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하다가 고개를 드니, 조가 앞에서 다리미와 풀 먹인 셔츠와 원고로 저글링을 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는 손을 뻗어 공중에서 도는 잡동사니에 수표 뭉치를 끼워 넣었으며, 그것들은 지붕을 뚫고 솟아올라 거대한 원을 그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틴은 조를 후려갈겼으나, 그는 도끼를 빼앗아 날아가는 원에 추가했다. 그리고 그는 마틴도 잡아 올려 원으로 던졌다. 마틴은 지붕을 뚫고 올라가 원고를 움켜쥐었으며, 내려올 때는 품에 원고를 한 아름 안고 있었다. 내려오자마자 다시 올라갔고, 재차, 삼차, 수도 없이 원 주위를 날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어린애처럼 새된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와 함께 빙글빙글 왈츠를 춰요, 윌리, 빙글, 빙글, 빙글"
수표와 풀 먹인 셔츠와 원고로 이루어진 은하수 한가운데서 그는 도끼를 되찾았다. 그리고 조를 죽이러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새벽 2시에, 얇은 칸막이를 통해 그의 신음 소리를 들은 마리아가 그의 방으로 들어와 그의 몸에는 뜨끈한 다리미를, 쑤시는 그의 눈에는 물수건을 대 주었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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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소유주가 친절을 베풀면 수하의 노예들은 노예제의 멍에가 견딜만하겠지만, 노예 제도의 극악무도함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남자는 언제나 태도가 돌변해 친절과 사랑을 끊을 수 있다. 따라서 친절과 사랑이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위협이 여자를 통제하는 도구로 작용해, 여자가 계속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하고 남자의 친절함이 중단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남자가 여자에게 보일 수 있는 진정한 친절이 있다면 그건 남성 지배에 맞서는 우리의 투쟁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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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이야기에는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그의 감각에 거슬리는 뭔가가 있는 듯했다. 그는 버틀러 씨의 인생에서 절약과 궁핍의 적절한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만약에 버틀러 씨가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나 아름다움을 달성하기 위해 그랬다면, 마틴은 이해했을 터였다. 신이 선택한 미친 연인은 입맞춤을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다 할 테지만, 연 수입 3만 달러를 위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버틀러 씨의 이력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튼 뭔가 시시한 것이 그 이력에 있었다. 연 수입 3만 달러야 좋지만, 소화불량에다 인간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은 그 많은 수입을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는 불쑥 그렇게 말해 버리고 싶었는데, 햇살이 내리쬐는 공간과 별이 충충한 허공의 무한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그 세계를 그녀와 함께, 그녀를 팔에 안고 떠다녔으며, 그녀의 옅은 금발이 그의 뺨 언저리에 휘날렸다. 동시에 그는 언어가 비참할 정도로 부족함을 깨달았다. 맙소사! 그가 본 것을 그녀도 볼 수 있도록 단어들을 잘 직조해 낼 수만 있다면! 그는 제 마음의 거울에 불시에 비친 이 환영들을 그려 내고자 하는 욕망을, 죽음의 고통처럼 격렬하게 느꼈다. 아, 그것이었다! 그는 비밀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작가들과 대시인들이 한 일이었다. 그들이 거인이 된 이유였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본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았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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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1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짜진짜 재미있죠?!

DYDADDY 2023-04-13 09:34   좋아요 0 | URL
관계와 내면에 대한 표현이 섬세하고, 대비되는 두 세계의 괴리가 잘 드러나 있어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
 

외면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다가가지만 그 속내에서 거짓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멀리서 바라보아야할까. 아니면 그 안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야할까.

그는 자신의 어색한 걸음걸이도 잊고 그림에 가까이,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화폭에서 아름다움이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마구 떡칠 된 듯한 물감 반죽을 들여다본 다음물러섰다. 순식간에 모든 아름다움이 화폭에 되살아났다. ‘눈속임이군.‘ 그는 생각했다. 그 그림에 정이 뚝 떨어졌다. 갖가지 인상을 받아들이는 와중에도 분노가 치솟았다. 한갓 속임수를 위해 그토록 많은아름다움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났다. 그는 그림을 몰랐다. 그가 자라며 본 것은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항상 분명하고 정확한 판화들이었다. 상점의 진열장에 전시된 유화들을 보기도 했지만, 유리때문에 그림을 가까이서 진지하게 살펴볼 수가 없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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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증후군이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며,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타인과 고립되어 있으며, 가해자/인질범의 사소한 친절을 목격한 개인이 있다. 이 개인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가해자/인질범과 친해지는 것임을 깨닫고, 실제로 가해자/인질범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과 친해져야 하고 그 사람에게 유대감을 느껴야 하므로, 스톡홀름 증후군 발생은 상당한 인지 왜곡 없이는 불가능하다. 피해자는 무의식적으로 학대 부정이라는 인지 왜곡을 통해 위험과 트라우 마 가능성을 잊으려 하고, 학대 부정은 가해자와의 유대감 형성을 촉진한다. 그레이엄은 9개 인질 집단에 관한 문헌 검토를 기반으로 집단의 종류와는 관계없이 4개 선행 조건이 존재할 때 스톡홀름 증후군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서로 다른 스톡홀름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이유도 선행 조건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스톡홀름 증후군의 선행 조건과 증상은 모두 연속 선상에 존재한다. 즉 개인마다 선행 조건과 증상의 정도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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