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가 쓴 잔혹한 폭력과 기이한 애정, 그리고 처절한 복수를 담은 낯설고 격렬한 소설 [폭풍의 언덕]은 엘리스 벨이라는 필명으로 1847년 출간되었다. 당대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내용과 인물들로 발간 당시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남성의 필명을 쓰는 이 울퉁불퉁한 이야기의 저자가 여성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출간된 지 십삼 년이 지난 1860년대에는 이 소설이 에밀리 브론테의 남동생 브랜웰의 작품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에밀리는 지역 교구의 목사인 아버지와 함께 요크셔 지방의 하워스에 있는 외지고 황량한 언덕에 자리한 집에서 다섯 남매들과 함께 자랐다. 잘 자란 성직자의 딸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 욕망과 악마 같은 잔인함이 깃든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에밀리 브로테와 함께 당대의 베스트셀러이자 페미니즘 문학의 원조격이라 할 만한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19세기의 일상을 세밀하게 담아낸 [아그네스 그레이] 의 작가 앤 브론테, 이들은 모두 황량한 히스 벌판이 눈앞에 펼쳐지는, 바람 부는 언덕 위의 외딴 집에서 문학사의 기념비적이 작품들을 남겼다. 도대체 그 바람 부는 언덕 위의 외딴 집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아일랜드 출신 성직자인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 영국 남부 지방 출신으로 학식 있는 여성이었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여섯 아이들로 구성된 브론테 가문. 1820년에 아버지 패트릭이 영국 요크셔 주 하워스에서 종신직을 얻자 그들 가족은 거친 황야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위치한 목사관으로 이사 왔다. 18세기에 지은 그 2층 집은 그때부터 부모와 여섯 형제, 그리고 붙박이 하인 두 명까지 총 열 명이 복닥거렸다.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오면, 으르렁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형제들은 저마다 기이한 상상들을 펼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깨알같이 기록한다. 책을 만들고 번갈아 가며 서로의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대면서 길고 긴 황야의 밤을 건너곤 했다.


빅토리아 시대 문학 연구가인 데버러 러츠가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브론테 가 관련 자료와 유품들을 연구하며 브론테 자매들의 일상에 늘 함께했던 아홉 개의 물건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문학을 다양한 측면에서 새롭게 분석한 브론테 자매 평전이다.

 

저자는 히스가 무성한 황야의 세찬 바람 속을 고독하게 산책하며 작품의 영감을 키워낸 브론테 가의 세 여성의 물질적 세계를 들여다본다. 브론테 형제자매가 어린 시절에 만든 미니어처 책, 당시 유행하던 잡지를 본떠 남매가 함께 만든 가족 문집, 집안에서는 언제나 손에 붙잡고 있었던 바느질 도구들, 황야로 고독한 산책을 떠나며 손에 들었던 자두나무 지팡이, 그리고 에밀리가 유난히 사랑했던 거칠고 사나웠던 개 키퍼와 개 목걸이, 그들의 휴대용 책상 등, 각각의 개인적 사물들은 브론테 자매의 놀라운 상상력이 펼쳐졌던 독특한 세계와 그들이 사랑했던 소설,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로 들어서는 창문과도 같다. 저자는 이러한 사물의 세계에 시대를 초월하는 문화적 가치가 깃들어 있음을 탁월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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