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번은 오디세이아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지키는 고전 수업
샘 아크바 지음, 박미경 옮김 / 부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디세우스 역시 불확실성과 상실을 마주하고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흔들리는 정체성 사이로 항해하며, 마침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가는 과정이다. (중략)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결코 곧게 뻗어 가지 않는다. 빙빙 돌아가고 엇나가고 무너진다. 하늘 끝까지 치솟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지옥 같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낙원이 족쇄가 될 때

오디세우스가 타고 귀국길로 향하던 배는 난파당하고 그는 나홀로 오기기아섬에 떠밀려 왔다. 이곳에서 그는 여신 칼립소의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칼립소란 '숨기는 자'를 뜻하듯이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섬에 붙잡아 두고 남편으로 삼고자 했다. 그렇기에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를 만나러 떠나지도 못한 채 무려 7년이나 이 섬에서 지내야만 했다.  

칼립소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제안을 한다. 바로 '불멸과 젊음'이다. 나이를 먹지 않는 불멸이기에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여신과 함께 낙원과 같은 섬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를테면 늙지도 죽지도 않고 끝없는 만족만이 이어지는 삶이다.

어쨌든 몸매는 내가 그녀보다 낫잖아요.
키도 더 크고,
아름다움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불멸의 존재를 뛰어넘을 수는 없으니까.
- <오디세이아>5권, 211~214행 

이는 성취와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오늘날의 사회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그리고 집요하게 현대판 칼립소의 거래를 제안받고 있다. 위로와 쾌락을 줄 테니, 진짜 나 자신을 내놓으라는 제안이다. 

아무튼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쾌락을 뿌리치고 자신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즉 집과 가족이란 정체성을 끝까지 놓치 않았다. 이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뗏목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라고 했다. 탈출이 절실한 순간임에도 그는 덥썩 이 제안을 물지 않는다. 속임수와 배신의 경험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결국 그는 나무 스무 그루를 베어 다듬어서 돛대와 가로대를 만들고 키를 달았다. 또 틈새를 메워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뗏목을 만들었다.   

함께할 선원, 나를 지탱해 줄 관계

바다로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디세우스의 뗏목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분노한 포세이돈의 짓이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한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려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할 사람은 오직 자신 뿐임을 직시한다. 뗏목 널판지를 부여잡고 파도에 떠밀려 가까스로 도착한 곳은 파이아키아의 해안이었다. 이곳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과연 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라는 절박한 질문 앞에 섰다. 이곳은 안전한 피난처일까, 아니면 여기서 나홀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해야 할까.

이번에 다다른 곳은 어떤 나라일까?
여기 사람들은 모두 거칠고 난폭할까?
아니면 나그네에게 선을 베풀고 환대하며 신을 두려워할까?
-<오디세이아>6권, 119~121행 
 
고대 그리스인들은 회복력과 재再起가 팀 스포츠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 왕위를 되찾은 것도 개인의 의지와 노력 덕분만은 아니다.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친구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주변에 협력자가 있을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때로는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여정의 방향을 좌우한다. 크게 도약하는 순간이든 바닥까지 가라앉는 시기든, 당신 곁에도 거의 언제나 당신을 끝까지 버티게 해 준 선원들이 있었다. 힘겨운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자체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는 선택할 수 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원들과 함께 삶의 굴곡을 헤쳐 간다면, 당신은 끝까지 나아갈 수 있다.

노맨 전략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를 외치던 노래가 있었다.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새'이다. 오디세우스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을 볼 수 있다. 트로이 목마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략의 대가, 파이아키아인들 앞에서 좌중을 사로잡는 노련한 이야기꾼, 아무도 아닌 사람인 '노맨' 등이 바로 그것이다.

키클롭스, 그대가 내 이름을 물으니 알려 드리리다.
그 대신 그대가 약속한 환대의 선물을 주시오,
내 이름은 노맨이오.
- <오디세이아> 9건, 364~367행

사실 부하들이 말렸을 때 오디세우스는 동굴을 떠났어야 했다. 그는 이를 인정했다. 오디세우스의 실수는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기지機智가 인정받지 못한 채로 묻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 인정 욕구가 더 나은 판단을 압도하면서, 완벽했던 탈출은 파국적인 결말로 바뀌고 만다. 키클롭스의 아버지 포세이돈의 분노를 불러왔으까 말이다.

‘노맨’ 전략은 역설적으로 ‘확고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자신을 노맨이라 부를 때, 오디세우스는 자존심을 앞세우는 자아를 내려놓을 힘이 있었다. 잠시 이름을 숨긴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이들은 위기를 겪고도 더 큰 회복력을 보이고, 타인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더 오래 지속되는 성취를 이룬다. 진정한 힘은 내가 누구인지를 앞세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존감에 있다.

실패도 성공도 삶을 완성하는 조각이다

식인족 라스트리고네스에게 부하를 몇 명 더 잃은 뒤,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이에 섬에 도착한다. 이번엔 태도가 한결 신중해졌다. 먼저 부하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격려를 하면서 소수의 정찰대를 보내어 이곳이 어떤지를 살펴보게 한다. 그는 실수를 통해 확실히 배운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들도 지나온 삶을 풀어내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될지 모른다. 

한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실은 삶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깊은 변화를 이루어 낸 시간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과거를 되짚는 것은 고통에 머무르거나 지난 영광에 기대는 일이 아니다. 힘겨운 시기를 지나오며 그때의 선택과 대응 속에 자신도 몰랐던 단단함과 내면의 회복력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조금씩 분명해진다.(180쪽)

목적지가 분명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란 무엇일까? 이타카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여러 의미를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왕이자 남편이며 텔레마코스의 아버지라는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고향이란,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런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자리다. 삶을 뒤흔드는 시련 속에서 진짜 자신을 잃어버렸다면, 그때 고향은 더 이상 벽돌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장소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할 곳이 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이타카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명확한 목적지 없이 항해를 계속한다면, 자신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고향의 환상을 좇으며 제자리만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타인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착각하거나, 남들이 규정한 목적지를 무작정 따른다면, 정작 목적지에 도달해도 마음 한 켠엔 공허감과 불만이 자리잡을 수 있다.

오디세이아가 전하는 교훈

오디세이아가 전하는 가르침은 분명하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마찰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점이다. 멀리 돌아가는 길, 예상치 못한 샛길 등에서 생기는 저항도 마찬가지다. 목표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서 마찰, 지혜, 인내, 통찰, 회복력 등을 만나는 기회를 얻는다.

#인문 #인문교양 #서양고전 #오디세이아 #인생에한번은오디세이아 #샘아크바 #부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