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광화문글판 30년 기념집, 개정증보판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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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정신없이 바쁜 일상,

수첩에 빼곡하게 쓰인 일정들,

출근길 그날의 일정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

퇴근길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기 위해,

그렇게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광화문 글판을 못 보고 지나쳤거나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고 있지만 일정에 쫓겨 미처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경험이 많았을 것이다.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는 교보생명에 걸린 광화문글판을 모은 것으로 시민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에서 각자 선정한 글들과 교보생명 홈페이지에 시민이 응모한 글귀를 종합 심의해 낙점한다.

한눈에 보여야 하는 특성 때문에 큰 글자의 25자 안팎으로 구성된 글을 싣는데 글자 수의 제한으로 주로 시가 많이 실리며 이 문장들은 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 감동을 전해준다.

이런 글들은 회사에 대한 고민이나 가족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 등 불투명한 미래의 고민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사람에게는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할 것이다.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여유 없음은 안타깝지만 문장을 보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아직은 사람으로서의 온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일 테니 교보생명의 이러한 광화문글판에 대한 강한 애정은 오랫동안 구청의 '불법 옥외광고'의 규제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공익성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다 올려다본 글귀에 힘든 마음을 털어버리고 다시금 일어서려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글귀들, 나만 처절하게 힘든 게 아니니 함께 힘든 길을 걸어가자고 다독여주는듯한 글귀들,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들을, 소홀히 대했던 가족들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글 등 짧은 문장에서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인류를 구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고 거창한 것일 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나눠 4차례 광화문글판에 올려지는 문장들을 도안과 함께 그동안의 역사와 익히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글귀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이 가을 사람들에게 보석처럼 다가오는 책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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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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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 고민정 에세이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있던 나무들이 노란색으로 빨간색으로 물들어 왠지 센티해지는 계절.

무심히 걷던 길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에 가슴 시큰했던 순간.

함께 들으며 가슴 설레어 밤새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그 노래는 아픈 이별을 맞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그 자리에 붙박히게 만드는 강력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음을, 그때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감정들.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는 남. 여가 만나 가슴 설레며 가슴 콩닥이던 시절부터 그 사랑이 전부이며 영원할 거라 믿었던 시간을 지나 이별을 맞이하기까지, 무덤덤해져버린 사랑이란 감정이 변할 수 있음에, 타인들이 맞이하는 이별에 나는 예외라고 믿었던 오만함에, 그는 돌아섰지만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구차함에, 준비도 안된 나에게 먼저 등을 돌려버린 그의 모습을 배신이라 생각하며 여러 날을 울고 분노하며 그럼에도 다시금 돌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과 누군가 만나더라도 나처럼 그를 위해줬던 연인은 만나지 못하기를, 먼저 등을 돌렸지만 헤어진 내내 그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 아련하고도 애틋한 마음으로 나를 떠올려주기를....

사랑과 이별, 그 후에 오는 것들은 왜 이리도 세트처럼 붙어 마음을 아프게 할까,

그저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잊히기를, 그를 알기 전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기를, 그게 안된다면 갑자기 5년 후로 점프해 있기를, 어떤 날은 눈뜨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잠들기도 하고 정신병자가 따로 없는 내 모습에 무너진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는 내 모습이 애처로워 그렇게도 서러웠던 나날들...

사랑과 이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민정 작가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감정을 어찌도 글에 이리 잘 담아냈을까

온 세상을 다 가진듯한 사랑의 감정도, 지금 당장이라도 지구가 멸망해버렸으면 싶은 절망의 감정도 모두 다 너무 잘 담아내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도 가슴에 박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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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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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장면들 /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깊이 있는 문장들이 종이 위를 적시고

독자는 가슴에 와닿는 구절들에 가슴이 젖어든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해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독립서점에서 5년간 스테디셀러에 머물며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라 한다.

문장의 깊이가 다르다 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 책이구나 싶었다.

일상에 대한 상념들, 폭력적인 사랑과 이별 후에 오는 잔잔함들,

이따금씩 찾아와 잠 못 이루게 만드는 기억들은 누군가에겐 그 자리에 머물며 한발 작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그럼에도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을 남기며 괴로웠던 기억을 지우는 강력함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이 남았다면 부디 행복하라며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테지만

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겼다면 같은 이별을 겪고도 같은 마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으로 시작했어도 동일하지 않은 사랑의 무게는 각기 다른 기억과 복잡한 감정만을 지닌 채 이별에 다다르며

그것을 추억하는 우리들의 자세 또한 제각각이라 사랑과 이별, 일상에 대한 무료함들은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감정을 토해낸다.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문장으로 탄생할 때

그것을 마주하는 독자는 묘하게도 위로받거나 공감하거나 차분해진다.

간혹 문장들이 주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 구절 한 구절을 마주하다 보면 그 또한 녹록지 않았던 글쓴이의 상처가 보이고 나만 힘들어하는 건 아니라는 위안을 받게 된다.

그렇게 위로받고 그렇게 공감하며 그렇게 다시 몸을 일으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글이, 문장이 주는 힘은 그렇게 타인으로 하여금 삶을 재정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고

깨달음을 주며 허물어져가는 울타리가 견고해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처음 만난 작가지만 또 다른 사유의 깊이가 느껴져 책장 한편에 두고 생각들이 어지러워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꺼내 읽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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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괴물 백과 - 신화와 전설 속 110가지 괴물 이야기
류싱 지음, 이지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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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 세계 괴물 백과 / 류싱 지음

이 나이가 되어도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내려오는 신화나 설화, 괴물 이야기는 항상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중동에서, 그리스에서,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비슷한 형상을 한 캐릭터를 마주 보며 지구는 둥글고 모두 이어져있다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신화를 연구하는 이들에 의해 처음 문명이 탄생하며 생겨난 캐릭터들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며 이름이나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더 큰 흥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인간의 욕망과 다양한 감정이 담겨 탄생한 신화 속 주인공들은 박진감 넘치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재탄생하거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설화 속 주인공들이 청소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우리 곁에 다가오고 그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서 신화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모두 동일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세계 괴물 백과>는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110가지 괴물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고대 근동 신화,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종교 전설, 동방 여러 민족 전설, 유럽의 전설과 괴이한 일이란 주제로 소개하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이 초기 중동 지역과의 긴밀한 교류로 영향을 받았으며 먼저 소개되는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이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중동 지역의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그리스 신화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신화에서도 그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유기적인 연계를 다룬 책을 접하지 않았다면 그 지역의 고유한 신화라는 인식이 강해 오류를 범하기 쉬웠을 텐데 책을 통해 신화 속 주인공들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며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고대 바빌로니아 신화는 종교적 이야기와 함께하고 있어 생소한 이름임에도 지진이나 하늘을 찢어 홍수가 났다는 등의 표현에서 신화를 따라가며 폭넓은 사고를 유추해내는 저자들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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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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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 김이설 소설

어린 시절부터 산지 30년 된 빌라는 입구에 그보다 더 오래된 목련이 환하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추레한 모습으로 떨어지기까지를 몇십 번이나 반복했고 결혼을 해 두 아이를 낳은 동생이 집을 나가고 자신 또한 남자친구의 집을 오며 가며 흩어졌던 가족은 폭력에 노출된 동생의 귀환으로 다시금 빌라는 북적이게 된다.

경비원 일을 하는 아버지와 그에 못지않은 일을 하는 어머니, 어릴 적부터 자신보다 뛰어났던 동생이 일자리를 찾아 조금씩 안정적인 일상이 되어가던 중 주인공은 집에 묶여 여동생의 두 아이를 키우고 일하러 나간 엄마 대신 집안일을 하며 하루 종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다.

아침이 되어 어머니와 여동생이 출근하면 잠든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혀 진이 빠진 상태에 겨우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밀려있는 집안일과 반찬 만들기에 하루가 가고 그렇게 아이들이 돌아오면 밥을 먹이고 씻겨서 재우기까지 또 한참의 시간을 들면 밀려있는 설거지와 다음날 먹을거리를 준비하느라 녹초가 돼버리는 나날들, 그랬기에 주인공은 자신을 위해주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자신의 생활에 남자친구를 끌어들이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남자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함께 누워 잠드는 작은 사치는 안되는 일이라며 자신의 감정을 지워버려야 했다.

하지만 작은 소망조차 눌러버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보다 그동안 매일 해오던 필사를 할 수 없다는 게 더 힘든 일로 다가왔으니 에너지가 고갈된 몸으로는 필사를 할 여력도, 여유도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며 주인공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집안일을 해내고도 위로의 말 한번 듣지 못했고 그런 생활 속에서 정신적으로 지치는 것은 당연하고도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주인공이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걸 눈치채 대학교를 보내준 여동생에 대한 부채감에 꾸역꾸역 그 모든 것을 버텨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주인공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돼버린다. 자신이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쓸 수나 있을지, 자신의 능력은 여기까지인 것인지.....

이 소설은 그렇게 이어진다. 암담한 날들이 계속 이어지며 주인공이 다시 펜을 들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주인공은 인생이란 정류장을 지나고 있는 중이며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쳤을 뿐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정류장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꾸벅꾸벅 잠이 쏟아질 만큼 무료함이 느껴지는 정류장을 몇 개나 지나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 앞으로 남은 정류장이 얼마큼인지, 이따금씩 예정돼 있지 않은 정류장에서 내려야 할 일도 있을 수 있음을,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이란 버스에 몸을 싣고 달려가고 있다. 저마다 목적지가 다르고 바라보는 곳이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몸을 싣고 달려가고 있다. 그 무엇을 아직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살기 위한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어느 순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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