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10)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게 그렇게 크게 고통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이다.

스무 살이 좀 지났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런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그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여러 번 뼈아픈 타격을 받고, 기만당하고, 오해받고, 또 동시에 많은 이상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30)

옛날 옛날에 아주 마음씨 착한 산양이 살고 있었단다.”

멋진 첫마디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씨가 착한 산양을 상상해 보았다.

산양은 항상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걸고 헉헉거리면서 돌아다녔지. 그런데 그 시계는 너무 무거운 데다가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도 않았어. 그래서 친구인 토끼는 이렇게 물었지. ‘이봐, 산양, 왜 자네는 가지도 않는 시계를 늘 목에 매달고 다니는 건가? 무겁기만 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걸 말이야.’ 산양은 그야 물론 무겁지. 하지만 익숙해졌거든. 시계가 무거운 것에도, 움직이지 않는 거에도 말이야하고 대답했지.”

(62)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고 3번도.”

그녀는 잠자코 이번에는 두 장의 LP를 들고 돌아왔다.

글렌 굴드와 박하우스, 어느 쪽이 좋아?”

글렌 굴드.”

(116-117)

어떤 신문 기자가 인터뷰 중에 하트필드에게 물었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 월드는 화성에서 두 번 죽고, 금성에서 한 번 죽었습니다. 이건 모순 아닙니까?”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우주 공간에서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알고 있나?”

아뇨,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도 모릅니다.”

기자의 말에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걸 소설에 쓴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123)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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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9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에 울집 강아지 ‘막둥이’가 대여해온 책을 갈기갈기 찢은 책입니다 ㅋㅋㅋ

bookholic 2018-12-19 22:24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그의 데뷔작이라고 하는 소설을 한번 읽어봤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두어 권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들도 하루키를 좋아하는군요..^^

카알벨루치 2018-12-19 22:34   좋아요 1 | URL
그노무 시키는 제 첨이자 마지막 강아지였습니다

하루키를 젊을땐 맹목적으로 좋아했는데 <쾌락독서>를 읽으면서 하루키에 대해 재고해보기도 하고 ...문유석 판사의 생각도 보게 되고,

하루키의 다른 소설은 몰라도 <기사단장죽이기>의 집필동기나 의도는 그냥 너무 탁월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더 좋아하게 되는데, 하루키 자신도 자신의 소설들의 어떤 목적이나 이유를 생각치않고 막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마치 오늘 제가 막 읽은 김중혁의 <나는 농담이다>처럼, 농담처럼 소설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시간의 검증이 지난후에 하루키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는 모르겠네요 노벨문학상 후보 운운하는 <기사단장죽이기>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두서가 없네요 암튼 결론은 열독을 응원합니다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19 22:53   좋아요 1 | URL
아참, 서재의 달인 되신거 축하인사 못 드렸네요 ㅎㅎ 축하합니다 ^^

bookholic 2018-12-19 23:22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서재의 달인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카알베루치님의 글도 잘 쓰시지만,
편집이 유명 잡지보다도 뛰어나십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연말연시 되십시오~~~

카알벨루치 2018-12-19 23:34   좋아요 1 | URL
못 볼꺼 다 보고 계시군요 ^^감사합니다 그 찬사 잊지 않겠습니다 황송합니다요~

서니데이 2018-12-19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bookholic 2018-12-19 22:27   좋아요 1 | URL
앗....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저에게 큰 힐링이 되어주는 곳이라 자주 왔을 뿐인데 ‘서재의 달인‘이라는 칭호까지 주었네요...^^
서니데이님의 디테일하며 파스텔톤의 글들도 저에게 큰 힐링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더불어 서니데니님도 서재의 달인이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