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장자수업 2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2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읽은 <강신주의 장자수업> 1권에 이어서 오늘은 2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게. 장자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늘 느끼는 거지만, 장자는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그런 사람인 것 같더구나. 보통 동양 철학자 중에 맹자를 혁명가에 어울린다고들 하는데, 장자의 사상 또한 관념과 상식을 깨는 측면에서 봤을 때 혁명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1권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누가 쓸모 없음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겠니. 2권에서도 그렇게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생각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장자의 사상들이 계속 나온단다. 아빠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자꾸 잊혀져서 문제지만 말이야

장자의 이야기 속에 장자는 장자로 나오는 언급되는 경우도 있지만, 장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단다. 장주는 장자의 본명이야. 장자(莊子)에서 ()’는 공자, 맹자, 노자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장자는 장 선생님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돼.

..            

우리가 한 곳에 정신을 팔리면 자신을 잊는 경우가 있단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경험할 수 있지. 재미있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옆에서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잖니. 우리가 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 하면 그 위험이 그대로 닥칠 수가 있어. 이런 점을 경계하는 글이 장자의 조릉 이야기에서 나온단다. 그늘에 정신 팔린 매미를 사마귀가 노리고 있고, 매미에 정신 팔린 사마귀를 까치가 노리고 있고, 까치에 정신 팔린 사마귀를 장주가 노리고 있는 상황이란다. 그렇다면 정신 팔린 장주를 노리는 무엇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장주는 이내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거지. 역시나 까치를 쫓아 경계선을 넘어 온 자신을 보게 되었단다.

===================

(39-40)

장주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나는 드러난 것을 지키며 나 자신을 잊으려 했고, 혼탁한 물을 보며 맑은 연못에 매료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미 그 사회에 들어가서는 그곳의 규칙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조릉에서 노닐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었다. 기이한 까치가 이마를 스치고 날아들었을 때 나는 밤나무 숲에서 노닐며 나의 실제상황을 잊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나무 숲을 지키던 사냥터 관리인은 나를 범죄자로 여겼다. 이것이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다.”

===================


1.

아빠가 얼마 전부터 사진 찍는 것을 꺼려하게 되더구나. 언제 생겼는지 모를 주름과 흰 머리. 낯선 아빠의 모습. 그러면서 떠오르는 젊은 시절의 얼굴. 아빠의 마음을 읽었는지 이 책에서 아빠에게 가르침을 주는구나. 사라진 젊음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지나가고 사라진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삶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젊음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 중년의 삶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이야. 세상에는 없음은 없고, 오직 있음만 있다고생각의 차이로구나.  그 문구를 읽고 나서 가끔씩 셀카를 찍어본단다. , 아직 괜찮군.. 하면서 ㅎㅎ

===================

(74)

어쨌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물 혹은 사건들과 제대로 관계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자신감을 상실한 그는 집 밖으로 나가기를 피할 테니까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그래서 타자나 사건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래서 타자나 사건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만들 수 없습니다. 50대 중년은 20대의 젊음에 집착하느라 지금 여기(now & here)’ 50대의 삶을 허비하고 있는 겁니다.<대종사> 편의 현해 이야기가 이 중년에게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없는 것은 없고 오직 있음만 있다는 걸 가르쳐주니까요.

===================

<장자>에는 늙음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 맹손재 이야기에서도 늙음과 죽음을 다루고 있단다. 여기서는 늙음을 젊음의 부재로, 죽음을 삶의 부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 이야기한단다. 늙음을 젊음의 부재가 아닌 늙음 그 자체로 생각하라고, 유목민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므로 집에 소유와 정착이라는 개념이 없단다.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저곳에서 생활하고젊음과 늙음 또한 마찬가지라는 거야. 잠깐 젊음이라는 집에서 생활하다가 늙음이라는 집에서 생활하는 거지. 죽음 또한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음이라는 집이라는 거야. 장자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쉽지가 않더구나.

===================

(229)

젊은 내가 나이고, 사지가 멀쩡한 내가 나이고, 살아 있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장자가 말한 헛된 꿈입니다. 이런 자의식은 늙음을 젊음의 부재로, 불구가 정상의 부재로, 죽음을 삶의 부재로 느끼게 됩니다. 늙음은 늙음으로, 불구는 불구로, 그리고 죽음은 죽음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물론 젊음을 늙음의 부재로, 정상을 불구의 부재로, 삶을 죽음의 부재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젊음은 젊음으로, 정상은 정상으로, 삶은 삶으로 긍정해야 하니까요.

===================

죽음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장자는 자신의 장례식도 유목민처럼 풍장(風葬)으로 지내라고 했단다. 제자들이 까마귀가 선생님을 쪼아먹을까 두렵다 하니, 제자들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할 말씀을 하는데….

===================

(337)

장자가 곧 죽으려 할 때, 제자들은 장례를 후하게 치르려고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곽으로, 해와 달을 한쌍의 옥으로, 별들을 다양한 구슬로, 그리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생각하고 있네. 내 장례용품에 어찌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무엇을 여기에 더 보태려 하는가!”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쪼아 먹을까 두렵기만 합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 위에서는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가 되고, 땅 밑에서는 땅강아지와 개미의 먹이가 되는 것이네. 그런데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를 빼앗아 땅강아지나 개미에 주려고 허니, 어찌 이렇게도 편파적인가!”  <열어구>

===================


2.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유명한 것 중에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이야기가 있단다. 수레가 지나가는데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를 상대하려고 했다는 이야기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강한 상대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을 이 한자성어로 빗대어 말하곤 한단다. 그런데 아빠는 그 거대한 수레의 맞짱 뜨는 사마귀의 용기에도 박수를 한번 보내주고 싶구나.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자세, 나쁘지 않다고지은이 강신주는 장자 또한 사마귀였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더구나.

===================

(125)

어쩌면 장자도 수레와 맞서던 사마귀였는지도 모릅니다. 폭주하는 전거와 그것이 남긴 바퀴 자국 바깥에 거대한 초원과 우거진 산림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장자는 대붕이 됩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위험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여유와 당당함으로 충분히 살아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국가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고, 폭풍우나 산불 혹은 맹금 정도로 보아야 합니다. 천하로 상징되는 국가 질서쯤은 가볍게 날아 넘어가는 대붕의 길입니다. 바퀴 자국에도 잠시 머물고, 수레 위에도 잠시 머물고, 아니면 끝이 보이지 않는 먼 어딘가에도 머물 수 있는 대붕입니다. 수레에 잠시 날아든 대붕은 타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저 자유로운 삶을 보여주며 그들이 자유를 결단하기를 바랄 뿐! 잠시 뒤 대붕은 그 광막한 초원으로 바람만 남긴 채 날아갑니다.

===================

1권에서도 여러 달인들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2권에서도 <재경 이야기>에 달인 목수 재경이 등장한단다. 악기받침대를 단순히 악기만 잘 받쳐주면 되지만, 재경이 만든 악기받침대는 예술이 되어 악기보다 더 주목을 받는단다. 재경이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나무라는 대상과 재경 사이에 아무런 간섭 없이 하나가 되어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하는구나. 사랑하는 사이라면 둘 사이에 아무 간섭 없이 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야. 이 또한 공감 가는 이야기로구나.

장자가 속세를 떠나 살았다고 하지만, 그를 등용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란다. 초나라 군주가 장자를 등용하려고 한 적이 있어. 장자는 무작정 거절한 것이 아니고, 거북이의 예를 들어 초나라 군주가 다시 제안하지 못하게 했더구나. 거북이가 화려한 비단보에 싸여 화려한 방 안과 진흙탕 속 중에 어디서 살고 싶겠냐고 하면서 말이야. 장자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 어떤 체제에 들어온다면, 병이 생기지 않을까 싶구나. 새는 가두지 않는 법. 더욱이 장자는 엄청나게 큰 대붕이잖니.

===================

(250)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초나라 왕은 두 사람의 대부(大夫)를 먼저 보내 그에게 말을 전했다. ‘국가 안의 모든 일을 선생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쥐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초나라에 죽은 지 이미 3000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왕이 이것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에 싸서 묘당(廟堂) 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내가 들었습니다. 이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까요?’ 두 사람의 대부는 말했다.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 테지요.’ 장자가 말했다. ‘그만 돌아가시오! 나는 앞으로도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것이오.’”

===================

<장자>에 나오는 또 유명한 한자성어 중에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있단다. 원숭이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화를 나면서 난리를 쳤고, 그래서 아침에 4,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군말 없이 좋다고 했다는 일화를 통해 보통 우둔한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란다. 그런데 지은이 강신주 님은 2000년 넘게 사람들이 조삼모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하시더구나. 이 일화는 주인이 원숭이들을 사랑해서 부족해진 식량에 대한 배분에 대한 고민이 담긴 이야기라고 했어. 주인의 마음대로 음식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고 원숭이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배분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상대방 또는 아랫사람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소통의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앞으로 조삼모사라는 한자성어는 소통을 잘 하는 사람에게 써야 하나? 먼저 이 이야기를 잘 설명해서 상대방이 기분상하지 않겠구나.

….

아빠가 생각하기에 <장자>의 이야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호접몽(胡蝶夢)’이라고 하는 나비의 꿈이 아닌가 싶구나. 나비의 꿈을 꾸고 나서, 문득 혹시 지금의 이 생활이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야. 오래 전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말이야. 우리의 삶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

(351)

옛날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고 스스로 유쾌하고 기분이 좋았기에 자신이 장주라는 걸 알지도 못했다. 갑자기 깨어나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을 타자와 함께 변화한다.(物化)’고 말한다.     <제물론>

===================

….

지금까지 장자 이야기에 대해서 해보았는데, 장자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유란다. 자유라는 것이 지금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떠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는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는 것도 자유란다. 사실 아빠도 머무는 자유가 더 좋긴 하구나. 그래도 가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도 있고 말이야. 유목민처럼 머물고 싶을 때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그런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지은이 강신주 님이 말씀하시네.

===================

(365-366)

떠날 수 있는 힘! 장자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자유의 소중한 의미입니다. 국가에서도,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마저 우리는 떠날 수 있습니다. 떠나면 불행할 것 같고, 떠나면 살지 못할 것 같고, 떠나면 외로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떠나본 적 없는 불행한 영혼들의 착각입니다. 떠나서 행복할 수 있고, 떠나서 살 수 있고, 떠나서 새로운 누군가와 든든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강박적으로 떠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떠날 수도 있지만 머무는 것도 진정한 자유의 또 다른 의미니까요. 그래서 자유인의 머물기는 가치가 있는 겁니다. 억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머물고 싶어서 머무는 것이니까요. 자유롭게 떠나고 자유롭게 머뭅니다. 그래서 자유인의 거동은 여러모로 유목민과 유사합니다. 유목민이 어딘가를 떠났다면 그는 그곳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가 어느 곳에 머물고 있다면 그곳의 풀들이, 바람들이, 물들이, 구름들이, 그리고 석양의 장관이 그를 행복하게 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일 수 있는 곳, 자신에게 충만한 삶의 뿌듯함을 안겨주는 곳에서 자유인은 머물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체의 불만과 투정도 없이 그냥 쿨하게 떠나버립니다.

===================

이상, 장자수업 끝.


PS,

책의 첫 문장: 내가 누군가 귀가 밝다고 말한 것은 그가 특정한 저것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의 끝 문장: 개골개골!


불교에서 인간은 부처를 숭배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간도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부처의 눈으로 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눈으로 볼 수도 있다는 가르침, 종교로서는 정말 개운치 않은 종교가 불교입니다. 분명한 것은, 승려들에게 복이 있으려면 중생들은 부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중생들이 사찰을 찾아 시주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면 붕괴되는 종교! 탄생할 때부터 그 내부에 시한폭탄을 장착했던 종교! 그것이 불교입니다. 시한폭탄의 초침이 돌아가고 있다는 긴박감 때문인지, 종교성과 함께하는 불교의 인문성은 더 극적인 데가 있습니다. - P15

공수가 선을 그리면 양각기와 곱자에 부합했고, 그의 손가락은 사물에 따라 변할 뿐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영재(靈臺)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만 막혀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발을 잊는 것은 신발에 딱 맞은 것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에 딱 맞는 것이다. 앎에서 옳고 그름을 잊는 것은 마음에 딱 맞는 것이고, 내면의 변화도 없고 외부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마주친 사태에 딱 맞는 것이다. 처음으로 딱 맞았지만 일찍이 딱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느끼는 것은 딱 맞음의 잊음에 딱 맞는 것이다. <달생> - P85

장자에게 ‘허(虛)’, ‘상(喪)’, 혹은 ‘망(忘)’ 등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 개념은 모두 마음을 대상으로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음을 잊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불교를 제외하고 동서양 사유의 전통과는 어딘가 이질적인 주장입니다. - P87

예(羿)는 아주 작은 표적이라도 활로 맞추는 데 능숙했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찬양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서툴렀다. 성인은 ‘자연적인 것(天)’에 능숙했지만, ‘인위적인 것(人)’에는 서툴다. 자연적인 것에도 능숙하고 인위적인 것에도 잘 대처하는 것은 오직 ‘완전한 인간(全人)’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직 벌레만이 벌레일 수 있고, 오직 벌레여야 자연적일 수 있다. 완전한 인간은 자연적인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자연적이라고 여기는 것도 싫어하는데, ‘나는 자연적인가? 아니면 인위적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경상초> - P203

젊은 내가 나이고, 사지가 멀쩡한 내가 나이고, 살아 있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장자가 말한 헛된 꿈입니다. 이런 자의식은 늙음을 젊음의 부재로, 불구가 정상의 부재로, 죽음을 삶의 부재로 느끼게 됩니다. 늙음은 늙음으로, 불구는 불구로, 그리고 죽음은 죽음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물론 젊음을 늙음의 부재로, 정상을 불구의 부재로, 삶을 죽음의 부재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젊음은 젊음으로, 정상은 정상으로, 삶은 삶으로 긍정해야 하니까요. - P229

<제물론>편 여희 이야기에서 장자는 "단지 크게 깨어날 때만, 우리는 큰 꿈을 꾸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장자꿈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날, 애틋함과 아련함이 교차하는 작은 느낌마저 상쾌한 바람으로 씻어보는 날입니다. 안녕! 장자! "지금까지 나는 장자가 된 꿈을 꾸었다. 자유롭게 당당한 장자였고 스스로 유쾌하고 기분이 좋았기에 자신이 나라는 걸 알지도 못했다. 갑자기 깨어나니 분명히 나였다. 내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장자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와 장자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을 ‘타자와 함께 변화한다’고 말한다." - P3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종이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작가님의 <황금종이 2>를 이야기해줄게. 1권에 이어서 2권에서도, 돈에 노예가 되고,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박경숙은 약사인데, 악착같이 돈을 보아 드디어 건물까지 갖게 되었어. 돈에 너무 인색해서 고등학교 동창들에게까지 인심을 잃었단다. 박경숙은 남편이 죽고, 자신이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산 건물을 아들에게 주었어. 그런데 자신은 돈 모으는 데만 신경을 써서 그런지 아들 교육이 제대로 안 시켰나 보구나. 아들은 엄마와 달리 도박에 빠졌어. 아들은 도박에 빠져 엄마가 준 건물까지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어. 뒤늦게 이 소식을 알게 된 박경숙은 충격으로 쓰러져 죽고 말았어. 그 이후에도 아들은 계속 도박에 빠졌고, 모든 돈을 다 잃고 나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

주인공 이태하 변호사의 친구 윤민서라는 사람이 있어. 민서가 찾아와서 사촌 동생의 이야기를 해주었어. 윤민서의 사촌 동생은 윤한서이고, 형제는 22녀였어. 윤한서의 어버지는 올해 75세이고,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혼자 지내셨지. 그런데 얼마 전부터 50대 어떤 아주머니랑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그 아주머니랑 결혼하겠다고 하셨대. 이 소식을 들은 자식들은 난리가 났지아버지가 그 아주머니랑 결혼을 하면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전전긍긍한다는 거야. 그리고 자식들은 그 아주머니가 아버지의 돈과 재산을 보고 접근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윤한서는 윤민서에게 부탁하기를, 윤민서의 아버지, 그러니까 윤한서의 큰아버지한테 말씀 드려서 아버지의 결혼을 만류해 달라는 것이었어. 윤한서의 아버지도 형님의 말은 거역할 수 없을 거라면서 말이야.

이 이야기를 듣던 윤민서는 작은 아버지의 결혼 소식을 들으면, 윤민서의 아버지(윤한서의 큰아버지)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찬성할 거라고 했어. 오랫동안 동생이 혼자 지내는 것을 보고 안쓰러워했는데, 결혼을 한다고 하니 좋아할 것이라면서 말이야.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이제 75세인 작은아버지가 앞으로 20년 넘게 사실 수 있는데 혼자 지내셔야 하냐고 하면서, 아버지의 입장도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했단다. 윤한서는 민서의 이야기를 듣고, 큰아버지를 통해서는 설득이 안될 것 같아 직접 담판을 짓기로 했어. 22녀 형제들과 배우자들까지 모두 모여서 아버지의 집에 쳐들어갔단다. 아버지는 그들을 보자마자 호통을 치셨어. 어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너희들은 나한테 신경이나 썼냐고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줄 아냐고 했어. 그리고 그 아주머니와 아주머니의 아들까지 살뜰하게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봤어. 우르르 몰려간 자식들은 할 말이 없었지. 화가 났지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단다. 늙으신 아버지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자식들그 아버지는 자식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

1.

1권의 마지막 부분에 딸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고 자신도 충격 받아 식물 인간이 된 박현규, 기억 나지? 박현규의 아내 윤민서를 찾아왔단다. 보험설계사 자리를 부탁하려고 말이야.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사람들이었는데, 돈으로 인해 온통 불행한 삶이 되어 버렸구나. 하나밖에 없는 딸을 먼저 보냈는데, 어떤 삶의 목표로 살아갈 수 있을까.

손채경 변호사는 유명한 대형 로펌 회사에서 신입 변호사로 일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단다. 로펌 회사의 고객 중에 하나인 모 재벌 2세와 술자리를 가졌어. 그 자리에서 손채경 변호사는 성추행을 당하고 반항하다가 맞기까지 했단다. 손채경 변호사는 억울함에도 로펌 회사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따지지도 못하고 참아야 했어. 어떻게 들어온 로펌 회사인데 말이야. 자신이 돈이 넉넉해서 이 로펌 회사를 때려 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이 사건의 냄새를 맡고 민노진 기자라는 사람으로부터 손편지가 왔어. 민노진 기자는 이메일이나 문자로 보내면 안 볼 것 같아서, 정성스럽게 손편지를 썼다고 했어. 손채경 변호사가 모르고 있던 사건의 내막이 적혀 있었어. 그때 그 불미스러운 일로 로펌 회사는 그 재벌 2세로부터 합의금 100억을 받았다는 거야. 합의금 100? 피해를 본 것은 손채경 변호사 자신인데, 그 합의금을 왜 회사가 꿀꺽하는 거지? 손채경 변호사는 로펌 회사가 돈 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었나 보구나.

======================

(111)

그 기자는 사회부 기자답게 로펌의 생리와 속성을 환히 꿰뚫고 있었다. 로펌은 그 기자의 지적처럼 돈만 밝히는 곳이었다. 로펌이 돈만 되면 무슨 사건이고 맡고 나선다는 것은 로펌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다. 사건의 선별이 따로 없었다. 기준이 있다면 딱 하나, 오로지 돈이었다. 그러니까 대형 로펌이란 법조 정글 속의 하이에나였다. 그러니 로펌은 떼부자일 수밖에 없었고, 젊은 변호사들은 조심조심 수군수군 자기네 대표가 얼마나 부자일지 짐작하고 추측하고 상상하기 바빴다. 그들이 어림잡고 점친 대표의 재산은 몇천억을 헤아렸다.

======================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서 손채경 변호사는 민노진 기자를 만났단다. 민노진 기자는 그 돈을 돌려 받을 수 있다면서 이태하 변호사를 소개해 주었단다. 손채경 변호사는 사표를 쓰고, 이태하 변호사의 도움으로 로펌 회사로부터 100억을 받아냈단다. 손채경 변호사는 도와주어서 고맙다면서 사례를 하려고 했으나 민노진 기자도 그렇고, 이태하 변호사도 그렇고 모두 거절했단다. 하지만 손채경 변호사는 5억씩 보내주고 자신은 한 동안 쉬겠다면서 여행을 갔단다.

이태하 변호사 주변에는 이렇게 돈과 연관된 지저분한 사건들만 있는데, 그래도 아직 이상을 쫓고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었어. 그 중에 대학 선배 한지섭이 있었어. 운동권 출신으로 국회의원도 한 번 했다가, 그들의 진절머리 나는 행태에 사표를 쓰고 시골로 내려간 사람이었어. 시골에서 외국인 노동들을 위한 조합을 만드는 등 농촌 사회를 좀더 활기차고 좋은 사회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어. 최근에는 아내 김혜은과 함께 광양에서 애플망고 농사를 짓고 있었어. 올해 애플망고 농사가 잘 되었다면서 한번 놀러 오라고 연락이 왔단다.

이태하는 아내 황연주와 함께 광양에 갔단다. 한지섭은 두어 해 애플망고의 실패를 딛고 이번에 제대로 된 애플망고를 수확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농장을 좀더 키워서 장학재단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었단다. 그 장학재단이 설립되면 운영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애플망고에 대한 예찬을 하는데, 마치 애플망고 PPL 같았어. 아빠는 애플망고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애플망고 예찬을 읽다 보니 한번 먹어보고 싶더구나.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니 말이야.

======================

(178-179)

이 과일(애플망고)이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몸에 좋기로, 한마디로 만병통치입니다. 비타민의 덩어리, 섬유질의 덩어리일 뿐 아니라 우리 건강에 좋은 중요 성분들이 다량 들어 있어서 각종 암 예방과 치료 효과가 크고, 특히 남자에게만 있는 전립선암에 특효니 이 형 많이 드시오. 그리고 피부 미용에도 효과가 크니 황 여사도 많이 드시고요. 그 외에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고, 변비를 해결해 주며, 혈관을 깨끗하게 해 고혈압 등 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큽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신성한 과일로 특별 취급을 합니다.

======================

 

2.

1권에서 엄마의 재산을 상속 받아 로또만 샀던 김승기라는 사람 기억 나니? 결국은 로또로 전재산을 날리고 자살을 했단다. 남은 가족들만 불쌍하지. 김승기의 딸 김수희의 친구 전진혜가 있었어. 전진혜는 특이한 일을 소개받았다고 했어. 돈은 많이 주지만 쉽지 않은 일이야. 휠체어를 타고 지내는 85살의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이라고 했어. 그 할아버지는 큰 회사의 회장님이었는데, 지금은 건강을 잃어 휠체어 신세라고 했어. 그런데 그냥 보살피는 것만이 아미고 목욕도 씻겨 드리고 잠 잘 때만 빼고 늘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어. 500만원을 받는다고 했어.

그 이야기를 들은 수희는 꾹 참고 잘해주라고 했어. 그러면 그 회장 할아버지의 집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어. 혼자 사는 할아버지에게 잘 대해주면 감동 받아 죽을 때 집을 줄 수도 있다는 거야. 진혜는 수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회장 할아버지에게 상냥하게 잘 대해주었단다. 속으로는 정말 힘들었지만 말이야. 정말 회장 할아버지는 얼마 못 가서 돌아가셨어. 그런데 이상한 유서를 남겼어.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에게 유산을 남기되, 강아지가 죽고 나면 그 집을 진혜에게 넘기는 것으로 되어 있었어.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가 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라는 거였어. 강아지가 죽을 때까지 말이야. 그러니까 강아지한테 이 집을 상속한다는 거야? 자신이 강아지보다 못한 거야? 진혜는 회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강아지를 갖다 버렸단다. 진혜에게 필요한 것은 살날 많이 남은 강아지가 아니고 돈뿐이니까 말이야.

이태하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돈에 자유롭지는 못했어. 아이들이 미국 유학 중인데 돈이 늘 부족했거든마침 손채경 변호사한테 받은 돈 5억원이 생각났단다. 1억은 암투병 중인 운동권 선배한테 주고 나머지 4억은 아내에게 애들 유학비에 보태라고 주었단다. 좋아하는 아내를 보면서 이태하 변호사도 자신도 흔들렸어. 그리고 얼마 후 또 10억의 사건 의뢰가 들어왔는데, 이 사건을 맡아야 하나 갈등을 하게 된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아무리 청렴하고 살았지만, 절대적으로 돈이 필요한 세상에 살면서 과연 돈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식들이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데 그 재능을 꽃피우려면 돈이 엄청 든다고 할 때, 돈이 없다면 어떨까? 이태하 변호사도 자식들의 유학비는 여전히 부족하고, 지인들의 어려움에 빠져 있어 돈이 필요한데, 자신의 10억의 사건 의뢰가 들어왔을 때 망설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구나.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결국 이태하도 돈의 세계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뉘앙스로 끝을 맺었단다.

======================

이태하도 복잡한 생각이 뒤엉킨 채 그 사람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

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도 뭐 다르지 않단다. 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구나. 회사 은퇴를 하고 나서는 수입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고 걱정하고, 너희들의 교육비를 걱정하고계속 오르기만 하는 물가를 걱정하고돈의 세계에 살면서 돈으로부터 좀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 쉽지 않구나.

 

PS,

책의 첫 문장: “느네들 경숙이, 박경숙이 소식 들었니?”

책의 끝 문장: 이태하도 복잡한 생각이 뒤엉킨 채 그 사람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우리는 왜 국가적으로 이런 조처를 취하지 못하는가. 영어 간판을 쓰되 위에는 반드시 한글로 쓰고, 아래에는 영어를 쓰게 하는 방법 말이다. 이것은 쇄국이 아니다. 그건 국가적 존엄성과 국민적 자주성을 스스로 지키는 일인 것이다. 이 나라의 이 정신없는 영어 범람 현상을 미국 사람들은 뭐라고 하며 바라볼까. 고마워할까, 기특하다고 할까, 스스로 문화식민지가 되려고 허둥거리는 꼴을 보며 불쌍해하고 경멸할까. - P141

부모들이 자식들 교육에 열성이고 최선을 다하는 건 더할 수 없이 좋은 미덕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자식의 소질과 재능과 능력이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본인의 욕구와 의지와 선택이 선행된 다음에 따라야 할 뒷받침이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과정이 전혀 없이 부모들의 과도한 욕심만 앞서서 무작정 저질러지는 일이 그 교육열 아니오? 우리나라 부모들은 무작정 자식들이 출세하고, 부자로 잘살기를 갈망하고 있소. 그 신기루를 향해 부모들은, 불빛을 보고 무작정 달려드는 불나방 떼처럼 서울로 서울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오. 그러나 부모들이 소원하는 그 꿈을 이루어내는 자식들이 몇 퍼센트나 되겠소? 그 상위층이 된다는 것은 10퍼센트도 안 되는 숫자요. 나머지 90퍼센트는 다 실패고 헛수고요. 도시빈민으로 허덕거리며 죽을 둥 살 둥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지만 결국에는 빈손이기 십상인데, 그런 무모하고 어리석은 인생살이가 어디 있고. 그런 과욕이 자기 인생도 망치고, 자식 인생도 불구로 만드는 것이오 - P154

그 말이 맞소. 사회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돈이 생겨난 이후 5천여 년에 걸쳐서 줄곧 돈의 노예였소. 그런데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사회주의가 스스로 몰락하면서 자본주의가 독불장군으로 세계 지배력을 장악하게 되고, 그 세월이 30년이 넘으면서 이 나라 청소년과 젊은이 들까지 돈의 마력에 완전히 휘말리게 되고 말았소. 돈의 괴력과 마성이 문제지 거기에 휩쓸리는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소. 종교마저 돈 앞에서 마구 휘둘리고 꼼짝을 못 하는 판이니 돈을 제일로 치는 젊은이들을 탓할 것도 없소. - 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종이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정래 작가님의 신간을 읽었단다. 자필 싸인으로 된 책을 선물 받았단다. 나이는 숫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시는 조정래 작가님.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소설가는 시대의 산소라는 것을 증명하듯 이번 작품에서도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소설에 담아주셨단다.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천년의 질문>에 이어 <황금종이>도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어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갖게 하셨어.

제목 황금종이에서 연상되듯이 이번 소설은 에 관한 이야기란다.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 사고 중에 많은 이야기들이 과 관련된 이야기란다. 돈 때문에 가족 간에도 살인이 벌어지는 세상,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세상, 돈이 권력이 되고, 돈이 계급이 되는 세상.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는 그 세상에서 살고 있단다. 돈이 줄어들면 두려움이 생기고,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심적으로 안심이 되는 건 아빠도 마찬가지란다. 많은 욕심은 부리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빠도 돈에서 자유롭지는 않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소재로 소설을 쓰신 것 같은데, 이 책을 통해서 돈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단다.

 

1.

이태하. 인권 변호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야. 운동권 출신으로 졸업 전에 사법고시를 합격한 수재 중에 수재였지. 검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재벌 회사를 담당하게 되었고, 재벌 회사의 비리 의혹을 재기했다가 검찰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지방 발령을 받게 되었어. 그 이후 검사옷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일하게 되었단다. 비록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변호사로서 보람된 일을 하는 것에 만족했단다. 그는 인권변호사이긴 하지만, 친구들의 사건 의뢰를 하면 공정한 입장에서 사건을 맡아주기도 했어.

어느날 대기업 다니는 친구 박현규가 찾아와서 법률 상담을 받았어. 박현규의 이종사촌 여동생이 자신의 엄마, 그러니까 박현규의 이모를 상대로 상속관련 민사 소송을 걸었다는 거야. 이모를 도와주기 위해서 이태하에게 사건 의뢰를 하려고 했던 거야. 박현규는 이태하의 조언을 받아서, 사촌 동생들을 협박 반, 설득 반 이야기를 했고, 사촌 동생들은 다행히 소송취하하기로 했단다. 또 한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상속 관련해서 물어보려고 오기도 했단다. 이렇듯 친구들이 그에게 법률 상담을 하려고 오는 경우는 대부분이 돈과 관련된 것들이었어.

단골집 행복 식당 사장님의 안타까운 사건도 돈과 관련된 것이었단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강남길이라는 사람은 건물주인이 바뀌고 월세를 4배 인상 소식을 들었어.. 2배도 엄청나게 많은 것인데, 4배는 강남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 건물 주인을 찾아가 몇 번을 읍소하고 부탁했지만, 건물주인은 요지부동이었고, 월세를 내지 못하면 가게를 빼달라고 했어. 이제서야 자리를 잡고 장사도 잘 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강남길은 건물 주인과 이야기하다가 우발적으로 화를 내자, 건물 주인은 도망을 갔고, 강남길은 쫓아가 어깨를 쇠망치로 때렸단다. 이 사건으로 강남길은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고, 강남길의 아내 오수자가 이태하를 찾아왔단다. 이태하는 강남길이 술을 먹고 우발적인 사고였다는 것을 강조하여 중벌은 면했지만 여전히 경찰서에 구금을 당했어. 이태하는 강남길의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재판을 준비하기로 했단다. 일반 국민들이 아무래도 을의 입장이었던 강남길을 더 이해해 줄 것이니 말이야.

김민제는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재벌이란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40년만에 사생아가 나타나서 자신도 아버지의 친자로 상속권을 주장했어. 김민제는 황당했지. 그 사람의 말이 맞다면 상속법 상 절반을 그에게 주어야 했어. 사실 김민제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아버지가 오래 전 바람을 핀 여자 사이의 각서를 발견했거든. 아버지는 오래 전에 그 여자와 사생아에게 일부 재산을 주었고, 그 이후 어떤 재산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였어. 김민제는 그 각서가 유효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생아가 이야기하기를 그 각서는 자신의 엄마와 아버지의 사이의 각서이지, 자신과는 관련 없는 것이라며 상속에 관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했단다. 난감해진 김민제는 동창 박현규를 통해 이태하 변호사에게 자문을 부탁했단다. 이태하는 현재 상속법으로 5050이 맞기 때문에 쉽지 않은 소송이라고 하고, 억울하겠지만 어느 정도 돈을 주고 화해하는 방안을 가이드 해주었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식당 주인의 아내 오수자, 이 분은 마음이 여리고 착하신 분 같구나. 식당 일 때문에 자신도 어려운 처지인데, 집안 친척의 일들도 살펴야 했어. 큰 고모가 계신데, 큰 고모가 젊은 시절, 남편의 폭력을 참다 못해 도망쳐 나와 지금까지 혼자 지내셨어. 안 해본 일 없이 온갖 일을 다 하셨는데, 얼마 전에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어. 오수자의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큰 고모 병원에 가서 좀 보살펴주라고 해서, 오수자는 큰 고모 병문안을 갔단다.

그런데, 그곳에 낯선 이가 있었어. 아들 김승기가 어떻게 알고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거야. 큰 고모가 많지는 않지만 평생 모은 돈과 아파트를 노리고 접근한 거지. 김승기는 엄마에게 계좌번호 비밀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큰 고모는 아들을 믿지 못하고 알려주지 않았어. 하지만 큰 고모는 며칠 못 가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장례식상에는 김승기 말고, 큰 고모의 딸도 몇 십 년 만에 나타나서, 남동생과 말다툼을 했단다. 이유는 상속 때문이었지. 큰 고모는 죽을 때까지 돈을 쥐고 있었고, 자식들은 많지 않은 돈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장례식장에서 싸우고돈은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 같구나. 아들 김승기는 누나와 엄마의 아파트를 팔아서 반씩 나눠가졌어. 그런데 누나가 모르고 있던 엄마의 통장에 있던 돈은 혼자 몰래 꿀꺽했지. 그 돈이 14천만으로 적지 않은 돈이었어. 공돈이 생긴 김승기는 계속 로또만 샀단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데도 말이야. 계속 사다 보면 1등이 될 것만 같았고, 1등만 되면 더 큰돈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 아내와 딸이 말려도 김승기는 멈추지 않았단다.

 

2.

소설의 첫 부분에 이태하 변호사의 친구로 나온 박현규. 그에게는 딸 서린이 있었어.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남자친구의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나서 헤어졌어. 그리고 얼마 후 수천 억 프랜차이즈 가게를 가지고 있는 사업가의 아들과 사귀게 되었어. 서린의 엄마 신혜주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했지.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 서린의 전 남자친구는 서린이 자신을 멀리한 이유를 모르고, 서린을 계속 쫓아다녔어. 서린의 입장에서는 스토킹이었지. 서린의 엄마 신혜주는 남편 박현규에게 서린의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을 해결해 보라고 했어. 박현규는 딸의 전 남자친구를 만나 따끔하게 충고를 했고, 전 남자친구는 알겠다면서 박현규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듯 했어. 하지만 서린을 잊지 못하는 전 남자친구는 서린을 계속 쫓아다녔고, 서린이 새로운 남자친구, 그것도 갑부집 아들인 것을 알고는 술 먹고 서린을 찾아와 단판을 지으려고 했어. 술 기운에 서린과 말다툼을 하던 전 남자친구는 서린을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은 자살을 했단다. 이 사건으로 박현규는 충격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대.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이태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돈이 또 사고를 쳤구나.

편의점 주인을 하는 송동식. 큰 돈은 벌지 못하지만 착실하게 살던 사람이었어. 하지만, 아주 작은 유혹을 이기지 못했단다. 어떤 학생들이 몇 푼 더 얹어서 돈을 줄 테니 담배를 팔아달라는 것이었단다. 그 학생들은 CCTV가 없는 곳에서 거래를 하자는 제안도 했어.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송동식은 몇 번 거래를 하다 보니 수입이 괜찮았어. 하지만 얼마 못 가 경찰에 걸려서 경찰서 신세를 졌단다. 송동식의 아내는 행복식당 오수자에게 부탁해서 이태하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 하지만 이태하 변호사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단다. 미성년자에 담배를 파는 것은 국가에서 제정한 국가법이기 때문에 구제가 쉽지 않다고 했단다.

….

이상 1권의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았단다. 소설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모두 뉴스 상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소식이라서 더 무서웠던 것 같구나. 소설을 읽으면서 돈에 대한 경각심을 생겼고, 사람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그럼 조만간 2권도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딸이 어머니에게 소송을 걸었다?”

책의 끝 문장: 김수희가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백만장자, 억만장자를 모두 부러워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의식중에 지배당하고 있다.’
언젠가 읽은 어느 심리학자의 글이었다.
- P81

그런데 교단 끝에서 휙 돌아선 교수가 칠판 빈 데다 쓰기 시작했어. ‘돈은 인간에게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 이렇게 쓴 교수가 돌아서더니 ‘오늘 강의는 끝!’ 하고는 강의실을 나갔어. 다른 것들 것 달리 아무 부연 설명도 없이. 그때 모든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칠판의 그 짧은 문장에 박혀 있었어. 그 한 줄의 문장은 학생의 질문만큼 도발적이고 신선했거든. 그 처음 듣는 말에 학생들은 묶인 채 침묵은 꽤 오래 계속되었어. 학생들은 돈과 실존과 부조리와의 상관관계를 따지고 파악해 보려고 헤매고 더듬거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누군가가 침묵을 깼어. ‘그거 그럴듯하네." 또 누군가가 ‘어렵다, 어려워"하며 일어섰고, 또 어떤 사람은 ‘아이고, 골치 아프다. 실존이든 부조리든’하며 자리를 떴어. - P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린 왕자 - 갱상도 (Gyeongsang-do Dialect)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자, 최현애 역자 / 이팝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년 전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그인 알라딘서재에서 알게 된 책을 읽었단다.

애린 왕자.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분명 겉표지는 어린 왕자이고, 지은이도 생텍쥐페리라고 써 있는데, 번역본의 제목은 어린 왕자가 아니고 애린 왕자였어. 왜 그런가 궁금해서 책 소개를 봤더니, 이 책은 어린 왕자의 경상도 사투리 버전이라고 써 있다고 하더구나.

미리 보기를 통해 어떻게 번역되어 있나 봤더니, 억세고 사나이 냄새 잔뜩 나는 경상도 사투리로 적혀 있더구나. 눈으로 읽어도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는 듯 했어. 재미있겠다 싶어 주문했단다. 그런데 좀 알아 보니, 전라도 사투리 버전인 에린 왕자도 있다는 구나. ㅎㅎ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 버전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고

<애린 왕자> <에린 왕자>를 같이 주문했어. 집에 왔을 때 앞에 몇 페이지만 보고, 큭큭거렸던 기억이 있구나. 얼마 전에 독서 앱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애린 왕자가 오디오 북으로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책장 속에 잠자고 있는 <애린 왕자>를 꺼내 들고, ‘밀리의 서재의 오디오북과 함께 읽어보았단다. ‘밀리의 서재 <애린 왕자> 오디오북을 녹음하신 분이 경상도 네이티브인지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듣기에 나쁘지 않았단다. 1배속보다는 1.5배속 정도로 해서 들어야 경상도 사투리의 제맛을 느낄 수 있었단다.

경상도 사투리로 읽고 들어도 어린 왕자의 순수함은 변하지 않는 것 같구나. 좀더 정감 어린 것 같더구나. 어린 왕자의 내용은 아빠가 재작년에 표준어 번역본 <어린 왕자>를 읽고 이야기해준 내용이 있으니 따로 하지는 않을게. 이 책을 기획하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밀리의 서재를 검색해 보니 <에린 왕자>의 오디오북도 있더구나. 그것도 기회가 될 때 들어봐야겠구나. 충청도 버전의 <어린 왕자>도 출간되었는지, 검색해 보니 충청도 버전은 소문만 있었고, 출간은 안 된 모양이더구나. <어린 왕자>뿐만 아니라 유명한 고전들을 사투리 버전으로 번역 출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잘 찾아보면 어울릴 만한 고전이 있지 않을까 싶구나.

오늘은 아주 간단히 소감만 이야기하고 마치련다.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나는 보아뱀이라 카능 기 정글에서 젤로 무서븐 기라꼬 생각했데이.

책의 끝 문장: 구란데 어느 으른도 이게 이마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지는 몬 할끼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4-02-13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투리 버전, 괜찮은 아이디어같네요.ㅎㅎ

bookholic 2024-02-15 09:43   좋아요 0 | URL
네.. 사투리로 번역하면 어울리는 책 선정해서 시리즈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꼬마요정 2024-02-14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디오북 들어보고 싶어요!! 재밌겠어요^^

끝문장 웃깁니다. 구란데... 구라래... ㅋㅋㅋㅋㅋㅋㅋ

bookholic 2024-02-15 09:45   좋아요 1 | URL
직접 낭독하면서 녹음해 보셔도좋을 것 같아요~~~^^ 지인들한테 선물~~
 
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한국 근대사 산책 8권의 이야기를 할게. 8권의 부제는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란다. 만주사변은 1931년이고, 신사참배는 1930년대 중반부터 많이 강요했으므로, 8권의 다룬 시대는 193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라고 보면 돼.

그럼 바로 시작해 볼게. 일제의 강압과 폭력을 피해 많은 우리나라 동포들이 만주 지역에 가서 터를 잡았단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만주 지역의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 간의 다툼이 있곤 했어.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지. 그런데, 일본이 이것을 사악하게 이용하려고 했어. 일본은 일상적이 이 사소한 마찰을 허구로 왜곡하여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죽였다고 소문을 퍼뜨렸어. 국내에도 이 소식이 전해지고,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호외까지 내면서 대서특필했단다. 이 소식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했던 동아일보와 다른 행보였어.

조선일보를 통해 전해진 이 소식은 국내에 있는 백성들을 열 받게 했어. 분풀이 하겠다면서 국내에 살고 있는 화교들을 공격하였고, 이 사건으로 100여 명의 화교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런데 이것도 알고 보니, 혼란의 틈을 타서 일본인들이 죽인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구나. 이 소식은 다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에서는 중국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졌단다. 완전히 일본의 음모에 말려든 거지. 일본은 중국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중국인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군을 대거 투입하였고, 이 군대를 이용하여 그대로 만주를 점령하였단다. 이것이 바로 만주 사변이란다. 때는 1931 9 18일이었어.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조선일보의 이 소식을 접하는 자세였단다. 일본의 앞잡이 신문이 다 되었다고는 하지만, 신문의 영향력을 생각했을 했을 때, 좀더 정확한 정보를 입수한 후 기사를 썼어야 했어.

근현대에 와서 신문은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넘어 권력까지 갖게 된단다. 1930년대에도 그런 신문의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한 이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 당시 신문을 비판하는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 신문에도 딱 맞는 글 같더구나. 많은 매체들이 생겨나서 옛날보다 신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구나.

======================

(116-117)

당시 신문이 누린 권력과 신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월간 <동광> 1931 12월호에 실린 <신문 비판 특집>은 주목할 만하다. 이 기사는 대화형식으로 신문에 대한 세평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조선의 신문계에 사장이면 판서 격은 되고 중역이면 참판 격은 된다는 말을 못 들었나? 그 밑에 국장도 있고 부장도 있으니까 벼슬 못한 조선 민간 유지에게는 이것이나마 훌륭한 벼슬자리인 줄을 모르는가? …… 연전에 모 신문에서 수재금을 모집하니까 푼푼이 들어온 것이 5만여 원이요, 또 요새 이충무공 성금모집도 2만 원을 돌파했으니, 이 돈 없는 조선에서 그만한 돈을 모은다는 것은 신문의 위력이 아니고는 못할 일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시골 가서 보면 석유 등잔 희미한 불빛 밑에서 동리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신문지가 해지도록 돌려가며 읽고, 신문에 난 말이면 만고의 진리로 듣는 형편이니.”

======================

         

   

1.

1930년대 들어서면서 독립운동은 한풀 꺾이게 되었단다. 일본 침략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이들이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도 그 열정을 이어가기 힘들었나 봐. 이때 다시 독립운동의 횃불을 켠 이들이 있으니, 바로 김구 선생이 만든 임시정부 의열 투쟁 단체인 한인애국단이란다. 1932 1, 이봉창 의사가 일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에서 일왕 암살 시도를 했단다. 폭탄이 안타깝게도 불발이라서 실패를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어. 그리고 1932 4월에는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전승기념 및 천장절 기념식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요인들을 죽인 사건이었단다. 윤봉길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1932 12 19일 총살형으로 삶을 마감하셨단다. 아직 100년도 채 안된 시절이었구나.

1920년대부터 유행하던 사회주의 노선의 국내 활동은 193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탄압에 의해 더욱 힘들어졌단다. 국내 공산당을 이끌던 이들은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 등이 있었어. 이들은 경성 트로이카로도 불렀는데, 국내에서 공산당 재건을 위해 노력했단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빠도 오래 전에 안재성 님의 <경성 트로이카>라는 책들 통해서 읽어본 적이 있구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일제의 탄압에 의해 이재유는 여섯 번 체포 당하고 여섯 번을 탈출했대. 대단하시구나.

상해에서 체포되어 국내 감옥에 수감 중인 여운형은 가출옥하게 되었는데, 그 후에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대. 당시 신문 시장은 동아일보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금광으로 떼돈을 번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동아일보의 인력을 빼오면서 조선일보가 성장하게 되었대. 그때 빼온 인력들 중에 밉상 이광수도 있었단다. 이광수는 조선일보 부사장을 비롯하여 다섯 가지 직책을 맡으면서 조선일보를 동아일보와 함께 양강체제를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는구나. 당시 신문 구독자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가 연재 소설을 싣는 것이었어. 그래서 1930년대는 신문 연재 소설의 전성기였다고 하는구나. 많은 작품들이 신문에 연재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홍명희의 <임꺽정>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은 그 이후에 오랫동안 인기를 끈 역사소설이 되었지.

1920년대 사회주의 문학예술문학운동단체로 번성했던 카프도 일제의 탄압으로 몰락했다는구나. 카프 멤버 중 안막이라는 작가가 있어. 물론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야. 그런데 왜 이 사람을 이야기하냐면, 안막의 아내가 엄청 유명한 무용가인 최승희라는 사람이란다. 최승희라는 사람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일제 시대 유명한 무용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거든. 이 책에서 잠깐 최승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 분이 전세계로 활동하는 무용가였더구나.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줄은 몰랐네.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무용이라는 재능을 펼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변론하는 이들도 있었어. 해방 후에는 남편 따라 북한으로 갔다고 하는구나.

======================

(138-139)

167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졌던 최승희는 1937년부터 5년간 세계 공연을 나섰으며, 이때에 반도의 무희’ ‘동양의 진주’ ‘동양의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전성기 당시 최승희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 예술인들과 교류를 맺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 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 소설가 존 스타인벡, 루이스 레에나, 존 그로프,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 소설가 로맹 롤랑, 미셀 지몽, 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녀와 친교를 맺었다. 파리 공연 때 파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았는데,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나중에 안씨 집안(시댁)과 최씨 집안(친정) 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

또 다른 문학 단체로 구인회가 있었는데 이효석, 이무영,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도 이 단체의 멤버였대. 이상과 김유정이 비슷한 시기에 폐결핵을 사망했다고 하네. 창단 멤버는 아니지만 나중에 박태원이라는 분도 구인회 멤버가 되는데, 박태원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분이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읽어봤으면 하네. 몇 년 전에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수상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로 박태원 작가가 소개된 적도 있어.


2.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엄청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시작인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제시대에도 교육열이 엄청 높았대. 보통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나서 1 1교제라 하여 한 개 면에 한 개 보통학교를 세웠대. 보통학교를 6년제로 바꾼 것도 이 시기였다고 하고과학이나 우생계몽운동도 일었는데, 지금은 우생학이 잘못된 학문이라서 폐기처분 당했지만, 당시에는 많이 유행했나 보구나. 우리나라에도 1933년 조선우생협회가 생겼대. 우생학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빠가 작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 세계대공황과 히틀러가 우생학을 악용하면서 우생학은 쇠퇴했다고 하는구나.

1930년대에 조선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조선학이 등장했다는구나.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책들을 쓰셨어. 신채호도 합류하여 <조선상고사> 등 많은 역사책을 쓰셨단다. <조선상고사>는 여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 쓰셨다고 하는구나.

당시 농촌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이 유행했단다. 브나로드 운동은 아빠가 학창 시절에도 시험문제에 자주 출제되었던 기억이 있구나. 브나로드라는 말은 러시아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이래. 이 운동의 취지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문자보급운동을 하였고, 이광수의 <>, 이기영의 <고향>, 심훈의 <상록수> 등이 출간되었어. 사실 심훈의 <상록수>라는 책은 브나로드가 끝난 1935년에 출간하긴 했지만, 농촌 계몽 소설로 브나로드 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어. 이런 좋은 운동을 변절자 이광수가 주도한 것을 보면,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어떤 평론가는 이광수의 <>은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이 담겨 있다고 평하기도 했단다.

======================

(193)

브나로드운동을 주도한 것은 편집국장 이광수였으며, 그 운동의 시범작으로 쓴 것이 <>이다. 지수걸은 <>에 대해 이광수가 <>에서 표방한 하면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아는 것이 힘’ ‘티끌 모아 태산등의 헛구호는 제국주의 지배모순을 은폐하기 위하여 일제가 선전한 자력갱생운동 구호와 거의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이러한 구호는 안 해도 이미 되어 있는 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될 사람들에게 안주 삼아 내뱉는 비아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

심훈이 발표한 <상록수>는 동아일보 공모전에 당선되었는데, 상금으로 야학당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야학당은 해방 후에 이름을 상록초등학교(충남 당진에 있는 학교)로 바꾸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우리나라 선수로써 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금메달을 딴 사람은 손기정이라는 분이란다.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참가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1등은 손기정, 3등은 남승룡이 차지하면서 시상대에는 조선의 젊은이들이 두 명이나 있었어. 심훈은 당시의 감격을 글로 쓰셨는데, 지금 읽어봐도 감격이 전해지는 듯하구나.

======================

(215)

시인 심훈은 8 10일 새벽 <조선중앙일보>가 발행한 신문 호외를 받아들고 그 뒷장에 그대들(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들의 심장 속에 솟음치던 피가 2300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 외치고 싶다. 인제는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라고 갈겨썼다. 감격에 몸을 떤 심훈은 그 즉흥시를 들고 <조선중앙일보>의 편집실을 찾아가 한바탕 읽어 들려주고는 사라졌는데, 그 이튿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에서 손기정 선수의 소식을 전하면서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실었단다. 일본은 크게 격분했지. 이후 동아일보는 일제의 강력한 탄압을 받게 되는데, 탄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함께 일제 어용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

(226)

<동아일보>는 일장기 말소 사건 후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친일 어용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조선일보>의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일보>는 일제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1937 1 1 <조선일보>는 일왕 부부의 사진을 1면에 크게 싣고 같은 지면에 총독의 새해 기념사와 휘호를 실었다. 이후 해마다 1 1일자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커다랗게 실었다.

======================


3.

1937 7월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켰어. 승리한 일본은 중국 난징을 공격하여 민간인들을 포함한 수십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난징대학살도 이 시기에 일어났단다.

김구의 한인애국단 활동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독립운동의 침체기는 이어졌단다. 독립투쟁에 있어서 분열과 연합이 이어졌는데, 우파는 김구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단다. 김원봉은 김구의 단체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단다.

======================

(249)

김원봉은 1937 12월 초에 김구 중심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가담하지 않은 중간파, 좌파세력을 결집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다.

한상도는 이로써 1930년대 후반기, 중국 관내 지역 한인들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김구의 우파그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가던 김원봉 중심의 중간좌파그룹으로 양극화되어갔다.”고 했다. 1938년엔 장제스가 직접 나서 한인세력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구하게 된다. 끝없는 분열! 당시 독립군세력이 처해 있던 최악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긴 어렵겠다.

======================

나중에 1938년에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를 이끌면서, 반대로 김구의 한국광복운동단체 연합회에 조선의용대 합류를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김구가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1937년 연해주에서도 아픈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단다.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고려인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 했어. 그 먼 길을 좁은 기차 칸에서 빽빽이 이동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뿐만 아니라 소련은 반역죄의 명목으로 2000여 명의 고려인이 총살 당했다고 하는구나. 나라 잃음 설움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우리 백성들의 희생으로 돌아왔단다. 왜 소련은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정권을 잡게 되었는지, 안타깝구나.

======================

(252)

1934년 사할인에서 출생해 <고려일보>의 사장을 지낸 조영환은 러시아는 한인 이주민을 교묘히 이용하여 연해주 일대의 미개간지를 개척한 후에는 이 개간지에 러시아인을 이주시킨 다음 한인들을 다시 오지인 미개간지대로 추방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35년 이후 연해주에 상주하는 한민족 수가 근 30만 명이었는데 그 후에도 인구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조국이 인접한 이 지대가 장래에는 한민족의 자치지역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탈린 체제는 1932년부터 한민족 중 인텔리, 기술자, 농업전문가, 당 관리요원, 군무자 등 민족의 두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일제 스파이라는 것이다. 한평생 조선의 독립을 위해 반일투쟁에 몸바쳐온 연해주 한민족들에게 역사의 철천지원수인 일제의 스파이라는 혐의는 만인의 단죄를 받는 야수적인 행위였다. 그 때문에 1932~1937년까지만해도 한민족의 핵심 지식인 2000여 명이 학살되었다.

======================

그 이전에도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로 이민 가는 백성들이 많았는데, 1930년대도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만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한편 1930년대 국내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갑부가 되려는 이들이 많았어. 그로 인해  금광과 부동산 열풍이 일었고, 주식 투기꾼들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여러 큰 기업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경성방직이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하는구나. 경성방직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졌는데, 김성수, 김연수 형제가 이 기업을 이끌었는데, 이들 또한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단다. 친일이 아니고 자본주의 흐름을 탔을 뿐이라고 핑계를 대신 해하는 이도 있다는구나.


4.

일본은 193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황국식민화 운동을 하였고, 그 일환으로 한글 교육을 중단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단다. 1938 6월에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을 만들어서 언론사가 주도하는 국민총동원도 했어. 이것의 목적은 내선일체를 강화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일본군에 지원하도록 언론사들이 앞장서 독려했단다. 지원병에 대한 대우로 좋게 해주다보니 지원병이 증가했는데, 이것은 먹기 살기 위한 생계형 지원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구나. 일제는 역사에 있어도 식민사관을 주입하려고 했어. 단군조선에 관련된 모든 책들을 태워버렸단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에 대한 자료가 적게 되었나 보구나.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단다. 이 조직에 최남선도 참여하여 일선동조를 주장하는 만행을 저질렀어. 일본은 우리나라 역사를 식민사관으로 서술한 <조선사> 35권을 펴내기도 했어. <조선사>는 박은식이 1915년에 쓴 <한국통사>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자 식민사관으로 기획하여 만든 책이라고 하는구나. 이젠 완전히 조선을 식민지가 아닌 자신의 나라로 끌어들이려고 한 거야.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조선사> 제작에 참여한 대표적인 식민사관 사학자 이병도라는 사람이 있단다. 이 사람은 아빠도 알만큼 유명한 식민사관 역사가란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후에도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이 한국사를 주도했다는 거야.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사는 식민사관 역사를 배워 온 것이라고 예전에도 들었어. 이런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되니, 오늘날 정치판에도 아직도 친일파들이 많은 것 같구나. 된장.

1937 6월 수양동우회라는 사건이 있었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란다. 무려 181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었는데, 4 5개월 재판 끝에 다행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대. 그런데 그동안 감옥에 있으면 대부분 전향을 했고, 모진 고문으로 죽은 이들도 있었어. 그 중에 도산 안창도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감옥에서는 죽지 않았지만, 투옥 중에 병을 얻어 병 보석이 되었고,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1938 3)

의아한 것은 안창호의 제자였던 이광수는 안창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일본에 자신이 전향할 테니 동우회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무죄를 받게 해달라고 했다는구나. 이것은 이광수가 자신이 친일 하게 된 변명으로 많이 이야기를 한대. 자신의 말대로 친일이 동우회 사건의 무죄를 받기 위한 위장 친일이었다면, 그 이후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지. 그는 이 사건 이후 주요한 등과 함께 철저하고 악랄한 친일파가 되었단다.

신사 참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전국 곳곳에 신사를 지었다고 하는구나. 1943년에는 무려 854개를 지었대. 신사 참배를 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유일신을 믿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것이나,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신사참배를 허용했다고 하는구나. 종교도 결국 강자의 편이구나. 개신교도들 중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2000여 명이 투옥되고, 200여개의 교회가 폐쇄되고, 50여 명이 순교했다는 아픈 역사가 있구나.

….

여기까지 8권의 이야기란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글이 엄청 길어졌네. 그 만큼 아픈 역사가 많던 시절이라서 그랬나 보구나. 이제 두 권 남았구나. 아빠가 부지런을 좀 떨어서 얼른 이야기해줄게. 말뿐일 수도 있지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미국에서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또는 재즈 시대(Jazz Age)’라고도 할 만큼 번영과 즐거움이 솟구친 시대였다.

책의 끝 문장: 1940년대 들어 그 전쟁기계 국가의 광란은 극을 치닫게 되며, 그 와중에서 조선인의 신음 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간다.


1929년의 대공황은 인류 문명사에도 한 가지 큰 변화를 몰고왔으니, 그건 바로 소비(consumption)라는 개념의 재탄생이었다. "소비"는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단어로 ‘consume’이라는 동사의 본래 뜻은 파괴하고, 약탈하고, 정복하고, 소진시킨다는 의미였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비(consumption)’라는 단어는 낭비, 약탈, 탕진, 고갈 등과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으며, 심지어 폐병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대공황 이후 대중광고와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소비’라는 단어는 ‘선택’과 동일시되면서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다. - P11

"반민생단투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광으로 전개되어 심지어 4살짜리 어린애까지도 죽였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고 적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문, 타살까지 자행했던 것이다. …… 자기보호 혹은 지나친 불안감이나 과시욕에서 나온 적극성의 과잉표현으로 중국인들 앞에서 조선인을 믿을 수 없음을 고백하며 조직에 자신의 청백함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심리가 민생단 적발과 비판투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의 혁명성을 나타내기 위해 조그만 일도 큰 문제로 고발하고 또 거짓진술을 해댄 것이 반민생단투쟁을 확대, 지속시킨 중요한 원인이라고 인정된다." - P74

그러나 1929년 주식시장 붕괴는 우생학의 기본 사상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이탈리아계, 폴란드계, 유태계 이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금융 엘리트들의 실직사태가 벌어지고, 중산계층 전문가와 학자들도 이들과 나란히 실업자 대열에 들어서게 되자,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대공황은 수백만 미국인들을 평등하게 하여, 북유럽계 인종이든 남유럽계 인종이든,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들이건 유태인이건 모두 똑같이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 P161

"첫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사회진화론의 내적 모순을 해결하는 이념으로서 수용되었다기보다는, 시대적 조건의 변화와 독립 이후의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저항적 민족주의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목표를 심화하는 발전적 계기로서 수용되었다. 둘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그의 민족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양자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채호에게 있어서 무정부주의가 민족주의의 방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정부주의는 민족주의의 발전된(혹은 민족주의가 지양되는( 단계로서 간주함이 타당하다. 셋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좌우 양쪽을 모두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수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종합하여 지양하는 제3의 가능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P181

김원봉은 1937년 12월 초에 김구 중심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가담하지 않은 중간파, 좌파세력을 결집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다.
한상도는 "이로써 1930년대 후반기, 중국 관내 지역 한인들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김구의 우파그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가던 김원봉 중심의 중간좌파그룹으로 양극화되어갔다."고 했다. 1938년엔 장제스가 직접 나서 한인세력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구하게 된다. 끝없는 분열! 당시 독립군세력이 처해 있던 최악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긴 어렵겠다.
- P249

<한국통사>는 대원군시대부터 한일합방까지 50여년의 뼈아픈 망국사로, 국가는 비록 망하였지만 국혼(국가의 정신적인 힘)인 국교, 국가 등을 보존하고 교육과 독립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국백인 국가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정신사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어 박은식은 1920년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했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쓴 독립운동사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고무되어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까지의 독립투쟁사를 서술했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선 민중의 힘과 민의의 결집이 독립실현의 중요수단임을 강조했다.
- P3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