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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이 책은 특히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읽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풍요를 이뤘지만 동시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과 사회문제가 될 정도의 번아웃, 치열한 경쟁의 그늘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나라. 우리는 물질의 결핍은 상당 부분 극복했지만 여전히 ‘의미의 허기’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래서 저자들의 경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과 만나지 못한 풍요는 붕괴로 향하고, 지혜와 만나지 못한 지능은 멸종으로 향한다. 진보나 발전이란 결국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속도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새겨야 할 명제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책의 공저자 피터 디아만디스는 미래학자이자 혁신기업가로, AI·우주·헬스테크를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25개가 넘는 기업을 설립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분자유전학과 항공우주공학 학위를,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엑스프라이즈 재단 설립자 겸 이사장이며, 구글과 NASA 등이 후원하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교육기관 싱귤래리티 대학교의 학장이다.
공저자 스티븐 코틀러는 과학 전문 작가로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다수의 상을 받은 기자이기도 하다. 위스콘신 주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 기반 퍼포먼스 연구·교육 기관인 '플로 리서치 콜렉티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아홉 개 장에 걸쳐 인간, 신의 영역에 닿다(제1장), 풍요의 기적과 6D(제2장), 데이터로 보는 풍요의 증거(제3장), 인간보다 10억 배 더 똑똑한 존재(제4장), AI와 기술 융합이 만드는 새로운 문명(제5장), 풍요의 디스토피아(제6장), 인간의 세 가지 무기(제7장), 우리는 안드로이드다(제8장), 낙원의 문 앞에서(제9장) 등을 통해 초풍요 시대의 모습과 함께 우리들이 어떻게 이에 대응해야 할지에 관해 화두를 던진다.
기적 속에 살지만 체감하지 못한다
유추는 뇌가 새로운 것을 익숙한 것으로 압축하는 수단이다. 세상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기 시작할 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오랜 인지적 도구(구조 매핑)는 현대 기술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의 비교 장치는 쉽게 빗댈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호주머니에 든 신과 같은 힘을 무엇에 빗댈까? 비교할 기준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간다는 감각, 즉 인지적 현기증을 느낀다. 변화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헤쳐 나갈 수 없을 때 우리는 신화를 통해 진보를 이해한다. 유추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인간은 더 깊은 패턴을 찾아나선다. 이는 일종의 메타-유추 또는 정신과 의사 카를 융이 말한 ‘원형’(archetype)에 해당한다.
세상에 원형이 넘치는 이유는 기적이 넘치기 때문이다. 한 예로 구약성서에 나온 기적 중 창조의 기적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합성생물학과 유전공학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창조하거나 기존 생명체를 변형變形한다. 3D 프린팅은 한 층씩 재료를 쌓아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생성형 AI는 새로운 경제, 종교, 사회를 형성하는 자율형 에이전트로 가득한 가상 세계를 창조한다.
융의 정의에 따르면 원형은 유전을 통해 인류의 집단무의식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사고, 이미지, 관념의 패턴이다. 원형은 원초적 상징으로서 여러 문화와 세대에 걸쳐 강력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영웅, 그림자, 위대한 어머니, 늙은 현자 같은 인물상은 우리의 신화 속에서 구체화되고 꿈속에서 현현하며, 우리의 예술 속에 형체를 갖춘다. 또한 자아와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류의 서사를 바꿔나간다.
풍요는 미래다
이미 시작된 풍요는 양날의 검이다. 엄청난 장점과 더불어 대단히 실질적인 단점도 있다. 우리의 결론은 단순하다. 풍요는 우리의 미래다. 다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다.
풍요의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완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속하는 기술의 혜택은 문명을 보호하기에 충분치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창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 책의 초점이다. 책은 가속화 시대에 번영을 누리기 위한 청사진이다. 또한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여정을 위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풍요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 시대는 당도해 있다. 책의 공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풍요의 규모가 놀라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풍요의 6D
1단계, 디지털화~ 컴퓨터 코드로 바꿔 디지털화
2단계, 잠복기~ 코드로 바뀐 기하급수적 성장은 눈에서 사라짐
3단계, 파괴적 혁신~ 기하급수 기술은 파괴적 혁신의 시작
4단계, 무료화~ 저렴한 것은 더 저렴해지거나 공짜가 됨
5단계, 소멸화~ 형체가 있던 것이 갑자기 사라짐
6단계, 대중화~ 폭넓은 확산
AI를 이해해야 미래를 이해할 수 있다
이미 AI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풍요의 동력원이 됐다. 2022년 매킨지는 AI 기반 자동화가 세계 경제에 2조 달러의 가치를 더했다고 추정했다. 프라이스 워터 쿠퍼스는 이 수치가 2030년에는 15조 7,000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의료 분야에서 AI는 진단 기술을 향상시켰다. 구글의 딥마인드 같은 시스템은 유방암 진단에서 90퍼센트가 넘는 정확도를 달성했다. 또한 엑시엔티아(Exscientia) 같은 플랫폼을 통해 신약 개발 기간을 다섯 배에서 10배까지 단축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AI로 최적화된 스마트 전력망이 이미 주요 대도시에서 정전과 낭비를 25퍼센트 줄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농업 분야에서는 '블루 리버 테크놀로지' 같은 AI 기업이 수확량을 20퍼센트 늘렸고, 농약 사용률을 90퍼센트 줄였으며, 캘리포니아처럼 가뭄에 취약한 지역에서는 물 낭비를 50퍼센트 줄였다. 이 모든 이유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이유들로 볼 때, AI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를 이해할 수 없다.
AI와 휴머노이드 융합,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AI로 구동되는 인간형 로봇 50여 종이 곧 선보일 예정이다. 아마존은 애질리티 로보틱스와 손잡고 배송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 조성된 '휴머노이드 파크'에서 시범 운용 중이다.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리비안 전기 자동차에서 로봇이 뛰어내려 집까지 택배를 배달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IX 테크놀로지스의 네오는 신장 약 168센티의 인간형 로봇으로, 식탁 정리부터 세탁까지 다양한 집안일을 돕기 위해 빠르면 2026년부터 우리 가정에 들어오게 될 전망이다.
인간형 로봇의 확산은 일회성 제작에서 대량 생산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로봇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준비가 돼 있다. AI, 구동 기술, 배터리 효율이 발전한 덕분에 2020년 이후 제작 비용이 50% 이상 감소했다. 테슬라는 인간형 로봇의 단가를 약 2만 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가격대가 유지된다면 광범위한 보급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설계된 중독
풍요는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핀 돌파구들 뒤엔 점점 커져가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 문제들은 기하급수적 가속의 의도치 않는 결과라는 새로운 범주를 이룬다. 부록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풍요의 증거들로서 우리가 결핍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른 유형은 풍요의 어두운 면을 반영한다. '모어의 법칙'에 딸린 단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의도치 않은 결과(최상위 목록)
기후 위기
비만 유행
약물 남용 및 과용
정신 건강 위기 및 정보 과부하
미세플라스틱과 영구 화학물질
인구 변동성
빈부 격차 확대와 정치적 양국화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붕괴
잠재하는 팬데믹과 바이오 테러의 위협
AI의 위험
풍요의 시대는 곧 중독의 시대다. 이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도 아니다. 인간의 주의를 붙잡도록 설계된 모든 것(화면,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게임, 합성 마약)이 동시에 기하급수적 성장 곡선에 올라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AI는 우리의 강박적 행동을 추적하고 조정하고 확장했다. 우리는 효능 극대화와 비용 최소화를 위해 화학적으로 설계된 인공적 쾌락을 쏟아내고 있다. 알고리즘, 실험실, 시장의 힘,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뇌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했다. 이는 세계적 규모로 쾌락을 전면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소셜 미디어가 첫 번째 물결이었다. 원래 사람들을 연결하는 도구로 홍보됐던 소셜 미디어는 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했다. 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구축된 플랫폼은 중독을 가속하는 도구가 됐다. 인스타그램, 구글, X,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는 가끔 찾아오는 지루함마저 끝없이 이어지는 콘텐츠로 대체했다. 진정한 소통의 자리를 디지털 인정 욕구가 차지했다. 그러던 와중에 AI가 등장했다. AI는 습관을 강박으로 바꾼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갖고 우리를 추적했다. 그 결과 편향된 관점이 강화됐고, 분노가 증폭됐으며, 비교는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산만함은 의존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우리는 정신 질환의 바다를 표류하게 됐다.
몰입은 AI 시대 인간의 경쟁력이다
인간은 원래 수평적 사고 능력을 타고났다. 게다가 몰입까지 한다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게 더 중요한 점이다. 왜 그럴까? 몰입은 수평적 사고, 즉 서로 관련 없는 아이디어들을 기발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증폭하기 때문이다.
이는 AI에 부족한 능력이다. '아홉 점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3 X 3 정사각형 형태로 배열된 9개의 점을 떠올려보라. 연필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4개의 직선만으로 모든 점을 연결하는 것이 과제다. 제한시간은 10분이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는 가정 때문이다. 선이 반드시 정사각형 틀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가정 말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이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풀지 못한다.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사람만 정답을 맞힌다. 하지만 시드니대학교 연구자들이 '경두개 자기 자극'을 통해 사람들을 몰입 상태로 유도하자 정답을 맞히는 확률이 58%나 상승했다. 말하자면 수평적 사고 능력이 엄청 증가한 셈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수평적 사고는 AI에 부족한 능력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연역적 추론을 통해 비슷한 것끼리 연결하는 수렴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덕분에 AI는 효율성, 속도, 순수 계산 능력에서는 뛰어나다. 그러나 엉뚱한 아이디어 사이를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도약에서는 한계에 부딪힌다.
인간이 몰입 상태에서 AI와 협력하면 새로운 것이 나온다. 정밀함과 상상력이 결합된다. 논리와 수평적 통찰이 결합된다. 이것이 바로 일의 미래를 말해주는 진정한 이야기다. 인간 대 기계의 싸움이 아니다. 몰입 상태의 인간은 기계와 협력한다.
목적 없는 풍요는 붕괴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교외 지역이 번영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꽃을 피웠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정신보건 연구소에서 존 칼훈이라는 동물행동학자가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시작했다. '모든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는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는 연구 목적으로 설치류 서식지를 20개 넘게 만들었다. 그중 모든 것의 정점은 '유니버스 25'였다. 낙원이 감옥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드러내기 위해 설계된 완벽한 세계였다.
유니버스 25는 생존과 안락함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포식자도 없었고, 질병도 없었으며, 결핍도 없었다.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리는 삶이 주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디스토피아였다. 칼훈은 나중에 이를 ‘사회성의 죽음’(death of the social)이라 불렀다.
1972년 그는 연구 내용을 정리한 논문 <쥐 개체군의 폭발적 증가와 붕괴>를 발표했다. 그가 내린 결론을 곱씹어볼 만하다. 즉, “인간처럼 복잡한 동물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련의 전개가 종의 멸종으로 이어지지 않을 논리적 이유는 없다.”였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최종적인 개체 수 감소가 아니었다. 개체 수가 과밀한 상태라면 그런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진정 충격적인 부분은 그 원인이었다. 그의 유토피아를 무너뜨린 것은 굶주림도, 질병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적 유대와 사회적 행동의 완전한 붕괴였다. 이 생쥐들은 모든 육체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잃었고 결국에는 생존 능력 자체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그렇기에 그 역할을 잘해내야 한다."
이는 1968년 '홀 어스 카탈로그'에서 스튜어트 브랜드가 한 말이다. 책을 통해 풍요의 시대로 전환해온 과정을 우리들은 읽고 알 수 있었다. 이제 우리들 앞에 남겨진 숙제가 있다. 앞으로의 미래는 길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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