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장석주의 소설창작 특강
장석주 지음 / 들녘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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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흔의 서재라는 인기 신상으로, 애서가뿐만 아니라 그간 책이 자신의 삶의 일부가 아니었던 이들의 구미마저 잡아당기고 있는 장석주 작가가 10여 년 전 썼던 두툼한 소설 창작 강의록이다. 내게는 처음 접하는 소설 작법책이지만, 사실 이 책은 구체적인 작법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막연하게 소설 읽기를 즐기지만 자신이 왜, 어떤 부분에서 소설 읽기에 매력을 느끼는지, 소설을 읽을 때 어떤 부분들을 의식하면서 읽으면 소설을 더 재미있게, 더 잘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콕콕 집어주는 책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책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려는 사람보다는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를 위한 책에 가까운 것 같다. 뒤늦게 어마어마한 양의 정신의 양식을 눈앞 가득 쌓아두고 무엇부터 어떻게 먹어치울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 처지에는 딱 맞는 책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을 굶주려온 탐식가이긴 해도 무작정 배만 불리는 것보다는 맛을 제대로 음미하면서 그 영양을 섭취하고싶으니까.

 

이 책은 소설창작의 기초에 관한 설명이 중심인 1부와, 90년대 한국소설 양상에 대해 개괄하고 있는 2,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게 보다 실질적인 정보를 주었던 건 2부의 내용이었다. 1부는 소설의 구성요소와 글쓰기 훈련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들을 담고 있는데, 소설의 구성요소에 관한 강의는 중고교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일반적인 내용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고, 글쓰기 훈련에 관한 조언은 주로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이 책 강추한다!)

 

2부의 내용은 다른 책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정보들로 구성되어 있다. 90년대 한국 문학계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거대한 지각변동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제작들에 대한 주요 비평들까지도 총망라해 놓았다. 80년대의 이념적, 이성적 사유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인의 실존의 문제와 감성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드러나게 된, 거대한 변화의 시기였던 90년대 한국 문학의 특징을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발점이 되었던 소설, 페미니즘 소설, 대중소설, 환상소설 등으로 명쾌하게 축약해서 정리해준 저자 덕분에 이 시기 한국 문학의 흐름을 더욱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이다. 2000년대 흐름도 이렇게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다면 좋겠다.(찾아봐야지!)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강의 내용의 예시를 위해 사이사이에 배치해 놓은 주옥같은 단편 여러 편을 통째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훌륭한 작가이자 평론가인 저자의 세련된 작품해설을 곁들여서 말이다. 소설 작법 책이 이처럼 재미실용적 가르침을 동시에 주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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