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비슷한 나쁜 사랑을 반복해서 하게 되는 것도 스톡홀름 증후군의 일반화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여기서도 자극 일반화 기울기stimulus generalization gradient가 존재한다. 새로운 자극이 기존 자극과 유사할 수록 자극 일반화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자라와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일수록 가슴이 철렁해지지 않겠는가? 즉 이렇게 예상해볼 수 있다. 피해자에게 친절을 보이는 특정 인물이 가해자와 유사하면 유사할수록, 피해자는 그 인물이 가해자인 것처럼 (그래서 학대를 멈춰줄 수도 있을 것처럼) 반응하며 유대감을 느낄 것이고 유대감도 더 강할 가능성이 크다. 그레이엄의 이론과 자극 일반화 법칙에 따르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피해자를 폭력으로 위협했던 가해자와 유사하면 유사할수록, 그 개인이나 집단의 친절한 행위가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에게서 스톡홀름 증후군 일반화를 끌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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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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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귀여운 개미에 대해 쓰고 싶었을 뿐인 10살 아이는 심사위원이 반공산주의로 확대해석하여 백일장 대상을 받았다. 앞뜰에 쪼그려 앉아 개미 보는 것과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려 그 후로는 사회적 통념과 예의를 문장으로 표현할 뿐 자신의 글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삶과 관찰, 생각(사유)에서 나오지 않는 글은 허망하고 미끄러질 뿐이다. 서평도 마찬가지로 책에서 나온 내용을 잘 요약한 글은 마케팅을 위해 출판사가 써놓은 책소개를 보는 것보다 재미없고 강의노트와 다를 것이 없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녹여 글을 써내려가고 글로써 표현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한다. 카페에서 글쓰기 모임을 주관하면서 그 안에서도 위로와 깨달음을 얻어가며 계속 진화중이다. 표현된 아픔은 더이상 아픔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아픔의 사라짐이 아니라 객관화를 통해 구조적인 관점을 획득하여 이유를 알고 이해를 하며 더 나아가 같은 아픔의 재생산을 막는다.
자신만의 방이라는 꼭지에서 파란 방과 녹색 방이라는 비유를 읽으며 북플과 투비는 빛방(알라딘 아이콘의 빨파노는 빛의 삼원색)이라 이름붙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어떤 북친께서 자신에게 필요한 책은 알아서 찾아온다고 했다. 최근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고 있었는데 그 분의 말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그 아이는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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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4-09 12: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친님 말씀이 맞아요. 그래서 저는 제 주변 애서가들에게 책을 추천하지 않아요. 애서가들은 각자 알아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거든요. ^^

DYDADDY 2023-04-09 16:26   좋아요 1 | URL
두달여동안 오지 않으셔서 걱정했었습니다. 북플에서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올려주시는 리뷰를 보고 책선정을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엄한 책을 읽을 일은 줄어드는데..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져 큰일입니다. ㅎㅎㅎ

공쟝쟝 2023-04-09 1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ttp://bookple.aladin.co.kr/bp/jyang0202/590365018
죄송합니다 제가 또… ㅋㅋㅋ 내글을 인용하다닠ㅋㅋㅋㅋ 다른 건 아니고 첨부된 영상 보시고 꼭 쓰세요!!

DYDADDY 2023-04-09 23:20   좋아요 0 | URL
푸코의 책 중에 <상당한 위험>은 철학이 아닌 글쓰기에 관련된 책이라 걸렀는데 읽어봐야할 이유가 생겼네요. 페이퍼도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아, 죄송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공쟝쟝님의 가르침 좋아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3-05-2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서 책이 뚫어…진 건 아니고 대여 전자책이라 괜찮았지만 하여간에 좋아하는 작가님입니다. 후속작들도 좋게 읽었습니다. 남들 같지 않은 삶, 나다운 삶 씩씩하게 꾸려가는 이들이 글까지 잘 쓰면 좋더라구요.

DYDADDY 2023-05-26 09:34   좋아요 1 | URL
저도 전자도서관을 많이 이용해서 뚫어지지는 않았어요. ㅋㅋㅋㅋ 북친분들이 올려주시는 글을 보면서 좋은 작가들을 하나씩 찾아서 읽고 있어요. 몸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어서 쾌차하셔서 좋아하시는 등산도 다시 다니실 수 있기를 바라요. ^^
 

글의 마무리가 꼭 해피엔딩이나 교훈적일 필요가 없는데 사람들과 사진을 찍을 때 항상 웃어야한다는 강박처럼 마무리했을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여성의 피해에 대한 글은 많이 보았지만 남성이 스스로 가해자임을 이야기하는 글은 없었다. 5.18의 피해자들은 이야기하지만 그당시 군인들은 스스로 가해자였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움이라 규정된 이야기를 드러내고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다.
나는.. 때로 선하고, 때로 악한..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다.

글쓰기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을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관성적으로 쉬운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잠시 제동을 걸어 일부러 길 잃기를 선택하는 게 쓰기의 과정 아닐까. 내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거나 느낄 수 없는지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며 살피고, 첫 판단을 버리고 낯선 시선을 탐색해가면서.

정직을 위한 정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은 말로, 솔직함을 위한 솔직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 글쓰기에 필요한 솔직함이란 무엇일까. 내가 만든 글쓰기 사전에서 나는 솔직함을 이렇게 정의한다.
솔직하게 쓰다 [동사]
1. 부지런하게 나를 개방하는 일
2. 용기의 도미노에 참여하는 일
3. 우연, 타자,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
4. 한계에서부터 다시 무엇인가 되어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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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4-08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는 솔직한 글쓰기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이성복 시인은 "모든 미친 것들에게, 미치지 않으면 안 될 사연 하나씩 찾아주는 게 시"라고 했다. 나는 그 사연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서, 쉽게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자신의 삶을 고구마 줄기 캐듯 이리저리 뽑아내는 최현숙 선생님처럼, 선생님이 만난 노인들, 내가 만난 엄마, 그리고 나처럼, 사람은 누구나 끝없이 이어져 나오는 고구마 줄기만큼의 이야기보따리를 안고 각자의 이유로 나름의 선택을 하며 산다.
내 이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 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사람의 사연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럴 땐, 의미가 무엇이든 그 사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내 존재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혐오 시대‘라는 말에 실감하며 세상에 진저리쳐질 때면 나는 글을 읽는다. 타인의 존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다시 내 몫의 옹호를 쓴다. 엄마가 알려준 옹호의 쓰기다.

생각 없이 쓰는 언어가 실재하는 존재를 어떻게 지우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쉽게 말을 뱉지 않는다. 나는 이런 태도가 글을 쓸 때도 배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면 문자 언어도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지만, 적어도 글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걸 때는 시대의 감수성에 섬세하게 다가가는 서사와 표현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표현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누구의 얼굴을 지우는지, 그 표현으로 누가 사회적 공간에서 밀려나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견에 휩싸여 소중한 존재에게 "그러다가 너 맘충돼"라거나 "너 된장녀 같아"라고 말하는 무지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비문이나 맞춤법은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차별적인 언어는 누군가의 상처를 찌르고 눈물샘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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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얘기했듯 나는 ‘정상‘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 관습적인 것이 정상인가. ‘정상‘ 대신 ‘관습‘이라는 단어로 배치해보면 많은 것들의 부조리가 확실하게 보인다.
인간은 총체적 존재이다. 다만 그 총체성에서 누군가 필요한 부분만 뽑아 분류화한다.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서툴고 성근 글이었지만, 글을 쓸 때마다 주위 환경이 재배치되었다. 이혼이 불행한 게 아니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견고한 사회가 불행하다는 것, 여자의 도리를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 성별 이분법과 그에 따른 차별과 배제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면했던 나의 입체적인 면도 생생하게 살아났다. 나는 학교밖 청소년이었기에 일찍이 제도권 밖에서 살아갈 다양한 방식을 모색할 수 있었고, 정상 궤도라고 불리는 것을 이탈했기에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을 기를 수 있었다. 나는 이혼한 집 딸. 전문대 출신,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라는 몇 가지 단어로 간편하게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밀크티와 공포영화, 비 오는 날, 동물, 따뜻한 대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뭔가 이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주 우울하고, 주기적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어 하는,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무엇이었다. 쓰는 과정을 통해 나는 배웠다. 사람은 몇 가지 키워드로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한 존재라는 사실을.

내 세계를 타인에게 보이는 일,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고개 돌리지 않는 일. 나에게 읽고 쓰는 과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아직 나에게도 깨지 못한 편견이 많고, 사회에도 깨지지 않은 침묵이 많다. 강요된 평화가 아닌 정직한 불화를 위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

내 몸을 긍정하는 과정은 읽고 쓰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내게 강요된 불합리한 감정을 의심하고 재배치하면서 글을 쓸 때, 기억 속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경험은 하나의 단면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치스럽게 여겼던 경험이 사랑이기도 했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경험이 폭력이기도 했다. 나는 안다. 내 몸과 감정을 세심하게 돌볼 때, 경험은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첫 키스의 기억을 위협이 아닌 위로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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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4-07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잘 모르는 책이라서 저자 소개를 읽었는데
표현노동자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서인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DYDADDY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오늘은 햇볕 좋은 따뜻한 날이었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DYDADDY 2023-04-09 22:53   좋아요 1 | URL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 또는 타인의 드러내며 쓰는 글쓰기를 돕기에 표현 노동자라는 소개가 있나봅니다. 서니데이님의 글에도 아주 조금씩은 서니데이님의 모습이 보이듯이요. 정신없는 주말이 끝나갑니다. 다음주는 서니데이님이 계획하신대로 일이 잘 풀리시기를 바라요. 아, 비소식이 있으니 일기예보 잘보시고 우산 꼭 챙기시고 아침저녁으로는 다시 꺼내신 늦겨울 옷을 조금더 입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추워서 떠느니 살짝 더운 차림이 건강에도 좋으니까요. 여기는 화토일에 비가 올 예정인데 계신 곳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안온한 밤 되시기 바라요. ^^

기억의집 2023-04-11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저자처럼 계속 읽고 쓰고 싶긴 합니다!!

DYDADDY 2023-04-11 19:51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제대로 읽는 것도 어렵지만 제대로 쓰는 것은 더 어려운 듯합니다. 세상을 고정관념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다른 서사를 읽어내며 다른 문체로 써내려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작업이지만 세상을 삐딱하게 볼 줄 아시는(좋은 의미입니다. ^^) 기억의집님이라면 가능하실 것 같아요. ^^

기억의집 2023-04-11 19:54   좋아요 1 | URL
한달 정도 안 들어온 것 같어요. 책은 열심히 읽는데.. 유튭이나 인스타 끊어야할 것 같아요. 진짜… ㅎㅎㅎ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운 납니다!!

DYDADDY 2023-04-11 20:09   좋아요 0 | URL
세상이 수상하고 번잡하여 유튜브나 인스타를 끊는 것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책 안의 함의를 보는 눈을 함께 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용산을 향해 주먹감자를 날리실 수 있는 기억의집님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