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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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서재 /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 이은정 소설집

들어가는 표지에 실린 작가 소개를 보고 젊은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8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젊은데도 무서울 정도의 관찰력과 표현력을 지닌 작가란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불혹이 되어서야 작가가 되었다는 끝맺음은 무서울 정도로 끌어낸 표현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허나 그럼에도 젊거나 혹은 나이가 있거나에 관계없이 상황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역시 감탄 그 자체로 각인된 작가임은 독자로서 환영할만한 경험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이은정 작가의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여덟 편의 단편을 모음 소설집이다. 장편의 소설은 그 나름대로, 단편을 모은 소설집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다가와 요즘은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을 많이 읽게 되는데 제목만 보고 연인이나 가족,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맞이하게 되는 다양한 이별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첫 소설인 '잘못한 사람들'은 그런 나의 예상을 깨고 뜨헉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대학 때는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특출나 교수들에게 인정을 받던 세호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받은 빚과 가장이란 무게는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직장에 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어렵게 일자리를 잡은 전단지 배포일은 최근 전단지가 없어지는 일이 발생하자 점장은 세호를 몰아붙였고 저자세로 나가던 세호는 어느 순간 입에서 튀어나간 욕설로 인해 새벽 출근 한 시간 만에 잘린 채 퇴근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새벽 세호는 친구인 주인공을 불러 동이 터올 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비난하며 주인공을 만나기 전 뭉텅이로 없어진 전단지를 어느 노파가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을 발견하고 따라갔고 그렇게 사건이 일어났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말과 함께 끝맺음을 하는 단편은 이런 종류를 예상하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하게 된다. 내걸고 범죄나 추리 소설이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에 예상치 못한 어퍼컷을 맞은 기분이 들었던 <잘못한 사람들>은 책 제목이기도 한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두 단편 외에 등장하는 여섯 편의 단편도 밝은 느낌의 소설들은 아니기에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완벽한 허구라며 비난하거나 어두워서 그저 싫은 느낌이라며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무섭도록 표현해낸 문장들 때문이었을 텐데 전체적으로 가족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그 가족에게 방치되어 온전히 상처에 갇혀버린 주인공들의 묘사는 놀랍도록 공감이 가서 문득문득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그 상황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져 마음이 아파지는 문장들, 아픈 기억을 건드려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의 8편의 단편들은 무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어찌 이리도 가슴을 파고들 정도의 단어를 문장에 담아냈는지, 슬프고 분노하게 만들고 힘들기만 한 이야기는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들기만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주인공들을 표현해낸 방법이 너무도 리얼해서 아픈데도 그 마음을 온전히 다 이해하고 다독이며 보듬어주는 느낌이 들어 에세이가 아닌데도 흠뻑 위로받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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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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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 백수린 산문 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빵과 차에 관한 일본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우리나라 작가의 빵과 차에 관한 에세이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잊어갈 즈음 백수린 작가의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을 담은 <다정한 매일매일>이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우선은 <다정한 매일매일>이란 제목이 피폐해진 감성에 너무도 필요한 단어였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따스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최근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 손에 익지 않아 하게 되는 실수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 이어지고 있어 한없이 의기소침해지던 요즘 <다정한 매일매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왠지 모를 위로로 다가왔다니, 제목을 마주하며 며칠 동안 사람의 따뜻한 온기와 다정한 말들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백수린 작가의 책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손에 닿지 않아 읽지 못했기에 백수린 작가의 글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없던 나에게는 제목부터 따뜻함으로 다가왔고 밥보다 좋아하는 빵과 함께 연상되는 소설 이야기가 술술 쏟아져 나오니 책장을 덮을 때 어릴 적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먹어보지 못한 수많은 빵들과 그 빵에 대한 유래, 그와 함께 떠오르는 어떤 추억거리나 기억,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두 어우러진 작품 한편, 빵이나 케이크를 떠올릴 때 따라오는 기적의 연상법으로 만나게 되는 문학 작품들은 반 이상이 읽지 못한 작품이었기에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빵에 대한 장소와 추억들과 함께 버무려진 소설 속 주인공들의 등장은 굳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도 글들이 그대로 마음속에 들어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휴가에서 만난 남녀가 서로의 사생활을 거짓 속에 담은 채 사랑에 빠지지만 그렇게 여름휴가를 끝내고 각자의 사생활로 돌아왔을 때 서로가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여름 거짓말>은 한 여름의 지중해 바닷가나 햇살 아래 모든 것이 반짝이는 이상적인 휴가를 연상시키는 '트로페지엔'을, 겨울이 되면 모락모락 김을 올리며 먹음직스러움을 뽐내는 호빵을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기억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란 작품과 연결된다.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에서 포장지를 접어 만들어준 종이 호랑이에 편지가 쓰여있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주인공을 보며 종이 포장지며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모았다가 작품 속 잭의 어머니처럼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주던 외할머니의 기억은 포장지와 함께 '롤케이크'를 연상하게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성공과 실패란 이분법적인 모습으로만 이해하고 싶은 인간의 모습을 그린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옥수수빵'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모양도 맛도 제각각인 빵과 케이크는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과 현재를 바탕으로 문학작품과 버무려져 흥미롭게 다가온다.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 어쩌면 그 길이 옳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나 자신이 으스러질게 두려워 부여잡고 있었던 것들은 산문 속 작품을 통해 인생의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으로 기존의 나를 깨고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조금 더 따스하게 감싸주는 것 같다. 인간이 다르지 않음을, 애써 너와 나는 다르다며 아무런 위안도 얻지 못할 위로를 했던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버리고 내가 추구하는, 내가 사랑하는, 나에게 소중하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내가 되기를 바라게 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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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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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을 목표로 시험 준비 중인 '요스케'는 바쁜 일정 중에도 모교의 자신이 몸담았던 스포츠부에서 후배들의 코치를 봐주고 있다.

늘 정해진 시간에 루틴대로 움직이는 요스케는 공부에 매진하는 한편 체력단련에도 소홀히 하지 않아 운동부 후배들이 조금만 게으름을 부려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런 것들이 쌓이며 독자로서는 위태로움을 느끼게 된다.

늘 정해진 일정을 소화해내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눈에 띄는 수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우승으로 갈 수 없었던 운동부를 더 채찍질하며 몰아세우는 요스케의 일과는 늘 똑같이 그려진다. 국회를 목표로 바쁜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소원해지며 별다를 것 없이 무료해 보이는 요스케의 일상 속에 친구의 연극 공연에서 만난 아카리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며 요스케의 일상에도 변화가 보이는 듯싶었으나 오랜 친구이자 여자친구였던 마이코에서 아카리로 대상이 옮겨졌을 뿐 요스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카리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놀러 가거나 주체할 수 없는 신체의 욕망을 분출하면서도 요스케는 아버지의 남긴 말처럼 여자에겐 늘 다정한 모습이며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매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 따위 절제할 줄 아는 청년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 속에서 요스케가 자주 하는 말인 '매너에 어긋난다'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강박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단지 무료한 일상에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정해진 양을 소화해내는, 다소 재미없지만 그럼에도 건전한 젊은이라는 인상은 점점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위태로움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전 여자친구였던 '마이코'의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과 점점 성에 집착하는 아이코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 것일지 의아하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하여금 요스케는 파국을 맞이한 것인가, 무엇이 요스케를 파국으로 이끌었던 것일까.... 솔직히 책장을 덮으면서도 이 청년이 파국을 맞이한 것이 딱히 무엇이었는지 답을 내뱉을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극명한 평점의 대비를 불러일으킨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왜 생겼는지 책장을 덮으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던 '도노 하루카'의 <파국>, 자신의 범주를 하루하루 잘 따라가고 사회 악이 될만한 행동은 일절 하지 않지만 그것을 비틀어보면 로봇처럼 감정 없이 느껴지는 요스케란 인물이 맞은 파국은 그럼에도 이것을 파국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 감정 없는 그의 성격 탓이라며 결론을 내리기에도 뭔가 석연찮은 느낌에 도대체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오게 하여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임에도 뭔가 터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이야기 내내 느껴야 했던 상반된 느낌이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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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수업 - 슬픔을 이기는 여섯 번째 단계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박여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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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 별로 없다. 다행일 수도 어쩌면 불행일 수도 있는 이 경험은 내 삶에 있어 가까운 사람의 죽음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을 체험하며 나의 이런 감정에 죄책감과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더랬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나의 행동과 감정이 일반적으로도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 것 같아 한때는 꽤나 진지하게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한참이 지난 후에야 부모 자식 간이라 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할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죽음도 일반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나 자신에게 향한 죄책감을 거두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고 가까운 지인들조차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죽음을 모두 같은 감정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 텐데 다양한 모순들이 죽음 앞에서는 희미해져버리는 것에 약간의 반감이 있었던 듯하다.

<의미 수업>은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로스의 다섯 단계 과정인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에 죽음을 맞이했거나 죽음으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여섯 단계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은 언뜻 생각하기에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로 다가올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슬퍼죽겠는데 무슨 의미를 부여하란 말인가 싶어 반발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케슬러'는 가까운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해 주고 들어주라고 이야기하며 죽은 이의 생전 일화를 이야기함으로써 남겨진 자들에게 죽음이 그저 상실감만으로만 남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모두 똑같을 수 없으며 어떠한 이유에서든 타인 앞에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놓고 슬퍼하는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위로받고 공감받음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런 상반된 반응이 잘못된 것은 아니며 성향에 따라,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이며 그것을 일반적인 잣대로 평가하여 판단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 또한 지적하고 있다. 흔히 범죄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 앞에 울지도 않고 냉정해 보이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이 가해자라고 추정하는 장면이 곧잘 등장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 또한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큰데 그로 인해 캠핑 중 딩고가 아이를 물어가는 바람에 아이를 잃어지만 오히려 보통 사람들과 달리 죽음을 대하는 모습에 가해자로 몰려 수십 년 감옥 생활을 했던 실화를 보여주며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함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미 수업>은 가까운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상실감에 휩싸인 지인을 위로해 주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끔찍한 범죄나 사건에 휘말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아무도 죽음 앞에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없기에 죽음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을 텐데 지금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커다란 상실감을 겪고 있거나 가까운 사람이 상실감에 싸여 힘겨워하고 있다면 이 책이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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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 비야·안톤의 실험적 생활 에세이
한비야.안톤 반 주트펀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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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바람의 딸' 시리즈를 읽으며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삶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더랬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는거였구나란 생각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큰 세상을 마주한 것 같아 밤새 가슴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당차며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마 나를 비롯해 많은 여성들이 자기 안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월드비전 긴급구호를 하며 여전히 세상을 누비는 그녀의 소식을 듣긴 하였으나 결혼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함께 걸어 갈 사람이 생겼습니다>는 오랜 세월 비혼으로 살았던 그녀가 오랜 세월 동료로써, 친구로서 지내왔던 '안토니우스 반 주트펀'과 결혼한 신혼 이야기를 싣고 있다. 모든 부부들의 생활이 그러하듯 비슷한 면과 그와 그녀가 오랫동안 지나온 길만큼 여느 부부와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란 궁금증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혼 생활은 '이런 부분은 나도 좀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박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느라 신혼여행을 2년 뒤에나 떠난 부부의 이야기도 역시 다르게 다가왔지만 쿠바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스페인어와 살사 배우기를 목표로 한 후 여유로운 신혼여행을 즐기기보다 스페인어 공부에 재미를 붙여 어학에 열을 올리는 부부의 모습은 현지 사람들이 미쳤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독특하게 다가왔다.

한비야와 남편 안톤이 주거니 받거니 함께 이어나간 신혼 일기는 늦깎이 신혼을 시작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자신들만의 규칙을 정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오랜 기간 연애를 했던 연인들이 결혼 후 달라진 태도에 실망하여 이혼하는 일이 많은 만큼 사랑 하나로 결혼했지만 함께 살면서 생기는 불편함 때문에 다투게 되는 일이 잦은데 한비야와 안톤 부부는 각자 자신들만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그 시간은 서로에게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추구해가는 모습은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이었다.

일 년에 석 달은 네덜란드에서 석 달은 한국에서 보내고 나머지 6개월은 각자의 일에 치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일반 부부와는 다른 모습이었는데 같이하지 못해 서먹하고 소원해지기보다 떨어져 있기에 더 애틋하고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엿보여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이 더 재미있게 다가와졌는지도 모르겠다.

60대와 50대의 신혼 이야기는 살아온 그들의 연륜만큼이나 지혜롭고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엿보여 신혼이지만 신혼 같지 않게 여유롭게 현명함이 돋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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