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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김동인 원작, 이정서 편저 / 새움 / 2026년 3월
평점 :
글로 쓰인 역사 소설의 측면에서 <대수양>은 <단종애사>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중략) 한마디로 김동인은 이광수와 달리,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거쳐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단종의 비극만 보지 않고 수양의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쪽에서도 바라보았던 것이다. - '편저자의 말'중에서

소설의 원저자인 김동인(1900~1951년)은 한국 근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본 유학 후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나섰다.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 단편소설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장했으며 <운현궁의 봄>, <대수양> 등의 역사와 인물을 다룬 장편 소설에서도 독자층을 넓혔다. 한편, 편저자인 이정서는 원저의 한문 표현이나 그 시절 표현법을 현대적으로 풀이해 다시 썼다.
천만 관객 신화를 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불황 조짐을 보이던 한국 영화 산업에 한줄기 빛으로 등장했다. 여기서의 '왕'은 비운의 주인공 단종을 말하고, '남자'는 조선 숙종 때 충신으로 추인된 인물인 촌장 엄흥도와 단종 복위 운동을 도모한 사람으로 이해된다.(사진, 영화 '왕사남'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일제 치하의 문인 이광수가 쓴 소설 <단종애사> 중 '혈루血淚'편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다. 1928년 말부터 1년 여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인데, 정통성을 갖고 왕위에 오른 단종이 삼촌 수양대군과 한명회 등 측근 세력에 의해 왕위에서 축출당한 후 죽음에 이른다는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명顧命, 실국失國, 충의忠義, 혈루血淚 등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실패로 끝나면서 관련 인물인 사육신들은 참형에 처해지고 상왕이던 단종은 노산군 이홍휘로 신분이 강등되어 강원도 오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작은 촌락 백성들과 어울리며 살다가 결국 억울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우리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서사이다.
반면, 이와 대치되는 스토리를 보여주던 연재소설이 있었다. 1941년 소설가 김동인은 조선일보사의 월간지 <조광朝光>에 '대수양'이란 소설을 연재했다. 앞서 이광수의 소설이 감상적인 면이 강했다면 이 소설은 수양대군의 영웅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아버지 세종도 그의 출중한 능력을 인정하며 맏이로 태어나지 않음을 안타까워 했을 정도라고 그를 평하며 상대적으로 단종의 아버지 문종은 나약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또 계유정난은 어린 단종의 왕위를 노리는 안평대군 일파의 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간파, 이를 진압한 사건으로 묘사한다. 이에 왕위에 염증을 느낀 단종은 능력이 출중한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소설이 끝난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소설가 이광수는 왕위를 빼앗긴 단종과 나라를 잃은 조선 백성들을 동일시하며 단종 복위 운동과 사육신의 절개를 통해 일제 당시 핍박받던 백성들의 혼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담긴 듯하고, 소설가 김동인은 나약하고 무능한 리더(왕) 때문에 나라를 찬탈당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수양대군이란 인물의 영웅적 모습을 통해 능력있는 위인의 등장을 고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진, 관상)

소설 속 인상적인 대목들을 소개해 본다. 왕 세종과 맏형 양녕대군과의 대화인데, 이를 통해 왕 세종이 자신의 아들 중 장자(후일의 문종)는 왕의 자질로는 영 성에 차지 않음을 내보이고 있다. '사자 노릇을 감당하지 못할 새끼'란 표현까지 하고 있을 정도이다.
(세종)“사자는 제 새끼가 사자 노릇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죽여버린다지만, 사람은 그러지도 못하니 참으로 딱하오이다.”
(양녕)“전하, 어쩔 수 없는 일이옵니다. 기린은 잠자고 스라소니(문종)가 춤추는 시대가 올 모양이니…….”
(세종)“그 스라소니를 형님께서 돌보셔서, 너무 지나치게 숭한 춤이나 추지 않도록 이끌어주셔야 할까 봅니다.”
(양녕)“신의 힘 닿는 데까지 해보기는 하겠습니다만, 한 가지 근심은… 스라소니도 호랑이 새끼라, 과연 이 늙은 말의 지휘에 복종할지가 의문이옵니다.”
이 대화에서 왕 세종은 장자인 문종이 사자 노릇을 못할 것 같다며(즉, 제왕감으로 부족하다는 말) 자신의 형 양녕대군에게 잘 보살펴 달라는 당부를 한다. 이에 양녕은 '기린은 잠자고 스라소니가 춤추는 시대'를 거론하는데, 여기서의 '기린'은 바로 수양대군으로 수양이 제왕 재목임을 은근히 비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형 왕(문종)은 늘 수양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경계심을 품어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 이것이 수양에게는 몹시 민망하고 답답한 일이었다.(90쪽)
이 대목에서도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형 문종 또한 자신보다 능력이 출중한 아우 수양을 항상 경계하고 있음을 나타난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당당함보다 잘난 동생을 곁에 두는 걸 시기하고 있음이다. 무릇 왕이라면 자신보다 잘난 것조차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하는 법인데, 이런 태도는 아우인 수양의 마음 한켠에 시퍼런 멍어리로 쌓이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승하하신 아버지 세종과 비교해볼 때 형인 왕은 정사 돌보기보다 복상服喪 예절 지키기에 급급하고, 대신들은 마치 태평세월인 듯 음주나 바둑 두기로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동생 수양의 눈엔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또한 젊은 인재들도 경서經書 토론만 중시하는 작태를 보이므로 선왕 세종의 국정 운영 때완 너무나도 달랐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구나 병환 중 임종을 앞둔 문종은 고명 대신을 호출할 때, '수양은 들이지 말라'는 명이 있었기에 대신들은 이를 방패 삼아 수양대군과 간간이 다툼을 벌이고 있음을 내관들이 수근대는 걸 들은 어린 신왕(단종)은 부왕(문종)의 승하 후 석달 가까이 경험했던 수양 삼촌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던 거다. 빈전에서 재궁을 모시는 동안 수양 삼촌은 바로 곁에 앉아 잠시도 떠나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인 보호가 눈에 띄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신왕(단종)의 왕위 추인을 위한 명나라로 가는 사절단의 정사엔 순식간에 자원을 한 수양대군이 임명되었다. 안평대군, 김종서 등이 입도 뻥긋해보기 전에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어린 왕과 삼촌 수양 간의 충분한 토의가 진행된 바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한명회가 안평대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면서 수양의 명나라 사행使行을 그만두자는 건의를 한다. 이에 수양은 사람은 신용이 있어야 한다면서 동생 안평이 옥새를 탐내며 이를 황보정승(황보인)과 김종서가 떠받드는 형세를 막을 묘수를 꺼낸다. 황보정승과 김종서의 아들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아무튼 명나라를 다녀오는 길은 멀기도 하거니와 시일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에 사전에 동생 안평대군에게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음을 수양은 알기에 종친들을 위한 곡연曲宴, 즉 내전에서의 잔치를 기획했다. 과거 선왕 세종시절엔 양녕, 효령, 성녕 등은 물론이고 적서嫡庶를 합하여 20인의 형제들과 오촌들까지 대궐에 들어와 세종을 알현하며 종친들이 서로 교분을 나누기도 했지만, 문종 등극 후엔 건강 문제로 종친들의 알현도 반가워하지 않았기에 날로 소원해졌었다. 수양이 기획한 자리에 안평이 참석토록 한 이유는 어린 왕의 보호 책임 일부를 안평에게 맡기면 엉뚱한 생각을 멈출 거란 판단에서였다.
명나라 연경을 다녀온 뒤부터 수양에겐 저절로 섭정의 지위에 서게 되었다. 이는 세상이 그렇게 만든 일이다. 그럼에도 수양이 마음 쓰이는 일이 있었다. 하나는 수양 본인은 임금의 삼촌이라는 것 외엔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왕과 수양의 신뢰 관계에 이간질을 획책하는 손길, 즉 김종서와 황보인이 중심이 된 세력이었다.
사실 안평은 스스로 앞장 서 뭔가 주동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은 되지 못했지만, 세간에 들리는 소문 중엔 '안평대군이 왕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귀가 얇은 안평이 걱정되었다. 이에 수양은 구월 어느 날 안평을 만나러 북문(창의문) 밖 무이정사武夷精舍로 향했다. 이날은 마침 안평이 활쏘기 대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양의 마음에 걸리는 점은 안평의 옷과 차일이었다. 한마디로 불쾌했다. 감히 용龍을 수놓은 차일을 치고, 안평의 옷은 용포를 본뜬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차일을 대궐에 바치고 다른 것을 지금 즉시 치라고 말했다. 안평은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용은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양이었기에 말이다. 앞서 걸어가던 수양은 걸음 멈추고 홱 돌아서서 팔을 뻗어 안평의 관복 흉배(용을 수놓은)를 뜯었다. 안평은 몸을 떨었다.
마침내 안평을 뒤에서 조종하려는 김종서 일파들을 모두 제거하기로 결심, 모사꾼 한명회의 거사 계획이 합류하면서 생살부가 만들어지고 김종서 일파들이 대대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계유정난 사건이 터진다. 수양의 아우 안평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이후 어린 왕 단종은 상왕을 꿈꾸며 삼촌 수양대군에게 선위한다.

찬탈인가, 통치인가?
나는 수양대군 이야기와 관련된 한국 영화 두 편을 관람했었다. 하나는 '내가 왕이 될 상相인가?'란 포스터로 많은 관람객을 모았던 영화 <관상>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천만 관객 기록을 세운 <왕이 사는 남자>였다. 평소 역사책을 증겨 읽는 역사 매니아인지라 단종의 폐위와 세조(수양대군)의 등극에 관한 사실史實은 익히 알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다룬 영화는 제작자의 의도가 담기므로 때론 과장된 픽션이 가미되기도 한다. 역사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어린 단종의 폐위는 찬탈이란 감성적인 면이, 또 한편으론 구국의 결단이라는 통치라는 영웅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김동인의 이 소설(원제, 대수양)을 역사매니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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