적했다. 이는 마치 현재의 한국 정치판을 보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진짜는 없고 사이비만 득세를 하는 이런 풍토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보상과 책임은 어떻게 권위를 만드는가


한비자의 통치 철학에서 부국강병을 이루고 군주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수단은 '술術'이며, 술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가 바로 상과 벌을 적절하게 주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리더의 손아귀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중형重刑을 내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사람에게 고통을 주려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저지른 간악한 죄를 초기에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온 나라에 사악함이 퍼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고도의 통치술이다. 만약 형벌이 가볍다면 백성들은 책임을 묻는 군주의 권위는 물론 사회 질서를 얕보고 서슴없이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또 무서운 형벌로 백성들의 범죄를 사전에 적극적으로 막지 않다가 죄를 범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을 처벌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백성을 잡기 위해 교묘하게 함정을 파놓고 그들을 궁지로 내몰아버리는 짓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바로 한비자의 주장이자 정당하다는 발언인 셈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들은 그 법을 깨부수고 이상한 법을 만드는 데 혈안인 정치 집단을 목도하고 있다.

나라를 개혁하거나 회사를 개혁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권력자가 개혁을 원하지 않으면 현실적인 벽에 막혀 좌절되고 만다. 이미 한비자가 위나라에 경험했듯이 개혁을 주장하는 법술지사와 반대편에 서 있는 중인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관계였다. 즉 문고리 권력인 중인들이 법술지사를 군주에게 추천할리 만무하다. 중인의 권세는 날로 강해지고 군주의 비위를 맞추며 조직의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법술지사는 오히려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무너지는 조직은 언제나 '예외'를 적용해왔다

많은 리더들은 안정성을 내세우며 유연성이란 유혹이나 함정에 빠진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철퇴를 가한다. 즉 원칙에 위배되는 한 번의 예외例外라도 용인되는 순간, 나라의 통치 시스템은 붕괴의 길로 접어든다고 생각했다. 원칙보다 관계가 우선되고 감정이 기준보다 앞설 때 구성원들은 더 이상 원칙을 신뢰하지 않고 덩달아 리더의 권위도 힘을 잃기 때문이다.

타인의 평판만을 근거로 능력자라 판단하여 높은 자리에 올리는 예외를 허용하게 되면 조직은 흔들릴 수 있다. 타인이 칭찬한다고 상을 주고 비방한다고 벌을 주다 보면, 상을 좋아하고 벌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상 사람들은 마땅히 해야 할 공적인 행동은 버려두고 사적인 뜻으로 패거리를 형성하는 데 몰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땅에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정치 패거리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듯 싶다. 아무튼 이렇게 관리를 등용하게 되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오직 서로 사귀고 인맥을 관리하는 일에만 힘을 쏟을 뿐 규칙을 따르려고 하지 않게 된다. 결국 망하는 일만 남게 될 뿐이다.

일류 리더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의 지혜를 이용한다

조직이 위기에 처하거나 성과가 부진할 때, 흔히 리더들은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실무 현장에 뛰어든다. 리더 본인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많이 알고, 충분히 잘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훌륭한 리더십의 최종 기착지는 '내가 없어도 되는 조직'을 완성하는 데 있다.

한비자는 '팔경八經' 편을 통해 리더의 수준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하급의 군주는 자기 능력을 다하고, 중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쓰고, 상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가져다 쓴다고 말했다. 즉 삼류 리더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짜낸다고 이를 고갈시키는 반면, 일류 리더는 남이 가진 지혜를 최대한 끌어다 쓴다.  

한비자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많은 사람을 당하지 못하고 한 사람의 지혜로는 모든 것을 다 파악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 리더 한 명이라도 세상의 복잡한 모든 변수와 실무를 통제할 길은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유능함에 기대어 조직 전체를 끌고 가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쓰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삼류 리더가 스스로 모든 것을 챙기느라 혼자서만 지쳐갈 때, 진정한 일류 리더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구성원 각자의 지혜가 발휘되도록 판을 깐다.

법과 사람은 공존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법률의 가치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 중에 있다. 심지어 법률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마저 있다. 시대에 걸맞는 법률적 판단의 주체는 국민(시민)이어야 한다는 비교적 설득적인 주장도 있다. 한비자가 살던 전국시대는 군주의 권한이 절대적으로 집중되어 전쟁이 빈번해 백성의 삶은 매우 피폐했다. 민주적 원칙이라곤 없었다. 따라서 한비자의 이론을 현대인의 삶과 사법 시스템에 대입하긴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법가 사상은 사회 질서 확립에 있어 즉각적인 효율과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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