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치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의 전신인 치클론A는 수십 년 전 캘리포니아 오렌지 살충제로 뿌려졌으며 멕시코인 수만 명이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몰래 탑승한 기차의 이를 구제하는 데 쓰였다. 객차의 나무판은 고운 파란색으로 물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아우슈비츠의 벽돌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색깔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안화물의 진짜 기원은 1782년에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다.

 

(42)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 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48)

일반적인 항성의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예측대로 완만하게 휘어졌으며 항성 본체는 마치 해먹에 누운 두 아이처럼 함몰부 중앙에 떠 있었다. 문제는 거성이 연료를 다 써버려 붕괴하기 시작할 때처럼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일어났다.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에 따르면 그런 경우에는 시공간이 단지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다. 항성이 짜부라들어 밀도가 계속 커지다보면 중력이 너무 세지는 바람에 공간이 무한히 휘어져 스스로를 감싸고 만다. 그 결과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영영 단절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이다.

사람들은 이를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153)

아인슈타인이 1905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주장했을 때 다들 그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비판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빛은 비물질적이니 이런 기이한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물질은 고체 아닌가. 그들은 물질이 파동처럼 행동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빛과 물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국 물질의 입자는 작은 금알갱이와 같아서 한정적 공간에 존재하며 세상에서 그 하나의 장소만을 점유한다. 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물질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앞쪽으로 발사된 물체는 장애물에 부딛히면 뒤로 튕겨져나가 특정한 점에 떨어진다. 이에 반해 파동은 드넓은 바다의 물처럼 끝없는 수면을 따라 뻗어 있으며 이런 식으로 동시에 여러 위치에 존재한다. 파동은 바위에 부딪히면 바위를 에돌아 제 길을 같다. 정면으로 마주친 두 파동은 서로 상쇄하여 소멸할 수도 있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진행할 수도 있다.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바닷가의 모든 장소를 동시에 때리지 않으면서도 여러 장소를 때린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현상은 본질 면에서 대립하고 모순되며 행동 면에서 상반된다. 그럼에도 드 브로이에 따르면 모든 원자는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이자 입자이며 때로는 파동처럼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한다.

 

(200)

이 새로운 파동역학의 중요성을 감히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은 빌라 헤어비히 요양원에서 슈뢰딩거의 골머리를 썩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파동 함수가 실재에 대해 실제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 중 하나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론이다. 인류가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하고 우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 기이한 구석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당신이 나를 적용하명서 생각하는 세상과 같지 않다고.” 슈뢰딩거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에 열중했으며 어딜 가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216-217)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새 개념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근거를 적어둔 종이를 꺼내 건네자 보어는 눈밭에 앉아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 동안 보어는 말없이 계산을 검토했으며, 다 끝나자 일어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추위를 떨치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보어는 이것이 실험적 한계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냐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253)

전 세계를 장악한 스마트폰 뒤에는, 인터넷 뒤에는, 신과 같은 연산 능력이라는 가슴 벅찬 약속 뒤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양자역학은 우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양자역학의 역설과 모순을 감당할 수 없다. 양자역학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론 같아서 우리는 유인원처럼 그 주위를 뛰어다니고 만지작거리고 노리개로 쓸 뿐 결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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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사람들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김보영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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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최근 SF 소설을 좀 읽어서 그런지 SF 소설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구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SF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소설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어. 이번에 읽은 <미래를 가는 사람들> SF 소설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소설이란다. 지은이는 김보영이라는 분인데, 2004년 등단하신 이후 많은 SF 소설들을 써 오셨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미래를 가는 사람들>이란 책은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시리즈 중에 하나라고 하더구나. 그렇다고  그 소설들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읽는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구나. 다른 책들도 찾아보니 같은 시리즈라서 그런지 책 표지의 디자인이 비슷비슷하더구나.


1.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소설 속에 실제로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 나오더구나.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보통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이 있는 경우와 타임머신이라는 기계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단다. 이번에 읽은 소설에서는 광속우주선이라는 것이 개발되어 시간여행을 하는 이들이 생겨난 거야. 광속우주선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특수상대성이론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빠른 속도를 가진 물체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것이고, 만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그 물체의 시간은 멈춰 있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광속우주선 속의 사람은 시간은 멈춰 있고, 그 우주선 밖의 사람은 시간이 흘러가니까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지. 우주선 밖의 시간이 수백 년이 흘러도 광속우주선 안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거야. 그랬다가 광속우주선의 속도를 줄이게 되면 다시 시간이 흐르니,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아빠는 그렇게 이해를 했단다.

시간은 멈췄다고 해도 영양분은 섭취해야 하지 않을까? 기술이 발달하여 광합성을 하는 나노봇이란 것을 핏속에 넣을 수 있었어. 그러면 그 나노봇이 광합성을 일으켜 식물처럼 영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그럴 듯한 설정이었단다.

그런데 이야기의 소재는 좋았지만, 스토리 라인은 아빠 취향이 아니랄까 아빠에게는 별로였단다. 주인공 성하라는 사람이 항법사 셀레나를 만나서 우주여행을 하는 스토리였어. 어떤 행성에서는 자신처럼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제 막 문명을 싹 틔우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으로 군림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어. 성하에게 자신과 같은 ()’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내 성하는 그곳을 떠나 다시 시간여행이자 우주 여행을 했단다. 또 다른 여행자들도 만나기로 하고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였단다.

소설이 짧아서 금방 읽었는데, 며칠 지나니 그 줄거리가 잘 생각나질 않는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끝낼게.


PS:

책의 첫 문장:  가장 큰 문제는 이 집에 밤과 낮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이다.

책의 끝 문장: 이 작은 별 가득히 자라나게 될 수많은 생물과,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찬란한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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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하지만 신라의 입장에서 헤아려 본다면 생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경상도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 신라가 북쪽의 강대한 세력인 고구려와 최대의 라이벌 백제, 끊임없이 침략을 자행하는 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시엔 지금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를 민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던 시대가 아니었음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별개의 나라로 오직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과제였고, 신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신라가 백제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신라 땅마저 당나라에 병합됐더라면,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있었을까?


(42-43)

탈해는 훌륭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하면서 떡을 깨물어 유리와 자기의 이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 결과 유리의 이 수가 더 많자, 탈해는 자기의 측근들과 함께 유리를 받들었다. 그후로 이 자국이라는 뜻의 이사금을 왕호로 하였다고 전한다.


(73)

이렇게 볼 때, 신라 왕조는 시조 혁거세왕부터 제 8대 아달라왕까지 240년 동안은 박씨의 시대, 9대 벌휴왕부터 제16대 흘해왕까지 172년 동안은 석씨의 시대, 17대 내물왕부터 제52대 효공왕까지 556년 동안은 김씨의 시대, 그리고 멸망기 해당하는 제53대 신덕왕부터 제55대 경애왕까지 15년 동안은 다시 박씨의 시대로 구분될 수 있다.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후백제 왕 견훤이 세운 왕이었으므로, 이때는 이미 신라의 왕권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215)

눌지왕 대에 이르러 왕에 대한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변경되었다. 김대문에 따르면 마립이란 말뚝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직위에 따라 놓는 것이니 조선 시대의 품석(品石, 품계를 새겨 나열한 돌)과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조선의 품석은 임금의 것이 없지만, 신라의 마립엔 임금의 것도 있다는 점이다. , 신라 조정에는 왕의 마립의 최상석 한가운데 있고, 그 아래로 신하들의 마립이 나열되어 있는 형태였다. 따라서 마립간이란 마립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곧 임금을 의미했다.


(266)

이렇듯 목숨을 버려 신라에 불법을 퍼뜨린 순교자 이차돈은 죽을 당시 22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성은 박씨이고 자는 염촉이다. 그는 궁중에서 자랐으며 조부는 아진찬 박종이요 아버지는 습보갈문왕이다.

염촉의 염은 향찰로는 이차 또는 이처라고도 하는데, 발음이 다를 뿐 번역하면 모두 싫다는 뜻이다. 또 촉은 해골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골육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름에 붙이는 어조사로 쓰인 까닭에 뚜렷한 뜻이 없으며,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 ‘()’, ‘()’, ‘()’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염촉과 이차돈은 같은 이름을 다르게 발음한 것이다. 말하자면 염촉은 한자식 발음이고, 이차돈은 향찰식 발음인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인들의 이름 중 상당수가 이렇게 한자식 발음과 향찰식 발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증은 지대로 또는 지철로, 태종은 이사부, 황종은 거칠부 등으로 불린 것도 그 예들이다.


(288)

김대문은 <화랑세기>에서 어진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화랑도에서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또한 이에서 생겼다고 했다. 김대문이 <화랑세기>에서 거론한 풍월주는 총 32명이다. 그는 이 시기의 화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화랑도 출신이 많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김유신이 화랑의 제15세 풍월주이고,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제18세 풍월주였으며,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이 제13세 풍월주였다. 또한 가야 정벌의 영웅 사다함이 제5세 풍월주였고, 화랑 중의 화랑으로 이름을 날린 문노가 제8세 풍월주였다. 그 외에도 일일이 이름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수가 화랑도 출신이었다. 김대문의 말대로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말엽까지 신라 사회를 떠받친 인물들은 모두 화랑도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0-341)

선덕왕이 647년 정월에 일어난 비담의 난 중에 죽자 그 와중에 승만이 왕위에 올랐는데, 왜 그녀가 왕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당시 성골로서 왕위를 이을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성골 여자인 승만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성골이라는 신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어 이 또한 왕으로. 무열왕부터 경순왕까지를 진골 왕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여 이 기록의 진의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진덕왕의 즉위를 성골과 진골의 구분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선덕왕의 영험한 지혜를 믿던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 실권자 김춘추가 난국 타개를 목적으로 그녀를 왕위에 앉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503)

스물이 갓 넘은 나이에 대군을 일으켜 나라를 세운 점으로 봐서, 견훤은 꿈이 원대하고 용맹이 뛰어났으며 항상 미래를 계획하는 성품을 지닌 장부였다. 또한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것으로 봐서 임기응변에 능하고, 적을 칠 때는 먼저 적을 안심시킨 다음 치는 것으로 봐서 다소 음흉하여 그 속내를 읽기 힘든 면에 있었으며, 빠른 시일 안에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형성한 점으로 미뤄 과단성 있고 남다른 주변 장악력을 소유했던 게 분명하다. 또 자기 손으로 열었던 후삼국 시대를 스스로 끝내는, 그래서 왕건에게 통일이라는 대업을 선물로 안기는 영웅의 면모를 가졌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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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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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단다. 칠레의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었던 분이었지. 아옌데 대통령은 반군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우다가 대통령궁을 끝까지 지키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을 했단다. 아옌데 대통령이 죽고 나서 가족 친지들은 모두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아빠가 책 한 권을 봤는데 지은이의 성이 아옌데였어. 이사벨 아옌데. 아옌데 대통령이 생각나서 지은이의 이력을 읽어보니,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더구나. 몇 년 전에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책을 읽고 검색을 해봤을 때 친척 중에 소설가가 있었다는 기억도 살짝 나는 것 같았어.

아무튼, 아옌데 대통령을 좋게 생각했던 아빠는 그의 조카가 쓴 소설책이 어떤 것들이 있나 검색해 보았단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이 꽤 있고, 평들도 다들 좋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몇 권 샀는데, 그 중에 가장 최근에 출간된 <바다의 긴 꽃잎>이란 책을 읽었단다. 바다의 긴 꽃잎? 제목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칠레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시인인 네루다가 자신의 조국 칠레를 표현한 말이라고 하더구나. 칠레라는 나라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고 태평양에 맞닿아 있으면서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잖니. 그 모습을 긴 꽃잎으로 비유한 것이로구나.

책 제목에서 알다시피 이 책은 칠레 현대사가 담겨 있다고 했어. 몇 년 전에 읽은 아옌데 대통령의 전기를 통해 칠레 현대사를 대충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소설을 통해서 다시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 읽기 어려우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단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은이의 글솜씨도 좋았고, 읽기 편하게 잘 번역한 옮긴이의 글솜씨도 좋았단다.


1.

, 그럼 책 속의 이야기를 해볼게. 때는 1938년 스페인. , 칠레의 역사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스페인부터 시작하네. 1938년 스페인이라면 한창 내전을 겪고 있던 시절이란다. 아빠도 잘 모르지만, 소설 속에 나온 것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1936년 총선 때 좌파정당연합인 인민전선이 승리하여 정권을 잡게 되었단다. 하지만, 몇 달 뒤인 1936 7월 프랑코가 이끄는 우파와 군인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어. 그래서 두 세력은 전쟁을 하게 된 것이 스페인 내전이란다. 그 내전은 1939 4월 프랑코의 우파가 승리함으로 끝났고, 이후 프랑코의 장기 독재 집권을 하게 되었어.

아무튼 다시 1938년으로 돌아와서의대생 빅토르 달마우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아버지 마르셀루이스 달마우는 음대 교수였고, 어머니 카르메라는 분이고, 동생 기옘이 있었어. 빅토르 집안 좌파를 지지하는 가족이었고, 동생 기옘은 급진 좌파로 전쟁에 지원해서 참가하기도 했단다. 빅토르는 지원까지는 아니고 징병되어 군의관으로 참가했어. 아버지의 음대 제자 중에 로세르 브르게라라는 사람이 있어. 로세르는 집이 가난했었는데 우연이 어떤 부잣집의 후원을 받아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어. 로세르는 피아노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어. 집이 가난하여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는데, 아버지 마르셀루이스는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했어.

그런데 아버지 마르셀루이스는 얼마 후 돌아가시게 되었단다. 그래도 로세르는 계속 집에 머물렀어. 군대 갔던 기옘이 티푸스 병에 걸려서 집에 왔을 때, 로세르와 기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 하지만 기옘의 사상은 사랑보다 더 강했지. 기옘은 병이 낫자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고 얼마 안 있어 빅토르는 기옘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하지만, 빅토르는 이 소식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어. 더욱이 로세르는 임신을 하고 있는 상태였거든.

..

1939 1월 프랑코 장군이 승기를 잡았고, 좌파 세력들은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어.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스페인에 남아 있어봤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거든. 많은 사람들이 바르셀로나에서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망을 갔단다. 하지만 1월 추위는 장난이 아니었어. 빅토르는 부상병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군대에서 먼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친구인 아이토르에 부탁을 했어. 어머니 카르메와 로세르를 데리고 먼저 국경을 넘어가라고 말이야.

아이토르는 카르메, 로세르를 데리고 프랑스로 향했단다. 가던 길에 빅토르의 어머니 카르메는 자신은 짐만 된다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하고 밤에 그들을 떠났단다. 아이토르와 로세르는 프랑스로 향했어. 그런데 프랑스도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난민들을 어쩌지 못하고 국경을 닫아버렸어. 국제 여론이 안 좋아지자, 여자, 아이, 노인들만 받아주었단다. 그래서 아이토르와 로세르는 헤어지게 되었어. 로세르만 프랑스에 들어와 수용소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그 수용소에서 로세르는 빅토르의 옛 동료였던 간호병 엘리자베뜨를 만나게 되었고, 엘리자베뜨의 도움을 받아 정착을 할 수 있었단다.

빅토르도 뒤늦게 국경을 넘어와서 스페인 난민 수용소에서 의료진으로 일하게 되었어. 빅토르는 아이토르와 만나게 되는데,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소식과 로세르가 아이를 낳고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접했어. 빅토르는 로세르를 만나러 갔어. 그리고 그제서야 기옘의 전사 소식을 알려주었단다.


2.

프랑스도 그리 안전한 곳은 아니었어. 세계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지. 그 와중에 칠레에서 이민을 받아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앞서 이야기했던 칠레의 유명한 시인 네루다가 당시에는 외교관이었는데 네루다가 프랑스 영사관에서 이민 갈 사람들을 면접했어. 그런데 이민은 가족만 가능하다고 했어. 빅토르는 로세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짜로 결혼을 하고 칠레로 가기로 했단다. 그리고 로세르와 기옘 사이 낳은 아가의 이름을 빅토르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셀이라고 했어.

빅토르와 로세르, 마르셀은 배를 타고 긴 항해 끝에 칠레에 도착을 했단다. 펠리페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당분간 그의 집에 머물게 되었어. 펠리페라는 사람도 주요 인물이니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할게. 펠리페의 아버지 이시드로는 칠레의 큰 사업가였어. 아버지 이시드로는 철저한 보수파였고, 펠리페는 진보 세력이다 보니 정치적 견해로 갈등이 많았단다. 우리나라도 그런 가족들이 많잖니. 펠리페는 급진 진보파 모임인 광란자 살롱에도 자주 나갔고 그곳에서 네루다를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어. 스페인 난민을 받아들이려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단다.

한편, 이시도르는 부인 라우라, 딸 오펠리아와 유럽 여행을 떠났어. 이시도르는 사업 구상을 위해 떠난 것이고, 딸 오펠리아는 유럽에서 유학을 시키려고 했어. 그런데 그들이 유럽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어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서 간신이 배를 구하고 다시 칠레로 돌아왔단다. 가족들이 유럽에 가 있을 동안 펠리페가 빅토르와 로세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던 거야. 펠리페 집의 유모인 후아나는 주인이 없는 동안 난민들을 데리고 온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었지만, 어린 마르셀에 푹 빠지고 말았단다. 빅토르는 칠레에서 의대 공부를 이어서 하고,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단다. 빅토르와 로세르가 가짜 부부라고 했잖아. 남들에게는 진짜 부부 행세를 했지만, 둘이 있을 때는 예를 잘 지켰단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마르셀을 잘 보살피는 것이었어.

얼마 후 펠리페의 가족들이 유럽에 돌아왔고, 오펠리아는 빅토르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단다. 오펠리아는 약혼녀가 있고, 빅토르는 유부남인데 말이야.

빅토르와 로세르는 돈벌이를 위해서 술집을 차리고 펠리페의 집에서 나왔단다. 오펠리아가 빅토로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고 했잖아. 그건 빅토르도 마찬가지였어. 빅토르가 펠리페의 집을 나온 지 1년이 지나고 그들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둘만의 비밀 사랑을 아주 뜨겁게 했단다. 오펠리아는 파혼까지 했어. 오펠리아의 아버지는 오펠리아를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감금했단다. 얼마 뒤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빅토르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한 순간 불꽃이었음을 알고 후회를 하였단다. 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어했어. 그래서 오펠리아의 아버지 이시드로는 오펠리아를 한동안 수녀원에 숨기고, 아이를 낳으면 입양 보내려는 작전을 세웠단다. 오펠리아는 임신 후반에 계속 몸이 좋지 않아서 약을 먹고 정신을 잃기도 했어. 결국 오펠리아는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단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빼돌린 것 같더구나.

오펠리아는 몸이 회복된 다음 이전 약혼자인 마티우스를 다시 만나게 되고 마티우스는 오펠리아를 용서해 주고, 그들은 얼마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빅토르도 갑자기 사라진 오펠리아의 사정을 몰랐어. 그리고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지. 다시 의학 공부를 열심해 해서 드디어 의사가 되었단다.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성공을 해서 공연을 자주 다녔단다. 그러다가 빅토르의 어머니가 스페인에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렇게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 되고 어머니를 칠레로 모셔왔단다. 다시 만난 가족들그들은 칠레에서 정착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3.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되었단다. 정권을 잃은 야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우파 세력들은 태업을 주도했어. 그렇다 보니 물가는 계속 오르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단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이 뒤에서 우파 세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었던 거야. 혼란스러운 사회를 보고 있자니 빅토르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전의 스페인이 떠올랐단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거지.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측근들은 대부분 숙청당했어.

빅토르는 예전부터 네루다를 통해 아옌데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어. 그 이야기는 빅토르는 안전하지 않다는 거야.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들 마르셀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로세르는 외국에서 연주 중이라서 칠레 국내에는 빅토르 혼자였어. 이웃집의 신고를 빅토르는 잡혀가게 되고 감금되었어.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고 갇히게 되었는데, 무려 11개월이나 갇히게 되었어. 우연히 심장마비로 쓰러진 지휘관을 살려주게 되었는데, 그 덕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었단다.

빅토르와 로세르는 베네수엘라로 망명하기로 했어. 또다시 망명이라니스페인을 떠나 칠레가 정착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나 싶었는데, 이제 칠레 사람 다 되었다고 생각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제2의 고향 칠레를 떠났단다. 그곳에서 빅토르는 의사로,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다시 시작했단다. 이제 그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어. 그러면서 서로 진정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독재를 하던 프랑코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스페인 입국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고 했어. 빅토르와 로세르는 40년 만에 스페인에 돌아왔단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칠레 사람이었어. 스페인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몇 달 만에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왔단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칠레였던 거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칠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망명객들이 속속 칠레로 돌아오기 시작했지. 빅토르와 로세르도 칠레로 돌아왔어. 빅토르는 철거촌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지냈단다. 그런데 세월은 그들도 가만두지 않았단다. 로세르가 그만 암에 걸렸어. 빅토르는 로세르가 가는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단다. 로세르가 죽고 나서 빅토르는 쓸쓸한 생활을 했어. 그런데 어느날 한 여성이 찾아왔어. 자신이 52살이고, 이름은 잉그리드라고 했어. 그러면서 덧붙인 충격적인 말. 빅토르, 당신의 딸입니다. 빅토르는 그제서야 오래 전에 오펠리아가 임신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었던 거야. 잉그리드는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어. 52살이면 원망할 나이도 지났지, .. 생존해 계시는 아버지를 만난 것에 대해 기뻐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 사람의 역사에 스페인과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가 모두 담겨 있구나. 몇 년 전에 칠레가 민주화 시위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 다시 사회가 안정화되어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몇 년 전에 읽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전기와 이번에 읽은 <바다의 긴 꽃잎>때문인지 칠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았단다. 그 먼 나라를 가 볼 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칠레 하면 축구를 잘 하는 나라로 알려졌는데, 이번 월드컵에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었단다. 다음에 혹시 칠레 축구를 볼 일이 있으면 칠레를 응원해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어린 병사는 비베론 부대 소속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는 로세르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지갑에 넣어 둔 유일한 사진이었다. 로세르가 피아노 옆에 서 있었다. 어쩌면 연주회 중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짙은 색 소박한 블라우스에 평소보다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소매에 목에는 레이스가 달린 옷은 몸매를 감추는 촌스러운 교복 같았다. 그 흑백사진에서 로세르는 아마득하고 흐릿했다. 멋도 없고, 나이도 불분명하고, 무표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과 검은 머리카락, 조각처럼 곧은 코, 표정이 담긴 눈썹, 돌출된 귀, 기다란 손가락, 그녀에게서 나는 비누 향. 느닷없이 그를 덮쳐 고통스럽게도 하고 잠 못 이루게도 하는 섬세한 표정은 애써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표정을 떠올리다 보면 깜빡 방심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 P55

그들은 칠레가 몹시 가난한 나라로 광물, 그중에서도 특히 구리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지만, 정착해서 성공할 수 있는 비옥한 땅도 많고, 어업에 종사할 수 있는 수천 킬로미터의 해안도 있고, 무수히 많은 숲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과 같은 북쪽 황무지부터 남쪽의 빙하까지 칠레의 자연은 경이로웠다. 칠레 사람들은 한순간에 모든 걸 무너뜨려 사망자와 이재민이 속출하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가난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망명자들에게는 자기네가 살아왔던 과거와 프랑코 권력하에 있는 스페인의 미래에 비하면 칠레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칠레 사람들은 그들이 많은 것을 받을 테니 보답할 준비나 하라고 했다. 칠레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고 너그러웠다. 칠레 사람들은 늘 두 팔 벌려 자기네 집을 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나를 위해, 내일은 너를 위해." 그것이 슬로건이었다. - P180

쿠바 혁명에 영감을 받은 지지자 몇몇은 진정한 혁명을 이뤄 평화롭게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옌데에게 혁명은 견고한 칠레 민주주의에 넉넉히 들어맞았고, 그는 칠레의 헌법을 존중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한 손에 자기네 운명을 움켜쥘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고발하고 설명하고 제안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다. 또한 그는 적들의 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공인일 때 아옌데는 약간 우쭐해하며 근엄하게 행동해 적들에게 건방지다는 트집도 잡혔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수수하고 농담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그로서는 배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에 가서는 그 자신을 잃게 되었다. - P316

빅토르는 임종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의 로세르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때 그녀는 우리 인간은 모여 사는 생명체이고, 우리는 고독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기 위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혼자 살면 안 된다며, 심지어 그를 위해 애인까지 정해 주며 집요하게 굴었다. 빅토르는 느닷없이 매체를 정감 있게 떠올렸다. 그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텃밭의 토마토와 허브를 가져다주는, 마음이 열린 옆집 사람, 뚱뚱한 요정들을 조각하는 꽤 자그마한 여자였다. 빅토르는 딸이 떠나자마자 오징어 먹물 파에야와 크레마 카탈라나 남은 것을 메체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것을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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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3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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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 식구들이 얼마 전에 부여 당일치기 역사(?) 여행을 하고 왔잖니,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가서 좋은 추억 만들어 온 것 같구나. 부여는 백제의 수도 중에 하나로 가장 마지막 수도이면서 백제의 멸망을 함께 했던 곳이란다. 그곳에 우리가 여행을 가서, 다시 복원한 부여성도 가보고, 금동대향로도 보고, 정림사지 오층석탑에서 탑돌이도 하고, 궁남지라는 호수에서 달구경도 하고 멋진 야경도 보는 등 알찬 여행이었지. 아빠가 백제 역사에 대해 좀더 많이 알고 있었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점이 좀 아쉬웠지.

그래서 여행 오자마자 책장 속에 잠자고 있던 <한 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을 찾아내어 읽었단다. 예전에 한참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한 권으로 읽는 왕조실록> 시리즈 중에 하나야. 아빠는 고려 편, 조선 편을 읽었고, 신라 편, 백제 편, 고구려 편은 사두기만 안 읽었거든. 이번에 백제 편을 꺼내 읽었단다. 진작에 여행 가기 전에 읽고 갈걸, 아빠가 뒷북을 잘 치잖니.

책은 참 재미있었단다. 그리고 백제의 역사를 한반도에 국한 두지 않고, 중국 대륙에서도 번성했었다는 대륙백제로 해석한 부분도 신선했어. 우리 고대사의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보니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들에 늘 논란이 있었어. 어떤 역사가들은 옛 기록들을 찾아내서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삼국이 모두 중국 대륙에서 활동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어. 아빠도 오래 전에 그런 책들을 읽어보기도 했단다. 그들의 주장이 아무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라서, 역사의 또 다른 해석일 수 있겠다고 아빠는 생각했어.

우리나라가 일제 36년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왜곡된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는 아빠도 믿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이 책의 지은이 박영규 님도 백제의 역사를 한반도 국한하지 않고, 대륙과 일본에 진출한 역사로 보는 시각이라서 책을 읽는데 더욱 흥미를 주었단다. 너희들도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되면,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조금 다른 부분이 나올 수 있어. 어느 것이 옳다, 틀리다 단정 짓지 말고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좋겠구나.


1.

어떤 한 시대의 역사를 이야기를 하게 되면 왕 같이 나라를 이끈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고, 어떤 예술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곤 하는데, 이 책은 백제의 왕 중심으로 주로 이야기를 했단다. 그래서 우리가 부여 당일치기 여행을 가서 본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나 금동대향로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어.

백제는 총 31명의 왕이 있었단다. 조선시대 왕이 총 27명이었는데, 그보다 많구나. 백제를 세운 사람은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온조왕이란다. 그 온조왕의 아버지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었고그런데 친아들이 아니고 양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구나. 주몽이 소서노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 때 이미 소서노는 사별한 전 남편 사이에 낳은 아이들이 있었대. 그 아이들이 바로 비류와 온조였어. 그래서 주몽은 친자인 유리를 태자로 삼은 것이고 말이야.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소서노는 아들들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하남으로 가서 정착했다고 역사서에 써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하남을 한강 이남이라고 해석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중국의 옛 역사서에서 이야기하는 하남은 중국 황하강 남쪽이라고 했대. 그 지역이 대방이었어. 그러니까 고구려를 떠난 소서노 일행이 정착한 곳은 중국 황하 남쪽 대방이라는 곳이야. 비류가 형이니까 아무래도 대방에서 지휘자 역할은 비류가 했고, 온조에게 명을 내려 바다 건너 땅을 알아보라고 해서, 온조가 미추홀에 오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미추홀도 오늘날 어느 지역인지 정확한지 모르지만, 인천지역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란다. 온조는 미추홀을 거쳐 지금의 한강 아래 지역인 오늘날 하남에 정착을 하게 되었단다.

한편 비류와 소서노가 머무르고 있던 대방 지역에 낙랑군이 침략해 들어와서 그곳을 떠나 미추홀로 오게 되었어. 온조는 이미 한반도 땅에서 자신이 정착을 했기 때문에 형인 비류가 오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어. 그러자 소서노가 격분하여 직접 군사를 이끌고 온조에게 쳐들어갔는데, 온조에게 패하고 전사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아들과 엄마가 전투를 하고 엄마가 전사되었다? 온조가 왕이 되었겠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은데

온조는 한강 이남에 수도를 정하고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단다. 온조의 뒤를 이어 2대 기루왕 3대 다루왕이 각각 50년 이상씩 통치를 하면서 백제라는 나라의 모습을 만들어갔어. 7대 사반왕이 며칠 만에 왕에 물러났는데, 이것으로 왕위 찬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어. 그렇게 왕위에 오른 이가 8대 고이왕인데, 고이왕은 52년간 왕위에 머무르면서, 대륙 진출을 하여 요동 반도와 요서 지역을 점령을 하였대. 옛 백제 땅을 다시 차지하려고 말이야. 그렇게 고이왕은 앞서 이야기했던 대륙 백제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구나. 9대 착계왕 10대 분서왕은 아예 대륙에 머물면서 통치를 했대. 그리고 낙랑군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는구나. 착계왕은 낙랑군과 전투 중에 전사하고, 분서왕은 자객에 의해 죽고 말았지만 말이야.

11대 비류왕, 12대 계왕을 거쳐 13대 근초고왕이 왕이 되었단다. 근초고왕은 백제의 전성기를 연 왕으로 너희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백제의 가장 대표적인 왕이란다. 346년부터 375년까지 29 2개월 왕위에 있었어. 그런데 교과서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근초고왕은 집권 29년 중에 20년을 대륙에 머물면서, 대륙백제의 안정에 힘썼다고 하는구나. 양자강과 요동지역을 진출하였대. 그런데 이 20년의 기록이 삼국사기에는 적혀 있지 않고, 중국 역사서에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는구나. 삼국사기라는 것이 승자의 역사 기록이다 보니, 백제의 기록을 작게 왜곡하거나 누락되어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구나. 아무튼 근초고왕은 대륙에서 기반을 쌓아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대치하였대. 역사 기록에 평양성까지 공격을 했다고 하는데, 이 평양성도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평양성이 아니라 중국 요령성 주변이라고 추정을 하는구나. 그러니까 고구려와 백제의 전투는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이루어진 거라는 거야. 이 전투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사망하게 된단다. 근초고왕 때는 대륙에서 기반을 닦은 것뿐만 아니라, 왜에도 문물을 전달했다고 해. 그렇게 근초고왕은 백제라는 나라의 영토를 넓히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단다.


2.

근초고왕의 뒤를 이은 14대 근구수왕은 근초고왕의 아들로 근구수왕은 태자시절부터 평양성 공격에 참여를 했고, 왕위에 오른 후에도 평양성 공격을 했는데, 전염병과 흉년이 들면서 내부 분열로 평양성 공격이 중단되었단다. 15대 침류왕은 짧은 치세라서 큰 업적은 없었는데,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한다. 16대 진사왕과 17대 아신왕은 서로 대립했었는데, 진사왕은 아신왕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는구나. 아신왕은 침류왕의 맏아들로 유능했지만, 그의 적군이 고구려 광개토왕이었다는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이었지. 아신왕은 고구려 광개토왕과 전투에서 패배하고 항복을 했어. 후에 왜, 가야와 연합하여 복수를 꿈꾸었단다. 당시 고구려는 신라와 연합하여 대응했어, 백제, 가야, 왜 진영과 고구려, 신라 진영의 대규모 전쟁이 있었고, 아신왕은 광개토왕의 기세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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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아신왕과 광개토왕은 둘 다 391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392년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광개토왕은 18, 아신왕은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모두 혈기 왕성한 때였다. 이들은 젊은 혈기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패자를 자처했고, 그것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선제 공격을 가한 쪽은 광개토왕이었다. 고국원왕의 전사 이후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은 줄기차게 복수전을 꾀하였으나 번번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젊고 용맹한 광개토왕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광개토왕은 백제가 왕위 계승 문제로 내분을 겪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륙백제의 북쪽 요충지인 관미성과 주변 10개 성을 공략하여 얻음으로써 먼저 승기를 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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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아신왕이 급사로 죽고 나서 왕위 계승 다툼이 일어났는데, 왜에서 돌아온 태자 영이 왕위에 오르는데 18대 전지왕이란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친족간 왕위를 두고 혈전을 벌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대. 집권 중에 이웃 나라와 화친을 유지하는데 노력을 했대. 18대 전지왕의 장남인 19대 구이신왕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당시 팔수 태후라는 사람이 왕권 행세를 했는데 구이신왕은 7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재위했단다. 그래서 20대 비유왕이 반정으로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 더욱이 비유왕은 18대 전지왕의 서자라고 하는구나.

20대 비유왕은 27 9개월 동안 왕위에 있었어. 신라 눌지왕에 화친을 제의하여 성사되었고, 신라와 화친하며 고구려 남하 정책에 대응을 했단다. 그런데 비유왕도 급사했다고 하는구나. 반란군에 의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어. 비유왕이 죽고 21대 개로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개로왕의 동생이자 비유왕의 삼남 곤지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개로왕이 왕자 신분일 때 곤지에서 명령을 내려 일본으로 가라고 했어. 자신이 입지가 약해져서 왜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함이지. 그런데 곤지는 자신의 신분 보장을 위해 개로왕의 부인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어. 개로왕은 이를 허락하고 함께 일본을 갔는데, 당시 개로왕의 부인은 임신을 하고 있었고, 일본으로 가는 도중 각라도라는 섬에서 아이를 낳게 되어 개로왕의 부인은 아이와 함께 다시 백제로 돌아오고, 곤지만 일본에 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때 각라도에서 낳은 아이가 나중에 왕위에 오르게 되는 무령왕이란다. 아무튼 곤지는 일본에 가서 왜 천황을 보필하여 왜 조정에서도 일했는데, 개로왕이 죽고 나서 백제로 돌아왔으나 해구라는 사람에게 살해되었다고 하는구나. 곤지의 이야기는 예전에 아빠가 재미있게 읽은 최인호 님의 소설 < 4의 제국>에도 나오는데, 이 책은 나중에 너희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구나. 정말 재미있거든.

아무튼 21대 개로왕은 455년부터 475년까지 20년간 재위하는데 반란군을 진압하느라 10년동안 분쟁에 휩싸였었대. 고구려 장수왕이 보낸 생간(간첩, 스파이) 도림에게 속아서 전쟁에도 지고, 고구려군에게 참수 당했다고 하는구나.


3.

22대 문주왕은 고구려의 남진 때문에 수도를 웅진(공주)로 옮겼어. 당시 해씨 해구라는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곤지가 해구와 맞서다 죽고, 문주왕도 해구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는구나. 문주왕의 아들 삼근왕이 15살에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진씨 진남의 혁명군이 해구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대. 삼근왕의 짧은 치세 다음에는 14대 동성왕이 왕이 되었어. 동성왕은  왜에 있다가 왕으로 추대 받고 와서 왕이 되었는데, 20년간 재위했대. 처음에는 대륙백제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북위와 두 차례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왕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에 원한을 품은 신하에 의해 죽음을 당했대.

다음 25대왕이 앞서 이야기했던 개로왕의 아들이자, 곤지의 양자인 무령왕이 왕위에 오르게 된단다. 왕위에 오른 뒤 대국화를 위해 노력을 했대. 한수 이북 영토를 안정화시키고, 섭라 지역과 임나 지역을 차지했단다. 임나에 대한 것은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할게. 고대사의 논란이 되는 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임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참고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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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257)

하지만 일본 사학계의 주장처럼 임나가 일본에 의해 지배된 것은 아니었다. 임나엔 백제, 가야, 왜의 군대가 모두 주둔하고 있었고, 백제와 왜는 대사관 격인 객관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임나의 땅 주인은 가야이다. 가야는 6개의 분국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였고, 백제와 왜에 비해 국력이 쇠약했다. 그래서 가야는 왜와 백제 양국과 동맹을 맺고, 임나 지역을 자유무역 도시로 내놓고 공동 관리를 한 것이다. 덕분에 임나는 당시 최대의 국제무역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왜와 백제는 물론이고 고구려와 중국의 제국들도 임나에서 거래되는 물품을 사갔을 정도였다. 고구려가 섭라에서 사서 중국에 팔던 옥도 역시 임나에서 거래되던 것이었다. 현재 한반도 내에서 옥 생산지가 어디였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옥은 아마도 임나 지역에서 대거 생산되었던 듯하다. 임나는 그 옥을 기반으로 경제권을 형성하고, 국제적인 무역 도시로 성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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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은 아들 시아를 일본에 파견하는 등 일본 정치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26대 성왕은 31 2개월간 재위를 하면서, 대륙백제 확대 의지를 보였어. 그래서 고구려를 계속 공격했는데, 계속 패배하면서 오히려 국력이 쇠퇴되었단다. 결국 수도를 다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국토도 남부여로 바꾸면서 재정비를 했대.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 전에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온 부여는 성왕 때부터 백제의 수도였던 거야. 20대 비유왕 때 맺어진 신라와 화친이 계속 이어져왔는데 이때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고구려와 손을 잡고 백제를 공격했단다.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 참여했다가 전사하고 말았단다.

성왕에 이어 27대 위덕왕이 왕위에 오르고 44 5개월 동안 재위했어. 위덕왕은 성왕의 장남으로 관산성 전투에 참여했었어. 그래서 성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대. 이때도 계속 고구려와 신라의 공격을 받았고, 위덕왕은 왜와 가야에 도움을 요청했어. 28대는 위덕왕을 보필하던 위덕왕의 동생 혜왕이 조카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혜왕의 나이가 칠십도 넘었다고 하는데, 권력에 대한 욕심은 나이에 상관이 없구나. 28대 혜왕은 1년이라는 짧은 기간 재위했고, 29대 법왕은 혜왕의 맏아들로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재위했지만, 불교를 장려하고 왕흥사라는 절을 짓기 시작했대.

법왕 다음은 위덕왕의 서자였던 무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무왕은 서동요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란다. 서동이라는 뜻은 마를 캐는 아이라는 뜻인데, 왕위에 오르기 전에 마를 캐는 생활을 하다가 신하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단다. 서동요는 백제의 무왕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삼국유사에만 나오는 이야기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는구나. 서동요에서 등장하는 공주는 백제의 29대 법왕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구나. 30대 무왕은 40 10개월간 재위하면서, 안정화를 찾고 영토 수복에 노력을 했어. 신라를 공격하여 옛땅을 되찾기도 했지만, 신라는 당에 도움을 요청했어. 그래서 백제도 당의 의중을 살펴서 공격에 소극적이기도 했어. 말년기에는 풍류와 불교에 빠지기도 했대. 그리고 법왕 때 짓기 시작한 왕흥사를 이때 창건되었다고 하는구나.

백제의 마지막 31대 왕은 의자왕이야. 백제의 마지막 왕이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도 나와서 너희들도 아는 왕이잖니.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처음 즉위했을 때는 신라를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키는 등 성과를 냈어. 위기에 빠진 신라는 고구려에 화친을 요청했다가 거절 당하고 당에 구원을 요청했어. 당이 개입하면서 의자왕은 전쟁은 멈추었지만, 당의 지원을 받은 신라가 공격해 왔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공격해 왔고 초반에는 백제가 우세해서 승리를 거두었단다. 하지만 의자왕이 자만에 빠지고 향락에 빠지면서 국정을 소홀히 하게 되었어. 나름 왕 노릇 잘 하던 의자왕이 왜 그런 생활을 했을까? 궁금하구나. 의자의 그런 추태를 보다 못한 성충이라는 신하가 충언을 했지만, 오히려 성충을 감옥에 보냈다고 하는구나.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와 신라군의 공격이 이어졌고, 계백 장군이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결국 방어에 실패하고 말았단다. 의자왕은 사비성을 버리고 후퇴하여 웅진성으로 피신했지만 결국 항복하고 당으로 압송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백제는 700년 가까이 이어져 오던 역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때는 660년이었어. 참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우리가 여행했던 부여에서 본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 탑의 1층의 4개 면에는 어떤 글씨가 잔뜩 써 있다고 했어. 실제로 보면 오래되었지만 한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단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무찌르고 자신의 승전 내용을 파 넣은 것이라고 하더구나. , 아픈 역사의 내용이 천 년이 넘어도 지워지지 않고 그곳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었어.

백제의 역사를 읽긴 했는데, 그 기억이 얼마나 오래갈 지 모르겠구나. 그래서 나중에라도 다시 보려고 좀 자세히 적다 보니 길이 엄청 길어졌구나. 아빠의 이번 편지를 다 읽었다면 고생깨나 했겠구나.^^ <한 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괜찮았단다. <한 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한 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도 함 읽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삼국사기>는 백제를 건국한 비류와 온조의 출생에 대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전하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이렇듯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왕조가 몰락한 뒤에도 무려 3년 동안이나 이어진 백제부흥운동은 백제인들의 무서운 저력을 보여준 사건으로 678년 동안 타오르다 한 줌의 재로 사그라진 백제 왕조에 대한 진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백제라는 나라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백제가 대륙에 영토를 개척한 서진 이후부터였다. 그 전까지 중국에선 한반도 중부 이남을 삼한의 땅으로 인식했고, 때문에 백제가 대륙에 진출하기 전에는 삼한의 맹주인 마한과 마한의 중심국인 목지국에 의해 그 땅이 다스려지고 있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백제가 처음 대륙에 진출할 때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백제를 마한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송서>와 <남제서>, <위서>, <주서>에 백제 편은 있으나 신라 편은 없는 것도 당시에 중국은 신라를 진한의 한 소국으로 인식한 반면, 백제는 대륙에 진출한 비교적 큰 나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남사>에서는 신라의 위치를 ‘백제의 동남쪽 5천여 리에 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백제의 대륙 영토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다. 5천 리라는 개념은 백제를 대륙에 설정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수치인 까닭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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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6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12-15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12-16 18:3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고맙습니다~~^^
어느덧 일년이 또 휘리릭 가버렸네요...
서니데이 님도 더불어 축하드립니다~~
주말에 무서운 동장군이 오신다고 하는데,
따뜻한 곳에서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23-01-06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bookholic 2023-01-07 22:3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고맙습니다~~^^
토요일 하루도 그냥 휙 가버렸습니다...
미세먼지가 많은 주말인데, 미세먼지 주의하시면서 즐거운 휴일 되세요~~

thkang1001 2023-01-07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3-01-07 22:35   좋아요 1 | URL
thkang1001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3년 새해 첫 주말 잘 보내고 계신지요?
thkang1001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 늘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thkang1001 2023-01-08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