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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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드세고 거친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의 일생. 어머니와 혹은 배우자나 아이와 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여지가 많은 소설일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은 저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 스스로 또 상처를 입기 마련이라는 변함없는 공식.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고리 바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따뜻한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올리브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상대를 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평생 좌충우돌하며 고통스러워한다. 황량하고 추운 자신의 내면을 상대방이 이해하고 보듬어주기를 끝도 없이 갈망하면서도 그 갈망을 분노와 독단이라는 일그러진 방식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는 몸만 자란 어른인 것이다. 사랑이라는 자양분의 결핍으로 미처 성장하지 못한 내면의 아이가 끊임없이 불쑥불쑥 분노를 표출하며 남편과 아들의 마음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고, 불행한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나 찾아다니는 이 참담한 삶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대답은 심리학적 공식에 충실하다.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되받는 일 외에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올리브가 너무도 사랑하면서도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들 크리스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은 자신이 상처 준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에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서 변화가 싹튼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들어줄 수 있는, 또 다른 자신만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잭이라는 노인을 만나면서다. 레즈비언 딸에게 절연의 상처를 주고 딸의 미움을 되돌려 받은 잭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마침내 올리브는 잭에게 자신의 아들 역시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았음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된다.


    올리브는 당장 답장을 썼다. “나도 죽도록 괴로워요. 죽음보다 더. 분명 내 잘못일 텐데, 난 이해를 못하겠어요. 같은 일도 아이가 기억하는 것하고 내가 기억하는 게 달라요. 아들은 아서라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데, 내 생각엔 아서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오랫동안 가만히 있다가 ‘보내기’를 누르곤 바로 다시 썼다. “추신. 하지만 분명 내 잘못이기도 할 거예요. 내가 절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헨리가 말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헨리 말이 맞을 거예요.” 올리브는 ‘보내기’를 눌렀다. 그러고는 또다시 썼다. “또 추신. 헨리 말이 맞아요.”(479-480쪽)

“아들, 정말로 때렸어요.” 올리브가 말했다. “애가 어릴 때 가끔 그랬어요. 그냥 엉덩이만 몇 대 때린 게 아니라 정말 때렸어요.”(481쪽)


     이제 아들과의 화해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결코 간단치만은 않은 과정이 남아 있긴 하겠지만. 


     잭이 백인 부자들이 지지하는 공화당 지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도 그에게서 연민을 넘어 사랑을 느끼는 올리브는 분명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 병원에서 잭은 올리브를 필요로 했고, 세상에는 올리브의 자리가 있었다. 이제 그의 푸른 눈이 올리브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의 곁에 앉으면서, 잭의 눈빛에서 올리브는 두려움을, 손을 내미는 여린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손을 펼쳐 그의 가슴에 대고 쿵쿵 뛰는 심장을 느껴보았다. 다른 모든 심장처럼 언젠가는 멎을 심장을. 그러나 그 ‘언젠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햇살이 따스한 작은 방의 고요뿐. 그들은 이 자리에 있고, 그녀의 몸은, 늙고 뚱뚱하고 살갗이 축 처진 몸은 그의 몸을 처절히 원했다. 헨리가 죽기 전 몇 년 동안 자신이 이렇게 헨리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올리브는 눈을 감았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482-483쪽)


     사랑 없이는 구원도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란 게 일상적 삶을 존중하는데 있으며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작가의 준엄한 메시지가 신선했다. 내 남편과 내 아이와 내 어머니를 향한 나의 태도를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일상에서 그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대했던가. 그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진지하게 귀기울였던가... 


     책을 읽으면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떠올랐다. 스테레오 타입의 희생적인 엄마를 잃고나서야 마침내 고마움과 미안함의 반성적인 시간을 갖는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진부한 효도윤리를 되새기는 작업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베스트셀러를 장식하는 현실이 짜증났었고 좀 다른 관점의 가족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목말랐었다. 가령 나쁜 아내이자 나쁜 엄마 때문에 상처받는 남편과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그 나쁜 아내이자 엄마가 그렇게 된 사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 것인지 같은 이야기 말이다. 희소식은 <올리브 키터리지>가 바로 이런 갈증을 충분히 해소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개개인이 원자화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가족관계는 아직도 우리의 삶에 중심을 차지하는 테마가 아닐까 싶다. 이런 깊이있는 통찰력을 주는 책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0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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