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

관료주의 특권계급이 신성시하는 이 사무 공간에서는 눈에 띄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장쇠퇴라는 영원한 법칙이 이곳에서는 관료주의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적용되지 않는다. 우체국 건물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자. 나무들은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이가 들면 백발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건물이 낡으면 허물어져 새 건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나라 관료주의는 항상 똑 같은 것만 고집하고 세속의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체국 비품이 소진되었거나 분실되었거나 변형되었거나 훼손되었으면 상급 관청에 요청한다. 그러면 역시 빠르게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막강한 권력의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용이 되는 알맹이는 없고, 형식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있다.


(60)

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며 여자는 마치 땅을 갈아엎는 쟁기처럼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여행의 힘을 실감했다.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에 언젠가 열매가 열릴 씨앗을 심어놓는다.


(112)

곧 자명종이 울릴 거야…… 다시 잠들면 안 돼…… 책임감! 책임감을 잊어선 안 돼! 당장 일어나자. 여덟 시에 업무가 시작되잖아. 그전에 일어나서 불 피우고 커피 끓이고, 우유와 빵 사 오고, 방을 정돈하고, 어머니 붕대를 갈아주고, 점심 식사 준비도 해놓아야 하잖아?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더 있었는데…… ! 맞아. 식료품 가게 여주인이 어제 외상 갚으라고 했었지…… 안 돼, 자면 안 돼. 정신 차리고 자명종이 울리면 일어나야 해…… 그런데 오늘은 무슨 문제가 있나? 자명종이 울리질 않아…… 고장 났나? 태엽 감아 놓는 걸 깜빡했나? 자명종 어디 있지? 방 안에 빛이 벌써 환한데……


(141)

심장은 격렬하게 고동쳤고, 언제라도 날아오를 듯이 상쾌했다. 끊임없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가슴은 마치 감전된 듯한 전율을 손가락 끝까지 전해주었다. 이상하고, 강렬하고,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이제는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갑자기 몰아닥친 강풍에 날리듯 여기저기로, 안으로 밖으로, 위층과 아래층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계단을 오를 때도 한 번도 한 계단씩 오르지 않았다. 뭔가를 잊은 사람처럼 마음이 들떠 늘 세 칸씩 뛰어올랐다. 놀고 싶은 충동과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 손은 늘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양팔을 활짝 펼치고 먼 곳을 향해 터져 나오는 웃음과 환호를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148-149)

도대체 나는 누구지? 수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 갔지. 오래도록 시골 마을 우체국에 앉아 있었는데도, 아무도 뭐 하나 챙겨주거나 걱정해 주지 않았잖아. 고향 사람들 모두 너무 가난하다 보니 빈곤함에 지쳐 의심만 늘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갑자기 매력적인 여자로 변했나? 지금까지 밖으로 표출되지 못했던 매력이 이제야 나타났나? 내가 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데 다만 그렇게 믿을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 아닐까? ,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나는 어떤 사람인가?’


(176)

정상에 선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내려도보지 못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은 남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법이다. 실제로 고생해본 사람만이 어떤 일에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직감적으로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생기고 남보다 더 영리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234)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253)

여자는 매일 아침 증오심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자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는 것은 연기에 그을린 다락방 천장의 대들보였다. 낡은 침대, 싸구려 누비이불, 등나무 의자, 깨진 물주전자가 놓여 있는 세면대, 벗겨진 벽지, 판자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모든 것이 지지리도 궁상맞고 흉측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캄캄한 어둠 속에 파묻혀 있고 싶었다. 하지만 자명종 소리는 여자의 귓전을 때리며 그런 작은 바람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옷을 입었다. 해진 속옷, 역겨운 검은색 원피스…… 원피스의 소매는 이미 오래 전에 찢어졌지만,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288-289)

그래,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어. 어떤 의사도 6년간의 젊음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어. 누가 내 젊음을 보상해 주지? 국가가? 그 고위층 사기꾼들이? 그 고위층 도둑놈들이? 40명이나 되는 장관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대봐. 법무부 장관? 복지부 장관? 산자부 장관? 공정하게, 사리사욕 없이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고급 공무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름을 대봐. 그들은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고, ‘황제 만세!’를 외쳤어. 물론, 지금은 다른 걸 들려주고 있지. 진흙탕에서 보니, 세상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군.


(295)

나는 누구한테도 불평하지 않았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쉬지 않고 불평했던 사람은 언니였어. 그리고 스위스는……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내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내게도 할 이야기가 있는 거야. 나는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를 이제야 알았어. 내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전쟁이 내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조차 모르고……”


(421)

나도 그걸 알면 좋을 텐데. 계획서는 빠진 것이 있을 거야. 모든 범죄에는 구멍이 있지. 하지만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미리 알 수는 없어. 아무리 꼼꼼한 범죄자라도 예외 없이 사소한 실수를 하게 마련이야. 문서란 문서는 전부 없애버리고는 어리석게도 여권을 남겨놓는다든가 하는 실수 말이야. 온갖 장애물을 다 고려하지만 가장 분명하고 틀림없는 장애물은 간과하게 되지. 뭔가 한 가지를 꼭 잊어버려. 아나 나도 가장 중요한 사항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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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06 0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발췌문만 봐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 감정의 혼란이 참 좋았는데, 다음에 초조한 마음 읽고 이것도 얼릉 사야겠어요 ㅠㅠㅠ!!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네..........

bookholic 2023-07-06 16:08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엄청 좋았습니다..^^
알라딘 현재 평점10.0 ~~~
 
















(27)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굳이 과학 공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문학 위기론을 꺼냈다. 나는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을 활용하지 않는 데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본다. 운명적 문과로서 인문학 책만 읽으며 살았던 내가 요즘은 인문학 책이 재미없다. 강력한 지적 자극을 받은 경우가 드물다. 무엇인가를 새로 아는 즐거움을 주거나 오래된 생각을 교정하도록 격려한 것은 과학 책이었다. 설마 나만 그랬겠는가?


(31)

공부에는 너무 늦은 법이 없다는 말, 수학에는 통하지 않는다. 두뇌가 원활하게 돌아가던 젊은 시절에도 되지 않았던 수학 공부가 노년에 접어드는 지금 될 리 없다. 그런 나를 세이건 선생과 도킨스 선생이 격려해 주었다. ‘수학을 몰라도 돼. 내가 인간의 언어로 말해 줄게.’ 나는 그들의 말을 일부 알아들었다. 용기를 북돋워 주는 문장도 만났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 하는 방법이다.”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45-46)

나는 나를 알아!’ 흔히 하는 착각이다. 나도 한때는 착각했다. 나는 조용히 방에서 혼자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도 좋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더 좋다. 부자한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시민을 돕는 데 찬성한다. 화력발전과 핵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전기요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려고 배달 음식 주문을 삼간다. 외모를 꾸미는 데 돈 쓰기를 주저한다. 기도를 들어주는 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 지옥과 천국, 윤회, 육체와 분리된 영혼, 구원, 영생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지성을 뽐내는 사람은 부러워하지만 돈과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경멸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러면 나를 아는 것인가?


(62-63)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원 평균 연봉의 1000배를 가져가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연봉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 생산에 1000배 더 기여해서가 아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똑 같은 작업을 하는 원청 소속 노동자의 절반 수준 시급을 받는 것은 중간착취와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이지 생산 기여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의 오류는 신경세포의 작동 원리를 물리법칙 형식으로 만들어 신경세포와는 무관한 경제현상에 적용한 데서 생겼다. 아름다운 수학을 썼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대중에게 전파한다. 부자가 좋아하는 우화를 퍼뜨리면 보상이 따라온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85)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인문학자들은 오랜 세월 인간 본성을 두고 논쟁했지만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논쟁을 종결하려면 사실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인문학자는 하지 못했던 그 일을 신경과학자들이 해냈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연구진은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발화하는 원숭이 두피질의 일부 뉴런이 다른 원숭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발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자들이 인간의 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울신경세포라는 멋진 이름을 얻은 그 세포는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마음을 읽는 세포라거나 문명을 만든 뉴런이라고 명예로운 별명도 생겼다.


(88)

2400여 년 전 중국에 살았던 사람을 우리는 왜 기억하는 것인가. 소크라테스를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맹자의 사상과 이론은 나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경청할 가치가 있는 견해를 남겼다. 묵가와 양주학파의 사상을 맹자의 사상과 비교해 보면 분명해진다. 묵가는 이기성 또는 자기중심성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했다. 양주학파는 인간이 공감하고 협동하고 이타 행동을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


(99-100)

뇌과학자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과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 뇌는 매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ㄹ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111)

다윈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 더한 시련을 겪었다. 누구는 진화론을 오용(誤用)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고, 누구는 진화론을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이론이라 비난하고 배척했다. 오용한 쪽은 우파’, 배척한 쪽은 좌파. 우파와 좌파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다윈주의와 관련해서는 그나마 수월하게 구별할 수 있다. 우파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154)

오해할까 봐 다시 강조한다. 유전자는 친족이타주의를 설계하지 않았다. 유전자는 그 무엇도 설계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를 복제할 뿐이다. 일꾼개미와 여왕개미의 분업은 유전적 우연과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동물이 출산과 양육을 위해 헌신하도록 진화한 것은 자식을 잘 돌보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의 번식 성공률이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자연선택은 어떤 종 어떤 개체한테도 특권을 주지 않으며 진화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식을 돌보는 것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훌륭해서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다. 해밀턴은 그 모든 형태의 친족이타주의에 유전 연관도라는 생물학적 기초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그 이론에서 물질의 증거를 토대로 대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에 다가서는 과학의 매력을 보았다.


(159-160)

유전자는 특정 종의 생존에 관심이 없다. 모든 종의 모든 개체에 서식하고 있으니 어떤 종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없을 때도 지구와 생물은 존재했다. 인류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에는 아무 문제 없다. 기후위기와 핵폭탄에서 우리 자신을 구하려면 인류 전체가 협력해야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그 일을 해낼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다. 그래도 무언가 하긴 해야 한다. 우리 자신 말고는 누구도 우리를 구할 수 없으니까.


(169-170)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소(元素)’로 이루어져 있다. 결합해서 어떤 물질의 분자를 이루는 원소는 보통 두 종류 이상이지만 산소, , 다이아몬드처럼 원소가 하나인 물질도 많다. 더 작게 나누면 고유의 성질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물질의 기본 성본인 원소는 원자(原子)와 같고 또 다르다. 물리학 책에는 주로 원자가 나오고 화학 책에는 원소와 원자가 뒤섞여 나온다. 한참을 헤맨 끝에 나름대로 이해했다. 원자는 원소의 한 단위다. 생물학 언어로 하면 원소는 호모 사피엔스, 원자는 한 사람이다.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연구하는 화학자에게는 원소가 중요하고, 미시세계의 역학을 탐구하는 물리학자에게는 원자가 중요하다.


(189-190)

탄소는 리버럴하다. ‘부족본능따위는 없다. 자기네끼리도 잘 뭉치고 다른 원소와도 잘 어울린다. ‘우리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탄소끼리 뭉칠 때나 황, , 산소, 질소와 결합할 때나 껴안는 힘이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도 서로 다른 여러 원자 사이를 오간다. 종류가 다른 여러 원소와 이중, 삼중으로 결합하기도 한다. 탄소를 함유한 분자는 탄소 원자 하나가 수고 원자 4개와 단순하게 결합한 메탄부터 놀랍도록 긴 인체 DNA까지 구조와 종류가 무한히 다양하다. 생명을 빚어낼 원소로 탄소만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없다. 우주의 다른 행성에 생명이 있다면, 거기서도 탄소가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다.


(228)

생물의 몸은 세포의 집합이다. 세포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원자의 결합이다. 사람의 몸을 원자 단위로 분해하면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칼슘, 인이 질량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머지 1퍼센트는 칼륨, , 나트륨, 염소, 마그네슘, 철 등이다. 혈액의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철이 그런 것처럼 이 원소들은 양이 적어도 생명활동에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원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문과 감성을 입히면 이런 질문이 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물리학이 대답한다. ‘별에서 왔지


(256)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는 러셀의 말에 공감한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 법칙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길든 짧든 시간을 조금 덜어 이 책을 썼다. 쓰는 동아 즐거웠다. 남들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전부다.


(287)

수학을 모르면 우주의 철학을 알 수 없다고 했던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고 피렌체 변두리의 시골집에 갇혀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 수학자들이 가우스에 버금가는 수학 천재로 인정하는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 숱한 연구업적다툼을 벌였다. 가우스는 냉담하고 무지한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을 고달프게 보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아내와 두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오일러는 백내장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앞을 보지 못했다. 갈루아는 프랑스대혁명에 가담했다가 스무 살에 감옥에 갇혔고 스물한 살에 결투를 하다 목숨을 잃었다. 라마누잔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했고 극단적 채식으로 건강을 해쳐 서른세 살에 죽었다. 칸토어는 마흔도 되기 전에 우울증에 걸려 수학 연구를 그만두었고 극심한 망상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정신병원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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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워쨌든 나는 내외간, 자슥간에 착취란 말은 쓰고 싶지 않허요. 왠지 나는 그 말이 싫으요, 착취, 착취 해봤자 불쌍한 게 누구요. 결국 나 아니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착취당했다는데 그라믄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지들 엄메가 바보라는데 서방이라고 좋겄소 자슥이라고 좋겄소. 그 교수 선생한테 가서 내 생각은 이란디 내가 틀린 것이오, 당신이 틀린 것이오, 그라고 묻고 싶은 맴도 있었지만 워디 가당키나 한 일이오. 을매나 배웠으면 여자가 그 젊은 나이에 교수까지 하고 있을 것이오. 내가 무슨 수로 그런 사람을 당해낼 수 있겄소. 그냥 속이 답답해서 엄메한테나 하는 말이지라. 엄메가 아니면 내가 또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겄소.


(134)

지금 저기에서 제일 가슴 아픈 사람은요, 사장도 아니고 주주도 아니고 인근 음식점 주인도 아니고, 바로 자기 일터에다 불을 질러야 하는 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르신께서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자기 권리를 모르는 사람은 종이 되는 겁니다. 싸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종이 된다고요.”


(193)

그 형사 하는 말이, 하숙생은 원체 세상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라 여그랑은 완전히 다른 꿈나라 같은 세상을 그리워해서 그런 짓거리를 한고 다닌다는디, 저가 살아본 적도 없는 세상을 워떻게 그리워한다는 건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거라. 한 번이라도 겪어봤어야 그리워하든 보고 잪아 하든 하는 거 아니오? , 우리가 먹는 이 밥만 해도 그렇지 않소? 뭐가 먹고 잪아도 어릴 때 한두 번씩 해먹던 음식이나 그리워하지 생판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뭔 맛인 줄 알고 그리워하겄소?”


(284-285)

사람의 운명이란 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룻밤만의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일까. 아니면 먼 훗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부모도 모르게, 형제도 모르게, 친구도 모르게 자신의 발목을 자르고 스스로 뛰어내겠다고 신에게만 조용히 고백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결심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삶에 미련을 가지도록 달콤한 말들로 꾀어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이 상해 보인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 다 괜찮아질 것이다, 정도의 서툰 걱정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그 깊고 차가운 물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이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라고 결정지어놓은 것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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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 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細技)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 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 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 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 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여 분명한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이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39-40)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나 도적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적시적소에 써먹은 도구에 불과하고 어떤 권력이든 도구화하려는 속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본처럼 철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그런 그들에게 내세관이 희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유한(有限)을 잘 소화시켜 온 민족이다. 유한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이 오는 곳 생명이 가는 곳, 그 한() 때문에 사람은 유한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치는 것이며 그 몸부림은 신의 축복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의 난으로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 만 천주교도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때, 아마테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58)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하기를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 두 사람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충격을 받을까? 전에도 그런 얘기는 했었고 일본인들은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반일을 당연하다고 본 그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과 나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다. 남경(南京, 난징) 학살 사건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고 실은 겁이 많은 것이 일본 사람 아니냐 했을 때는 당혹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손님에게 너무 무례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2)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세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76)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93)

언제였는지 일본인의 저축열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일본인은 저금통장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결코 저금통장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저금통장이 필요한 것이지 저금통장을 위해 삶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쿠타가와의 예술지상주의가 만일 저금통장을 위한 삶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허위인 것입니다. 착각이거나 아쿠타가와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반생명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그것이 체제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고 보면 분재와도 같이, 축소되고 불구적인 정신세계를 떠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국체를 부정하고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106-107)

이삼 년 종안 나는 우리 뒷동산에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을 계속하여 육십오 계단이라는 꼬불꼬불 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만리장성은 아닐지라도 내 손자가 오르내리는 기쁨의 자리가 되었고, 오른다는 것 무한히 오른다는 것 무한히 간다는 것…… 나는 그 계단을 끝내고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계단 위에 산이 계속되고 또 울타리가 없다면 계단은 계속하여 쌓아 올려졌을 거라고. 그리고 시시포스의 바위를 생각했지요. 부정적, 근원적으로 부정적인 인생과 문학 행위. 아마도 긍정적이었다면 갈 길은 없었을 것이요, 배불리 먹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도 없고 존재뿐인 삶은 비인간 로보트가 아니겠습니까.


(114)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 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 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 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어 처지일 수도 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 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119)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또 창조적 열정은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파괴하고 존재를 흔들리게 하는 것으로 바로 오늘, 현재가 그 같은 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구 도처에서 균형을 망가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땅이 죽어간다거나 물이 썩어간다거나. 이젠 그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다 가공할 일은 오존층이 찢기어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 환경호르몬에 관한 것, 지구온난화 현상, 여차하면 자멸의 무기 핵폭탄 등. 이것들이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하겠습니까? 지구의 사막화, 도처에서 범람하는 물, 이런 상황이 천재인가요?


(161)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16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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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개화기는 새로운 외부 문화와의 충돌을 경험한 시대였다. 그 충돌은 개화기 이전부터 일어났으니 그건 바로 천주교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대응은 박해로 나타났다.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는 당파싸움으로 인해 증폭되었다. 이는 개화기가 결국 망국(亡國)으로 종결된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자폐적 시스템과 더불어 내부갈등이 나라의 진로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였다는 사실을 폭로해주기 때문이다. 개화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천주교 문제를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2)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는 러시아어로 정복하다는 뜻이고 보스토크는 동쪽의 의미인바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가 동쪽으로 와서 정복한 도시인 셈이다. 이전 이 땅은 발해의 중요한 거점 지역이었고 이후로는 여진과 거란의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땅을 한자로 해삼위(海蔘威)라고 표기했는데 바닷가에 해삼이 많아서 해삼위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도 4~5개월간 결빙하기 때문에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90)

역설이지만 서학은 물론 동학에 대한 이러한 탄압은 조선 조정이 자신들의 죄, 즉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시사하는 건 아닐까? 민생을 도탄에서 건져낼 수 없는 무능이, 언제든 민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 제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망국(亡國)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99)

다블뤼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자선(慈善)의 원조 국가가 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이 나라에서는 자선 행위를 진정으로 존숭하고 실천한다. 사랑방에서 받는 대접 이외에도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면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로 그를 위해 밥을 다시 하기도 한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식사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뱃사공들은 밥을 먹지 않고 배 타러 나온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잔치가 벌어지면 언제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서 형제처럼 모든 것을 나눈다. 여비가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엽전 몇 닢의 도움을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이다.”

먼 훗날에라도 조선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161)

조선은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을 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서양 문물을 수입하게 되었다. 1876년 부산이 개항하고 이어 1879년 원산, 1880년 인천이 개항했다. 학계에선 근대화가 되는 시대를 의미하는 근대가 언제부터인가 하는 논쟁이 있는데 학계의 통설적 견해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강요된 것이긴 하지만 개항을 통해 새로운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한 1876년을 근대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188-189)

금장태는 최한기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마지막 인물이자 근대 개화사상으로 한걸음 나아갔던, 그 기대의 가장 앞선 진보적 지성인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저술은 1000권이나 된다는데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직 100여 권뿐이다. 그의 탁월한 학문의 폭넓은 식견이 알려지자 당시의 여러 재상들은 그를 조정에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벼슬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신미양요로 강화도가 미국 함대에 침략당하자 친분이 있던 유수의 자문요청에 조언한 바 있다. ……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변혁의 시대로 규정한 그는 차라리 옛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하여 진보정신을 표방하고 과학과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역사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284)

한편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의 미국 생활은 어떠했는가?

미국 <뉴욕타임스> 1883 11 8일자는 사절 수행원의 한 사람인 유길준은 자기나라의 옷을 벗고 지금은 서양 옷을 입고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시의 에드워드 모스(1838~1925) 교수 지도하에 학생으로 이 나라에 머물 것이다. 어제 저녁 이 젊은이는 5번가(뉴욕)에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그러나 몇 마디의 영어를 사용하여 경찰관에게 호텔 가는 길을 물어 찾아왔다.”고 보도했다.


(301)

<한성순보>는 신문발간의 동기와 기술적 지원은 일본에 의존했지만 신문의 뉴스원, 내용과 관련해선 중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이 신문이 기사로 가장 많이 다루었던 국가는 중국(453)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베트남(165ㅎ회), 프랑스(71), 영국(56), 일본(53), 미국(47) 등이었다. 중국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유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 이외에 영국,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선교사나 상인 등이 발간하던 중국계 신문들을 주요 뉴스원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성순보>의 실무자들은 거의가 한학자와 중국어 역관(譯官) 출신들로서 한문에는 능통한 반면 일본어는 몰랐다는 점과 이들이 일본보다는 중국을 더 숭상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베트남, 프랑스 관련 기사가 많았던 건 1884 6월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1883) 문제로 일어난 청불전쟁과 베트남이 프랑스에 먹히는 비극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 감정 때문이었다.


(334)

갑신정변의 내각은 청춘정권이었다. 내각 서른두 명의 연령을 보면 20대와 30대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김옥균 서른세 살, 홍영식 스물아홉 살, 서광범 스물다섯 살, 박영효 스물세 살, 서재필 스무 살 등 주동자들은 더 젊었다. 혈기가 지혜를 앞섰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336)

너희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군주는 그렇게 개화를 버렸다. 김옥균은 군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는다. 이제 곧 천하대역죄인이 될, 그의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은 몰살을 당하게 될, 그리고 자신은 10여 년의 망명객이 될 것이며 망명지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후 결국 중국 상하이에서 조선 정부가 보낸 암살자에게 목숨을 잃을, 그러나 군주를 사랑하였고 조선의 강대한 힘을 꿈꾸었던 김옥균은 이렇게 군주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이 김옥균과 함께 후퇴하는 일본군을 쫓아갔다. 군주의 곁에는 이제, 청군과 군중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될 홍영식, 박영교만 남았다. 실패한 혁명 뒤에 남은 것은 군중의 분노뿐이다. 거리는 살육으로 뒤덮인다. 일본인과 개화파들, 그들의 가족은 보이는 대로 습격을 당한다. 김옥균의 집과 일본공사관은 성난 군중의 손으로 불타올랐다.


(345)

이어 신용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실패 요인은 일본군 무력을 차용한 요인이라며 갑신정변은 아무리 필요하고 애국적인 목적을 갖고 있어도 그 수단에 있어서 침략의도를 가진 일본의 힘을 일부 빌려서 수행하려 해서는 실패하고 만다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우리들에게 남겨주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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