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3 -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3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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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원재 님의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가 새로 나왔단다. 지난 <방구석 미술관> 1권과 2권을 재미있게 읽고 지은이 조원재 님의 다른 책도 찾아 읽었는데, <방구석 미술관> 3권이 새로 출간되어 기뻤단다. 1권에서는 서양 화가들을, 2권에서는 한국 화가들을 이야기해주었는데, 3권에서는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단다. 현대미술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장르로, 감상하는 사람이 그 의미를 찾아 해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단다.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도 제각각이고 말이지. 정답이 없다는 것이 서양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과적 감성으로 충만한 아빠는 그런 서양미술은 크게 관심이 없단다.

이 책에는 여섯 명의 미술가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네 명은 알고 있는 사람이고, 두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란다. 이 여섯 명 중에 그래도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아빠는 단연코 살바도르 달리를 뽑겠다. 인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품만으로 뽑은 것이란다. 살바도르 달리는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사실적인 그림을 고의적으로 비틀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신비감이 가득한 그림을 그렸거든. 물론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작가들도 모두 포함하라고 하면, 달리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잘 모르겠구나. 다른 미술가들도 물론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지만 아빠의 취향은 아닌 것 같구나.

 

1.

첫 번째 소개된 작가는 미술작품을 보면 화가를 곧바로 알 수 있는 몬드리안이란다.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화가 중에 한 명이지.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사람인데, 아버지는 부업으로 석판화를 제작했고, 어린 몬드리안은 그 일을 도와주었단다. 삼촌도 화가였기 때문에 몬드리안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접할 수 있었고, 그림, 특히 풍경화에 빠져 살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모더니즘 미술이 유행을 해서, 몬드리안도 모더니즘 미술가인 뭉크와 마티스의 영향을 받았대. 그리고 이후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을 접하고 그림을 입체주의와 다시 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만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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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렇습니다. 그림을 꼭 사진 찍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려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있을까요? 그 고정관념을 제거하면, 그림은 평면 위에 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이 됩니다. 이렇게 유럽의 회화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벗어납니다. ,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화가가 더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것이 피카소와 브라크가 20세기 초에 활짝 연 현대미술 혁명의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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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몬드리안도 자신이 그려야 할 그림은 추상주의와 입체주의라고 생각을 하고, 그의 그림은 점점 추상적으로 진화해 갔어. 당시 파리에서 약 2년간 그림을 공부하고 그렸는데, 1914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네덜란드로 돌아왔단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 동안 네달란드에서 입체주의 그림의 연구해서 그의 그림은 점점 발전, 아니 진화하게 되었단다. 1919년 다시 파리로 돌아왔는데, 피카소 등 파리의 화가들의 그림은 여전히 5년 전의 그림에 머무르고 있었고, 몬드리안은 이제 그들을 벗어나서 자시만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니, 그 그림들이 요즘에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파랑, 빨강, 노랑 등 원색 위주의 단순화된 사각형 그림들이란다. 누구나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런 독창적인 그림을 처음 그리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어야겠구나.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단다. 살바도르는 구현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대. 달리는 어려서부터 괴짜로 엽기적인 장난도 많이 했다는구나. 대학에 가서도 거만하고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시험 보기를 거절해서 퇴학 당하기도 했대. 괴팍한 천재 기질을 보였나 보구나. 그림도 인상주의, 입체주의 등을 따라 그렸는데 그 실력이 대단했어. 그러다가도 어느 때는 사실적인 고전풍의 그림도 그렸는데, 진짜처럼 정말 잘 그렸단다. 그러다가 프로이트의 무의식 사상을 영향을 받고, 그림도 무의식이나 꿈을 그려내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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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29)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폭발 이미지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은 달리. 이제 달리의 관심사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원자의 세계가 되었죠. 그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 속 세계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흥분합니다. 그는 물질세계의 본질을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이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에 있다고 여기며 원자물리학, 양자역학 공부에 빠져듭니다. 프로이트보다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을 신봉하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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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도 난해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다른 현대 미술가들과 달리 달리는 고전주의를 지키면서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시계를 흐물흐물하게 그린 <기억의 지속> 같은 작품이 그의 미술 세계를 나타내는 좋은 작품이었어.

달리는 사랑도 범상치 않게 했단다. 친구의 부인 갈라와 사랑에 빠져 둘은 파리로 도망을 갔단다. 파리 남부 시골 마을에 오두막에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갔어. 달리는 그림에만 전념하고 갈라는 돈을 벌어와서 달리를 지원했단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드디어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었어. 전시회에서 미국의 화상 줄리앙 레비가 그의 작품을 눈 여겨보고 미국에 소개를 했어. 그러면서 미국에서 포텐이 완전히 터져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단다. 1934년 그의 조국 스페인의 국내 상황이 좋지 않아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지내다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이후에는 미국에서 지냈단다.

달리와 갈라는 엄청난 돈을 벌여들였는데, 달리는 돈을 엄청 밝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어. 갈라도 옛 가난한 시절은 다 잊고 사치의 대명사가 되었단다. 전쟁이 끝나서 스페인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스페인은 내전이 끝나고 프랭코 군사 독재 시절이었어. 달리는 독재를 지지한다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어. 갈라도 젊은 남자들과 바람을 피는 등 달리와 갈라의 불화는 심해졌단다. 그의 작품은 훌륭하나 그의 인성과 삶의 태도는 본받지 못하겠구나.

 

2.

세 번째 소개한 미술가는 알베르토 자코메티라는 스위스 사람인데, 미술에 문외한인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이야. 현대 미술의 입체주의를 조각에 적용시켰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는 그의 관한 글을 읽어보고, 책에 실린 그의 작품들을 봤지만 그 작품들이 왜 훌륭한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단다. 조각 작품이니 사진이 아닌 공간에서 실제로 보면 좀 이해하려나?

네 번째 미술가는 그 유명한 잭슨 폴록이란다. 그의 그림 또한 아빠는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구나. 아빠의 관점에서 그의 훌륭한 점이라고 하면, 그림이라는 것이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물감을 뿌려서도 그릴 수 있다는 창의성을 보였다는 점 정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의 창의적인 작품보다 그가 망나니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구나. 망나니라는 표현은 아빠가 한 것이 아니고, 지은이가 표현한 것인데 그 사례를 들어주었는데, 정말 망나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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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제가 현대미술사에 기록되는 위대한예술가를 망나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아마 고개가 끄덕여질 겁니다. (정말 쓸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잭슨 폴록의 진짜 면모를 허례허식 없이 전하기 위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보자면, 폴록은 자신을 아껴준 스승 벤턴의 아내 리카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한술 더 떠 25세 폴록은 술에 찌든 상태로 리타로 찾아가 청혼까지 하지만 리카는 거절하죠. 그녀의 거절에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폴록은 벤턴을 찾아가 빌어먹을 놈, 내가 너보다 더 유명해지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기록하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과 인간성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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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중에 괴짜 DNA를 가지고 있는 들이 간혹 있는데, 잭슨 폴록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구나. 성공한 이후에 그에게는 겸손이라는 것은 없고 자만만 가득 차 있었단다. 거기에 알코올중독자도 유명해져 나중에는 미술계에서도 몰락의 길을 걷고 그의 작품들에도 혹평이 쏟아지게 되었단다. 폴록이 성공하는데 많은 도움으로 주고 지지했던 아내 크래스너도 결국 폴록을 떠났단다. 폴록은 결국 술 먹고 난폭 운전을 하다가 나무를 들이박고 죽고 말았단다. 그의 나이 고작 44세였단다. 미술에서 큰 성공이 결국 그를 일찍 가게 한 것 같구나. 그의 창의성만 높이 사야겠구나.

다섯 번째 미술가는 마크 로스코라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장르를 하는 사람이란다.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본명은 마르쿠스 코스코비치인데, 미국으로 건너와 크게 성공을 하게 된단다. 그런데 그 또한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해줄지 걱정이라고 했대. 그래도 걱정은 해주셨네. 아빠도 그의 작품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마크 로스코는 우울증을 앓게 되어 나이 들수록 색채가 점점 어두워졌다고 하는구나. 당시 미국의 미술계는 밝은 계통의 팝아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어두워진 로스코의 작품들은 점점 인기가 시들어졌어. 결국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은 안타까운 삶이로구나.

마지막 여섯 번째 미술가는 앤디 워홀이란다. 앞서 이야기한 팝아트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지. 체코 이미자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빈민가에서 힘들게 지냈단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지원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어. 앤디 워홀은 만화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것도 과연 미술작품이 될 수 있냐는 논란을 만들었대. 그런데 이렇게 만화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 워홀이 처음이 아니고, 리히텐슈타인이 먼저 시도를 했다는구나.

그래서 워홀은 또 다른 것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일명 복붙이란다. 복사해서 붙여 넣는 기법인데, 그런 반복 속에 조금씩 다름으로 가미하는 거야. 그냥 모든 것을 똑같이 복사했다면 작품이라고 하기 뭐할 텐데, 워홀은 그런 반복 속의 조금의 다름을 추가하였단다. 그렇게 생겨난 작품들이 워홀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품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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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면, ‘복제의 시대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미디어에서 텍스트, 이미지, 영상이 무한히 반복적으로 복제되고 있고, 이제는 그 영향이 오프라인까지 범람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본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죠. 이런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일찍이) 1960년대에 예리하게 간파해 예술에 절묘하게 녹인 예술가가 바로 앤디 워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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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감독으로도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 또한 범상치 않은 영화들이었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런닝 타임 5시간 21분 동안 잠자는 모습만 보여주는 <>이라는 영화를 비롯하여 <이발>, <먹기>, <키스>라는 작품들 남겼다고 하는구나. <> 이외에 작품들도 제목에 나오는 행위로 런닝 타임을 채웠다고 하는구나. 이 정도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라면 인정해야겠구나. 그는 망상에 빠진 솔라니스라는 여성에게 총격을 당하여 사망진단까지 받은 적이 있어. 그런데 의사들은 그가 앤디 워홀이라는 것을 알고 5시간 동안 큰 수술 끝에 살려냈다고 하는구나. 이후 앤디 워홀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잡지사, TV 프로그램에서 많은 활동을 했대. 하지만 총격 사건의 후유증으로 58세에 삶을 마감했단다. 아빠가 오늘 독서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 책에 소개된 미술가 중에 한 명을 뽑으라고 하면 달리를 뽑겠다고 했는데, 한 명 더 뽑으라고 하면 워홀을 뽑을 것 같구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미술의 영역을 더욱 넓힌 것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아빠는 미술에 완벽한 문외한이란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고, 감상할 줄도 모른단다. 그런 아빠가 당대 손꼽히는 미술가를 논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지만, 너희들에게는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았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피카소까지는 알겠다.

책의 끝 문장: ‘예술가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추상미술 앞에서 난해함을 느끼며 갸우뚱할지라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미 추상적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상품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우리는 그 추상적 이미지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주변의 모든 건축물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을 무척 좋아하고, 심지어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있죠. 21세기에 와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미적 취향이 된 ‘기하학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에 숨겨져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미적 매력을 누구보다 앞서 또렷이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갖췄던 사람.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떳떳이 예술가. 그가 바로 몬드리안입니다. - P18

그렇다면, 몬드리안은 고작 십자 모양(+)으로 어떻게 미의 진리를 회화에 표현한 것일까? 그는 하얀 캔버스 평면 위에 ‘여러 개’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직각 대립시켜 그렸을 때 ‘자연스럽게’ 사각형 평명(ㅁ)이 생성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직선과 수평선을 많이 사용할수록 사각형 평면(ㅁ)의 수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불어, 그 사각형 평면들이 놓인 ‘위치’와 ‘크기’ 모두 제각각임을 발견합니다. 몬드리안 화면 전체에 평형상태를 만들기 위해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사각형 평면(ㅁ)의 ‘위치 관계’와 ‘크기 관계’를 조율합니다. 그 목적은 캔버스 화면 전체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각형 평면(ㅁ)에 빨강, 파랑, 노랑, 흰색, 회색 등을 채워 ‘사각형 색 평면’을 만들어 ‘색채 관계’를 조율합니다. - P69

수업이 트렌드에 매우 뒤처져 있다고 여긴 달리가 대학 울타리 안에서 고분고분할 리 만무했습니다. 교수보다 전위적이며 다른 학생보다 훨씬 뛰어난 그림을 그린다고 자신한 나르시시스트 달리는 반바지에 망토를 걸치고 다니며 괴짜 짓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신임 교수 취임식에서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취임식장을 박차고 나사 1년 정학 처분을 받습니다. 그 이후에도 괴짜 기질을 참지 못한 달리는 대학 미술사 시험 도중 심사위원인 교수들에게 "심사위원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내가 더 똑똑하고, 주어진 문제를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사받기를 거부"한다고 말하며 퇴학당합니다. 이렇게 착실히 학교 다녀 교수가 되리라 믿은 달리 아버지의 꿈은 산산조각이 됩니다. - P89

세상이 돕는 이런 긍정적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체면을 차리고 작업도 더욱 열심히 할 만했지만, 우리의 폴록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벽화> 작업으로 창작의 고통을 느낀 것이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되었는지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난폭함은 점점 커져만 갔죠. 만취해 술집의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건 기본.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예삿일. 급기야 술집에서 폴록의 출입을 제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렇게 뉴욕 술집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는 눈이 오면 취한 채 도로를 나뒹굴며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눈 위에 오줌을 흩뿌리며 전 세계에 오줌을 싸겠다고 고성방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보통 망나니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위대한 예술가상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 P227

"내가 젊은 청년이었을 때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었습니다. 갤러리도, 수집가도, 평론가도,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황금기였습니다. 우리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대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연설. 모든 것을 가졌기에 잃을 일만 남아서일까?" 66세의 로스코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비전만이 찬란히 넘쳐흐르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심리 속 로스코의 내면에 남겨진 색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검정과 회색뿐이었습니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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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외계 문명이 본다면 아마도 의아할 것이다. 저것들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어디로 가지도 않고, 왜 맴돌기만 하는 거야? 모든 질문의 답은 지구다. 지구는 환희에 찬 연인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구가 잠들었다 깨어나고 자기 버릇에 푹 빠져 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지구는 이야기와 기쁨과 그리움을 잔뜩 안고서 아이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다. 이들은 뼈의 밀도가 조금 낮아지고 팔다리가 조금 가늘어진다. 눈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광경들이 가득하다.


(24-25)

몽골이나 러시아 동쪽 끝 황무지에 사는 사람이라거나 이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누구도, 싸늘한 오후인 지금 비행기가 다니는 길보다도 더 높은 하늘에 우주선 한 대가 지나고 있으며, 거기 타 있는 인간이 무중력의 유혹에 굴복해 근육을 잃지 않기 위해, 새처럼 떠다니며 뼈를 다 소실하지 않기 위해 다리 힘으로 열심히 리프트 바를 들어 올리고 있다고는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렇게 힘쓰지 않으면 가엾은 우주여행자는 지구로 되돌아가 다리라는 게 다시 중요해졌을 때 온갖 문제를 겪게 된다. 열심히 들어 올리고 땀을 흘리고 밀어내지 않으면, 재진입할 때의 맹렬한 열기와 충격은 이겨 내더라도 캡슐에서 내릴 때는 한 마리 종이학처럼 맥을 못 춰 끌어내려질 것이다.


(26)

이들은 우주가 날짜 감각을 없애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우주는 말한다. 날이 대체 뭔데? 스물네 시간의 하루를 지키려 하고, 지상 근무원들도 계속해서 그 점을 일깨워 주지만, 우주는 스물네 시간을 열여섯 번의 낮과 밤으로 돌려준다. 그래도 이들은 악착같이 스물네 시간을 산다. 시간에 매여 사는 허약하고 작은 몸이 아는 게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에 맞춰 잠을 자고 변을 누고, 모든 게 거기 묶여 있다. 하지만 첫 주가 지나기도 전에 마음은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 하루 개념이 없는 기이한 영역으로 풀려나가 질주하는 지평선 위를 타고 넘는다. 분명히 낮인데 밀밭에 몰려드는 먹구름처럼 밤이 찾아오는 것을 본다. 그러다 45분이 지나면 또 낮이 찾아와 태평양이 깔린다. 과거에 생각했던 전혀 다른 세상이다.


(49-50)

우주에서 6새월을 보내고 나면 엄밀히 말해 지구에 있는 사람보다 0.007초 덜 늙는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5, 10년은 더 늙는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이해할 따름이다. 시력이 약해지고 뼈가 삭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도 근육이 위축될 것이다. 피가 엉기고 뇌액의 흐름이 달라진다. 척추가 늘어나고 T세포는 재생에 애를 먹는다. 신장 결석이 생긴다. 이곳에서는 입맛도 잘 돌지 않는다. 부비강은 죽을 맛이다. 고유감각이 흐려져 눈으로 보지 않고는 신체 부위가 어디 달렸나 알기 힘들다. 몸이 이상하게 생긴 체액 자루가 된다. 체액이 상체에는 너무 쏠리고 하체에는 부족해진다. 안구 뒤쪽에도 몰려 시신경을 압박한다. 수면이 반란을 일으킨다. 장내미생물군이 새로운 박테리아를 키운다. 암 발병 위험이 올라간다.


(50-51)

가끔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지우고, 저 행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저 행성은 무척이나 장대하며 위엄 있고 당당하다. 신이 왈츠를 추는 우주 한복판에다 저 행성을 떨어트린 것이라고, 자꾸만 믿고 싶어진다. 앞선 인류가 (발견 이후의 부정, 그 후의 발견과 은폐의 길을 위청이고 더듬거리며) 발견한, 지구는 그저 무()의 중심에 놓인 하찮은 반점에 불과하다는 진실도 죄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보잘것없는 게 저렇게 빛날 수 없어. 멀리 던져진 별 볼 일 없는 위성이 구태여 저런 장관을 만들어 내고, 쓸데없는 돌덩이가 균류와 인간 정신처럼 복잡한 것들을 조율할 리 없어.


(57)

50년 넘도록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곳, 우리의 달은 인간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리운 마음에 지구를 향해 밝은 면을 내보이고 있는 걸까? 우리의 달 그리고 다른 모든 달과 행성과 태양계와 은하계도 알려지기를 갈망하고 있을까? 떠난 지 사흘이 채 되지 않은 내일이 오면, 이 이상한 집착에 사로잡힌 인간 존재들이 가루로 덮인 달 표면에 귀환할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세상에 나부끼는 깃발을 꽂고 싶어 하는 존재들, 집요한 마시멜로들, 두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선원들은 자기네 깃대가 쓰러지고 성조기가 해진 것을 발견하리라. 50년 동안 자리를 비우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세상은 당신 없이 계속 돌아간다. 우주비행사 네 명은 그렇게 해변 막사에서 잠을 청했다. 눈을 뜨면 새 시대가 도래하리란 것을 알고서.


(77-78)

콜린스가 촬영한 사진 속 달 착륙선에는 암스트롱과 올드린과 타 있다. 착륙선 바로 뒤에 달이 있고 25만 마일 위에는 푸른 반구 모양의 지구가 인류를 품고서 깜깜한 암흑 속에 떠 있다. 사진에서 빠진 인간은 마이클 콜린스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그게 이 사진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였다. 인류가 아는 한 현존하는 모든 인간이 빠짐없이 들어 있는 사진에 정작 그걸 촬영한 사람만 빠져 있다는 것이.


(112-113)

그리고 우리는? 우리는 하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재사용하고 공유한다. 우리는 갈라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그럴 수 없으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오줌을 재활용해 마신다. 서로가 뱉은 숨을 재활용해 숨 쉰다.


(125)

처음에 이들은 밤 풍경에 매료되었다. 화려한 도시 불빛을 외피에 두른 지구는 인간이 만든 것들 것 황홀하게 빛난다. 도시 태피스트리가 두껍게 수놓인 밤의 지구는 또렷하고 선명하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유럽 해안지대에는 1마일이 멀다 하고 사람이 산다. 유럽 대륙 전체가 도시 별자리들과 황금빛 도로 실들로 아주 정교하게 엮여 윤곽을 드러낸다. 황금 실들은 눈이 내려 가의 언제나 회청색으로 보이는 알프스산맥까지 누빈다.


(128)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욕망이 싹튼다. 이토록 거대하면서 작디작은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욕망. 아니 (열정이 추동하는) 요구. 이렇게나 기적 같으면서 별나게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대안이 마땅치 않으므로 지구는 의심할 여지없는 집이다. 무한한 공간, 충격적일 만큼 환히 빛나며 우주에 떠 있는 보석. 인간들이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순 없는 걸까? 지구와도 잘 지내면 안 되나? 이건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라 다급한 요구다. 우리 삶이 달린 유일한 세상을 탄압하고 파괴하고 약탈하고 낭비하는 짓을 멈출 순 없을까? 그러나 이들도 뉴스를 보고, 이미 세상을 살아 봤다. 희망을 품는다고 순진해지진 않는다. 그러면 뭘 하지? 어떤 실천을 해야 하지? 말해 봤자 소용 있을까? 이들은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들이다. 그건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129-130)

그러다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 이들은 지구를 보다가 진실을 마주한다. 정치가 정말로 촌극인 게 아닌가. 정치는 그저 터무니없고 어리석고 가끔은 정신 나간 쇼일 뿐이며, 그걸 제공하는 인물들은 어느 구석이라도 혁명적이거나 혜안이 깊거나 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세고 과시에 능하고 뻔뻔하게 권력 싸움을 갈망했기에 그 자리까지 오른 자들 아닌가.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해 여기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은 정치가 촌극이 아님을, 촌극에만 그치지 않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정치는 아주 거대한 힘이어서, 우주에서 봤을 때는 인간의 힘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지상의 모든 것을 일일이 다 결정지었다.


(132)

인간의 욕망이라는 실로 놀라운 힘이 지구를 형성한다. 그 힘이 모든 걸 바꿨다. , 극지방, 저수지, 빙하, , 바다, , 해안선, 하늘을, 욕망에 따라 윤곽이 그려지고 조경된 행성을.


(170)

빛나는 서구 자본주의가 꿈꾸는 우주 같은 건 여기 없다. 이곳은 불굴의 공학 기술과 천재적인 실용주의를 숭배하는, 칙칙하고 효용을 중시하는 육중한 사원이다. 소련 붕괴 후에 살아남은 타임캡슐, 지나간 세기의 마지막 메아리다. 이곳을 집처럼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가 바닥이고 여기가 천장이고 이렇게 서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정하면서, 위아래와 좌우 구분이 사라진 다른 모듈들을 지배하는 우주 공간의 우주다움을 무력화하려고 해 봤다. 그러나 아늑해지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벨크로가 붙은 벽과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케이블과 침침하게 깜박이는 불빛은 아늑해질 수 없다. 결국 이곳은 도래한 우주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한 집도 아니며 그저 지하 벙커에 가깝다. 편안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끝내 실패했지만 그래도 이들은 애지중지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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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이야기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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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피츠제럴드라는 작가가 있단다. 풀네임을 다 이야기하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몇 년 전에 너희들과 함께 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우리들이 좋아하는 배우 톰 히들스턴이 연기한 사람이 바로 피츠제럴드란다. 피츠제럴드의 사진을 보면 영화 속에서 톰 히들스턴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의 대표작은 누가 뭐라 해도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이란다. 이 소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하단다. <위대한 개츠비>란 소설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그의 다른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그의 작품 중 또 유명한 소설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것도 오래 전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유명해졌던 것 같다.

아빠도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위 두 작품만 읽었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작년에 신간 코너에 예쁜 책표지의 책을 살펴 보다가 지은이가 피츠제럴드인 것을 보았지. 이래서 책 디자인이 중요하다니까지은이가 피츠제럴드인 것을 보고, 책 소개를 보았고, 이제서야 읽게 되었구나.

책의 제목은 <바질 이야기> 책 소개를 보면 연작 소설이라고 나온단다. 총 아홉 편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작품 <그런 파티>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인공이 바질이고 이야기도 어느 정도 이어진단다. 그래서 <그런 파티>만 제외한다면 그냥 장편 소설이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단다. 10대 청소년인 바질이 주인공이라서, 아빠와 같은 아저씨가 읽으면 추억을 돋게 만들고, 너희가 읽으면 10대의 감성을 공감할 수 있을까? 소설의 배경이 지난 세기 중반의 이야기이고, 미국이라는 공간도 달라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너희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구나. 그래도 사춘기 들어서면서 사랑이라는 감정도 생겨나는 이야기들은 너희들도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첫 번째 작품 <그런 파티>는 열한 살 테런스 R. 팁턴이라는 아이가 이제 막 이성과 사랑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 돌리 바틀릿을 만나기 위해 테런스는 친구 조와 함께 파티를 주최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결국 돌리의 초대를 받게 된다는 짧은 이야기인데, 이제 막 사랑의 감정을 알게 되는 순수한 십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단다.

두 번째 소설 <스캔들 명탐정>부터는 바질이 주인공으로 소설들이란다. 바질 듀크 리는 열네 살이고, 리플리 버크너와 친구 사이란다. 둘은 세상의 가십거리와 스캔들을 모아 책을 만들었어. 나름 비밀스러운 책이므로 투명 잉크를 사용해서 글을 썼단다. 바질은 이모진 비슬이라는 여자 아이를 짝사랑했는데, 이모진도 바질을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어. 하지만 이모진 비슬은 다른 여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휴버트 블레이어를 가장 좋아했단다. 휴버트가 이모진에 접근하자 바로 이모진은 휴버트에게 마음이 기울어졌어. 질투심에 바질은 친구들과 함께 휴버트를 괴롭히려고 했지만, 오히려 휴버트에게 영웅담만 생겨나게 되었단다.

<박람회에서의 하룻밤>에서는 바질과 리플리가 박람회 구경을 가게 된단다. 그곳에서 친구 엘우드 리빙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엘우드가 여자를 꼬셔보자는 제안을 하여 그들은 여자애들 무리와 어울리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바질만 짝을 만들지 못했어. 리플리와 엘우드는 짝을 만들어 함께 놀고 있는데, 그곳에 또다시 휴버트가 등장하여 잘생긴 얼굴로 그들의 연애를 방해하게 된단다.

<풋내기>에서는 시간이 좀 흘러 바질은 고향을 떠나 세인트 레지스 스쿨 기숙학교에 입학을 했어. 그 학교는 부잣집 애들이 주로 오는 학교인데, 바질은 집에서 좀 무리를 해서 보낸 것이야. 낯선 동네, 낯선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바질은 독재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고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등 쉽지 않은 학교 생활을 했어.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적응해 갔단다. 시간은 우리 편.

<걔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알아>에서는 바질이 세인트 레지스 스쿨에서 1년을 마치고 잠시 고향에 돌아온 이야기란다. 1년 사이에 친구들도 많이 많이 변했고, 사랑과 시기가 피어올랐어. 그리고 1년 만에 본 바질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친구들이 있어. 바질에게 걔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안다는 소문이 퍼져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어.

<포로가 된 새도>에서는 바질이 고향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하는 이야기란다. 바질이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을 하는데, 연극에 배우로 출현하는 친구들과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연극이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친구들과 갈등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단다.

<완벽한 인생>에서는 다시 세인트 레시즈 스쿨로 돌아와 2년차를 보내는 이야기야. 미식 축구를 하였는데 바질은 쿼터 백 역할을 맡았어. 아빠는 미식 축구를 잘 모르지만, 쿼터 백은 공을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잘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포지션으로 알고 있어. 그런 쿼터 백으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바질은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어느날 졸업 선배가 학교에 찾아와서 완벽한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는데, 바질은 그 조언에 감명 받아 실천하기로 했어. 그런데 그 완벽한 인생이라는 것이 청교도적 윤리 사상으로, 술도 먹지 말고, 담배도 피지 말고 키스도 하면 안 된다는 그런 내용으로, 너무 범생 같은 행동지침이었단다. 이제 친구들과 친해졌는데, 자칫 다시 멀어질 수 있는 그런 행동지침들. 바질은 추수감사절에 친구 조지의 집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는데, 조지의 여동생 조베나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조지는 조베나에게 자신의 완벽한 인생을 살려고 한다면서 조베나에게도 조언을 해주었어. 조베나는 바질이 재수 없고, 답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내 그럴 줄 알았지. 바질도 이내 깨닫고 술 먹고 조베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면서 해피 엔딩.

<전진하다>에서는바질의 외삼촌의 사업이 잘 안 되는 일로 시작한단다. 외삼촌의 사업에 바질의 엄마도 투자를 했는데, 엄마도 투자금을 잃게 생겼어. 그래서 바질의 예일대 입학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단다. 바질도 일자리를 구해보지만 쉽지 않았어. 바질은 용기를 내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한 동안 안 하고 지낸 종조부까지 찾아가서 일자리를 부탁했단다. 종조부는 바질에게 일자리를 주긴 했지만, 공짜는 아니었단다. 종조부가 젊은 여자와 재혼했는데, 그 여자는 이전에 결혼한 사람과 낳은 딸이 있었고, 그 딸과 주기적으로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거야. 어쩔 수 없이 그 딸을 만나는데, 바질은 당시 미니라는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단다. 돈 벌기 쉽지 않구나. 그런데 얼마 후 다행히 외삼촌의 사업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어 바질은 종조부의 일을 그만 두고 억지 데이트도 그만 둘 수 있었단다.

<바질과 클레오파트라>에서는바질이 한 달 만에 미니를 다시 만났는데,  어째, 분위기가 싸했단다. 미니가 다른 남자를 사귀는 것 같았단다. 그래, 사랑은 무슨, 공부나 하자. 바질은 예일대에 입학을 하게 되고, 여전히 미식 축구를 했어. 쿼터 백 후보로 경기에 참가했는데, 주전 쿼터 백이 부상을 당해 대신 경기에 참석했는데, 바질이 활약을 해서 프린스턴 대학교와 싸워서 이겼단다. 경기가 끝나고 파티를 열었는데, 우연히 미니를 만나고 미니는 바질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바질은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녀에게서 마음을 거두었단다. 백 점짜리 복수. 바질은 그렇게 또 자라는구나.

책은 이렇게 마무리된단다. 십 대 소년의 성장 드라마를 한 편 보는 것 같은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의 십대 생각도 떠오르더구나.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추억을 자꾸 들추면 늙은 것이라고 하는데, 떠오르는 옛 생각을 누르고 싶지 않구나.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했어. 너희들도 지금 한 편의 소설을 만들며 십대를 보내는 있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그 소설은 해피 엔딩뿐만 아니라 시작과 중간도 해피로 가득 차면 좋겠구나. 소설이 조금이 재미없더라도 말이야…^^ 피츠제럴드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다.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파티가 끝난 후 도도한 스티븐스 두리에이 한 대와 1909년형 맥스웰 두 대가 빅토리아 한 대와 함께 도롯가에 대기 중이었다.

책의 끝 문장: 비할 데 없이 찬란하고 장엄한 광경 앞에, 사령관의 노련한 눈만이 그곳에서 하나의 별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오랜 전통처럼 사내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개념에 집착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제약을 이따금 푸념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소년으로 지내는 것이 마냥 좋은 시절도 오랜 기간 존재하는데, 그 만족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된다. 바질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에게 긴 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긴 바지가 갖고 싶긴 했지만, 의상으로 따지자면 풋볼 유니폼이나 경찰 제복, 심지어 밤에 뉴욕 거리를 누비는 괴도 신사들의 실크해트와 긴 망토만큼의 낭만도 없었다. - P63

열다섯 살은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손가락을 딱 짚으며 "그땐 이랬었지"라도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우울한 제이퀴즈는 열다섯 살을 언급하지 않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곤 소년기의 한창인 열세 살과 일종의 가짜 청년인 열일곱 살 사이의 언젠가, 두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면서 생소한 경험들로 끊임없이 떠밀리고 어떤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려 헛되이 몸부림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다행히도 그 시절에 우리가 어떻게 처신했는지는 우리 자신도 또래들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해 여름 바질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커튼을 걷어보려 한다. - P112

구제 불능의 주벌이 소유욕을 내뿜으며 다가오자, 바질의 심장은 분홍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을 이리저리 배회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우유부단함의 안개에 갇혀버린 바질은 베란다로 나갔다. 때 이른 눈이 대기에 흩뿌려지고 있었고, 별들은 차가워 보였다. 별들을 올려다본 언제나처럼 그의 별들, 야망과 고투와 영광의 상징들이 보였다. 별들 사이로 바람은 그가 항상 귀 기울여 찾던 높은 원음(原音)을 나팔 소리처럼 울렸고, 전투를 위해 찢겨 가늘게 흩어진 구름은 열병식을 거행하며 지나갔다. 비할 데 없이 찬란하고 장엄한 광경 앞에, 사령관의 노련한 눈만이 그곳에서 하나의 별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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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예술은 왜 아름다운가? 쓸모없기에 아름답다. 삶은 왜 흉측한가? 온통 목적과 목표와 의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흉측하다. 인생의 모든 길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기 위해 존재한다. 아무도 떠나지 않는 장소와 아무도 도달하지 않는 장소 사이에 길이 주어진다면! 누군가 들판의 중간에서 시작해 다른 곳의 중간까지 가는 길을 만드는데 인생을 건다면! 그 길을 연장한다면 유용해지겠지만 그러지 않고 기품을 중간 구간으로만 남겨둔다면!

 

(431-432)

내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소설 속에서만 인생을 살고 현실의 삶에서는 휴식을 누리는 것이다. 책에서 감정을 읽고 현실에서는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상상력이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은 소설 속 주인공의 모험을 통해 진정한 감정을 느낀다. 주인공의 모험은 곧 독자의 모험이 된다. 진실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맥베스 부인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근사한 모험은 없다. 그런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현실의 삶에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쉴 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434)

시간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다. 시간을 재는 정확한 척도가 무엇인지.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시계로 시간을 잰다는 건 외부에서 시간을 공간으로 나누는 것이므로 가짜다. 감정으로 시간을 잰다는 건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느끼는 감각을 재는 것이므로 역시 가짜다. 꿈에서 시간을 재는 건 역시 잘못됐다. 꿈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하게 시간을 스칠 뿐이고, 성격을 파악할 수 없는 흐름 속의 무언가로 인해 바쁘거나 느리게 산다.

 

(445)

진실을 찾는 일은, 신념의 주관적인 진실이든, 현실의 객관적인 진실이든, 돈이나 권력의 사회적인 진실이든 간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진실을 찾는 노력으로 상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가져다준다. 인생의 커다란 행운은 우연히 티켓을 산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460)

인생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는 실험적인 여행이다. 물질을 통해 떠나는 정신의 여행이고, 여행하는 것은 정신이므로 우리는 정신 안에 산다. 그러므로 외향적으로 사는 사람들보다 더욱 강렬하고 폭넓고 격동적으로 사는, 관조하는 영혼이 있다. 중요한 건 마지막 결과다. 살면서 느꼈던 것이 바로 그가 살았던 삶이다. 육체노동을 한 다음처럼 꿈을 꿀 때도 사람은 피로해진다. 어느 누구도 머릿속으로 깊이 생각할 때처럼 그렇게 열심히 살 수는 없다.

 

(501)

행복을 인식하지 않으면 행복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행복의 인식은 곧 불행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행복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과 이제 곧 행복을 뒤에 남겨놓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에서도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곧 그걸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507)

자부심이란 자신의 위대함에 대한 감정적인 확신이다. 허영심은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서 위대함을 보거나 우리를 위대하다고 여길 것이라는 감정적인 확신이다. 이 두 감정은 반드시 함께 다니는 것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감정도 아니다. 둘은 서로 다른 감정이고 양립 가능하다.

 

(516)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를 포기한다. 읽은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버린다. 나는 읽으면서 잠에 빠진다.

 

(544)

대체 내 안에는 어떤 지옥과 연옥과 천국이 있는가! 하지만 내가 삶을 반대하는 어떤 행동이라도 하는 걸 본 적 있는가…… 나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나는 포르투갈어로 쓰지 않는다. 나 자신으로 쓴다.

 

(559)

신문을 읽는 것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항상 불쾌한 일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도 종종 그러하다. 심지어 도덕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전쟁 아니면 혁명이 항상 신문에 나오는데, 전쟁이나 혁명이 미치는 영향을 신문에서 읽다보면 공포보다도 권태를 느끼게 된다. 읽다보면 우리의 영혼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그 모든 죽음과 부상의 잔인함이나 싸우다 죽은 자들 또는 싸우지도 못하고 죽은 자들의 희생이 아니다.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것들 때문에 인명과 재산을 희생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570)

평화, 그렇다. 평화다. 잉여로 남은 상태처럼 부드럽고 커다란 고요가 내 안에서 존재의 밑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이미 읽은 글들, 완수한 의무들, 삶의 발걸음과 우여곡절들, 이 모든 것이 내가 모르는 어떤 고요한 것을 둘러싼 희미한 그림자, 잘 보이지 않는 후광으로 변해버렸다. 때로 영혼을 잃고 빠져들었던 노력도, 때로 모든 행동을 다 잊고 몰두했던 생각도, 두 가지 다 아무 느낌 없는 위로, 시시하고 허무한 연민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574-575)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자연은 인간에게 자기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 능력을 선물했고, 자신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해줬다.

인간은 강물이나 호수에만 자기의 얼굴을 비춰볼 수 있었다. 게다가 취하는 자세 역시 상징적이다. 자신의 얼굴을 본다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했다.

거울을 발명한 자는 인간의 영혼에게 독약을 준 것이다.

 

(583)

시간 안에는 수도원이 있다. 우리의 도피 위로 밤이 내린다. 연못의 푸른 눈 속에서 마지막 절망이 태양의 죽음을 반사한다. 우리는 오래된 공원의 여러 가지 사물들이었다. 우리는 오솔길의 영국식 조경과 거기 있는 조각품들과 모습 안에 매우 관능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그 의상과 검과 가발, 우아한 동작과 행렬은 우리 영혼을 이루는 실체의 진정한 일부로구나! 이때 우리란 누구인가? 날아오르려는 슬픈 시도에도 불구하고 높이 솟을 수 없는, 황폐한 정원 분수의 날개 달린 물줄기일 뿐이다.

 

(586-587)

아침 아홉시 반에 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더러운 각반을 찬 평범한 노인은? 공연히 나를 성가시게 하던 절름발이 복권장수는? 담뱃가게 앞에서 시가를 피우던 얼굴이 둥글고 혈색 좋은 노인은? 낯빛이 창백한 담뱃가게 주인은? 규칙적으로 보는 사람들이기에 내 인생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일이면 나도 프라타 거리, 도라도레스 거리, 판케이루스 거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내일이면 나 역시, 그렇다. 느끼고 생각하는 영혼이며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우주인 나 역시 이 거리를 더 이상 지나지 않을 테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어떻게 됐지?”라고 어렴풋이 떠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했던 모든 일, 내가 느끼고 살아왔던 모든 것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명의 행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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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303)

사람이든 사랑이든 어떤 이념이든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는 것, 진실을 믿지 않고 진실을 안다는 것의 유용성도 믿지 않으며 초연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늘 사고하며 사는, 내면이 지성적인 자가 갖춰야 할 바른 자세라고 본다. 어딘가에 소속되며 평범해진다. 신념, 이상, 여인, 직업 이 모든 것이 감옥이고 족쇄다. 존재는 자유로운 것이다. 야망도 우리가 그로 인해 자부심을 갖는다면 한낱 짐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밧줄임을 안다면 야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안 된다.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도 묶이지 말 것! 다른 이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명상하되 황홀경에 빠지지 말고, 생각하되 결론을 구하지 말자. 우리가 신으로부터 자유롭다면, 감옥 마당에서 간수가 잠시 한눈을 파는 바람에 생긴 이 짧은 휴식 시간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사형이 집행될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면 그 다음날에 집행될 것이다. 계획하고 추구했던 것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고, 종말이 오기 전에 햇볕 아래서 거닐자. 태양이 우리의 주름살 없는 이마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람은 기대를 접은 자에게 시원하게 불어오리라.

(310)

나를 찾는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내가 찾아낸 것은 의심스러우며, 내가 얻었던 것은 이미 내게 없다. 나는 길을 걷듯 잠을 자지만 사실은 깨어 있다. 나는 잠을 자듯 깨어 있고, 나는 내게 속해 있지 않다. 결국 삶이란 근본적으로 거대한 불면이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의식이 또렷한 인사불성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323)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행동의 한 형태다. 절대적인 백일몽 상태에서, 끼어드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마침내 우리 자신의 의식조차 진창에 빠져 미지근하고 축축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히 포기하게 된다.

(327)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어울려 살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그 말의 위험을 모른 채 하는 말처럼, 만일 수많은 행복한 부부들이 상대방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서로를 정말로 이해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든 결혼은 다 잘못된 결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악마의 영역인 비밀스러운 장소에 간직된 남성상과 여성상은 배우자가 구현할 수 없고 상대를 만족시킬 수도 없는 이상형이자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이들은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때로 불의의 습격이나 퉁명스러운 모욕으로 인해, 그들 안에 숨겨진 있던 악마, 고대의 이브, 기사와 요정 등이 행동과 언어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334)

예술의 역할은 우리가 느끼는 바를 타인들도 느끼게 하는 것, 우리의 개별성을 제공하여 이를 통해 타인들이 스스로에게서 해방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의 진정한 실체는 절대로 전달될 수 없고, 나의 느낌이 심오할수록 소통은 더욱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내가 느낀 것을 타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즉 그들이 읽었을 때 내가 느낀 바를 정확히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예술의 정의에 따르면 여기서 타인이란 특정한 이 사람마다 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뜻한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 느낌의 진정한 본질을 다소 왜곡하더라도 나의 감정을 전형적인 인간 감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343)

여행은 독서와 같고, 독서는 다른 모든 것과 같다…… 나는 고전과 현대물이 고요히 공존하는 박학다식한 삶을 꿈꾼다. 그 삶에서 나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통해 내 감정을 새롭게 할 수 있고 명상하는 이들과 대체로 생각만 했던 자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한데, 그들 사이의 모순에 기반한 사고로 나 자신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이러한 꿈은 책상 위에서 책을 한 권 집어들자마자 사라져버리고, 책을 읽는 실제 행위는 읽고 싶다는 모든 욕구를 없앤다…… 마찬가지로 어쩌다 기차역이나 항구 같은 출발지에 가까이 가는 순간, 여행에 대한 모든 상상은 창백하게 시들어버린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확실한 두 가지, 나처럼 아무 가치 없는 두 가지로 돌아온다. 바로 아무도 모르는 나그네 같은 나의 일상, 그리고 잠들지 못한 자의 불면증 같은 나의 꿈이다.

(348)

사랑과 잠, 마약과 술은 예술의 기본 형태와 다름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과 같은 효과를 낸다. 하지만 사랑과 잠과 마약에는 환멸이 따른다. 사랑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실망을 준다. 잠을 자면 깨어나야 하고, 또 자는 동안은 사는 게 아니다. 마약을 복용하면 자극을 얻는 데 사용한 육신이 손상을 입는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예술에는 환멸이 따르지 않는데, 예술은 처음부터 환상을 인정하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로부터 깨어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 안에서 우리는 자는 게 아니라 꿈꾸기 때문이다. 예술을 향유했다고 내야 하는 세금이나 요금은 없다.

(361)

자유란 고립을 견디는 능력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있다면, 즉 돈이나 친교, 또는 사랑이나 명예, 호기심 등, 조용히 혼자서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들을 해결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만일 혼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노예로 태어난 사람이다. 아무리 고귀한 영혼과 정신을 갖고 있다 해도 혼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귀족적인 노예, 지적인 노예일 뿐이고 결코 자유롭지 못한다. 그렇게 태어났다면 당신의 비극이 아니라 운명자체의 비극이다. 하지만 삶이 당신에게 노예가 되도록 강요한다면 당신은 불운하다. 이 경우 비극은 당신 것이고, 당신을 따라 다닌다.

(364)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 자신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삶에 충실하다가도 때로는 의구심이라는 이상한 감정이 엄습한다. 내가 과연 존재하는지, 혹시 내가 누군가의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나는 사실 어느 소설 속 인물이고 문체의 긴 파동을 타고 복합적으로 서술된 이야기 속 현실 안에서 움직이는지도 모른다고, 꽤 구체적으로 상상해본다.

(369)

삶과 멀리 거리를 두고 기대앉아 있노라면, 내가 결코 쓸 수 없을 문장들이 무기력한 나에게 들려오고, 결코 묘사할 수 없을 풍경들이 나의 명상 속에서 명료하게 표현된다. 모든 단어가 제자리에 들어 있는 완벽한 문장을 짓고, 정밀한 희곡의 줄거리가 마음속에 전개되고, 모든 단어들 속에서 위대한 시를 구성하는 어휘와 운율을 느끼며, 끝없는 열정이 보이지 않는 노예처럼 그림자 속에서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 모든 감각이 내 몸에서 활동을 개시하기 직전인 상태로 앉아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순간, 단어들은 달아나고 희곡도 죽어버리고 율동적인 속삭임을 하나로 모으던 살아있는 결합 관계도 사라져버린다. 그 자리엔 아득한 그리움, 머나먼 산 위를 비추던 햇빛의 자취, 황량한 변두리의 나뭇잎을 날리는 바람, 결코 밝혀지지 않은 친족 관계, 타인들이 즐기는 난잡한 잔치, 언젠가 우리를 뒤돌아봐줄 것 같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여인만이 남는다.

(390)

내 영혼은 비밀스러운 오케스트라다. 내 안에서 어떤 악기가 연주되고 울리는지, 현악기인지 하프인지 심벌즈인지 북인지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이 교향곡 같다는 것만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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