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바루의 깊은 숲과 바다로부터 문학인 산문선 4
메도루마 슌 지음, 박지영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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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키나와 문제를 다룬 '슈리의 말'이란 소설을 읽고 오키나와 역사를 조금 더 알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데 시기적절하게도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그간 오키나와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1879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병합되고 이후 일본의 패전으로 미국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다시 일본으로 되돌려진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오키나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며 이 책은 그런 오키나와가 처한 상황과 일본 본토인들의 이권을 위해 이용당하는 오키나와인들의 투쟁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당한 일들과 상당히 겹쳐짐을 알 수 있다. 야마토(본토) 인들에게 우치난츄(오키나와인)는 같은 일본인이라는 동질감과 유대감보다는 자신들보다 하위 종족쯤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이 전시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수난의 역사는 한반도에서 자행되던 것과 유사한 면이 많이 포착된다. 전시 상황에 오키나와로 끌려와 위안부란 수난을 겪었던 중국인과 조선인들의 이야기는 물론 패전 후 일본인 대신 미군들을 상대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이것은 오키나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점이 나름 충격적이다.

일본의 70%가 넘는 미군부대시설이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성폭력, 폭행, 살인 등의 사건, 어떻게든 군사시설을 본토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일본인들 간의 의견 차이, 오키나와인들의 항의에 선심 쓰듯 인구가 더 적은 곳으로 군대를 이동해 주겠다는 등의 눈 감고 아웅식의 대처, 그럼에도 본토인들은 오키나와의 역사나 오키나와인들의 수난을 제대로 알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부에서는 역사를 왜곡하기에 이르렀으며 자국 국민들 인식에 해가 되는 사건은 은폐하거나 교묘한 말장난으로 둔갑하여 오키나와인들을 두 번 죽이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분노를 일으켰던 일이고 그로 인해 젊은 세대가 우익으로의 파장이 크고 제대로 된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점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집단 자살이나 학살을 자행해놓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의 만행과 교묘한 말장난으로 역사를 대면하는 그들의 행보는 피해를 입은 오키나와인들에게도, 책을 읽는 나도 분노를 느끼기에 차고 넘친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모든 증거가 있음에도 외면하고 부정하며 오히려 사건의 발단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행위보다 더 어려운 일인가 묻고 싶다. 왜 독일인은 가능하고 일본인은 가능하지 않은가, 투쟁 중인 오키나와인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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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픽션 나이트
반고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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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불 끄고 혼자서 전설의 고향을 즐겨볼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호러'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절대 외면할 수 없었던 <호러 픽션 나이트>는 아직 접해보지 못한 작가님이기에 더욱 궁금하게 다가왔다.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호러 픽션 나이트>는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귀신이란 존재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소설들이라 일상의 서늘함과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오며 생각했던 궁금증들이 명쾌하게 소설 속에 녹아 있어 낯설지 않지만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결코 실망감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야기의 첫 문은 흉가 체험으로 모인 동호회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각자 겪었던 기묘하거나 오싹했던 이야기들을 돌아가며 주고받는 형식으로 시작하며 끝맺음이 '좀 싱거운데?' 싶은데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무관심의 존재인 주인공이 자기한테 다가와 준 친구와 어울리며 느꼈던 기쁨을 이후로 자신감을 회복하여 다른 친구와도 어울리게 된 주인공은 오싹한 친구의 계략에 빠져든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지만 화장실에서 나누는 익명의 낙서가 매개가 되어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던 <시체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과 어릴 적부터 혼자 노는 것이 일상이었던 주인공이 학교 수업 시간에 만든 종이 전화기를 통해 듣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그로 인해 친한 친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이야기가 담긴 <벽 너머의 소리>,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부터 블랙아웃 증상을 경험하게 되고 이후 정신이 들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장소나 모습인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옥상에 갇힌 상태로 술을 마시지만 이후 정신이 들자 엄마의 뱃속에 있던 태아 시절부터 다시 거스르는 인생을 사는 이야기들 담은 <과거로부터의 해방>, 인간의 욕심을 담은 섬뜩한 옛날이야기인 <검은 짐승들>,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 물갈퀴가 생기면서 살던 도시에서 벗어나 바다로 돌아간 이야기를 담은 <제3의 종>, 첫 번째 이야기와 이어지는 <귀신은 있다>로 <호러 픽션 나이트>는 아쉬운 마음으로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는 단편마다 읽는 재미가 있었지만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자연을 해치게 되고 그로 인해 물고기로 변한 사랑하는 아내가 죽음에 내몰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제3의 종>은 오래전 진화하며 물 밖에서 숨을 쉬게 된 인간이 공기가 나빠지면 다시금 물로 돌아가는 진화를 거듭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귀신 이야기와는 다른 섬뜩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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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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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봤을 때는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았지만 최근 읽은 <호텔 피베리>의 작가 '곤도 후미에'란 이름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던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는 예상보다 더 가슴 따뜻하고 술술 읽히는지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겨 하지 않고 혼자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에이코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미스이다. 남자친구도 없지만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없어 휴일에는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에이코는 어느 날 우연히 집 근처에 위치한 '카페 루즈'를 발견하게 되고 오래전 한 직장에 몸담았던 동료가 카페 사장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규모는 작지만 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카페 루즈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게 된 에이코는 카페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섞이기 시작한다.

한 직장을 오랫동안 다녔지만 직장 동료들과 친밀히 만남을 갖는 일 등을 피하며 지냈던 에이코의 생활은 카페 루즈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얽히게 된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오다가다 마주치기만 했을 뿐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던 주민과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고 결혼한 친구의 남편이 들고 오는 디저트가 힌트가 되어 불륜은 아니지만 불륜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뻔한 사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약속하여 직장을 그만두려던 동료가 카페 루즈를 방문한 뒤 남자친구의 실체를 알게 되기도 하고 거래처 불륜 커플의 속 깊은 사정을 알게 되는 일도 생긴다. 사라진 월병으로 생긴 오해가 재밌는 말장난이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카페 루즈의 주인인 마도카가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맛본 인상 깊은 디저트들을 가게에 내놓으며 디저트의 유래 등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역시 디저트에 진심인 마도카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읽고 싶은 마음에 평소 즐겨 다니는 카페에 가서 읽었는데 카페 사장님이 새로 만든 디저트라며 내주시는 모습들이 카페 루즈의 마도카와 닮아서인지 소설이 더 정감 있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 그런 이유로 에이코로 빙의되어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카페를 주제로 한 소설인 '아오야마 미치코'의 말차와 코코아 시리즈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왠지 모를 반가움도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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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 김진명 장편소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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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하고 숨을 들이켬과 동시에 역시 김진명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제목은 그가 그간 선보였던 소설을 읽었던 독자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다. 그리고 제목만큼이나 내용조차도 생생한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현실의 참혹함과 전쟁에 얽힌 여러 나라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러시아 군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강간당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끔찍한 모습만큼이나 충격적이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오래 끌지 않을 거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예상을 깨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오히려 초기의 형세를 뒤집은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러시아를 비롯 미국과 중국, 영국과 프랑스 등의 여러 나라 정상들에게도 고민을 안겨준다. 미국과 러시아에 등 돌릴 수 없는 주변국 정상들의 고뇌하는 모습은 오롯이 이타적이기만 모습은 이상향일 뿐이라는 현실감만 인식하게 한다.

약탈과 살인, 강간이 판을 치는 전쟁 속에서 아내와 딸을 잃은 미하일과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자라 우수한 군사훈련을 받은 케빈 한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도대체 어떻게 이 전쟁을, 나아가 러시아의 핵 도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란 궁금증을 더욱 부추긴다. 읽다 보면 그들의 행보가 너무도 영화 같은 내용이라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부분들이 있지만 반면 영화보다 더 한 일들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 불가능하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란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부분들이 이야기에 녹아 있는지라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달러를 찍어내 전 세계로 그 여파를 몰아넣은 미국의 행태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불사하는 러시아의 문제점들을 꼬집은 문장들은 강대국이라는 얼굴 뒤에 숨은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주며 어떻게 푸틴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란 궁금증과 함께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마냥 소설이라면 읽으면서도, 읽은 후에도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는 않을 텐데 현실이기에 읽는 내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쟁의 실상에 충격과 공포를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인류의 획을 그을 엄청난 공포가 닥칠 수도 있다는 미래는 온도 상승으로 지구의 멸망을 예측하는 시나리오보다 몇 배는 더 두렵게 다가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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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인생은 흐른다 - 이천 년을 내려온 나를 돌보는 철학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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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철학자인 세네카는 스토아학파로 유명하며 그가 남긴 명언은 세네카 명언집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될 정도로 현대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시대는 달랐어도 각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몇천년 전에 쓰여졌어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고난 앞에 선 사람들에게 삶을 뒤돌아보고 다시금 삶을 다질 수 있게 용기를 주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죽을듯이 힘들어도, 즐거워도 인생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사는 것이 즐겁고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나마 사는 것이 괜찮지만 인생의 고난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많으므로 그렇게 인생이 흘러갈 때 힘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글귀들을 볼 수 있다. 스토아학파하면 금욕주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만큼 세네카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시간을 물쓰듯 낭비하는 일을 얼마나 경계해야할지에 대한 글들이 많다. 그와 함께 쾌락에 젖어 사는 삶을 고집는 글들이 유독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한참 젊음을 발산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시대에 안맞아 와닿지 않아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보지만 역시 나이가 들면 이 말들이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되리란 생각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던 것 같다.

읽다보면 아리송한 글귀들도 있어 정확한 선을 그어 생각하기에 애매하게 다가오는 글들도 있지만 어쨌든 낭비 없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에 눈길이 향하기보다는 자신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하며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조금의 쓸데없는 낭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세네카 명언의 주요 골자로 내가 지금 삶을 방탕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할지 모르겠다면 조용히 내 자신에게 반문해가며 읽어보기 좋은 글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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