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
이은실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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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적어 내려간 글들은 어느새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위해 시작한 글이 아니었는데, 가장 먼저 나를 다독인 것은 내가 써 내려간 문장들이었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의 저자 이은실은 27년간 삼성생명에서 보험심사, 고객상담, 영업, 교육과 코칭, 강의 등 다양한 역할을 통해 많은 사람의 불안과 삶의 전환점을 지켜보았음에도 정작 자신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 예상치 못한 퇴사로 비로소 처음으로 '나'를 마주했고, 스스로 회복의 길을 찾아나갔다. 책은 바로 그 과정의 기록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인정과 회복(1부), 색채와 감각(2부), 미각과 온기(3부), 실천과 지속(4부)에 걸쳐 마흔 가지 이야기를 통해 나를 다시 껴안는 시간,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온도, 밥상 앞에서 만나는 위로, 습관을 바꾸는 일상의 리듬 등에 대해 이야기를 펼친다.


괜찮은 척하다


저자의 갑작스런 퇴사 소식에 회사 동료와 선배들의 연락이 잇따랐다. 대부분 걱정과 인부였다. 평소 마음이 잘 통했던 동료완 서로 울먹이며 대화를 나누었고, 선배에겐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통화를 마칠 때마다 "과연 내 감정이 저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판 관리가 중요함을 조언했던 상사의 말이 오래 마음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사람들 앞에서도 저자는 괜찮은 척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저자의 어머니는 작은 키에 몸이 왜소한 딸이 놀림받을까 봐 걱정했고, 입학 후에도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는 저자를 애늙은이로 만들었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실제로 뭔가 나쁜 일을 당해도 안 그런 척을 했다.


나 또한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부잣집 자식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살던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온 집안 물건에 차압 딱지가 붙을 정도로 아버지 사업체는 쫄딱 망했다. 그해 겨울 난 친척 집에 기거하며 국민학교를 마쳐야만 했었다. 어머니는 데리러 올 때까지 친척 어른 말씀을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눈칫밥을 먹으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감수하며 지냈던 1년 여의 시간이 그토록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진짜 감정과 마주하는 4단계


1단계, 가장 오래 머문 감정 하나 적기

2단계, 그 감정에 이름 붙이기

3단계, 그 감정을 느낀 핵심 이유 써보기

4단계, 그 감정에게 다정한 메시지 건네기


            

마음을 살리는 아주 작은 응급처치    


우리는 흔히 ‘위로’를 거창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위로는 현실에서 자주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위로는 아주 작다. 지나가듯 건넨 말, 무심코 마주친 풍경, 가벼운 터치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 작은 순간들이 마음을 붙잡아주고 하루를 버틸 힘을 준다.


저자는 마음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보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들판에 핀 야생초라고 생각했다. 억지로 뽑아내려 하면 오히려 마음이 다치지만, 그냥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면 하나의 멋진 풍경이 된다. 잡초를 보며 ‘지금은 이런 풍경이구나’ 하고 지나가는 태도, 내 감정에 거리를 두는 태도가 곧 회복의 시작이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마음은 그 뒤를 따른다.

색으로 관계를 여는 방법

색을 다각적으로 경험하라
색의 온도와 분위기를 활용하라
색을 언어로 불러내라
색을 관계의 매개로 사용하라
색과 꾸준함을 결합하라



좋아하는 색과 행복해지는 색

좋아한다는 것과 행복해진다는 것은 분명 다르다. 누군가 좋아하는 색은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연두색이라고 즉답할 것 같다. 그런데, 또 연두색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달라질 것 같다. 사실 꽃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특히 등나무, 무스카리, 비비추, 붓꽃, 산수국 등의 보라색 꽃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음식과 행복해지는 음식도 엄연히 다르다. 이는 기억이나 추억의 감정 탓일 것이다. 난 대학시절 사귀던 여학생과 첫 데이트를 한 후 연인관계로 성장했는데, 보통은 입에 묻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짜장면을 같이 먹고 하지 않는다지만 나의 연인은 데이트하는 날이면 늘 짜장면을 먹자고 했다. 이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 나를 배려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색은 파랑(36%), 검정(29%), 노랑과 초록(각 28%) 순이다. 반면 갈색(5%), 자주색(6%)은 선호하지 않는 색의 상위권이다. 이처럼 특정한 색이 누군가에게는 매혹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색과 감정의 연결성이 무척 흥미롭다.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색으론 남녀노소 상관없이 노랑(48%)이 압도적인 반면, '슬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으론 회색(34%), 검정(32%)이 꼽혔다. 아무튼 색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심리 상태와 깊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학적으로 색은 호르몬 분비와 심박수 등 감정 조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활력을 찾아서

내 몸이 아프면 우린 즉각 반응한다. 열이 심하고 기침마저 수반하면 바로 병원으로 향한다. 이렇게 증상이 명확하면 이에 대처하는 대응법 또한 분명해진다. 그런데, 마음에 찾아오는 감기는 다르다. 무력감, 허무함, 불안 등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식의 미온적인 대응에 그치기 일쑤다. 그래서 대체로 마음의 감기는 몸의 감기보다 더 오래간다. 따라서 효과적인 대응은 오히려 선제적인 예방이 요구되는 셈이다.

활력을 찾기 위해선 잘 먹는 것이 최고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보양식, 활력식 등에 대해 지혜를 갖춘 혜안慧眼이 있었다. 이를 DNA로 물려받은 우리 후손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의 눈에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식사에 대해 어리둥절할 수밖에.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왜 뜨거운 음식을 먹느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처음엔 억지로 먹어본 이 음식의 매력에 빠져든 재한 외국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 음식은 몸에 활력을 채워주고 나아가 막혔던 마음을 뻥 뚫어주는 처방전이 된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단 한 번의 회복으로 완치될 리 없다. 왜냐하면 우울감과 불안감이 또 찾아올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조짐이 보이기라도 하면 활력을 찾아주는 음식으로 대응하는 선제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최근에 찾아온 여름날의 폭염은 나에겐 매우 힘든 고비였다. 체력과 영양이 부족한 독거 노인에겐 이를 뿌리칠 면역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이다. 외출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집에 머물며 독서로 소일하는 가운데 내 몸의 피곤함이 갈수록 심해졌다. 더구나 집안에 에어컨도 없이 실내의 뜨거운 공기를 선풍기 1대로 식히기엔 역불급이었다. 

점점 입맛도 떨어지자 식사도 건너뛰기 일쑤였다. 허기는 대충 물로 채웠다. 그나마 작은 냉장고가 차가운 물을 공급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물에 의존하던 몸은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어지러움과 꾸역질로 인해 결국 몸져 눕게 되었다. 뜨거운 바람만 내뿜는 선풍기에 의지한 채 이부자리에 누워 한동안 이렇게 숨만 쉬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발걸음이 뚝 떨어진 노인의 안부가 궁금했던 동네 편의점 사장이 내 집을 방문했다.  

내 몰골을 보고선 바로 나를 동네 병원까지 승용차로 데려가 주셨다. 의사는 더위 먹은 증상이라며 이에 대한 응급처치와 함께 회복에 필요한 약 처방까지 해주었다. 워낙 내 몸이 허약한 탓인지 몸을 회복하는 데 약 2주 정도 소요된 것 같다. 한 낮 더위를 이겨내라고 동네 상가의 피씨방으로 나를 실어 날라 준 것도 부족해 묵밥, 냉모밀 등 찬 음식과 삼계탕과 추어탕 등 보양식을 공급해준 단골 가게 주인의 따스한 정이 나를 살린 셈이다.



다시, 정장을 꺼내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2년 넘는 동안 회복에 주력하던 저자는 때로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지만,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더욱 단단한 내면 근력을 키울 수 있었다. 정장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딸의 말을 상기하면서 저자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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