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지겨워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지음, 장 클라베리 그림,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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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모건스턴의 책은 즐겁다.  미소지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작가다.

이야기 속 주인공 남자아이는 박물관 알레르기라는 독특한 증상을 앍고 있는 아이다.  문화중독증에 걸린 엄마아빠 덕분에 생긴 후천적 알레르기 증상이다.  하지만 엄마아빠는 그런 주인공의 알레르기 증상에 대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들이 아이의 정신을 발달시킬 수 있고 그림들이 아이의 미적 감각과 안목과 판단력을 키워주는 비타민이 되어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아이는 박물관 안에서 달리기, 돌차기 놀이, 왁스칠한 마룻바닥 위에서 스키타기, 계단을 오십번씩 오르내리기 등등의 자기만의 놀이를 개발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들을 그린 사람들이 모두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 아이는 인물사전을 찾고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엄마아빠에게 화가들은 왜 한 사람도 살아있지 않은가를 물어본다.  엄마 아빠는 드디어 아이에게 뿌린 문화의 씨앗이 열매를 맺기 사작했다고 감격하고..

드디어 그림 뿐 아니라 살아있는 화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화랑을 가게 된다. 그 화랑에서 아이는

"나는 이제 그의 그림들이 왜 다 비슷한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는 자기만의 스타일과 독특한 붓놀림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 잘 표현될 때까지 끈질기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라는 제법 기특하고 대견스런 자기 생각을 끌어내게 되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집에 돌아와 다시 궁리.. 엄마아빠는 그렇게나 열심히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도 왜 우리집에는 누렇게 바랜 복제품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가라는 고민을 시작한다.    아이는 박물관 다니기를 그토록 지겨워했고, 박물관에서는 제대로 감상도 안하고 난동을 부리기만 했는데도 아이의 머리와 가슴 속 채널은 그 쪽 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듯해 보인다. 

아이는 자기 생일에 맞춰서 자기 방에 "내 인생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연다.  엄마아빠는 그동안 숱하게 다니던 박물관들과 차별화된 이 독특한 전시회를 관람하며 행복해 한다. 아이는 "예술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는 말이 과연 맞나 보다."하며 어느새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깊은 마음을 드러낸다.  미운 정도 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박물관을 지겨워하는 동안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예술과 문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엄마아빠의 문화중독증이 아이에게 미친 영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아이가 더 커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TV나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을 것 같고, 또 학습지나 학원으로 전전해야 하는 우리 나라 아이들의 처지보다도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일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잠자다 TV보다 하는 아빠보다야 문화중독증 아빠가 훨씬 좋을 것 같고, 가정불화나 부부간의 불륜, 말도 안되게 꼬이고 꼬인 희한망칙한 스토리가 난무하는 TV연속극 중독에 걸린 엄마보다도 천만배는 더 나을 것 같다.

문화중독증에 걸린 이야기 속의 엄마아빠가 부럽고, 그런 엄마아빠를 둔 아이에게 "넌 그래도 행운아인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나도 우리 아이가 어느날 "내 방 박물관"으로 전시회 초대를 해준다면 고맙고 황송한 마음으로 감격에 겨워 초대에 응할텐데 말이다. 

연필로 스케치하고 수채화와 색연필로 채색한 듯한 부드러운 일러스트가 이야기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있어서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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