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인간은 원래 물에서 살았대, 아주 먼 옛날에는 말이야. 쇄골은 아가미가 있던 흔적이고 갈비뼈는 지느러미가 떨어지고 생긴 무덤이야. 그런데 인간은 결국 어떤 이유로 퇴출당한 거야. 육지는 해상의 유배지였던 셈이지. 그래서 물에 사는 것들은 육지에서 걸을 수 없지만 육지에 사는 것들은 유전자가 가진 태초의 기억으로 수영을 할 수 있어. 물로 몸을 씻어내는 것도 육지의 죄를 닦아내는 행위에서 비롯된 거야.


(251)

인간의 치아는 음식을 씹어 삼키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내장은 피부보다 연약해 씹히지 못한 덩어리를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으므로, 어쩌면 인간의 창조주가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걸 다 집어넣지 못하도록 해놓은 장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씹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왜 치아를 만들었을까. 눈을 보호할 필요가 없는 진에게 속눈썹과 눈꺼풀은 왜 필요한가. 손등의 미세한 털과 귓바퀴의 굴곡, 복사뼈까지도. 그렇다면 이 모든 걸 같은데 인간은 쉽게 죽고 자신은 쉽게 죽지 않는 이유가 무석인가. 그 모든 질문의 끝에 진은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다. ‘자신은 왜 이 질문을 하고 있는가.’


(259)

기존의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깨는 것이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이었지. 이성적 사고에는 형태가 분명히 존재해. 바보 같이 우리는 그걸 몇 천 년 동안, 인류가 생각난 이후로 계속 동식물을 포함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이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는 차이점은 형태였지. 두 다리, 두 팔, 그 둘을 연결시키는 허리. 발가락의 관절과 심장과 폐를 감싸는 갈비뼈 하나하나 전부가 이성의 실체였어. 모든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인간은 은하야. 구성된 물질은 서로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결국 다 하나의 항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거지. 인간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려면 인간처럼 생겨야 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 인간만의 특권이라 여긴 직립보행이 실마리였어. 서로 다른 개체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을 옆을 두고 그렇게 긴 시간을 헤맨 거야. 인간은 휴론의 생각이 데이터를 통한 판단이라 여겼고 이름과 개성이 성격을 종합해 낸다고 믿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인간과 똑 같은 형태를 가진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개체에게는 자유로운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믿지. 나는 인간들에게 이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


(329)

사랑은 이제 끊임없이 생명에게 기생해 수 세기를 살아남은 질긴 바이러스다.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버려지지 않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생명의 생각을 조종하는 것이다. 뇌를 커다랗게 감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을 만들어 때에 맞춰 심장을 뛰게 하고 체온을 높이고 시각을 둔화시켜 현실의 객관성을 잃게 만든다. 상대방이 없을 때에는 기관지의 크기를 줄여 답답함을 느끼게 하고 잠들지 못하게 생각을 깨우며 상대방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최악의 망상을 반복해 함께 있음에도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419)

개인의 비극은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섞이거나 나눌 수 없다. 인간은 개인이 하나의 행성이므로, 각자의 비극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결국 그 파괴의 에너지가 은하수 전체에 퍼질 테니. 연쇄적 비극은 언젠가 모든 것을 태초의 상태로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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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익스프레스 - 중력의 원리를 파헤치는 경이로운 여정 익스프레스 시리즈 1
조진호 글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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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너희들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좀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만화로 중력을 이야기하는 <그래비티 엑스프레스>를 샀단다. 그런데 너희들이 보기에는 아직 책이 좀 어려운 것 같았어. 오히려 과학을 좀더 쉽게 접하고자 하는 어른에게 맞는 책 같았단다. 이 책은 지은이 조진호 님께서 출간한 익스프레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데, 디자인이 일단 멋지단다. 이 시리즈가 모두 네 권인데 이 네 권을 함께 모셔두면 책장이 폼이 나더구나. 천천히 한 권씩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좀 더 크면 읽어보면 좋겠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로 중력과 중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잘 그려냈단다.


1.

이 책은 인류가 중력을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단다. 지구 상의 물체는 왜 떨어질까에 대한 고민을 오래 전부터 해봤단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달과 태양의 정체는 무엇인지 고민들을 많이 했단다. 기원전 600년 전 아낙시만드로스라는 사람은 이 세상이 둥글게 휘어져 있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어딘가에 지탱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윗부분은 둥그렇게 생겼지만 아래쪽은 원통 모양이라고 생각했다는구나.

피타고라스는 세상 만물을 수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지구와 우주를 모두 구 모양이라고 생각했대. 지구와 태양은 우주의 중심으로 돌고 있고, 우주는 규칙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규칙성은 수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어. 지금 와서 보면 피타고라스는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것 같구나. 기원전 5세기 아낙사고라스라는 사람은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라고 했다는구나. 이 분의 추측도 정확하게 맞았구나.

기원전 300년대에서 200년대를 살던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지구가 하루 한번 스스로 돌고, 지구가 공전한다고 주장을 했어. 태양은 우주의 중심이라고도 주장을 했는데, 이것은 그의 생각일 뿐 증명은 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다고 했어. 그리고 그는 우주의 크기를 측정하려는 시도도 했다는구나. 이런 사람들의 생각들과 연구가 점점 쌓이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더 훌륭한 사람들도 출현한단다.

에라토스테네스라는 기원전 2세기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과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사람으로 아빠도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나는구나. 그의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가 한 일은 아주 정확히 기억한다.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고 기둥의 그림자를 이용해서 지구의 반지름과 둘레를 구한 사람으로 유명하단다. 그가 사용한 이 방법은 수학적으로도 올바른 방법으로 그가 잰 지구의 반지름은 실제와 10%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예전에 너희들이 지구의 크기가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 아빠도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대로 지구의 반지름을 잴 수 있다고 설명해 준 적이 있는데, 기억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에라토스테네스는 월식을 이용하여 달의 크기가 지구의 약 4분의 1이라는 것도 구했단다. 그것뿐만 아니라 달까지의 거리, 태양의 크기, 태양까지의 거리도 구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2.

여러 가지 증거들을 보면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하지만 그들이 갖는 한가지 의문점이 있단다. 지구가 둥글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라는 의문점이야. 그냥 다 떨어지고 아무도 살지 않나? 그리고 지구도 그렇게 둥근 상태로 떠 있다면 어딘가로 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갖게 되었어.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떨어지는 낙하 현상을 근본 원소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본성이라고 설명했단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했고, 지구 상의 물체가 지구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가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별이나 태양은 왜 안 떨어질까? 그것에 대한 설명은 지상 세계와 천상 세계는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그것에 대한 것을 모두 논리적으로 설명했다고 하는구나.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사람은 지구가 중심이고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하는 천동설을 주장하였는데, 그는 이 천동설의 설명을 위해 하늘의 별과 태양과 달의 움직임도 설명했어. 천동설에 짜 맞추려다 보니, 예외적으로 움직이는 별들이 많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예외적인 것들이 많다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 좋았을 텐데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은 아주 오랫동안 정답으로 이어졌단다. 중세 코페르니쿠스와 임페투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 이어졌단다. 하지만 여전히 물체가 낙하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했단다. 행성 운행의 3 법칙으로 유명한 케플러는 낙하하는 물체의 원리가 질량자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뒤이어 점점 위대한 과학자들이 출현한단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개조해서 목성의 4개 위성을 관찰하게 되면서,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돼. 낙하하는 물체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는데, 그는 낙하속도가 높이와 시간 사이의 규칙성을 발견하게 된단다. 관성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하게 되는데, 후에 뉴턴이 정의한 관성과는 조금 다르지만, 갈릴레이는 모든 운동을 하는 물체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그것이 관성이고, 그 관성 때문에 행성들이 원운동의 궤적을 따른다고 했어. 그러니까 지구나 행성이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을 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단다.

드디어 뉴턴이 등장하여 중력에 대해 정확하게 정리한단다.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것으로 중력을 정의하고 지구 상에 모든 물체는 떨어진다고 할 때 항상 의문이었던 달은 왜 안 떨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에, 뉴턴은 달도 지구로 떨어진다고 설명하였단다. 뉴턴이 중력의 정체를 풀어내고, 역학 법칙을 정립했지만 결국 중력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풀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과학자들은 빛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 책의 후반부는 그런 빛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를 설명한단다. 왜 중력 이야기를 하다가 빛의 이야기까지 할까?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것은 뉴턴의 상대성 이론을 이야기하기 위한 전채라 볼 수 있단다. 빛 마저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 것을 설명하고, 시공간도 구부러진다는 상대성 이론 말이야. 상대성 이론은 이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해서 오늘은 생략할게.

…..

이 책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했단다. 너희들이 좀 커서 중력에 관심이 있다면, 오구리 히로시 님의 <중력, 우주를 지배하는 힘>와 오정근 님의 <중력파>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물론 이번에 아빠가 읽은 <그래비티 익스프레스>도 좋고


PS:

책의 첫 문장: 쪼로록

책의 끝 문장: 이것 또한 멋진 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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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여름 지음 / &(앤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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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박균호 님의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라는 책을 읽었어. 그 책에서는 소설과 인문서를 짝지어 소개시켜주었는데, 그 책에서 소개해준 준 소설 중에 가장 최근에 출간된 소설 권여름 님의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란 책이 있었어. 책 제목부터 재미있을 것 같아 책 소개를 찾아 읽어보았단다. 2021년 제 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책이라고 하고, 지은이 권여름 님은 이 책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다이어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결심이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구나. 아빠는 결심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다이어트란다. 적당히 먹으면서 운동도 틈틈이 하면서 천천히 몸무게를 줄이겠다는 마음.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나이를 먹어서 기초대사량이 줄어서 그런지, 예전과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운동한다고 생각하는데, 몸무게는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속상하구나. 아무튼 아빠도 적극적인 다이어트는 아니더라도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단다. 이번에 읽은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제목만 보면, 유쾌한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처럼 생각했는데, 재미는 있지만 좀 무거운 내용의 소설이었단다.


1.

주인공 봉희는 상업고등학교를 다닐 때 성적이 일등이었단다. 그래서 졸업을 하게 되면 은행에 취직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인 줄 알았지.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은행은커녕 취업을 아예 하지 못했어.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봉희 자신도 눈치채고 있었지. 남들보다 몸이 통통했던 거야. 외모가 능력인 사회에서 봉희는 취업을 못했던 것이란다. 학교 성적은 자신보다 한참 떨어진 친구들도 취업을 하는데 말이야.

봉희는 단식원에 들어가게 된단다. 유리 단식원. 유리 단식원은 원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단식원인데, 봉희가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어떤 건물의 2층을 빌려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점점 번창하게 되어 시외에 5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고 이름도 구유리 건강 힐링 센터로 바꾸었단다. 봉희는 단식원 회원으로 왔다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후 코치로 일하게 되었단다. 코치가 하는 일은 담당 회원들의 다이어트를 담당하는 것인데, 담당 회원들의 다이어트 성적이 바로 코치의 성적이 되어 코치의 랭킹도 공개하는 그런 치열한 경쟁 사회였단다. 봉희의 애제자로 할 수 있는 소운남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이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여자였단다. 운남은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의 주인공으로 참석 예정이었는데, 방송하기로 한 그날 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단다. 봉희는 단식원 건물을 다 뒤져 찾아보았지만 없었어. 전날 운남이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것을 보고 운남을 걱정해주기 보다, 도대체 운남이 먹지 말아야 할 무엇을 먹었는지 밤새 신경을 쓴 점이 마음에 걸렸어.

원장은 봉희에게 무조건 운남을 찾아내라고 해서, 봉희는 무작장 운남의 빈 방을 살펴 보았어. 운남은 모든 짐이 사라져 있었어. 손톱 깎기 하나만 남겨 두고그것은 지리산 산채비빔밥이라고 써 있는 거 봐서 그 식당에서 받은 것 같았어. 봉희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을까? 직접 지리산 산채비빔밥이라는 식당을 찾아 나섰단다.


2.

운남이 그곳에 왔을라고그런데, 그곳에서 운남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단다. 운남의 성씨가 라는 희귀 성씨라서 찾을 수 있었던 듯… ‘지리산 산채비빔밥은 오래 전에 서울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고, 운남의 본명은 강미라는 것을 알게 돼. 운남, 아니 강미의 어머니는 운남이 단식원에 들어간 줄 모르고 계셨어. 차마 운남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봉희는 다시 단식원으로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인기 유튜브의 라이브 방송에 참가자로는 아이돌 연습생인 안나가 운남을 대신하기로 했어.

봉희는 운남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고, 계속 운남에게 메일을 쓰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단다. 그렇게 계속 메일을 보내던 어느날 운남으로부터 아주 짧은 답변이 왔단다. 하지만 그것으로 운남이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지 못했어. 단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안도감? 봉희는 운남의 소지품에서 마약 성분의 식욕 억제제를 발견하게 돼. 이건 불법 금지 약물인데 이걸 운남이 어떻게 갖고 있었을까. 봉희는 보건 코치와 원장에게 이야기했지만, 잔소리만 들었단다. 그건 운남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자신은 책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어. 이 일이 있고 나서 봉희는 원장과 사이가 안 좋아졌단다.

운남 대신 촬영한 안나의 방송은 성공을 넘어 대박이 났어. 유뷰트 라이브 시청자도 어마어마했단다. 가장 힘든 사람은 그 촬영을 하고 있는 안나였단다. 안나의 마지막 촬영은 단식원 뒷산을 등산하는 것인데, 이미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안나가 그 등산을 한다는 것에 무엇인가 사고가 터질 것 같더구나. 그런데 봉희는 뒷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폐교에서 얼핏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운남인 듯 보였어. 봉희는 유튜브 촬영을 도와주고 있어서 지금 당장 폐교로 확인하러 갈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찾아가 볼 마음이었지.

그리고 촬영은 막바지.. 안나가 산 정상을 얼마 앞두고 있는데, 산 정상에 누군가 나타났어. 그가 누군지 알고 다들 깜짝 놀랐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운남이었단다. 안나도 그런 운남을 보고 놀래서 쓰러지고, 운남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 둘 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쓰러진 거였어. 그 장면들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많은 사람들이 봤단다. 이 사건이 일어나서 원장은 피해를 입을 것 같았지만, 여론을 조종해서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봉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 고민 끝에 단식원에서 불법으로 식욕 억제제를 사용했다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했단다. 이 동영상은 삽시간에 많은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어. 원장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리고 봉희는 다시 지리산을 찾았고, 꿈에서 운남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아빠도 뚱뚱한 몸보다 균형 잡힌 몸을 좋아하고, 너희들도 그렇게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균형 잡힌 몸이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을 해서였거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살찐 이들보다 아름다운 몸을 가진 이들을 선호하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구나. 그러니까 여전히 소설 속의 단식원 같은 것들이 현실 사회에도 많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그런 생각들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것 저것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었단다.


PS:

책의 첫 문장: 새벽 세 시,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책의 끝 문장: 봉희의 눈이 질끈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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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12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 전 다섯시 그리 개운하게 눈은 안떠져도 저절로 기상!^^

bookholic 2022-10-13 18:31   좋아요 0 | URL
늦게 주무시는 것 같은데, 다섯 시에 일어나시면...
건강을 위해 푹 주무시길...^^

그레이스 2022-10-14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장 끝 문장에 의도가 담겨있네요^^

bookholic 2022-10-14 23:30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두 문장이 연관성이 있네요...^^
작가의 멋진 의도를 그레이스 님께서 알아채셨네요...
 
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광기와 사랑, 그리고 세계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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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너희들이 읽는 책 중에 <청소년을 위한 사라진 스푼>이라는 책이 있더구나. Shon은 그 책을 읽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그 책 중간중간 보면서, 원소 기호에 대한 문제를 내곤 했지. 책 제목에 청소년을 위한이란 말이 붙어 있다면, 그냥 <사라진 스푼>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조회를 해봤어. 주기율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으로 평이 좋았어. 주기율표를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원소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고 했어. 읽어볼 만하겠더구나. 그래서 아빠도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았단다.

지은이는 샘 킨이라는 미국 사람으로 물리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더구나. 이 책을 보면 가장 궁금한 것이 왜 책제목이 <사라진 스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이유는 갈륨이라는 원소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알게 된단다. 갈륨은 상온에서 고체이지만, 조금만 온도가 높게 되면 녹는다고 해서, 뜨거운 차에 넣으면 사라지는 장난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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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이지만 29.8℃에서 녹기 때문에,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면 녹아서 수은처럼 변한다. 갈륨은 액체 상태에 만져도 뼛속까지 살이 타지 않는 희귀한 금속 물질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갈륨은 화학 전문가들이 사람들에게 장난치고 싶을 때 선호하는 물질이 되었다.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는 알루미늄처럼 보이고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갈륨으로 찻숟가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차와 함께 손님에게 내놓고는, 손님이 찻잔에 담근 찻숟가락이 사라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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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갈륨에 대한 이야기는 책 전체에서 일부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그것을 책 제목으로 뽑은 것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작전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책 전체의 제목을 뽑으려면 원소 이야기라든가, 주기율표 이야기 정도가 될 텐데, 그런 제목으로는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없을 것 같으니, <사라진 스푼>이라는 제목으로 뽑지 않았을까 싶구나.


1.

이 책은 책 소개에서 본 것처럼 주기율표에 얽혀 있는 재미 있는 이야기, 원소들에 얽힌 이야기 등이 역사, 과학, 정치 등 다방면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단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최소 단위가 원소이고, 그 원소들로 이 세상이 이루어져 있으니, 원소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세상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구나.

아빠에게 이 책은 책 소개에서 이야기한 것들보다 추억 소환을 많이 해주는 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구나.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 특히 화학이 많이 생각났어. 그리고 아빠가 오래 전에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과학을 가르쳤거든아빠가 화학이 취약해서 수업 준비를 엄청 열심히 했던 기억도 떠 올랐단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화학이 참 재미있는 과목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아무튼 이 책은 고등학교 때와 아르바이트 하던 그 시절이 참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어. 그 때 함께 사람들도 말이야. 지금은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면 지내시는지

주기율표. 원소들이 하나하나 발견되었고, 연구를 하다 보니 비슷한 성격의 원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 원소들을 나열하는 방법들을 연구했는데, 멘델레예프라는 사람이 처음 고안하게 되었고, 그 이후 더 좋게 바뀌어 오늘날 주기율표가 된 것이란다. 너희들도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주기율표를 배우게 될 텐데, 원소의 배치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다. 가로줄이 의미하는 바가 있고, 세로줄이 의미하는 바가 있어. 아빠가 앞서 성질이 비슷한 원소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비슷한 원소들 같은 열에 모아 두었단다. 그러니까 주기율 표의 세로줄에 모여 있는 원소들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보면 돼. 그 세로줄에는 이름들이 붙어 있고 말이야.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외울 때 그 세로줄끼리 외웠던 기억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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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각 가로줄을 수평 방향으로 지나가며 주기율표를 읽으면 원소들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나마 가장 좋은 이야기도 아니다. 같은 세로줄에서 수직 방향으로 늘어선 이웃들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거의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무엇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렇지만 주기율표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면 예기치 못했던 경쟁 관계와 대립 관계를 비롯해 원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주기율표는 나름의 문법을 갖고 있으며, 행간을 잘 살피면 아주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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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많은 원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빠가 다 기억을 하지 못한단다. 그래서 재미있어서 너희들에게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발췌한 부분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 줄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가 어쩌면 태양이 한 개가 아니라 될 뻔했다고 하는구나. 목성이 별이 되려다가 실패한 행성이라고 했어. 그런데, 태양계에 두 개의 별이 있었다면 지구에 생명체가 있을 수 있었을까? , 목성이 별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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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4)

목성 내부에 원소들이 이렇게 기묘한 형태로 존재하는(그다음으로 큰 행성인 토성에서는 그 정도가 좀 덜하다) 이유는 목성이 보통 행성이 아니라 별이 되려다 실패한 행성이기 때문이다. 목성이 지금보다 10배쯤 더 많은 물질을 끌어모았더라면, 일부 원자핵이 융합을 일으킬 만큼 충분한 질량을 가지게 되어, 행성에서 졸업해 낮은 에너지의 갈색 빛을 방출하는 갈색왜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태양계에서는 2개의 태양이 쌍성계를 이루어 존재할 것이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이런 상황은 그다지 기이한 것이 아니다.) 그러는 대신에 목성은 핵융합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해 식어버리고 말았지만, 원자들을 아주 촘촘하게 압축시킬 만큼 충분한 열과 질량과 압력을 지녀 원자들이 지구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목성 내부에서 원자들은 화학 반응과 핵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림보(limbo, ‘가장자리란 뜻인 라틴어 limbus에서 유래한 말로, 지옥과 천국의 중간에 있는 장소)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는 행성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나 기름 같은 금속성 수소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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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를 이루고 있는 원소의 약 80퍼센트가 질소란다. 그런데 그 질소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대기 중에 80퍼센트가 질소니까 우리가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야. 질소가 무서운 원소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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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질소는 그러한 시스템의 작동을 방해한다. 질소는 냄새도 색깔도 없으며, 혈관 속에서 산을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질소를 쉽게 들이마시고 내보내는데, 폐도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않으며, 질소는 우리의 어떤 심리적 인계철선도 건드리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든다. 질소는 체내의 보안 시스템을 무사통과해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자비롭게 죽인다.”(질소와 같은 족에 있는 원소들을 옛날에는 닉토겐족이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질식또는 목을 조름이란 뜻의 그리스어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게 재미있다.) NASA의 그 기술자들(22년 뒤 텍사스 주 상공에서 공중 폭발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컬럼비아 호에서 발생한 최초의 희생자들)은 질소 안개 속에서 머리가 몽롱해지고 몸이 처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33시간 동안 계속 일한 뒤에는 누구라도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으며, 아무 이상도 못 느끼고 질소를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에, 의식을 잃고 질소가 뇌의 작동을 멈추기 전까지 더 이상 정신적으로 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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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예전에 어떤 책에서 X선을 발견 뢴트겐이라는 사람에 대해 읽고, 그 사람의 인성이 너무 훌륭해서 학습 만화로 된 뢴트겐 위인전을 너희들에게 사 준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뢴트겐이라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서 얼마나 꼼꼼했던 사람인지 알게 되었단다.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이면서, 한편으로는 노벨물리학상으로 받은 상금을 모두 기부할 정도로 착하고, 내가 자신에게는 철저했던 사람이라니, 또 다시 봐야겠구나. 뢴트겐 전기문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지금 검색해보니, 품절된 책들 이외에는 학습만화만 있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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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오늘날 우리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면서 이렇게 수선을 피운 걸 보고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가 보여준 그가 보여준 놀라운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뢴트겐은 자신이 뭔가 획기적인 것을 발견했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어딘가에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꼼꼼히 따졌다. 당황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증명하려고 연구실에 7주일이나 틀어박힌 채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조수들도 다 내보내고, 식사도 마지못해 억지로 삼켰고, 가족에게는 대화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했다. 뢴트겐은 크룩스나 메갈로돈 탐색자, 폰스와 플라이시만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알려진 물리학으로 설명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혁명가가 되길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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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그 외에도 많은 재미있는 원소의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아빠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서 이만 하련다.


3.

언젠가부터 여러 매체에서 접하는 원소들의 이름이 아빠가 공부할 때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소의 이름들을 영어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는 거야. , 아빠가 배웠던 원소 이름도 외국어였는데…. 그 이름은 대부분 독일어였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많이 쓰는 영어로 바꾸었다고예를 들어 망간은 망가니즈, 플루오르는 플루오린, 크롬은 크로뮴, 요오드는 아이오딘으로 바뀌어 있었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책의 옮긴이는 우리나라의 졸속한 정책에 대해 옮긴이의 글을 통해 비판을 하고 있었단다. 아빠가 읽어보니, 옮긴이의 말이 일리가 있었어. 몇 십 년 동안 큰 불편 없이 써왔던 원소이름을 몇몇 소수의 의견으로 바꿔버리다니 잘못했네. 그렇다고 일관성이 있나? 그것도 아니란다. 어떤 것은 영어로 바꾸어 놓고, 어떤 것으로 그래도 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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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484)

그나저나 보통 사람들이 별 불편 없이 써오던 원소 이름을 왜 갑자기 바꾸자고 한 것일까? 미국 유학파가 다수인 대한화학회 관계자가 설명한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국제 회의 같은 데 가면, 우리나라에서 칼륨이나 나트륨으로 배운 사람들이 포타슘이나 소듐이라고 하면 헷갈려서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대학 때 원서로 화학을 배우면서 약간 헷갈린 경험이 있는지라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국제 회의에 참석할 정도면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일 것이다. 우둔한 나도 영어 원서를 계속 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져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불편하다고? 그렇다면 수소와 산소는 왜 바꾸자고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평소에 하이드로전과 옥시전이라고 배워야 국제적으로 제대로 소통하지 않겠는가?    -- 옮긴이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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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로 바뀐 원소명은 일관성도 없고 표기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뭐라고 평가할 수조차 없다. 주식 시장의 용어를 빌리자면 감사 의견 거절이다. 감사 의견 거절이 나오면 해당 주식은 상장 폐지되어 주식 시장에서 퇴출된다. 어쨌든 번역자의 양심상 이런 이름들은 도저히 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름들을 이미 교과서에 쓰기 시작했다니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캘리포늄, 아인슈타이늄, 프로탁티늄만 바뀐 이름으로 쓰고, 나머지는 이전에 쓰던 이름을 그대로 쓰되 처음 한두 번은 괄호 안에 바뀐 이름을 병기하기로 했다. 번역자의 책임은 아니지만, 독자 여러분에게 혼란과 불편을 드려 괜히 송구스럽다. 대한화학회와 국어연구원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여 조속히 제대로 된 개선안을 내놓기 바란다.     옮긴이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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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을 읽다 보니, 이렇게 바뀐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옮긴이의 말대로 더 혼란을 주기 전에 다시 검토를 했으면 좋겠구나. , 그나저나 원소 이름을 부르는데 확실히 세대차이가 나겠구나. ㅠㅠ


PS:

책의 첫 문장: 많은 사람들은 주기율표라고 하면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선생님 어깨 너머에 걸려 있던, 가로줄과 세로줄이 다소 비대칭적으로 배열된 도표를 떠올릴 것이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우리가 주기율표를 여러 각도에서 읽는 방법을 설명해주면, 그들은 정말로 감탄하여 휘파람을 불고, 주기율표에 원소들을 집어넣은 우리의 방식에 큰 충격을 받을지 누가 알겠는가?


즉, 대부분의 원소는 최소한 우리에게 익숙한 보통 온도에서는 차가운 회색 고체 물질이다. 오른쪽 끝부분에 있는 몇몇 세로줄에는 기체 원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실온에서 액체인 원소는 수은과 브롬(브로민), 두 가지뿐이다. 금속 원소들과 기체 원소들 사이에는 정의하기가 다소 애매한 원소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러한 모호한 특징 때문에 이 원소들은 흥미로운 성질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화학 실험실에 보관돼 있는 것보다 수십억 배나 강한 산을 만들 수 있다. - P19

그러나 게르마늄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1954년에 이르자 트랜지스터 산업이 급성장했다. 컴퓨터의 처리 능력이 수십 배 이상 증가했고, 휴대용 라디오 같은 새로운 제품의 생산 라인이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급성장기 동안에 공학자들은 실리콘에 미련을 갖고 연구를 계속했다. 실리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 중 일부는 게르마늄의 단점 때문이었다. 게르마늄은 전기를 아주 잘 통하게 하는 성질이 있는 반면, 바로 그 때문에 불필요한 열이 너무 많이 발생해 게르마늄 트랜지스터가 과열되어 작동이 중단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더 중요한 이유는, 흙보다도 더 싼 실리콘(모래의 주성분인)의 가격 경쟁력에 있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게르마늄을 고수하면서도, 실리콘 트랜지스터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었다. - P59

가끔 이러한 이론적 종이 뭉치가 핵폭발이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성공한 것으로 쳤다. 하나의 계산이 끝나고 나면, 여성들은 곧바로 다른 무작위 수들을 가지고 다시 계산을 했다. 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계산이 계속되었다. ‘리벳공 로지’는 전쟁 기간에 산업 현장에서 일한 여성을 상징한다.(리벳공 로지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전쟁터로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 산업 현장에서 일한 여성을 상징했다. 유명한 포스터에서 리벳공 로지는 소매를 걷고 "우린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여성들은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승리와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 얻은 새로운 기술과 자유에 자부심을 느꼈다.-옮긴이) 하지만 엄청난 수치 자료를 일일이 손으로 계산한 이 여성들이 없었더라면 맨하튼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여성들은 ‘컴퓨터’라는 신조어로 불렸다. - P142

주기율표의 역사가 정치로 얼룩져 있다면, 돈과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긴밀하다. 많은 금속 원소의 이야기는 돈의 역사와 얽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원소들의 역사는 위조의 역사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소, 향신료, 돌고래 이빨, 소금, 카카오콩, 담배, 딱정벌레 다리, 튤립 등이 돈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위조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금속은 위조하기가 쉽다. 특히 전이 금속 원소들은 전자 구조가 비슷해 화학적 성질과 밀도가 비슷하며, 서로 잘 섞이기 때문에 합금을 만들 때 다른 물질 대신에 쓸 수도 있다. 위조범들은 귀금속과 값싼 금속의 배합 비율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속여왔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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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0-14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기율표 관련 책 너무 많은데, 이책도 급 관심! 재밌을것 같아요

bookholic 2022-10-14 23:31   좋아요 1 | URL
원소와 주기율표에 대한 상식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 읽는 재미가 좋았어요~~^^
 














(23)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꿈꾸는 것을 이루려 한다면 억압체제에 저항하게 돼요. 왜냐하면 체제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사랑과 자유는 항상 같이 가는 거예요. 인문학의 정신이 사랑과 자유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 두 가지 내용을 가진 것이 인문주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예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33)

노예사회, 농노사회, 노동자사회, 본질적으로 진보한 것이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들 다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지 못해요. 지금 노동자들이 아무리 농노보다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생산이 아니라 특정 소수, 부르주아들이 원하는 생산을 하고 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주인이라고 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사람들을 노예라고 불러요. 고전적 정의예요. 질적으로 보면 아직도 억압사회인 거죠. ‘소비사회라는 논리로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되기 때문에 노동계급한테 소비자의 위상을 주는 거예요. 월급을 주고 물건 만들고, 또 그 돈으로 소비하고, 이 과정이 계속 돌면서 계속 월급쟁이 생활을 하지만, 과거 농노보다는 경제 사정이 좋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52)

인문(人文)이라는 말이 영어로 휴머니티(humanity)이기도 하지만, 한자로 사람 인() 자에 무늬, 결 문()자잖아요. 천문(天文)은 하늘의 무늬를 뜻하고, 지문(地文)은 땅의 무늬잖아요. ‘터무니없다는 말이 터의 무늬가 없다는 뜻인데, 풍수지리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인문은 사람의 문맥을 읽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배운다는 것은 무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 안에 콘텍스트가 많이 들어 있는 거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표현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콘텍스트가 많이 들어 있어서 오해 없이 설명을 해서예요.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나서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별점으로 점수를 줘요. 그런데 평론가는 왜 좋았는지를 길게 쓰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평론가의 글을 읽고,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할 수 있죠. 콘텍스트가 불분명해서 생기는 반응이에요. 한마디로 글을 잘못 쓴 거예요.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평론가의 얘기가 더 쉬워요. ‘너무 좋았어이렇게만 말하면 뭐가 좋았는지 모르잖아요.


(65)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것은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하고 얘기할 때 빵빵 터지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선순위에서 밀어놓은 것은 손주는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니까요. (웃음) 이상한 상상력을 가진, 새로움을 접하니까요. 젊다는 것은 새롭고 낯설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끼리는 서로 차별도 하지 않아요. 어린아이가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종차별을 할까요? 그러지 않잖아요. 차별은 위계질서가 굳어지고 우선순위가 매겨진 기존 사회에서 물려받은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런 거죠. 새롭고 낯설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현실은 굉장히 슬픈 일인 것 같아요.


(88)

자본주의는 공동체에서 쪼개진 개개인들이 생계를 걸고 참여하는 게임 같은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고요.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필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분석해서 신제품을 만드는 것이 자본의 논리니까요. 그래서 빅데이터가 중요한 거예요. 노동자는 그 정보를 계속 빼앗기고 있고, 자본은 계속 그 정보를 축적하고 있단 말이에요. 플랫폼 기업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하는 사회가 됐어요. 내가 모르는 내 습관까지 알고 있어요. 내 나이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취미는 뭐고 관심사는 뭔지, 내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방문했던 사이트에서 무엇을 검색하고 구매했는지…… 내 흔적들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책과 영화, 상품으로 광고 창에 뜨잖아요. 내가 남긴 소비의 흔적들이 플랫폼 기업의 자본이 되는 거죠. 소비자, 곧 노동계급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팽창 전략이에요.


(124)

자본주의사회는 나이 든 사람이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배울 게 없는 존재로 만들어놨어요. 기계 조작도 서툴고, 데이터 분석 같은 일들은 젊은 직원이 대신 해줘야 돼요. 권력이 있기 때문에 해주는 거예요. 사실 기계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잘 다뤄요. 할머니 할아버지 스마트폰은 손주들이 다 세팅을 해주잖아요. 이 순간 손주들이 우외에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열등한 위치에 있게 돼요.


(152)

간혹 가다가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살지도 않는 집을 하나 더 가지고 있으면서 임대료를 얻어서 생활을 한다고 해요. 그러고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노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수익이 생긴다면, 그건 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한 거예요. 임대료의 경우는 물론 주거가 불안한 사람들로부터 착취한 거죠. 작은 자본가고 작은 지주인 거예요. 그래서 속상하고 이런 사람들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큰 집에서 사는 건 상관이 없지만, 대신 집으로 임대료를 받으면 안 돼요. 그런데요,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간혹 월세 등을 받아서 노후를 유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죠. 이 경우는 조금 난감해요. 가족공동체가 와해되어서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이런 서글픈 경우가 아니라면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 등으로 이윤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돼요. 자본가처럼 지주처럼 살면서 어떻게 노동계급을 아낀다고 떠들 수 있나요?


(178)

철학적으로 말해서 좋은 교육은 모순적인 표현이에요. 교육은 나쁜 거예요. 기성세대든 억압세대든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니까요. 더군다나 교육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의미라면, 교육은 인문주의자가 목숨을 걸고 없애야 할 대상일 거예요. 교육이라는 말을 없애고 차라리 성장이란 말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정확히는 성장을 돕는 거죠.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책과 교재는 다른 거예요. 교재 즉 교과서는 아이들을 졸게 만들죠. 반면 그 교과서 밑에 몰래 숨겨놓고 읽는 책은 그렇지 않잖아요. 선생님이나 부모가 읽으라는 교재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은 이렇게 차이가 있어요. 앞에서 저는 자신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반대로 타인의 권위에 눌려 타인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말했어요. 결국 교재는 노예의 문자고, 책은 주인의 문자였던 거예요.


(179)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찾아주는 일, 아니 정확히 말해서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아낼 수 있는 길에 들어선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리고 노력 없이 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만, 그걸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폭력 수단과 정치 수단을 독점했기에 국가는, 그리고 생산수간을 독점한 채 국가의 비호를 받기에 자본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찾은 아이들은 이미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아요. 그러니 국가나 자본이 땅에서 살기를 요구해도, 그들은 가급적 물을 떠나지 않으려 할 거예요. 한편으로는 자신을 노예로 만들려는 경향과 맞서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거예요. 여기에 바로 인류의 희망과 미래가 있죠.


(205)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는 거예요.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는 온전히 주어졌을 때, 그때 나를 좋아해줘야 기쁘고 희열이 있죠. 스토킹은 그 사람의 자유를 제거한 상태에서 나만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자유를 제거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죽이는 데서 정점에 이르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는 타인의 쾌락과 즐거움은 중요하지 않고, 나의 쾌락과 즐거움만 있는 거죠. 개인주의적 자아는 자기 안에 갇혀서 쾌와 불쾌만을 따진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아요.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한 말이죠.


(228)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는 이런 모습이에요. ‘강남청와대, ‘여의도를 장악하려는 강남좌파와 강남우파의 각축장이죠.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강남우파의 무기가 기만적인 자유개념에 집중되어 있다면, 강남좌파는 노동계급에 대한 애정,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표방해요.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유권자들은 강남좌파에 표를 던지기 쉬워요. 강남좌파의 애정 공세에 넘어간 셈이죠. 그래서 강남좌파는 특히나 사회적 약자의 문제 민감해요. 그들은 대중이 감정이입을 하며 분노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감정적이라고 할만큼 개입을 해요. 그래야 여론의 지지를 받고 새로운 선거에서 승리를 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강남좌파는 여러모로 좋은 지주를 닮았어요. 좋은 지주는 소작농의 집을 찾아가 그를 위로하는 말을 하고 쌀을 두고 가지만, 결코 자신이 독점한 땅을 주지는 않으니까요.


(256)

세상이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버려야 해요. 또 세상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비관도 버려야 하고요. 자본과 국가라는 구조적 악은 여전히 강력하게 거대한 요새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이 요새의 문은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죠. 그렇지만,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문을 밀어붙어야 해요. 열리지 않더라도 그 문 앞에서 외쳐야 돼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저랑 함께 이 문을 밀어 열어젖힐 분 없나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267)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는 구시대의 혁명을 주정해요.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는데, “구시대의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상전의 교체가 아니라 상전이 없어지는 것, 개인의 자유와 정의로운 공동체를 스스로 주인이 돼서 만드는 것이 혁명이라는 얘기예요. 신채호가 간디보다 수천 배 위대한 이유죠. 상전의 자리에 일본인이 들어오든, 아니면 한국인이 들어오든 마찬가지예요. 상전의 자리에 어떤 권력자가 들어오든 마찬가지죠. 상전의 자리, 형식, 혹은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안 돼요. 결국 신채호의 시선에서 촛불집회는 혁명일 수 없어요. 여전히 수많은 상전의 형식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채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상전인 회사의 CEO가 있고, 자본가가 있고, 국가는 명령을 내리고 있고, 입법으로 그것을 강제하고 있잖아요.


(301)

거대 문명이 탄생한 기원전 3000년 이래로 지금까지 인류는 복종의 시대에서 5000~6000년 정도를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분업 체제에 진입을 해서 이 사회 시스템을 벗어나서는 먹고살 수 없을 정도로 분업의 강도사 세졌어요. 자동차 바퀴만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생태운동을 할 수 있나요? 자동차가 존재해야 자기가 사는데, 산업화된 시스템에서 하나의 나사가 되지 않으면 생계의 위험에 빠지는 사회인 거예요. 타율적 복종에서 자발적 복종으로 바뀐 것뿐인데, 체제는 타율자율만 강조해서 자본주의사회가 왕조시대보다 더 발달했다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내가 볼 때는 복종에 방점을 찍어야 돼요. 노동자를 정확하게 출퇴근 노예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면 노예는 이렇게 정의 내리면 되죠. ‘출퇴근이 불가능한 노동자.’


(329-330)

저도 바람을 좋아해요. 제가 왜 산에 가냐면 산에서 느끼는 바람은 다르거든요. 더 정확히 말하면, 산에서는 수많은 바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산에 오르면서 몸이 뜨거워지고 땀도 나니까, 작은 바람도 쉽게 느껴지죠. 그래서 계곡으로 올라가지 않고 능선을 타요. 순간순간 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치고 이런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산등성이에서 갑자기 구름 생기는 것 못 봤죠? 비 오는 날 산에 가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습한 날은 바람이 조금만 불면 등성이에 구름이 생겼다 없어졌다 생겼다 없어졌다 그래요. 그런 광경이 너무 예뻐요. 그게 정서적으로 저랑 맞는 것 같아요. 타르코프스키하고 미야자키하고 모네하고 정서적으로 맞아요. 바람을 모티프로 자기 얘기를 드러내는 것, 바람과 멀리 있는 문명과 바람과도 같은 자연, 우주적인 것들에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1871~1945)<해변의 묘지>라는 시 마지막 구절이에요. 시가 아주 철학적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는 이 구절이 자막으로 올라가면서 시작이 돼요.


(369)

몸의 시간은 정신보다 느리고 조심스럽고 그만큼 안정적이다. 아픈 몸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벌레가 가는 듯 마는 듯 걷는 것 같아, 언제나 몸이 좋아질까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한 몸이 아파지는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얼마나 집중도 높게 집필 작업을 했는지, 얼마나 정열적으로 강연을 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내가 몸을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퍼져버린 것이다. ‘너 이제 혼자 가. 나는 더 이상 못 가겠어.’ 몸은 몸으로 그리 표현했던 셈이다. 이제는 몸의 시간이었다. 몸의 마음에, 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어야 했다. 지금까지 나의 말을 묵묵하게 들어주었던 몸 아닌가. 이제는 내가 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어야 할 때였다. 몸이 걷고 싶을 때 걸을 것이고 몸이 쉬고 싶을 때 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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