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시리즈 MIDNIGHT 세트 아홉 번째 안톤 체호프의 <6호 병동>을 읽었단다. 안톤 체호프는 주로 단편 소설을 많이 쓴 러시아
작가로만 알고 있었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단다. 이번에
읽은 것이 처음이야.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에는 중편이라고 해야 할
<6호 병동>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이렇게 두 작품이 실려 있었단다. 단
두 편이었지만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구나.
…
1.
먼저 <6호 병동>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줄게. 6호 병동은 정신 병동이었어. 다섯
명의 환자와 문지기 니끼따가 6호 병동의 주요 인물들이었어. 환자
중에는 이반 드미뜨리치라는 자가 있었어. 이반은 법원의 집행관을 하다가 서른세 살에 피해망상이 심해져서
병원에 들어왔어. 그는 어렸을 때 부유한 집안에서 책도 좋아해서 엄청 많이 읽었어.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졌어. 어느
날 갑자기 경찰에 체포될 것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가 그것이 심해져서 6호 병동에 들어오게 되었대. 이곳이 병동이긴 하지만, 한동안 아무 의사도 오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떤 한 의사가 자주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그
소문의 내막은 이랬단다.
안드레이 에피미치 라긴이라는 의사가 있었어. 안드레이는 의사로써 성실한
적은 거의 없고, 의료 진료에 늘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거의 진료를 하지 않았어. 그의 보조 의사가 주로 진료를 했지. 그의
유일한 행복은 책 사는 것이었어. 월급의 절반을 책 사는 데 썼단다.
어느 날 6로 병동에 우연히 갔다가 이반 드미뜨리치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그 동안 이곳에서 느껴보지 못한 지적 희열을 느끼게 되었어. 이반의
해박한 지식으로 지적이면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 얼마나 그 동안 이런 대화를 원했던가.
그 날 이후 안드레이는 이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자주 6호 병동에
찾았단다. 6호 병동을 자주 가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드레이의 동료의사와 친구들은 안드레이가
미쳤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 이런 소문으로 인해 그는 의사 자리에서도 쫓겨나게 되었지. 그를 돕겠다고 어떤 동료의사는 그에게 약을 주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그를 자주 찾아와 말을 걸고 여행을 함께 데려가기도 했어. 하지만 안드레이에 필요한 것은 지적인 대화인데, 그것을 할 수 있는 이는 주변에서 이반뿐이었던 거지. 그를 이해하지
못한 동료 의사들과 친구들에게 화까지 냈단다. 결국 동료 의사 중 한 명이 그를 속이고 6호 병동에 데려갔는데, 이번에는 의사로써가 아니라 환자로써 데리고
간 것이란다. 안드레이는 입원, 아니 6호 병동에 감금되었단다. 그는 자신이 감금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동료나 친구들은 모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그가 잘 치료 받으면
다시 정상인이 될 것이라고 말이야. 병원에 감금된 이후 안드레이는 분노하고 화를 냈단다. 그도 그곳 상황을 잘 알고 있었어.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그가 6호 병동에 온지 얼마 뒤 그는
뇌일혈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
간혹 실제에서도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취급하여 정신병원에 가둬두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단다. 특히 정신병원의 의사가 이 속임수에 관여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에서는 그런 속임수가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안드레이가 미쳤다고 믿고 있어서 선의의 차원에서 안드레이를
입원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야. 이럴 때 어떻게 내가 정상이라고 설득을 시킬까. 전문 의사가 이 사람은 정신질환이 있다고 하면 그걸 어떻게 아니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 같구나.
이 이야기는 안드레이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안드레이의 말은
다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안드레이는 억울하게 병원에 감금된 상황으로 말이야. 그런데 혹시, 안드레이가 진짜 정신질환이 걸렸고, 그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정신 질환 환자는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2.
두 번째 작품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이 소설은 제목이 독특해서 익숙한 작품이란다. 이 소설은
실제 지은이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주인공 드미뜨리 드미뜨리치 구로프는 얄타라는
섬에서 2주간 휴가 중이었어. 드미뜨리는 유부남이지만, 바람도 많이 피우는 사람인데 이번에 그의 눈에 들어온 여자는 개를 데리고 해변가를 산책하는 부인이었어. 그 부인은 늘 비슷한 시간에 개를 데리고 해변가를 산책했기 때문에 작업꾼 드미뜨리가 접근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 그 부인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 얄타에는 혼자 와서 한 달 간 휴가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물론 이름도 알아냈어. 안나 세르게예브나.
이후 자주 같이 산책을 하게 되었고, 안나를 알게 된 지 일주일 만에
드미뜨리는 안나에게 기습 키스를 했단다. 당황하는 안나. 안나는
윤리를 중시하고 착실하고 순진한 사람이었어. 안나도 드미뜨리가 맘에 들었지만,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어. 생각은 그렇지만,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윤리에게 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지. 안나와
드미뜨리는 자주 데이트를 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눈병이 심하게 나서 돌아오라는 전갈을 받았어. 안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 일로 그만 만나자고 했어.
그렇게 안나는 돌아갔고, 드미뜨리도 모스크바로 돌아왔단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드미뜨리.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안나 생각만
떠올랐어. 드미뜨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안나가 살고 있는 S시로
무작정 갔단다. 그리고 안나의 집까지 찾았어. 엄청난 부잣집이었지. 드미뜨리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려고 엄청 노력을 했단다. 안나가
뮤지컬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되고, 뮤지컬 극장에 가서 결국 안나를 만나게 되었단다. 안나는 깜짝 놀라면서 자신이 모스크바로 가겠다면서 헤어졌어.
그 만남 이후 안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모스크바에 와서 드미뜨리와 밀회를 나누었단다. 드미뜨리는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어. 안나도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그들의 밀회는 행복했지만 늘 불안했단다. 어떻게 하면 밀회가 아니고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 어려운 문제를 안고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읽는 이는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까? 아빠로서는 그래도 소설 속 주인공이니까, 진정으로 만난 사랑이니
어떤 식으로든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드미뜨리가 그 전에도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떠올라, 안나가
상처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안톤 체호프의 두 개의 작품을 맛보기로 읽었다고 했는데, 두 작품
모두 괜찮았단다. 나중에 기회 되면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도 함 읽어봐야겠구나. 아빠의 구매 이력을 조회해 보니 안톤 체호프의 책을 두 권 구매했었구나. 언제
샀었지? ㅠㅠ 그 책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먼저 찾아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병원의 마당에 그리 크지 않은 별채가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렇지만 두 사람은 그 끝이 아직 멀고 멀어, 이제야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