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야심이 많다기보다는 의욕이 충만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인사부 담당자 마음에 더 잘 들 수 있다. 의욕은 야심보다 사회적으로 적합해 보여서다. 인사 책임자들은 자기 신분 상승에 굶주린 출세주의자가 아닌, 대의를 위해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팀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평등은 무엇보다 서로를 동등한 신분으로 간주하며 그들과 겨룰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게 노르만 귀족 가문 출신의 젊은 법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짚은 핵심이다. 평등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지위 쟁취를 위해 작은 싸움을 계속 벌이도록 자극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이 일어나고, 인간이 인간의 경쟁자가 된다.
능력주의의 함정
최근 굉장히 주목받는 연구, ‘트리거포인트’에서 “불균등에 대한 비판과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은 특히 하위 계층에서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라고 확신했다. 소상인, 공장 노동자, 판매업자, 청소부 들이 빈부격차를 크게 느끼고 있었는데 아이로니하게도 자기 행복은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다. 각기 다른 두 영혼이 하나의 가슴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은 천인공노할 정도로 부당하지만 능력주의를 너무도 믿고 싶다. 그렇기에 현실에 관해 두리뭉실하게 분개할 뿐이다.
성과의 가치
요즘엔 거의 잊혀진 사회학자 구스타브 이크하이저는 "성공에 대한 비판"(1930년)이란 짧고도 냉철한 글을 썼다. 여기서 그는 한 분야에서 공식적으로 전제되는 능력과 성공에 한발 더 다가서게 만드는 비공식적 수단을 구분했다. 다시 말해, 정직한 수작업과 수작업에 포함해야 할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잡음들을 구분지었다. 그가 예시한 구두장이는 솜씨가 좋으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이는 공식적인 능력주의인 셈이다.
그런데 이때 경쟁자가 나타난다. 그는 구두 만드는 기술 말고도 다양한 지원 체계를 동원한다. 광고에 투자했고, 지지해줄 사람들과 접촉했으며, 괜찮은 추천을 받아 전략적으로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신발만 만들지 않았다. 그만큼 브랜드에도 신경 썼다. 결국 그는 구두 제작 기술에만 충실했던 경쟁자를 밀어냈다. 자, 이는 정당한가?
안타깝지만 더 노력했어야지
멜빈 러너는 젊은 의대생을 가르치던 시절 이들에게 사회 다른 편에서 부당하게 일어나는 고난과 위기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통계를 인용해 생활비다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돈이 충분한 사람들보다 좀 더 자주 아팠고, 좀더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가졌고, 필요한 의료적 처치도 덜 받았으며, 더 일찍 사망했음을 보여주었다. 또 광부로 일하다가 광산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러너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러너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못하고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심하게 말이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잘 안다며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자랐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기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이의를 제기했던 거다.
이에 러너는 학생들에게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석탄수요가 감소했고 노동조합은 회사와의 협상력을 상실했으며 기계들이 좀 더 쉽고 값싸게 인력들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그 지역 산악지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당시 식솔까지 거느린 광부들이 어떻게 맞설 수 있었겠는가? 광부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에서 벗어나려 했다. 다수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했지만 쉽사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도 금세 잃었다. 광부들은 다른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이 없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의를 제기했다.
광부들의 빈곤이 구조 조정 때문이란 걸 명백하게 입증하는 증거까지 있는데도 학생들은 어째서 이를 광부들의 책임이라 여기는 걸까? 학생들은 깨어진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열정적인 젊은이였다. 그런 그들조차 극복하기 힘들었던 근본적인 착각은 무엇이었을까? 몇 가지 실험 끝에 러너는 '세상은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 내면에 박혀 있다'고 보았다.
사회적 회로들은 끊겨 있다. 다른 삶의 이야기가 다른 회로 너머에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엄청난 부와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은 저 멀리 있다. 괴로워하는 실패자들도 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능력주의에 대한 개념은 이러한 반증들로 방해받지 않을수록 일상적인 생활 영역에서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 사회가 더 불공정하고 더 경직되어 있을수록 우리에게는 이 사회가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공정하게 비칠 수 있다.
실패 방지
실패는 성공과 다름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경험의 무게도 비슷하나 부호만 다를 뿐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학에선 상실을 통해 받는 상처가 승리로 얻는 기쁨보다 훨씬 더 강함을 오래전부터 증명해왔다. 성공은 멋지지만 실패는 훨씬 더 끔찍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애쓰는가? 사회적 지위를 왜 그토록 획득하려 드는가? 어쩌면 추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의 야심을 자극하는 건 눈앞에 놓인 목표가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몰락이다. 성공을 추구할 가치가 충분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성공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성공을 통해 우리가 막고 싶어 하는 것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그저 이것 때문일 때도 많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실패 방지.
능력주의 복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거대한 제도의 시작은 늘 감춰져 있다. 선사시대에 사람들은 심심풀이로 게임을 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 몇몇 상인이 복권을 만들어 제비뽑기 통에 행운의 번호와 불운의 번호를 몇 개 넣었다. 참여자는 행운을 바랄 수도, 잘 안되면 약간의 벌금을 내면 되었다. 복권은 잘 팔렸다.
그러나 승자는 승리에 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패자는 자신에게 주어질 체벌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이 곧 밝혀졌고, 그러면서 신중하게 평형을 맞추어 놓았던 이 복권 체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패자들에게 벌금을 치르게 할 조치가 필요했다. 효과를 높이고자 벌금 대신 즉시 감옥행을 추첨하도록 만들었다. 승자에 주어지는 배당금이 적지 않냐는 윤리적 논쟁도 생겼다. 빈자는 돈이 없어서 이런 제비뽑기에 소외감을 느꼈기에 당연히 반대했다.
복권 판매에서 엄청난 규모의 구가 독점 도박판, 바빌론의 복권이 생겨났다. 연고지, 지위, 가문, 성별, 피부색 등은 고려치 않는 절대적 기회 평등, 새로운 삶의 기회를 거듭 반복해서 무작위로 할당하는 배부처, 그러나 성과나 노력, 능력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물론 바빌론의 복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로 그려낸 것이다.
인생은 복권 게임 같을 때가 많다. 잘 은폐된 복권 게임. 그리고 온갖 바빌론식 혼란에서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여기에서도 우리는 제비뽑기 참가자에 불과하다. 완벽에 가까운 가상 속 능력주의 사회일지라도 우연성에 조금만 틈을 내줘도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불완전한 현실 사회는 얼마나 능력주의적이지?
근본적으로 능력주의는 완전하게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다. 끝까지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나, 그렇기에 굉장히 실용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과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 것이 뒤섞여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무관심하게 못본 척한다. 왜냐하면, 다소 다의적인 측면이 정당화를 시도해야 할 수많은 상황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