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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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윤리적 의구심을 뒤로하고, 만만치 않은 분량의 이 소설을 끝까지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다. 내가 특별히 문학적 감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이어 『롤리타』를 읽게  되면서, 실로 절절한 사랑에 관한 소설 3종세트를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독서가 이어지게 된 까닭은 문학동네 광고에 엮인 탓도 있을 것이고, 비슷한 주제의 완전히 서로 다른 작품들을 비교하면서 음미해보는 재미를 맛보고 싶은 마음도 내게 있었던 때문인거 같다. 어쨌든. 세 작품 모두 주인공이 절대적인 대상에 대한 갈망과 집착으로 서서히 자기파괴에 이르게 되는 처연한 내용이지만, 내 안을 가장 요동치게 만들었던 소설은 롤리타다. 단연 롤리타의 압승이다! 


주인공이 상대를 완전히 주관적으로 대상화하여 전유한다는 측면에서는 세 작품이 모두 같은데, 어째서 이 소설은 이토록 읽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 책을 덥고난지 한참이 지나도록 이 비극적인 아름다움에 넋 놓고 할 말을 잃게 만드는걸까...? 그건 확실히 언어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역량 덕분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롤리타와 험버트의 고통이 내 살갖을 파고들어, 한동안 다른 책을 집어들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험버트와 롤리타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언어라는게, 문장이라는게 예술의 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어떤 시보다도 더욱 확실히 알게해준 나보코프에게 경의를 바친다.


상대의 삶을 파괴하면서, 그 사실을 결코 모르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만들어낸 '사랑'이라는 이름의 틀 안에 갇혀버리고만 험버트는 탐닉적 사랑의 자폐적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다. 탐닉이 단순한 에로티시즘을 넘어서서 예술적 숭고함의 경지에까지 다다른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득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떠올랐다. 하나의 미적 대상에 대한 무시무시한 집착과 끈질긴 소유욕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완벽하게 배제당한 대상 그 자체의 무심함에 의해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소유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남기에, 끝내 파국적 결말을 맞을 수 밖에 없었던 또다른 이야기 말이다. 험버트의 미적 향유의 대상은 인간이고, 험버트는 그 대상을 육체적으로도 향유하지만, 그 대상을 결코 소유할 수는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결국 그 자신의 판타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건 뭐 모든 낭만적 사랑이 공유하고 있는 널리 알려진 진실 아니겠는가. 

 

그런데, 비록 지금 나도 정서적 공감이라는 예술적 쾌락을 맛본 '공범'이 되기 했지만, 그래서 언어 예술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지만, 우리가 조금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인간의 관습법의 한계가 아니라, 예술의 의미에 관한 질문 말이다. 예컨대, 미적 향유의 대상으로 전유당한 대상이 난데없이 맞닥드린 어마어마한 폭력의 문제에 눈감는 예술도 가치가 있을까? 하는 것과 같은 질문. 그 모든 예술적 희생양 가운데서도 가장 가여운 우리 롤리타... 그녀가 철저하게 파괴당한 유년기의 기억을 끌어안은 채 평생을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그래서 나보코프가 그녀를 일찍 죽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나로서는 이 폭력적이기 짝이없는 예술지상주의(극단적 탐미주의)에는 끝내 동의할 수가 없다. (종교를 비롯한 다른 모든 근본주의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나의 이중성이 어쩌면 예술작품을 즐기는 많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를 설명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실재의 삶과 소설이 서로를 모방하면서도 어느 지점에 가서는 서로 달라지는 이유, 달라야 하는 이유 말이다. 


아, 언어유희가 많아 까다로웠을 번역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거론되거나 암시된 문학텍스트들을 세심하게 찾아 각주를 달고 섬세하게 말의 뉘앙스를 살리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번역자 김진준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싶다. (역자 약력을 읽어보니 이 분은 내게 살만 루슈디라는 또다른 언어의 대가를 만나게 해준 분이다!) 까다로운 말장난이 가득한 외국어로 쓰인 책에 독자로하여금 이토록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과연 빛나는 번역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2013.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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