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아이들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장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는 뿌듯하고 감격적인 순간을 맞아, 그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혹은 이미 많은 부분을 잊어버린 복잡한 이야기들을 더 망각하기 전에 이번 독서가 내게 남긴 것을 기록해 본다. 살만 루슈디가 언어와 피클을 이용하여 내 기억을 영원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그 명성을 말로만 듣던 한밤의 아이들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는 솔직히 이 책의 주된 특징인 마술적 사실주의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긴장감보다는 서술 내용과 방식의 독특함 때문에 낯설고 신기한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천일야화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사소하고 비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의 연속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 책만 펼쳐 들면 펼쳐지는 아련한 환상의 세계가 꿈으로, 그러니까 잠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나날들(근 일주일! 왠만한 소설들은 길어도 이삼일이면 끝내곤 한 것에 비하면 저조하기 짝이 없는 속도다…. L)을 보내었지만 감히 내던져버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부커상을 세 번이나 수상하고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열렬한 칭송을 받은 권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 탓만은 결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주인공 살림 시나이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 개성이 풍부하고 매력적이고, 그를 둘러싼 가족사 이야기도 무척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며, 주인공의 일생을 통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지적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독립, 연이은 파키스탄의 독립, 인도와 중국,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 동파키스탄을 도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 공산주의 운동, 인디라 간디와 아들 산자이 간디가 이끌었던 국민전선의 독주와 부패, 그리고 비상사태 선포, 그 기간에 일어난 지식인 탄압, 강제 도시미화사업과 강제 불임시술이 모든 분열과 배반과 저항의 역사가 어쩌면 우리 역사와 이토록 오버랩 되는지! 대체 누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인지, 어찌하여 역사는 이토록 시간적, 공간적으로 반복되게 되어 있는 것인지슬프고 아프게 읽어나가면서 마치 나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의 맨 얼굴을 엿본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강점은 슬픔과 아픔이 유쾌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데 있다. 코찔찔이, 얼룩상판, 중대가리, 코훌쩍이, 붓다, 달덩어리, 오이코라는 다양한 별명을 가진 주인공 살림 시나이가 바라보고 이해한 세계가 환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속한 세계 자체가 눈물겹다 못해 코미디처럼 웃기고 아이러니한 부조리에 가득 찬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접한 역사라는 단어는 언제나 비장함이라는 감성만이 허용된 대상이었다. 그러나 너무 말이 안 되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일단 하고 웃는 수밖에 없는 노릇인 것처럼, 사실상 수많은 제3세계의 역사가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들이야말로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웃기는 짜장면 같은 코미디의 연속 아니었던가. 그런 슬픈 코미디를 동시대인들과 후대인들에게 상세하게 들려줌으로써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역사의 의미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이 책은 그런 문학의 역할을 백이십 프로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인도의 역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이 책에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숨어있다. 따라서 인도의 역사적 지식에 해박한 고급독자(?)들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나보다도 몇 배는 더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살림의 운명 자체가 인도 민중 전체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면, 살림이 사랑했던 누이 놋쇠 잔나비의 어린시절의 반항적인 태도와 어른이 된 뒤에 종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은 인도 내의 서자같았던 이슬람 집단이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살림의 외할아버지 아담 아지즈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일 역시 종교와 분리된 세속적인 국가 수립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싶다. 다른 많은 등장 인물들의 특징 역시 이런 식으로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리라 추즉하지만 지식의 짧음만 아쉬워하면서 훗날의 재독을 기약해 본다.

 

2013.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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