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들 - 2002년 노무현 대선승리의 기록
구술자 12인 지음, 노무현재단 엮음 / 생각의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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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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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재단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삶, 정책, 철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서 책으로 엮는 일도 한단다. 그래서 많은 책들을 냈고, 아빠는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을 즐겨 읽는단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책을 통해서 만나는 거지.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도 노무현 재단이 펴낸 책이란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고의 순간을 담은 책.

2002. 민주당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되고,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고 다시 일어나고, 정몽준과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내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그 드라마 같은 일 년노무현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그들은 노무현과 함께 하면서, 힘들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냈을 거야.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때의 순간들로 인해 아빠도 그 시절로 돌아갔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곤 했단다. 경선 때마다 울려 퍼진 노무현의 명연설들지금 다시 들어도 감동이 다시 아빠의 몸을 휘감는구나. 이 책의 구술자들은 각자 노무현과 처음 만난 게 된 이야기와 2002년 노무현과 함께 한 이야기를 했단다. 아빠에게도 노무현을 처음 알게 된 때와(아빠는 만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아빠의 2002년을 이야기해 보라면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해 보았어.

한번 짧게 줄여서 이야기해볼께. 아직도 모든 것들이 생생하구나. 아빠가 노무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988년 청문회 때야. 아빠가 그때는 어려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았지, 그가 왜 뉴스에 오르내리고 그랬는지도 몰랐단다. 그 이후 아빠는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정치에는 담을 쌓고 살았단다. 대학 시절에는 정치에 관심을 둘 만도 했는데, 아빠는 그때도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 무책임한 청년이었지. 그러다가 사회 초년생 때 우연히 책을 한 권 읽었단다.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노무현의 팬이 되어서 노사모에 가입을 했고, 노사모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죽돌이가 되었단다. 노무현이 팬이 되고 나서야 우리나라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단다. 노무현이 정치인이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괜찮은 정치인들이 몇몇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었단다. 정말 극적인 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단다. 제주부터 시작해서 주말마다 전국을 순회하명서 진행된 경선.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어. 그래서 가급적 주말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경선 결과 방송을 보곤 했단다. 그리고 극적인 순간들을 함께 했지. 광주에서 승리는 정말 최고였어. 가끔 주말 약속이 있으면 결과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어. 당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해서 간단한 뉴스를 문자를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그 데이터 요금이 비쌌던 시절이었지. 그런데 아빠는 경선 결과 궁금해서 결과가 기사로 나올 때까지 몇 번을 접속했는지 모른단다. 결과를 보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환호했단다. 그렇게 민주당 경선에서 최종 승리를 한 노무현. 그 때부터 아빠는 지인들에게 노무현에 대한 홍보를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칠 정도로 이야기했던 것 같구나. 보통 회사에서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조심하는 편인데, 당시 아빠는 철모르던 젊은이였기 때문에 대놓고 지지를 호소했었단다. 그러다가 반대편 지지자들을 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 설전을 벌이기도 했어. 당시에는 상대방 진영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틀리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렇게 노무현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칠 때나 좋을 때나 한결같이 그를 응원했단다. 그리고 운명의 정몽준과 노무현의 단일화. 그 결정이 정해진 날, 아빠는 중국 출장에 가 있었어. 중국에서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직도 그 장소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나는구나. , 이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선거 하루 전 속 좁은 정몽준의 지지 철회. 누군가는 절망을 했을 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아빠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깟 일로 하루 아침에 지지자를 쉽게 바꾸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승리를 장담했어. 그래서 그 승리의 순간을 축하하려고, 아빠는 친구, 후배들과 함께 술자리에 함께 했어. 한 잔 하면서 6시 출구 조사 결과를 지켜봤단다. 그리고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어. 그때 다시 한번 다함께 환호성을 보냈지. 선거 결과도 출구 조사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단다. 정말 아직도 생생한 2002년 일 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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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친노라면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아빠는 왜 친노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님한테 열등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아빠처럼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친노가 되고 싶어 안달이거든. 그런데, 이 책의 구술자 중에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이야기했단다. 친노는 없다고그저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그 말에 일리가 있었단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등감에 취해 비판하지 말고, 노무현이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정치를 했나 잘 생각해보고,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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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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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을 기적이라고도 하고, 한 편의 드라마라고도 하고, 하늘이 선택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란다. 그리고 노무현이 2002년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유시민의 말도 동의한단다. 오늘날이었다면 아마 대통령이 되지 어려웠을 거야. 유시민은 상당 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캐릭터를 가진 분이 안 생길 거라고 했어. 그런데 아빠는 유시민도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가 정치를 할 때는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정치를 그만두고, 전직 작가가 되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빠도 유시민이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뜻도 존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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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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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얼마 전에 <무현, 두 도시 이야기>란 영화를 봤단다. 영화를 보면서, 아빠는 몰래몰래 눈물을 흘렸는데, 옆 좌석 어떤 아저씨는 대놓고 펑펑 울고 있더구나. 최근 우리나라 최악의 대통령으로 온 백성들이 분노하는 시절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 같더구나. 그 영화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그나저나 그 분은 왜 물러나지 않고, 온갖 욕을 다 드시고 계시는지 모르겠구나.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생각을 하고 있나? 그래도 오늘 간만에 기분 좋은 소식이 여의도로부터 들려왔더구나. 하지만 이럴수록 방심하지 말아야 한단다. 그 날까지 고고.

 

 

 

 

 

 

 

 

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왜?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 ‘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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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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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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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지금까지 김영하의 소설은 네 권을 읽었단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열광적인 팬이 되기에는 아빠의 기대치에는 약간 못 미친 책들도 있었어. 그래도 기회 되면 읽어볼 만한 작가 명단에는 포함되는 그런 작가란다. (아빠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야). 그런데, 그의 산문집은 어떨까? 하고 한번 집어 들어보았단다. 이 책은 <보다>, <말하다>, <읽다>로 이어지는 김영하 산문 삼부작의 마지막 책이라고 하는구나. <보다>, <말하다>는 아직 읽지 않았어. 연재 소설도 아니고 순서야 중요하지 않겠지. 이번에 읽은 <읽다>라는 책은 책에 관한 이야기였단다. 특히 소설에 관한 이야기들이야.

요즘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더구나. 아빠도 그러고 싶긴 한데, 낯가림도 있고, 여유도 없으니, 그런 것을 너희들에게 독서편지를 쓰면서 대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아빠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 책은 작가 김영하가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책 토론회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 이 책에 소개된 책들 중에서 아빠가 읽은 책들이 꽤 있었단다. 김영하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어보면서, 아빠가 읽었던 느낌을 떠올리게 할 수 있었어. 어떤 부분은 격하게 공감을 하는 부분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아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로 알게 되기도 했단다. 예를 들어 아빠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일리아드>를 그저 스토리만 쫓아가면서 읽었는데, 김영하의 설명에 따르면 작가의 구성력이 돋보였다고 하더구나. 원래 그 이전부터 전래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지은이가 새롭게 구성을 해서,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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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처럼 소포클레스 역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연대기적 서술을 포기합니다. 게다가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몇 시간 안에 끝을 내야 하는 연극의 대본이었으니 과감한 압축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연극이 시작되면 우리는 이미 왕좌에 오른 오이디푸스를 보게 됩니다. 이런 서사기법을결정적 순간의 바로 직전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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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나, 위인들에 대해서도 많은 작가들이 그 나름대로 소설로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생각이 나더구나. 소설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구성력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야.

책 이야기를 하면서, 책이 가득 모여있는 도서관 이야기를 하면서,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의 말에 아빠는 공감을 했단다. 많이 꽂혀 있는 책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그 말. 아빠가 요즘은 책을 읽는 것보다 모으는 것에 더 뿌듯함을 느끼거든. 너희들이 웃으면서, 아빠 읽지 않으면서 왜 또 책을 사냐고 묻기도 했잖아. 그런데, 그 책을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고 바라만 봐도 뿌듯함을 느끼곤 했는데, 그것이 아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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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다시피 도서관은 책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어떤 신성함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저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등은 묘비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은 죽은 이와 산 자가 가장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가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신경쓰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책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바로 도서관일 겁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대담을 하던 장클로드 카리에르가내가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답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 돼요. 그것은 어떤 강한 흥미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할 대, 책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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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은 대부분이 우리가 보통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이란다. 고전이라고 하면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장르로 보면 고전 소설과 비소설 고전이 있을 거야. 이 책에서는 소설 장르의 고전을 소개해 주었어.

사람들은 고전은 왜 읽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한단다. 무엇인가 거창한 답변이 있을 수도 있고, 고전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읽기도 전에 고전은 어려워서 도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평균적으로 봤을 때, 아빠가 생각하기에도 고전이 오늘날 소설보다 읽기가 어려운 것은 맞는 것 같아. 그럼에도 아빠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구나. 몇몇 고전을 읽으면서 재미를 발견한 이후로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깼어. 간혹 어려운 고전을 만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다들 재미를 가지고 있었단다.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한단다.

누군가 아빠한테 고전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에서도 소개한 <돈 키호테>, <마담 보바리>도 포함될 것 같구나. 그리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일순위로 뽑고 싶더구나. 아빠가 읽은 고전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거든결론은 아빠는 고전을 읽기 전에 늘 이 책은 또 어떤 재미를 줄까? 기대를 하면서 첫 장을 넘긴단다. 그런데 소설이 아닌 고전의 경우는 재미를 기대하는 것보다, 과연 내가 얼마나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거나 얼마나 어렵게 써 있나? 를 생각하면서 책을 편단다. 지은이 김영하는 고전이라는 것에 당대의 진부함을 깨는 것들이 고전이 된다고 했단다. 그렇게 당대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 되고, 그것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된 거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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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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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은이 김영하는 책 마지막 부분에서 정리하면서, 책 읽는 것을 아주 거창하게 정리하였단다. 책을 읽는 것은 우주에 접속하는 거라고 말이야. 세상에 수많은 책들을 다 읽기에는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단다. 그리고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그 생명력 또한 무척 길단다. 그 책을 쓴 작가나 그 책들이 초판본을 읽은 이들은 이 세상에 모두 사라졌지만, 그 책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새로운 독자들을 만난단다. 그래서 우주와 같다는 거야. 이 광활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우주 속에서 우리는 아주 좁은 지역에 잠시 살다가 사라지니까 말이야. 우리가 삶을 마감해도 도 다른 사람들은 <돈 키호테>를 읽고, <오딧세이아>를 읽고 <마담 보바리>를 읽을 테니 말이야. 거창한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적절한 비유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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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 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비록 우리 현대인의 시야가 마치 요제프 K의 그것처럼 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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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요즘 바빠서 우주에 접속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리고 우주 여행을 하고 다녀와서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시간을 내기 어렵구나. 그래서 이렇게 한 밤 중에 눈을 비비며, 잠을 쫓아 가며 쓰고 있단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 글은 거의 비몽사몽에 썼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야.^^ , 이제 아빠도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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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평전 (양장) - 개정판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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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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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김삼웅이 쓴 인물 평전을 좋아한단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가 쓴 <장준하 평전>이라는 책이란다. 장준하.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오기에는 너무 최근 사람이거나, 군사 정권이 만든 국정 교과서에 나오기에 그의 삶이 너무 독재에 저항을 했거나, 아무튼 교과서에 그가 나오지는 않았어. 그리고 그는 아빠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빠가 그를 제대로 알 기회는 없었단다. 어른이 되고 나서, 현대사에 관한 책들을 통해서, 그의 단편적인 지식들을 알게 되었고, 그가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당시 그의 죽음은 실족사로 기록되었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을 실족사로 보지 않았고,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그의 죽음의 배후에는 권력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하는구나. 당시 권력의 후세가 오늘날의 권력을 잡고 있는데, 그야말로 나라를 말아 드신 것 같더구나. 모든 백성들이 분노를 하고 있는 요즘이란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고 계신 것 같구나. 권력자의 부정부패는 참을 수 있지만, 이런 수치심은 참을 수 없더구나. 이런 국가망신이 또 어디 있겠니. 어제는 아빠가 꿈을 꾸었는데, 그 분이 곧바로 물러나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단다. 너무 기쁜 나머지 눈을 번쩍 떴는데, 꿈이었던 거야. 장준하 선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고 계신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이 만들려고 했던 대한민국은 이런 건 아닐 텐데실망을 하시다가도 이백만 백성들의 성숙한 시위 문화에 뿌듯해하면서, 이제 곧 대한민국은 정상궤도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단다. , 그러면 이제 그런 희망을 가져보면서, 장준하 선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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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8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장준하가 실족사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당시 장준하는 유신 독재 체제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던 재야 인사였고, 종교계, 정치권, 재야 인사를 모두 아우르는 거사를 계획하고 있던 시기였단다. 75도 경사의 낭떠러지에서 발견된 장준하는 옷에 아무런 생채기가 없었고, 손이나 다른 곳에 아무런 골절이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저 머리 둔부에만 함몰이 유일한 상처였대, 그러면서 실족사라고 하니, 누가 믿겠니? 하지만, 서슬 퍼런 유신 정권 하에서 그 누구도 타살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어.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뻔히 알고 있고민주화 정권이 들어와서도 한참이 지난 2004년과 2012년에 다시 조사를 하였고, 그의 결과는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감식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명백히 타살이라고 도장 찍은 것은 아니래. 아직도 의문사로 남아 있는 거야. 20대 국회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규명 특별법'을 재발의한다고 하니, 앞으로 추이를 살펴보아야겠구나.

 

2.

장준하는 압록강이 바로 보이는 의주에서 태어나 삭주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구나. 그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대. 그는 신성 중학교에 다니면서, 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는데, 방학마다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르쳤어. 이때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는데, 이때부터 일본에 대한 저항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신성 중학교 옆 동네에 오산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에 도깨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선생님이 있어서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도 했다는구나. 그 선생님이 나중에 오랜 인연을 맺게 되는 함석헌이었다고 하는구나. 장준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할 수 없었고, 바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단다. 그러다가 나중에 일본 유학을 가게 되었어. 당시는 1940년대로 일본의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던 시기였어. 학도병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이 끌려가고, 젊은 여인들은 정신대로 끌려가던 시기였단다. 장준하는 교직생활을 할 때 그가 가르쳤던 김희숙과 편지를 주고 받으면 연정을 키워왔는데, 김희숙 또한 정신대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을 해서 김희숙과 결혼을 했단다. 유부녀는 정신대로 끌고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는 그 나름의 계획을 세웠어. 일본 학도병에 지원했다가 상황을 봐서 중국으로 망명을 하겠다는 계획이었어. 결혼을 하자마자 장준하는 일본 학도병에 지원을 했고, 훈련 도중에 기회를 봐서 동료 4명과 함께 탈출을 하였고, 중국군 유격대에 들어가게 되었단다.

그렇게 쉽게 중국군 유격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중국군 유격대에 있었던 김준엽을 만났기 때문이란다. 장준하 일행은 중국군과 함께 있었지만, 무기도 없고, 그저 제식 훈련만 하고 있었어. 그리고 중국군이 팔로군과 자기 민족들까지 싸우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을 했단다. 장준하 일행은 중국군 소속의 임천군관학교에서 머물렀는데, 무기도 없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는 정신이라도 무장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잡지 <등불>을 발행했어. 거의 문집 수준의 잡지였지만, 앞으로 그의 앞길에 늘 잡지와 함께 하는 출발점이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었단다. 그들은 중대 결심하게 된단다. 당시 임천군관학교에는 삼십여 명의 조선인 청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로 가기로 했어. 가는 길은 도적도 많고, 중국군의 내전도 있었고,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는 일본군들도 있었어. 그 길도 가까운 길이 아니었단다. 6000리 길이었어. 그것도 추운 겨울이었어. 하지만, 장준하 일행은 그 먼 길을 큰 피해 없이 뚫고 지나와 중경 임시정부의 보금자리에 도착을 했단다. 김구 선생이 직접 환영을 해주었으니, 감격이 얼마나 컸겠냐하지만, 장준하는 이내 실망을 하게 되었단다. 임정 요인들은 파벌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야. 독립 투쟁을 위해 먼 길을 헤쳐온 장준하의 눈에는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지. 그는 임정 요인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 그는 분노에 찬 독설을 거침없이 해냈어. 그 자리에 있던 임정 요인들은 크게 반성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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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문제점을 국무위원과 교포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고발하기로 작정했다. 국내정세의 보고로 분위기가 처연해지자, 임시정부 내부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요즘 우리는 이곳을 하루빨리 떠나자고 말하고 있다. 나도 떠나고 싶다. 오히려 오지 않고 여러분을 계속 존경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지 모를 일이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에 들어가고 싶다. 일군에 가면 항공대에 들어가 중경폭격을 자원, 이 임정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

선생님들은 왜놈들에게 받은 설움을 다 잊으셨는가. 그 설욕의 뜻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분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러 온 것이지. 결코 여러분의 이용물이 되고자 이를 악물고 헤매여 온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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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임시정부에 머무르면서, <등불>이라는 잡지를 다시 만들었어. 그는 광복군 생활을 하다가 서안에서 미군의 첩보원인 OSS 대원이 되어 훈련을 받게 되었어. 이곳에서 이범석 장군을 만났어. 장준하는 OSS 대원으로써 국내 진공 정진대에 선정되어 국내 진입 훈련을 받았어. 하지만, 국내 진입 바로 직전, 일본은 무조건 항목을 하게 되고, 길고 길었던 일제 치하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그래서 그는 광복군 신분으로 8 18일 귀국하였는데, 아직 일본군이 다 물러난 것이 아니었는지, 여의도 공항에서 일본군과 대치하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단다. 그리고 김구 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단다.

임시정부에서 맺은 인연으로 김구 주석을 보좌하기 시작했지. 그러나 갑작스러운 해방은 행복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어. 나라는 대혼란이었어. 남과 북으로 나뉘는 조짐이 보이고, 남한 내에서도 권력과 탐욕에 눈 먼 이들이 있었어. 장준하는 김구를 보좌하다가 OSS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범석을 돕기 위해 김구를 떠났는데, 예전의 이범석이 아닌 모습에 실망을 하고 이범석을 떠나게 되었단다. 참고로, 장준하는 자신의 항일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는데, 그 책의 제목은 <돌베개>란다. 우리 집에 이 책도 읽는데, 아빠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어. 조만간에 읽어봐야겠구나.

 

3. 

해방 이후 5년도 안되어 대한민국은 최악의 시간을 겪게 된단다. 장준하도 피난행렬을 따라 부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는 그곳에서 <사상계>라는 잡지를 발행하게 된단다. 그때는 알았을까? 평생을 같이 하게 될 잡지였다는 것을 말이야. 물론 초기에는 무척 힘들었지. 지식인들을 위한 잡지라고 해야 할까? <사상계>는 지식인들과 학생들 사이로 조금씩조금씩 인기를 끌다가 함석헌을 만나게 되었단다. 예전에 이웃동네의 유명한 선생님으로 알고 있던 함석헌. 당시 큰 활동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장준하의 <사상계>에서 그의 글을 싣기 시작했고, 이승만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본격적인 매체가 된 거야. 그리고 <사상계>는 최고의 절정기를 이루게 되었대. 길거리에서 젊은이라면 <사상계>를 들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로 생각할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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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가 들사람 함석헌을 필자로발굴한 것은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장준하와 함석헌은 <사상계>를 통해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이후 한국 사상계와 정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언론사와 반독재 민권운동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장준하가 존재하므로 <사상계>가 있었고, 함석헌의 존재로 인해 <사상계>는 그 존재의 빛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사상계>를 매체로 하여 함석헌과 장준하의 가치와 역량은 상승 효과를 띠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사상계>가 사라진 뒤에도 반독재투쟁을 함께하면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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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창간했을 당시에는 계몽지, 교양지의 성격을 띠던 <사상계>는 정치평론지 성격을 띠면서 권력의 탄압을 받기 시작했단다. <사상계>의 기자였던 노종호라는 사람이 <사상계>를 네 시기를 구분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읽어보면, <사상계>가 어떤 잡지였는지,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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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는 계몽지, 교양지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기로서, 1953년 창간에서부터 1958년에 걸치는 6년간이다. 대체로 이 시기에 학생층에 많은 독자를 갖고 있었는데, 철학, 역사, 교육, 사회, 문화예술과 관련된 지적 갈등을 풀어주었다고 평가된다.

2기는 정치평론지적 성격이 두드러진 시기로서, 1959년에서 1962년에 걸치는 4년간이다. 이 시기는 정치적 변동이 격심해지는 시기로서, 자유당 정권말기에서 4.19 혁명과 이 박사의 하야,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혼란, 5.16 군사쿠데타와 민주당 정권의 붕괴 그리고 군정이라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상계>는 정치정세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반독재, 반부패, 반봉건의 필봉을 휘두르면서 민주정치의 원론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였다.

3기는 정치투쟁적 성격이 두드러진 시기로서, 1963년에서 1965년에 걸치는 2년간이다. 이 시기는 언론인으로서의 장준하 선생이 야당정치인, 반체제 민주투사, 통일운동 지도자로서 그 역할이 바뀌어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사상계>쪽에서 보면 <사상계>의 중심지도력이 해체되는 시기, 공동화되는 시기라 하겠고, 이로써 <사상계>의 시대적 임무와 역할이 끝나게 되는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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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사상계>를 통해 이승만 독재에 대한 강도를 높여갔고, 당시 사람들은 <사상계>를 보면서, 이승만 독재에 대한 분노를 키워갔단다. 그리고 분노의 결정체는 4.19 혁명으로 크게 타올랐으며, 결국 백성의 무서움을 알고 이승만이 하야를 했단다. 다시 오늘날 상황이 겹쳐지더구나. 백성들의 90% 이상이 허수아비 정권에 분노를 하고 있고, 자제력을 가지고 촛불로 분노를 태우고 있는데, 허수아비는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아직도 백성 무서운 줄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언제까지 자제를 가지고 촛불만 들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자신이 숨기고 있던 약점이 얼마나 더 들어나야 그 자리에서 물러날 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이 떨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허수아비의 약점을 꼭 쥐고, 자신에게 엄한 짓 하면 다 까발리겠다고 협박하던 그. 이젠 허수아비의 약점을 모든 백성들이 알게 되었으니, 그가 쥐고 있는 패가 사라져 버리게 된 거야. 그러면, 이제 그도 더 이상의 방패가 사라졌으니, 이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무척 기대되는구나. 아빠가 딴 데로 빠져버렸네.^^

다시 장준하 선생의 이야기를 해줄께. 4.19 혁명이 일어났지만,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혼란만 더 부추겼단다. 아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총칼로 정리한 이가 있으니 바로 박정희였단다. 장준하는 처음에는 5.16 쿠데타를 반겼단다. 혼란스러운 정국을 정리해 주었으니그런데, 박정희가 정권을 찬탈할 것까지는 몰랐던 것 같더구나. 박정희의 속마음을 곧바로 알게 되고, 군정에 반대하여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단다. 독재 군사 정권은 권력을 잡고 무서울 게 없었어. 그들에게는 권력만 있는 게 아니라 총칼도 있었어. 부패 언론인으로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였어함석헌과 장준하는 같이 체포되기도 했단다. 그래서 <사상계>도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어. 이에 굴하지 않고, <사상계>는 더욱 날카로운 펜대로 바꾸었단다. 장준하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로 하고, 감옥에 있을 때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당선까지 되었단다.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사상계>를 발행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넘겼는데, 그 이후 <사상계>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단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재야에서 반 독재 저항 운동을 하였단다. 박정희가 유신 헌법을 들고 나왔을 때는 박정희한테 공개 서한을 보내는 증 더 강도 높은 저항 운동을 벌였어. 끈질긴 독재를 몰아내자는 투쟁을 벌였던 장준하를 없애기로 했겠지. 그렇게 강렬하게 타오르던 장준하 선생의 투쟁불꽃은 독재에 의해 꺼지고 말았던 것이란다. 정의를 부르짖는 것이 죽음을 내놓고 해야 하던 시절이었어. 그 시절 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했었는데, 최근에는 몸소 경험하게 해주고 있으니, 정말 괴롭구나. 너희들이 자랐을 때는 우리나라가 정의롭고 합리적인 나라였으면 좋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도 촛불을 함께 밝혀야 할 것 같구나. 그렇게 모인 수백만 개의 촛불은 아마 밝은 미래를 밝혀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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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4-0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안중근 의사 추모제때 장준하 선생 아드님을 만났었습니다. 이 서평을 보니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bookholic 2018-04-07 21:15   좋아요 1 | URL
억울한 죽음을 겪음 가족들의 고통이 가장 컸을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의 장준하 선생의 값진 삶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16-17)

그런데, 여담이지만, 지옥이라는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정의를 내린 시인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으로, 브렌덴 케널리라는 아일랜드 사람인데,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이 시인이 쓴 시에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친구와의 우정을 그냥 당셩언 것으로 여긴다든지, 환한 햇살 속에 익어가는 옥수수밭을 보면서도 경이의 감정이 솟아오르지 않는 게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인은 그런 경이의 감정이 사라진 상태, 지옥이란 다른 말로 하면 권력욕망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이로움이 죽을 때, 권력(욕망)이 태어난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인간이 세상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저 시인에 따르면, 인간이 권력을 탐하고 남을 지배하려거나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은 그의 정신과 영혼이 병들었거나 메말라버린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인간은 사람 간의 관계(우정)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혹은 햇빛과 바람과 구름의 은혜로 익어가는 곡식을 보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자연의 운행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는 지옥에서 산다는 것이죠. 참으로 탁월한 성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

급박하다는 것은 오늘의 정치상황 때문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 생존의 토대 자체가 붕괴한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세계의 정치는 마냥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본적 교양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부동산 부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끈느 것을 보고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의 대두를 걱정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게 옳습니다. 그동안 지배층이 정당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가면을 쓰고 정치랍시고 해온 게 실은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대중들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봐야죠. 소위 엘리트들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라고 봐야죠.

 

(47)

이 두 가지 용어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활성단층은 지구의 40억 년 역사 중 180만 년전에 시작된 제4기에 형성된 단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활성단층은 최근 ‘180만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을 의미한다. 활동성단증의 정의는 두 가지이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 또는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으로 정의된다. 언뜻 보면 두 가지 정의가 또는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활동성단층이 되므로 더 보수적인 기준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꼼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개념이 입증하기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이미 움직인 단층에서 또 한번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 단층면이 바스러지기 때문에 그 단층이 한 번 움직인 것인지 두 번 이상 움직인 것인 확인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활동성단층의 정의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정의뿐이다. 다시 말해서 핵산업계는 (180만 년 내에 움직인) 활성단층이 아니라 (3 5천 년 내에 움직인) 활동성단층에서만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53)

9 12일 경주지진 이후 440회가 넘는 여진이 2주째 지속되고 있다. 많은 경주시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에 지쳐 있다. 친척 집에 피신을 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원전사고의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진도 6.5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이라지만 설계대로 시공되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연 그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 5.8의 지진이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벌써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과 활동성단층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나는 이 정도의 사실들 앞에서 우리 국민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충분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63)

그럼에도 남북한 사이의 우발적 상황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존재한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호전적 언행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고 있는 마찬가지의 강경한 언사가 그런 우려를 키운다.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도 박근혜의 발언이 북한의 체제 붕괴라는 소망적 사고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김정은 뿐만 아니라 박근혜 역시 불안한 존재로 여긴다. 킬리포니아 몬테레이의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연구원은 북한의 9월 핵실험 직후 인터뷰에서, 한국의 일부 관리들이 북한 지도부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우혀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김정은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설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74)

끝으로 10년 가까이 이어진 한국 보수정권의 역할을 짚고 싶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조그만 더 밀면 쓰러진다는 이른바 북한 붕괴론에 사로잡혀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를 썼다. 2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한국정부가 미 의회와 싱크탱크에 쓰는 돈 등을 통해 북한문제와 관련해 워싱톤에서 행사는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오바마 정부는 조지 W. 부시와 노무현 정권이 종종 이견을 빚는 것을 본 뒤에 한국이 반대하는 정책은 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테두리 내에서 대북정책을 폈다. 오바마 재임 중 북한과 딱 한 번 시도한 2.29 합의 때에도 남북한이 먼저 만나는 모양새를 취하게 해줌으로써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정부의 입장에 반하면 연구지원금이 행사 협찬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전문가들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비난을 자제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이 통일대박론을 펴고 그런 연구에 활발한 지원을 하면서 어떻게 통일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빠진 채,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춘 수백만 달러짜리 연구 보고서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95)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고 있으면 절로 나온다. 이건 뭐 합리적이지도 않고 최소한의 지켜야할 예의도 보이지 않는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늘 그러하듯이 기업인들의 비리는 사면되고 정치인들의 부패도 은폐된다. 권력의 심각한 부패만큼 걱정스러운 건 시민들의 둔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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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 - 김상옥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 3
이성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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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이원규의 <약산 김원봉>이란 책을 본 적이 있어. 그 책에 나오는 의열단 단원들의 활약상에 크게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단다. 작년에 큰 인기를 끈 영화 <암살>과 올해 인기를 끈 영화 <밀정> 등에서 잇달아 의열단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의열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단다. 아빠도 예전에 읽은 <약산 김원봉>을 다시 들쳐보기도 했어. 그리고 김상옥이라는 매력적인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을 끄집어냈단다.

혈혈단신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맞서 싸운 김상옥. 아빠는 혹시 그에 관한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어. 두 권 정도가 있더구나. 그 중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경성을 쏘다>라는 책이 있어서 산 것이란다. 역사 교양서 내지 평전의 장르라고 기대를 했는데, 이 책은 소설이더구나. 김상옥을 주인공으로 하는…. 아빠가 생각했던 장르가 달라서,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통해서 김상옥이라는 사람을 대략 알게 되었고, 이중스파이로 그려진 일본경찰 황옥이라는 사람을 새로 알게 되었어. 이 소설에서는 김상옥과 황옥이 서로 잘 아는 사이로 나왔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이 만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하더구나. 소설적인 장치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지은이는 후기에 적어 놓았단다.

아참, 아빠가 아직 영화 <밀정>을 보지 못했는데, <밀정>에 송강호가 연기를 한 일본 경찰의 실제 모델이 황옥이라고 하더구나. 시간이 되면 <밀정>이라는 영화를 한 번 봐야겠구나.

 

1.

그는 삼일 운동이 일어난 후에 독립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는 조직도 없고, 그렇다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과 인맥도 없었어. 그저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신문을 만드는 것으로 독립운동을 했단다. 그는 서울역 폭파 사건에 감명을 받고 그도 폭파 계획을 세우게 된단다. 서울역 폭파 사건이라고 함은, 일본 경찰의 우두머리 중 한 명인 사이토를 겨냥하여 폭탄을 던졌지만, 아쉽게 그를 죽이지 못하고 미수에 그친 사건이란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폭파사건은 큰 이슈가 되었어.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그 폭탄을 던진 이가 다름 아닌 65세의 노인이었다는 사실이야. 강우규. 그가 배후도 없이 혼자 주도해서 벌인 사건이었단다. 김상옥은 그 사건에 감명을 받고, 경찰서 폭파 계획을 했지만, 그마저도 사전에 발각이 되어 도망을 가게 되었단다.  그때 그는 상해로 망명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임시정부의 일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의열단을 이끌고 있는 김원봉을 만난 이후 그는 의열단이 되었어. 김상옥은 김원봉과 함께 대대적인 투쟁계획을 세웠어. 그 타겟은 서울로 정했지. 그런데, 누가 폭탄을 삼성한 경계를 뚫고 서울로 가지고 가느냐가 문제였어. 그때 이야기된 이가 일본 경찰로 있는 황옥이라는 사람이었단다. 황옥은 일본 경찰에 숨어 있는 밀정이라는 거야. 하지만, 백프로 믿을 수는 없었단다. 김원봉은 직접 황옥을 만나보기로 했어. 황옥은 출장을 핑계로 톈진에 왔고, 김원봉 일행도 톈진으로 향했어. 그곳에서 그들은 한 달 동안 만나면서, 서로 믿음을 쌓게 되었고, 서울에서 폭파 계획을 세웠어. 그런데도 아직 의열단 내부에서도 황옥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어. 김상옥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어. 하지만, 김원봉은 황옥을 신뢰했고, 결국 황옥이 폭탄을 서울로 밀반입하게 되었단다.

 

2.

황옥이 폭탄과 함께 먼저 서울로 향했고, 김상옥은 얼어 붙은 압록강을 건너서 국내로 들어왔단다. 경성에 와서 동생 집에 숨어 지내곤 했지. 그런데 사전에 약속된 날짜가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었어. 어렵게 황옥과 접선에 성공했는데, 발각되었다고 했어. 폭탄이 경찰서에 있다고 했어. 누가 발설했는지 모른다고 했고, 현재로서는 피해를 최소하는 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어. 그렇게 접선이 끝나긴 했는데, 김상옥은 아무래도 황옥이 계속 의심이 갔어.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는 자신도 잡힐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 고심 끝에 그는 단독으로 행동하기로 했어. 그리고 혈혈단신의 몸으로 종로경찰서에 포탄을 투척하고, 맞서 싸워서 인명 피해를 주었단다. 그리고 김상옥은 일본경찰을 피해 도망을 갔어. 열흘 동안 신출귀몰하면서 도망을 다녔는데, 결국 일본경찰에 위치가 노출되었고, 남아 있는 총으로 총격전을 벌었고, 나머지 한 방으로 자결을 했단다. 그렇게 그의 꿈은 미완으로 남게 되었단다.

황옥… 그는 과연 독립군의 밀정이 과연 맞는가. 아직도 그것은 물음표로 남아 있다고 하더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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