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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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의 편지를 받던 십 대의 딸은 지금의 모든 사람들과 같이 나이를 먹고 이제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그녀가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하는 동안 나 역시 중년에서 노년의 나이로 접어들었으며, 인생을 조금은 더 채도 낮은 빛깔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공지영은 1988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당시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했다. 1989년 첫 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1993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여러 차례 문학관련 수상을 했으며,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대표 작가이다.

총 열두 편의 편지로 구성된 책은 작가가 딸에게 보내는 글 형식의 에세이로 10여 년 전에 발간되었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의 속편인 셈이다. 지리산 산골에서의 삶을 반영한 듯 책 속엔 제비꽃, 플럼바고, 플록스, 수국 등 여러 꽃과 나무들이 등장한다.

기억은 때로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었던 것과 모순된다

지리산에서 자라는 아름드리 수목들은 피톤치드와 산소를 약간 섞은 후 휘저어 밤새 식히고는 차가운 샐러드 같은 공기를 해가 뜨는 즈음 산아래로 내려보낸다. 이때는 정말 신선하고 상쾌했다. 작가는 이 산골로 이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또 들었다.

위녕(딸), 살고 있는 서울 북쪽의 아침은 어떠니? 평론가들이 '기억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작가는 다시 꺼내들면서 딸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 책은 줄리안 반스의 장편 소설로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토니는 학창 시절 연애하던 베로니카가 이후 에이드리언과 가까워지자 분노 섞인 편지를 보낸 관계를 는다. 얼마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토니는 사실을 오래 덮어둔 결혼해 평범한 삶을 꾸리는데, 시간이 흘러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베로니카를 다시 찾아 과거를 재구성한다. 토니는 자신이 보낸 편지의 복사본과 일기 내용을 통해, 당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타인에게 남긴 흔적을 뒤늦게 직면하며 ‘기억의 왜곡’충격을 받는다. 나이 일흔이 넘어 이를 깨닫게 된 주인공의 말은 가히 충격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실제 우리가 산 삶하곤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한다. 결국은 주로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3%의 공간을 열어놓아라

이번엔 작가는 비욘 나티고 린데블라드<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넨다. 린데블라드는 스톡홀름경제대학을 졸업, 다국적회사에 입사해 최연소 임원까지 승진한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량과 전담 비서는 물론이고 바닷가에 아름다운 집도 있었다. 가족들의 자랑거리였지만 그는 연이어 연애에 실패하고 어느 날 홀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태국의 숲으로 떠난다. 엄격한 계율을 따라야 하는 숲속의 사원에서 승려로 다시 시작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엄마가 그때 그랬던 거 기억나니? 살면서 엄청나게 힘들었던 때가 많았지만 30대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고. 20대는 그럭저럭 여러 가지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30대에는 모든 아는 것들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이미 나이는 먹어 나 혼자 끝없이 뒤로 가는 물살에 밀려나는 듯 두려웠던 거 기억나거든. 그때 비로소 테라피를 신청하고 심리학 서적들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묻기 시작했던 것도.

20대는 어쩌면 쉬웠어-당연히 그때는 세상에서 제일 괴로워했지만-내가 만든 것들이 하나도 없으니 전부 남 탓, 그러니까 세상 탓, 기성세대 탓 하면 됐으니-그것도 필요한 일이야. 암, 그렇고 말고-그러나 30대는 달랐다. 이제 내가 만들어낸 카르마들이 서서히 생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하고 책임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면서 가진 것도 없는 채로 기성세대가 되어버리는 듯 두려웠던 거지.


최저점이 높은 사람을 만나라

창문도 없는 방에서 수챗구멍에 코를 대고 숨을 쉬어야 하는 독방에서 9년 동안 갇힌 사람이 "너는 부자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베트남의 구엔 반 투안 신부님이다. 13년 형을 받고 공산화된 베트남의 푸칸 마을에 있는 호아로 수용소 감방에 갇혔다. 47세였다. 그는 풀려날 그날을 기다리기 보다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가보리라'고 작정했다. 그가 쓴 책 <지금 이 순간을 살며>엔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갇혀 있던 푸칸의 감방은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지독히 더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져서 의식 불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략) 방 안의 공기가 너무 습해서 버섯들이 침대 위에서 자랐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나는 벽 밑에 뚫린 구멍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그것은 물이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를 그 구멍에 대고 숨을 쉬면서 맨땅 위에서 100일을 보냈습니다.

사람은 대개 좋을 때보다 좋지 않을 때, 어쩌면 나쁠 때 본질을 드러낸다. 그러니 너는 가장 나쁜 순간에 네 최저 수준을 높이려고 애써야 하고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두어야 해. 돈 많고 날씨 좋고 한가하며 배부른데 나쁜 인간이 몇이나 되겠니? 그리고 신기하게도 역사는 그럴 때는 잠을 잔단다. 인류 전체에게든 한 인간에게든 역사란 대개 엄청나게 불행한 순간,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순간, 결정적으로 방향을 튼단다. 그때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품위야.


그냥 너 자신이 되라


엄마는 아침마다 몇 가지 루틴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해가 뜨기 전엔 기도를 한다. 날이 밝으려고 하면 정원으로 나가지. 대개는 화단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데, 한두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야. 기도만큼, 아니 어쩌면 기도보다 엄마는 이 일을 사랑하고 있어. 

대개는 작업복이 흙투성이가 되고 장화까지 신은 몸은 완전히 땀투성이가 되지. 벌레에 물리기도 하고. 그러나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은 정원에 있는 나무와 꽃의 생명과 그 개별성이야. 장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키 작은 채송화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가끔 눈물이 맺히기도 한단다. 죽은 줄 알았던 수국 가지에서 연둣빛의 고운 싹이 좁쌀만큼 내비칠 때 그 경이로움이 엄마를 살게 한단다. 수국이 장미가 되려고 하지 않고 채송화가 해바라기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그 독특함으로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단다.

위녕. 언젠가 너는 내게 네 얼굴의 결점, 네 몸의 단점들을 이야기하며 속상해한 적이 있었다. 엄마도 그랬는데, 이젠 나는 아름다움은 비교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수국, 장미, 채송화, 해바라기 중에서 뭐가 더 아름답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니?


너를 응원한다, 어떤 삶을 살지라도

사랑하는 딸, 엄마는 결코 너를 내 곁에 묶어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네가 오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내게 오라고 강요하지 않기로 했어. 우리는 떨어져서 서로 잘 존재함으로써 좋은 사이가 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엄마의 새벽이 너에게 보내는 축복의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잊지 마라. 세상의 비바람이 거셀 때, 설사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너를 외면할 때조차도 엄마는 너의 편이고 너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에세이 #공지영 #네가어떤삶을살든나는너를응원할것이다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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