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제는 고인이 된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0>를 읽었단다. 움베르토의 에코의 소설은 <장미의 이름> 한 편만 읽어보았단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재미가 없지 않았지만, 아주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있단다. 그리고 몇 년 전 그의 부음을 들었고, 그의 마지막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어. 이젠 그는 가고 없고, 그의 작품들만 남았구나. 언젠가는 고전으로 남을 그의 작품들그의 마지막 소설은 1권짜리였고, 책도 그리 두껍지 않아서 읽어볼 수 있겠다 싶었어.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그를 추모하면서 말이야제목은 제0.


1.

주인공 콜론나는 자신을 살해하려는 자가 있다고, 그래서 자기 집을 침입한 자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단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알고 있었어. 그 일을 이야기하기 위해 몇 달 전에 시작한 이야기를 하게 된단다.

주인공 콜론나는 그냥 그런 대필 작가였단다. 그런데 어느날 시메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새로 창간하는 신문의 편집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는단다. 그 신문의 이름은 내일이라는 뜻의 <도마니>이었고, 시메이는 이 신문의 주필이었단다. 그런데 시메이가 말하길 이 신문은 출간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한가지 더 부탁을 했어. 신문사 편집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해 달라는 것이야. 그것을 나중에 시메이는 책으로 출간하려는 것이었어. 시메이 주필은 이미 기자들을 여섯 명이나 뽑아놓았는데, 신문이 창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기자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단다.

콜론나와 기자들의 만남. 그들은 이제 일 년 뒤에 창간될 신문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단다. 그러면서, 신문 기사를 어떻게 써야만 어떻게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 공유한단다. 그들은 창간 전 예비호로 0, 0-1, 0-2이렇게 계획을 잡았어.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서 뉴스를 보게 될 텐데, 절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단다. 그 안에는 기자들의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고, 교묘하게 왜곡되어 전달하고 있단다. 그걸 감안하면서 뉴스를 봐야 돼.. 이 소설에서도 그런 언론의 문제점을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준단다.

=====================

(61)

신문도 거짓말을 하고 역사학자들도 거짓말을 해.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도 거짓말을 해. 1년 전 걸프 전쟁 때 뉴스에서 가마우지의 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기억나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할 때 미군의 전전을 지연시키기 위해 많은 유정과 원유 저장 시설을 파괴해서 엄청난 양의 원유가 페르시아만에 유출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원유에 젖은 채 죽어 가는 가마우지들의 영상을 내보냈지.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전쟁이 벌어지던 그 계절에는 페르시아만에서 가마우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뉴스에서 보여 준 가마우지들은 걸프 전쟁이 아니라 8년 전 이란 이라크 전쟁 때 찍힌 영상이라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제작들이 동물원에서 가마우지들에게 원유를 뿌려 적셔놓고 찍었다는 주장도 있어. 파시스트들이 저지른 죄악을 놓고서도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어.

=====================

진실을 쓴다고 해도 글의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읽는 이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기도 한단다. 그 예를 든 것이 아래와 같이 기사의 배치만 바꾸는 것인데, 기사를 읽을 때 기자의 이런 의도를 알고 읽어야 그들의 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단다.

=====================

(82)

그런 신문의 기자들이 화재나 교통사고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칩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목격자의 증언이나 행인의 말이나 여론의 대변자가 될 만한 사람의 논평을 기사에 끼워 넣습니다. 그러한 진술들은 일단 인용이 되면 사실로 바뀝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이러한 사람이 저러저러한 의견을 말했다는 게 하나의 사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자가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만 발언을 주었으리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주장을 실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의견들을 같이 보여 주어야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건을 보도한 것으로 됩니다. 이런 경우에 써먹을 수 있는 요령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흔해 생각하는 진부한 의견을 소개하고, 그 다음에 더 논리적이고 기자의 생각에 가까운 또 하나의 의견을 소개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독자들은 두 가지 사실을 정보로 얻었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한 가지 의견만을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

=====================

(85)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뉴스 네 가지를 한 지면에 모아서 보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독자에서 다섯 번째 뉴스를 제공한다는 뜻입니다.

=====================


2.

<도마니> 기자 중에 브라가도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특종을 취재하고 있다면서, 콜론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세계2차대전의 파시즘을 주도하며 이탈리아를 적국의 위치에 세웠던 무솔리니. 그 무솔리니는 연합군에 붙잡혀 1945년에 총살당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그의 이야기그것이 브라가도초의 특종이었어.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 사람이라서 무솔리니인가 보구나.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는 가정을 한 소설들은 여럿 있었는데 말이야.

아무튼, 브라가도초가 이야기하는 것을 더 들어보자꾸나. 1945년 연합군이 죽인 사람은 무솔리니가 아니고 무솔리니의 대역이었다는 거야. 유명한 사람들은 신변 위협을 받기 때문에 대역을 고용한다는 것이지. 무솔리니는 당시 유럽을 떠나 남미로 도망을 갔다고 했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남미에 머물면서 부활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고 했어. 직접 앞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세력을 키워나갔다고 했어.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25년이 되는 시점에 무솔리니는 정권을 다시 잡기 위해서 쿠데타를 계획했지만,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무솔리니가 죽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무산이 되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계속해서 테러를 일으켰다고 했어. 콜론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 와중에 브라가도초가 피살당했어. 뭐야, 그럼 그 일이 사실이라는 거야?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전부 들은 콜론나는 자신도 위험에 빠졌다고 생각했어.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 불안하게 된 콜론나. 콜론나는 기자들의 홍일점인 마이아와 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마이아와 함께 대피를 했단다. 신문사는 브라가도초의 살인 사건으로 창간 준비도 그만두기로 했단다. , 원래 창간 안 하려고 했었는데.. 기자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었지.

….

그 소설은 브라가도초의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하지는 않아. 브라가도초를 죽인 범인을 찾는 추리 소설이 아니거든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는단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어. 콜론나의 여자 친구였던 마이아가 혹시 무솔리니를 따르던 무리들 중에 한 명이었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 마이아가 브라가도초를 죽인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마이아와 함께 있는 콜론나는?


3.

우리나라 신문들도 이런 왜곡과 거짓이 장난이 아니란다.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낚시성 제목도 무척 많단다. 제목과 내용이 전혀 다른 기사들도 많고요즘 기자들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클릭수를 높일 수 있을까? 하고 기사를 쓰는 것 같구나. 그리고 자신들의 언론사의 권력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기사만 쓰는 것 같아. 그러니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고도 전혀 고칠 생각을 하지 않지참 안타까운 현실이구나. 잘못된 것을 알고 언론 개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면, 언론 탄압이라고 울부짖고쯧쯧 무시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구나.

요즘 세상은 코라나19 바이러스로 불안의 세계가 되었단다. 특히 움베르토 에코의 조국인 이탈리아에도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있단다. 이젠 이 바이러스가 없어지길 바라는 것은 어려울 것 같구나. 이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아니면 이 바이러스의 천적이 나타나던지


PS:

책의 첫 문장 :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수도꼭지에 물이 흐르지 않았다.

책의 끝 문장 : 산 줄리오섬은 햇살에 다시 빛날 것이다.


독자들과 같은 수준의 언어를 말해야 합니다. 인텔리의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면 안 되죠. 그러고 보니 우리 신문의 발행인이 예전에 말하기를, 자기가 설립한 텔레비전 채널들의 시청자들은 평균 연령이(여기서 말하는 연령은 정신 연력입니다.) 12세라고 했던 것 같네요. 우리 독자들의 연령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높겠지만, 그래도 독자들의 연령을 상정하는 것은 언제나 쓸모가 있습니다. 우리 독자들은 쉰 살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적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선량하고 성실한 중산층이지만, 남들이 겪는 갖가지 불상사에 대한 쑥덕공론과 폭로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는 그들이 독서가가 아니라는 원칙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 P43

미국인들은 정말 달에 갔을까? 촬영장에 모든 것을 갖춰 놓고 찍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아. 달에 착륙한 뒤에 우주 비행사들의 그림자가 어떠한지를 관찰해 보면, 거기가 정말 달 표면인지 믿음이 가지 않아. 걸프 전쟁은 어떨까? 그 전쟁이 정말 텔레비전 보도에 나온 것처럼 벌어졌을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이 기록 보관소에서 가져온 발췌 영상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일까? 우리는 거짓말 속에서 살고 있어. 그리고 만약 누가 너에게 거짓말하고 있음을 네가 안다면, 너는 의심 속에서 살아야 해. 나는 의심해. 언제나 의심하면서 살아. - P62

독자들에게 미래의 그림을 미리 보여 주고 무언가를 슬그머니 일깨워주는 기사가 필요해요. 루치디, 그 기사를 당신에게 맡길게요. 그런 기사를 쓰자면 재주사 있어야 해요. <아마>와 <어쩌면> 같은 말들을 넣어 예상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실제로 벌어질 일을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정치인들의 이름도 간간이 들어가야 해요. 여러 정당이 고루고루 나오게 하고, 좌파 정당도 빠뜨리지 말아요. <도마니>가 다른 증거 자료도 모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어야 해요. 그리고 우리 예비 판을 읽을 독자들이 지난 두 달 동안 벌어진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경우에도 잔뜩 겁을 먹을 수 있도록 기사를 써야 해요. - P78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깨닫게 될 겁니다. 그저 한심한 자들만이 휴대 전화를 사용하리라는 것,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들은 신용 불량의 문제 때문에 은행의 전화 연락을 계속 받아야 하는 신세에 몰리고, 대단치 않은 회사원들은 상사의 전화를 받으며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감독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휴대 전화는 사회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 될 것이고, 아무도 그것을 더는 원하지 않게 되겠지요. - P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보다 훨씬 좋았단다.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난 아빠의 짧은 느낌이란다. 매년 봄이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나오는데, 올해는 어떤 이들이 선정되었을까, 하고 출간 소식이 뜨자마자 책 소개를 읽어보았단다.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단다. 최은영님, 장류진님, 김초엽님. 아빠 나이에 이런 분들을 좋아한다고 하면 안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분들의 소설들을 재미있는 걸 어떡하니…^^ 그리고 이전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통해 알게 된 강화길, 김봉곤 그리고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이현석, 장희원. 이렇게 일곱 명이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였고, 대상으로 강화길님의 <음복>이 선정되었단다.

작년에는 읽기 부담스러운 퀴어 소설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아빠가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읽기에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올해는 읽는데 크게 부담스러운 작품들이 없어서 아빠가 다시 젊어진 것인가? 하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단다. 커밍아웃을 한 김봉곤님의 소설은 퀴어 소설일 것이라 예상해서 그런지 크게 거부감 들지 않고 읽었단다. 김봉곤님의 <그런 생활>은 소설이라기보다 실제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듯했어. 주인공 이름도 봉곤이고, 성 소수자인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 안쓰러움마저 느꼈단다. 아빠도 성 소수자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야.


1.

총 일곱 편의 수상작이 실려 있단다. 대상을 받은 강화길님의 <음복>. 아빠가 읽은 강화길님의 소설은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려 있던 한 편뿐이었단다. 단행본도 출간했지만, 읽어보지는 못했어. 이번에 대상을 받은 <음복>이라는 소설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직도 잔재하고 있는 잘못된 가족 문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 주인공 세나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 정우의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게 된단다. 남편 정우로부터 들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시대 식구들의 모습에 놀란다. 시고모의 날 서고 불편한 질문들. 시고모와 시어머니 사이의 긴장감. 가부장적이고 권위 있는 시아버지. 하지만 이런 것들에 무심한 남편 정우. 나중에 세나는 정우는 그런 집안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처음부터 그런 가족 간의 그런 분위기를 당연히 여기기 때문에, 세나가 보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것그것은 아빠에게 없을까? .. 작가의 의도를 잘못 파악했을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었단다. ….

최은영님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때는 2009.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한 희원. 희원과 어떤 여성 강사의 우정 이야기로 이 소설을 읽었단다. 최은영님은 다른 해가 아니고 왜 2009년을 소설의 배경을 했을까. 2009 1월 우리나라의 아픈 일이 있었어. 자신들의 삶터를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는 이들이 있었어. 용산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오늘날에서 국가권력이 국민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아주 사악한 권력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던 억울하면서 분노의 사건이었단다. 그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었단다. 예의 그 사악한 권력들이 다시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정신차리라고 다시 한번 그때 그 사건을 상기시킨 것으로 아빠는 혼자 아빠 마음대로 해석을 해보았단다.

….

김봉곤님의 <그런 생활>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좀 불편하게 읽은 소설인데 이상하게도 책을 덮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구나. 주인공 이름이 봉곤으로 지은이의 이야기를 그대로 소설로 담은 듯 했어. 지은이의 엄마에 감정이입을 해서 읽어봤어. 성 소수자인 부모의 입장. 자식을 사랑하고 믿으면서도 그런 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과 연을 끊겠다며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가도 다시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묻고 아들 걱정을 하는 어머니.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가 보구나.

장류진님의 <연수>. 장류진님의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나서도 느낀 바였지만, 장류진님의 소설은 발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단다. 그런 것을 보면 타고난 작가는 틀림없단다. 잘 나가는 직장인 9년차 이주연은 처음으로 차를 샀단다. 하지만 면허증은 장롱 면허증. 연수를 받으려고 맘카페에서 소개받은 강사. 중년의 아줌마. 첫 모습에서 느끼는 깐깐함과 아줌마식 카리스마를 가진 아줌마 강사.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일의 기쁨과 슬픔>에 실렸던 <도움의 손길>이 떠오른단다. 그 소설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연수>라는 소설에서 보았단다. 운전연수를 하면서 주인공 주연과 강사 아줌마 사이의 이런저런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은 푸근함 마저 드는 해피엔딩이었어. 장류진님의 다음 소설도 기대하게 만들었단다.

장희원님의 <우리의 환대> 장의원님의 소설은 처음 읽었어. 아직 단행본 출간도 없는 것을 보면 정말 신인 작가인 듯 하구나. 그래서 작가 소개를 봤더니 2019년에 등단을 했구나.  정말 신인 작가이구나. 소설 한 편으로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앞으로 기대를 해볼만한 작가라고 아빠는 생각했어. 스릴러 소설도 아닌 것이 읽는 내내 긴장감을 주었어. 호주 유학을 하는 아들 영재을 만나러 가는 부모의 이야기인데영재의 어머니와 영재의 아버지는 영재의 생활을 보면서 각기 다른 생각의 날개를 펼치게 된단다. 읽는 이도 하여금 영재의 본심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소설은 끝내 영재의 본심과 정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그 긴장감이 남아 있는 느낌이었어.

내년에는 더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책의 끝 문장 :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2 - 문종에서 연산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2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저널 그날 2권을 읽었단다. 1권과 마찬가지로 쉽게 재미있게 역사를 이야기해주었단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니, 그냥 역사저널 그날 2권이 아니라,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2권으로 조회가 되더구나. 책의 표지에는 조선편이라는 말이 적혀 있지 않은데 말이야. 책의 제목이 바뀐 이유는 바로 역사저널 고려편도 출간되었기 때문이더구나. 그래서 구분하기 위해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이라고 제목이 바뀐 것 같구나. 조선편은 총 여덟 권으로 마무리가 되었더구나.

천천히 읽어봐야겠구나. 아주 깊거나 자세히는 아니지만, 조선의 역사를 꿰뚫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에 읽은 2권에서는 문종부터 연산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단다. 그 시절에는 역사의 흐름을 갈랐던 역사적인 날들은 어떤 날이 있었는지 한번 이야기해줄게.


1.

조선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은 세조가 조카를 몰아내고 왕자리를 빼앗은 사건이라는 것을 알 거야. 그 전에 문종부터 이야기해보자꾸나. 세종의 아들로 조선 왕조에서 첫 번째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 왕. 그의 재위기간이 짧아서 그를 거의 지나지듯 기록을 하곤 하는데, 그가 세자 자리에 있을 때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는구나. 문종의 재위기간은 짧았지만, 세자로서의 기간은 29년으로 무척 길었어. 그 중에 8년은 섭정을 했다고 하는구나. 세종의 재임 후반기의 공적들의 많은 부분이 문종의 공이라고 하더구나. 모든 면에서 우수해서 세종의 뒤를 이은 성군이 될 자질이 충분했기에 그의 짧은 삶은 조선에게 큰 손해가 아닐 수 없구나. 아내 복도 없었는지 두 번의 세자빈 폐위가 있었고, 세 번째 세자빈은 아이를 낳고 다음날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 아이가 바로 단종이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2 3개월, 그의 나이 39세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문종은 어머니 소헌왕후와 아버지 세종이 잇달아 죽으면서, 삼년상을 연달아 치르게 된단다. 그러면서 몸이 많이 쇠약해지고, 종기가 나서 죽고 말았대. 옛날에는 종기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문종은 죽으면서 신하들에게 12살 단종을 부탁하면서 눈을 감았다고 하는구나. 세 번째 세자빈이 죽고 나서 부인을 새로 들였다면, 그 부인이 수렴청정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문종은 세 번째 세자빈이 죽은 이후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구나.

12살 단종은 고아가 된 거야. 그 고아를 신하에게 부탁을 하고 눈을 감은 거야. 그 신하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김종서였어. ,,, 신하가 아닌 동생한테 부탁을 했어야지. 아니면 아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을 동생에게 주었어야지. 동생 수양대군이 호랑이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수양대군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가족에도 칼부림을 한다는 이유로, 태종을 닮았다고 하는 이들이 많단다. 수양대군이 처음에는 단종을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어. 그것이 진심인지,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김종서와 갈등을 겪게 되고결국은 1453 10 10일 칼을 꺼내 들었단다.

계유정난(癸酉靖難). ‘이라는 글자가 있어서 수양대군이 일으킨 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는 난리의 ()’아니고 어려움을 나타내는 난()이란다. 그러니까 계유정난이라는 것은 계유년에 어려움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잖아. 수양대군이 승자가 되었으니, 그의 입장에서 그날을 기록한 것이야. 그냥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단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 지 20개월째였지. 말이 양위지,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이 왕이 되었단다. 세조.

단종은 영월의 청룡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아빠도 청룡도를 가본 적이 있는데, 한쪽은 절벽이고 나머지 세면은 물로 둘러 쌓여 있었단다. 하루 이틀 여행지로는 좋은 곳이지만 그곳은 영락없이 감옥이었어. 유교의 교리를 거스르는 세조의 이런 왕위 찬탈 사건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많았단다. 그래서 단종복위운동이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었어. 집현전 학자로 유명한 성상문, 박팽년, 유응부 등이 주도했어. 그러나 내부 밀고로 인해 그들의 계획은 실패하고 죽고 말았단다. 사육신.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박팽년, 김문기. 단종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단다. 죽이고 싶었겠지. 건수가 없었는데 잘 됐다 싶었겠지. 세조는 조카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단다. 단종은 자살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세조가 죽인 것이야. 단종 복위 운동에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하는구나. 이 또한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

이렇게 무서운 과정을 거친 후 왕위에 오른 세조. 분발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세조는 왕노릇은 잘했다고 하는구나. 우선 왕권 강화를 힘썼대. 신하들의 힘의 기반이었던 집현전을 폐쇄했어. 호패제도를 정비해서 세수를 확보하기도 했어. 그리고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어. 비록 그의 재위기간에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큰 업적이었어. 세조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명분이 없는 왕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기에 신하들에게 잘 보여야 했어. 그러기 위해서 공신 책봉을 연이어서 했다는 구나. 참모였던 한명회와 배신의 아이콘 신숙주는 4번이나 공신에 책봉되었대. 한명회가 시를 쓰고 그것을 패러디한 김시습의 글이 책에 실려 있었는데, 생육신 김시습의 면목을 볼 수 있었단다.

==========================

(117)

노년에 한명회가 이런 시를 남긴다고요.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白首臥江湖)

이게 압구정에서 지은 시예요.

한명회가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는 건데, 김시습이 이걸 보고 재치있게 패러디를 해요.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靑春亡社稷)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네.         (白首汚江湖)

중간에 글자 하나를 바꿔서 한명회를 비꼬는 거죠.

==========================

….

하지만 세종은 공신들을 백 퍼센트 믿을 수는 없었어. 이시애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에 한명회와 신숙주를 하옥시키기도 했어. 이시애의 난은 남이 장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 공으로 남이 장군은 20대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었어. 세조가 계속 왕위에 있었다면 남이 장군은 승승장구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남이 장군은 병조판서가 된지 15일만에 세조는 죽고 말았단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 유자광이라는 간신의 고변에 속아서 남이 장군을 좌천시키고, 누명을 씌워 죽였단다. 역사는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들이 참 많구나.


2.

세조의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사실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다른 책들을 읽고 나서 쓴 독서편지나 독서일기에서도 두어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단다. 세조 이후 이어지는 성종과 연산군의 이야기도 전에 여러 번 이야기를 했었어. 그래서 아주 짧게 하고 마치려고 한단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은 즉위 14개월만에 죽고, 13살 성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단다. 또다시 어린 왕의 즉위. 또다시 왕위 찬탈 사건이 일어나는 것인가. 하지만 성종에게는 할머니 정희왕후가 있었단다. 그리고 인수대비로 유명한 어머니 소혜왕후도 있었단다. 잠깐 가족 소개를 해보겠다. 세조와 정비인 정희왕후의 첫째 아들은 의경세자였고, 의경세자의 아내가 세자빈 수빈 한씨였단다. 그런데 의경세자가 아들 둘을 남기고 일찍 죽고 말았고, 의경세자 동생 예종이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종이 왕위에 오른 지 14개월만에 죽고 말았어. 다시 빈 왕의 자리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성종이란다. 성종이 왕에 오르자, 사가로 물러났던 수빈 한씨가 왕의 어머니로 궁궐로 돌아왔고 인수대비가 된 거야. 복잡하구나.

성종이 오랜 재위기간 왕위에 있으면서 경국대전을 완성하는 등 여러 업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여자 문제로 더 유명하고 드라마에도 많이 나온단다. 첫 왕비였던 공혜왕후가 죽고 후궁이었던 숙의 윤씨를 왕비로 간택하지만, 나중에 질투와 여러 문제를 일으키면서 폐비가 되고 결국 사약까지 받아 죽고 말았지. 그리고 폐비 윤씨의 아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드라마는 비극으로 이어진단다. 연산군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고, 아빠가 전에도 한 적이 있어서 오늘은 생략할게. 무엇보다 너무 피곤하구나. 양해 바람.

아참, 그것만 하나 더 이야기할게. 이 책에 왕릉 특집으로 왕릉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세종이 여주라는 곳에 있거든. 영릉이라고그런데 원래는 서울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세종의 릉자리 때문에 장남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여주로 옮긴 거이라고 하는구나. 재미있는 일화인 것 같아 적어두었단다.

==========================

(225)

1450, 세종이 승하했다.

맏아들 문종은 유언에 따라 왕릉 조성에 들어간다.

세종 생존에 마련해 두었던 장지는 태종이 잠들어 있는

헌릉 근처, 그런데 그 터를 두고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장남을 잃을 땅이라는 것이다.

   최양선이 수릉의 혈 자리가 좋지 못해

   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다고 하였다.

-       <세종실록> 25 2 2

풍수가들의 예언은 세종의 장남 문종의 죽음을

시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문종의 외아들이었던 단종마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고 단종을 밀어내고 왕이 된 세조 역시

맏아들 의경세자를 잃고 마는데……

왕실의 대를 이을 장남들의 잇따른 죽음,

결국 세종의 영릉은 여주 지역으로 옮겨지게 된다.

==========================


PS:

책의 첫 문장 : 문종은 조선왕조가 시작된 뒤 적장자로 왕위를 이은 첫 국왕이다.

책의 끝 문장 :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조선 왕릉, 오늘 이 시간 함께 하셨다면 좀 더 넓어진 시각으로 근처에 있는 조선 왕릉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명회 하면 과거에도 계속 떨어지고, 칠삭둥이에 못생긴 이미지가 보편적이잖아요. 사실 한명회는 명문가의 후손입니다. 청주 한씨 집안의 귀공자였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명문가 자제들하고 놀죠. 가장 친한 친구인 권람은 안동 권씨고, 친구들이 전부 대표적인 개국공신 집안 출신이에요. 한명회는 이렇게 집안 배경도 좋고, 머리도 좋은데 과거시험만 봤다 하면 자꾸 떨어졌대요. 아마 필기시험에 약한 타입이었나 봐요.



그때 또 재미난 일화가 있어요. 한명회가 개성에서 경덕궁지기를 할 적에, 명절이라 개성부 관원들이 만월대에서 연회를 하다가 개성으로 파견된 서울 출신 관원들끼리 계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와요. 이때 한명회가 자기가 끼워 달라고 하는데, 궁궐지기는 좀 미천하니까 무시한 거죠. 그런데 계유정난 후에 한명회가 일등 공신에 책봉되고 계속 출세하니까 이 사람들은 아쉬운 거예요. 그때부터 하찮은 지위나 세력을 믿고 남한테 오만하게 구는 사람들을 송도계원이라고 불렀대요. - P118

어우동이 여러 사람과 간통한 혐의가 있기는 했지만, 간통죄로 사형시키는 건 법규에 없어요. 그런데 성종의 강력한 의지로 어우동을 교형에 처하죠. 이때가 바로 인수대비가 <내훈>을 쓰고 성리학적인 이데올로기로 나라를 만들어가던 바로 그때입니다. 따라서 어우동처럼 방탕한 여성은 죽음으로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절묘하게도 어우동이 처형당한 게 1480년이고, 폐비 윤씨가 사약 받은 게 1482년이에요. 시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결국 성리학 이념이 강화되고 여성다운 여성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왕실에서 희생된 사람이 폐비 윤씨였다면, 민간의 희생양은 어우동이었다는 거죠. - P187

그 사초의 작성자가 김일손이고,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게 <조의제문>이에요. 이 부분에서 많이들 실수하는데 조, 의제문 이렇게 띄어 읽어야 해요. 어쨌거나 의제는 부하 항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이에요. 세조를 대놓고 비판하지는 못하니까 주군을 죽인 항우 사례를 빗대서 단종을 죽인 세조를 은근히 비판한 거죠. 그게 <조의제문>인데 김일손이 이 글을 사초에 실은 거예요. 세조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시였죠. 결국 이게 공개되고 연산군이 이를 왕에 대한 모독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사초 작성자인 김일손 비롯한 관련자들이 대거 체포됩니다. - P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찼던 젊은 시절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을 때, 나는 당최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손을 많이 댈수록 오히려 자라지 못하는 어린 묘목을 떠올렸다. 나무를  키울 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아이도 나무 기르듯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마치 어린 묘목을 돌보듯 간섭하고 싶은 마음을 거두고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덕분에 딸아이는 일찍부터 제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깨우쳤다.


(7)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은 노목에게서 나이 듦의 자세를 새삼 깨우치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 속을 비우고 작은 생명들을 품는 나무를 보며 가진 것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삶, 비움으로서 채우는 생의 묘미를 깨닫곤 한다. 평생을 나무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 먹고 병든 나무를 고쳐 왔지만, 실은 나무에게서 매 순간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17)

나무는 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명체이다. 움직일 수 없는 탓에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생존하려면 주변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재빨리 대응해야 한다. 말 그대로 나무의 삶은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해를 향해 뻗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우듬지의 끝은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선원과 같다. 항해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발견하면 그 즉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우듬지의 끝은 가지에 이르는 햇볕의 상태를 일분일초 예의 주시하다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낌새가 감지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꾼다. 그 선택에 주저함은 없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양 곧바로 선택을 단행한다. 가만히 보면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하긴 결과를 예측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미래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데 말이다.


(21)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 청계산의 소나무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소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어야 하면 미련 없이 바꾸었고, 그 결과 소나무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덕분에 사람들 눈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 어떤가. 소나무가 왜 ㄷ자 모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나면 그 지독하고도 무서운 결단력에 혀를 내두르게 될 뿐이다. 내일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오늘 이 순간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온 소나무.


(32)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그렇게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자리를 잡는 동안 실타래처럼 가는 뿌리는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이겨낼 근성을 갖춘다. 나무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보내는 유형기가 평균 잡아 5. 나무는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짧지 않은 시간 뿌리에 힘에 쏟은 덕분에 세찬 바람과 폭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성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38)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장했고, 욕심을 내면 조금 더 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들은 자라기를 멈춘다. 마치 동맹을 맺듯 나도 그만 자랄 테니 너도 그만 자라렴하고 함께 성장을 멈추고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결국 나무에게 있어 멈춤은 자신을 위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주변 나무들과 맺은 공존의 계약인 셈이다.


(50)

새 생명이 자라기 위해 숲에 빈틈이 필요하듯 우리 인생도 틈이 있어야만 한숨을 돌리고 다음 걸음을 내디딜 힘을 얻을 수 있다. 나 또한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만일 내가 모든 나무를 완벽하게 고치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더라면 나무 몇 그루쯤 더 살릴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일을 계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이지 일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실수한 것만 떠오르고, 전부 마음에 들지 않고, 스트레스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해 나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64)

그렇게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걷다 보니 걷는 것이 마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욕심으로 무겁게 배낭을 메고서는 절대 멀리 가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도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진정 원하는 곳에 이를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마음을 낮추고 가진 것을 내려놓을 때 인생길이든 여행길이든 비로소 가볍게 걸을 수 있다는 걸 왜 진작에 몰랐을까.


(84)

이렇듯 우듬지가 구심점 노릇을 해 주어서 나무는 자라는 동안 일정한 수형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전나무나 메타세쿼이아 같은 침엽수들이 원추형으로 길고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 꼭대기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강한 힘으로 통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자면 꿈이나 희망이랄까. 나무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다스려 가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 가듯, 사람은 꿈이나 희망 등 살아갈 이유가 있어야만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겨 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96)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떨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 보니 틀린 길은 없었다. 시도한 일이 혹시 실패한다 해도 경험은 남아서 다른 일을 함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 볼 여지가 있다면, 씨앗이 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듯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괴테도 말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거목도 그 처음은 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었음을 잊지 말기를.


(101-102)

그래서 나는 광보상점 같은 나무의 기질에 대해 설명할 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자세를 비유로 들곤 한다. 기질에 맞게 자리만 잘 잡아주면 나무는 큰 보살핌 없이도 제가 알아서 잘 자란다. 아이 역시 타고난 적성에 맞춰 방향만 잘 잡아 주면 아기새가 둥지를 떠나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르듯 자신의 인생을 알아서 잘 펼쳐 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든지 잘 모르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나무에 관심이 많다면서도 나무에 대해 너무 몰랐던 내 친구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지요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에게 요즘은 뭐가 제일 재미있어?”라고 묻는 부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114)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왕 남길 흔적,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고, 나와 함께해서 좋았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면 얼마나 보람될까. 그래서 나는 나무처럼 사는 것이 삶의 목표다. 그러한 제목으로 책을 낸 후 후회도 많이 했다. 어디 나무처럼 산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다. 꼭 나무처럼만 살았으면 원이 없겠다.


(132-133)

맞서 싸우지 않고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부드럽게 우회할 줄 아는 것. 그것을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저 혼자 강하게 곧추선 나무가 한여름 폭풍우에 가장 먼저 쓰러지는 법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


(137)

가만히 보면 나무에게 있어 적응은 가진 것을 버리는 데사 출발한다. 똑 같은 종인데도 사막과 초원의 경계쯤에 자리한 나무는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나무에 비해 뻗는 가지도 적고, 가지에 달린 잎도 얼마 되지 않는다. 대신 건조한 기후에 살아남기 위해 잎이 두껍다. 아예 사막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있던 잎도 모두 없애고 잎이 달릴 자리에 가시만 남긴다. 변화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연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고 그곳에 맞게 적응해 가는 것이다. 더욱이 그냥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까지 불러 모아 새로운 생명의 땅을 만든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나무가 한번 머물다 간 자리는 생명이 깃드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198)

사람은 누구나 어제보다 나은 오늘, 달라질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마음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거창한 변화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오늘이 쌓여 어느 순간 달라지는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모든 것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겠다는 작은 결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자리를 탓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부단히 변모를 꾀하며 수백 년 살아가는 나무처럼 말이다.


(226-227)

그런데 플라타너스의 우리말 이름이 버즘나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플라타너스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껍질이 벗겨져 허연 속살이 얼룩덜룩 보이는 수피가 얼굴에 피는 버짐(버즘)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253-254)

가만히 보면 세상 모든 문제를 정해진 틀 안에서 해석하고, 자신의 삶조차 규격화된 공식 안에 가두어 살아가는 존재는 인간뿐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한 삶이라는 것도 실은 누가 정해 놓았는지도 모를 인생 공식 안에 갇힌 박제 같은 인생이 아닐는지. 하지만 삶을 거듭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복잡한 문제들은 결코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알려진 공식대로 열심히 달려간다 한들, 그것이 진정한 인생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292)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바닷가에 자리한 팽나무가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했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가지들을 지닌 거목으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팽나무에게 있어 흔들림은 스스로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드는 기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로런 그러프의 <아르카디아>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책 앞표지만 보면 가볍고 유쾌 통쾌한 소설일 것 같았단다. 핑크빛 바탕에 꽃단장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미니버스. 거기에 글씨체도 예쁘게… <오베라는 남자>와 같은 느낌이 드는 책표지라서, <오베라는 남자>와 같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어. 책표지와 달리 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었단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이들이 결국 실패를 했다는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아빠가 너무 비약한 것일까. 아무튼 책표지와는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단다.

아르카디아는 고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한 지역의 이름이고, 현재도 그 고장의 이름으로 있대. 그렇다고 이 소설이 그리스의 아르카디아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아니란다. 그리스 신화에 아르카디아가 나오는데, 목신의 영토라고 했대. 숲의 신, 나무의 요정, 자연의 정령인 님프 등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목가적 낙원이라고 옮긴이가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는구나. 그렇게 낙원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 1960년대 미국 뉴욕주에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 그 공동체의 이름이 아르카디아였단다. 그들은 그들만의 룰을 만들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단다. 실화는 아니고, 가상의 공동체였지만, 당시 미국에는 실제로 여럿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1.

아르카디아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나서, 처음 태어난 아이 비트가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비트가 태어났을 때 아직 공동체에 제대로 된 시설이 없어서, 텐트를 치고 살거나 차 안에서 생활했어. 그들은 자신들을 자유민이라 부르며 공동 노동으로 공동 주택을 짓고 있었지. 아르카디아에서는 사유 재산도 없고, 공동 노동을 하고 공동 육아를 하는 등 그들 만의 룰이 있었단다. 그들만의 시스템을 하나하나 만들어간다고 할까.

비트의 원래 이름은 리들리 소럴 스톤인데, 태어날 때 아주 작게 태어나서 비트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부른단다. 비트의 아빠는 에이브이고 엄마는 해나인데, 해나는 비트의 동생을 임신했다고 유산을 해서 몸도 좋지 않았고, 우울증도 앓고 있었어. 기분이 가라 앉았을 때도 많았고 몸도 좋지 않아 임시 주택에만 있었어.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처음에는 이해하던 다른 자유민들이 점점 해나를 좋지 않게 보았어. 일도 안하고 쉬기만 한다고 말이야. 이곳에서는 공동 노동이 필수인데 말이야. 한편, 공동 주택 공사가 끝나갈 즈음 비트의 아빠 에이브가 크게 다치고 말았단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불행히도 평생 불구의 몸을 갖고 살아야 했어.

아르카디아 공동체에서도 리더는 있었단다. 핸디라는 사람인데 그는 바깥 세상으로 공연을 하러 다니기도 했어. 그 수입은 공동체 운영하는데 썼고 말이야. 그런데 이 핸디라는 사람은 아빠가 생각하기에 자유와 방종을 좀 구분을 못하는 사람 같았단다. 그들이 표방하는 것이 자유이긴 하지만, 책임이 뒤따르지 않고, 공동체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것도 있었어. 핸디에서 공식적인 아내 애스트리드가 있었지만 자유연애를 즐겼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 공동체의 문제점은 핸디라는 사람이 리더라는 것

....


2.

세월이 흘러 어느덧 비트는 14살이 되었단다. 정신적 리더 핸디의 딸 헬레가 있었는데 비트 또래였단다. 헬레는 바깥 세상에 다녀오기도 했어. 비트가 헬레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 비트는 열 네 살이 되도록 아르카디아 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단다. 그들의 룰에 따라서 말이야. 아르카디아도 운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들은 대마를 키워서 돈을 벌었어. 그런데 그 대마라는 것이 불법이다 보니 바깥세상의 경찰들이 아르카디아를 감시하곤 했어. 시간이 꽤 지나면서 공동체 안에 자유민들 간에 대립이나 갈등도 생겨났고, 핸디의 독단에 대한 불만들도 늘어났단다.

그 공동체에 들어오는 사람들에 무분별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범죄자들이 은닉의 목적으로 오는 경우도 있는 등 공동체 생활이 점점 삐그덕거렸어. 그래서 아르카디아를 떠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어. 비트 가족 바깥 세상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참아 보았지만, 결국 그들도 아르카디아를 떠나기로 했단다.


3.

바깥 세상으로 나온 비트... 또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고, 헬레와 결혼을 했고, 세 살배기 딸 그레테가 있었어. 비트는 사진작가 겸 교수로 일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나. 아르카디아는 어떻게 되었냐고?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의 세상은 붕괴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단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연락을 하면 지내고 있었어.

비트와 결혼을 한 헬레. 지금은 그녀가 없단다. 헬레는 9 개월 전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 헬레가 정신적으로 그리 건강하지 않고, 늘 힘들어했지만 세 살배기 딸을 두고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했구나. 비트는 홀로 딸을 키우면서 그런 생활에 적응하려고 했어.

또 세월이 그리고 2018년이 되었단다. 여전히 헬레는 돌아오지 않았고, 딸 그레테는 비트가 아르카디아를 떠났던 나이인 열 네 살이 되었단다. 반항기 있는 십대가 된 것이지비트의 엄마 해나는 루게릭 병에 걸리고 말았어. 근육이 위축되어 움직이지 못하다가 결국 죽고 마는 무서운 병이란다. 비트의 아빠 에이브는 여전히 휠체어 생활을 하시지. 그 옛날 아르카디아에서 사고 때문에 말이야. 해나와 에이브는 자신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고 비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동반 자살을 시도한단다. 하지만 에이브만 죽고 해나는 실패하게 돼. 혼자 된 해나를 보살피기 위해 비트와 그레테는 해나의 집으로 온단다. 해나는 아르카디아가 있었던 지역에 살고 있었어. 비트는 엄마인 해나와 함께 그곳에 살면서, 옛날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렸단다. 비트는 그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국 엄마 해나는 죽고, 끝내 헬레는 돌아오지 않았단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은 2012년이란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2018년은 지은이가 2012년에 생각했던 미래의 모습이지. 2018년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소설 속 2018년은 마치 오늘날 2020년의 모습과 흡사해서 놀랐단다. 소설 속 2018년은 전 세계가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한 시대를 그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2020년 오늘전세계가 무서운 전염병과 싸우고 있잖아. 일상이 사라지고, 아니 전염병과 싸우는 모습이 일상에 된 세상. 얼른 코로나19가 사라졌으면 좋겠구나.


4.

자본주의 종말을 치달아가고 있는 세상. 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 그런 것으로부터 탈피해서 뜻 맞는 사람들과 모여서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공동체 생활. 하지만 그런 공동체 생활도 결국은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거야. 그러면서, 공동체 바깥의 생활, 그렇게 부조리하고 썩어빠진 곳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의 좋았던 점이 떠오르면서, 그리워 하게 되고결국 공동체 생활은 파탄이 나고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또 다시 바깥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되는 반복.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서도, 그래도 지구를 파괴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안은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 소설이었단다.


PS:

책의 첫 문장 : 강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들.

책의 끝 문장 : 이런 순간, 활짝 피어났다 희미해지며 지나가는 이 순간, 그는 그것으로 족하다. 세상은 모든 것이 안녕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