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국선변호사 사건 일지
신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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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우리가 함께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대해 극찬을 했는데, 아빠도 정말 재미있게 잘 봤단다. 너희들도 이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잖아. 그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도 무한반복으로 듣기도 하고그 드라마는 법정드라마라서 에피소드마다 재판이 나오는데, 그 재판들은 실제 있었던 일들을 참고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 재판들이 실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신민영 변호사님이 쓴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라는 책이란다.

신민영 님은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시고, 자신의 겪은 재판들과 변호사로써 갖고 있는 생각들이 책에 담겨 있단다. 재판을 다룬 영화나 소설을 읽다 보면 변호사와 검사의 논리적인 논쟁에 푹 빠져드는데, 실제 사건을 다른 에세이도 마찬가지로 푹 빠져들게 되는구나. 지은이 신민영 변호사님의 글솜씨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지은이 신민영 변호사님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선전담변호사시라고 하는구나. 아빠는 법에 관련된 것은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국선변호사는 전담하는 줄도 처음 알았단다. 변호사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줄 알았는데, 2004년부터는 국선전담변호사가 생겼다고 하더구나.


1.

이 책을 읽다 보면 각 사건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지만, 법조계에 일어나는 일들과 법정 용어들도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당방위가 정말 드물다는 이야기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어떤 사건의 경우 정당방위가 안 된 경우도 있어 안타까운 적이 있지만, 정당방위의 범위를 좁게 가져가는 이유를 읽어보니 그 또한 나름 일리가 있어 보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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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초기 소지가 불법이고 인구밀도가 높으며 경찰서가 비교적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의 범위를 좁게 가져가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정당방위가 허용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어 보복성 폭력 행위로 이어지게 하는 것보다, 팔을 잡는 등의 현상 유지만 하게 하고 공권력을 빌어 사건을 처리하는 편이 폭력의 총량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몇몇 아쉬운 사건이 있긴 하지만 더 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현행법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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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나 실제 뉴스에서도 보면 집행유예를 받게 되면 좋아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단다. 집행유예를 받으면 거의 무죄나 마찬가지로 생각들을 하는 편이고.. 그런데 집행유예를 만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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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9)

현행법상 집행유예 이상 전과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 벌금형이 가능한 젊은 피고인들의 집행유예형 요청을 만류하는 이유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뒤늦게 공무원 시험 응시를 마음먹었다가 집행유예 전과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나이 많은 피고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취업할 때 전과 기록을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형 실효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집행유예 전과는 5년이 지나야 전과 조회 결과에서 사라지지만, 벌금 전과는 2년만 지나면 사라진다. 물론 둘 다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고 취업이나 기타 목적으로 조회할 때에만 보이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그 차이는 분명 크다. 나도 변호사지만 우리나라 법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한다. 집행유예 전과가 어디서 어떤 불이익을 가져올 지 도저히 예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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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단다. 증거가 명백한 피고인이라고 하더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고한 사람, 그러니까 무죄로 간주한다는 원칙이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권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유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얼굴도 가리고 그러는 것인데,  증거가 명명백백한 흉악범의 얼굴을 가리는 것을 두고, 그런 사람이 무슨 인권이 있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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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도대체 왜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만 하는 걸까? 바로 인권 때문이다. 형사재판이라는 게 국가 대 개인의 싸움이라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이 과정에서 사수하려 애를 써도 보장하기 힘든 것이 개인의 인권이다. 하지만 요즘 인권을 얘기하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는 듯하다. ‘흉악범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는데 무슨 놈의 인권이냐. 도리어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반론이 대번에 돌아온다. 사실 그 간의 형법이 피해자에게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피고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 반대급부로 피해자의 인권이 지켜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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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 실린 재판들 중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각색된 사건들은 4편이 있었단다. 먼저 이 책에 실린 치매 남편을 폭행한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화에서 그려졌단다. 드라마 대사 중에도 나왔던 사람의 마음에 따라 죄명이 바뀐다는 내용도 책에 실려 있었단다. 드라마를 보면서 법이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이러면서 봤는데 이 책을 참고했던 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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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같은 주장을 하곤 한다. A라는 사람 때문에 B가 죽었다 치자. 이때 A에게 적용되는 죄명은 살인죄만 있는 게 아니다. A가 무슨 마음을 먹고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죄명은 네 가지로 갈린다. 죽일 마음이었다면 살인죄, 다치게 할 마음이었다면 상해치사죄, 그냥 좀 때려줄 마음이었다면 폭행치사죄,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실수로 죽게 했다면 과실치사죄. 똑같이 피해자가 사망했더라도 가해자의 마음속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에 따라 죄명을 갈린다. 이러다 보니 살인(미수)혐의를 받는 피고인들 십중팔구는 형을 줄여보려 죽일 의도는 없었고 그냥 좀 혼내주려고만 했다고 주장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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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에 보면 자폐 장애인과 성관계를 한 남자가 피고인으로 나오는데, 그는 사랑이라고 주장하지만 자폐 장애인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자신의 딸을 꼬셔서 겁탈한 것이라고 주장했지.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판결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피고인, 심지어 상대방인 자폐 장애인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 사건도 실제 있었던 사건을 각색한 것이라고 하는데, 지적 장애인의 권리를 부모님의 의지에 의해서 보장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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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사실상 주변 정황으로 성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지금의 방식은 무죄추정의 원칙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이 과연 피고인만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지적장애인 역시 상대를 선택하고 성관계를 즐길 권리가 있다. 그 관계에 대해 국가가 광범위하게 개입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지적장애인과의 성적 접촉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같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니 이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매한가지다. 눈앞의 불행을 막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 앞에서, 멀리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행복을 얘기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궁금한 건 지적장애인 본인들의 얘기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그동안 만났던 연인들이 모두 수사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여전히 심연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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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에피소드는 지적 장애인이 형의 자살을 막으려다가 피고인이 된 3화로, 지적 장애인이 아버지의 자살을 막으려다 살인자로 재판을 받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구나. 마지막 에피소드는 놀랍게도 6화란다.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쏟게 한 탈북민이 아이 때문에 5년간 도망 다니다가 뒤늦게 자수를 한 사건.. 실제 사건도 드라마에서처럼 변호사가 캐치하지 못한 피고인의 자수로 집행유예를 받았단다. 이 에피소드가 실제 있었던 일이다니

….

이번에 읽은 책 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참고한 책이 또 있다고 하더구나. 그 책도 기회 되면 함 읽어봐야겠구나. 그나저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시즌 2를 하려나.


PS:

책의 첫 문장: 대검찰청은 종종 영화나 드라마 작가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한다.

책의 끝 문장: 하늘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안효숙 님께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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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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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코로나 바이러스라 퉁쳐서 부르는 코비드-19가 어느덧 3년을 꽉 채워가는구나. 요즘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규제도 많이 풀려서,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단다. 아빠는 그 마스크라는 것이 그렇게 오래 써도 적응이 안되어 여전히 답답하기 그지 없구나.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열풍에 휘청거리는 동안, 우리나라는 방역을 잘 한 나라로 손꼽혀 세계 여러 나라의 귀감이 되곤 했단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염병에 대해 방역을 제대로 못해서 국가 망신을 당하곤 했단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완벽한 방역으로 SAS라는 전염병 환자가 국내에 한 명도 발발하지 않게 해서 세계에서 극찬을 받았던 나라에서, 방역 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되었으니 다른 나라에서 보면 참 이상하다고 하겠구나.

어떤 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방역 우수 국가가 될 수도 있고, 방역 망신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단다. 국가 시스템이라는 것이 한번 만들어지면 집권 정당에 관계 없이 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더구나. 무능한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들이 고생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단다. 최근 들어 또 그런 일이 일어나서 가슴 아프구나.

아빠가 서두가 길었구나. 이번에 아빠가 읽은 김탁환 님의 <살아야겠다>라는 소설은 몇 년 전 방역 망신 국가를 만든 메르스 사태에 관한 소설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란다. 메르스가 처음 발발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단다. 창피한 일이지사우디아라비아와 한참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왔다니. 당시 대통령이 방문한 병원의 벽에 A4지에 적혀있던 살려야한다라는 문구가 아직도 생각나는구나. 그런 설정샷을 누가 생각했는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단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메르스 사태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메르스 마지막 환자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로 다시 태어났단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띠었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단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먹먹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고, 제발 국민들이 제발 선거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우리 국민들은 당시 그렇게 국가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이들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었단다.


1.

이 소설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소설로 한 것으로 제목 살아야겠다는 앞서 이야기했던 병원의 벽에 A4지에 적어 두었던 살려야 한다를 풍자해서 지은 것이 아닌가 싶구나. 메르스 병원의 첫 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던 서울 삼성 병원을 소설 속에서는 F병원이라고 했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메르스 첫 확진자가 발생했던 F병원과 정부는 왜 모든 것을 숨기려고만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전염병이 처음 생긴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이로 인해 초기 진압을 실패하고, F 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사람들이 연이어 메르스에 확진되면서 메르스는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단다.

이 소설은 2015 5 27일에서 29 F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던 세 사람의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김석주.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치과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림프종이라는 암을 받아 한동안 항암 치료를 받고 일 년 전 완치 판정을 받음. 그리고 치과 의사로 첫 출근을 했는데, 한 달도 안되어 림프종 재발 증세로 F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그만 메르스에 확진 됨. 식구는 아내 남영아와 네 살 짜리 아들 우람이 있음.

이첫꽃송이. 직업 수습 기자. 아버지의 병환으로 F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F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름. 그 이후 메르스 증상이 발현되고 확진 판정 받음. 이첫꽃송이뿐만 아니라 친척분들도 줄줄이 메르스 확진됨. 퇴원 후에 막내이모부가 메르스로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됨.

길동화. 출판물 물류회사 베테랑 회사원. 막냇동생이 아파서 F병원 응급실에 같이 왔다가 메르스 확진됨. 아들 예석은 제주도에 왔다가 그곳에서 격리됨. 15일간 혼수 상태에 빠져 죽을 위기도 여러 번 겪음.

이첫꽃송이는 나이도 젊고 기저 질환도 없어서 그런지 그나마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했지만, 길동화와 김석주는 그렇지 못했단다. 길동화는 음압 병동까지 이동했다가 퇴원을 하긴 했는데, 후유증이 심했단다. 숨쉬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았어. 그리고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는데, 그 이유는 메르스 환자라는 것이 소문나면서, 거래처에서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거야.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다른 직장으로 알아보려고 했지만, 메르스 환자였다고 하자 받아주지 않았어. 어렵게 얻은 일자리도 거래처에서 알게 되어 다시 해고되고 말았단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하나? 그가 메르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 일을 겪게 되자, 자살 결심까지 하게 되었단다.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하다가 아들 예석에 의해 성공하지 못했단다.

예석은 예전에 F병원에서 만난 윤해선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단다. 윤해선 변호사는 소송을 해보자고 했단다. 윤해선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로 세월호 변호도 맡고 있었는데, 이첫꽃송이의 돌아가신 엄마의 옛 제자였단다. 이첫꽃송이와도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고, 이첫꽃송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고, 친척분들도 메르스에 걸려서 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윤해선 변호사가 이첫꽃송이의 보호자로 병원에 왔었단다. 그때 같이 입원했던 김석주, 길동화, 그리고 가족들도 알게 된 거야.

이첫꽃송이는 메르스 완치 후 다행히 기자로 복귀했단다. 문화부 기자 소속이었지만, 메르스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 인터뷰를 하기도 했단다.


2.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석주. 그는 림프종이 재발하긴 했지만, 메르스 증세는 다른 사람들보다 좋았단다. 아직 젊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림프종 담당 의사도 메르스를 먼저 완치시키고 림프종을 치료하자고 했어. 메르스 증세는 많이 좋아졌으나 PCR 검사를 받으면 아직 양성이었어. 그래서 림프종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국가방침이 바뀌면서 갑자기 국가지정병원으로 이동하라고 했어. 김석주의 림프종 담당 의사는 F병원에 있어서 병원을 옮기면 안 좋을 것이 눈에 뻔했거든. 김석주의 아내 남영아도 병원 옮기지 말아달라고 항의했지만 그 항의는 묵살되었고, 김석주는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겨졌고, 문을 몇 개나 지나고, 방호복을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격리 병동에 입원했단다.

김석주의 메르스 양성 반응은 50일이 넘어도 계속되었고, 이제 국내 메르스 마지막 환자로 남게 되었단다. 림프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항암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는데, 격리 시설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는 극히 제한적이었단다.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오는 것뿐만 아니라 림프종 치료에 필요한 장비들도 들고 오지 못하니까 말이야. 격리병동에 있으면서 가족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어. 이것은 입원이 아니라 감금 수준이었단다. PCR 검사를 하면 계속 음성과 양성이 반복해서 나왔어. 그래서 격리병동에서 퇴원도 못하고, 림프종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상태는 악화되어 갔단다.

2015 10월 초 드디어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단다. 담당 의료진은 김석주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면서, PCR 검사에서도 다시 양성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양성이 나와도 전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격리병동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4개월만에 집에 온 김석주는 림프종 항암 치료 전에 일주일 간 집에 머물렀단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식구들 친구들과 함께 퇴원파티도 했어.

그런데 며칠 뒤 기침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들렀는데 다시 메르스 양성 반응이 나왔단다. 일전에 이야기와 달리 병원에서는 김석주를 다시 격리 병동에 감금시켰어. 남영아는 병원에 항의를 했어. 격리 기준도 없이 무조건 격리를 한다고병원에서는 질병관리본부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어. 격리를 하고 나서 메르스 치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림프종 치료는 다시 미뤄지게 되었어. 메르스 치료도 안해, 림프종 치료도 안해, 격리 해제도 안해...

남영아의 항의가 묵살되자, 윤해선 변호사는 이 일을 세상에 알리자고 해서 남영아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김석주의 사연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제서야 병원에서도 뭔가 하려고 했어. 그 뭔가라는 것은 격리병동에서 림프종 치료를 하는 것인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격리 병동에서 림프종 치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단다. 결국 김석주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11 25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단다. 그리고 국가는 메르스 종식 선언을 했다고 하는구나.

….

아빠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것이 실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더구나. 그래도 마지막 확진자가 잘 치유가 되길 바라면서 읽었는데, 결국 절망으로 끝이 났구나. 이 소설을 읽는 아빠도 이렇게 억울한데,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김석주와 그의 가족들의 억울함은 얼마나 컸을까. 어떤 보상이라도 죽음 목숨을 되돌릴 수 없는 법. 아빠는 사실 메르스 마지막 확진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단다. 당시 메르스 마지막 확진자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봤더니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이름만 달랐지 완전히 실화더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전염병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국가시스템에 의해 국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질 않길이렇게 쓰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또 엄청난 비극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말았단다. 오래 전에 떠돌던 말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단다. “이게 나라냐?”


PS:

책의 첫 문장: 5 20일 오전 11, 역학 조사관 세 명이 경기도 W병원 8층 준비실을 나섰다.

책의 끝 문장: 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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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우리는 고립을 지리와 상황의 결과로 여기곤 한다. 혼자가 된 과부,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다 자란 여자, 그는 고립된 사람이다. 늙고 쇠약한 사람, 아예 물리적으로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는 사람, 그들은 고립된 사람이다. 하지만 고립은 또한 마음의 상태일 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다. 칩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선택을 결정짓는 상태인 것이다. 마치 당신이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나는 고립으로 추락한다. 어둡고 비자발적인 추락은 가속이 붙어, 내가 저지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연속 열 번이나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하고 나면,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9)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24-25)

혼자 있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캐럴린 하일브런이 그 쌍둥이 기술을 터득하는 데는 60년이 걸렸다. 내 친구 그레이스는 40대 중반인 지금 그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20년 동안 혼자 살아온 그는 이제 프라이버시와 교유의 균형을 예전보다 더 자주 달성할 줄 안다. 나로 말하면,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34-35)

해석. 물론 이것이 핵심이고, 착각에 이르는 문이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과묵함의 망토 뒤에 숨은 채 상대가 스스로 관계에 대해서 품는 두려움이나 편견이나 자기 인식을 투사하는 빈 화면으로 기능한다. 만약 그 상대가(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타인에게 호감을 사고 싶다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그 상태가 자신이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혹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불편함이나 과묵함이 그에게는 자신이 주루해서 그러는 거라고 보일 수 있다. 수줍음은 오해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수줍음을 타는 내 친구 하나는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한다. “침묵은 로르샤흐 테스트야.”


(84)

내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작은 인간 발전기 같은 록산이라는 이름의 두 살 조카를 볼 때면 나는 모성애 덩어리가 된다. 아이를 붙잡아서 껴안고 싶고, 그 자그만 얼굴과 손에 뽀뽀하고 싶다. 두 살 아기들이 즐기는 무한 반복 게임을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쫓아서 30번 빙글빙글 돌고, 아이가 나를 쫓아서 30번 빙글빙글 돌고) 아이가 특히나 아이답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할 때면-낮잠을 자려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거나, 잠시 낯가림하며 제 아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있을 때-심장이 녹아내린다. 홀딱 반하겠네, 나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 나는 생각한다.


(94)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119)

최근에 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부모님이 전보다 더 늙고 약해지신 듯 보인 적 있는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적 있는가? 젠장,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남으면 어쩌지? 아니면 이런 생각.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어쩌지? 아버지가 혼자 생활하실 줄이나 아나?

사람들이 흔히 부모님에게 느끼는 죄책감, 그러니까 당신이 부모에게 좋은 자식이 아니었다는 걱정이 들 때가 있나? 혹은 만약 부모님이 아프실 경우에 당신이 좋은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이?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고?

나와 같은 입장이 된 것을 환영한다. 당신이 그동안 누리던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것이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123)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아니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 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144-145)

화가였던 어머니의 화실을 비우는 일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던 듯싶다. 화실은 갑자기 끝난 어머니의 인생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물리적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죽기 직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탁자와 붓과 페인트는 늘 그랬던 모습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진행 중인 작은 작품들, 스케치와 메모, 콜라주 재료, 색칠된 종이 무더기가 여기저기 있었다. 나는 그 방이 텅 빈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그것은 잔인하고 부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고, 그래서 나는 겨우 일 분도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150-151)

하지만 모녀 관계가 얽히고설킨 관계가 되기 쉬운 게 그 때문이라면, 역시 그 덕분에 모녀 관계는 유달리 풍성한 관계가 될 수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란 딸의 내년에 있는 로드맵 혹은 거울이다. 우리가 어머니와의 관계에는 우리가 평생 배워온 교훈들, 우리가 과거에 걸어오다가 계속 걷기로 결정했거나 포기하기로 결정한 길들이 반영되어 있다. 여자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일이나 연해 문제든,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입고 어떤 친구들을 사귈까 하는 문제든,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문제든-다소나마 자신의 결정을 어머니의 결정에 견주어 평가해보기 마련이고, 어머니의 노력들이 어떻게 어머니를 형성하거나 제약했는지, 강화하거나 약화했는지 따져보기 마련이다.


(183-184)

외로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말 걸 사람이 아무도 없는 파티에 있을 때 느껴지는 단절의 외로움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찾아드는 그리움의 외로움도 있고,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채 내리 몇 시간이나 며칠을 보내면 생겨나는 고립의 외로움도 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잘 아는 외로움은 일요일 오전의 그리움이다. 이것은 종종 사전 경고도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이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듯한 외로움이다. 일단 이 외로움이 들이닥치면, 이 크나큰 외로움을 극복하기란 영영 불가능하리라는 기분이 든다. 만약 우리 가게에서 외로움을 살 수 있다면, 일요일의 외로움은 커다란 상자에 담겨 있을 테고 그 위에 이런 딱지가 붙어 있을 것이다. ‘취급 주의-초강력


(186-187)

이런 것들은 어려운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외로움을 앞질러 달아나는 데 급급하여, 이 질문들에 답할 기회를 회피해왔다. 물론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새 신발의 치유력을 열렬히 증언하는 바다. 하지만 더 큰 질문들을 피하기만 했다가는 언젠가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에 돈을 펑펑 쓰면서 종종거릴 때, 보통은 내가 평범한 일요일을 계획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느낌이 강화될 뿐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잠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일에 착수했다. 몇 달 동안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생각만 했던 커튼을 직접 만들어서 걸었다. 할 일을 해치웠다는 것 자체가 단순한 기쁨이었을 뿐 아니라, 이 일로 새삼스럽게 몇 가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내게는 절망감에 맞서 싸울 자원이 있다는 사실, 내 시간을 잘 쓰고 내 영혼을 잘 돌볼 능력이 있다는 사실, 외로움이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우리는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사실. 그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고독한 일요일이었지만, 결국에 외로운 일요일은 아니었다.


(195)

나는 정말로 어떤 사람일까? 나는 정말로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일까? 내게 적합한 삶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격려받고, 무엇에 의욕을 얻고, 무엇에 만족하는 사람일까? 자아에 관한 이런 고민들은 대부분의 사람이(적어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20대에 묻기 시작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니 서른일곱에 문득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물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정말 심란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나는 주야장천 취한 상태가 아닌 채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보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훨씬 더 어려웠다.


(212)

술은 그토록 알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우리가 술에 절어 있을 때는 술이 유일한 해결책인 듯, 술이 자신을 산산조각 나지 않게 붙잡아주는 접착제인 듯 느껴지죠. 하지만 사실은 술이 문제의 근원이죠. 술은 우리가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놓는 접착제죠. 그날 아침, 저는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어쩌면 퍼뜩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생각이 점차 자라서 결국 저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223)

술은 재미나 친밀감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줄 순 있을지라도 그런 감정들은 진짜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화학물질 덕분에 변한 나는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김에 흉금을 터놓는 대화를 오래 나누었다. 하지만 술을 마셨을 때 진짜 나는-어떤 면에서는 자신감 있고 다른 면에서는 겁 많은 나, 강한 동시에 약한 나-마음속에서 뒷전으로 물러났고, 그래서 안전해졌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혼자였다. 술을 끊는 것은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 혹은 망가진 TV 안테나를 고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시야가 더 밝아졌고, 다른 사람들하고는 세상하고든 접촉이 더 또렷하고 확실해졌다.


(241)

나는 진심이다. 여자들이여, 궐기하라. 더 이상 꾸물거릴 수 없다. 분노와 공격성을 훈련하자!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법을 연습하자! 우리는 오랫동안 푸대접에도 겁쟁이처럼 얼어버리는 버릇을 떨치지 못했지만, 이제 그 버릇을 끝장낼 때가 되었다.


(295)

하지만 순환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계절의 순환도, 감정의 순환도, 여름의 불안은 왔다가도 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올여름에 내 몫의 좋은 날을 누릴 것이다. 기분 좋고 낙천적이고 마음 가벼운 날, 내 내면의 풍경이 바깥 풍경과 일치하거나 적어도 좀 더 비슷해지는 날, 내가 맨발에 밟히는 모래와 살결에 와닿는 더운 공기를 즐길 수 있는 날, 그런 것들이 모두 괜찮게 느껴지는 날. 그리고 나는 나쁜 날도 겪을 것이다. 밝고 가벼운 것들이 모두 미워지는 날, 어두운 고치를 그리워하는 날,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보면서 그 향기 나는 작은 머리통들을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날.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요령껏 대처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처방책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확신하는바,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신이 영화관을 발명하신 것이다.


(325)

화를 터뜨리는 편이 언제나 효과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화를 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상처가 낫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쁜 상황이 열을 내면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잘 고르는 것 못지않게 대상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정신적으로 치고받을 의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화내는 것이 효과가 있으려면-어느 쪽에게든 생산적이거나 유익하려면-관련된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많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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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
고미숙 지음 / 북튜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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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님 중에 고미숙이란 분이 계시단다. 다양한 고전들을 쉬우면서도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해주셔서 아빠도 고미숙 님의 책들을 여럿 읽었단다. 우연히 고미숙 님의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부제가 눈에 더 띄었단다.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 <동의보감>은 고미숙 님께서 여러 번 책으로 다룬 고전이었고, <숫타니파타>는 아빠가 좋아하는 불교 경전이란다. 예전에 법정스님이 번역하신 <숫타니파타>를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했었거든. <숫타니파타>를 고미숙 님께서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하니 궁금했단다. 그리고 <숫타니파타>와 동의보감을 함께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실지 궁금했어. 그리고 고미숙 님의 책을 한 동안 안 읽어서 얼른 책을 보고 싶었단다.

….

이 책은 코로나 초기 시대 고미숙 님이 진행하신 강연을 바탕으로 책으로 엮은 것이란다. 읽다 보면 고미숙 님의 목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단다. 그렇게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읽기도 편했단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모두 바꾸어 놓고, 코로나 이후의 삶은 바뀔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말하던 그 시절, 고미숙 님은 <동의보감> <숫타니파타>에서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하셨단다. 검색을 해보니 유튜브에도 이 책의 원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강의도 올라와 있어서 아빠도 몇 편 보았단다.

, 그럼 이 책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볼게.


1.

불교라는 것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믿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 하지만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고 불교 사상을 전파한 나이가 35, 한창 젊은 시절이었단다. 그러니까 불교라는 것이 젊은 사상이라는 거지. 그래서 고미숙 님은 불교를 청년의 파토스라고 이야기했단다. 파토스라는 것은 청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호소와 공감력이라고 이해하면 되고, 로고스라는 것은 논리적 근거로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단다. 파토스와 로고스는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

(50)

일단 불교는 이전의 모든 사상을 전복하면서 등장했고, 이후에도 기존의 지배적인 사유구조를 해체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점만 보더라도 그야말로 청년의 사상이죠. 그에 비하면, 중화 문명의 도교나 유교, 즉 공자나 노자의 사상은 노년의 사상이에요. 청년의 역동성이나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화사상이 노년의 로고소라면, 불교는 청년의 파토스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불교는 마음을 탐구하는데, 그 마음의 격정이 가장 심한 때도 청년기잖아요. ‘질풍노도의 시절이라고 하죠. 불교는 바로 그 역동성이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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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교의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는 마음의 심연을 탐사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고, <동의보감>은 우리 몸과 소통을 잘 하기 위한 책이란다. 그러니까 <동의보감>을 통해서 몸을 건강하게 하고, <숫타니파타>를 통해서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동의보감>에 보면 몸 안에 중요한 세 가지 요소로 정기신(精氣神)’이 있다고 한단다. 먼저 정()은 신장이 주관하여 정액, 생리혈을 만드는 등 생식 작용과 관련이 있으며 에로스의 원천이 된다고 하는데, 이 욕망을 다스리고 정()을 보존해야 건강할 수 있다고 했어. ()는 폐가 주관하고 에너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에너지를 온 몸 곳곳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어. 우리가 숨을 쉬어 산소를 온 몸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를 온 몸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마지막 신()은 심장이 주관하는 것으로 정신활동을 이야기하는 것이란다. 긴장하거나 마음이 안정치 못하면 심박수가 변하는 것을 보면 심장과 마음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겠구나.

<숫타니파타>를 통해서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탐진치(貪瞋癡)를 없애야 한다고 한단다. 탐진치가 괴로움의 원천이기 때문이야. ()은 탐욕, 소유욕, 성취욕을 이야기하고, ()은 분노를 이야기하고, ()는 어리석음을 이야기한단다. 이 탐진치를 없애기 위해서는 치닫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동의보감>의 태과불급, 즉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된다고 설명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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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존재는 삼독, 즉 세 가지 독에 물들어 있다는 거였습니다. 앞에 말씀드렸던 탐진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삼독이고요. 그래서 삼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설법을 많이 하십니다. 계속해서 <숫타니파타>의 구절들을 보죠. “치닫지도 뒤처지도 않아, 모든 것이 허망한 것임을 알고 어리석음을 버린 수행자는,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뱀의 경> 여기서 치닫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는다라는 말은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태과불급을 넘어선다는 것과 상통하는 말이에요. 정기신을 바탕으로 오장육부가 구성되지만 그 기운 역시 항상 넘치거나 모자라게 됩니다. 목기가 넘치면 간 기운이 넘쳐서 술에 빠지게 되고, 토기가 넘치면 비위 기능이 너무 활발해서 식탐을 주체하지 못하고, 수 기운이 범람하면 성욕이 함부로 날뛰게 되고이렇게 넘치는 것이 있으면 모자라는 것도 있겠죠. 그것을 불급이라고 합니다. 그건 또 그것대로 온갖 병증들이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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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는 총 열 개의 강의가 있는데 모든 강의가 좋았지만, 그 중에 두어 가지만 더 이야기해 볼게. 먼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많이들 한단다. 정말 궁금하구나, 내가 누구인지몸 뿐만 아니라 아빠가 머릿속 가득 채운 의식의 정체는 무엇인지 말이야. <동의보감>내경편에 보면 라는 것은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여러 타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고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타자들을 통해서 몸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어.

먼저 꿈이 있는데 꿈도 우리 몸의 상태를 알려준다고 하는구나. 꿈에 따라 현재 나의 몸의 건강을 알 수 있다는 거지. 가장 좋은 꿈은 꿈을 꾸지는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최고의 상태, 도의 경지라고 하는구나. 프로이트는 꿈을 성()과 관련 지어서만 이야기하는데, 그보다 <동의보감>에서의 해석이 더 공감이 가는구나. 실제로 아빠의 건강, 특히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온갖 잡다한 꿈을 꾸는 것을 보면 <동의보감>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구나.

..

나를 이루는 것 중에 목소리가 있단다. 목소리에도 자신의 건강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너무 쉽게 이해가 가는구나. 건강을 잃으면 목소리도 확 변하니까 말이야. 목소리에 관여하는 내장기관으로는 신장, 심장, , 폐 등이 있다니 모든 중요한 요소는 다 관여를 하고 있구나. , 그럼 목소리뿐만 아니라 목소리는 내는 말들은 어떨까? 상스러운 말이나 비속어만 하는 목소리와 곱고 좋은 말을 하는 목소리...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이 담긴 목소리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목소리에서 나오는 언어들도 건강에 중요하다고 하면서 고전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구나. ㅎㅎ 돌고 돌아 건강을 위해서는 많이 읽으라고 하는구나. 그것도 고전을

내 몸을 이루는 또 하나, 벌레가 있단다. 이것은 내 몸 속에 있는 세균,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을 이야기한단다. 이런 것들을 떨쳐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공생해야 한다고 하는구나. 삼시충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벌레가 뇌에 들어가게 되면 공부를 하기 싫게 만들고 색을 밝히게 하는 벌레라고 하는구나. , 이런 무서운 벌레가 있냐.^^ 내 몸을 이루는 것 중에 또 하나 똥과 오줌이 있는데, 이 또한 몸의 상태를 진단하는 요소가 된단다. 건강검진을 할 때 대변 검사와 소변 검사하는 이유가 다 있지.

…..

<동의보감>에서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것 중에 음양오행설이 있단다. 음양오행설은 그냥 책으로만 읽어서는 기억에 잘 안 남는구나. 예전에 여러 책에서 이 음양오행설을 접했는데, 책을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모두 증발해 버리는구나. 이 책에도 음양오행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또 잊어지겠지만 다시 집중해서 읽어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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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270)

그다음 여름의 기운인 화는, 우리 몸에서는 심장과 소장입니다. 간과 담을 가까이 있으니까 금방 이해되는데, , 소장은 좀 생소할 수도 있어요. 현대의학에서 보자면, 심장은 순환계고, 소장은 소화계에 속하는 장기니까요. 하지만 한의학적으로는 분류의 기분이 오행의 기능이기 때문에 심장과 소장을 화기에 배속시킵니다. 그다음 토는 비위를 말합니다. 비위, 즉 비장과 위장은 몸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모든 걸 조정해 주는 거죠. 음식물을 완전히 분해한 다음 영양분을 몸 전체로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정과 배분, 이런 활동은 토의 기운이라고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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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에는 상생과 상극이 다같이 존재한다고 했고, 이런 것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신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단다. 즉 뇌활동을 활발하게 해야 하는데, 뇌활동이 둔해지면 성격도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고 했단다. 그렇지, 공감하는 내용이란다. 나이를 먹어서 뇌활동을 하지 않은 꼰대가 되는 거고, 뇌활동을 많이 하게 되면 슬기로운 노인이 되는 거지그런데 뇌활동을 한다고 책도 보고 그러는데, 예전보다 생각도 잘 떠오르고, 기억력도 안 좋아지는 것을 보면, 또 우울해지는구나. 이런 우울함 또한 괴로움의 일종인데, 이것 또한 집착 때문에 생겨나는 것을이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해결책이니라. 그러나 이 집착을 버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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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401)

그래서 모든 괴로움은 다 자아에 대한 집착 때문이에요. 나를 확장하고 계속 증폭시키려다 보니 괴로움을 겪는 거예요. 게다가 자본주의는 소유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와 소유, 이런 자아에 대한 집착이 허망하다는 걸 불교는 계속 강조하는 겁니다. “열반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고귀한 님들은 이것을 진리로 아는 님들이다. 그들은 진리를 이해하기 때문에 탐욕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든다.”<두 가지 관찰의 경>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우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것이고, 그러면 탐욕에서 벗어나 지극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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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강의 중에 몇몇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쓴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책의 진면목을 제대로 소개해주지 못한 것 같구나. 아빠의 한계이니 이해해 주고나이를 먹으면서 몸에서 이상 신호를 주는 경우가 있단다. 그러다 보니 점점 건강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구나. 그래서 동의보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또 시간을 핑계되는구나. 얼마 전부터 듣기 시작한 도올 선생의 <주역> 강의도 자꾸 늦어지고 있는데 말이야. 완벽한 멀티캐스팅이 되어 왼쪽 뇌는 왼쪽 눈을 통해서 책을 읽고, 오른쪽 뇌는 오른쪽 눈을 통해서 강의를 보고 그러면 얼마나 좋으려만. , 또 탐욕을 부리는구나. 탐욕과 집착을 버리라는 책을 읽자마자 말이야.  

오늘은 이만 마치련다. 나중에 너희도 <동의보감> <숫타니파타>를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반갑습니다.

책의 끝 문장: 감사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기의 몸을 탐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몸의 토대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앎의 비전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안의 자연성이 회복되면서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삶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거죠. 그러면 예기치 않은 재난이나 고난에 처하더라도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 P29

하루의 리듬, 일상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항목은 쏙 빠져 있어요. 밤에 잠을 못 자는데 로열젤리나 홍삼을 아무리 많이 먹으면 뭐합니까. 또 하나, 물질이 아닌 정신의 면역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마음이 ‘불안지옥’인데, 각종 비타민을 먹는다고 그게 재대로 효능을 발휘할까요? 약간만 스트레스 받아도 소화가 안 되는 게 우리의 몸인데, 감정, 정신, 마음, 이런 영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소홀한 거죠. 달라이라마께서 유튜브로 하는 설법에서 누누이 강조하듯이 이제 생리적 위생뿐 아니라 정신적 위생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 P36

사후의 지복을 원한다면, 누구든 애착을 갖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정과 집착을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살아서도 늘 무겁고, 사후에도 혼이 탁해서 구천을 맴돌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점에서 <동의보감>의 비전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절에서 장수로, 장수에서 신선으로 가는 이 경로의 핵심은 장수나 신선 자체가 아니라 존재가 점점 더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겁니다. - P112

그리고 이건 제 소견인데, ‘우리는 동등해’라는 견해를 고집하다 보면 그 또한 폭력적인 동일성에 빠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주의가 주장한 과격한 평등주의가 실패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물론 이건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해 볼만한 과제입니다. 아무튼 비교라는 척도가 작동하는 한 모든 견해는 다 망상이라고 보는 겁니다. 우월하다, 열등하다, 동등하다, 이 셋은 다 같은 범주의 산물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식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거겠죠.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되 어떤 방식으로든 비교하지 않는 것. 그것이 붓다의 평등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P175

내가 지금 보고 경험하는 세계는 어떤 종류의 마주침 속에서 잠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연기조건이 만들어 낸 환영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설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내 눈앞에 리얼한 세계가 있는데 왜 없다고 하지?’ ‘이게 가짜라고? 미친 거 아냐?’ 등등. 서양철학사, 과학사가 그렇게 세상을 파악해 왔고 우리도 20세기 내내 ‘주객 이원론’, ‘물질의 합법칙성’, ‘변증법적 발전’ 등을 수도 없이 들어 왔기 때문에 그런 식의 사유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 P238

불교는 참 특이한 게 무신론이잖아요.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신들의 세계에 가거나 신이 되어 태어나는 것조차 윤회의 한 코스라고 여기거든요. 인간, 아수라, 신, 축생, 아귀, 지옥,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종교는 죽은 다음에 신들에 세계에 태어나는 걸 목표로 하죠. 그래서 많은 제물을 바치고 날마다 예배를 드려서 그 신에게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들의 세계에 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불교는 그것을 목표를 하지 않습니다. 내세에 대한 표상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 거기에 다시 끄달리게 됩니다.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닐까", 이런 걸 의식하면서 자기검열에 빠지게 되겠죠. 그럼 일단 마음이 늘 초조합니다. 생리적 균형도 깨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음허화동이나 상화망동의 상태에 빠지기 십상이에요.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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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1-06 0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미숙님 좋아합니다. 숫타니파타도 좋아해요. 이 책은 숫타니파타를 잘 해설해주는 책이군요. 읽어보고 싶네요.

bookholic 2022-11-06 19:05   좋아요 1 | URL
숫타니파타 참 좋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이 저희 좌우명입니다.
늘 놀라지만요... ㅎ
즐거운 저녁 시간되세요~~
 















(32-33)

망가지고 손상되고 상처 나고 부서진 모든 것에 자꾸만 끌리는 것, 이것이 나의 증상이다. 시시한 것들, 뭔가를 만들다가 발생한 실수, 막다른 골목, 좀 더 발전할 수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한 것들,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즉 애초의 설계에서 너무 많이 확장된 것들 말이다. 표준을 벗어난 것, 너무 작거나 너무 큰 것,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 끔찍하고 역겨운 것. 좌우대칭이 어긋난 모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사방으로 번식하고, 싹을 틔우는 것, 혹은 그 반대로 수많은 개체가 하나로 줄어든 경우도 그렇다. 반면에 통계 수치에 따라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 예를 들어 모두가 흡족한 표정으로 화목한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축하하는 풍경은 내게 아무런 흥미도 일으키지 못한다. 내 감수성은 기형학(畸形學)이나 괴짜를 향하고 있다. 나는 이런 기형의 상태 속에서 존재가 참모습을 드러내고 본성을 나타낸다는 고통스럽고도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갑작스럽고 우연한 출현. 당황해서 튀어나오는 아이쿠소리, 완벽하게 주름 잡힌 스커트 아래로 삐져나온 속치마 솔기. 벨벳 의자 덮게 밑에서 돌연 모습을 드러낸 흉측한 금속 받침대, 부드러움에 대한 환상을 뻔뻔하게 깨뜨린, 푹신한 안락의자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스프링 하나.


(40)

심장. 그 신비는 확실히 밝혀졌다.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고르지 못한, 더러운 크림색 덩어리. 칙칙하고 보기 싫은 잿빛이 감도는 크림색, 크게 바로 우리 몸의 색깔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나 벽지를 고른다면, 우리는 절대 그런 색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둠의 색깔이자 내부의 색깔이다. 햇볕이 들지 않고 물질이 낯선 시선으로부터 음습하게 자신을 감추는 내부. 아무것도 과시할 게 없다. 하지만 피가 돌기 시작하면 화려한 치장이 허용된다. 피는 경고이고, 그 붉은빛은 경고의 신호다. 우리를 덮고 있던 조개껍데기가 열리고 세포 조직의 지속성이 깨질 수도 있다는.

실제로 우리 몸의 내부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 심장이 원활하게 혈액은 펌프질 할 때 혈액의 색깔은 콧물과 같다.


(83)

하지만 시간에 대해 나는 의견이 다르다.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그것은 혼돈의 대양 속에서 정리된 시간, 섬과 군도의 시간이다. 기차역의 시계가 만들어 내는 시간,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그때그때 약속된 시간이자 자오선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먼동이 크기가 무섭게 오후와 저녁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온다. 그저 잠시 머무는 대도시에서의 빡빡한 시간은 하룻저녁을 송두리째 바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행기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인적 없는 평원의 느긋한 시간이 있다.


(108)

뭔가를 글로 묘사한다는 건, 그것을 사용한 것과 비슷해서 결국엔 그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색깔이 엷어지고 모서리는 닮아서, 글로 적어 놓은 것들은 결국 희미해지고 사라져 버린다. 특히 장소에 관한 글이 그렇다. 여행 안내서들은 침략이나 전염병처럼 지구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고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다양한 언어로 수백만 부를 찍으면서 해당 장소를 속박하고 약화시키고 그 윤곽을 지워 버렸다.


(318)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인체는 전적으로 신비로운 대상이다. 아무리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모든 것을 더욱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열심히 유리를 갈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엄청나게 어려운 언어를 창조했던 렌즈 연마공 스피노자, 그 철학자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흔히 말하듯 보는 것이 아는 것이므로.


(346)

밤이 되면 세상 위로 지옥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공간의 형태를 파괴하는 것이다. 모든 곳을 더욱 비좁게 만들고, 더욱 거대하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세부 항목들은 사라지고 사물은 자신의 고유한 모양을 잃어버리며 쪼그라들어서 불분명해진다. 낮에는 아름답다혹은 유용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이 밤에는 마치 형태를 잃어버린 몸뚱이처럼 이전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지옥에서는 모든 것이 가상으로 존재한다. 낮 시간에 드러난 형태의 다양성, 색의 현존, 음영 따위는 전부 헛된 것이 되어 버린다. 대체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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