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공포는 없으신가요?”

자신은 없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 했어. 그것을 본 한 기자가 물었지.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가 이렇게 답했다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44-45)

인터뷰가 뭔가? Inter. 사이에서 보는 거야. 우리말로 대담이라고도 번역하는데, 대담은 대립이라는 뜻이야. 대결하는 거지. 그런데 말 그대로 서로 과시하고 떠보고 찌르면 거기서 무슨 진실한 말이 나오겠나. 위장술밖에 더 나오겠어? 군인들이 전투할 때 왜 위장복을 입겠어살기 위해서 감추고 색을 바꾸는 거지. 인터뷰는 그래선 안 되네. 인터뷰는 대담(對談)이 아니라 상담(相談)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 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t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수지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55-56)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지.

자네가 가장 잘 아는 게 뭔가?’

꿀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꿀벌을 잘 봐. 꿀벌처럼만 하면 좋은 문학이 돼.’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만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밥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74-75)

차이는 있어. 남자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신호가 있다네. 파이브 어 클락 새도(five o’clock shadow)라고 들어봤나? 샐러리맨들이 오후 다섯시가 되면, 깨끗했던 턱 밑이 파래져. 퇴근 무렵, 면도 자국에서 수염이 자라 그림자가 생기네. 그게 오후 다섯시의 그림자야. 매일 쳇바퀴 돌 듯 회사에 나와 하루를 보낸다. 문득 정식 차리면 오후 다섯시. 수염 자국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면 우수가 차오른다네. 오늘 뭘 했지? 내일도 또 이렇겠지. 다시 전철을 타고, 술집에 가고, 이윽고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그게 샐러리맨의 고독이지.”

오후 다섯시. 남자의 얼굴에 수염 그림자가 생길 때, 여자는 립스틱 자국이 지워진답니다.”

 

(125-126)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그냥 무리 지어 사는 거지.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리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 내가 없는데 우리가 있어? 그런데 나 없는 우리?’ 아니 될 말씀이야. 큰일 날 소리지. 그래서 내가 사이를 강조했잖아.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거지. 자네와 나 사이에 interview가 있는 것처럼.”

 

(144)

밤사이 내린 눈은 왜 그렇게 경이로울까요?”

변화잖아. 하룻밤 사이에 돌연 풍경이 바뀌어버린 거야. 우리가 외국 갔을 때 왜 가슴이 뛰지? 비행기 타고 몇 시간 날아왔더니 다른 세상이 된 거야. 하루하루 똑같던 날들에서, 갑자기 커튼콜 하듯 커튼이 내려왔다 싹 올라가니까 장면이 바뀌어버린 거야. 막이 내렸다 올라가는 건 일생 중에 그렇게 많지 않거든. 외국 여행을 한다든지, 수술했다 마취에서 깨어난다든지…… 그런데 일상에서 유일하게 겪을 수 있는 게 간밤에 내린 눈이라네. 잠자는 사이 세상이 바뀐 거지. 보통 쿠데타가 밤에 일어나잖아. 자고 일어났는데 탱크가 한강은 넘어 세상이 싹 달라진 거야. 밤에 내린 첫눈이 그래. 쿠데타야. 오래 권력을 누리지 않고 바로 사라지는 쿠데타. 오래 있어 봐. 눈 녹으면 지옥이지. 곧 사라지니까 그만큼 좋은 거야. 아름다운 쿠데타.”

 

(168)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종교조차 문학이었다네. 신학에서 자를 빼면 시학이잖아. 보들레르도 니체도 나는 성경을 읽는 마음으로 읽었지.”

 

(171)

천재가 있으면 특별 교육시켜야 해요. 특권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쌍한 애들이지. 하나님이 인간들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쓸모를 못 찾은 놈에게 눈곱 하나 떼서 붙여주면 그 아이가 화가가 되고, 귀지 좀 후벼서 넣어주면 그 아이가 음악가가 되는 거예요.

너 세상 나가면 쓸모없다 조롱받을 테니, 내 눈곱으로 미술 해먹어라. 너 세상 나가면 이상한 놈이라고 왕따 당할 테니 내 귀지로 음악 해먹어라.’

그게 예술가예요. 예수가들은 그 재능 빼면 세상 못 살아요. 아무것도 못해서 범죄자 돼요. 그러니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에요. 학교 만들어주는 게 자비에요.’

그 얘기 듣고 사람들이 웃고 잠시 침묵했어. 총리가 그럼, 통과된 걸로 알겠습니다하고 땅땅땅 때린 거야. 그 순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생겨났다네. 한예종 아이들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오면 내가 그래.

너희들은 five minute kids, 5분 동안 태어난 아이들이야.’

 

(191)

나에게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은 실패한 글이라네. 지금까지 완성된 성인들 중에 글을 쓴 사람은 없어. 예수님이 글을 썼나? 공자가 글을 썼나? 다 그 제자들이 쓴 거지.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여진 글은 완성되지 못한 글이야. 성경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인간이 쓴 글이고 세상의 모든 경전, 문자로 쓰여진 것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 그림자의 흔적일 뿐이네. 나 또한 완성할 수 없으니 행복에 닿을 수 없어.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야. 어찌 보면 고통이 목적이 돼버린 셈이지.”

 

(225)

그렇지. 갑작스럽게. 물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영적 판, 인화지가 있어야 셔터를 눌렀을 때 빛이 담기지. 종이 넣고 아무리 셔터 눌러봐야 거기에 뭐가 나와. 0.001초의 셔터를 끊어주는 그 짧은 순간에 감광지에 비치는 모습, 그게 영의 세계야. 순식간에 다른 세상을 보는 거지. 그런데 내 딸 민아처럼 하나님을 진실로 믿으면 영성의 세계에 들어가 거기서 머무는데, 나는 미끄러져서 계속 땅에 떨어져. 그래서 영성이 아니라 땅 지()자 지성이 되는 거야. 땅의 성이지.”

 

(245-246)

제 기억으로는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반바지를 입고 굴렁쇠를 굴리며 갈 때, 사이렌이 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 제목이 silence였지.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 거야. 귀가 멍멍한 침묵과 휑뎅그레한 빈 광장을…… 그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면, 그 많은 돈 들여서 한 공연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시끄럽던 운동장이 조용해지고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꽝에서 돌 던지며 정적에서 나온 이미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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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위종의 미국 횡단 여행은 한 달이 걸렸다. 위종은 9월 신학기에 중급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왕복했던 기차 여행은 위종의 의식을 더욱 성숙시켰으며 사물을 보는 그의 시각을 놀라울 만큼 넓고 깊어졌다. 그는 이른 나이에 문명의 진보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그 여행은 인종차별과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일면을 일깨우기도 했지만 반면에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위종의 인성을 변화시키며 그의 의식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27)

위종은 그날, 눈 덮인 겨울궁전 광장에서 흰 눈 위에 뿌려지던 노동자들의 붉은 피를 잊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눈밭에 뿌려진 선홍색 핏자국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금까지 위종에게 그저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피의 일요일이 지나간 이 도시는 위종에게 다른 의미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위종은 요즈음 이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음산한 기운이 자신의 의식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 위종은 자신의 의식 속에 슬금슬금 똬리를 틀고 있는 이 기운이 자신을 오랫동안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혁명의 기운이었다.

 

(144-145)

공고사(控告詞)

대한제국 황제 폐학의 칙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로 파견된 전 부총리 이상설, 전 평리원 검사 이준,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은 존경하는 각국 대표 여러분께 다름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대표 여러분, 대한제국의 독립은 1884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의해 보장되고 승인되어왔습니다. 그러나 1905 11 17일 당시의 의정부 참관이었던 이상설은 일본이 만국공법을 무시하고 무력을 이용한 것으로 말미암아 예부터 유지해온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호의적 외교관계가 파기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에 관하여 우리 대표단은 존경하는 여러분께 일본이 현재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자행했던 모든 협박 그리고 폭력 및 범법 행위를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폭력 수단이 만국공법을 위반하였음을 탄핵합니다. 각각 대표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일본의 행동이 국제조약을 명백하게 위반했는지 아닌지를 공평한 입장에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일본인은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동의 없이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둘째, 일본인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대한제국 정부에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셋째, 일본인은 대한제국의 모든 법률과 관례를 위반했습니다.

 

(163-164)

그 순간 연설회장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적이 감돌았다. 위종은 조용한 장내를 천천히 둘러보며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입을 열었다.

세상에 부자와 빈자가 있듯이 강한 나라가 있으면 약한 나라도 있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모두 먹어치우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정의의 신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믿는 정의의 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웃의 재물을 탐해서는 안 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예수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하지만 문명국가의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여러분은 지금 일본의 침탈과 압제로 고통받는 우리 대한제국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아직 잘 조직되어 있지는 않으나 독립과 자유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인의 잔인하고도 비인도적인 침략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에 처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로 뭉쳐서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175)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열강들은 식민지 탈취라는 목적을 책상 아래 숨기고 입으로만 평화를 부르짖었다. 이런 자리에서 일본의 불법적인 외교권 탈취라는 한국 대표단의 주장은 애초부터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했다. 더불어 암암리에 식민지 나눠먹기를 묵계했던 열강들이 한국 대표단의 참가 봉쇄를 담합했기 때문에 특사들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헤이그를 떠나야 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문이 인류의 평화와 이익보다는 오직 국익만을 좇는 제국주의 국가들에만 열려 있었다는 것이 대한제국 특사들에게는 불운이었다.

 

(222-223)

근대적인 유럽식 장교 교육을 받은 위종은, 나이는 약관이었지만 이미 전술과 전략 등 전반적인 군사 분야에서 모든 의병장을 지휘하고도 남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와 같은 외국어 구사 능력도 탁월했고 만국공법과 전제주의와 공화주의 정치 체제에 관해서도 해박했다. 위종의 국제 정세에 관한 깊은 통찰력과 법 지식은 안중근이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안중근은 만국공법과 세계사를 포함하여 열강들의 제국주의 행태에 관한 위종의 논리 정연한 해설을 들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그것은 지금까지 안중근이 경험하지 못했던 신학문이 깨우쳐준 충격이었다.

 

(231)

연해주 연합의병은 1908년 여름의 국내진공작전을 끝으로 최재형계와 이범윤계가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다. 동의회 결성 당시부터 내재되어 있던 양측의 갈등이 깊어져 더 이상 함께 의병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연해주 토박이 세력이었던 최재영계와 간도에서 망명해왔던 이범윤계의 세력이 쌍방의 지휘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연합작전을 벌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이범윤의 군자금 횡령 같은 문제가 불거져 양측이 더욱 반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잘잘못을 들추어냈고 두 계파 사이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254)

러시아 정부의 대일본 유화 정책의 실체를 파악한 위종은 이런 환경에서 대규모 의병전쟁으로 항일운동을 강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투쟁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구나 만주 지역에 파병된 일본군은 아예 만주를 점령하기 위해 더욱 많은 병력을 증파했다. 따라서 만주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와의 충돌은 시간 문제였다.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또 한 번의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위종은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프랑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지만 영국과 미국은 이미 일본과 야합하여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으며, 신해혁명으로 갓 태어난 신생 중국은 내전으로 남의 형편을 눈여겨볼 처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만이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269)

제정러시아 역시 일본과 동일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위종의 판단이었다. 다만 일본을 서두르는 편이고 러시아는 좀 느릴 뿐 목적지는 역시 식민 제국주의였다. 주변의 약소국을 식민지로 탈취하는 것도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일했다.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반제국주의 혁명이었다.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은 각 민족의 운명은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원칙을 최초로 주장했다. 레닌의 민족자결원칙은 비록 러시아 내 소수민족의 자치와 독립에 국한된 주장이었지만 위종은 그의 주장이 조선의 민족 해방에도 강력한 우군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303-304)

우수리 원주민과 자작나무는 한국인과 소나무의 관계와 같다. 이들은 사람의 영혼은 나무에서 태어나며, 이승에서 삶을 마치면 남자의 영혼은 버드나무로, 여자의 영혼은 자작나무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들은 숲속의 모든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 산다고 여긴다.

봄이 되면 나무는 잠을 깨고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숲에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는, 영혼이 영원히 순환하는 곳이라고 이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살아 있으며 서로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다. 그 에너지는 자연에서 잠시 빌려 쓰다가 언젠가는 자연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삶과 죽음이란 이런 주기의 반복이며 에너지의 순환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나무도 꼭 필요한 만큼만 베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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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삼체문체 : 질량이 같거나 비슷한 물체 세 개가 상호 인력의 작용 아래 어떤 운동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전 물리학의 중요 문제이고, 천제 운동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어 16세기 이후 계속 관심을 받았다. 오일러, 라그랑주 및 근대 이후 학자들이 삼체문제에 관한 특수해를 찾아냈다.


(297)

태양은 전파 증폭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태양은 지구가 방출하는 무선 전파를 포함한 우주에서 온 전자기복사를 늘 받는데 어째서 그중 일부만 증폭할까? 이유는 명확했다. 에너지 거울이 반사 주파수를 선택할 수 있기도 하지만 태양 대류층의 차단 작용이 더 큰 이유였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대류층은 복사층 위에 위치한 태양의 가장 바깥에 있는 액체층이다. 우주에서 온 전파는 우선 대류층을 통과해야 복사층의 에너지 거울에 도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증폭되어 발사될 수 있다. 이때 전파의 일률은 역치(閾値)를 초과해야 하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무선 발사는 이 역치보다 낮다. 그러나 목성의 전자기복사는 이를 뛰어넘는다.


(352)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의 지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45억 달러와 다국적 석유회사를 소유했지만 그게 또 무슨 소용입니까? 인간이 멸종 위기에 빠진 생물을 구하기 위해 쏟아붓는 돈은 분명 4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고요. 하지만 무슨 소용입니까? 문명은 여전히 자기 궤도대로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에 있는 다른 생명을 멸망시키고 있는데요. 45억 달러면 항공모함 한 척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모함 1000척을 만든다 해도 인간의 광기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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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쇼핑을 멈추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뭐라도 사라고, 기분이 좋으면 그에 맞게 쇼핑을 하라고, 그게 네가 존재하는 방식이자 이유라고 온 세상이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요란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왜 시민들 개개인이 죄책감을 느끼고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라면을 먹으려 해도 비닐봉지를 최소한 세 장은 버려야 하는데, 커다란 매대를 온갖 종류의 라면으로 채운 대형마트에서는 오히려 소비자를 향해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고 외친다. 개인과 가정에서보다 기업에서 배출하는 비닐쓰레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걱정도 됐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옷을 사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게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


(36)

패스트패션의 오염 규모를 가늠하는 데 참고할 만한 큰 숫자는 또 있다. 세계 물 소비량의 20퍼센트가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매년 의류 제조에 물 93조 리터가 쓰이는데, 이는 무려 500만 명이 생존에 쓸 수 있는 양이다. 서울 시민의 절반이 1년간 마실 수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이 약 7000피터,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약 2700피터가 필요하다. 청바지와 흰색 면 티셔츠는 각각 한 사람이 9년간, 3년간 마실 물을 집어삼키는 셈이다.


(37)

개인이 체감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오염을 일상으로 자리 잡게 한 패스트패션’.  이 단어는 1989 <뉴욕 타임스>가 스페인의 자라를 소개할 때 처음 등장했다. “패션쇼 런웨이에 오른 제품을 무려 15일 안에 대량고급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패션업체에서 새 옷을 기획하고 디자인해 제조 유통 출시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지만, 자라는 이 모든 일을 2주 안에 해내는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폭발적인 자원 낭비와 오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51)

버려지거나 세탁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옷은 제조 과정에서부터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 5킬로그램을 세탁하면, 옷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플라스틱 600만 개가 세탁수를 통해 유출된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세탁기의 규격이 주로 10킬로그램을 감안하면, 한 번 세탁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1000만 개씩 나오는 셈이다. 옆집, 우리 동, 아파트 전체, 단지, 그리고 전국의 세대 수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금방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엄지 손가락 하나로 스마트폰 화면을 끌어내리며 업데이트된 신상품을 손쉽게 훑어보면서도 금세 싫증을 느끼는 우리의 인스턴트식 패션 취향의 대가는 머나먼 바다 건너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이미 우리의 삶과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68-69)

인도 농부들은 더 강력한 살충제를 구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런데 농부들은 머잖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력한 살충제를 판매하는 회사가 자신에게 Bt면화를 팔던 바로 그 몬산토였기 때문이다. Bt면화는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씨앗을 받을 수 없고 혹 씨앗을 받았다 해도 발아하지 않는 터미네이터 종자였기에 인도 농민들은 종자와 살충제를 해마다 구입해야 했고, 점점 늘어나는 부채로 신음했다.


(135)

모 패션 플랫폼 담당자 D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쿠폰을 발급하고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옷을 중개해 잘 팔수록 플랫폼에게는 손해가 되는 것이다. 플랫폼은 이미 옷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다. 대신 셀러들에게 좋은 구좌를 비싼 가격에 판매해 수익을 낸다. 비싸고 잘 보이는 자리에 걸린 옷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또다시 소비하는 굴레에 빠진다. 소비자를 모아 판매자를 모으고, 판매자를 모아 소비하게 하는 플랫폼. 그 안에서 수요와 공급은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원히 순환한다. 또다시 물건이 존재해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해야 물건이 존재하는 구조가 갖춰지는 것이다.


(149)

. 패션기업은 임금이 가장 저렴한 나라에 공장을 짓는다.

. 많은 옷을 싸세 제작하기 위해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력이 투입된다. (대부분 나이가 어린 여성 노동자나 이주 노동자다.)

. 경비 절감의 이유로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공장에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고 사망한다.

. 공장주나 기업 관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 기업은 규제가 약하거나 임금이 저렴한 또 다른 나라로 이동해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166)

그 후로 하나의 공식이 굳어졌다. 테러나 전염병 등으로 국가 경제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소비였다. 자본주의에서 멈춤은 곧 재앙이다. 자본주의 세상에 태어났다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관성의 궤도에서 이탈할 수 없다.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최소 600억 달러 규모의 자산과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테러리스트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갑자기 소비에 열정을 잃은 결과였다. 2006년 경기 침체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결국 부시 대통령은 자국민들을 향해 소비하라라고 직접 요청했다.


(184-185)

아시아는 타 대륙보다 명품을 압도적으로 많이 소비한다. 현재 세계 명품시장은 약 8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그중 37퍼센트가 아시아에서 팔린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구찌, 까르띠에, 불가리 같은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는 전체 매출의 50~60퍼센트를 아시아 소비자에게서 거둬들인다. 프라다, 샤넬, 버버리,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 최고 브랜드 대부분의 매출 10퍼센트 이상은 한국인이 차지한다. 아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명품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86)

실제로 2021년 이후 여덟 개 이상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한국 내 브랜딩과 유통을 담당하던 파트너와 계약을 종료한 뒤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투자 은행 모건 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였다.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우리 돈 약 40 4000원으로, 미국 34 8000, 중국 6 8000원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 2022년 한국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24퍼센트 성장해 세계 6~7위 수준인 168억 달러( 20 9000억 원)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에도 명품가방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


(206)

사람들은 유행에 쉽게 휩쓸렸다가 유행이 지난 것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유행을 찾아 떠난다. 그사이 패스트패션 회사 CEO는 세계 5위까지 부호의 자리를 지키며 배를 불리고,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은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섬유폐기물은 지구를 덮치고 있다.


(219)

말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옷장에 잠들어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도 오래오래 입을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패션이지, 페페트병으로 티셔츠나 청바지를 만들기 위한 물절약 공정 과정이 아니다.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소비자도, 섬유폐기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지구도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제조와 판매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패스트패션 기업에게나 필요할 뿐이다. 페트병 티셔츠는 지구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매출을 늘리기 위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


(260)

우리가 입는 옷은 세 번 이상 세탁한 후에도 계속 입을 수 있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프란스 티메르만스가 패스트패션 제품의 형편없는 품질을 꼬집으며 남긴 말이다. 2030년까지 유럽연합 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섬유 제품은 내구성, 수선 및 재활용 가능성 보장, 재활용 섬유 사용 확대, 유해물질 제거, 사회적 권리를 존중에 제조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의류 제조 과정에서부터 수선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했다. 한 옷을 오래 입게 하려는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 전략으로, 사실상 많이 싸게 파는 것이 곧 생존 전략이었던 패스트패션을 퇴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옷을 일회용품 팔 듯 해치우며 돈을 벌던 패션산업은 이제 수선, 회수, 재사용, 재활용이 가능한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에 한층 까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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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삭발한 수도원 교사는 창백하고 신경질적이며 야심에 넘치는 변호사 로베스피에르와 각별히 친해진다. 더군다나 이 둘의 관계는 처남 매부 간으로 발전해 나가려는 참이다. 막시밀리앙의 누이인 샤를로트 로베스피에르는 오라투아르 교단의 교사를 수도승 신분에서 해방시키고자 한다. 곳곳에서 둘이 약혼했다는 소문이 돈다. 왜 이 혼사가 결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여기에 두 남자가 서로 증오하게 된 이유가 숨겨져 있는 듯이다. 예전에 친구였던 두 남자는 후일 목숨을 걸고 세계사에 남을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그 무렵 그들에게는 자코뱅도 증오도 낯선 단어이다. 증오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삼부회 의원 자격으로 프랑스의 새 헌법을 장만하도록 빈털터리 변호사에게 금화를 빌려준 것도 다름 아닌 삭발승 조제프 푸셰이다. 이 일화는 그가 나중에 자주 맡게 될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다른 사람에게 세계 역사에 남을 경력을 쌓도록 발판을 받쳐 주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옛 친구를 배반하고 등을 밀쳐 쓰러뜨릴 것이다.

 

(32-33)

이처럼 조제프 푸셰는 평생 막후의 인물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막후의 인물은 결코 눈에 보이게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권력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며 모든 끝을 손에 쥐고서 조종하지만 결코 책임자로 거론되지는 않는다. 항상 누군가를 일인자로 만들어 방패로 내세우고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앞으로 몰아가다가 그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마는 것, 바로 이것이 푸셰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정치사를 통틀어 가장 노련한 모사가인 푸셰는 공화국과 왕정과 황제의 제국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숱한 에피소드에서 스무 번이나 의상을 바꿔 가며 한결 같은 명배우의 솜씨로 이 역할을 연기한다.

 

(40-41)

바로 이 순간 조제프 푸셰의 성격 중 또 다른 특징이 처음으로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철면피이다. 그가 어떤 정파를 배반하고 떠날 경우 그는 결코 서서히 그리고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은밀히 조심조심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훤한 대낮에 냉랭히 미소 지으며 너무도 당연한 듯이 이제껏 적수였던 자에게 직진해서는 적수의 말과 주장을 몽땅 그대로 떠안는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아연실색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한때의 동지들이 자신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중과 여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해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항상 승자 편에 있는 결코 패자 편에 있지 않는 것만이 그에게는 중요할 따름이다.ㅏ 그는 번개처럼 빠르게 돌아서서 지독히 상대를 경멸하는 태도로 돌변할 수 있을 만큼 상상을 뛰어넘는 철면피여서 보는 사람이 어느새 넋을 잃고 감탄까지 하는 지경이다. 푸셰가 자신이 신봉하던 깃발을 내던지고 다른 깃발을 열광적으로 펼쳐 드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하다. 어떨 때에는 단 한 시간, 아니 단 일분이면 충분하다. 그는 이념을 따라가지 않고 시간을 따라간다. 시간이 조급히 질주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속력을 내어 뒤쫓아 갈 것이다.

 

(68-69)

세계의 역사는 대개는 용감한 자들의 역사로 서술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는 아니다. 세계의 역사는 비겁한 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치란 공동체의 의견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믿으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의견이라는 법정을 만들고 거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바로 이 법적 앞에서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전쟁도 항상 이러다가 일어난다. 위험한 말로 불장난을 하고 민족 감정을 자극하다가 정치가는 범죄를 범하게 된다. 이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악덕과 잔인성도 인간의 비겁함만큼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은 없다. 따라서 조제프 푸셰가 리옹에서 대중을 학살한 것은 공화주의자의 열정 때문이 아니다.(그는 열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자신이 온건주의자로 밉보일까 봐 두려워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설마 그가 수천 번 리옹의 도살자라는 호칭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이 호칭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히게 된다. 그가 나중에 공작의 망토를 두른다 해도 손에 묻은 핏자국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106-107)

로베스피에르에 맞선 반란에서 푸셰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위태로운 역할을 맡아 막후에서 비밀리에 활약했지만 대부분의 역사서는 이런 그의 역할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지 않다. 몇몇 얄팍한 역사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서술한다. 그렇기에 역사가들은 당시의 박진감 넘치는 마지막 날들을 다룰 때 대개 탈리앵과 바라스와 부르동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탈리앵은 연극배우 마냥 열정적으로 연단에서 단도를 휘두르며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 했고, 바라사는 험악한 기운을 발산하며 군대를 소집했으며, 부르동은 탄핵 연설을 했다고 서술한다. 한마디로 역사가들은 테르미도르 9일에 펼쳐진 대서사극의 주연 배우들을 묘사하지만 푸셰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사실 그는 그 운명의 날에 국민공회라는 무대에 서서 함께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무대 뒤에서 이 무모하고 위험한 연극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한층 더 어려운 일을 맡는다. 그는 장면들을 구성했고, 배우들을 연습시켰고 눈에 띄지 않게 어두운 데서 리허설을 했고 시작 신호를 보냈다. 어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진정한 영역이다. 후세의 역사들은 그가 맡은 역할을 보지 못한 채 지나쳤지만 한 동시대인은 이미 그의 활약을 감지했다. 바로 로베스피에르이다. 그는 공공연히 푸셰를 음모의 괴수라는 딱 맞는 호칭을 불렀다.

 

(131)

특히 천재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한동안 고독을 견뎌 내야 한다. 멀리 추방되어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야만 참된 과업의 폭과 높이를 측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복음은 모두 유배를 거쳐서 생겨났다.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 모세와 예수, 무함마드와 붓다, 모두 중대한 가르침을 전하기에 앞서 침묵의 광야로 가야 했고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내야 했다. 밀튼은 실명했고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을 갔고 세르반테스는 감옥에 갇혔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 숨어 지냈으며 단톄는 망명을 했고 니체는 살이 에이는 듯 추운 앵가딘 지역을 거주지로 택했다. 물론 이들은 맨 정신으로는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들의 수호신은 이런 일이 일어나게끔 은밀이 조율했다.

 

(152)

인간이란 돈과 사치를 좋아하며 사소한 일탈과 은밀한 쾌락을 즐긴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런 건 상관없다. 그저 조용히 처신하기만 하면 된다. 공화국 치하에서 온갖 험한 일을 겪던 거물급 은행가들은 이제는 태연히 부정 거래를 하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푸셰는 그들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그들은 그 대가로 그에게 이익의 지분을 넘겨준다. 마라와 데물랭이 이끌던 언론은 피에 굶주린 개마냥 물어뜯었건만 이제 언론은 고분고분 꼬리치며 푸셰의 다리에 감긴다. 언론 역시 채찍에 맞기보다는 비스킷을 얻어먹고 싶어 한다. 한동안 애국지사들이 야단법석을 피웠지만 이내 조용해졌고 쩝쩝대며 먹는 소리만이 들린다. 푸셰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뼈다귀를 던져 주거나 몇 차례 세게 때려서 애국지사들을 구석으로 몰아낸다. 이미 그의 동료들과 모든 정파들은 푸셰를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유쾌하고 유익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를 화나게 해서 부드러운 앞발에 숨긴 갈퀴 발톱을 내밀게 만들면 좋지 않다는 것도 깨닫는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독히 멸시를 당하던 이 남자는 갑자기 수많은 친구를 갖게 된다. 그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덕에 그에게 발목이 잡힌 사람들이다. 론강가에 놓인 파괴된 도시 리옹은 아직도 재건되지 못했지만 리옹의 산탄 학살 사건은 벌써 잊히고 푸셰는 인기를 모은다.

 

(173)

며칠 수 제1통령 보나파르트는 출정했을 때보다 백배는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그러고는 모든 장관과 친구들이 그가 패배했다는 첫 번째 소식을 듣자마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즉시 누군가로부터 들은 게 분명하다. 첫 번째 희생자는 너무 많이 앞서 나갔던 카르노이다. 그는 장관직을 잃고, 푸셰를 포함한 다른 장관들은 직책을 유지한다. 푸셰는 워낙 조심스러워서 충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충성했다는 증거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는 한심한 꼴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믿을 만한 인물임을 입증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의 변함없는 모습을 또 한 차례 확인시킨 셈이다. 만사가 잘 될 때는 믿을 만한 인물이지만 만사가 꼬일 때는 믿지 못할 인물이 바로 푸셰이다. 보나파르트는 그를 해고하지 않는다. 나무라지도, 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날부터 그는 푸셰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199)

푸셰가 나폴레옹에게 이런 힘을 행사한다는 사실이 동시대인들에게는 수수께끼였지만 그 힘은 마법이나 최면술을 써서 얻은 게 아니라 노력을 통해 습득한 것이다. 숙련된 솜씨로 부지런히 일하고 체계적으로 관찰을 한 덕에 얻은 힘이다. 푸셰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황제가 알려 준 것 뿐 아니라 황제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까지 온갖 비밀을 알고 있다. 마술사처럼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온 국민 뿐 아니라 주군까지도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 푸셰는 황제의 부인 조제핀을 통해서 부부 생활의 가장 내밀한 세부 사항까지 알고 있고 바라스를 통해서 나폴레옹이 굽이굽이 출세의 계단을 오르면서 했던 일들 모두를 알고 있다. 또 재계 인사들과의 친분 덕에 황제의 사유재산의 제반 상황을 감시한다. 보나파르트 일가는 숱한 지저분한 일들을 저지르는데 이 역시 그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형제들이 도박을 하다가 사고를 치든 누이 폴린이 방탕한 성생활을 즐기든 그는 놓치지 않는다.

 

(271-272)

그러나 어떻게 해야 공화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그들 중 하나를 내각에 들여 놓으면 된다. 진짜 공화주의자 하나만 있으면 부르봉의 백합기를 빨갛게 치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귀족들은 고심하다가 갑자기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을 떠올린다. 이 사람은 2, 3주 전에 모든 접견실을 돌아다니며 고관들을 예방했고 왕과 장관들의 책상을 수많은 건의서로 뒤덮었다. ‘그래, 이 사람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빨리 이 사람을 은거 생활에서 끌어내자!’ 어떤 정부가 난관에 처하거나 유능한 중개자나 협상가, 질서를 창출할 사람을 필요로 할 때면 그 정부는 늘-총재정부든, 통령정부든, 황체치하든, 왕국이든 상관없이-깃발을 들고 행렬을 이끌 줄 아는 남자 조제프 푸셰에게 눈을 돌린다. 결코 믿은이 가지 않는 성격을 지녔지만 외교적 수완을 갖춘 믿음직한 일꾼이기 때문이다.

 

(273)

그는 이런 말로 왕의 동생을 진정시킨다. “너무 늦었습니다. 왕께서는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나폴레옹이 벌이는 모험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황제를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저 저를 믿어 주십시오.” 이렇게 그는 왕정의 호감을 얻는다. 만일 부르봉 가문이 승리를 거두면 자신이 그들의 조력자라고 생색을 낼 수 있다. 만일 나폴레옹이 승리하면 부르봉 가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양다리를 걸쳐서 일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법을 성공적으로 구사해 왔으니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된다. 그는 이제 황제와 국왕, 두 군주를 동시에 충성스럽게 섬기는 신하가 되려고 한다.

 

(287)

후일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패배자 나폴레옹은 푸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내게 진실을 들려준 건 배신자들뿐이었다.” 사무친 원한을 토로하는 대목에서조차도 메피스토펠레스만큼이나 비상한 능력을 갖춘 푸셰를 경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천재가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이 범속함이기 때문이리라. 푸셰가 자신을 기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폴레옹은 어쨌든 푸셰는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목이 마른 사람은 물에 독이 들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 물을 향해 손을 뻗치는 법이다. 나폴레옹은 충실하고 무능한 사람보다는 믿을 수 없지만 영리한 사람을 신하로 삼는 길을 택한다. 10년을 치열하게 대립했던 사람들이 어중간한 우정을 나눈 사람들보다 서로 더 긴밀한 사이가 되는 경우는 놀랍게도 종종 있다.

 

(319-320)

푸셰 주변의 걸출한 인물들은 모조리 나락으로 추락했다. 미라보는 사망했고 마라는 살해되었으며 로베스피에르와 데물랭과 당통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푸셰와 함께 파견의원으로 활약했던 콜로는 열애에 있는 기아나 섬으로 추방당했으며 라파예트는 정치생명을 잃었다. 혁명을 함께했던 동지들은 모두 멀리 떠났고 자취를 감췄다. 이제 푸셰가 모든 정당의 신뢰를 받고 선출되어서 프랑스의 운명을 결정하는 동안 세계의 지배자였던 나폴레옹은 남루한 옷으로 변장을 하고 일개 장군의 비서 행세를 하며 가짜 여권을 가지고 해안으로 도망치는 중이다. 뮈라와 네가 총살될 날을 기다리고 있고 나폴레옹 덕에 왕 행세를 하던 보나파르트 일가는 다스릴 나라 하나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서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신세이다. 다시없을 세계의 전환기를 이끈 세대는 한때는 명성을 떨쳤지만 지금은 모조리 몰락했고 오직 푸셰만이 출세 가도를 달려왔다. 암암리에 계획을 세우고 물밑 작업을 끈기 있고 집요하게 이어 온 덕분이다. 지금 내각과 원로원과 국회는 그의 노련한 손 안에서 말랑말랑한 밀랍처럼 맥을 못 추고 평소에는 교만하던 장군들도 연금을 잃을까 떨면서 어린 양처럼 새 의장을 떠받는다. 프랑스 시민과 민중은 그가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루이 18세는 그에게 사자를 보내고 탈레랑도 안부를 전한다. 워털루의 승리자 웰링턴은 친밀히 소식을 전한다. 세계의 운명을 조종하는 실이 공개적으로 푸셰의 손을 거쳐 가는 건 처음이다.

 

(331-332)

백일천하라는 나폴레옹 주연의 막간극이 끝난 후 1815 7 28일 국왕 루이 18세는 백마가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시 파리로 입성한다. 푸셰가 열심히 준비한 덕에 국왕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환영 인파가 마차를 에워싸고 집집마다 걸린 부르봉 왕가의 흰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미처 깃발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급히 수건이나 식탁보를 지팡이에 달아서 창문가에 걸쳐 놓는다. 저녁에는 수많은 불빛이 도시를 환히 밝히고 기쁨에 겨운 사람들은 영국과 프로이센 점령군의 장교들과 춤추기까지 한다. 성난 고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서 사전 예방책으로 배치된 헌병들은 할 일이 없다. 정말이지 그리스도의 뜻을 가장 잘 따르는 국왕의 새 경찰장관은 새 주군을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튈르리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를 공손히 모셨던 충실한 신하 오트란토 공작은 이제 같은 장소에서 루이 18세를 기다리고 있다. 22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그는 루이 18세의 형인 폭군루이 16세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성왕 루이의 후손에게 공손히 절을 하며 서류에는 폐하를 진심으로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서명한다. (친필로 쓰인 10개 이상의 보고서에는 이런 글귀가 한 자 한 자 적혀 있다.) 그가 벌인 미치광이 공예 중에서 가장 아찔한 재주를 부린 셈이었다. 하지만 이 재주를 마지막으로 줄타기와 같던 그의 정치 역정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346-347)

세계 역사를 한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가 권력을 잃으면 전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그는 러시아 조정에 여러 차례 변죽을 울렸지만 초청장은 오지 않고 웰링턴도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벨기에는 국내에 이미 왕년의 자코뱅파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이에른 왕국은 조심스럽게 말을 돌리고 오랜 친구 메테르니히 공작은 이유 없이 쌀쌀하게 군다. “, 그러십니까! 오트란토 공작께서 그러고 싶으시다면 오스트리아 영토로 들어와도 됩니다. 오스트리아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공작의 체류를 묵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빈으로 와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당신이 빈에 머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탈리아로 가서도 절대 안 됩니다. 빈에서 멀지 않은 동북부 주를 제외한 다른 지방의 소도시를 택하신다면 조용히 처신하겠다는 조건하에 공작의 체류를 허가하겠습니다.”

 

(349)

15년 동안 운명이 위협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날렵하게 운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마침내 그가 꼼짝도 못하게 되자 운명은 이 패배자를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정치인으로서 굴욕을 겪은 것도 모자랐는지 조제프 푸셰는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사생활에서도 뼈아픈 굴욕을 겪게 된다. 1817년 프라하에서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는 마치 소설가가 지어내기라도 한 듯이 너무도 재치 있게 푸셰가 어떤 내적 굴욕을 겪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을 겪은 푸셰에게 이제 불행은 섬뜩한 캐리커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는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정치인 푸셰에 이어서 이제는 남편 푸셰가 굴욕을 당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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