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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가 마음을 읽어줄 때 - 주인공부터 악당까지 동화 속 인물들이 들려주는 심리 처방
류혜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우리는 어린 시절 동화를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교훈으로만 읽었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거나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심리학을 공부하고 우연히 동화를 다시 읽어보니, 그 안에는 권선징악 식의 교훈으로 한정될 수 없는 인간의 마음과 삶에 대한 놀라울 만큼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의 저자 류혜인은 심리상담전문가로 내담자들과 함께 마음의 길을 찾는다.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상담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충주시의 한 중학교에서 전문 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여러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왔으며, 제9회 Wee 클래스 상담 우수 사례 공모전에서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총 2부로 구성된 책은 해로운 감정을 물리쳐주는 동화(1부)에선 나 자신과의 관계를 다룬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부정적 생각과 거리 두기,고통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선택하기, 문제와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기 등을 살펴본다.
이어서 세상과 나의 관계를 가꾸는 동화(2부)에선 인간관계를 비롯한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건강한 관심과 인정, 진심어린 소통, 공감과 이해, 왜곡된 믿음, 적절한 경계, 돌봄의 균형, 사람과 집착의 차이까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지혜를 통화를 통해 풀어간다.
성냥팔이 소녀 구하기
어느 추운 겨울의 연말, 사람들은 종종 걸음으로 귀가길을 재촉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따스한 집안 분위기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이런 의미 깊은 날에 한 소녀가 추위에 떨며 길 위에 서있다. 작은 손 가득 성냥을 들고서 외친다. '성냥 사세요'
그렇지만 사람들 대부분 이 소리를 외면한다. 그때 마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지나치는 통에 깜짝 놀란 소녀는 급히 몸을 피한다. 신고 있던 큰 신발이 벗겨져 맨발이 되고 말자 한 장난꾸러기 소년이 신발을 집어 들고는 '너무 커서 아기 침대로 써야겠다'고 놀리면서 신발을 갖고 줄행랑을 쳤다. 차가운 눈길을 걷는 소녀는 맨발의 고통보다는 성냥을 팔지 못해 야단칠 아버지의 꾸지람이 더욱 마음 아팠다.
이 스토리는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중 한 부분이다. 이 소녀의 팔자는 참 기구하다. 어머니도 없이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고함과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 시도하지도 않는다. '학습된 무기력'인 셈이다.
저자 또한 이 동화를 통해 '고통'과 '괴로움'을 살펴본다. 소녀는 어릴 적부터 친모가 없는 가운데 친부의 폭력에 노출되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성장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소녀가 겪은 고통은 바로 아동기의 학대 경험인 것이다. 즉 공포, 슬픔, 수치심, 무기력 등을 느끼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므로 이렇게 살 수밖에'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또 소녀는 이같은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나 대처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비록 이곳을 탈출한다 해도 자신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슬픈 하루하루가 지나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에게 가해진 괴로움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성냥에서 환각幻覺을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 성냥을 켰을 때 따뜻한 난로를, 두 번째 성냥불에선 맛있는 저녁 식사를, 세 번째 성냥불에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본다. 환각 속 모습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더욱 슬픈 것은 마지막 성냥불에서 죽은 할머니의 환영幻影을 보고서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슬픈 현실보다 행복한 환각을 쫓은 소녀는 결국 길거리에서 죽고 만다. 내 어릴 적 동화를 읽을 땐 단순히 '슬프다, 불쌍하다' 등의 감정이었는데, 성인이 되어 자세히 뜯어 보니 다양한 심리 상태가 발견된다.
현실적으로 아동 학대를 주변에서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를 모를 뿐더러 집에서 발생한 실제 상황을 외부인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이 잘못되면 맞거나 혼난다는 선입견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는 태국 여행지에서 만난 어린 코끼리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족쇄가 풀릴지라도 이미 고착된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아이의 성장에 힘을 보태고 지켜봐야 한다.
피노키오와 거짓말
세 번째 거짓말을 하자 피노키오의 코는 방 안을 채울 듯 길어졌습니다. 이쪽으로 돌리면 침대나 유리창에 부딪혔고, 저쪽으로 돌리면 벽이나 문에 부딪혔습니다. 살며시 고개를 들면 코끝이 요정의 눈을 찌를 정도로요. - 카를로 콜로디, <피노키오> 중에서
목수 제페토가 만든 나무 인형 피노키오의 코는 거짓말을 하면 길어진다는 동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불완전한 존재가 실수하고 넘어지면서 점점 성장해 가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피노키오 자체를 '거짓말'로 상징화 내지는 카테고리화한다면 마치 '너는 문제아야'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아이덴티티를 붙이는 격이 된다. 이렇게 한 개인의 인격을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장래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형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피노키오의 성장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거다.
피노키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을 자주 혼내던 주인장 제페토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바다로 뛰어드는 용기를 발휘하기도 한다. 말썽만 부리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책의 저자 또한 이런 점에서 작품 피노키오를 '이야기 치료'의 재료로 활용한다고 말한다. 이 치료의 핵심은 다른 삶의 대안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니까.
이야기 치료를 통해 우리는 실수를 하더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준다. 과거의 실수가 앞으로의 길목을 일방적으로 막는 결정적 이야기가 아님을 말이다. 동화의 마지막에 피노키오가 '진짜 인간'이 되는 장면은 그래서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오는데, 마치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 같아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빨간 머리 앤과 분노 표출
주근깨 많은 얼굴에다 머리는 홍당무처럼 빨간 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로 비춰진다. 린드 부인의 일방적인 외모 평가에 대해 예의 없는 뚱보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홍당무라고 놀리는 길버트의 머리를 석판으로 내리치거나, 잘못도 없는 자신에게 야단을 친 선생님에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니까 말이다. 앤은 자기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실 앤의 분노 표출은 자신은 그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나아가 스스로를 지키도록 돕는 감정 표현이다. 이는 잘못된 감정은 아니다. 분노는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며 기쁨, 즐거움 등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감정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그 분노가 지나치거나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선 분노는 자신에게 쏘는 화살이라고 가르친다.
동화 속의 길버트는 앤에게 계속 사과를 하며 화해를 청한다, 그럼에도 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몇 년간 아예 말도 걸지 않는다. 이런 강한 분노 표현은 화해나 이해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므로 소통의 통로가 꽉 막히는 형상 그 자체다. 앤에게 외모 비하 발언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행동치료'엔 '냉동복식'이란 치유법이 있다고 한다. 이는 앤처럼 감정에 따라 즉각 행동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낄 때 이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치유 방법이다. 이를 풀이하면 '냉冷'은 차갑게, '동動'은 운동을, '복식腹式'은 복식호흡을 뜻한다.
흥미롭게도 자기 결정성 이론(by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 & 리처드 라이언)에 따르면 앤은 자신에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해 내고, 주어진 상황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스스로 직접 결정하는 높은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는 해석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존감'과도 관련이 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만 줄이려 한다. 이밖에도 책은 신데렐라, 아기 돼지 삼형제, 인어공주, 피터팬, 미운 오리 새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빨간 구두, 지칼 앤 하이드, 어린 왕자, 101마리 달마시안, 양치기 소년, 미치광이 왕국, 왕자와 거지, 썩은 사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백설공주, 행복한 왕자, 장화 홍련, 해와 바람, 개미와 배짱이, 미녀와 야수 등의 동화 이야기가 소개된다.
동화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동화 속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삶에 등장할 수 있는 주제들을 뽑아 이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고 나아가 이를 카타르시스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각자의 살아온 삶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듯이 책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결국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인 것이다.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 속 한줄)
이상한 나라를 탐험하는 동안 앨리스 곁에는 보호자가 따로 없었다. 이런 점이 오히려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을 수 있다. 스스로 경험하며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일 옆에서 이렇게 해라, 저쪽 길로 가라고 정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모험이 끝났을 때 앨리스는 그만큼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길을 헤매는 것도 나의 세계로 가는 여정이다' 중에서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하게 된 계기는 심심해서였다. 양치기 소년은 목장에서 양떼를 지키며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스트로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이 걱정하며 처음으로 달려왔을 때, 양치기 소년은 자신을 향한 관심과 인정 같은 긍정적인 스트로크로 느꼈을 수 있다. - '건강한 행동이 진정한 관심과 인정을 부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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