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자네한테는 적이 끊이지 않을 테니까. 복수의 여신들이 가련한 오레스테스를 늘 따라다녔듯, 질투가 자네를 늘 따라다닐걸. 질투 혹은 선망, 뭐가 됐든 남이 가진 것을 탐하는 마음. 누군가는 자네의 아름다운 용모를 선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체력을, 누군가는 훤칠한 키를, 누군가는 출생을, 누군가는 지력을 탐내겠지. 자네가 더 높이 오를수록 질투도 더 커질 거야. 자네는 어디서나 적에 둘러싸이고 친구는 없겠지. 남자건 여자건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될 거야.”

카이사르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 말을 들었다.


(219-220)

내 뜻을 오해하는군. 나는 지금 현실적인 공직이 아닌 야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네. 카이사르 자네는 스스로 완벽하길 원해. 자네를 불완전하게 만들 일은 어느 무엇도 일어나선 안 돼. 자네는 지금 그 소문이 부당해서 신경을 쓰는 게 아니야. 자네가 괴로운 건 그 소문이 자네의 완벽함을 손상시키기 때문이야. 적절한 시기에 모든 면에서 모든 방식으로, 완벽한 명예, 완벽한 출세, 완벽한 전력, 완벽한 명성. 그리고 자네가 스스로에게 완벽을 요구하듯 자네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완벽을 요구할 거야. 완벽에서 벗어난 자는 사정없이 내치겠지. 생득권에 대한 내 집착이 날 갉아먹었듯,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자네를 갉아먹을 거야.”


(291)

당신 타고난 성격대로 해요. 그냥 붙잡고 해치워버려요.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며 머뭇거리다간 상황이 제멋대로 돌아가기 일쑤예요.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아요.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걱정하지 말고요. 그러다 일을 그르쳐요.”


(315-316)

두려워. 너무 두려워! 죽는 게 이렇게 두려울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어. 이건 숙명이야. 피할 수 없어. 곧 있으면 끝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겠지. 나는 아무도 아니게 된다. (). 그 운명에는 고통이 없다. 꿈조차 꾸지 않는 무지(無智)의 운명. 영원한 잠. 왕관 대신 놀라의 풀잎관을 쓴 로마의 왕이었던 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그것이 유일한 불멸의 길이다.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에서 기억되는 것. 나는 회고록을 거의 마쳤어. 다 쓰지 못한 분량은 겨우 한 권 정도다. 그 정도면 미래의 역사가들이 나에 대해 판단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영원히 죽이고도 남지.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회고록을 쓰지 못하고 죽었어. 나는 썼어. 그러니 내가 이길 거야. 내가 이겼어! 지금까지 내가 거둔 모든 승리 중에 가이우스 마리우스에 대한 승리가 내겐 가장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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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13)

존엄은 다르다. 존엄은 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면서도 개인의 공적 생활의 모든 규정 요인들로 확장된다. 정의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표현이 있는 것이다. 존엄은한 사람의 장엄함영광의 정도라고 할까? 존엄은 개인이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의 지도자로서 무엇인지를 요약한다. 존엄은 개인의 자존감, 온전함, , 지성, 행동, 능력, 지식, 지위, 사람으로서의 가치의 총합이다존엄은 사람의 죽음을 넘어서기에, 사람이 죽음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 이것이 가장 올바른 정의다. 존엄은 사람의 물리적 존재의 멸실에 대한 승리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바로는 폼페이우스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술라에게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존엄이다. 술라는 미트리다테스를 무찌를 거라고 말했다. 옛날의, 전통적인 형태로 공화국을 재건하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술라는 말한 대로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존엄이 손상될 테니까. 사회적인 추방과 공식적인 오명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존엄은 없었다. 따라서 술라는 자기 바깥에서 자신의 약속을 이행할 힘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약속을 이행했을 때 그는 만족할 것이다. 그때까지 술라는 쉴 수 없다. 쉬지 않을 것이다.


(284)

술라는 이제 자기 손아귀에 들어온 로마를 좋아하지도,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가가 너무 컸다. 또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그가 가장 갈망한 것은 평화와 여유, 온갖 성적 환상의 충족과 머리가 빙빙 도는 폭음, 관리와 책임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없었는가? 로마 때문에, 의무 때문에, 그토록 많은 임무들을 마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내려놓는 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술라가 말을 타고 텅 빈 대경기장을 따라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해야만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일을 해야만 했다. 그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325-326)

저장 선반과 헛간, 저장고와 저장실에 스민, 그곳들이 가득차 있기를 바라는 페나테스라는 신들이 있었다. 항해중인 배들과 교차로들을 모으고 무생물 물체들의 목표의식을 유지시키는 힘들은 라레스였다. 나무들이 바르게 생각하도록 하는, 가지와 잎은 위쪽으로, 뿌리는 아래쪽으로 뻗도록 하는 힘들이 있었다. 물을 달콤하게 하고 강이 높은 곳에서 저멀리 바다까지 아래로 흐르게 하는 힘들이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행운과 복을 주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보다 덜 주며, 또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힘은 포르투나였다. 그리고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라 불리는 힘은 다른 모든 힘들의 총합이자, 사람들에게는 불가사의하나 힘들에게는 논리적인 방식으로 그 힘들을 한데 묶는 결합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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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이렇게 보면, 코로나19는 단지 경제의 외생변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진보와 발전으로 여겼던 경제성장에 내재한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이제는 성장신화의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우리를 깨우는 죽비소리다. 결국, 바이러스 재난의 근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극복할 것은 바이러스가 아닌 우리 자신이고, 싸울 것은 사람과 자연을 희생하여 성장을 거듭해온 탐욕의 경제다. 코로나19는 현상으로는 질병의 문제지만 근본으로는 자연과 경제 문제다. “우리는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프란치스코 교종, <찬미받으소서>). 기후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문제다(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코로나19를 질병으로만 접근하면 이 바이러스 감염병이 가리키는 문제의 본질과 근원을 놓치고 결국 문제해결에 실패할 것이다.


(24)

성장은 언제나 큰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탈성장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적은 것이 많은 것이고, 단순한 것이 좋다고 말한다. 탈성장을 세상을 보는 또다른 시각이다. 소유와 소비, 경쟁과 독점, 효율과 이윤, 통제와 지내, 무한한 욕구가 성장을 나타낸다면, 단순과 절제, 협력과 나눔, 환대와 보존, 돌봄과 공생, 자족과 충분함은 탈성장을 가리킨다. 탈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태도는 더는 성장할 수 없다는 좌절에서 비롯된 강요된 선택이 아니다. 이러한 태도도가 좋은 삶에 필수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자발적 선택이다. 탈성장은 우리 각자의 내면의 성찰과 변화를 요청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변화는 우리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절제는 탈성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 차원의 덕()이다. 절제의 내면화로 탈성장에 조응하는 단순하고 검약한 생활양식이 가능해진다.


(28)

돌연변이는 보통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2~3개의 단백질의 머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해서 인간 세포에 정박하여 침입할 수 있게 된다. 해마다 생산되는 백신은 바로 그곳을 표적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단백질들의 줄기들은 안정적이고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바로 이 변하지 않는 줄기들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여러 해 동안 지속될 수도 있는 모든 바이러스 변종에 대해 전부 면역력을 갖게 하는 범용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사실상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연구는 존재하지만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거대 제약회사들은 범용 백신을 개발하거나 제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36)

나는 자본주의가 대다수 인류에게 소득을 만들어주고, 일자리와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을 제공하고, 화석연료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고, 생물학의 발전을 공중보건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우리 시대의 문명적 위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위기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독립된 별개의 문제가 아닌 복잡한 하나의 총체적 위기로서 보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의 초자본주의는 인간 종의 생존에 필요한 생산력의 진보를 막는 절대적인 족쇄가 되었다.


(45)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의 지구 평균기온보다 약 1℃ 올라간 현재의 수준에서도 우리는 이미 너무나 큰 규모로 지구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어서 어느 때고 걷잡을 수 없는 폭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험에 처해 있다. 더욱이 이 메커니즘은 대단히 복잡해서 우리는 그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 상태가 이어진다면 보수적인 추정으로도 80년 내에 지구 평균 기온이 3~6℃ 상승한다는 것이다. 최소로 잡아도 16년 이내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2℃ 뜨거워진 지구도 인간 종에게는 극히 위험한조건이다. 역치라고 하는 3~4℃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인류 문명의 핵심적인 기반시설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전지구적인 산업의 확장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조건도 만들어냈다. 산업활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함에 따라서 인간은 야생 동식물과 자연 서식지를 침범하였고, 수많은 미지의 질병을 갖고 있는 동물들이 인간 주거지와 더욱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이미 수십 면 동안 이번 세기에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필연적으로 창궐한 것이라고 경고해온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104)

인류의 당면 위기 중 하나인 기후위기를 넘어서려면 탈탄소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처한 위기 중 하나는 생물종 멸종이다. 2000년부터 매년 약 650ha의 산림이 사라졌고(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과 비슷한 규모), 100종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게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의 설명이다. 지구 전체 동식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런 속도라면 지난 1,000만 년의 평균 멸종 속도보다 수십, 수백 배 빠르다. 원인은 도시화 등 인간의 토지이용 변화와 그에 따른 동식물의 서식지 감소가 압도적이다. 이어서 식물 채집과 사냥, 그리고 기후변화가 세 번째 위협요인으로 꼽혔다. 자칫 6,0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뒤 처음으로 지구가 대멸종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156)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통용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당연한 듯이 쓰이고 있는 건강권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이후이고, 현재도 모든 국민이 차별 없는 건강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건강권이란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선언적이라 실제로 구체화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건강권 중 일부인 공평한 의료접근성의 실현조차 건강보험 역사가 40년이 넘은 현재에도 요원하다. 하물며, 모든 시민을 위한 건강 유지 증진 정책은 항상 부수적이고 우선순위에서 떨어진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제공 체계는 해방 이후 민간에 맡겨져 거의 방치되어왔고, 건강보험 등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비효율과 상업성으로 인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의료 공공성이 매우 취약한 범주에 속한다.


(179-180)

1800년까지는 누구나 이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선거대의제는 민주주의의 정반대라고 생각되었다. 그것에 그리스에서 전래된 용어로 이름을 붙인다면 올바른 명칭은 선거 과두정이 될 것이며, 그 뜻은 우리가 우리를 통치하도록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통치이다.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이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 민주주의자를 자처한다는 발상이 생겨난 것은 1800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였다. 그 뒤로는 이 잘못된 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혁명가, 신층 중간계층, 지식인, 학자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1920년경에 이르면 그것은 사회 일반에 수용되기에 이른다. 즉 선거대의제가 민주주의라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182~184)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

민주주의는 가장 공평하다. 즉 법 앞에 평등하다. 공직자는 추첨으로 임명되고, 권력에는 책임이 지워지고, 모든 질문은 열린 토론에 붙여진다.(<역사>, 3 80 6)

플라톤(기원전 428~348)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 승리하여, 몇 사람은 처형되고 또 몇 사람은 추방되고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통치권력이 동등하게 분배될 때 민주주의가 성립된다.(<국가>, 8)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추첨으로 공직을 임명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선거로 선출되는 것은 과두정치였다.(<정치학> 4, 1294a)

키케로(기원전 104~43)

통치권이 한 사람에게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군주제라고 부른다. 특정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통치권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귀족정이라고 부른다. 통치권이 민중의 손에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국가론>, 1, 41, 42)

엘리엇(1490~1546)

도시와 자치령은 전 시민의 합의에 의해서 통치되었다.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믿을 만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보유한 미덕과 지혜로써 공공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가장 뛰어난 시민을 추방하거나 죽이는 일이 흔했다. 이런 통치방식은 그리스어로 데모크라티아(Democratia)’, 라틴어로 포퓰라리스 포텐티아(Popularis Potentia)’, 영어로 평민에 의한 통치(rule of the commonalty)’라고 불렸다.(<위정자론>)

알투시우스(1557~1638)

민주주의는 그 본성상 자유와 평등한 존경을 요구한다. 평등한 존경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존재한다. 시민들은 번갈아가며 통치하고 복종한다. 모두가 똑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 사적 삶과 공적 삶이 교차하며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함께 결정하고 개인은 언제나 순종한다.(<정치학>, 39, 61>

홉스(1588~1679)

통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군주제는 단 한 명이 통치권을 갖는 경우이고, 데모크라시는 민회에 통치권이 있는 경우이며, 귀족정은 임명되었든 선출되었든 아무튼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되는 일부 특정 사람들로 구성된 기관이 통치권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리바이어던>)

몽테스키외(1689~1755)

공화국에서 민중이 주권을 갖고 있으면 그것은 민주주의다. …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의 방식이다.(<법의 정신>, 22)

루소(1712~1778)

추첨의 의한 선발은 그 본성이 민주적이다라고 몽테스키외는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 그러나 나는 이미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상(理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선거의 추첨을 결합할 때, 군사직위처럼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자리는 선거를 통해 임명해야 한다. 추첨은 사법관 같은 경우에 적합하다. 양식이 있고 정의롭고 정직한 것으로 충분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우 말이다. 잘 구성된 국가에서는 이러한 자질은 모든 시민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사회계약론>)

시에예스(1748~1836)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법을 제정하고 공무원을 직접 임명한다. 우리의 계획에서는 시민들은 대체로 직접 대리자를 선발한다. 따라서 입법행위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것은 대표제가 된다.

버크(1729~1797)

[‘민주주의를 묘사하면서] 여기서는 모든 공무 혹은 공무 전반을 민중이 직접 개인적으로 처리했고, 법은 민중 자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공무원이 직무에 소홀한 점이 있었을 때에는 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OO경에게 쓴 편지)

메디슨(1751~1836)

민주주의에서 민중은 모여서 직접 통치한다. 공화국에서 민중은 대표자들과 대리인들을 소집하여 통치를 위탁한다.


(228)

이제 지방분권균형발전이라는 구호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분권은 권한을 단순히 넘겨받은 것 이상의 자치에 근접해야 하고, 균형발전은 기업과 기관 이전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니 그런 구호는 이제 폐기됨이 옳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하면 세상이, 삶의 질이 더 나아지나. 그것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지향이 없다. 발전이라는 것이 서울과 똑같아지는 것을 뜻함인가. 도시화되는 것을 뜻하는가. 서울의 복제품을 여기저기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제 균형발전이라는 용어는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체적인 언어로, 지방분권이라는 용어는 자치와 자급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말로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성장과 발전 대신,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잘되는 놈만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의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부분을 착취해 성장하고, 경쟁과 도태로 거르는 방식이 아닌 협동과 연대의 방식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역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행정체계와 시장체계에 예속되지 않고 관계가 이들을 제어하고 부릴 수 있는 새로운 지역사회가 건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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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톨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 라이어 쿤체>


(15)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헙을 걸자.’

<눈풀꽃 루이스 글릭> 중에서


(17)

고마워, 내 심장

나를 다시 잠에서 깨어나게 해 주어서.

비록 오늘을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만들어진 날이지만

내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는

영원한 휴식 전의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

<일요일에 심장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중에서


(20)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했으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하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더 깊이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이는 명상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춤을 추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치유되었다.

무지하고 위험하고 생각 없고 가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지구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하고 위험이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잃은 것을 애도하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새로운 모습을 꿈꾸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치유받은 것처럼

지구를 완전히 치유해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키티 오메라> 중에서


(23)

기다려라

너무 일찍 떠나려 하지 말라.

너는 지쳤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지쳤다.

하지만 누구도 완전히 지치진 않았다.

다만 잠시 기다리며 들어 보라.

머리카락에 깃든 음악을

고통 안에 숨 쉬는 음악을

우리의 모든 사랑을 실처럼 다시 잇는 음악을

거기 있으면서 들어 보라.

지금이 무엇보다도 너의 온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피리 소리를 들을 유일한 순간이니.

슬픔으로 연습하고,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자신을 연주하는 음악을.

<기다려라 골웨이 카넬> 중에서


(30)

아이들에게 날개를 주리라.

하지만 스스로 나는 법을 배우도록 내버려 두면서.

노인들에게는 일깨워 주리라.

죽음은 노년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망각과 더불어 온다는 것을.

<꼭두각시 인형의 고백 조니 웰치> 중에서...


(32)

웃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우는 것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에 휘말리는 위험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과 꿈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는 것은

순진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사는 것은 죽는 위험을,

희망을 갖는 것은 절망하는 위험을,

시도하는 것은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위험들 자넷 랜드> 중에서


(43)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당신의 나무가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잘라 버리는 게 두려워

당신 스스로

꼭대기를 자르는 일을

멈추기만 한다면.

<무제 타일러 노트 그렉스>


(53)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새와 나 하룬 야히아>


(72)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쓰지 않은 편지

보내지 않은 꽃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하지 않은 죄 마거릿 생스터> 중에서


(108)

그녀는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판단을 내려놓았다.

머리 주위에 무리 지어 모여드는 선택들의 합류 지점을 내려놓았다.

자신 안의 망설임 위원희를 내려놓았다.

모든 옳아 보이는 이유들을 내려놓았다.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머뭇거림 없이, 걱정 없이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려놓았다 새파이어 로즈> 중에서


(115)

날마다 고양이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가장 따뜻한 지점과

먹을 것이 있는 위치를 기억한다.

고통을 안겨 주는 장소와 적들,

애를 태우는 새들,

흙이 뿜어내는 온기와

모래의 쓸모 있음을.

마룻바닥의 삐걱거림과 사람의 발자국 소리,

생선의 맛과 우유 핥아먹는 기쁨을 기억한다.

고양이는 하루의 본질적인 것을 기억한다.

그밖의 기억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마음속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고양이는 우리보다 더 깊이 잔다.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면서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들보다.

<고양이는 옳다 브라이언 패튼>


(138)

인생은 짧다, 비록 내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겠지만.

인생은 짧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더 짧게 만들었다.

천 가지나 되는 달콤하고 경솔한 방식으로.

천 가지나 되는 달콤하고 경솔한 방식을

내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할 것이다.

세상은 적어도 절반은 끔찍한, 이조차도

실제보다 적게 어림잡은 것.

비록 내 아이들에게는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새들이 많은 만큼 새에게 던져지는 돌도 많고

사랑받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부러지고,

갇히고, 슬픔의 호수 밑으로 가라앉는 아이도 있다.

인생은 짧고, 세상은 적어도 절반을 끔찍하며,

친절한 낯선 이들이 많은 만큼

너를 파괴하려는 자도 많을 것이다.

<좋은 뼈대 매기 스미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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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런 거야, 친구.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거지. 현재의 사회구조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든가, 나처럼 자신이 부당한 우위를 누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꺼이 누리든가 말이야.”

아니, 만일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면, 자네는 그 혜택을 기꺼이 누릴 수 없을걸. 적어도 난 그렇게 못할 거야.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잘못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니까.”


(126-127)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그녀가 모스크바로 날 찾아온 그 끔찍한 시절에 내가 그녀의 말을 들은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어. 난 그때 남편을 버리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어야 했어. 어쩌면 난 정말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과연 지금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난 그를 존경하지 않아. 그가 필요할 뿐이야.’ 그녀는 남편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를 견디고 있지. 과연 이것이 더 나은 걸까? 그때 난 아직 사랑을 받을 수 있었어. 내게도 아직은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계속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거울을 들어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손가방에는 작은 손거울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꺼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부와 덜컹덜컹 흔들리는 사무원의 등을 보면서, 그녀는 만약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부끄러울 것 같다고 느껴 거울을 꺼내지 않았다.


(328)

그는 그녀에게 전보다 더 싸늘했다. 마치 그녀에게 굴복한 것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듯. 그래서 자기에게 승리를 안겨 준 그 말, 바로 내가 얼마나 절실하게 끔찍한 불행을 느끼는지,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라는 그 말을 떠올리며, 그것이 위험한 무기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두 번 다시 그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 그들을 묶는 사랑과 더불어 모종의 투쟁을 일으키는 사악한 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가 그의 마음에서 몰아낼 수 없는,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서는 더더욱 몰아낼 수 없는 사악한 영이……


(329)

사람이 익숙해질 수 없는 환경은 없다. 특히 주위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갈아가는 것을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석 달 전만 해도 레빈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생활, 그것도 자신의 수입을 넘어선 생활을 하면서, 술에 취해(그로서는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한때 아내가 사랑한 남자와 꼴사나운 우정을 나누고, 더욱더 꼴사납게도 타락한 여자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여자의 집을 찾아가고, 그 여자에게 마음을 뺏겨 아내를 슬프게 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친 데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술까지 마신 탓으로 깊고 편안하게 잤다.


(452)

그래, 난 몹시 불안해. 그리고 이성이 인간에게 부여된 것은 인간을 불안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러니 난 벗어나야 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저 모든 것을 보는 게 끔찍하기만 한데, 촛불을 꺼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어떻게 끄는 거지? 저 차장은 왜 승강용 발판을 뛰어다니는 걸까? 저 객실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왜 소리를 지르지?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 걸까? 모든 게 진실이 아냐. 모든 게 거짓이고, 모든 게 기만이고, 모든 게 악이야!’


(455-456)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십자가를 긋는 친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속에 처녀 시절과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던 암흑이 찍어지고, 일순간 과거의 모든 눈부신 기쁨과 함께 삶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 두 번째 객차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중간 지점이 그녀와 나란히 온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빨간 손가방을 내던지고는 어깨 사이에 머리를 푹 숙인 채 객차 밑으로 몸을 던져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고는 마치 곧 일어날 자세를 취하려는 듯 경쾌한 동작으로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시가 한 짓에 몸서리를 쳤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가차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떠밀고 그녀를 질질 잡아끌고 갔다.’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그녀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소한 농부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 보이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500)

그때는 진리를 알았는데 지금은 잘못 알고 있다니,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그 문제를 차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때 착각을 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때의 정신 상태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데다, 그것을 약점 탓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그 순간을 더럽히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과 고통스러운 갈등을 겪으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정신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509)

추론은 그를 의심으로 이끌었고 그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두 가지 가능한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지 어느 것이 나쁜지 판단하는 완전무결한 재판관의 존재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 그 즉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식할 가능성을 전혀 깨닫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무지 때문에 자살을 두려워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일정한 길을 굳건하게 개척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540)

민중이란 말이 너무 애매해서 말이야.” 레빈이 말했다.

읍 서기들, 교사들, 어쩌면 1000명의 농민 가운데 한 명은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지도 몰라. 하지만 미하일리치 같은 나머지 8000만 명은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표명해야 않을 뿐 아니라 무엇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표명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개념도 갖고 있지 않아.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것을 민중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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