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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싱글맨>은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주인공과 작가의 목소리를 동일시하는 건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작품의
배경인 1962년에 작가의 나이와 주인공 조지의 나이가 동일하게 58세이며, 동성애자이자 영문학을 공부한 지식인이라는 점 등이 일치한다는 면에서 볼 때,
작가와 주인공이 크게 분리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소설은 단 하루 동안의 시간적 배경으로 주인공의 생각과 심리를
묘사하는데 중심이 맞춰져 있는데, 시간의 응집력 덕분인지 노년, 소수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인간이 느낄법한 상실감이 무척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 상실감은 자연스레 죽음, 소수자에 대한 편견,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성찰로 이어진다.
어조는 담담하고 독백적이지만,
그 안에는 슬픔과 분노, 따뜻함과 서늘함,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름답다.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한 인간의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이 모든 감정들을 꿈결처럼 모두 맛볼 수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행복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마치 조지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조지의 죽은 애인 짐이 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결국엔 이 소설 역시 진정한 소통을 통한 사랑만이 구원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말하고자하는 것 같다. 상대의 고통과 감성에 대해 진정으로 듣기를 원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지만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사랑이란 상대를 이해하려는 끝없는 노력에
있다는 사랑의 진리, 그리고 이것을 제대로 깨닫고 진짜 사랑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죽음의 공포마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구원에 관한 전설 말이다. 그건 후반부에 등장하는 학생 케니와 조지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을 통해서 제시되지만, 예컨대 비동성애자들의 동성애자를
향한 적대감이나 불이해 또는 비이해(잘못 이해하거나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일)가
이해로,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전환되는 방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톰 포드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오랜만에 책 속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미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또 하나의 소수자, 여성인 나로서는 주인공 조지가 느끼는 허무와 고독의 느낌에 많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서 현실로 다시 돌아 온 조금 뒤에는 마치 중년의 나이에 청춘 드라마를
보고 난 듯한 야릇한 아쉬움(소외감?)이 들었다. 이 알 수 없는 허전함은 뭘까? 그건 아마도 내가 가사와 육아 노동의 책임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결혼제도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관능과 열정에 진짜 방해꾼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육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고 전문직과 가사도우미를 가진 조지의 정신적이고 낭만적인 삶(노년에 가까운 나이에도 무려 십대 말 혹은 이십대 초(?)의 청년과 낭만적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이 은근히 부러울 지경이었다면 돌을 맞으려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실재로는 서른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연인
돈 바카디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33년간을
행복하게 함께했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크리스&돈, 어 러브 스토리>(2007)라는
다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그러니까 실재 인물들이 출연한다는 소리다.
열일곱 소년과 쉰이 다 된 남자의 성적 이끌림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지게 될까? 올해
단연 화제의 영화였던 <은교>도 떠오르고, 막연한 호기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