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물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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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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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미미 여사의 책을 읽었단다. 예전에 미미 여사, 그러니까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몇 권을 더 사두었는데 책장에 먼지만 쌓이게 했구나. 그런 책들 중에 <맏물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단다. 미야베 미유키가 현대물도 많이 쓰셨지만,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도 많이 썼는데, 그 시리즈를 <미야베 월드 제2>이라고 부른대. 아빠가 그동안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은 <벚꽃 다시 벚꽃>을 제외하면 모두 현대추리물이란다.

이번에 읽은 <맏물 이야기> <미야베 월드 제2> 시리즈 중에는 아빠가 읽는 첫 작품이구나.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제2> 시리즈는 분량이 꽤 많아서 그 책들을 모두 다 읽겠다고 장담을 못하겠다. 이번에 읽은 <맏물 이야기>에서 맏물이라는 말은,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를 일컫는 말로, 이것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여 길하게 여겼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주인공은 모시치라는 사람으로 도쿄 안 혼조 후카가라는 지역의 치안 담당으로 범인 수색이나 체포를 맡았던 직책인 오캇피키였단다. 그가 겪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엮은 것이 바로 <맏물 이야기>라는 책이란다.


1.

첫 번째 사건은 오세이 살해 사건인데, 모시치의 부하들인 곤조와 이토키치가 알려준 사건이란다. 오세이라는 서른 두 살 먹은 여인으로, 옷이 벗겨져서 익사한 상태로 발견되었단다. 오세이는 간장을 파는 행상인으로 일했고, 오토지로라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단다.  모시치가 보기에 아무리 봐도 사건의 단서가 될 만 것이 없었고, 혼자 집에 있을 때 당한 것 같은데 외부인의 출입 흔적은 전혀 없었단다. 고민하던 모시치는 바람도 쐴 겸, 새로 생긴 노점 식당에 갔단다.

이곳은 생긴지 얼마 안된 식당이지만, 모시치의 입맛에 딱 맞았단다. 그리고 그 노점 식당의 주인이 수수께끼의 인물이어서 궁금해서 가기도 했어.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모시치는 그 주인의 행세를 보면서 그의 정체를 밝혀보려고도 했단다. 이 사람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사람이 사건들에 대한 단서를 알게 모르게 많이 주었기 때문이야. 그가 전직 무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심성은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단다. 특히 모시치에게는 잘 대해주었어. 그리고 그가 이 동네에 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고, 그 이유가 그 지역의 불한당 우두머리인 가지야의 가쓰조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어.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책의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았단다.

앞서 이야기를 한 것처럼 이 책은 <미야베 월드 제2> 중 한 권이니까, 아마 다른 책에서 정체가 밝혀지지 않을까 싶구나. 아무튼, 오세이 살인 사건도 노점 식당에서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힌트를 얻게 되어 범인을 잡게 되었단다.

….

각 사건들은 짤막짤막해서 단편 추리 소설을 보는 기분도 들었단다. 집 없는 길거리 아이들이 신사에 공물로 바친 유부초밥을 먹고 죽은 사건, 값싼 가다랑어를 천냥이나 주고 사는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는 이야기, 10살짜리 아이를 니치도(기도사)로 만들어 돈 벌이를 하는 이야기 등 모든 에피소드들이 재미있더구나.

앞서 이번에 읽은 <맏물 이야기> <미야베 월드 제2> 시리즈 중에 하나라고 했잖아. 혹시 책 읽는 순서가 있나 찾아보니 개별적인 이야기들이라서 순서 없이 읽어도 괜찮지만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다고 하더구나. <맏물 이야기>의 주인공 모시치는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서도 등장하는데,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라는 책이 더 먼저 나온 책이라는구나. 에이, 모르겠다. 나중에 읽더라도 그냥 집에 있는 <미야베 월드 제2> 시리즈를 먼저 읽어보고 더 읽을지 말지 생각해봐야겠구나. 오늘은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후카가와 도미오카바시 다리 기슭에 기묘한 노점이 나와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마침 야부이리 날이었다.

책의 끝 문장: 자네에게도 그 이야기를 가르쳐 주고, 한잔하고 싶어서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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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 일과 선택에 관하여 조우성 변호사 에세이 2
조우성 지음 / 서삼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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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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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 변호사님의 법정 에세이 <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단다. 1권과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단다. 읽는 사람들은 재미있지만, 실제로 겪은 사람들은 힘들었겠구나, 하는 에피소드들도 많았단다. 이런 저런 사기에 휘말리고, 친했던 사람들과 법적인 문제로 휘말리기도 하고, 뜻밖에 사고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럴 때 지인 중에 변호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아빠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좋은 변호사란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 법을 잘 해석하는 융통성과 논리적을 잘 이야기해서 판사를 잘 설득하는 변호사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사람을 가장 알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단다. 변호사는 결국 법에 앞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잖니.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어. 사람을 중시하고 그 사람에 받는 해결법을 찾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해결법이고, 그런 해결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좋은 변호사요, 훌륭한 변호사야. 그래서 때로는 법적 경고장보다 감사의 편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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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법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규칙인데 그 규칙을 제대로 아는 사람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규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협박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행위임에도 이런 일들은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살면서 누구나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때 명심해야 할 것은 혼자 앓지 말고 주위에 적극적인 자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고 당할 수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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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좋은 변호사인데 경험이 부족한 경우, 어떤 에피소드를 읽다가 오히려 사기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내는 도망가고 아들은 희귀병에 걸리고, 어머니는 암에 걸리는 등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절도를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변호사는 최대한 노력해서 집행유예를 받아냈는데, 알고 보니 집행유예를 변호사를 속였다는 것이야. 얼마나 배신감을 받았을까? 이 사건은 지은이 신입 때 있었던 일인데, 이 일이 있고 난 이후에는 반드시 사실 확인을 한다고 하더구나.


1.

법에 휘말리는 일 중에는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나중에 화살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구나. 이런 에피소드를 보고 나면, 말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말조심은 해야겠지. 한번 내뱉은 말은 거둬들이기 정말 어려우니 말이야.

이 책을 쓰신 조우성 변호사님이 법보다 사람을 우선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변호사 경험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 특히 고전을 많이 읽어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셔서 그런가 아닌가 싶었단다. 직접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는 안 하셨지만, 에피소드에 어울리는 옛 고전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같이 실어주셨단다. 고전 읽기가 쉽지 않은데, 고전의 일부분들을 쉽게 소개해주어 재판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에 고전의 일부를 맛볼 수도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단다.

몇 가지를 소개해주면,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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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관계란 상대적이다. 어느 관계에서는 내가 우월한 입장이지만 다른 관계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순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약한 자에게 유독 가혹하게 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언젠가 더 강한 자가 나타나면 호되게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응립여수 호행이병(應立如睡 虎行以病)’이라는 말이 있다.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라는 뜻이다. 강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언제나 조심하며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진정한 고수는 절대 약자 앞에서 허세나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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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개 더 소개를 해주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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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3)

송명시대의 학자 정자(程子) <논어>를 읽은 사람을 크게 넷으로 나누었다. <논어>를 읽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다 읽은 뒤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 다 읽은 뒤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논어>를 읽기 전에도 이러한 사람인데 다 읽고 나서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 즉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독서는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앎으로 승화되어야 하고, 그 앎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 속에서 진정한 보석을 골라내어 자신의 삶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급변하는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지식의 전사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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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당장 오늘부터 대화의 방식을 바꿔보자. 내 말을 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에 대해 묻고, 그 질문에 대한 상대방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이렇게 딱 한 달만 해보자. 상대방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얻음과 아울러 당신은 사려 깊은 사람으로 각인될 것이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올리버 웬델 홈즈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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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라는 말이 참 와 닿는구나. 잘 말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하고 더 어렵다는 점.

…..

1권 이야기할 때도 이야기했듯이 많은 에피소드들이라서 일일이 이야기해주지 않은 점은 이해 바란다. 지은이 조우성 님을 검색해보니 활발하진 않지만 유뷰트 채널도 있더구나. 나중에 함 방문해봐야겠구나. ,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로마인은 수많은 전쟁에서 이겼다.

책의 끝 문장: 내게 맞는 운명의 옷을 입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인생의 이치가 아닐까.


법이 항상 약자를 보호하는 건 아니다. 이처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음에도 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더 곤란을 겪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이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말한 데에는 이처럼 약자 스스로 노력하여 원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을 것이다. - P87

완장을 찬 듯 어깨에 힘을 주며 임시로 주어진 권력을 마구 휘두른다면 결국 사람도, 자리도 모두 잃고 만다. 권력이란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권력에 눈이 멀어 섣부른 힘을 행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상황과 위치가 바뀔지 모를 일이다. 기억하자.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악역도 현명하게, 최선을 다해서.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잃어선 안 될 것이다. - P183

수십 권의 책을 읽어 지식을 쌓고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바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나 자격증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에 불과하다. 임상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과 지혜까지 겸비해야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이 되어야 책임 있는 진단과 조언이 가능해진다. 책에서 배운 것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어설픈 전문가가 초래하는 위험은 생각보다 크다. 나의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정말 그렇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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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익주) 호구조사를 고려의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고려의 호구조사 결과를 몽골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전까지 고려에 설치되어 있었던 다루가치를 폐지하고 다시는 설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 낸 거죠. 또한 그 당시에 고려에 주둔하던 몽골군을 전부 철수하게 하고, 홍차구 같은 부원 세력이 고려의 정치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도 이제는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러한 쿠빌라이 칸의 약속이 쿠빌라이 칸이 죽은 다음 몰골의 후손들에게 세조가 정한 옛 제도라는 의미에서 세조구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 이후에는 몰골의 누군가가, 또는 고려의 부원 세력이 고려의 자주성을 해치려고 시도하면 언제나 이 세조구제에 어긋난다는 논리로 막아 냅니다. 그래서 고려가 끝까지 국가로서 유지될 수 있었죠. 충렬왕의 외교가 거둔 성과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63-64)

(이익주) 그래서 충선왕이 폐위된 지 10년 만에 복위합니다. 사실 충선왕의 전성기는 복위하기 한 해 전인, 무종을 옹립한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그때 원에서 심왕으로 책봉받습니다. 지금의 중국 선양시와 랴오양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을 분봉받으면서 원의 여러 왕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마침 충렬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 왕까지 되어 두 개의 왕위를 겸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원에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정책이 어전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되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케식으로 부릅니다. 충선왕이 바로 케식의 일원으로서 원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면서 원의 실력자가 됐죠.


(84)

(이익주) 사실 기황후의 능력은 외모보다는 몽골 여인과는 다른 학식에 있었습니다. 한가할 때는 <여효경>과 각종 역사서를 읽으면서 중국의 역대 황후 가운데에서 본받을 만한 인물이 있는지 공부했다고 합니다. 또한 사방에서 올라오는 공물 가운데 좋은 것이 있으면 태묘에 먼저 바친 후에야 그것을 가졌다는 기록도 있고, 수도 근방에 커다란 기근이 들었을 때는 자기의 사재를 털어서 무려 10만여 명의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처럼 황실 안에서 상당히 현명하게 처신했다는 기록을 보면 몽골 사람들은 잘 갖지 못했던 유교적인 덕목을 기황후가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86)

(신병주) 여기서 고려 왕의 계보를 잠깐 살펴보자면, 충선왕의 아들 강릉대군이 충숙왕이 됩니다. 그다음은 충숙왕의 장남인 충혜왕이 잇고요. 참고로 공민황은 충숙왕의 차남이죠. 충혜왕이 폐위되자 동생인 공민왕이 왕이 될 뻔했는데, 결국에는 아들인 충목왕이 고려 제29대 왕이 되죠. 충목왕이 즉위할 때 여덟 살이었는데, 4년 만에 열두 살의 나이로 병사해요. 그렇게 해서 공민왕이 이제는 자기 차례라고 생각할 때, 이번에는 충혜왕의 서자인 충정왕이 열 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니까 공민왕은 어린 조카 두 명에게 연이어 밀린 거예요. 충혜왕이 폐위되었을 때는 충목왕에게 밀려 재수하고, 충목왕이 죽었을 때는 충정왕에게 밀려 삼수한 거죠. 결국 공민왕은 삼수 끝에 고려 제31대 왕이 됩니다.


(108)

(류근) 뭐니 뭐니 해도 공민왕이 불굴의 자세로 추구한 자주성과 독립성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그 삼엄한 원 치하에서 어떻게든 고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회복하려고 노력한 그 끈기와 오기에 아름다운 고려 정신이라고 박수를 좀 보내 주고 싶어요.


(128-129)

(이익주) 공민왕은 반원 운동을 시작으로 기황후와 싸우고 덕흥군에 의해 폐위당할 뻔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기죠. 그래서 이쯤 되면 권문세족들을 상대로 개혁을 추진했을 때 자기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왕권을 대행하는 신돈이라는 사람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개혁도 추진하고 자기의 안위도 보장받는 길을 택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153-154)

(이익주) 그랬을 겁니다. 무신 전체는 아니고, 최영을 비롯한 몇몇 사람의 문제인데, 공민왕 대에는 홍건적과 왜구 등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변란이 계속되면서 무장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그런데도 공민왕은 이들이 더는 세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고, 개혁을 통해 제거하려고 했어요. 신돈이 개혁을 시행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최영을 경주의 지방관으로 좌천시켜 내보낸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 관한 불만이 최영을 비롯한 무장들 사이에는 계속 있었는데, 공민왕이 시해당하고 우왕이 즉위하자 기회를 잡은 거죠. 개혁의 흐름을 중단하게 하고 그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면에서 이인임과 최영이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66)

(신벙주) 이인임 세력은 권력을 휘둘러 뇌물을 수수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강제적으로 뺏는 일들을 자행해요. 혹시 수정목이라는 나무 들어 봤어요? 물푸레나무예요. 이 나무가 아주 단단합니다. 야구방망이로 만들어도 되는 나무인데, 이때 이인임의 수하들이 수정목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토기를 내놓으라며 때렸죠. 그러다 보니까 몽둥이가 국가에서 발급한 공문보다도 더 효과가 크다고 해서 수정목 공문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공포의 대상이 됐다는 거죠.


(206)

(이익주) 그래서 왜구는 단순히 고려와 일본의 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모두 관련된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1388년에 중국에서 원과 명이 교체되는데, 공교롭게도 139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바로 같은 해에 일본에서 북조와 남조가 통합됩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왕조 교체에 준하는 변화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관점에서 왜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 볼 필요가 있죠.


(226)

(이익주) 그렇죠. 이성계가 이렇게 강력하고 길게 자기 얘기를 한 것은 이 때가 처음입니다. 이성계가 군인에서 정치가로 점차 변신하는 모습이 보이죠. 이성계가 요동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며 내놓은 주장을 흔히 사불가론(四不可論)’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여름철에 군대를 발해서는 안 된다.”요동에 군대를 보냈을 때 왜구의 공격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장마철에 전염병이 돌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세 가지는 군인으로서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맨 처음에 제시한 이유는 이소역대(以小逆大)’라 해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면 안 된다입니다. 이 말은 성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명분론입니다. 군인인 이성계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이때 정몽주나 정도전 같은 신흥 사대부들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해석됩니다.


(246)

(이익주) 저는 최영이나 이성계 모두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영에게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최영은 개인적으로는 참 청렴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개인의 청렴함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죠. 그랬기 때문에 최영 개인은 청렴했지만, 공민왕 때는 개혁의 걸림돌이 되었고, 우왕 때는 이인임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요. 사회가 구조적으로 부패해 가는 것을 막지 못한 거죠. 어쨌든 최영의 죽음으로 고려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거의 사라집니다. 이때부터 고려가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데, 고려 왕조로서는 고려의 마지막 버팀목이 된 최영에게 국제적인 감각과 사회 변화에 관한 안목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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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 삶과 태도에 관하여 조우성 변호사 에세이 1
조우성 지음 / 서삼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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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우리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 드라마는 실제 있었던 재판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았다고 했어. 드라마에서 나왔던 재판들이 담긴 책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작년에 읽은 신민영 변호사님의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가 그 중에 하나이고, 또 다른 책이 조우성 변호사님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2>이란다. 그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오늘은 먼저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지은이 조우성 변호사님은 변호사 경험이 25년이라고 하시는구나. 직접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보고 들은 재판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음 책이란다. 1권은 <삶과 태도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부제는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단다. 1, 2권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단다. 지은이 조우성 변호사님께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셔서 그런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술술 읽히더구나.


1.

1권에 나온 에피소드들 중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에피소드에 나왔던 사건들은 <몇 대 맞으시면 됩니다> <횡재가 횡액이 되는 순간>라는 재판이었어.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일은 정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놀랍구나. <몇 대 맞으시면 됩니다>는 삼형제가 거액의 상속을 받게 되는 내용이었어. 드라마에 있었던 것 기억나지 못된 형들이 막내의 돈을 빼앗아 가려고 했던 에피소드. 실제 사건도 비슷했단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내던 막내. 논의 명의도 막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땅이 개발이 되면서 큰 돈을 받게 되었어. 그런데 형들이 찾아와서 아버지의 논이었으니 큰형이 50, 둘째 형이 35, 막내가 15로 나눠야 한다고 강압적으로 이야기했대. 그리고 이때 발생하는 세금도 막내가 모두 지불하는 것으로 해서 각서까지 썼다고 하는구나. 막내 분의 아들이 지은이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드라마에서처럼 형들에게 상해를 당하는 것이었단다. 그 작전이 성공해서 증여는 취소할 수 있었고, 드라마에서처럼 막내는 형들과 돈을 똑같이 나누었다는 이야기란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하려고 만들어낸 에피소드인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막내라는 분도 또한 대단하구나. 그렇게 못나게 군 형들에게 돈을 똑같이 나눠주다니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는 로또 당첨금에 대한 이야기란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그 로또 이야기.. 친구들과 당첨금을 나눠 갖기로 했는데 한 친구가 꿀꺽해서 열린 재판. 결국 재판에서는 친구들에게 똑같이 당첨금을 나누라는 판결이 나왔지. 그런데 그 이후 당첨금을 받은 이는 바람을 피우고 이혼까지 했다고 했어. 그 이후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교통사고 당시 법률적으로 부인이 없던 그의 유일한 상속인은 아이들이었어. 그래서 그의 로또 금액과 생명보험금의 그의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대신해서 상처를 받았던 전처가 관리하게 되었다는구나. 이 에피소드도 좀 각색이 되긴 했지만, 드라마에서 거의 비슷하게 그려졌단다. 세상에 참 별난 일이 많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잘못한 사람은 결국 천벌을 받는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

이 책에는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쭉 나와서 일일이 소개하기는 그렇고 나중에 너희들도 좀 더 크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더구나.


2.

아빠는 법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단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법률 상식을 얻을 수도 있는데, 부모님이 빚을 남기고 돌아가실 경우 상속을 포기하면 빚도 갚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단다. 그런데 상속인이 사망하게 되면 손자에게 넘어갈 수 있으니, 손자도 상속에 개시되기 전에 상속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는구나. 이런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엄한 빚을 내는 일은 없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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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상속으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된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식들이 부모의재산이 아니라을 물려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중에는 부모의 빚을 물려받지 않기 위한 상속포기라는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3개월의 상속포기 신고기한을 놓치는 바람에 부모의 빚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법에서 규정한 절차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기에 결코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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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간에 일어나는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해 주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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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우리 형법은 친족 간에 일어나는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해주고 있는데 이를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고 한다. 김 사장 아들의 경우처럼 직계혈족 간의 절도죄에 대해서는 형벌 자체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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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니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해가 가더구나. 수 많은 사례들에 맞는 법을 찾아내야 하니 말이야. 아무튼 앞으로도 법적인 일에 휘말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법적인 일에 휩싸일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변호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간단히 끝내고 조만간에 2권의 이야기도 해줄게.

이상.


PS:

책의 첫 문장: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6개월 전에 위암 선고를 받으셔서 현재 항암 투병 중이십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이 법에 기대어 법정을 찾게 되는 때는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을 경험하고 있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지만, 소송 이후의 삶은 천차만별로 달랐다. 어떤 이는 승소를 해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했고, 어떤 이는 패소를 해도 후련한 마음으로 결과를 받아들였다. 2년의 재판 끝에 승소를 했음에도 분노에 젖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있는 반면, "이 사건은 이길 수 없습니다. 패소가 확실합니다."라고 말해도 끝까지 철회하지 않고 심지어는 패소했음에도 나를 지인에게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다. - P6

먼저 1단계는 ‘당혹감’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좀더 신간이 지나면 이런 상황을 초래한 상대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2단계로 넘어간다. 그리고 곧 화가 누그러지면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누구를 탓하겠어. 사람을 잘못 본 것도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도 모두 내 탓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3단계다. 이를 넘어서 4단계에 들어서면 상황을 ‘직면’하고 ‘성찰’하려 한다. ‘좋아, 어차피 일이 어떻게 된 거 최대한 잘 처리하도록 하자. 냉정을 잃지 말고 아울러 이번 일을 나의 교훈으로 삼자. 분명 이 경험도 내겐 득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이다. - P93

노자의 <도덕경>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라는 구절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굉장히 크고 넓어서 얼핏 봐서는 성긴 듯하지만 선한 자에게 선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일은 조금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 P151

사람들이 소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 때문이기도 하고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서로 자존심을 걸고 법정싸움을 벌일 때는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서로 양보하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 이득일 텐데 자존심이 걸려 있으면 달라진다. 합리적인 선택을 그 자존심이란 녀석이 가로막는다. 사람은 그만큼 감성적인 존재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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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

(이익주) 고려 시대 지방 제도의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모든 군현이 같은 등급에 있지 않고,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눠집니다. 가장 위에 있는 등급인, 지방관이 파견되는 군현을 주현으로 부릅니다. 주인 주() 자를 쓰지요. 그다음 등급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고 옆에 있는 주현으로부터 간접 통치를 받는 속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향**부곡이 있는데, 이 향**부곡에 사는 사람들은 좀 어려운 말로 잡척(雜尺)으로 부르지요. 이 작첩들은 일반 군현에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세와 공물, 역 같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유지를 경작하거나 자기가 사는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생산해 국가에 납부하는 역을 더 지므로 살기가 더 힘듭니다. 사회적으로는 천대받고요.


(33)

(신병주) 한때는 국사 시간에 향**부곡을 천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가르쳤는데, 최근에 바뀌었어요. 양인과 천민을 나누는 가장 큰 구분점은 국역을 지는지 안 지는지입니다. **부곡에 사는 사람들도 국역을 지기 때문에 일단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죠. 다만 하는 일이 천역(賤役)이어서 일반적인 양인과는 좀 구분해야 합니다. 특히 소라는 지역은 수공업을 전문으로 해서 물품을 조달하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금소에서는 금을 생산하고, 은소에서는 은을 생산하죠.


(76)

(이익주) 다소 역설적이긴 합니다만, 최충헌이 그렇게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왕실은 그대로 두고 그 권위를 이용하면서 자기의 실질적인 권력을 유지하고 세습까지 했죠. 그래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신하가 권력을 4대에 걸쳐 세습할 수 있었던 겁니다.


(78)

(이익주) 최충헌에서 시작된 최씨 정권이 자리를 잡고 62년간 이어지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역사에서 공과 사가 뒤섞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관리들이 국가에 충성한다고 했을 때, 이 충성은 언제나 공적인 것이고 공적인 충성의 대상은 명분과 대의가 있어야 하죠. 그런데 이 시기에는 무신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충성하고 그 충성의 대가를 바라는, 사익을 위한 충성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충성이 갖는 의미가 흔들리죠. 예를 들어 몽골과 싸운 것이 고려를 위해 싸운 것인지, 또는 최씨 정권을 위해 싸운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뒤섞입니다. 이처럼 권력의 사사로이 쓰는 일이 최충헌에게 시작됐다고 해도 큰 과언은 아닐 테니, 최충헌이 남긴 부정적인 영향은 결코 작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87)

(이익주) 고려에 호감이 있었다기보다는 고려를 고구려와 같은 나라로 알았다는 점이 컸을 겁니다. 훗날인 1259년에 고려 태자가 몽골에 가서 쿠빌라이를 만납니다. 그때 쿠빌라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고려는 만 리나 되는 큰 나라다. 옛날에 당 태종이 친정했어요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 그 태자가 나에게 왔으니 이건 하늘의 뜻이다.”

(류근) 진짜 고려를 고구려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 몽골이 그 정도로 국제 정세에 어두웠는데도 패권 국가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나마 고구려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간 보기 정도로 형제가 되자는 카드를 내밀어 본 거 같아요.


(102)

(최태성) 그 정체는 바로 초적입니다. 초적은 고려 민주이에요. 먹고살기 어려운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무리를 지어 도적질하는 무리가 된 거죠. 사실 이 초적들은 무신 정권에 반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몽골군이 오니까 무신 정권에 손을 내밀고 몽골에 대항해 함께 싸우자고 한 거예요. 심지어 마산, 이 마산은 오늘날의 경기도 파주인데, 그 마산에 있는 초적 우두러미 두 명이 직접 최우에게 와서 몽골과의 전쟁에 자기들을 써 달라고 자원합니다.

(류근) 초적들이 평소에는 관군들에 쫓기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나라에 위기가 닥치니까 일단 묵은 감정은 접고 외적과 싸우자는 거네요.


(110)

(신병주) 귀주성의 승리는 이끈 김경손에 관한 기록을 보면 몽골군이 쏜 화살에 팔을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끝까지 부대를 지휘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김경손이 아주 중요한 곳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데, 몽골군이 쏜 포탄이 계속 날아오자 부하들이 김경손에게 너무 위험하니까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권합니다. 근데 김경손은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가 움직이면 부하들이 동요할 것이다.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라면서 끝까지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부대를 지휘하죠. 정말 대단한 장군입니다. 명장이죠.

(류근) 당대의 영웅이었는데, 우리가 잘 몰랐던 거네요. 진짜 감동적입니다.


(135)

(신병주) 그래서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논란이 많아요. 강화 천도가 전략적 천도인지 도피성 천도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거든요. 전략으로 보는 쪽은 강화 천도가 항전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강조하고 해석합니다. 강화도라는 천연의 요새에서 오랫동안 버팀으로써 몽골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보는 거죠. 반면에 도피로 보는 쪽은 어차피 몽골에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우라는 집권자가 자기 안위를 위해 안전이 보장되는 강화도로 천도했다고 해석하죠. 이런 지적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무렵에도 여전히 초적들이 준동하고 백성들이 반란을 계속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몽골이 아니더라도 최우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너무 많은 거예요.


(179-180)

(신병주) 후대의 역사는 김윤추가 높이 평가받기에는 상당히 불리한 여건으로 지속됩니다. 원 간섭기에는 몽골에 저항한 인물이니 제대로 평가받기가 어려웠고, 조선 시대에는 신분이 승려인 김윤후가 크게 활약한 것을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별로 없었죠. 하지만 조헌이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에 김윤후를 언급할 정도로 그 당시에 많은 백성 사이에서, 특히 의병장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김윤후가 대몽 항쟁의 상징으로 분명히 회자되었다는 거죠.


(216)

(이익주) 그 당시 고려의 상황을 평가할 때는 몽골이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대제국이라는 점,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 가운데 국가를 유지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전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때 고려라는 국가를 유지하게 한다는 쿠빌라이 칸의 약속을 뒷날 세조구제(世祖舊制)로 부르는데, 고려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고려 측에서는 세조구제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반대해 국가를 유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런 점에서 쿠빌라이와 원종의 만남이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죠.


(252)

(이익주) 우리가 흔히 삼별초의 항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삼별초만의 항쟁이 아니라 삼별초를 중심으로 하는 고려 전 백성의 항몽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세에 대항해 싸웠다고 해서 무조건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겠죠. 고려가 28년 동안 몽골과 싸운 점, 강화를 통해 왕조를 유지하고자 노력한 점 등을 고려해 삼별초를 중심으로 하는 항몽도 종합적으로 새롭게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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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하루 2023-03-11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넘 좋네여! 맨 마지막 홉니다 오타요!

bookholic 2023-03-12 01:04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저는 오타가 무척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