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우연찮게, 썩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룰도 제대로 모른 채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넓은 피치 위를 뛰어다니고, 공 다루는 섬세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익혀가고,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 골대를 향해 공을 착착 몰고 가는 재미에 푹 빠지며 ,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운동에 대한 깊고 오랜 오해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그녀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전과 다른 시간이 되었다.

(34)

이렇게 운동 효과 면에서나 대외 이미지나 일상 활용성에서 모두 애매하디 애매한 운동이면서, 결정적으로 접근성까지 낮다. 다른 운동처럼 여기저기 배울 곳이 있고 정보가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경로로 열심히 검색해 봐야 하나씩 겨우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여자들이 그라운드로 진입하는 것을 겹겹이 막으며 철통 수비하고 있다. 축구로 입문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축구인 것이다.

(36-37)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호나우두가 스텝오버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통 헛다리를 짚을 때는 달리는 속도가 확 줄기 마련인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수비수들을 휙휙 제치고 죽죽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한가?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나?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스텝오버로 제치고 골을 꽂아 넣는데, 축구가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노릇인가 어이없을 정도였다. 우아한 헛다리와 그물 안으로 감겨들어 가는 공의 궤적과 관중들의 얼굴에 역력한 감동의 흔적. 어마어마한 규모의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지만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인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오랫동안 호나우두를 따라다니며 해외 축구를 찾아봤다. (새벽 중계가 대부분이어서 오랜만에 AM 김혼비가 맹활약했다.)

(43)

반면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64)

이게 다 아웃사이드 드리블 때문이다.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발 바깥쪽을 이용해서 새끼발가락이 공 밑 부분에 살짝 들어가듯 차, 공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드리블 최고의 장점은 수비를 속일 때 아주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몸을 기울여서 상대 선수가 덩달아 그쪽으로 몸이 기운 틈을 타 반대쪽으로 휙 빠져나가기 좋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면 단연 ! 골인이겠지만, 수비를 휙휙 제치며 빠져나가는 순간도 그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나를 축구로 확 끌어들인 장면도 호나우두의 골이 아니라 헛다리 짚기 아닌가! 로빙슛의 그날, 우리 주장이 보여 줬던 현란한 페인트 동작은 또 어떻고!

(67)

공을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어쩐지 공을 헛 찰 것 같고, , 발등, 새끼발가락, 땅을 딛고 있는 반대편 다리로 온 신경이 분산되면서 스텝이 엉키거나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공을 이상하게 차고 만다. 인간이란 무언가를 의식하는 순간 그 의식의 대상에 필요 이상으로 파괴적인 힘을 주는 게 틀림없다.

(102-103)

오버래핑은 후방에 배치되어 있는 수비수가 공격 지역으로 달려 나와 공격에 가담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수비수가 잠시 공격수가 되는 것이다. 실력도 활동량도 탁월한 선출들은 공격수 자리에 고정시켜 놓는 것보다 수비를 기본으로 하다가 때때로 공격에 가담하도록 하는 것이 팀 전력에 훨씬 도움이 된다. 감독님의 해맑은 전술 ;수비도 잘다고 공격도 잘하자.’가 곧 오버래핑 정신의 구현인 것이다! (물론 감독님이 그걸 의도하고 말했을 리는 절도 없다.)

(142)

그 뒤로도 생각만큼 쉽게 잠잠해지지는 않았다. 얼굴 어딘가에 도발적으로 도사리고 있는데 긴 머리에 가려져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할 상큼함과 신선함이 단발을 하는 순간 후두두둑 튀어나올 것만 같고, (하지만 긴 머리가 가리고 있던 건 단지 얼굴, 단지 그냥 얼굴뿐이었다는 슬픈 사실을 곧 마주하게 된다.) 머리 감고 빗는 시간이 줄어 편할 것 같고, (하지만 바쁜 출근 시간에 그놈의 뻗친 머리 펴느라 한참을 낑낑대고 나면 긴 머리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 또한 마주하게 된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 무게만큼 마음도 홀가분해질 것 같고, (반짝 그런 효과가 있지만 앞의 사실들을 마주하면서 점점 무거워진다.) 등등, 어쩐지 삶 구석구석에 작게 뭉쳐 가끔씩 성가신 통증을 유발하는 근육들을 단발이 산뜻하게 풀어 줄 것만 같은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 봤자 별 거 없다는 걸 알아도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알 수 없는 희망은 어찌나 잘 생기는지.

(176)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튀어나온 공을 리바운드해서 골로 연결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바라 마지않았고, 하려고 노력했던 툭 쳐서 주워 먹기를 드디어 성공했는데, 하필 골키퍼가 나였다. 저 시나리오에서 골키퍼도 내가 되고 주워 먹는 사람도 내가 될 수 있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반전이다. 마치 폴란드 영화 학교 2학년생이 실존주의에 대해 고민하다가 써낸 단편 영화 시나리오 같다. 살면서 내가 골을 넣는다는 것도 매우 현실성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내가 자책골을 넣는다는 것은 아예 상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일어났다. 축구가 진짜 이렇게 전복적인 종합 예술이시다.

(210)

신체 조건상 남자 축구에 비해 힘과 속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자 축구만의 독특한 색깔이 나온다 남자 축구는 뭔가 휙휙 재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라면, (물론 그게 또 재미지만) 여자 축구는 상대적으로느리고 정적인 몸동작과 전개가 선수들과 공이 만들어 내는 축구의 전체적인 그림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패스 워크라든지,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움직이라든지, 역습 때의 호흡 같은 것들을 그때그때 섬세하게 읽어 내는 재미가 있다. 툭툭 주고받는 짧은 패스들이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호쾌한 슈팅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한 장 한 장 엇갈리게 섞인 트럼프 카드가 둥그렇게 만든 손 모양을 따라 폭포처럼 아래로 좌르륵 떨어지며 반듯하게 정리되는 것을 볼 때처럼 살짝 황홀하고 근사한 기분이 된다.

(261)

정말 그랬다. 감독님 말이 맞았다. 좀 전에 나는 똑똑히 봤던 것이다. 내 발끝에서 튀어 오른 공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갈 때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순간적으로 하얗게 빛나던 것을. 그것은 정말 하얀 달 같았다. 허공에서 공이 달이었던 그 짧은 순간, 그 달을 보면서 우리 팀 모두가 제발, 제발, 한 골만 들어가 달라고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달빛처럼 은은하지만 환하게 빛나는 10 승리였다.

(264)

스토피지(Stoppage) 타임. 멈춰 있는 시간. 전광판의 시계는 멈춰 있지만 피치 위로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시간이. 앞으로 나의 축구도 그럴 것이다. 책 속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그 아래로 김혼비 축구의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추가 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축구와 함께 어디서든 즐거울 것이다. 무엇보다 김혼비는 추가 시간에 강하니까.

(273)

그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아득해서 보이지도 않는, 축구처럼 아직까지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다른 많은 분야들에서 끊임없이 인식의 구획에 틈을 내고 틈을 넓히는 많은 사람들과 마침내 아무 구획도 없는 넓은 광장에서 만나는 그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초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렇다 인간은 모일수록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축구공 앞에서, 특히 여자들은.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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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책은 로버트 해리스가 쓴 <콘클라베>라는 책이란다. 로버트 해리스는 아빠가 좋아하는 서양 작가 중에 한 명이고, 그 동안 그의 책을 여섯 권을 읽었고, 이번이 일곱 번째란다.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소설들도 있었고, 사회 비판적인 소설들도 있었어. 다 괜찮았단다. 묵직함도 있고, 재미도 있고 말이지.

콘클라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어. 영어 단어인가 싶기도 하고. 특별히 찾아보지는 않았단다. 책에 나오더구나. 콘클라베.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열쇠를 지니다는 뜻으로, 추기경들이 모여서 새로운 교황을 뽑는 것을 말한단다. 교황이 뽑히기 전까지 추기경들은 교황을 뽑는 성당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어. 이 소설은 그러니까 교황을 새로 선출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란다. 실제 일어났던 일을 그린 소설은 아니고, 2022년 미래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단다. 책머리에 현재 실존하고 있는 인물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 설정이라고 이야기해주었어.

교황이 선종하고 나면 로마 교황청에서 추기경들이 교황을 뽑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특별한 색깔의 연기를 낸다고 했던 기억이 있었어. 이 책을 읽고 나니 좀더 정확하게 알겠더구나. 교황이 선출이 안되면 검은색 연기이고, 교황이 선출이 되면 흰색 연기더구나. , 그럼 그 이야기를 해줄게.

 

1.

2022년 교황이 갑작스럽게 선종을 했단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야. 얼마나 갑작스러운 죽음이냐 하면 임종을 지킨 이가 아무도 없었대. 추기경 단장을 맡고 있는 로멜리 추기경도 소식을 받고 교황에게 갔어.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하나둘 로마 교황청으로 모여들었단다. 추기경들의 숙고인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도착들을 했어. 로멜리 추기경이 알고 있는 모든 추기경들이 도착을 했단다. 그런데 로멜리 추기경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왔어.

자신을 베니테스 추기경이라고 소개했어. 교황의 의중 결정 추기경이라고 했어. 의중 결정 추기경이라고 하는 것은 교황이 몰래 자신이 추기경을 서임한 추기경이야. 위험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경우 공개적으로 추기경을 서임을 하게 되면 신변의 위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몰래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했어. 왜냐하면 그는 바그다드 대주교였거든. 이슬람의 본거지인 바그다드의 대주교그는 본래 필리핀 사람이었는데, 약하고 힘든 이들을 많이 도와주고, 현재는 바그다드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어. 교황이 바그다드에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나고 서임을 받았다고 했어. 증서도 있고, 로멜리 추기경은 정황상 그가 추기경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도 콘클라베 멤버에 포함시켰단다. 물론 논란이 일기도 했어.

, 그럼 콘클라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야기해줄게. 먼저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투표권이 없다고 했어. 모든 추기경이 교황의 후보가 되었어. 2/3 이상의 득표를 받아야 교황이 될 수 있었고, 2/3 이상의 득표를 받은 사람이 없으면 다시 투표를 해서 12일간 총 30번의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했고, 그때까지 2/3이 없으면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교황이 된다고 했어. 추기경들간에도 파벌 비슷한 것이 있고, 지역연고도 있는 것 같았단다. 그래서 교황으로 추대될 유력한 추기경이 4명 정도 있었단다.

먼저 알도 벨라니 추기경. 이탈리아인. 그는 진보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어. 두 번째는 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 프랑스계 캐나다인. 매체를 잘 다루는 사람으로 야심도 많았어. 세 번째는 조슈아 아데예미 추기경. 나이지리아인.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최초 흑인 교황이 유력한 사람이었어. 마지막으로 조프레도 테데스크 추기경. 이탈리아인. 보수주의자로 확고한 지지층이 있지만, 독선적이라서 로멜리 추기경을 비롯하여 그를 싫어하는 이도 많았어. 추기경 단장을 맡고 있는 이가 콘클라베의 선거 관리 임무를 맡게 되어 있어서, 로멜리 추기경은 콘클라베를 주관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를 도와 성직자인 오말리라는 사람이 있단다.

 

 

2.

첫 선거를 앞두고, 야누시 보지니아크 대주교가 로멜리 추기경을 찾아왔어.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했어. 교황이 죽기 전에 트랑블레를 해고했다는 거야. 하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로멜리는 진실 파악을 하려고 트랑블레를 만나 이야기했지만, 그는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 자신이 교황과 함께 있던 자리에 동석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했어. 로멜리 추기경은 일단 알겠다고 했지.

드디어 첫번째 투표를 했어. 앞서 이야기한 4명의 후보가 골고루 표를 나눠 가지면서 테데스코가 22표로 1위를 차지했어. 하지만 2/3득표에는 턱없이 부족했어. 로멜리 추기경은 자신은 고독한 자리인 교황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도 적지 않은 5표를 얻었단다. 투표를 하면서 점점 득표를 받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표가 몰리기 시작하면서 아데예미가 절반 가까이 표를 얻었단다. 이제 몇 번만 더 투표를 하면 흑인 최초의 교황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단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수녀가 몇 주전에 로마로 발령을 받아서 왔는데 교황이 죽기 하루 전에 로마에 도착을 했어. 샤누미 수녀였는데, 그 수녀는 그곳에서 30년 전 자신을 강간했던 이를 만났다고 했어. 그것은 바로 아데예미 추기경이었어. 이미 30년 전의 일이고 철부지 없던 젊은 시절의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추행 스캔들의 교황을 누가 좋아하겠니.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다음 투표에서 아데예미 추기경은 표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표의 절반 이하가 되었어. 그 다음에는 거기에 또 절반그렇게 아데예미 추기경은 후보군에서 사라졌단다. 그러면서 다시 표가 분산되었고, 테데스코가 다시 1위를 차지했어. 그런데 누가 샤누미 수녀를 로마로 불렀을까.

로멜리 추기경을 투표할 때마다 벨리니 추기경을 선택했지만, 벨리니 추기경은 표수가 늘지 않았어. 로멜리 추기경은 벨리니 추기경과 따로 이야기했어. 독선적인 테데스코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어. 벨리니 추기경은 차선으로 트랑블레 추기경을 밀자고 했어. 로멜리 추기경은 트랑블레 추기경와 교황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 벨리니 추기경은 그것은 헛소문이라면서 믿지 않았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벨리니 추기경의 뜻을 이해했어. 유력 후보자간의 표가 분산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두 명의 표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는데, 한 명은 로멜리 추기경이고, 나머지 한 명은 의중 결정 추기경이었던 베니테스 추기경이었어. 로멜리 추기경은 벨리니의 추기경의 뜻을 이해하고 베니테스 추기경을 만나 트랑블레 추기경을 지지해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베니테스는 끝까지 로멜리 추기경한테 투표하겠다고 했어.

아데예미 추기경을 추락으로 몰아넣은 샤누미 수녀를 누가 로마를 불렀는가. 그것은 바로 트랑블레의 요청으로 왔다는 것이 밝혀졌어. 또다시 트랑블레에게 안 좋은 소문이었어. 로멜리 추기경은 다시 트랑블레 추기경을 찾아가 샤누미 수녀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교황이 시킨 일이라며, 자신은 교황이 시킨 일을 한 것뿐이라고 했어.

음… 로멜리 추기경은 점점 트랑블레 추기경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교황의 숙소에 몰래 들어가 숨겨져 있던 비밀보고서를 찾아냈단다. 트랑블레 추기경이 돈으로 추기경을 매수했다는 보고서야. 그래서 교황은 죽기 전에 트랑블레 추기경을 해고했던 거야. 로멜리 추기경은 그 비밀보고서를 보고 밤새 고민을 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겠다면서 그 비밀보고서를 복사해서 모든 추기경에 돌렸단다. 충격 받은 추기경들고성이 오갔어. 믿을 수 없다고 했어. 트랑블레 추기경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선거를 돕는 아그네스 수녀는 샤누미 수녀 사건의 내막을 추기경들 앞에서 이야기했어. 트랑블레 추기경이 샤누미 수녀를 불러왔다고 말이야.. 트랑블레 추기경도 후보군에서 빠지게 되고, 이것은 표를 잃고 있던 테데스코 추기경이 반전을 얻는 계기가 되었어.

이 일이 있고 나서 투표를 했는데, 테데스코 추기경과 로멜리 추기경의 양강구도에 베니테스 추기경의 표도 또 증가했어. 로멜리 추기경이 베니테스 추기경의 의중결정 추기경으로 인정을 했지만, 아직 그에 대한 신분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서 따로 오말리에게 베니테스의 신분을 조사해 보라고 했어. 그런데 그의 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어. 로멜라는 점점 자신의 표가 많아지는 것을 걱정하고 교황으로 선출되더라도 끝까지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러면서도 테데스코 추기경이 교황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자칫 자진이 교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어. 그 무거운 짐을 자신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교황 선거가 길어지다 보니 교황청 밖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결국 폭발 테러가 일어나는 불상사도 일어났단다. 로멜리 추기경은 이럴 때일수록 평정심을 가지고 선거 관리를 했단다. 투표가 거듭될수록 베니테스의 표가 늘고, 사람들은 그가 살아온 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그리고 콘틀라베의 결과는…. 처음에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베니테스 추기경이 2/3 이상의 득표를 얻어서 교황이 되었단다. 로멜리 추기경은 자신이 교황이 안 된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베니테스 추기경에게 축하를 해주었어.

 

4.

그런데… 오말리가 찾아왔어베니테스에 대한 아주 중대한 비밀을 말이야.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많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지만, 베니테스의 중대한 비밀은 차마 이야기를 못하겠구나.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이 책을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원래 이 편지에 베니테스의 중대한 비밀까지 적었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지우고 다시 적었단다. 혹시 나중에 커서 이 책을 별로 읽고 싶지 않고 결말이 알고 싶다면 그때는 그냥 이야기해줄게~

.

지은이 로버트 해리스이번 소설의 이야기의 설정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한순간도 긴장감을 풀 수 없었어. 아빠의 종교가 비록 불교임에도 불구하고, 거부감 없이 재미있었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 로멜리 추기경은 새벽 2시 직전 검사(檢邪)성성을 떠난 뒤, 바티칸 수도원을 지나 황급히 교황 침실로 향했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잠시 후 멀리 수십만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희망의 함성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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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10)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게 그렇게 크게 고통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이다.

스무 살이 좀 지났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런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그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여러 번 뼈아픈 타격을 받고, 기만당하고, 오해받고, 또 동시에 많은 이상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30)

옛날 옛날에 아주 마음씨 착한 산양이 살고 있었단다.”

멋진 첫마디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씨가 착한 산양을 상상해 보았다.

산양은 항상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걸고 헉헉거리면서 돌아다녔지. 그런데 그 시계는 너무 무거운 데다가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도 않았어. 그래서 친구인 토끼는 이렇게 물었지. ‘이봐, 산양, 왜 자네는 가지도 않는 시계를 늘 목에 매달고 다니는 건가? 무겁기만 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걸 말이야.’ 산양은 그야 물론 무겁지. 하지만 익숙해졌거든. 시계가 무거운 것에도, 움직이지 않는 거에도 말이야하고 대답했지.”

(62)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고 3번도.”

그녀는 잠자코 이번에는 두 장의 LP를 들고 돌아왔다.

글렌 굴드와 박하우스, 어느 쪽이 좋아?”

글렌 굴드.”

(116-117)

어떤 신문 기자가 인터뷰 중에 하트필드에게 물었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 월드는 화성에서 두 번 죽고, 금성에서 한 번 죽었습니다. 이건 모순 아닙니까?”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우주 공간에서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알고 있나?”

아뇨,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도 모릅니다.”

기자의 말에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걸 소설에 쓴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123)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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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9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에 울집 강아지 ‘막둥이’가 대여해온 책을 갈기갈기 찢은 책입니다 ㅋㅋㅋ

bookholic 2018-12-19 22:24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그의 데뷔작이라고 하는 소설을 한번 읽어봤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두어 권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들도 하루키를 좋아하는군요..^^

카알벨루치 2018-12-19 22:34   좋아요 1 | URL
그노무 시키는 제 첨이자 마지막 강아지였습니다

하루키를 젊을땐 맹목적으로 좋아했는데 <쾌락독서>를 읽으면서 하루키에 대해 재고해보기도 하고 ...문유석 판사의 생각도 보게 되고,

하루키의 다른 소설은 몰라도 <기사단장죽이기>의 집필동기나 의도는 그냥 너무 탁월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더 좋아하게 되는데, 하루키 자신도 자신의 소설들의 어떤 목적이나 이유를 생각치않고 막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마치 오늘 제가 막 읽은 김중혁의 <나는 농담이다>처럼, 농담처럼 소설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시간의 검증이 지난후에 하루키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는 모르겠네요 노벨문학상 후보 운운하는 <기사단장죽이기>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두서가 없네요 암튼 결론은 열독을 응원합니다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19 22:53   좋아요 1 | URL
아참, 서재의 달인 되신거 축하인사 못 드렸네요 ㅎㅎ 축하합니다 ^^

bookholic 2018-12-19 23:22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서재의 달인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카알베루치님의 글도 잘 쓰시지만,
편집이 유명 잡지보다도 뛰어나십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연말연시 되십시오~~~

카알벨루치 2018-12-19 23:34   좋아요 1 | URL
못 볼꺼 다 보고 계시군요 ^^감사합니다 그 찬사 잊지 않겠습니다 황송합니다요~

서니데이 2018-12-19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bookholic 2018-12-19 22:27   좋아요 1 | URL
앗....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저에게 큰 힐링이 되어주는 곳이라 자주 왔을 뿐인데 ‘서재의 달인‘이라는 칭호까지 주었네요...^^
서니데이님의 디테일하며 파스텔톤의 글들도 저에게 큰 힐링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더불어 서니데니님도 서재의 달인이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9-10)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즘의 깡마른 내 몸을 보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권투를 배운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였다. 선수로 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취미생활이나 체력단련을 위해 배운 것도 아니었다. 에두아르마네는 열다섯 살을 두고 세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싶은 나이라고 말했다. 꼭 그런 기분이 드는 시절이었다. 나는 늘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그 분노의 정체는 대체로 터무니없거나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25)

이게 잽이라는 거다. 어깨와 주먹에 힘을 빼고, 툭툭, 주먹으로 치는 게 아니라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빨리 꺼내온다는 느낌으로 팔을 뻗는 거야. 툭툭, 스텝을 밟으면서 기계적으로 반복적으로, 툭툭, 발의 움직임을 따라 몸에 리듬을 타면서, 툭툭, 상대가 짜증이 나도록, 상대가 초조해지도록, 상대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가 차오르도록 툭툭, 계속해서 날리는 거야. 그럼 알아서 무너져. 잽으로 다 무너뜨린 다음 한 방에 보내는 거지. 해봐.”

(26)

링이건 세상에건 안전한 공간은 한 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사람들은 독기나 오기를 품으라고 말하지. 마치 싸움을 할 때 독기를 품으면 훨씬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하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뜨거운 것들은 결코 힘이 되지 않아. 그렇게 뜨거운 것들을 들고 싸우면 다치는 건 너밖에 없어. 정작 투지는 아주 차갑고 조용한 거지. 상대방은 화가 나 있어. 네가 자기 땅에 함부로 들어왔으니까.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으니까. 상대방은 아주 뜨거워졌지. 하지만 너는 차가워. 너는 그저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가져오고 있는 중이니까. 툭툭, 방울토마토 하나. 툭툭, 방울토마토 두 개. 툭툭, 방울토마토 세 개. 상대방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여전히 방울토마토를 가볍게 가져올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거지. 싸움은 그렇게 잔인간 거야. 어때? 너는 끝없이 잽을 날리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163)

통두사님! 그것은 띄엄띄엄 정신이 아니에요. 띄엄띄엄 정신은 뭘 하기는 하는데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좀 띄엄띄엄 하자는 것인데 통두사님은 아주 퍼져 있잖아요.”하고 통두사의 말에 끼어들었다. 통두사는 약간 뜻밖이라는 듯이 야쿠르트님도 이런 말을 다 할 줄 아시네, 하며 껄껄 웃었다. 이어 통두사는 야쿠르트님의 지적은 참으로 좋은 지적이지만 그것은 띄엄띄엄 살기 운동의 정신을 너무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두사의 견해에 따르면 미시적 입장에서 띄엄띄엄 살기 운동의 정신이란 한 개인이 너무 열심히 말달리려는 사람들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에 자기처럼 전혀 말달리지 않는 백수계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 말달림의 진행 속도를 떨어뜨려서 사회 전체를 띄엄띄엄 발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5)

, 아침에 마시는 맥주 좋아. 좋은 사람들이랑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서 마시는 맥주도 좋은데, 맥주라면 역시 밤새워 일을 끝낸 다음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가 최고지. 너희들은 출근해라. 나는 이제 맥주 마시고 잔다. 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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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8-12-19 0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주땡김

bookholic 2018-12-19 08:27   좋아요 1 | URL
아침에 출근해서 업무 전에 시원한 모닝비어 한잔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네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2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2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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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2 년 전에 재미있게 읽은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책이 있었어.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설마 음악에 관한 내용이라고 제목만 봐서는 추측하기 어려울 거야. 그런데 그 책은 감칠맛나게 음악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단다. 그래서 그 책을 읽고 나서 너희들 고모한테도 선물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구나. 그 책의 두번째 이야기가 있었어. 아빠는 이제서야 그 두번째 이야기를 읽어 보았단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 너희들이 이 책 제목을 보고, 그 맛있는 전복에 관한 이야기냐고 물어보았잖아.. 하하.. 그 전복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야. 바다에 사는 전복이 아니라 뒤집어 엎는다는 뜻의 전복이란다. 음악의 역사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기존의 음악 세계를 확 바꿔 놓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라고 짧게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첫번째 이야기의 강렬함 만큼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두번째 이야기도 역시 지은이 강헌 특유의 입담으로 재미있는 음악의 에피소드를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음악과 뮤지컬 영화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요즘은 제목만 알면 바로 검색창에 두들기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책을 읽다가 듣고 싶은 음악이 생기면 바도 찾아서 들으면서 책을 읽곤 했단다. , 그러면 어떤 전복과 반전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볼까?

 

1.

러시아 5인조의 이야기가 맨 처음 등장하는구나. 러시아 5인조는 예전에 읽은 풍월당 박종호님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이들인데, 이 책에서 만나니 반갑더구나. 러시아 5인조는 민족주의 음악가들로 유명한데, 그런 러시아 5인조 같은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조선 음악가 동맹.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단체이고, 이 단체에 소속한 음악가들 역시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한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을 거야.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945년 해당 당시의 설명이 필요하다면서,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 특히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단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는 아픈 역사. 그런 혼란 속에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여운형, 김구 등 민족주의자들이 암살당하고…. 음악계에서도 친일파였던 인사들이 다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는구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현제명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고려교향악협회라는 음악 단체를 만들었대. 20~30대 젊은 음악가들은 현제명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롤레타리아 음악을 하고자 하는 조선 음악가 동맹을 만들었단다. 대부분 젊은 음악가였는데, 안기영과 같은, 좀 나이가 있는 음악가도 있었어. 안기영은 당시 흔치 않은 미국유학파였는데, 귀국 후 그는 민족 음악을 했다고 했어. 민요를 채집하여 악보로 만들기도 했어. 그와 나이와 비슷하고 마찬가지로 유학파였던 홍난파와 전혀 다른 음악의 길을 갔다면서 지은이는 두 명의 음악가를 비교해 주었단다. 지은이 강헌의 글을 읽어보면 홍난파보다 안기영을 더 높이 평가하는 듯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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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안기영은 작곡가였지만 동시에 미성의 테너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똑 같은 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말처럼 이 사람도 분명 처음에는 서양음악에 꽂혀 유학을 갔을 텐데도 홍난파와 매우 다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홍난파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하고 완전히 반해서 우리 걸 다 부정하고는 저 음악의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홍난파는 서구도 아닌 일본에 가서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를 보고 기꺼이 그 문화의 포로가 되었는데, 이에 비해 안기영은, 보니까 좋긴 하네. 그래도 역시 우린 우리 걸 해야 해하는 생각을 다지며 자신만의 음악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이 미세한 차이가 홍난파와 안기영이라는, 똑같은 서양음악 유학파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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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영은 작곡뿐만 아니라 테너로도 활동을 했대. 그리고 한국 최초의 뮤지컬 <견우직녀>도 만들었고, 이어 <콩쥐팥쥐> <견우직녀>의 후속작인 <은하수>도 만들었는데, <은하수>라는 작품이 반도가극단을 통해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구나.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 음악가였구나. 안기영은 조선 음악가 동맹 부위원장을 맞았고, 1947 8월 활동 금지를 당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월북을 했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하는구나. 안타깝구나.

조선 음악가 동맹에 또 한 명의 천재 음악가 김순남이 있었어. 1917년생인 그는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해방 후 조선 음악가 동맹에 가입했지만 좌익활동금지 조치로 숨어 지내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인민항쟁가>를 작곡했는데 좌익 단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인기를 얻었대. 한때 북한 국가를 대신하기도 했다는구나. 그가 음악 활동의 탄압을 받게 된 것은 현제명이 조선 음악가 동맹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미군청정 문화참사관(미국 사람인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구나.)이 우연히 김순남의 악보를 보게 되었고 반했다고 하는구나. 숨어 지내는 그를 찾아내라고 했고, 그의 부하가 김순남을 찾아냈대. 미군청정 문화참사관은 직접 그를 만나서, 그에게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 보내주겠다고 했어. 하지만 김순남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에게 미군차를 빌려달라고 했고, 그 미군차를 타고 월북을 했다는구나. , 이런 것도 기개라고 해야 하나.

북에서는 그를 대환영했고, 중요인사로 등용되었고, 그는 각종 음악을 작곡했어. 남에서는 숨어만 지냈는데 북에서는 그렇게 반겼으니 얼마나 신나서 음악을 했겠니. 거기에 모스크바로 음악 유학을 보내주기까지 했어. 그런데 갑자기 1953년 소환 명령이 떨어졌어. 1953년 북한은 서슬 퍼런 숙청이 있던 시기였는데 음악계 인사도 예외는 아니었지. 김순남 역시 남로당파였으니까다른 유학생들은 귀국하면 숙청당할 것을 알고 망명을 했는데, 김순남은 호기롭게 귀국을 했단다. 숙청당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는 법정 재판을 통해서 작곡금지령이 떨어지고 함경북도로 유배를 갔어. 처형 안 당한 것이 다행일 정도였지. 그 이후 그 천재 음악가의 삶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김순남처럼 남에서 쫓겨 북으로 갔다가 북에서 숙청을 당한 이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그들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였단다. 역사에서 그들의 기록은 한 줄도 없었어. 김순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안타까운 천재음악가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2.

시대를 쭉 뛰어넘어 이번에는 1980년대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이때 등장하는 이들은 아빠도 어렸을 때 들어본 가수들이구나. 1980년대 우리나라 가수 중 단 한 명을 뽑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똑 같은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구나.

조용필. 아직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진정한 가왕. 조용필은 1970년대에도 활동을 했지만, 유신정권에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찍혀서 대마초 사건 이후 가장 오랫동안 활동 금지를 당한 가수들 중에 한 명이었대. 박정희 정권에 사라지고 나서야 사면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당시 활동 금지 기간에 음악연습을 더 많이 하여 실력이 엄청 향상되었다고 하는구나. 만약 그 기간이 없었다면 1980년대 우리가 알고 있던 조용필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했어.

사면 이후 첫번째 앨범이 <창 밖의 여자>를 타이틀로 한 앨범인데 그야말로 싹쓸이를 했다는구나. 조용필은 첫 싱어송라이터라는 타이틀이 있었고, 그는 일인자였지만, 안주하지 않았고 동료 음악인들에게도 투자를 했대. 그와 함께 하는 밴드위대한 탄생에게 투자를 했고, 그 밴드를 운영하다 보니 부자도 못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당시 저작권에 대한 법적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서 그의 저작권료가 고스란히 앨범제작사로 들어가고 있었대.

그렇게 조용필에 우리나라에서 활개를 치고 있을 때, 미국과 전세계에서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가 평정하고 있었어 1980년대 들어서면서 MTV 출현과 Digital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CD의 출현. 이것과 발맞춰 비디오를 지향하는 화려한 춤 솜씨의 마이클 잭슨의 등장. 1982년 발매된 <스릴러> 앨범은 어마무시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단다. 아빠도 그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를 여럿 알고 있으니까앞서 이야기했듯 MTV를 타겟으로 뮤직비디오도 만들어 대박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스릴러> 뮤직비디오는 못 봤었어. 또는 봤지만 기억을 못하거나그래서 이번에 유투브를 통해서 봤는데 10분이 넘어가는 단편 공포 영화를 보는 듯했단다.

1980년대는 조용필과 마이클 잭슨이 이끌어가는 주류 음악뿐만 아니라 비주류 음악도 같이 공존을 했다고 하면서, 비주류 음악 세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단다. 외국에서는 펑크와 얼터너티브 락으로 이어졌고, 이들의 대표주자에는 아빠에게도 익숙한 U2, R.E.M, Nirvana 등이 소개되었단다. 그리고 우리나라 1980년대 비주류 음악에서는 학생들 중심의 운동가요 출신 가수들의 성장을 이야기했어. 아빠에게도 익숙한,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김광석, 안치환 등등그리고 락밴드도 크게 성행했던 것이 1980년대라고 했단다. 들국화를 필두로 많은 밴드들이 성행했던 1980년대다양한 음악이 공존했던 1980년대였어. 몇 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80년대의 음악을 다시 자주 들었을 때가 있는데, 여전히 촌스럽지 않고 기분 좋아지게 하는 음악이더구나. 아빠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소개된 1980년대 음악을 찾아 들어보면서 책을 읽었단다. 80년대 추억들이 소환되었단다. 음악의 힘은 대단해.

 

 

3.

20세기 클래식 음악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단다. 그나마 신()빈악파가 선전을 했지만, 쇠락의 길을 막을 수 없었어. 신빈악파 전에 빈악파가 있었어. 빈을 중심으로 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로 이름만 들어도 쟁쟁했던 이들이지. 그에 비해 신()빈악파는 쇤베르크, 안톤베베른, 알반베르크 등으로 쇤베르크를 제외하면 이름조차 낯선 이들이구나.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었어. 쇤베르크의 이야기 속에 그들이 추구했던 음악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단다.

쇤베르크가 이야기하기를, 지금까지가 평범한 시대였다면 우리 시대의 음악은 아주 달라야 한다고 했어. 그는 지금까지의 조성 체계를 족쇄로 생각하고 이를 파괴하는 무조성 체계의 음악을 추구했단다. 그렇다 보니 그의 음악은 일반인에게 난해했어. 일반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에 친숙해지기는 쉽지 않았어.

...

20세기에 들어서 디지털 음악이 유행하고, 음악을 쉽게 다운로드해서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클래식 산업은 크게 쇠락했다고 하는데, 지휘자로 잘 알려진 카라얀도 한 몫 했다고 하는구나. 그가 뭘 했냐고? 카라얀이 클래식 산업을 주도해서 베를린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와 2000장의 음반을 녹음을 했다는구나. 오호, 그러면 클래식 음악을 크게 성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가 녹음한 2000장의 음반이 모두 옛 고전 음악만 연주했고, 당대의 클래식음악은 녹음을 하지 않았대. 그렇다 보니 당대의 작곡가들은 어찌 보면 모차르트, 베토벤 등과 경쟁을 해야 했던 거야. 그렇게 20세기에는 클래식음악은 새로운 음악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어.

오페라도 마찬가지였단다.

.

 

 

4.

, 이제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아빠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뮤지컬의 환경은 척박했단다.. 하지만 최근에는 뮤지컬은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문화가 되었어. 너희들도 너희들을 위한 뮤지컬을 여러 편 봤었잖아. 그 뮤지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 그 뮤지컬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1600년 첫 오페라 <에우리디케>가 이탈리아에서 공연을 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오페라가 교향곡보다 늦게 출현한 줄 알았는데, 오페라가 먼저였다고 하는구나. 오페라의 분위기를 먼저 알려주려고 시작을 하면서 연주곡인 오페라의 서곡라는 것이 있는데, 이 서곡이 발전하여 교향곡이 되었대.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한 오페라는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고, 규모도 커지고 프랑스에서는 발레까지 접목한 형태가 나타났다고 했어.

오랫동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우리가 요즘도 즐겨는 듣는 아리아들과 서곡들을 비롯해 많은 음악들이 태어났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프랑스에서 기존 오페라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오페라코미크라는 장르가 생겨났고,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오페레타가 출현했다고 했어. 오페라에 비해 화려한 춤이 가미되었고 좀더 가볍다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아무튼 이런 오페라에서 조금씩 변형된 오페라코미크와 오페레타가 뮤지컬의 뿌리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구나.

오페레타는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해서 자크 오펜바흐라는 사람을 통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했어. 오펜바흐의 유명한 오페레타로 <지옥의 오르페우스>이 있단다. 이 오페레타에 삽입된 캉캉 춤곡이 유명한데, 들어보면 누구나 들어본 음악일 거야.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슬픈 사랑은 너무 극적이어서 오페라에서 많이 다루었다고 하는데,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에서는 조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는구나. 오르페우스가 사실 에우리디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래서 하데스가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던 것을 어긴 것도 사실은 일부러 그랬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대. 아빠는 <지옥의 오르페우스>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고, 한번 기회가 있으면 한번 보고 싶더구나.

지은이 강헌은 이 오페레타 이외에 슈트라우스2세의 <박쥐>라는 작품을 꼭 보라고 권했어. 실황으로 보면 좋겠지만, 영상을 찾아서 보라고 했어. 얼마나 재미있길래 보라고 하는지 꼭 보고 싶더구나.

이렇게 유행한 오페레타가 대서양 건너 미국에도 진출했어. 그리고 점점 진화를 거듭해서, 1927 <쇼보트>뮤지컬 플레이라고 하는 장르로 큰 성공을 거두었어. 드디어 장르 이름에뮤지컬이라는 용어가 들어갔구나. 하지만 이어진 대공황으로 뮤지컬의 성공은 단절이 될 위기에 처했어. 이 때 출현한 것이 뮤지컬 영화였단다.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뮤지컬 영화가 뮤지컬을 대신했던 거야. 그 첫번째 뮤지컬 영화가 <42번가>였다고 했어.

이 영화는 나중에 뮤지컬로도 재현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단다. 이렇게 뮤지컬보다 영화로 먼저 만들어져서 나중에 다시 뮤지컬로 성공한 작품들이 꽤 있다고 했어. 그 중에 또 대표적인 것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빠가 뮤지컬을 많이 보지 않았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들어봤어. 아무튼 요지는 그 전에 오페라의 불모지와 다름 없던 미국과 영국에서 오페라에서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뮤지컬이 크게 성공했다는 것이야.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웨스트엔드를 중심으로 뮤지컬은 크게 발전했다고 하는구나. 브로드웨이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사실 웨스트엔드도 뮤지컬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은 몰랐어. , 아빠가 뮤지컬에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 1980년대 뮤지컬 빅4라고 부르는 <캣츠>, <레미제라블>, <팬텀 오브 오페라>, <미스 사이공>가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이 뮤지컬들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공연되고 있어..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말이야. 그런데 이 4편 모두 캐머린 매킨토시라는 사람이 제작을 했대. ,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뮤지컬계의 스탠 리가 아닌가 싶구나.

우리나라의 뮤지컬의 역사는 어떨까. 앞서 조선 음악가 동맹을 이야기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안기영이라는 이가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다고 했잖아. <견우직녀>, <콩쥐팥쥐>, <은하수>를 만들었다고하지만 분단과 전쟁으로 뮤지컬은 맥이 끊겼다고 했어. 오히려 북한에서 피바다 가극단가 공연한 5대혁명가극이 유명해졌다고 했어. 유럽 순회 공연을 가질 정도였다는 구나. 이에 자극을 받은 남한에서 가극단예그린을 만들어 <살짜기 옵서예>라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워낙 뮤지컬이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국가의 지원이 끊어지자 더 이상 할 수 없었어.

그러다가 1990년대 서서히 뮤지컬의 시장이 넓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많은 뮤지컬 가수들이 등장하고 뮤지컬의 제작도 많아졌다고 했어. 그 붐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말이야. 하지만 아직 창작 뮤지컬은 너무 적다고 하는구나. 대부분이 외국 뮤지컬의 판권을 사와서 제작된다는 것이지.. 유능한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창작 뮤지컬만 나오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했어.

암튼 뮤지컬은 가장 늦게 등장했지만 가장 강력한 음악 장르가 되었고, 오페라를 역사 속으로 모셨다고 하는구나. 뮤지컬 킬 더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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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345)

하지만 가장 늦게 등장했음에도 뮤지컬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장르 혹은 상품이 되었으며 이 생명력은 앞으로도 굉장히 오래 이어질 것 같다. 그렇게 예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출발은 늦었으나 그 앞의 수많은 인류 예술사의 최선의 성과를 포섭하고 축적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이야말로 어쩌면 인류 예술사에 나타난 가장 순조로운 반전의 명예혁명 같은 것이 아닐까? 뮤지컬은 오페라를 학살하는 대신 조용히 유폐시켰고 오페라가 누려왔던 모든 것을 새 시대에 걸맞게 자신의 영역에 구축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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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전복과 반전의 순간 두번째 이야기란다. 음악과 음악가들 사이에 숨어 있는 에피소드들은 재미있는 것이 많은 것 같아. 그런 이야기를 알게 된 다음에 음악을 들으면 그 전과 달리 색다르게 들리기도 하더구나. 지은이 강헌님께서는 세번째 이야기를 출간해주셨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한국과 서구의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나에게 가장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는 대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책의 끝 문장 : 뮤지컬은 오페라를 학살하는 대신 조용히 유폐시켰고 오페라가 누려왔던 모든 것을 새 시대에 걸맞게 자신의 영역에 구축한 장르다.


(78)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음악가동맹’은 음악에서 기교나 기술보다는 민중과 함께하는 호흡을 중시했다. 그래서 치열한 역사를 쓰는 데 필요한 혁명가도 다수 작곡했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인 시로 노래나 가곡도 많이 만들었다. 조선음악가동맹이 특히 사랑한 시인은 김소월이었다. 소월의 시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의 울림을 안고 있다고 판단했고 최상의 음악적 언어로 표현해낼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민족음악일 것이라 생각했다. 김순남이 쓴 걸작 가곡 가운데 김소월의 시에 붙인 <산유화>가 있다. 다행히도 이 곡은 조수미가 부른 노래로 녹음이 되어 떳떳이 들을 수 있다.

(142)

나는 <빗 잇>의 맨 마지막 절 가사가 섬뜩하다. 이 노래가 나온 때는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의 시대였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를 도탄으로 몰아넣게 되는 신자유주의의 악령이 슬슬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하던 때다. 그런데 <빗 잇>은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외친다.

"지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어. 난 당신이 화려하고 강력한 투쟁력을, 싸움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옳고 그른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그냥 꺼져. 그냥 꺼지라고."

(254)

다만 중요한 사실은 서양음악사가 바로 쇤베르크에 이르러, 카라얀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말아먹기 전에, 이미 90년 전에 사실상 내면적 종말을 고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쇤베르크와 그 지지자들이 몸부림치면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 그 점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술사가 수많은 사례를 통해 동시대에는 공감되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이 수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어느새 너무나 당연하게 열광과 환호를 받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비밥도 그랬다. 비밥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왜 좋냐고 물으면 "그냥 좋던데요." 한다. 그 좋은 비밥 음악,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비밥 음악 중에 너무나 많은 곡이 놀랍게도 쇤베르크의 무조성주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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