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그림읽기 그림책의 그림읽기
현은자 외 지음 / 마루벌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 전에 그림책 원화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까지 나는 "책"이 갖고 있는 '판형'이라는 제약조건 안에서만 그림책의 그림을 보아 왔었기 때문에 그림책의 원화의 크기에 대해서도 8절지에서 4절지를 넘어 서지 않을 정도의 크기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전시회장에 들어선 나는 예상을 뒤엎는 그림책 원화의 크기에 놀랐고, 원화가 갖는 살아 있는 빛깔의 화려한 스펙트럼 앞에서 마냥 황홀해 했다.  그림책 속의 그림들은 독자인 우리의 막연한 상상력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또다른 세계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계기가 되었었다. 

<그림책의 그림읽기>는 제목처럼 그림책에서 "그림"쪽에 더 비중을 두고 저술된 그림책 기본 개념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책과 관련된 많은 책들이 그림책을 설명할 때 작가론 쪽에 치우치거나, 아니면 그림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책은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그림책 안의 시각언어인 그림을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까지 담고 있다. 사실 그림책 속의

이 책에서 예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림책 안에서의  글과 그림의 상호보완적 역할에 대해 설명하면서 '고정' 역할의 한 예로 한나와 고릴라가 극장에 갔을 때의 장면 (슈퍼맨 복장을 한 고릴라가 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과 그 그림 하단에 영화객석의 모습이 검은 바탕에 흐릿한 선으로 표현된 장면) 에서 글 옆에 있는 "......그래서 둘은 극장에 갔지"라는 글을 통해 객석에 앉은 한나와 고릴라의 뒷모습에 시선을 집중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글은 우리가 어디에 시선을 집중해야 할 지 몰라 망설이며 떠돌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중계'의 역할에서도 고릴라가 점점 커지는 장면에서 글은 단지 ".... 그런데 그날 밤에 굉장한 일이 일어났어."라고만 적고 있지만 그림은 셋으로 분할된 장면들 속에서 고릴라 인형이 점점 커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글에서 말한 굉장한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중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기본요소를 설명하는 장에서도 기본요소 중의 하나인 "색"을 설명하면서도  빨간색 옷을 입은 한나와 파란색 계열로 채색된 아버지의 그림을 예로 들면서 이는 색을 통해서 한나와 아버지의 관계단절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와 한나가 같은 빨간 스웨터를 입고 등장함으로써 아버지와 하나의 거리적 근접성뿐 아니라 같은 색 계열의 옷을 통해서 둘의 관계가 가까워졌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림 언어의 문법을 다룬 장에서는 반응자의 시선에 의해 방향선이 형성되는 경우를 설명하면서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가 바라보기와 응시하기의 훌륭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한나가 책을 읽는 모습이나 신문을 보고 있는 아버지를 마주 대하고 있는 모습, 일하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모습, 커다란 방안에서 텔레비젼을 응시하는 모습 등은 반응자인 한나를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고 이는 한나가 그녀의 주변환경으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라고 제시하고 있다. 

또한 한나와 아버지의 시선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그려진 점과 한나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방향적인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한나와 고릴라는 서로 눈을 맞추고 응시하며 같은 선상의 방향성을 형성함으로써 한나가 아버지와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고릴라는 한나에게 대리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형되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그림의 배치에서 위에 배치된 것은 이상적인 인물이나 상황을 의미하고 아래쪽에 배치된 것은 낮은 지위의 사람이거나 약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한나가 방구석에서 쓸쓸히 텔레비젼을 보는 장면에서 한나를 그림의 하단에 배치함으로써 아버지와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소외된 한나를 묘하고 있으며 영화관 장면에서 수퍼고릴라를 그림 상단에 배치하여 이상적인 존재로 제시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림책의 언어를 읽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다양한 예를 제시하면서 설명하고 있어서 그림책을 읽으면서 의식하지 못하고 넘겨버리는 "그림"의 의미들을 새롭게 짚어볼 수 있는 계기를 선물하고 있는 책이다.  사실 요즘에 출판되는 그림책들을 보면 그림이 단순한 '삽화'의 의미를 넘어서 하나의 예술적 쟝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 아이들의 취향을 맞추기에 급급한 듯 보이는 그림책들도 없지 않지만 외국에서 이미 그 가치를 인정받은 훌륭한 그림책들도 많고 국내에도 이제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굵직한 그림작가들이 등장하게 된 것 같다.  이는 훌륭한 그림책을 선정하여 소개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기존 어린이 문학 비평가나  어린이 책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좋은 그림책을 아이에게 골라주려는 부모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산더미처럼 쏟아져 쌓여가는 많은 양의 그림책들 중에서 좋은 그림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독자로서의 안목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좋은 그림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출 수 있다면 묻혀있는 훌륭한 그림책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림책 시장에서 질이 낮은 그림책들을 선택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추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그림책의 "그림"이 갖고 있는 영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여건 속에서 <그림책의 그림읽기>는 내게 참신하고 신선한 그림책 이론서로 다가온 책이다.  대부분이 외국 그림책을 예로 들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우리나라 그림책 영역이 더 넓어지고 커지다 보면 그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 질 것이라고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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