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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이다운 아이였던 적이 없는 나는 런던의 거대한 로열 앨버트 홀에 들어선다. 수천 명은 족이 된다. 살아 숨 쉬는 육체를 이끌고 이곳으로 모요든 사람들. 음악을 통해서 거룩하고 신성한 숨결을 듣고, 느끼고, 호흡하기 위해서. 그것에 시종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 숨결, 하모니의 숨결은 나의 영원한 열망이다.

청중들에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기침을 한다. 피아노는 잠자코 나를 기다린다. 의자에 앉고, 음악은 시작된다. 모든 것이 펼쳐진다. 음악은 그들이며, 나 자신이며, 당신이며, 침묵을 갈구하는 우리이다.


(26-27)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해서 아버지는 통 말씀을 안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음성에서 징용자의 절규를 듣는다. 아버지의 목청 속에는 강제로 빼앗긴 모국어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에는 일본인들의 구타가, 몸속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실험쥐 신세가 된, 마치도 없이 생체이식을 당한 한국인들의 몸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없었던 집안의 무게가, 뱃속에는 장남의, 한 남자의, 한 아이의 분노가 한 짐이었다.


(34-35)

아무튼 내가 전적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유일한 공간은 피아노 앞에서였다. 영혼이 느끼는 행복감은 한참 후에나 찾아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 피아노를 일종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내면적인 명령. 나의 임무. 아무도 나에게 신동을 만들기 위한 교육법이라든지 아주 세세한 전문적 방식에 따라 손가락, 손목, 팔 놀리는 법, 자세를 유지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아직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 작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무도 나에게 신동들이 강요받는 몸짓을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그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내 몸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간혹 내가 사람들에게서 고양이처럼 연주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36)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형편없는 수준의 피아노 앞에 앉게 되면 그날은 연주회를 망쳐버리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피아노를 받아들인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악기쯤은 잊게 된다. 나는 악기가 아니라 음악과 사랑하는 관계이므로, 중요한 것은 표현할 수 없는 것조차 표현하려는 욕망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나만의 독특하고 개인적이며 직관적인 욕망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침묵이다. 피아노는 그저 그곳으로 데려가주는 사공일 뿐이다.


(63)

드디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내가 음표들을 통해서 암울한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축복이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격랑은 내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음악이 나를 잡아당기고 이끌었다. 내가 거기에 기대서 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완전히 낯선 이 세계에서 음악만큼은 나만의 동굴, 나의 피난처, 내가 몸을 웅크리고 안길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도 친숙한 존재였다.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곳이 어디건, 나는 내 집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0-91)

독창적인 해석이란 없다. 뚜렷하게 유일무이한 진정성 있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비극적인 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극적으로 연주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차피 그 음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연주하는 사람이 음악과 하나가 된다면, 연주자가 감히 그 정도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국 그 자신은 숨결과 하나가 되며 우리가 라고 알고 있는 그 나가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음악과 한 몸이 되는 것. 음악을 연주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아예 관통하는 것. 마침내 존재하기 위해서 사라지기.


(92)

템포란 무엇인가? 음악에서 템포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저 작곡가가 실마리를 주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한 인간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떠한 말을 속삭일 때 누가 그 어떠한 속도로 말을 하는지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표현이 먼저이다. 열광하면 그것이 속도를 결정한다. 음악은 템포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는다. 음악은 템포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음악이 템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109)

어떤 작품을 연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작품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듯한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느라 밥 먹는 일마저 잊어버리는 것이며, 손가락이 몹시 아프고, 밤에도 연습을 하기 위해서 문득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몸 안에서 음표들이 펄떡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열광이 나의 몸을 휘감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을 전적으로 작품에 내어주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지혜가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오직 열망만을 믿음과 토대로 삼아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138)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육체는 하나의 옷에 불과하며,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것을 저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가? 나에게는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는, 저세상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함께하는 나의 영원한 본질을 풍성하게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롭고 온당한 것이었다. 내면의 본질적인 아름다움, 보이지 않는 섬세한 아름다움의 영원한 재산. 나는 그 재산을 끊임없이 늘리고 싶었다. 더불어 지금 열여섯 살의 내가 접한 불교의 신선한 가르침과 매일매일의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은 조금씩 내 안에 새로운 자산이 되어갔고 탐험의 공간을 만들었다.


(140-141)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께서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머와 간명함으로 나에게 한마디 해주셨다.

부처가 되기보다 부처럼 행동하라. 부처행을 하는 자가 부처님이니 깨달음을 찾으려고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기 말고 지금 즉시 각자 자리에서 부처행을 하라. 부처행이란 나 아닌 것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걸 깨달아 모든 생명이 행복하도록 도우면 부처행이다

그렇다. “절대적인 완전함을 계속 찾으며 헤맬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여기에서 그 절대적인 완전함을 삶과 음악으로서 표현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 절대적인 완전함, 즉 정신의 본질, 온전하고 완전한 참나는 영원한 영원부터 언제나 내 안에 있었고 영원히 있을 진정한 이므로, 그것은 표면적인 자아”, 혹은 껍질에 불과한 가 아닌 나의 진정한 본질이므로.


(159)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혼동이 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그분만의 특유의 명쾌함으로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셨다.

우리가 위대한 한 작곡가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음악은 깨달은 자의 음악이므로 우리 또한 그 작곡가의 진정한 본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며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도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소위 말하는 하나가 된 의식과 연결되기 때문이죠. 온 세계를 놓고 볼 때,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으나, 참자아, 즉 정신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이며 그것이 바로 우주의 의식입니다. 그때는 연주자와 작곡가 각각의 개성이 공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상호의존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둘은 하나가 되니까요.”


(175)

음악은 바람의 소리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모두 음악의 원천이다. 음악은 안양의 다리 밑에도, 어린 나의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던 나른한 물풀들의 움직임에도 이미 있었다. 음악은 자연이다. 또한 자연의 메아리다. 음악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흐름의 완벽함을 듣게 해준다. 반복되는 프레이징으로 모래사장을 향해 밀려와서 부서지는 파도. 하지만 밀려올 때마다 각각 늘 유일하며 개별적인 파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새의 노래.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와 봄날의 이슬비. 내면의 숨결에 몰아치는 열대 계절풍, 영혼의 루바토, 쿵쿵 뛰는 심장, 점점 더 빨리 뛰었다가, 겁을 먹기도 하며, 순간 평온을 되찾는 우리의 심장. 감정이 고조되면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볼. 축축하게 젖은 손. 살아 있는 육체!


(177)

음악에는 끝이 없다. 음악은 작곡가 개인의 스타일이나 개성을 초월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연주를 통해서 자신만의 감수성과 개별성을 더함으로써 창조 작업을 이어간다. 즉 연주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낯선 것,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시적 불안감과 맞서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거장의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실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다른 한 번의 경험을 쌓았을 뿐이고 한 번 더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오로지 반복이 부족했음을 발견한 위대한 순간이다. 언제나 다시 하면 더 나아지는 법,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실패가 존재한단 말인가.”


(183-184)

유명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단 이 콩쿠르들은 모두 그들의 이름을 내세워서 그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데 고작 몇 명에게 상을 주고 그 나머지 몇 백 명들의 마음은 무너뜨리고 상심하게 했다. 정작 그 창조자들은 이런 비즈니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정말 그들의 이름이 경쟁을 앞세워 음악도들을 모으는 비즈니스에 쓰이는 것을 그들은 원할까? 그들의 독립적인 정신이 그것을 허락했을까? 의문이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벨기에 왕가에서 개설했다는, 음악에 열중하는 데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삶의 조건을 제시하는 그 기관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하자 나는 나의 인생의 마지막 시험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겨우 스물 살밖에 안 되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휴식을 필요로 했다. 아니,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는 이제 보살핌을 필요로 했다.


(198-199)

내 나이 이제 스물한 살.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퀸 엘리자베스 뮤직채플에서 편안히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받으며 이 무대, 저 오케스트라와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따르면서 사는 새로 얻게 된 안락한 삶. 아니면 음악의 이름으로 영위하게 될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삶”, 직접 맞서고 스스로 찾아나가야 하는 삶, 그러나 어떤 종류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삶. 나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독립적인 삶. 폭풍의 역경이 몰아치고 가뭄이 와도 감수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삶. 내가 열두 살 때부터 휴식도 안정도 없이 살아온 삶. 그리고 그 삶은 또다시 나를 요구하고 부르고 있었다. 음악을 위하여. 나는 어느 누구도 아닌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이니까. 내가 외로울 때 나를 지켜주고 살펴준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이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었으니까. 내가 추위에 떨 때 음악이 나를 품에 안아주었으니까. 두려움에 떨 때도. 음악이 나의 잡을 기다려주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으로, 프랑스로, 벨기에로, 유럽으로 나를 이끌어주었고 나의 꿈을 이루어주었으니까. 음악이 나의 엄마가 되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음악에게 빚을 졌다. 존재할 수 있는 이 영광을 삶이 우리에게 준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하듯이, 나는 음악에 보답해야 했다. 더 이상 피아노를 통해서 엄마를 구할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에, 그 음악에게 나 자신을 송두리째 바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이곳을 떠나리라.


(217)

서른 개의 소나타는 이를 테면 각각이 하나의 소설이다. 극한으로 치닫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인생이 가지는 정수를 기념비적인 작품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니까. 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의 전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었다. 그 서른 개의 소나타를 나는 흔히들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같이 연대순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야 총 99개의 악장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명쾌하게 이해되는 음악적 설계도를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224)

나는 마음 깊이 하모니를 믿는다. 아니, 더 나아가 이 세상에는 하모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 하모니는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고, 무너질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근원이라고도 하고 하나님, , 우주적 의식, 창조주, 알라, 혹은 부처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것을 하모니라고 부른다.


(234)

프랑스에서 연주할 때면 운다. 아주 많이 운다. 친구들이 청중들 속에 앉아 있는데 난 친구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같이 함께 연주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운다. 드디어 전적으로 나의 거처와  강렬하게, 그리고 진정하게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안전과 사랑이 있는 곳, 용서와 평화가 있는 곳이다. 침묵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곳을 내 거처로 삼을수록 더욱 음악은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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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사랑?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는 생각했다. ‘사랑은 죽음을 방해한다. 사랑은 생명이다.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랑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은 신이고, 따라서 죽음은 사랑의 일부인 내가 보편적이고 영원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에 그에게는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뭔가 일방적이고 개인적이고 이성적이며, 불분명한 것이 있었다. 불안과 모호함이 있었다.


(109-110)

온갖 현상의 원인을 종합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원인을 탐구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는 각각이 개별적으로 원인이 될 수 있는 현상들의 수많은 조건과 복잡성은 깊이 탐구하지 않고, 가장 처음의, 가장 알기 쉬운 근접한 것을 포착해 그것을 원인이라 말한다. 역사적 사건에서(인간 활동을 관찰하는 대상으로 하는) 태초에 있고 근접하다고 생각되는 원인은 하느님의 의지이고, 그다음은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 즉 역사상 영웅들의 의지다. 그러나 각 역사적 사건의 본질, 즉 사건에 참가한 인간 전체의 활동을 통찰해본다면, 역사상 영웅의 의지가 인간 전체의 활동을 지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들에게 인도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언뜻 역사적 사건의 의의는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결국 마찬가지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구 여러 민족이 동쪽을 향해 나아간 것은 나폴레옹이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것은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던 거라고 말하는 사람 사이에는, 마치 지구는 정해진 위치에 있고 행성들이 그 둘레를 도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지구가 무엇에 의해 지탱되는지는 모르지만 지구와 행성의 운행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안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차이가 있다.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모든 원인의 근저에 있는 유일한 원인 이외에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갖가지 사건을 지배하는 법칙은 존재하고, 어떤 부분은 알 수 없지만 또 어떤 부분은 감지할 수 있다. 이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한 인간의 의지에서만 원인을 구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데, 이는 행성 운행 법칙의 발견이 사람들이 지구 부동설을 버렸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 것과 마찬가지다.


(134)

식량과 무기, 포탄, 수많은 물자로 가득한 모스크바는 나폴레옹의 손안에 있었다. 프랑스군 병력의 절반밖에 되지 않던 러시아군은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지위는 더없이 눈부셨다. 두 배의 병력으로 러시아군의 잔군을 습격해 섬멸하고 유리한 강화 조건을 제시해 만약 거절당하면 페테르부르크에 위협 공격을 가하거나, 또 만약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스몰렌스크나 빌나로 돌아가든가 모스크바에 머물면 그만이어서 당시 프랑스군이 차지했던 빛나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천재성도 필요치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을 위해서는, 군대에 약탈을 허용하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충분히 조달할 수 있었던 전군의 동복을 마련하고, 반년 이상 전군에 공급할 수 있는 있을 만큼 풍부한(프랑스의 역사가는 이렇게 말한다) 모스크바 내 식량을 확실하게 수집하는 등의 극히 간단하고 쉬운 일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역사들이 역설하듯, 천재 중의 천재이자 군의 통솔권을 쥐고 있던 나폴레옹은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183)

눈덩이를 순식간에 녹이기는 불가능하다. 일정한 시간의 한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열을 가하더라도 그보다 빨리 녹일 수는 없다. 오히려 열을 가할수록 남은 눈은 더 단단해진다.


(190-191)

프랑스군은 보로디노에서 승리한 후, 중대한 전투는 고사하고 다소나마 주목할 만한 전투도 한 번 없었는데 그 존재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만약 중국의 역사에서 끌어낸 실례라면, 우리는 이것은 역사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것은 자기 척도에 맞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역사가들이 빠져 나가는 구멍이다). 또한 소규모의 군대만 참가한 일시적인 충동이라면 우리도 이 현상을 예외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 조상의 눈앞에서 벌어졌고, 또 그들에게는 조국의 생가가 걸린 대사건이었으며, 더구나 역사상 알려진 전쟁 중에서도 최대의 전쟁이었다.


(191-192)

펜싱의 모든 규칙에 따라 결투하려고 하는 검은 든 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승부는 꽤 오랜 시간 계속된다. 갑자기 한쪽이 자신이 상처 입은 것을 알아채고, 이것은 장난이 아니라 목숨과 결부된 일이라 깨닫고는 검을 버리고 옆에 있던 몽둥이를 집어들고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확실하고 가장 단순한 방법을 합리적으로 사용했다고 하고, 또한 가사도 전설에 고무되어 사건의 진상을 감추고자 가신은 검도의 모든 규칙에 따라 검으로 승리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어난 결투를 이런 식으로 기술할 때 어떤 혼란과 모호함을 일으킬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규칙대로 결투할 것을 요구한 검객은 프랑스인들이고, 칼을 내던지고 몽둥이를 집어든 상대방은 러시아인들이고, 펜싱의 규칙에 따라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이 사건을 기술한 역사가들이다.


(196)

1812년에 퇴각하던 프랑스군은 전술상 각기 분산해서 방어해야 한다는 규칙을 무시가호 뭉쳐 다녔는데, 군의 사기가 떨어져 집단이 아니면 그들을 하나로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러시아군은 전술상 집단적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규칙을 무시하고 분산 행동을 했다. 이는 각자가 명령도 기다리지 않고 프랑스군을 공격할 만큼 군의 사기가 높았고, 곤경과 위험에 뛰어들도록 강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259)

역사가들이 이것은 위대하다!’고 할 때는 이미 선도 악도 없고 위대한 것위대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위대한 것은 선이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악이다. 그들의 관념에 따르면 위대함이란 그들이 영웅이라고 부르는 특수한 동물들의 특질이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파멸하는 동지들은 고사하고 (그의 의견에 의하면) 자기가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들까지 버리고 혼자 따뜻한 털외투를 입고 돌아오면서도 이것은 위대하다고 느끼고 마음이 평온했던 것이다.

숭고(나폴레옹은 자기 안에서 숭고한 무언가를 보았다)와 우스꽝스러움은 겨우 한 발짝 차이다하고 나폴레옹은 말했다. 그리고 온 세계는 오십 년에 걸쳐 숭고하다! 위대하다! 나폴레옹은 위대하다! 숭고와 우스꽝스러움은 겨우 할 발짝 차이다하고 되풀이했다.


(269)

사람은 죽어가는 동물을 볼 때 그 자신인 것, 즉 그의 본질이 눈앞에서 분명히 소멸하고 존재하기를 멈추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죽어가는 그것이 인간이라면, 더욱이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이면, 생명의 소멸에 대한 공포 외에도 단절감과 정신적인 아픔을 느끼며, 그것은 육체적인 상처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생명과 결부되기도 하고 때로는 치유되기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 상처는 아프고, 외부의 자극적인 접촉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317)

쿠투조프는 유럽과 세력 균형과 나폴레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적이 적멸하고 러시아가 해방되어 영광의 정점에 이르자, 러시아 민족의 대표자이자 가장 러시아인다운 러시아인이었던 그에게는 이제 아무 할 일이 없었다. 국민 전쟁의 대표자에게 죽음밖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321-322)

피예르의 외면적인 태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예전과 똑같이 보였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산만하고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특별한 것에 마음이 사로잡힌 듯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예전에는 눈앞에 있는 것이다 남이 말한 것을 잊어버렸을 때, 마치 멀어서 전혀 볼 수 없는 뭔가를 분별하려 애쓰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처럼 자못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렸었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남이 말한 것도 눈앞에 있던 것도 잊어버렸지만, 지금은 살짝 미소를 띠고 분명 뭔가 다른 것을 보고 듣는 것 같긴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과거의 그는 선량하지만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심결에 그를 멀리했다. 지금은 삶에 대한 기쁨의 미소가 늘 입가에 감돌고 두 눈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 즉 당신들도 나만큼 만족하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빛났으며,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했다.


(370)

그러나 만일 오십 년 전 알렉산드로 1세가 인류의 선에 대해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알렉산드르를 비난하는 역사가의 인류의 선에 대한 견해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릇되었다고 판명될 수 있는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발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매년 새 저자가 나타날 때마다 인류의 선에 대한 견해가 달라져, 선이라 생각되었던 것이 십 년 우에는 악으로 간주되기도 하고, 혹은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는 이상, 이 가정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동시에 발견하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폴란드에 부여한 헌법과 신성동맹을 알렉산드르의 공적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378-379)

우연, 수백만의 우연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모든 사람은 합의라도 한 것처럼 이 권력의 확립에 힘을 보탰다. 우연은 그에게 종속되도록 당시 프랑스 위정자의 성격을 만들었고, 우연은 그의 권력을 승인한 파벨 1세의 성격을 만들었다. 우연은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권력을 확립해준, 그를 반대하는 음모를 만들어주었다. 우연은 앙기앵 공을 그의 수중에 던져 뜻하지 않게 그를 죽이게 함으로써, 그가 힘을 가졌기 때문에 옳다는 것을 다른 어떤 수단보다 더 강력하게 군중에게 납득시켰다. 우연은 그에게 분명 파멸을 초래했을 영국 원정에 전력을 쏟게 했지만, 결국은 그 계획을 실행시키지 않고 뜻밖에도 마크가 인솔한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하게 해 싸우지도 않고 항복시켰다. 우연과 천재성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그에게 승리를 안겼고, 우연히도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일어나려는 사건에 참가하지 않은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 모든 사람이 품었던 그의 범죄에 대한 과거의 공포와 혐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에게 그의 권력, 그가 스스로에게 준 칭호, 위대와 영광이라는 그의 이상까지 승인해주었으며, 그 이상은 만인에게 무엇보다 훌륭하고 현명한 것으로 보였다.


(466)

새로운 역사학은 신이 권력을 부여하고 신의 의지에 직접 인도되는 사람들 대신 비범한 초인간적 능력을 가진 영웅, 혹은 위로는 군주에서부터 아래로는 저널리스트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인도하는 온갖 성질의 인간을 선택했다. 이전에는 신의 뜻에 맞는 목적이라고 여겨졌던 민족들, 즉 인류 운동의 목적으로 여겨졌던 유대 민족, 그리스 민족, 로마 민족 대신에 새로운 역사학이 설정한 목적은, 프랑스와 독일과 영국 민족의 복지였으며, 가장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전 인류 문명의 복지였지만, 이 인류란 대개 북서부의 작은 한구석을 차지한 민족들을 의미했다.


(482)

권력이란 대중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들에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의해 표명된 대중 의지의  총화다.

국가와 권력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구성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의 논의로 성립되는 법에 대한 과학 분야에서 이 모든 것은 아주 명백하다. 그렇지만 역사에 적용할 경우 권력의 정의에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법에 대한 과학은 마치 고대인들이 불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고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권력을 고찰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국가와 권력은 마치 현대 물리학에서 불은 자연력이 아니라 현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한낱 현상일 뿐이다.


(491)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 권력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 권력은 어느 인물에게 옮겨진 대중 의지의 총화다. 대중의 의지는 어떤 조건에서 한 인물에게로 옮겨지는가? – 그 인물에 의해 모두의 의지가 표현된다는 조건 아래서다. 고로 권력은 권력이다. 고로 권력은 우리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다.


(506)

전과 같은 성격, 전과 같은 조건에 놓일 때 인간은 전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경험과 추론이 인간에게 몇 번을 보여준다 해도, 인간 같은 성격, 같은 조건으로 항상 같은 결과로 끝나는 일에 착수할 때, 설령 그것이 첫번째라 할지라도 역시 그 일을 경험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확신한다. 미개인이든 사상가든 인간은 누구나 같은 조건 아래서 상이한 두 행위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추론과 경험으로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입증되었는데도, (자유의 본질을 이루는) 무의미한 개념 없이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은 자유의 개념 없이는 생활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522)

인간의 자유는 그 힘이 인간에게 의식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힘과 다르지만, 이성에게는 그 힘도 다른 힘과 다르지 않다. 인력, 전기력, 화학적 힘이 각기 다른 것은 이성이 그 힘을 여러 가지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의 힘도 이성이 그것에 부여한 정의 때문에 다른 자연의 힘과 구별될 뿐이다. 필연이 없는 자유, 즉 이것을 정의하는 이성의 법칙이 없는 자유는 인력이나 열이나 식물이 생장하는 힘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그것은 이성에게 정의할 수 없는 찰나적인 삶의 감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44-545)

수백만의 사람이 서로를 죽이고 100만의 절반이 죽은 사건의 원인이 한 사람의 의지일 리 없고, 한 사람이 자기 혼자 산을 파서 무너뜨릴 수 없듯 한 사람이 50만을 죽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원인일까? 일부 역사가들은 프랑스인의 정복욕과 러시아인의 애국심이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다른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의 대군이 퍼뜨린 민족주의적 요소나, 러시아가 유럽에 연대해야 했던 점 등등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대체 왜 수백만이 서로를 죽이고, 누가 그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는가? 모두가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질 것이 분명했는데도 그들은 왜 그 일을 했을까? 이 무의미한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무수한 회고적 추론이 가능하고 실제 이것을 하고 있지만, 방대한 수익 설명과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목적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은, 그 원인이 한없이 많아서 그중 어느 하나도 원인이라고 꼽을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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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5 23: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눈덩이를 순식간에 녹이기는 불가능하다.고 톨스토이 옹은 전! 평에서 말했지만 북홀릭님은 대작 전 평! 눈 녹이듯 완독 하쉼 !추카! 아들과 딸에게 자랑 하삼 333^^!

bookholic 2021-12-07 08:35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아이들에게 전쟁과 평화 독서 편지를 써야하는 숙제가 생겼습니다^^
scott님 오늘도 따뜻한 하루 되세요~~~
 
















(15-16)

만약 나폴레옹이 비스와 강 건너편으로 후퇴하라는 요구에 화를 내지 않고, 군대에 진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전쟁은 없었을 것이고, 하사 전원이 재복무를 원하지 않았더라도 역시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영국의 음모가 없고, 올덴부르크 대공이 없고, 알렉산드르가 모욕을 느끼지 않고, 러시아에 전제 권력이 없고, 프랑스혁명과 뒤이은 독재와 제정시대가 없고, 거슬러올라가 프랑스혁명을 유발한 여러 원인이, 기타 등등이 없었다면 역시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인 중 하나만 빠졌어도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원인-수십억 가지 원인-은 사건을 유발하여 우연히 동시에 겹친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특정한 원인이랑 없으며,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몇 세기 전 인간 무리가 자신과 유사한 자들을 죽이면서 동에서 서로 이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백만의 인간이 자신의 인간다운 감정과 이성을 버리고 서에서 동으로 전진하며 자신과 유사한 자들을 죽여야만 했던 것이다.


(17)

인간에게는 양면의 생활이 있는데, 하나는 생활의 흥미가 추상적일수록 자유로워지는 개인적 생활이고, 또하나는 자기에게 정해진 법칙을 좋든 싫든 실행해야 하는 자연력이 행사되는 집단적 생활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지만, 역사적이고 전인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며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단계의 높은 곳에 설수록,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다른 사람에 대해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또 개개 행동의 숙명과 필연성이 더 명백해진다.


(19)

어느 것도 원인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이 있는, 유기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의 모든 조건이 일치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세포질의 분해 등등 때문이라고 하는 식물학자나, 내가 먹고 싶어 떨어지라고 빌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나무 밑의 사내아이나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 간 것은 그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고, 그가 패망한 것은 알렉산드르가 그의 패망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갱도가 뚫려 몇만 푸드나 되는 산이 무너지는 것이 마지막 갱부의 마지막 곡괭이질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옳기도 하고 옳지 않기도 한 것이다. 역사상의 사건에서 이른바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 사건에 명칭을 부여하는 라벨이며, 원래 라벨이라는 것이 그렇듯 사건 그 자체와는 가장 관계가 적다.

자기 자신에게는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되던 영웅들의 모든 행위도 역사적 의미에서 보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전체와 관련되어 있고, 개벽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50)

과오의 가능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폴레옹의 신념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의 생각에 따르면 자신이 하는 행위는 전부 다 선한 것인데, 그것은 그 행위가 선악의 관념에 합치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한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70-71)

가장 많은 사람이 있는 여덟번째 파는 수적으로 다른 파들에 비해 99 1의 비율로 많았는데, 그들은 평화도, 전쟁도, 공격 작전도, 드리사든 어디든 방어 진지도, 바르클라이도, 황제도, 풀도, 베니히센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오직 중요한 한 가지, 즉 자신을 위한 최대의 이익과 만족만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황제가 있는 사령부를 돌러싼 얽히고설킨 음모의 진흙탕 속에서, 실로 다양한 범위에서, 다른 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성공을 얻게 될 수 있었다. 어떤 자는 그저 자신의 유리한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오늘은 풀에 찬성하고 내일은 반대파에 찬성하다가도 모레는 그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그것이 황제의 마음에만 들었다는 이유로, 아무 의견도 없다고 했다.


(83-84)

천재라는 말은 광휘와 권력에 둘러싸여 있는 군인에게 우매한 대중이 그 권력에 천재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성질을 덧붙이고 아첨하며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훌륭한 장군들은 모두 바로 같거나 얼빠진 자들이다. 가장 훌륭한 장군은 바그라티온이며, 이것은 나폴레옹도 인정했다. 그런데 보나파르테 자신은 어떨까! 나는 아우스터리츠 전장에서 보았던 자기만족에 찬 그 우매한 얼굴을 기억한다. 훌륭한 사령관에게는 특별한 자질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니 시정(詩情)이니 부드러움이니 철학적 탐구에 의한 회의(懷疑) 같은 가장 고매한 인간의 자질은 없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령관은 시야가 좁고, 자신이 하는 일이 몹시 중요하다고 확신해야 하며(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서 용감한 사령관이 될 수 있다. 보통 사람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동정하거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120)

피예르가 로스토프네에서 돌아오던 중 감사에 찬 나타샤의 눈빛을 떠올리며 하늘의 혜성을 바라보고 자신에게 새로운 무언가가 계시되었다고 느낀 그날부터, 지상의 모든 것이 공허하고 어리석다는, 그동안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의문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전에 무슨 일을 할 때나 머리에 떠올랐던 왜? 무엇을 위해? 같은 무서운 의문은 이제 전혀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또다른 의문도 아니고 이전의 의문에 대한 대답도 아닌 그녀의 모습이었다. 부질없는 이야기를 듣거나 자신이 말을 해도, 인간의 비열함과 무의미함에 관해 읽거나 들어도 전처럼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인생이 짧고 불확실한데 인간은 왜 그렇게 악착을 부릴까 자문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마지막 본 그녀 모습을 떠올리면 모든 의문이 사라졌는데, 그것은 그녀가 그의 머리에 떠오른 의문에 대답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를 전혀 다른 밝은 정신활동의 영역, 올바른 자도 없고 죄지은 자도 없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영역으로 데려가기 때문이었다.


(156)

전쟁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도 모두 각자의 본성, 습관, 조건, 목적 등에 따라 행동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허영에 차고, 기뻐하고, 분개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또 그것이 자신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들 모두가 의지를 갖지 않는 역사의 도구였으며,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이해가 될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실제로 활동하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불변의 운명이고, 인간 사회에서 계급이 높을수록 자유는 줄어든다.


(156-157)

이제 우리는 1812년에 프랑스군이 파멸한 원인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파멸한 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이 겨울 원정 준비도 없이 이미 늦은 때에 러시아 땅 깊숙이 침입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모든 도시가 소각되고, 그들이 불러일으킨 러시아 민중의 적개심으로 생긴 전쟁의 성격 때문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최고의 지휘관이 통솔한 세계 최고의 80만 군대가, 수적으로 절반도 되지 않는 경험 없는 지휘관들이 통솔하는 경험 없는 러시아군과 맞붙어 패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러한 경과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예측한(지금은 누구에게나 분명히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 측 노력은 전부가 러시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방해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프랑스측에서는 나폴레옹이 아무리 경험이 풍부하고 군사적 천재라 불렸을지라도 여름이 끝날 무렵 모스크바로 나아갔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들을 파멸시킬 게 분명한 일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격이었다.


(268)

모두가 원한다면 해야겠지, 도리가 없으니…… 하지만 여보게, 이건 정말이야, 인내와 시간, 이 두 용사보다 강한 건 없고, 이 두 가지가 모든 것을 해주지만, 조언자들은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아, 그게 잘못이야.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대답을 기대하는 듯이 물었다. “그래, 자네라면 어떻게 하라고 하겠나?” 그는 깊고 총명한 빛을 띤 눈을 반짝이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가르쳐주지.” 안드레이 공작이 대답하지 않자 그는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가르쳐주지. 의심 속에서는, 어보게,”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몸을 삼가라.”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했다.


(270-271)

닥쳐오는 커다란 위험을 알아챈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것처럼, 적이 모스크바로 접근해 오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모스크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도 진지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경박해졌다. 위험이 닥쳐오면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으레 두 개의 목소리가 똑같이 강하게 말하기 시작하는데, 하나의 목소리는 위험의 성질을 잘 파악해 벗어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무척 이성적으로 말하고, 또하나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예견하고 사건의 전반적인 움직임에서 달아나는 것은 인간의 힘에 부치고 위험을 생각하는 것은 괴롭고 고통스러우니 그것이 눈앞에 닥칠 때까지는 외면하고 즐거운 일만 생각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더욱 이성적으로 말한다. 혼자일 때 인간은 대개 첫번째 목소리에 따르지만, 집단사회는 두번째 목소리에 따른다. 지금 모스크바 시민의 경우가 그랬다. 모스크바가 이해만큼 흥겨웠던 적은 오래도록 없었다.


(313-314)

명예, 사회의 안녕, 여자에 대한 사랑, 조국-이 그림들이 나에게 얼마나 위대하고 깊은 의미로 가득찬 것으로 보였던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나를 위해 떠오른다고 느낀 아침의 차가운 백색 광선 아래서 그저 단순하고, 흐릿하고, 조잡할 뿐이다.’ 특히 주의를 끈 것은 그의 인생에 있었던 세 가지 큰 슬픔이었다. 여자에 대한 사랑, 아버지의 죽음, 러시아의 절반을 점령한 프랑스군의 침입. “사랑!...... 신비로운 힘으로 가득해 보이던 그녀! 나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나는 내 사랑, 그녀와의 행복에 관해 시적인 계획을 세웠었다. 오 귀여운 소년!” 그는 분노에 차 소리내어 말했다. ‘그런데 어땠는가! 나는 이상적인 사랑 같은 것을 믿고 내가 없는 일 년 동안 그녀가 당연히 절개를 지킬 거라 생각했다! 우화에 나오는 착한 비둘기처럼 나와 헤어져 있는 그녀가 나만을 생각하며 야윌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단순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단순하고 추악했다.


(320-321)

전투가 이기려고 굳게 결심한 자가 이기는 법이야. 왜 우리가 아우스터리츠에서 패했을까? 아군과 프랑스군의 손실이 거의 비슷했는데도 우리가 너무 성급히 우리가 졌다고 말했고, 그래서 진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말했던 것은, 당시 거기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전장에서 달아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네. ‘졌다-달아나자!’ 이러면서 우리는 달아났어. 만약 저녁때까지 우리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 그러나 내일 우리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걸세. 자네는 우리 진지의 좌약이 약하고 우익이 너무 뻗어 있다고 하지만,”그는 계속했다. “전부 쓸데없어. 그런 건 있지 않아. 내일 우리를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그건 수억 개의 다양한 우연이고, 이것이 적이 달아나느냐 우리가 달아나느냐, 이쪽을 죽이느냐 저쪽을 죽이느냐에 따라 순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며, 지금 하는 일들은 그저 오락일 뿐이야. 자신과 함께 진지를 둘러본 그들은 전체의 움직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를 하고 있어.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작은 이해에 사로잡혀 있거든.”


(325)

전쟁은 예의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역겨운 것이고, 우리가 이것을 이해해야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걸세. 우리는 엄격하고 엄숙하게 이 무서운 필연성을 다뤄야 해. 요컨대 허위를 버려야 하는 거야. 전쟁은 어디까지나 전쟁이지 절대 장난이 아니니까. 그렇지 않으면 전쟁은 한가하고 경솔한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되고 말 걸세.


(341-342)

여기에 발췌한 작전명령은 그가 승리를 거둔 전투들에서 내린 작전명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뛰어났다. 전투중에 내렸다는 명령들도 종전보다 못하지 않고 비등했다. 그러나 이 작전명령과 지시가 그전 것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되는 것은 보르디노 회전이 그에게 첫 패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빈틈없는 작전명령이나 지시도 패전하면 매우 졸렬한 것으로 생각되고, 학식이라도 있는 군인들은 보란듯이 그것을 비난하며, 아무리 조악한 작전명령이나 지시도 승리하면 더없이 훌륭한 것으로 여겨지고, 진지한 사람들이 다수의 책을 쓰면 그 조악한 지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


(380)

천만의 말씀입니다. 각하, 승패를 판가름하기 어려울 때는 끈기 있는 쪽이 승리자가 되는 법입니다.”


(385)

정말 이것이 죽음이라는 걸까?’ 안드레이 공작은 풀과 쑥과 뱅뱅 도는 검은 공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흐름을 전혀 새롭고 부러움이 깃든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죽을 수 없다,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삶을 사랑하고, 이 풀과 땅과 공기를 사랑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모두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441)

전쟁이란 인간의 자유가 하느님의 계율에 따르는 가장 어려운 복종이다.’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소박함은 하느님에 대한 순종이다. 하느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소박한 것이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 행동한다. 한 말은 은이고, 하지 않은 말은 금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고통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모를 것이고, 자기 자신을 모를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피예르는 꿈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기보다 들었다) 모든 것의 의미를 마음속에서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결합한다?’ 피예르는 자문했다. ‘아니다, 결합이 아니다. 사상은 결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사상을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 연결해야 한다,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피예르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이 말로써 표현되고, 자기를 괴롭히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느끼고 마음속 깊이 감격하며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492)

러시아 사절단에게 나는 전쟁 같은 것은 원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나는 오로지 그들 궁정의 그릇된 정치와 싸운 데 불과하고, 알렉산드르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나와 나의 국민을 욕되게 하지 않는 강화 조건이라면 이 모스크바에서 받아들이겠노라고 말해주리라. 나는 내가 존경하는 황제를 모욕하기 위해 승리의 행운을 이용하고 싶지 않다. 귀족들에게도 말하리라.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와 나의 모든 신민의 안녕이라고. 하지만 그들 앞에 나서면 나는 분명 더욱 고무될 것이고, 언제나처럼 명료하게, 장중하게, 또한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모스크바에 있는 걸까? 그렇다, 저것은 모스크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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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4 1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4권!
북홀릭님 주말 대작 전!평 완독의 끝을 향해 !!

bookholic 2021-12-05 10:38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4권도 드디어 끝냈습니다...
scott님께서 얼마 전에 왜 <전쟁과 평화> 4권을 말씀하셨는지 알겠어요 ㅎㅎ
 















(113)

루이 16세도 죄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처형당했지만, 일 년 후 루이 16세를 처형한 자들 역시 죽임을 당했다. 무엇이 나쁜 것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나는 대체 무엇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가? 만물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들에 단 한 가지 대답도 얻지 못했고, 한 가지 대답이 있긴 했지만 논리적이지 못하고 또 모든 의문에 대한 대답도 되지 못했다. 그 한 가지 대답이란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 죽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거나, 더 이상 그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된다였다. 그러나 죽는 것은 무서웠다.


(166)

키예프에 도착한 피예르는 관리인들을 모두 가장 큰 사무소로 불러 그들에게 자기의 의도와 희망을 설명했다. 농노적 종속관계에서 농민을 완전히 해방하기 위한 방법을 즉시 강구할 것, 그때까지는 당분가 농민에게 지나친 노동을 시키지 말 것, 아이가 있는 부녀자에게는 일을 시키지 말 것, 농민을 원조할 것, 처벌은 훈계로 그치고 체형은 금할 것, 각 영지에 병원과 고아원과 학교를 설립할 것 등이었다. 몇몇 관리인은(그중에는 거의 문맹인 청지기도 있었다) 젊은 백작이 자기들의 관리 소홀과 돈을 착복하는 데 불만을 품은 거라고 해석하고 겁을 먹은 패 피예르의 말을 들었다. 또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 피예르의 떠듬거리는 말투와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무리도 있었고, 주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그저 만족하는 세번째 무리도 있었는데, 총 관리인을 포함한 네번째 무리에 해당하는 가장 슬기로운 자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237)

로스토프는 이 모퉁이에 서서, 연회를 벌이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도저히 결말이 나지 않는 괴로운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무서운 의혹이 일었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고 아집도 사라진 데니소프,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과 오물과 질병으로 가득한 병원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 병원에서 맡았던 시체 냄새가 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대체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렸을 정도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제 황제가 되어 알렌산드르 황제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손이 희고 자기만족에 빠진 보나파르트가 떠올랐다.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나 전사자들은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포상을 받은 라자레프와 처벌을 받고 사면되지 않은 데니소프도 떠올랐다. 그는 이렇게 이상한 상념에 잠긴 자신을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246)

, 사랑, 행복!’ 떡갈나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는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부질없고 무의미한 기만에 싫증을 내지도 않는거냐. 언제나 똑같고, 언제나 기만할 뿐인데! 여기에는 봄도, 태양도, 행복도 없다. 봐라, 저기 짓눌려서 죽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전나무들이 있을 뿐이고, 나고 꺾이고 상처 난 내 손가락들이 등에서건 옆구리에서건 제멋대로 뚫고 나가 돋는 동안 이렇게 서 있어야 할 뿐이다. 나는 너희의 희망과 기만을 믿지 않는다.’


(324)

그는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인생 전체가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인생이, 기쁨으로 충만한 모든 인생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데, 나는 이 막히고 비좁은 틀 안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조바심내고 있을까?’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는 오랜만에 미래의 행복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적당한 양육자를 구해 아들의 교육을 일임하기로 결정했고, 사임하고 외국으로 나가 영국과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둘러보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젊음과 체력이 이토록 넘치게 느껴질 때 나는 내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했던 피예르의 말은 진리이고, 나도 지금은 그것을 믿는다. 죽은 자를 묻는 일은 죽은 자에게 맡겨야 하며, 생명이 있는 한 살아서 행복해져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349)

예전 같으면 내가 이런 사랑에 빠질 거라고 누가 말했더라도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야. 지금 내게는 온 세계가 둘로 나뉘어 있어. 하나는 그녀가 있는, 온갖 행복과 희망과 빛이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없는, 우울과 어둠뿐인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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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5)

모두가 자기 신념에 따라서만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전쟁은 없어질 걸세.” 그는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죠.” 피예르는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피식 웃었다.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거든……”

그럼, 당신은 뭐 때문에 전쟁에 나가시는 겁니까?” 피예르는 물었다.

뭐 때문이냐고? 나도 모르겠어. 그래야 하는 거니까. 또한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야!”


(186)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빠는 모두가 이유도 목적도 모르는 채 말려들고 있는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우리를 버리고 간다고 하니까요. 사건과 사교의 중심인 그곳뿐만 아니라 흔히 도시인들이 전원의 노동과 자연의 고요가 있는 곳이라고 상상하는 이곳에서도 전쟁의 반향이 울리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무거운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행군이니 진격이니 하시면서 나로서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만 하고 계십니다. 그제는 평소처럼 마을의 거리를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 소집되어 군대에 보내지는 신병들이었습니다…… 나는 출발하는 사람들의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 비탄에 잠긴 모습을 보았고,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오열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우리에게 사랑과 모욕에 대한 용서를 가르쳐주신 구세주의 율법을 잊고 서로를 죽이는 기술 속에 자기들의 주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80-281)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힘이 넘치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흥분해 있고, 나와 똑같이 건강하고 활기차고 흥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적과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지는 않아도 다들 이렇게 느끼고 있었고, 이 느낌은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특별한 광채와 즐겁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383-384)

이 사람들은 누구지? 무엇 때문에 왔지? 이 사람들한테 무엇이 필요한 걸까? 그리고 언제쯤 이런 것들이 모두 끝나는 걸까?’ 눈앞에서 변하고 있는 그림자들을 바라보면서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팔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졸음이 엄습했고, 눈 속에서 빨간 동그라미들이 튀었고, 이 목소리들, 이 얼굴들이 주는 인상과 통증이 고독감과 하나로 녹아들었다. 이 사람들, 부상하거나 부상하지 않은 이 병사들이 그의 힘줄들을 으스러뜨리고, 짓누르고, 비틀고, 부러진 팔과 어깨의 살을 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457)

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거쳐 요람에서 나와 어른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온 세계 공통의 오래된 모든 경험도 백작부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성장의 각 시기에 있었던 아들의 변화는, 그것과 똑 같은 길을 밟고 성장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그녀에게는 언제나 신기한 것이었다. 스무 해 전 그녀의 심장 아래 어딘가에서 숨쉬던 조그마한 존재가 응애응애 울기도 하고 젖을 빨기도 하고 옹알거리기도 한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 존재가, 편지로 미루어보건대 강건하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 세상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509)

안개가 자욱한 밤, 달빛이 안개 속으로 신비롭게 비치고 있었다. ‘그렇다, 내일이다, 내일!’ 그는 생각했다. ‘내일, 어쩌면 나의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 이런 추억도 모두 사라지고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니 확실히 내일이다, 내 역량을 남김없이 발휘할 순간이 마침내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다.’


(510)

그러나 내가 이러한 것을 원하고, 명예를 원하고,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고, 남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원하는 것. 내가 오직 그것만을 원하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죄는 아니다. 그렇다. 그것만을 위해서인 것이다! 나는 절대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아아! 명예와 사람들의 사랑 외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죽음도, 부상도, 가족을 잃는 것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많은 사람-아버지, 누이, 아내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이 아무리 소중하고 사랑스럽더라도 명예의 한순간을 위해, 사람들에게 승리를 자랑하는 한순간을 위해, 내가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는 아버지와 누이와 아내를 지금 당장이라도 버릴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아무리 무섭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해도 나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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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1-27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것 안 읽었는데... 어떤가요? 속도가 잘 나가나요?

bookholic 2021-11-27 20:33   좋아요 2 | URL
제가 고전을 읽기에 적합한 뇌를 탑재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나름 잘 읽히고 있어요... 3권 마치고 4권 한 권 남았어요.
문학동네의 이 시리즈가 글씨도 좀 큼직하고,
번역도 괜찮게 되어있는 것도 한몫 한 것 같아요~~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레삭매냐 2021-11-29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전 언제나 읽을 수 있을까요.

bookholic 2021-11-29 09:49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 님도 언젠가는 꼭 읽으실 겁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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