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논어를 만나 행복해졌다 - 나로 살아가기 위한 든든한 인생 주춧돌, 논어 한마디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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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사람이 <논어>를 해설한 책들을 탐독했다. 무도인이 도장 깨기를 하듯 한 권 한 권 <논어> 해설서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논어>에 대한 학식이 깊어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공자는 강인했다. 용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친근했고 다정했다. 한마디로 공자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진 군자였다. - ‘들어가며’ 중에서




현재 4000만 명이 넘는 회원이 소속된 ‘판덩 독서회’의 리더인 저자는 동서양의 문화적 장벽을 허물고, 중국과 서양의 고전을 넘나들며, 현실 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논어>를 새롭게 해석했다. 책은 전편인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에 이어 논어 10편의 마무리 편인 ‘술이述而 편, 태백泰伯 편, 자한子罕 편’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술이 편은 마치 공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 만큼 공자 인생의 주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공자들과 가장 친근하게 지냈던 제자들만이 간파할 수 있는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어서 태백 편은 오나라의 시조로서 공자가 고대의 성현인 태백을 칭송한 것으로 시작한다. 공자가 강조했던 예와 인, 효의 사상이 중심을 이루며 이를 바탕으로 덕행을 실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배움을 권장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 권고하는 글도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자한 편에는 아주 오랜 기간부터 공자와 함께했던 의리의 제자들이 등장한다. 제자들의 입을 통해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와 시대를 읽는 냉철한 시선,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진심어린 위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옛것을 기리는 지혜가 바로 혁신


학문에서 과거의 지식과 단절된 새로운 혁신을 성취하기는 어렵다. 지식인의 새로운 논문에는 항상 이미 발표된 다른 사람들의 논문이 인용된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변형된 개념일 뿐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권이 쇠퇴해 제후들기이 서로 싸우는 혼란의 시대였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공자는 더욱이 옛것이 그리웠을 것이다.


공자가 말한 ‘옛것’은 요순 임금 같은 ‘고대 성인들의 가르침’이다.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사는 방법은 옛것을 믿고 좋아하며 따르는 것이다. 마치 서양의 르네상스처럼 옛것을 복원하고 부흥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혁신’의 시작이다.


지나침의 기준과 경계를 파악하라


“공경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라는 구절을 살펴보자. ‘수고롭다勞’라는 단어의 의미는 아주 명확하다. 예로 절제하지 않은 과도한 공경은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자신의 에너지만 소비하게 된다는 의미다. 계산적으로 공손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움을 얻고 싶어서 겉으로 자기를 낮추며 행동한다면, 기준과 한계가 없는 탓에 수고롭기만 할 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거만함과 인색함


거만함과 인색함은 기준이 모호해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가령 자신감과 거만함은 종종 구별하기 힘들다. 자신감이 너무 지나치면 거만해지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당당한 면모로 보일 수도 있다. 인색함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예리함이 인색하게 보일 수 있으나 정확한 것을 지키려는 성향이 그릇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거만함과 인색함은 자신이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어도 스스로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해서 두 가지 단점은 모호해서 판단하기 쉽지 않다. 모호해서 의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 쉽게 더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쉬운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우리들에게 거만함과 인색함을 조심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들에게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만한 것은 명성을 좋아하는 것이고, 인색한 것은 물질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성과 물질을 좋아하는 것은 탐욕스럽다는 의미다.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쉽게 불만을 품고 판단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대표적인 부류가 바로 저질 정치인들이다.


임계값을 돌파하면 성장한다


배움의 과정은 항상 직선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계값을 돌파하면서 성장한다.


일반 대기압에서 물을 끓인다면 온도계가 없어도 섭씨 99도에선 물이 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안다. 섭씨 99도에선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섭씨 100도에 이르면 비로소 보글거리며 거품이 난다. 이것이 바로 ‘임계값 돌파’라는 현상이다.


슬럼프와 같이 견디기 힘든 상황을 겪으면 자신이 제대로 배우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고 ‘배우는 게 무슨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다른 사람은 왜 쉽게 배우는 거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성과를 거두고 논문을 쓸 수 있는 거지? 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은 걸까?’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 부딪히는 이유는 줄곧 평지만 걸어와서 지수형 성장 과정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포기한다면 임곗값을 돌파하지 못하게 되고 계속 평지에만 머무르게 된다. 난관에 직접 부딪혀야만 임곗값을 돌파하고 S형 곡선을 그리며 위로 상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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